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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차이나타운에 새겨진 '중화'가 불편하다  

지난 토요일(4월11일) 오후 국철 인천역. 10년 만에 다시 찾았더니 감개가 무량하다. 길 건너 맞은 편에 커다란 패루(牌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저 평범한 동네 입구이던 이곳이 마치 베이징(北京) 국자감 패방(패루와 패방을 같은 뜻)을 옮겨 놓은 듯 웅장한 자태로 나타날 줄이야.

패방이란 마을어귀에 두어 그 지역의 고유한 지명이나 사당이나 관청의 위엄을 표시하는데 그 크기와 구조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가운데 '중화제(中華街)'가 딱 새겨 있으니 생경하다. '중화'라는 말은 중국 한족의 골간이며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지가 덧붙은 지극히 가치지향적인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중국 화교'라는 의미로 새겼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화교'라는 말에 '중국 한족과 혈통이 이어져 있는 외국 거주민'이라는 뜻이 완벽하게 내포돼 있다.

중국 한족의 본류를 화하족(華夏族)이라 하며 '화하'는 치우천황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염황(炎黄)동맹'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점차 이 '화'의 의미가 세계의 중심, 더 정확하게 말해 원래 한족 핵심부족을 중심으로 주변의 다양한 부족, 족속, 민족(오랑캐와 소수민족), 지방정권(고구려 등), 외부 세계까지 복속시켜 왔으며, 그렇게 하겠다는 잠재적, 정치적 목적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중화'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중화민족', '중화권', '중화TV'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중화제'라고 쓰는 것도, 중국을 '중화'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단군조선이라 부르는 것으로 연결해보면 중국 땅 어딘가에 '단군길'이라고 써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니 불편하다. 그렇다고 이 패루를 철거하거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산보하는 마음으로 차이나타운 곳곳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 상공인들이 차이나타운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 '제1 패루'에 뭐 특별한 고려가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알고 보니 자매도시인 중국 웨이하이(威海) 시가 기증했던 목(木)패루가 기울어져 석(石)패루로 다시 기증 받아 세운 것이라 한다.  

이 '중화제(中華街)' 패루는 돈을 좀 들인 듯하다. 4개의 기둥과 3곳의 문, 7개의 기와누각이 어우러진 모습은 중국에서도 국보급 패방에 적용하는 형태로 나름대로 멋지게 꾸미려고 한 마음이리라.

자세히 두루 훑어보자니 소재만 돌인 것이 다를 뿐 국자감 류리패방(琉璃牌坊)과 닮았다. 위쪽으로 누각이 7개인 형태는 중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패루 문 아래를 지나니 그야말로 시뻘건 간판에 낯익은 메뉴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화요리 일색인 가운데 군데군데 쟈오즈(饺子)나 훠궈(火锅)를 파는 식당도 보인다.

언덕길을 따라 오르니 길 옆으로 각종 공예품도 널려 있고 홍등 사이로 한자와 한글이 뒤죽박죽 섞인 거리 모습이 우리가 흔히 보던 그런 모습은 아니다. 몇 발자국마다 가로등이 하나씩 설치돼 있는데 붉은 바탕에 용이 휘감아 오르는 모습이니 바로 롱시주(龙戏珠)를 형상화하려 한 듯하다.

'두 마리 용'이 등장하면 얼롱시주(二龙戏珠)라 해 하늘을 찌를 만한 기세로 황제나 그에 버금가는 성인인 공자에게 주로 사용하는 형상이다. 이곳에 와서 가로등이 됐으니 용은 어디 가고 이무기처럼 보이는 게 아쉽다. 길가에 배치된 화분 문양도 이 두 마리 용을 새겼는데 용도 그 격에 맞을 때 더 적격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하면 곧 용이 떠오른다고 다 곳곳에 용만 새겨놓으니 거리가 다소 개성이 없어 보인다.

자장면? 중국에도 있다!   

