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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인터뷰] ‘그들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낸 <삼치거리 사람들>

 

인천 아시안게임이 개막됐다. 때맞춰 인천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바로 <삼치거리 사람들>. 아시아인의 축제를 틈타 가뜩이나 열악한 출판시장에서 주목 받고 싶은 것인가? 생각했다.

 

삼치와 막걸리로 대표되는 동인천 삼치거리를 현장 취재로 담아낸 책인데 장사가 안되는 집이 있으면 자신의 손님을 직접 그 집으로 모시고 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절대로 가게 터를 확장하지 마라. 다른 집도 먹고 살아야 한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무한경쟁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듯 소담한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이야.

 

허름한 나무 대문 안에 왁자하니 모여 앉아 찌그러진 주전자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놓고 밤새 정치와 이념을, 그리고 사랑과 인생을 이야기한 사람이 어디 인하대생뿐이었겠는가. 허름하고 비좁은, 생선 냄새와 막걸리 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있는 이 집에는 인천의 불안한 청춘이 다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시국을 논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과 이별을 얘기하고 또 한쪽에서는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술잔을 높이 들었던 것이다. … - <삼치거리 사람들> 중에서 (49)

 

사람 냄새나는 거리를 책으로 엮은 이유가 궁금했다. 동인천 역 대한서림에서 홍예문을 향해 걸어가면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삼치거리가 있다. 지난 20일 오후 최희영 작가와 만났다. ‘정치와 이념그리고 사랑과 인생을 토로했다는 삼치거리로 들어섰다.



 

책에서 읽었어요. 이 집 대통령 방!”이라며 인터뷰할 자격 있음을 은근히 밝혀 봤다. 첫 번째 방 불을 켜니 박정희 방이다. 다음 방 불을 켜니 노무현 방. 우리 둘은 금방 안으로 들어섰다. 63년 동갑이다 보니 80년대 향수를 공유하고 있었을까.

 

- 인천 출신도 아닌데 동인천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80년대 5.3 인천항쟁 외에는 인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항쟁에 깊이 발을 담그지 못한 후회가 있었는데 문예창작과(중앙대)를 다니며 강경애의 <인간문제>, 현덕의 <남생이>을 읽으며 고향 충남 아산의 샛강 마을에서 자랐던 추억이 비슷해 인천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배다리 헌책방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러다가 인천 거리가 배경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파이란>을 보게 됐는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거리가 마음에 다가왔지요. 그러다가 최근에 인천 곳곳을 누빈 <골목, 살아(사라) 지다>를 만나 좋은 느낌이 있던 즈음 삼치거리 이야기를 책으로 기획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마치 운명처럼 맡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1986 53일 재야 및 학생 운동권은 국민헌법제정 등을 요구하며 인천에서 벌인 시위를 말하는 ‘5.3 인천사태에 대한 원죄라도 있는 것인가. 작가는 학생운동의 한복판에 섰던 것은 아니었기에 인천의 개항과 근현대사, 도시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고향으로 기억하고, 복원하고 싶었나 보다. 게다가 북경에서 중앙민족대학에서 소수민족 및 문화인류학을 공부했고 북한에 가서 영상기록자이자 문학 PD’라는 역할도 경험했다. 2년여 기간 라오스에 머물며 <잃어버린 시간을 만나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 삼치거리 이야기를 쓰는데 적임자라고 생각하셨던 것이군요?

삼치거리라고 해서 먹거리는 하고 싶지 않고 그런 주제는 다른 작가들이 많으니까. 출판사와 만나 공동체와 공동체 문화로 주제를 맞추길래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요.

 

- 아무래도 이 책의 감동은 인하의집이라 할 수 있는데요.

삼치거리 취재에 접근하면 할수록 인하의집 홍재남 사장님 부부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거에요. 진짜 멋있게 살다가 가신 분들이에요. 이분들은 배가 고팠어요. 어렸을 때부터 서럽기도 했고.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약자를 돕겠다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삶을 사셨어요. 홍사장님은 월남한 ‘38 따라지로 인천에 정착했으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힘든 생활을 하셨고 부인 이초자 여사님 역시 고아셨지요. 두 분이 만나면서 가게를 하게 됐고 인심 얻고 뿌리를 내리면서 좋은 품성이 드러나신 경우에요.

 

- ‘인하의집이 삼치거리의 모태라면 그 성공요인이 무얼까요?

