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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38] 하얼빈의 번화가와 안중근의사기념관

6월 7일 아침에 일어나 당 서기가 초대한 조찬을 함께 했다. 이틀 동안 시장조사 기간 동안 성심으로 도와준 주 부현장은 쟈무스(佳木斯) 시로 가는 차편까지 보살펴 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헤이룽장(黑龙江) 최 북단의 쟈무스 시에서 성후이(省会)인 하얼빈(哈尔滨)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워낙 땅이 넓다 보니 가까워 보이지만 무려 6시간이나 걸린다.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흰구름을 머금어 파릇파릇하기조차 하다.

하얼빈에서 두 분 김 사장과 헤어진 후 민박집 주인과 하얼빈 역에서 만났다. 하얼빈을 예전에 세 번 온 적이 있긴 해도 역에 온 것은 처음이다. 문득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쏜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숙소에 짐을 풀었다. 민박집 주인이 소개한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거의 20시간 동안 하는 일 없이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이 밝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6월 8일의 하얼빈은 새벽 4시가 되면 해가 솟는다. 창 밖으로 싱싱한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파는 새벽시장이 열렸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빛깔이 고기들의 생생한 느낌을 은은히 지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1시간 동안 참 재미있다. 정육점 칼날이 새벽 어스름을 타고 빠르게 살점을 헤집는다고 생각해보면 생경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잠을 잤다. 밥도 먹지 않고 내내 잤다. 그러다가 오후 5시가 되니 정말 배도 고팠기도 했지만 여행 길에 지나친 휴식은 어울리지 않을 듯, 그래서 시내 번화가를 찾아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쭝양따제(中央大街)는 하얼빈의 명동과도 같은 번화가이다. 차량 진입이 없는 보행거리이기도 하다.

하얼빈은 청나라 시대인 1898년에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즉, 서구열강이 청나라를 할거하던 시기에 대규모의 철로 부설과 함께 조성된 도시이다. 초기에 이 거리는 주로 중국인들이 거주하던 곳이라 하여 쭝궈따제(中国大街)라 불렸다.

  
▲ 하얼빈 쭝양따제 차 없는 보행거리로 유명한 하얼빈의 '명동' 거리
ⓒ 최종명
하얼빈

1925년 이후 외국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기 시작했는데 러시아 모피(毛皮), 영국 방직(呢绒), 프랑스 향수(香水), 독일 의약품(药品), 일본 면직(棉布), 미국 등유(洋油), 스위스 시계(钟表), 인도네시아 자바의 사탕(砂糖), 인도의 삼베(麻袋) 등 상품박람회를 방불하게 하는 거리였다고 한다.

  
▲ 하얼빈 쭝양따제 1925년부터 상업거리로 각광받는 곳
ⓒ 최종명
하얼빈

1925년 당시 러시아 기술자가 새로이 거리를 설계하고 조성하면서 쭝양따제로 명칭이 바뀌게 됐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풍의 건축물들이 길 양 옆을 장식하게 된 것이며 한 건물에는 ‘1925’년부터 장사를 해왔다고 써 있기도 하다. 한 러시아 인이 유랑 끝에 당도한 하얼빈에서 1906년에 문을 연 마뗴얼(马迭尔)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여전히 성업 중이기도 하다. 바이녠라오뎬(百年老店)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이 호텔 이름은 모던(Modern)을 뜻하는 러시아 어를 음역한 중국어라 그 발음이 독특했다.

남쪽에서 북쪽 쑹화(松花)강변까지 조성된 약 1.5㎞의 이 밤 거리를 거니는 것은 그야말로 어뤄쓰(俄罗斯) 풍이 빠져 황홀하다. ‘동방의 작은 파리’(东方小巴黎)라 불리는 쭝양따제에 있는 클래식한 동상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었다.

