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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림기행>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세 번째가 열렸습니다. 이번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에서도 제 인터뷰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김용(金庸) 작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말 예전부터 그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었으나 한가지 이유때문에 망설였습니다. 그건 마지막에 설명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김용은 천재적인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입니다. 청나라 강희제 때 진사에 급제한 사승(查升)의 후손입니다. 본명은 사량용(查良镛)이지요. 끝 자 '용'을 나누어 '김용'이라 필명을 씁니다.  항주 인근에서 태어난 김용은 항주와 상해 등에서 신문사 근무를 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갑니다. 50년대 중반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등 4편의 무협소설을 발표합니다. 59년에 정치사회평론 잡지 <명보(明报)>를 창간합니다. 이후 자신의 잡지에 <신조협려(神雕侠侣)> 등을 전재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1편이 발표돼 김용의 시리즈는 모두 15편입니다. 


초기 창간된 잡지의 판매부수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낮에는 평론을 쓰고 밤에는 무협소설을 쓰는 생활을 이어간 것입니다. 이때 지금의 김용 작가를 탄생시킨 엄청난 분량의 무협소설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주원장이 나라 이름을 '명'이라 한 것과 김용이 잡지 이름을 '명'이라 한 것에 유사성이 있을까요? '명교'와 관련도 있는 것인가요? 무협에 빠진 사람이면 모를까 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여간 중국무협을 완벽하게 총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 김용은 1972년 즈음 자신의 무협시리즈를 종결합니다. 1948년에 처음 결혼 후 곧 이혼하고 1953년 주매(朱玫)와 두번째 결혼을 합니다. 2남2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1976년 가정이 파탄이 나고 이혼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때 김용에게는 평생 원통스럽게 여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장남 사전협(査传侠)이 여자친구와 감정싸움 끝에 자살해버린 것입니다. 타고난 감성과 문장력으로 어릴 때부터 작문에 소질을 보이던 아들이 자살하자 김용은 엄청난 상념과 고통에 빠집니다. 이때 홍콩의 술집에서 자신을 위로해주던, 거의 서른 살이나 어린 임락이(林乐怡)와 만납니다. 임락이와 결혼한 김용은 93살에 이른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중국을 다니다보면 김용 무협소설의 흔적이 많습니다. 무당산은 물론이고 화산파의 화산에도 그의 필체가 있고 대리에 가면 아예 천룡팔부영화성이 있습니다.  김용은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호강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녹정기'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무협영화들의 원작자로 중국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이고 드라마나 영화화 되어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천룡팔부'는 중국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화산 <화산논검> 앞에서 2006. 5


화산 2006.5


화산 정상에서 2006.5


화산 2006.5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천룡팔부성 2016.1


천룡팔부성 2016.1


천룡팔부성 2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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