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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 (01)

 

“#하야하라 박근혜”, “#새누리도 공범이다는 해시태그를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현장. 대통령의 사과는 사퇴에 기름을 붓는 형세다. 전혀 사그라질 낌새가 아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측근의 검찰 수사, 조사만 제대로 맞물리면 구속도 잇따라 구치소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비워야 할 판이다. 2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나서 촛불을 들고 함성과 구호로 빛을 밝히는 현장은 민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는 왜 자꾸 되풀이되는가? 2,857년 전 중국에도 박근혜 정부와 일란성 쌍둥이가 살았다.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집필하면서 기원전 841년을 꺼내 들었다. 수많은 사건을 잘 배치하기 위해 시간 축을 기준으로 역사의 터미널로 삼은 것이다. 전기 코드를 꼽아야 불을 밝히듯 모든 사건이 시간의 단자로 배치될 수 있었다. 그 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사로 접속해보자. <사기> '본기(本紀)' '세가(世家)' 편 곳곳에 연대의 표시와 함께 '주려왕이 체로 도망(周厲王奔于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왕이 도망간 이유는 국인 폭동(國人)’이라 부르는 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이상 국가라고 공상한 주 나라의 여왕(厲王)에 이르러 점점 독재와 압제가 판치는 세상이 됐다. 하는 짓이 마치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의 행태와 너무나 비슷해 놀라게 된다.

 

주 나라는 점차 사회모순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국고는 공전과 제후국의 공물이 원천이었으나 점점 사전 개발이 늘면서 공전의 수익도 줄고 제후의 수입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봉록이 줄자 관리들은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리며 하향 계급화했고 농업이나 수공업, 상업으로 연명하던 국인(국민)은 성곽 안과 밖의 산림이나 강가, 연못을 찾아 새로운 생산물을 수확해 경제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 여왕은 제후국 영 나라 군주인 영이공(榮夷公)을 등용해 서민의 소득원천이던 산림천택(山林川澤)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일종의 국유화 정책인 '전리(專利)' 제도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서민들의 경제기반을 강탈하기 위한 술수이자 상위 고관의 봉록과 뇌물을 늘리기 위한 '영공노믹스(榮公nomics)'인 셈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2014 7월부터 2016 1월까지 경제부총리에 재직했는데 그의 경제정책을 초이노믹스라고 불렀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국인은 사방에서 항의하고 원성이 잦았으며 갈수록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졌다. 양심적인 관리들도 '전리' 제도를 비판했으나 왕은 나랏일에 대한 토론금지, 위반하는 자는 살육하는 더욱 고압적인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땔감 마련이나 수렵은 물론 강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으며 자원이 되는 모든 자연을 봉쇄했다.

 

개국공신 가문의 소백호(召伯虎)는 참다못해 "백성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을 지경입니다"고 간언했지만, 왕은 오히려 불만의 소리를 감시하기 위해 첩자를 거리 곳곳에 배치해 말을 섞거나 심지어 눈빛만 교환해도 연행해 혹독한 고문과 구금, 사형으로 다스렸다. 나중에는 일벌백계한답시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하들 앞에서 모든 비방을 잠재웠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니 독재치고는 야비했다.

 

이렇듯 강압적인 방법으로 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강을 틀어막는 것과 같습니다. 제방이 일단 터지면 멸정지재(顶之災) 엄청난 재난이 생길 것은 자명합니다. 사람의 입을 막으면 다가올 위험은 강물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치수(治水)는 채용소도(采用疏導)이니 막힌 수로를 통하게 하는 것이고, 치민(治民) 창소욕언(暢所欲言)이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누구나 하게 하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모두 나타나게 되니 좋은 일은 격려하고 나쁜 일은 대비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바를 입 밖으로 낼 때는 여러 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어렵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국인의 입을 막는다면 나라가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소공(召公) 직언을 통해 물 흐르듯 민심이 소통하는 나라의 지도자를 갈구했다. 그러나 주 여왕은 '치약망문(置若罔聞)'했다. 쉽게 보면 '못 들은 체하다' 정도일지 모르나 그보다는 훨씬 강렬하다. 직언이나 비평, 하소연, 권고나 항의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망국의 독재자에게 흔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치약망문은 어렵게 찾아낸 고사성어다. 조설근의 <홍루몽>에 나오는 말로 주 여왕을 위한 맞춤형 선물이다. 청나라 중기 사회를 꽤 비판적인 언어로 생동감 있게 조탁한 소설이다 보니 문구마다 피맺힌 한이 서려 있다. 여주인공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하늘과 땅이 떠나갈 듯 크게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치약망문했다고 표현한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살수차의 살인으로 백남기 농민이 영면하기까지 못 본 체한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도 휴머니즘 대신 휴()나 하고 있을 대통령을 위한 말로도 참 잘 어울려 보인다.

 

주 나라 수도의 국인은 여왕의 이름을 부르며 "희호를 죽이자! 놈을 죽여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들고 일어나 왕성을 쳐부수고 돌파해 나갔다. 왕은 폭도들을 진압하라 명령했으나 성을 지키던 관리들은 함성에 놀라 이미 도망갔다. 결국, 왕은 황하를 넘어 대부(大夫)가 다스리는 작은 영지인 체읍(彘邑)으로 도망갔다. ''는 돼지라는 뜻으로 '국인 민란'을 다르게 부르면, 체 나라로 왕을 쫓아냈다고 '체지란(彘之)'이라도 부른다.

 

왕이 사라지자 소공은 주 나라를 설계한 주공의 후예인 주정공(周定公)과 함께 정무와 행정을 주재하는 공화정을 펼치는데 이를 '주소공화(周召共和)'라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가렴주구와 독재가 판을 치면 여지없이 민중은 지도자를 찾고 횃불을 들고 항거했다. 비굴하게 살지 않았던 민란의 역사는 세계사 곳곳에서 기름처럼 세상을 보듬어 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만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메르스’, ‘사자방’, ‘BBK’ 등등등등이루 셀 수 없이 많은 폭정의 배설물 때문에 온 천지가 악폐로 진동하고 지진처럼 몰려온다.

 

11 5일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을 들고 나선 국민행동은 민란의 현장에서 높이 든 깃발이자 횃불이었다. 밤을 밝히고 노래를 부르고 뜨거운 함성으로 사람을 갈망하고 있더라. 주 여왕을 내쫓는 일이 쉽지 않았겠지만 모두 나서서 이루어낸 민란 역사의 쾌거로 생생하게 기록됐다.

 

남정네들의 실루엣이 햇살을 머금자 점점 정체가 확연해지고 적막하던 거리는 순간 거친 호흡으로 뒤범벅이 됐다. 제각각 몽둥이와 농기구, 삽이나 식칼을 들고 나선 이들은 별다른 신호도 없고 따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없지만, 일사불란, 모두 목숨을 건 모습이다. 돼지 잡듯 개 패듯 왕성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사면의 열기는 하늘을 찌르고 팔방마다 칼날이 춤추는 가운데 처절한 고함은 끊임없이 웅장하게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같은 기원전 841년의 일이다.

 

  • 민란에 관한 대 부분의 내용은 졸고인 <,>(2015, 썰물과 밀물)에서 인용하고 일부 내용을 고쳐서 기재한 것임을 밝힌다. ‘중국민중의 항쟁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은 중국 방방곡곡을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와 얻은 자료를 기초로 집필된 이야기 책이다민란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미래를 눈 여겨 볼 수 있는 잣대로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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