차이나타운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인천자유공원이다. 오랜만에 공원을 올라가보자. 공원 계단 옆에 정말 재미난 자장면이 보였다. 꽃 접시에 면발과 자장이 섞였으며 콩과 옥수수, 오이채와 계란이 얹혀 있고 젓가락이 살랑 담겼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토양의 자장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도 자장면이 있는데 그 맛과 모양, 레시피가 사뭇 다른 요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크게 다르지도 않다. 면과 자장 그리고 야채로 혼합한다는데 특별히 다를 것이야 없다.

중국의 자장면은 사실 베이징사람들의 고유한 음식으로 데치거나 삶은 면에다 각종 야채를 섞어먹는다고 해서 데친다는 뜻으로 '작(炸, zha)'을 쓰거나 섞는다는 뜻으로 '잡(杂, za)'이란 말을 붙인다. 그런데 이 두 말의 발음이 다 '자'로 비슷하다.

물론 베이징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고 여러 지방에 독특한 맛의 자장면이 있기도 한데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로 와서 나름대로 한국적 입맛에 맞는 '한국식 자장면'을 개발한 것일 터이다. 자장면 접시 뒤로 우리 기와 벽과 우리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는 개나리가 인상적이라 잠시 앉았다.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우리말과 중국어를 생각하며  

벤치에 앉으니 간판이름들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연경(燕京), 만다복(萬多福), 청관(靑館), 흥화춘(興和春), 자금성(紫金城), 북경장(北京莊), 중국성(中國城) 등 한번씩 읽어본다. 그리고 이어 중국어로도 읽었다. 옌징, 완둬푸, 칭관, 싱허춘, 즈진청, 베이징좡, 중궈청. 엇비슷하지 않은가.

서로 다른 말과 글을 쓰고 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글자를 통일한다. 지금의 한자의 고어(古語) 형태였으리라. 전국시대 7개국은 모두 서로 다른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를 통일했으니 당연히 도량형, 마차나 도로 등과 함께 문자도 하나로 통일했으리라. 진(秦)이 쓰던 소전(小篆)을 '수동문(书同文)', 즉 통일문자의 기초로 삼았다. 복잡하기 그지 없는 대전(大篆)을 간략하게 만든 것으로 지금의 전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전서가 여전히 복잡해 다시 간단하게 바꾼 것이 지금의 예서인 진예(秦隶)라고 한다.

중앙집권을 시작한 진한(秦汉)시대를 거치며 글자는 점차 통일돼 갔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지방의 말까지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조선 이래 삼국시대, 고려를 거치면서 우리민족이 고유하게 소통하던 말이 있었으리라. 언제부턴가 기록과 전달을 위한 문자로 한자를 쓰면서 우리 민족은 기존의 말과 중국의 한자음 사이에서 치열한 언어적 다툼을 벌렸으리라.

조선 세종 조에 이르러 한자음과 달리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하는 문자를 창제하게 되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연경'과 '燕京' 사이에는 '연경'과 '옌징' 만큼이나 '다름'과 '같음'이 마구 혼란하다. 잠시 쉬는 틈에 말과 글, 우리말과 중국말을 생각해봤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양 사이로 상형이 잘 어우러진 한자 도안도 있고 원래 새해 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잉어와 연꽃이 등장하는 롄녠여우위(连年有余) 그림을 모방한 것도 있으며 용과 구슬의 룽주(龙珠) 등이 보인다. 빨간 바탕색의 가로등 룽주와 취푸(曲阜)의 공자사당에나 있을 법한 돌기둥 룽주가 함께 있으니 시야에 들어오는 용들이 참으로 중복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유공원 입구에도 패루 하나가 서 있다. 선린문(善隣門)이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나 꽤나 복잡하게 썼다. 그러나 '선린'이라는 뜻이 '주변 사람이나 나라와 사이 좋게 지내자'는 뜻이니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이 패루 아래는 차이나타운이요 위로는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이니 중국과 미국 모두와 '선린'하자는 것일까. 아니면 둘 중 하나와 '선린'을 택일하자는 것일까. 사실은 이 동네이름이다. 

