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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와 가렴주구가 들끓으면 여지 없이 민초들은 지도자를 찾고 깃발을 들어 항거했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았던 민란의 역사,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비록 중국 민란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미래가 암울하니 혹시나 '성공하는 민란'의 힌트 하나라도 된다면 기쁘겠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없는 역사라 당시 '인민'의 고통과 함께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세월호'와 '메르스'로 상징된 나라의 국민과 '대동소이'라는 심정이다. '민란'의 깃발을 높이 들면 '인민은 춤추게 된다'는 역사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다. - 기자 말


[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 1] 기원전 841년 주려왕과 국인의 민란


▲  역대 제왕이 귀 막고 입 막고 눈 막고 통치를 하게 되면 늘 민란이 뒤따랐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 최종명


200년 도읍지 호경(鎬京)의 새벽이 갑자기 수상하다. 남정네들의 실루엣이 햇살을 머금자 점점 정체가 확연해지고 적막하던 거리는 순간 거친 호흡으로 뒤범벅이다. 제각각 몽둥이와 농기구, 삽이나 식칼을 들고 나선 이들은 별다른 신호도 없고 따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없지만 일사불란, 모두 목숨을 건 모습이다. 


돼지 잡듯 개 패듯왕성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사면의 열기는 하늘을 찌르고 팔방마다 칼날이 춤추는 가운데 처절한 고함은 끊임없이 웅장하게 하늘을 향해 울려퍼지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841년.


"희호를 죽이자! 놈을 죽여라!" 


희호(姬胡)는 누군가? 기원전 1046년 주무왕(周武王)이 강태공과 함께 군사를일으켜 상주왕(商紂王)을 토벌한 후 중원의 패자로 자리를 잡고, 소위 역사에서 '잘 나가던' 주나라의 10번째 군주 주려왕(周厲王)의 성과 이름이다. 그의 조상은 상나라 서쪽 2천 리나 떨어진 주원(周原, 섬서 기산岐山 현)에서 농업으로 생산성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힘을 기른 부족으로 성(姓)을 희라 했다. 


중국 고대 신화에 출몰하는 삼황오제 중 황제(黄帝)의 성이며 그의 후손이 주나라를 창건했다. 황제는 지금의 서안 서쪽 4백 리 부근의 희수(姬水)에서 오래 거주했다고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는 기록한다. 호경은 주나라의 도읍으로지금의 서안(西安) 서쪽 일대이다.


주나라는 패권을 잡자고심 끝에 중원 천하를 분봉(分封)했다. 공전(公田)을 중심에 둔 정전제(井田制)를 전격 채용했으며 토지와 경작할 인민들을 통치하도록 예약(禮樂)을 통일하고 왕족, 공신, 귀족에게 크고 작은 작위(爵位)를 내렸다. 고대에 다리가 셋 달린 술잔으로 다양한 문양을 새겨 신분을 나타내던 작(爵)은 통치계급 내부의 등급 서열을 나누는 법률제도의 규정을 상징하듯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으로 하사됐다. 장자인 대종의 세습과 소종의 분화로상징되는 종법(宗法)제도도 왕을 본받아 세습했다.


<사기> '주본기(周本紀)'에 따르면 불멸의 '씨족국가'를 염원한 주공(周公)의 창조적이며 주도 면밀한 설계를 칭찬하고 있다. 주공은 강태공, 소공과 함께 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형인 무왕이 일찍 죽자 어린 성왕을 섭정하며 천 년 왕업의 기틀을 쌓았다. 주공이 하사 받은 봉토인 노(鲁)나라 출신 공자(孔子)는 평생 우상이자 이상적인 정치인으로 숭배했다.


▲  서주의 수도 서안 문화거리에 있는 역사 인물 조각상 중 전쟁에 돌입하는 북을 치는 사람들 ⓒ 최종명


진나라의 뛰어난 상인이자 정치가인 여불위(呂不韋)가 자본의 힘으로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봐도 "주나라 봉토는 4백여 곳이고 아래 복종하는 나라는 8백여 곳에 이른다"고 했고 춘추시대 8개 나라의 역사를 모아놓은 역사 서적인 <국어國語> '주어(周語)' 편에 "(주나라) 선왕에게 천하가 있었는데 사방천 리 이내에 전복(甸服, 직접 왕이 관리하는 영토)을 세우고 그바깥 지역은 나누어 작위를 주고 각각 녕우(寧宇, 안정적인 구역이자 지정된 영토)를 세웠다"고 했다.


공자의 이상 국가 주나라도 세월이 흘렀던가? 2백여 년이 흘러 중원의 패자, 대왕을 죽이자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은 아무리 봐도 좀 심한 과장이 아닐까? 농기구 등으로 맨손으로 폭동을 일으킨사람들은 결국 왕을 몰아냈다. 역사에서는 이를 '국인(國人)의 반란'이라 부른다. 