1968년 문을 열고 난 이후 배고픈 시절을 잊지 않고 손님들에게 한 줌 더 주는 인정을 베풀면서 점점 입소문이 났지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 거리가 생성된 것은 전적으로 두 분의 양보와 나눔 정신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어요. 요즘처럼 대박 난 집이라면 절대 나누지 않지요. 모든 걸 다 가져야 하니까요. 두 분은 돈을 모으는데 모든 걸 걸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안 거죠. 베풀면 인정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걸 아신 거죠. 대박이 나니 장사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선뜻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 내가 조금 덜 먹을 테니까라며 손을 잡아준 두 분에게 지금 이 거리의 주인들은 보은과도 같은 고마움이 있어요.

 

- 결국, 나누는 마음이 행복하다는 진리를 실천하신 것이군요.

맞아요. 텃세란 건 애초에 없었고 삼치 손질부터 가게 운영 노하우, 심지어 새로 생긴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손님을 모시고 가서 이 집도 맛있다고 해주는 원조가 얼마나 고맙겠어요. 다 어려워서 오셨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잊겠어요. 원조 홍사장님 부부가, ‘나처럼 나누었지? 그럼 당신도 나눠!’ 그렇게 수십 년을 이어온 것이지요. 여기 사람들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두 부부의 말을 절대로 잊지 않아요. ‘나눔을 유지할 때 우리 거리가 산다는 정신을 몸으로 느끼고 계신 거죠.



홍재남 사장은 아들의 권유에 못 이겨 방송에도 나갔지만, 텔레비전에 나갔다는 홍보물을 간판이나 식당에 붙이지도 못하게 했다. 심지어 간판에 원조라는 말을 절대로 넣지 못하도록 했다.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배려가 없으면 안 된다는 원조의 정신이야말로 삼치거리 공동체의 기반이 된 것이다. 평생 부지런하게 살던 이초자 여사에 이어 홍 사장 역시 고인이 됐다.

 

삼치거리 가게 주인들은 지금도 홍 사장 부부에 대한 은혜를 잊지 못해 막걸리 잔 들고 산소를 찾는다고 한다. 최희영 작가도 취재하면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며 곧 홍 사장 부부 산소를 찾을 생각이라 한다. ‘양산박 삼치를 운영하는 주인 이야기 한 대목이 인상에 남는다.

 

처음에는 뭘 몰라서 삼치를 찜통 채반에 올려놓고 삶았다. 그 모습을 본 인하의집 부부가 5분 동안 웃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삼치 손질하는 방법부터 삼치 튀기는 방법까지 손수 가르쳐 주셨다. 이미 식당 계약할 때와 식기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중략) 그분들 덕에 이 거리에서 먹고 살았고, 아이들 공부도 다 시켰다. 그래서 인하의집 내외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면 삼치 한 마리 굽고, 막걸리 한 병 꿰차고 그분들 산소에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온다. - <삼치거리 사람들> 중에서 (149~150)

 

막걸리 한 모금, 삼치 한 젓가락. 삼치거리 이야기는 점점 깊어간다. ‘인하의집이 시작한 공동체는 그 어떤 휴머니즘 소설보다도 재미있다. 소설가 지망생 최 작가는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맛깔 난다. 계획도시, 설계된 거리라면 도저히 탄생할 수 없고 주인과 손님의 소통으로 승화된 거리. 그 현장에서 걸쭉한 입담도 더욱 농밀하다.



-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계획된 것은 아니겠지요?

한 집이 비면 한 집이 들어왔고 점점 새로운 집이 들어올 때마다 자연스레 공동체적인 문화가 생긴 겁니다. 그 어떤 이론이 있어 그렇게 하자 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50년의 역사가 지금의 20여 개의 가게 공동체를 이룩한 것이에요.

 

- 삼치거리의 공동구매 방식과 단일가격 제도가 생기게 된 것도 참 재미있던데요?

여기 오신 주인들은 가난하고 바쁜 사람들이었어요. 원조에게 와서 고민을 상담하고 그랬어요. 구매하고 손질하고 그럴 시간이 너무 바쁜 일이었지요. 함께 구매해서 나눠주고 손질 방법도 알려주고 하면서 공동구매가 정착된 거에요. 원래 홍사장님이 형편이 어려운 손님들이 안주 없이 술만 마시니 안타까워서 저렴한 안주를 고민하다가 60년대 후반 연안부두에서 버려지던 바라쿠다라는 생선을 가져다가 만든 것이지요. 처음에 홍사장님만 구매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눠주다가 공동구매의 시초가 됐지요.