  
▲ '동방의 작은 파리'라 불리는 거리 하얼빈 쭝양따제는 러시아 풍 건축에 예술적 향기가 넘쳐 난다
ⓒ 최종명
하얼빈

숴페이야(索菲亚) 광장으로 가려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우리는 그저 성당이라 부르기에 ‘쏘피야 셩탕 쩐머줘(怎么走?)이라 물었건만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중국에서는 쟈오탕(教堂) 또는 톈주탕(天主堂)이 성당을 뜻하는데다가 ‘숴페이야’와 ‘쏘피야'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니 당연하다. 겨우 말 통하는 한 학생이 알려준 곳으로 10여분 걸으니 어둠 속에 불빛처럼 환한 광장이 나타난다.

1907년에 건립된 위엔둥(远东) 최대의 그리스정교 성당(东正教堂)이다. 즉, 위엔둥은 극동이란 뜻이고 둥쩡(东正)은 씨라(希腊) 즉 ‘희랍정교’를 줄여 말하는 것이며 씨라는 곧 그리스이다. 쟈오탕(教堂)은 기독교와 천주교, 그리스정교를 막론하고 중국인에게는 다소 포괄적 의미인 듯하다. 그리스정교와 천주교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여기 이곳을 우리는 ‘소피아 성당’이라 부르는 것은 맞다.

  
▲ 하얼빈의 소피아 성당 100년이 넘은 하얼빈 시내에 있는 그리스 정교의 소피아 성당
ⓒ 최종명
하얼빈

사방 곳곳의 건물마다 화려한 조명이 광장을 빛내고 있다. 하얼빈 옛 거리 사진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도 역시 조명 속에 푹 파묻혀 있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나 학생들 어른들 모두 제각각 여유를 즐기고 있다. 광장 한편에 조명도 없이 은근하게 서 있는 성당이 웅장하다.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지만 주위의 강렬한 조명을 받아 그 자태가 더욱 빛나 보인다.

100년 된 건물인데다가 종교의 성지이니 경건해진다.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보장된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 숴페이야 성당이 역사적 가치로 느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성지 순례자의 마음으로 더듬어야 할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이 성당은 1960년대 신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건물 본체가 훼손됐으며 성당 내 벽화와 십자가가 유실되었으니 지금에 이르러 국가 A급 문물로 보호하면 대수인가. 적어도 성당 입구에 ‘문화대혁명 시기 성당의 문화적 가치를 훼손한 점 반성한다’는 팻말 하나라도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터어키(土耳其)에 있는 성소피아 대성당과 같은 이름의 이 건물은 당시 철로 공사에 투입된 제정러시아(沙俄) 동시베리아(东西伯利亚) 제4보병대의 종군(随军) 성당이다. 군인들을 위한 종교성당으로는 그 규모가 꽤 큰 것은 당시 서구열강의 패권 쟁탈의 의지와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월 9일 아침이 밝았다. 오후 3시 48분 베이징 행 기차(D26)표를 미리 예매했다. 남는 시간에 안중근의사 기념관(安重根义士纪念馆)을 찾을 생각이다. 민박집 주인인 '하얼빈 리'가 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정부가 조선족을 위해 건물을 주고 기념관을 만들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하얼빈 리'와 기념관 관리 아주머니가 안중근 의사 실제 모습과 닮지 않은 동상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아쉬워한다. 사진과 얼핏 봐도 좀 달라보인다. 기념관은 작은 공간이지만 많은 볼거리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는 의거를 모형으로 구현했으며 많은 조선족 서예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 안중근의사기념관의 동상 안중근의사 실제 모습과 닮지 않았다고 하는 동상
ⓒ 최종명
안중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 11일간이라는 짧은 기간 머무르면서 역사적 의거를 기획하고 달성했다는 사실이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규식, 김구, 김일성, 손문, 주은래 등의 친필도 전시돼 있다. 안중근 의사 여동생의 며느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하사한 기념주도 기증돼 전시되고 있다.