자유공원 곳곳에 개나리와 벚꽃이 화사하게 폈다. 아빠와 엄마 손잡고 아이들이 주말 오후를 만끽하고 있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들려 가보니 풍악에 맞춰 아주머니들이 민속춤은 추더니 이어 빠른 춤곡에 따라 외국인 무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인천 자유공원의 주말 오후 

인천시 중구 자원봉사센터가 주최한 '어울림 한마당'이다. 2009년은 '인천방문의 해'이면서 '80일간의 미래도시 이야기'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린다. 인천 도심 전체가 세계축전 홍보물로 범람하고 있는데 이곳 무대에도 예외 없다.

공원 광장 주변에서는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 고리던지기, 떡메치기, 새끼꼬기 등 다채로운 문화체험을 즐기는 아이들, 정말 신났다. 손글씨쓰기, 종이방향제, 천연염색손수건, 타투문신, 점핑클레이와 같이 가족이 함께 즐기는 체험도 있고 노인들을 위한 교정, 발마사지, 반신욕, 지압, 수지침 등을 무료로 해주는 행사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인절미 하나 시식하고 투호 던지는 아이들의 해맑은 장난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비누방울이 둥실둥실 날아든다. 온통 솜사탕 내음과 오색찬란한 풍선들이 두둥실 떠다니기도 한다. 할아버지 한 분이 무대 위에 올라 구성진 노래솜씨를 뽐내고 다른 한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펼친다. 어깨자락과 손 사위를 따라 저 멀리 깨알처럼 맥아더 동상도 보인다.

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한국식? 중국식? 풍물 

다시 선린문을 따라 차이나타운으로 되돌아왔다. 삼국지 벽화거리가 있다니 찾아갈 생각이다. 거리 곳곳에 지도가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발 가는 대로 쉬엄쉬엄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추억의 뽑기' 앞에서 꼬마가 아빠를 졸랐다. 천원을 내고 1부터 80까지 적힌 종이 위에 한 칸에 숫자 하나가 적힌 네 칸 막대가 다섯 개를 놓고 즉 '1/4의 확률'을 뽑으면 된다. 물론 꽝이어도 기본으로 하나 준다. 70~80년대 거리에서 자주 보던 이 뽑기가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선물은 바로 탕화(糖画)라고 하는데, 끓인 설탕으로 거북선, 호랑이, 남대문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민속공예의 일종으로 중국 문화거리에서도 자주 보던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전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바로 옆에도 '뽑기'가 있다. 소위 '달고나'라고 하는데 설탕에 소다를 넣어 끓이고 녹여 각종 모양을 새긴 후 굳으면 그것을 그대로 뽑아내는 것이니 이것도 뽑기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둘 다 '뽑기'였었나 하는 착각이 든다. 분명 '뽑기'에 대한 향수가 있긴 한데 정확한 출처와 이름을 생각하려니 헷갈린다.


화교들이 많이 살아서인가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튀김꽈배기를 빚는 아가씨 둘이 반죽을 빚고 길게 꽈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중국말을 쓴다. 들어보면 그냥 수다다. 바로 옆에서는 지나가던 아저씨가 주인에게 '셩이쩐머양(生意怎么样?)'하며 지나간다. '장사 잘 되냐'는 인사말이다.

이 집에는 밀가루반죽 속에 야채나 고구마 등을 넣어 깨를 입혀 큰 불통에 넣고 굽는 샤오빙(烧饼)을 판다. 깨(芝麻)가 묻었다고 '즈마샤오빙'이라고 부른다. 중국 황산(黄山) 시의 문화거리 라오제(老街)에서 먹어본 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요즘 중국도 이런 방식으로 구워 파는 게 많지 않고 그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문화거리에서 풍물에 얹어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차이나타운에서 만났다. 

중국 아가씨(아마 유학생인 듯) 한 명이 식당 주인에게 '싼궈제짜이나리아(三国街在哪里啊?)'하고 묻는다. 삼국지 거리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따라가면 되겠구나 하고 봤더니 중국 치파오(旗袍)을 입은 일행이 20여명은 넘어 보였다.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을 자세히 보니 한국 학생들이다. 인천중국어마을 실습을 나왔다고 한다. 아까 말한 아가씨는 인솔자로 원어민 교사였던 듯하다. 

