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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시내 고루(鼓樓) 서북방향에 <청진사>가 있다.

<청진사(淸眞寺)>는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찰이니,

중국에 널리 퍼져 있는 도교사원이나 불교사찰과는 다소 다르다.


<청진사> 가는 길에는 지금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회족 시장골목이 있다.

회족은 중국소수민족 중 하나이지만, 인구가 900만 명에 육박하니

소수민족 중에서는 다수민족이라 하겠다.



'고루' 북쪽으로 넘어서면 바로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종합시장으로 음식점과 가게 등이 꽤 길게 퍼져 있다.

오토바이,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한 편이기도 하다.



하얀 모자를 둘러 쓴 사람은 분명 회족일 것이다.

모택동 사진을 비롯, 공산당혁명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이긴 하다.

회족 역시 중국인일지니, 또 대수롭지도 않을 지 모르겠다.


한족과 동화되어 '하나의 중국'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그들 마음 속에 무엇을 의미할까.

적어도, 자신의 이슬람종교를 보장 받고 생계에 문제가 없다면 그만일까.

가끔 소수민족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실크로드가 세계무역의 중심통로가 되자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회족들이 광범위하게 중국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회족들은 중국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서안 북쪽 '닝시아'에는 자치주도 있다.

현재 서안에는 약 5~6만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대부분 <청진사>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좁다란 길 양편으로 갖가지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상품생산이 자본화되니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을 판다.

그렇지만, 곳곳마다 그 가격은 천차만별이니

생산은 그러하되 소비자 유통은 표준화되려면 멀었나 보다.


따지고 보면, 능력껏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게 장사라면

중국상인들만큼 그 타고난 판매테크닉이 뛰어난 '민족'도 없을 것이다.


가장 놀라운 건 소비자 수준을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

단 1위엔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는 능력,

그럼에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팔아버리는 능력,

그리고 한번 거래로 바로 '펑여우'(朋友)라며 친해지는 능력...


이것들이 능력일지는 모르나, 중국생활에서 늘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회족 시장거리에서 일반 중국인들의 상술에 대해 말하니 아주 어색하다.



<청진사> 입구에 중국어와 영어 외에도 회족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보인다.

입장료도 12위엔이니 가격 대비 성능이 아주 좋은 관광지이다.


중국 소수민족들은 자기 언어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 보인다.

55개 소수민족들마다 다 자기네 언어를 여전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하니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 먹고 살아가려면 중국어 '보통화'(표준어)를 필연적으로 배우긴 해야겠지만...


지난 달, 한 친구가 운남성 여행을 다녀오면서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나시족' 언어가 새겨진 옷을 한벌 선물했다.

내 이름 석자가 새겨 있었는데, 상형문자와 유사했기에 재밌고 웃겼다.



<청진사>는 여느 중국의 사원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지붕이나 벽면의 모양이 중국에서 늘 보던 것이니 말이다.


이슬람문화와 중국문화가 서로 교류해 결합된 형태,

즉 이슬람종교가 중국에서 현지화된 형태라고 한다.


이질적인 모습을 가급적 감추고 한족문화와 소통하고 타협한 채 살아가야 하는

소수민족의 종교생활과 그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그럼에도 곳곳에 중국적(한족)이지 않은 조형물도 꽤 있다.

중간에 우뚝 서 있는 조형물은 아주 이슬람적으로 보인다.


회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곳에 들러 예배하고 한다니, 그들에겐 고향과도 같으리라.



<청진사>는 당나라 때인 서기 742년에 건조됐다고 한다.


송,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몇번의 중건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데

소개자료에 따르면, 사찰의 전체 외양은 중국한족문화형식을 기반으로 했으나

사찰 내의 모습은 엄격하게 이슬람교의 제도에 입각했다고 한다.


입구에서 가운데 길로 주욱 안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조형물이 있다.

그 색감도 그렇지만 구도도 안정적이고 주변 나무들과 어울려 포근함까지 준다.



계속 이어지는 통로인데, 한 아이가 귀엽게 걸어오고 있다.


끝에 보이는 건물 본당까지,

고대의 아름다운 조형물 사이로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반대편에서 본 중앙통로의 모습이다.

미로를 빠져나온 느낌이기도 하다.


곳곳에 알지 못할 언어가 새겨져 있는 것이 분명 이질적인 문화임에 틀림없다.



중앙통로 외에도 본당 좌우로 주욱 길게 길이 열려 있다.


조형물을 빼고는 온통 나무로 덮혀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다.

일절 금연인데다가, 이렇게 나무가 많으니 정말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더구나, 그 흔한 도교식 향 예불이 없으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이슬람교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간결한 종교의식을 한다고 하니 아주 현명한 것 같다.



사실 이 건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그냥 본당이라고 했다.

대충 기억나는 것은 대전(大殿) 혹은 정전(正殿)인 것 같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인 무슬림들이 예배장소를 '모스크'라 부른다니

여기가 일종의 '모스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본당의 크기는 600평방미터에 약500여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맨바닥에 앉아서 자신의 종교행위를 관철하는 그들은 역시 한족과 다름이다.

한족들은 절대 맨바닥에서 먹고 자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


56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중국.

불과 5% 정도인 55개 소수민족이 살아가야 하는 중국 땅에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티벳, 위구르 등은 지속적으로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강성 소수민족이고

회족이나 장족은 규모는 크지만 독립에 대한 욕구는 약한 편인 소수민족이며

조선족을 비롯 몇개 소수민족은 조국을 등에 지고 있으나 정치적 자치력이 약한 민족이며

운남성 등의 나머지 대다수 소수민족은 몇 십만명 정도의 인구로 그 힘이 약한 민족이다.


서안의 <청진사>에서 거대한 '중화민족'의 논리 앞에서 소수민족들이 살아가야할 운명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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