  
▲ 노무현대통령 하사품 안중근 의사 여동생의 며느리에게 하사한 술병
ⓒ 최종명
안중근

붉은 색깔의 방명록에는 진한 감동이 있다. '조선민족 만세, 얼을 지켜주시는 조선족에 감사합니다', '안중근 의사님 마음 속 깊이 사랑합니다', '중국인들 가슴 속에도 안중근 의사님의 성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시는 뜨거운 마음, 의지 가슴 가득 안고 돌아갑니다', 'We truly appreciate your dedication for our nation!(우리는 조국을 위한 당신의 희생에 감사합니다) 등 많은 사람들의 방문 기록이 곳곳에 있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것도 전시 내용이다. 2007년 1월 하얼빈 삥쉬에제(冰雪节)를 찾았던 대장금의 배우 이영애씨도 참관했다. 전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을 비롯, 이수성 전 총리도 다녀갔을 뿐 아니라 중국의 정협 부주석, 문화부부장 등도 방문했다. 문국현 후보가 언제 이곳을 다녀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6월 당시 새로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문 후보를 하얼빈에서 보니 반가웠다.

  
▲ 이영애와 문국현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서
ⓒ 최종명
안중근

예전에 권병현 전 주중대사가 맡고 있는 한중미래숲이라는 한국과 중국 청년 교류모임의 한 자원봉사 회원이 행사 도중에 문국현 후보를 만난 적이 있는데 환경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많고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팬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만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뭐니뭐니 해도 안중근 의사의 '거룩한 손'에 눈길이 깊어진다. 손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려는 인장과 글씨를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위대한 얼' 앞에서도 발걸음이 멈춘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된 후 조사 받는 도중에도 당당했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사형집행 앞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청을 높였다.

  
▲ '거룩한 손' 안중근의사기념관
ⓒ 최종명
안중근

작년 2006년에는 쭝양따제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제막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국 정부의 훼방으로 지금은 어느 백화점 건물 지하로 밀려나 있는 것으로 들었다. '하얼빈 리'의 말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중국정부가 조선족들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고 허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상은 하얼빈 주재 한인사회가 만든 것이라 한다. 결국 좁은 하얼빈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사업에 한인 모임과 조선족 사회 사이에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로 힘을 합치면 좋을 것을 그게 잘 안 되는가 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 이등박문을 쏘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있는 모형
ⓒ 최종명
안중근

2층에는 조선족민족예술관(朝鲜族民族艺术馆)이 있다. 조선족 사회의 역사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얼빈 지역에 거주해 온 조선족 인물과 그에 대한 역사, 그리고 유물 몇 점을 전시하는 것이 사진 촬영을 막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한국 사람은 역시 남이란 말인가. 이 건물 자체가 조선족민족예술관이란 이름의 빌딩이고 그곳 1층에 마치 세들어 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런 홀대까지 받으니 답답하다. 조선족 역사 속에 한 인물로 안중근 의사가 치부되는 일은 없겠지만 왠지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 안중근의사기념관 입장권 아래에 보면 조선민족예술관 1층이라고 써 있다
ⓒ 최종명
하얼빈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를 타러 하얼빈 역 앞에 도착했다. 다른 역 앞에서는 바삐 서둘렀으나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며 잠시 머물렀다. 의거의 현장은 지금의 하얼빈 역 내 플랫폼 어느 곳이라 하는데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으로부터 안중근 의사를 생각했다.

댓글
  • 중국인 최선생님 글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 다음까페에서도 보고 이곳에 새로 만드신 홈피에서도 잘보고 있습니다. 제 중국여행에 너무도 큰 도움이 되고 있구요. 감사합니다.

    이 글 중간에(술병 사진 위) 신규식-->김규식이 아닐까 싶구요, 노대통령 하사품이라는 말은 다른 표현으로 수정하시면 어떨런지요? 하사품이라는 말이 좀 걸리네요.

    앞으로도 중국관련 좋은 글과 사진 많이 부탁드립니다.
    2009.10.04 22: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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