드라마 같은 삼국지명장면 벽화 거리 

언덕길을 따라 벽화가 이어져있다. 밑에서 올라가니 소설삼국지 스토리의 뒷부분부터 시작이다. 삼국이 망하고 사마의의 후손이 세운 진(晋)으로 통일됐다는 삼국귀진(三国歸晋)이 맺음 장면으로 77번이다. 그리고, 촉이 멸망된 후 위나라 장수 등애(鄧艾)와 종회(鍾會)의 쟁투를 했다는 이사쟁공(二士爭功)이 76번이니 아마 1번은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아닐까 싶다. 삼국지를 거꾸로 읽어도 재미있겠다 싶어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조비가 후한의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는 조비폐제(曹丕廢帝), 손권의 브레인 노숙이 형주에서 관우와 담판 짓는 단도부회(單刀赴會), 삼국지 3대 대전 중 하나로 조조를 물리치는 오나라 장수 주유의 적벽대전(赤壁大戰), 장비 혼자 10만 대군을 상대했다는 장판교(長坂橋), 유비가 제갈량을 얻는 삼고초려(三顧草廬), 관우가 조조의 환대를 뒤로 하고 유비와 장비를 찾아 홀로 떠난다는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조조가 유비의 인물 됨됨이를 알아보려 영웅에 대해 묻는다는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 유비 관우 장비가 여포와 일진일퇴를 거듭한다는 호뢰관(虎牢關), 그리고 도원결의까지. 아니 그런데 도원결의가 2번이다. 아차 황건적의 난 황건기의(黃巾起義)도 있다. 

2004년에 개방했으니 꽤 시간이 흘렀다. '삼국지 벽화에 부쳐' 라는 벽화 거리에 대한 설명도 한글과 중국어, 영어로 차례로 적혀 있다. 이 프로젝트의 아트디렉터, 일러스트, 서예와 기획 및 시공에 누가 참여했는지도 기록돼 있다.

멋진 한 편의 드라마다. 이렇듯 멋진 삼국지 벽화를 중국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다만, 소설삼국지만큼 정사삼국지가 제대로 알려지면 좋고 '거꾸로 읽는 삼국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라 다시 떼어낼 수 없는 벽화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인천 중국어마을 문화체험 중인 학생들 

삼국지 벽화 옆에는 중국 칭다오 시에서 기증했다는 공자조각상 옆에 중국어마을에 참여한 학생들이 야외수업을 하고 있다. 초급 수준의 실력으로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이 기특하다. 

공자 조각상을 휘돌아 내려가다가 다시 오른쪽 골목길인 '차이나타운3길'로 접어드니 학생들이 중국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보아하니 차이나타운을 돌며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어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삼국지벽화를 보면서 퀴즈도 풀고 그런 후에 소원마당이란 곳에서 아이들이 소원을 적은 헝겊을 묶고 있으며 민속놀이인 공죽(空竹)을 돌려보기도 한다.

줄을 가운데 넣어 양손으로 밀고 당겨 공죽을 회전시켜 가지고 노는 민속완구인데 처음 해보는 것이라 마음대로 잘 되지 않나 보다. 중국어도 잘 하면서 문화와 사회에 대해서도 폭 넓은 이해를 하는 전문가로 성장하길 빌어본다.

인천 한중문화원의 볼거리 

다시 인천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한중문화원이 있다. 3개 층에 전시관이 개방돼 있는데 한국과 중국 문화를 살펴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아이들이 중국 옷이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탁본을 뜨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자매결연 도시가 보낸 선물들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공예품과 기념품이 골고루 있는데 처음 보는 낯선 내용도 있어 눈이 즐거웠다. 중국문화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도 하나씩 차분히 읽으며 눈요기를 해도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몇 시간 걸었더니 다리가 꽤 아프다. 사실 삼국지 벽화를 보고 나서 동인천역으로 갈까 다시 인천역으로 갈까 망설였다. 인천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10여 년 전 단골집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10년만에 다시 찾은 단골 밴댕이 회집, 그냥 그대로네! 