나라 국(國)은 허신(許愼)의 한자 사전 <설문說文>에 따르면 곧 방(邦)이라 주석하는데 고대에는봉국(封國) 또는 영역(领域)을 말했다. 성역은 흙으로 쌓아 만들었으며 사방을 꽉 둘러싼 담장인 성城과 담장 안의 공간인 역域으로 나눈다. 역(域)은 <설문>에 곧 역(或)이라 했으며, 영토의 경계를 의미하는 방형으로 둘러싸인 곳이 나라 국國이다. 그래서 성곽 안에 사는 사람을 국인, 성곽밖에 사는 사람은 야인(野人)이라 구분해 불렀다. 


'창소욕언' VS '치약망문' 


주나라는 점차 사회모순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국고는 공전과 제후국의 공물이 원천이었으나 점점 사전 개발이 늘면서 공전의 수익도 줄고 제후의 수입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봉록이 줄자 관리들도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리며 하향 계급화했고 농업이나 수공업, 상업으로 연명하던 국인들은 성 안과 밖의 산림이나 강가, 연못을 찾아 새로운 생산물을 수확해 경제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려왕은 제후국 영나라 군주인 영이공(榮夷公)을 등용해 국인들의 소득원천이던 산림천택(山林川澤)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일종의 국유화 정책인 '전리(專利)' 제도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서민들의 경제기반을 강탈하기 위한 술수이자 상위 고관의 봉록과뇌물을 늘리기 위한 '영공노믹스(榮公)nomics'인 셈이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국인들은 사방에서 항의하고 원성이 잦았으며 갈수록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졌다. 양심적인 관리들도 '전리' 제도를비판했으나 주려왕은 나랏일에 대한 토론금지, 위반하는 자는 살육하는 더욱 고압적인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땔감 마련이나 수렵은 물론 강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으며 자원이 되는 모든 자연을 봉쇄했다. 주나라 개국공신으로 세습해 온 대신 가문의 소공은 참다못해 "백성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지경입니다"고 간언했지만 주려왕은 오히려 불만의 소리를 감시하기위해 첩자를 거리 곳곳에 배치해 말을 섞거나 심지어 눈빛만 교환해도 연행해 혹독한 고문과 구금, 사형으로 다스렸다. 나중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일벌백계 한답시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하들 앞에서 모든 비방을 잠재웠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니 독재치고는 야비했다. 


▲  서주의 수도 서안 문화거리에 있는 서안 출신 인물 조각상 ⓒ 최종명


이렇듯 강압적인 방법으로 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강을 틀어막는것과 같습니다. 강을 막던 제방이 일단 터지면 멸정지재滅顶之災의 엄청난재난이 생길 것은 자명합니다. 사람의 입을 막으면 다가올 위험은 강물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치수治水는 채용소도采用疏導이니 막힌 수로를 통하게 하는 것이고, 치민治民은 창소욕언暢所欲言이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누구나 하게 하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모두 나타나게 되니 좋은 일은 격려하고 나쁜 일은 대비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바를 입 밖으로낼 때는 여러 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어렵게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입을 막는다면 나라가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소공 소백호召伯虎는 군림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민심이 소통하는 나라의 지도자를 갈구했으나 주려왕은 '치약망문置若罔聞'했다. 쉽게 보면 '못 들은 체하다' 정도일지 모르나 그보다는 훨씬 강렬하다. 직언이나 비평, 하소연, 권고나항의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망국의 독재자에게 흔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주나라 수도 호경의 국인들이 들고 일어나 왕성을 쳐부수고 돌파해 나갔다. 주려왕은 폭도들을 진압하라 명령했으나 성을 지키던 관리들은 함성에 놀라 이미 도망갔다. 결국, 왕은 황하를 넘어 대부(大夫)가 다스리는 작은 영지인체읍彘邑(산서 곽주霍州)으로 도망갔다. '체'는 돼지라는 뜻으로 '국인의 민란'을다르게 부르면, 체 나라로 왕을 쫓아냈다고 '체지란彘之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화 원년은 역사의 실마리


왕을 몰아낸 반란 주동자들은 서둘러 주려왕의 아들 태자 정(静)을 죽여 근원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그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공의 집을 포위했다. 소공은 왕에게 간언했던 사실을 알리면서도 군주의 신하로서 해야 할 도리를 읍소했다. 소공은 자기 아들을 태자를 대신해 내주었고 태자는 어렵사리 도망해 목숨을 부지했다.


왕과 태자가 사라지자 소공과 주 나라를 설계한 주공의 후예인 주정공(周定公)과 함께 두 사람이 주 나라의 정무와 행정을 주재하는 공화정을 펼치는데 이를 '주소공화周召共和'라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재상두 사람이 왕을 대신해 국가를 경영한 기간은 14년이었다. 공화 14년, 주려왕이 14년만에 죽자 도망갔던 태자를 불러 주선왕(宣王)에 옹립했다. 재상의 정치를 편 두 제후는 나름대로 내치와 외교국방에 힘 썼으나 북방민족 견융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한 여름의 멍멍이 신세로 전락한다. 


