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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인과의대화] 머리말을 넘겼습니다. 곧 나옵니다.

들어가면서

책 제목을 정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처음 중국으로 간 게 13년 전이니, 중국인과의 대화가 참 길기도 했다. 2001 10월에 북경 땅을 밟았고,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으로의 기나긴 여정을 마음먹은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늦깎이로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배낭과 노트북, 카메라만 달랑 들고 중국 300여 개 도시를 휘젓고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대화라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배낭을 메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취재라고 애써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자연경관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13억 인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려던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욕심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보니, 땀내 나는 소품을 무대에 올려놓은 듯해 신통하기도 하지만 감개도 무량하다.

후한(後漢)의 학자이자 서예가 채옹(蔡邕)동리규승(動履規繩) 문창표빈(文彰彪繽)’이라 새겼다. ‘발걸음을 움직여 바로잡으려 하니, 드러내 밝히는 글마다 찬란하다.’라는 뜻인데,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중국의 정치인, 상인, 역사문화, 대중문화, 생활, 신화와 고전에 대해서만큼은 문() 정도는 될 듯싶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교가 이뤄졌다. 나는 피시(PC) 통신망 하이텔을 통해 <중국 사정>을 연재하던 동지 김기한과 함께 중국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전문 케이블채널 차이나티브이를 만들었다. 중국 전 지역에 있는 우리 교민 5천여 명에게 캠코더를 제공해중국을 실시간으로 전파하자던 꿈, 아마 그것이 삶의 새로운 변화, 40대 초반의 고단한 시작이었다.

차이나티브이를 개국할 즈음에는 방송을 선전하기 위한 구호가 필요했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짜내길 1, 사우나에서 눈을 뜬 아침 우연히, 불현듯 떠올랐다. 8억 인과의 대화』는 80년대를 살았던 세대에게는 커다란 가르침이었고, 또 중국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의 변혁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다. 그리고 대학생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신문기사실습수업이 떠오르더니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고 리영희 선생님께서는 매주 주제를 내주며 실제 기사를 써오라고 요구했다. 나는 장기수를 주제로 써서 칭찬을 받았지만 다음 주제에서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혼이 나고 말았다. 북한 핵무기를 주제로 쓴 기사였는데, 자신의 글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썼다는 강렬한 질책이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료를 수집한 후 쓴 글이었다고 변명해 보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 입장, 주장, 생각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후 글쓰기가 두렵고도 어려웠던 나는 2006 10월에 안휘(安徽)성의 한 작은 도시 남릉(南陵)에서 글을 써볼 용기를 냈다. 그리고 중국 전역을 돌아다닐 꿈을 꾸었다. 이것은 중국 최고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이 주유했던 17세기 중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도전이었다. 지도를 벽에 붙이고 동선을 짜는 사전 작업만 한 달이나 걸렸다. 그렇게 180일 동안 수만 킬로미터를 다녔고, 그 마음과 그 떨림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중국을 보는 냉철한 눈빛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8에서 ‘13으로 성장한 중국은 이제 더는 장막이 아니었다. 누구나 중국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제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보는 필요했다.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 어느 한두 도시만이 아니라 중국 전체를 이해해야 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가 책이 되어 나오지만, 선생님께서 쓰신 책 제목을 본떠서 붙여놓고 보니 볼품없다는 말이 나올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이 책이 나오면 태산 최정상에 있는 도교사원 옥황정(玉皇頂)으로 도망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수천 년 역사를 공유해 온 두 나라는한류를 매개로 대중문화와 사업적인 교류로 새 장을 열고 있다. 그래서 중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대화의 가장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이다. ‘한류라고 비아냥거리는 중국인도 풍성한 한국 대중문화를 스스럼없이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서로 대등하게 교류해야 하고, 끝없는 관심과 공유 또한 지속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이 책이 그 안주거리라도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13억 중국에 대한 내 경험이, 중국을 타인과도 이어주는 끈이 된다면 행복하겠다.

마지막으로 중국어는 우리말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국어에서는 현지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나는 그냥 우리말을 따랐다. 첫째 이유는 영어 같은 언어는 옮길 우리말이 없지만 중국어는 우리 한자음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통일성이다. ‘중국은 우리 한자음이고시진핑은 중국어이다. 셋째 이유는 내가 습근평을시진핑이라 불러도 중국인은 절대로, 영원히 나를최종명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고 또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중국인에게 감사하고, 마음대로 중국을 돌아다니도록 용서한 많은 벗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사사(謝謝)’란 말을 전하고 싶다.

북경올림픽 취재 중 하늘로 거처로 옮기신 어머님 비문 앞에 면죄의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북경으로 한 번 모시지도 못한 아버님의 서운함도 풀어드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옆자리를 지켜주지 못해 늘 미안한 아들 우혁이에게도 책을 선물하며 멋진 인생을 꿈꾸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내게 늘 용기를 주는, 귀여운 후배 김은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흔쾌히 책으로 만들자던 도서출판 썰물과밀물 조화영 사장님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인 분주(汾酒)라도 한 병 선물해야 할지 모르겠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동생들과 선후배에게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마련해 초대하고 싶다.

2014 7 5일 최종명

 

최종명

1963년에 강원도 태백산 자락에서 출생했다. 1984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후 10여 년 만에 졸업했다. 2004년에는 중국문화전문채널 차이나티브이를 설립해 부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중국전매(傳媒)대학 한어(漢語)반에서 중국어를 연수한 다음 180일간 중국을 발품 취재했다. 2011년부터 한겨레티브이 <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를 제작해 방영했고, 같은 해에 오마이뉴스 이 달의 뉴스 게릴라상을 받았다. 저작으로는 포토에세이 다이어리 <꿈꾸는 여행, 차이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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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 채옹/서하객 초상화



채옹(133~192), (동한) 시대 문인/학자/서예가로 비백(飞白)서체를 창의했으며 역시 뛰어난 여류문장가 채문희의 아버지이다. 동탁의 신하였다.

 

서하객(1587~1641), 당시  중국을 주유해 <서하객유기(徐霞客游)>라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리서이자 여행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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