차이나타운 한쪽 골목에는 밴댕이 회집이 나란히 있는 거리가 있다. 바로 이곳이 그리웠던 것이다. 90년대 말 인천에 근무하던 때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렀던 단골집이다. 차이나타운이 온통 많이 변했지만 희한하게도 그 옛날 그 단골집 모습 그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무려 10년도 더 지났고 한중문화교류 어쩌구 하면서 온통 마을을 뒤집어놨지만 일렬로 앉아서 밴댕이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던 분위기 그대로의 모습이다.

자유공원을 오르내리며 산보를 하던 할아버지들이 주머니 속 용돈만큼 꼭 그 정도의 가격으로 소주와 밴댕이를 먹을 수 있다. 10년 전 기억으로는 밴댕이 한 접시 3천원, 소주 한병 1천원. 친구랑 둘이서 소주 2병 마시면 딱 5천원이던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까. (지금은 한 접시 1만원과 한 병 3천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얇게 썰고 가득 담은 밴댕이 한 접시가 나왔다. 술은 알아서 마시면 된다. 소주 한잔을 따르고 있는데 할아버지 손님들이 주르륵 들어온다. 자리를 옮겨 주인 아주머니 칼질 하는 곳으로 바짝 붙어 앉았는데 금방 들어오신 한 할아버지가 대뜸 '젊은 친구, 어이 MBC기자신가? 사진 한 장 찍어주게' 하신다. '네!'

도대체 왜 뜬금없이 MBC기자? 모르겠다. 하여간 사진기자가 됐다. 나중에 '오마이뉴스 아세요?' 여쭈니 '당연 알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데 여든 살에 하나 모자라' 하시며 피난생활, 유신과 전두환 정권시절 등 이야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한잔 받게' 하셔서 마셨고 한 잔 따라 드렸더니 '술 잘 배운 게 양반일세' 덕담이셨다. 과음하시더니 친구 분들에 이끌려 먼저 가셨다. '젊은 사람과 이렇게 마주 하니 기분 좋군. 자주 오게!' 하시며.

주인 아주머니 인상이 10년 전 그대로다. '10년 만에 왔습니다!' 했더니 회 한 움큼을 더 썰더니 접시 위에 얹어준다. 그래서 '소주 한병 더 주세요' 했더니 누군가 남기고 간 소주 반 병을 가르키며 '그건 공짜요' 한다. 

오후 내내 차이나타운 둘러보고 자유공원까지 휘젓고 나서는 10년 전 모습에서 하나도 바뀌지 않은 분위기와 회 맛 때문에 노을 없이 흐린 저녁 하늘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의 이모저모! 이미지영상 Q! 





댓글
  • Favicon of http://hitme.kr BlogIcon 최면 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

    잘 봤습니다. 확실히 中华街라는 말이 거슬리네요;; 다른 나라에 가도 차이나타운은 唐人街가 아니었던가요? 제가.. 뭐;; 여러 나라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中华보다는 唐人가 더 보편적일 듯 합니다;; 아쉽긴 하네요 ㅠ.ㅜ

    한자 발음의 경우도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중국어에 없는 받침 글자.. ㄱ,ㅁ,ㄹ의 경우는 원래 존재했다는 것이 유력하지요? 뿔각(角)도 광동어로는 '깍'일 것이고.. ㅁ의 경우는 ㄴ과 ㅇ도 잘 구분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뭐;; 넘어간다 치더라도.. ㄹ은 외국에서는 원래 t 발음을 냈었다고 하더라고요..

    쉬운 예는 베트남이겠지요? vietnam 영어로는 뷑넘 으로 읽히는.. 중국어는 越南 위에난 이고.. 한국어는 월남이죠;; 너무 깊이 들어갔나요? -0-;;

    그냥 보던 중 너무 반가워서요 ^^*

    좋은 글 잘봤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엔 한번도 못가봤는데 다음엔 꼭 들려봐야겠네요 ㅎㅎ
    2009.04.15 10:02 신고
  • Favicon of http://youyue.co.kr BlogIcon 최종명작가 youyue 당인가라고 하는 거도 좀 재미없네요~
    한자발음에 대해...역시 잘 아시네요~
    저도 좋은 거 배웠습니다....감사^_^
    2009.04.16 13: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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