기원전 841년, 공화 원년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도이다. 이때부터 역사서의 편년체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130편에 이르는 <사기>의 '본기(本紀)' 및 '세가(世家)' 편 곳곳에 연대의 표시와 함께 '주려왕이 체로 도망(周厲王奔于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사마천은 '공화' 원년을기준으로 역사의 흐트러진 시간대를 맞춘 것이다. 


주선왕은 재위 39년 견융정벌에 나섰으나 대패했으며 재위 46년 만에 사망하고 문제의 인물인 주유왕幽王이 승계했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는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지만 가장 불명예는여자 때문에 망했다는 홍안화수(紅颜祸水)의 오명이 아닐까? 경국지색과 놀다가 망했다는 치욕은 망국의 군주가 각오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후대의 왕조는 멸망 주체로서의 명분을 잘 포장하기 위해 이 잡듯 패악을찾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매희(妹喜), 상나라 주왕과 달기(妲己)에 이어 불쌍한 '마지막' 군주, 서주 시대를 마감한 주유왕과 포사(褒姒)다. 


▲  서안 거리에서 만난 경국지색을 상징하는 미인 조형물 ⓒ 최종명


포사는 유왕의 총애를 받자 태자를 폐하고 자신이 낳은 아들을 태자로삼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황후였던 신후(申后)는 태자를 데리고 급히 외가로 떠났다. 신후의 아버지는 주변국과 연합하고멀리 견융족(犬戎族)을 끌어들여 수도 호경을 침공했다. 웃지 않는 전술로 유왕을 꼬드기던 포사로 인해 실제로 적이 침공해 왔을 때 봉화가 올라도 지원군이 오지 않았다는 '봉화희제후(烽火戲諸侯)'는 '정치적 교훈'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서주가 멸망하자 후대의 사가들은 포사에게 100% 책임을 묻기 위한공작에 들어간 듯 보인다. 거의 7백 년이나 지난 후 기록된 <사기>에 갑자기 신화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 걸왕 말년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두 마리 용은 포사의 고향 '포나라의 두 왕'이라고 선언하고 타액을 뱉어놓고 사라지자 궤 속에 밀봉해 마치 국새처럼 왕조를 이어 승계한다.


상나라도 지나고 주나라까지 보관됐던 궤 속에서 한줄기 빛이나와 천년 만에 빛을 발한다. 국인민란으로 쫓겨간 군주 주려왕 앞에 갑자기 등장하더니 실수로 용의 타액이 쏟아지고 어느새 뱀으로 변해 도망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소녀의 은밀한 몸 속으로 사라졌는데 태기가 생기고 40년만에 여자 아이가 태어났고 강물에 버린다. 


스토리라인이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 않는가? 천년 전 하나라 망국의 교훈, 백성에서 쫓겨간 군주가 등장하고 용의 정기를 받았으나 징그럽고 교활한 뱀의 상징처럼 이상한 결말이 날 아이가 태어난다. 이 아이를 포나라 출신의 포사와 연결하면 작가적 상상력은 앞뒤 아귀가 맞는다. 이제 포사와 유왕을 연결해 줄 실마리만 찾으면 된다.


'염호기복檿弧箕服'이란 참어讖語가 노래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등에 지는 통이란 말인데 활과 화살이 잘 맞지 않고 반만 들어차는 모양새를 뜻하는것으로 주나라의 멸망을 예언한다. 어느 시골 활 장수 부부가 사정도 모른 채 도성에 들어왔다가 체포돼 부인은 사형 당하고 남편은 가까스로 도망친 후 강 가에서 비관 자살하려다가 강물에 버려진 '문제의 아이'와 조우한다. 


갓난 애를 기를 엄두가 나지 않자 포나라로 도주해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용모가 아주 예쁜 아가씨 포사로 성장한다. 마침 포나라는 주 왕실에 죄를 짓게 되고 면죄부로 포사를 바치게 된다. 주유왕과 포사의 극적 상봉이다. 


참어의 등장과 망국의 논리는 평범한 작가의 일반적 시나리오다. 만화 같은 신화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후세의 정치인들은 작가들을 고용해 '공자님말씀'같은 교훈을 남기고 싶었다. 포사는 억울할지 몰라도'용의 딸'이 될 정도로 미모는 남았으니 서운할 일은 아니다.


국인을 현대 세계로 치환하면 시민이자 국민이다. 28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사회 모순의 심화, 부의 불균등 분배에 따른 불만으로 사회적 갈등과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이 낯설지 않다. <사기>가 축약과 상징으로 기록한 기원전 민란은 장편소설 같은 진면목을 파악하는 데 미흡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꿈과 희망을 열어주지 못하고 억압하고 소통을 가로막고 언론조차 통제한다면 결국 민란에 버금가는 돌파구, 그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기원전 841년 국인이 보여주고 있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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