 

- 그럼 삼치거리에 삼치가 없는 거네요?

지금은 뉴질랜드 산 바라쿠다도 있지만 구매처 다양화 차원에서 국내산 삼치도 파는 가게가 있지요. 단일가격 제도가 정착돼 있어 구매가격 차이가 있지만 삼치거리에 오는 사람은 사실 삼치를 먹으러 오는 게 아니거든요. 삼치하고 얽힌 이야기와 상황과 추억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국내산 삼치를 먹으면서 맛이 바뀌었네 라고 하는 사람은 있지요. 그런 자세한 삼치 이야기를 처음 이 책에서 밝힌 것이기도 해요.

 

- 나눔과 배려, 공동구매, 단일가격을 구현한 거리가 자본주의 상업성이 격렬한 우리나라에서 모범 사례로 전국에 퍼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갈 수 없어서 이 거리가 가치가 있는 거겠지요. 삼치거리는 손님을 끄는 행위가 없어요. 그저 평안하고 소박해요. 우리나라 길거리 나가서 보세요. 손님 하나 더 끌려고 호객하고 맛은 빼더라고 외양이 화려하고 TV에서 정신없이 먹는 이야기를 내보내고 무한경쟁, 좁은 골목에서 남보다 더 많이 팔아야 하는 판국이잖아요. 잘 났어 하고 자랑하지 않는 이 거리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이유이지요. 50여 년을 이어 온 것인데 인천의 역사를 다 담고 있다고 봐야지요. 정말 인천 사람들이 늘 변함 없이 찾아와 준 고마운 거리이기도 하지요.

 

- 인천 서민들의 거리이군요.

사람들이 되물어요. ‘뭐가 쓸 게 있어요라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 부둣가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고 공무원들도 있고, 술 좋아하시는 예술인들도 있고, 직장을 잡지 못한 백수 아저씨들도 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돼 술에 호기심이 있는 청년들도 있고, 또 여자친구 술 먹여서 어떻게 한번 좋은 시간 가져볼까 해서 데리고 오기도 하고. 여러 부류의 인천 사람들이 오기 참 편안한 거리에요. 가격이 싸고 실수를 해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풍기는 거리에요. 다른 데서 상처받고 오면 다 풀어줄 수 있는 넓은 사랑방이라고 보면 돼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버려진 구도심 동인천이지만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거리를 남겨둔 것이지요. 서민들 삶과 삼치거리의 정신과 딱 잘 맞아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봐요.

 

- 3부는 동인천 골목과 박물관 등을 소개하셨는데

배다리부터 신포동,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 홍예문 등 인천 개항 100년을 새겨볼 수 있는 동인천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둘레길도 생기고 동인천 문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노력의 결실이지요. <삼치거리 사람들>이 고층 빌딩 숲으로 인해 짓눌린 일상을 풀고 옛 추억을 되살리는 골목 문화여행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삼치와 막걸리로 발품을 마무리하면 더 좋겠지요.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2차를 위해 원조는 아니지만, 원조 삼치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가게 중 하나인 양산박 삼치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남수 사장 부부는 친구가 온 듯 최 작가를 맞아준다. <삼치거리 사람들>이 출간된 것을 알고 가게 안에 포스터도 붙어 있다. 손님들에게 책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한다. 포스터 아래 쓰여 있는 말이 정말 낯설다.

 

우리 골목은 크게 세 가지를 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호객 행위를 하지 않고, 둘째는 바가지요금이 없고, 그리고 셋째는 과열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호객과 과열, TV 프로그램은 더 맛있는 집이라고 난리고 옆집에 비해 더 잘났다고 홍보하는 게 보통 아닌가. ‘방송에 나온 집이 나오지 않은 집보다 많은 세상이다. 전국 어딜 가도 너보다 내가 원조라고 싸우고 남의 집에 흠집 내고 소송하고 그게 또 뉴스를 장식하고 그게 더 대한민국답지 않은가. ‘자본주의 만세를 부르며 살아온 곳, 그래서 삼치거리는 아주 낯설다.

 

밤이 깊어가는데 손님들 인정 나누는 소리가 정겹다. 삼치거리의 추억이 있는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이 사람 냄새튀겨내는 책을 봤으면 좋겠다. 아시안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인천에는 마르크스도 울고 갈 공동체 세상이 숨 쉬고 있다


<삼치거리 사람들> (최희영 지음 | 썰물과밀물 | 2014.9.11 |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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