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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을 다녀와서

'달동네'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린이들은 혹시 '달이 보이는 동네?'라고 할 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동심 속에는 낭만적인 기호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40대, 6~70년대를 거치며 학교 생활을 한 세대는 '가난과 슬픔의 역사'라는 인식이 묻어있을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농촌을 떠나 도시 산동네로 몰려든 사람들은 천막이나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가난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며 살아가고, 때로는 크고 작은 이익 때문에 싸우기도 하던 '눈물 젓은 추억'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통치하면서 산비탈에 움트고 살던 집들이 차례로 재개발 아파트의 희생양이 돼 철거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서울을 비롯 대도시마다 '하늘 아래 가장 먼저 달을 맞는 동네'가 비명횡사를 맞게 된 것이다. 가난을 상징하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린' 곳이니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인천 동구의 한 산동네에 달동네의 흔적을 고스란히 거둔 실내박물관이 있어서 찾아가봤다.

이미 개관한 지 2년 6개월이 지났으니 사람들이 꽤 많이 알고 있는 곳일 터이다. 인천 수도국산에 위치한 이 달동네박물관에는 당시 생활상과 서민적인 캐릭터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말에 아이들 손을 잡고 한번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길 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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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인천역 4번 출구로 나와 송현시장 아치를 찾은 뒤, 그 골목으로 500미터 가량 비탈길을 타고 오르면 된다. 비탈 옆 전봇대에 걸린 '달동네' 표시에 밤 조명이 켜지면 좀더 진한 여운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정식 박물관 이름이다. 어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이며 4세 이하는 무료이니 입장료도 아주 부담 없다. 주변은 쾌청한 송현근린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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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당시 달동네의 거리 모습을 접하게 된다. 뻥튀기 만드는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도심을 벗어난 곳에 가면 가끔 옥수수나 쌀을 튀겨 파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 옛날 달동네는 물론이고 골목마다 한두 번 이 '뻥' 소리와 함께 귀를 막고 뛰어다니던 아이들 모습이 그립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기는 하겠지만 잘 설명해주면 재미있다고 할 것 같다. 

폐지 주워 가난한 이웃 돕는 맹태성님, '마지막 연탄장수' 유완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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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당시 달동네 주변을 청소하며 폐지를 주워 가난한 이웃을 돕던 고 맹태성님의 모습이 있다. '폐품 팔아 이웃 돕는 노인 천사'라는 칭호를 얻으며 지역언론에도 소개되는 등 귀감이 된 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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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 '마지막 연탄장수' 유완선님도 있다. 산비탈을 올라 연탄을 배달해야 하는 고된 노동을 1990년대 후반까지나 이어왔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 달동네는 연탄불로 살아가야 했으니 마지막까지 남아, 지게 지며 연탄을 배달한 분인데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이 사라졌고 타지에 이사해 산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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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옛날 스타일의 이발관인 대지이발관이다. 5평 정도 크기로 달동네 사람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해주던 이발관 주인인 박정양님은 지금도 부근에서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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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동인천 부근에는 솜틀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황해도 은율 고향에서 목화업을 하던 박씨 집안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곳을 근거지로 2000년까지 3대째 가업을 이어왔다. 고 박길주님의 유언으로 역사가 보송보송 붙은 솜틀기를 박물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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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상회는 이 달동네에서 전형적인 가게이다. 안에는 옛날 가게의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다.


가게 안에 '세계의 맛 미원'' 표시가 달렸으며 막걸리를 담아 팔았음직한 주전자도 걸려 있다. 치약, 하이타이, 목욕비누, 성냥도 보이고 국수, 통조림, 라면, 정종도 있다. 아이들 장난감인 풍선과 물총, 구슬과 딱지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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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에는 골목 풍경이 잘 조성돼 있다. 한쪽 벽에 그려진 벽화에 있는 우물과 바람에 날리는 빨래, 비탈 진 골목길이 생생하다. 그 앞에 강아지 조형물 두 마리가 당시 모습으로 슬며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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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주민들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벽마다 선거의 흔적이 남아있다. 민의원 후보와 비례대표를 뽑는 선거벽보가 달동네에도 걸려 있었다. '이것 저것 다 썪었다. 혁신만이 살길이다!!'가 적힌 사회대중당 공천을 받은 조규팔 후보, '참은 보람 찾기 위해 바른 사람 뽑아내자!'가 적힌 무소속 강신채 후보의 벽보가 인상적이다.

다소 이상해 당시 선거제도를 찾아봤더니 약간 아리송하다. 이 두 후보는 1960년 제6대 의원 선거 중 경북 문경군 후보자들인 듯한데 이곳에 왜 붙어있는지 의아했다. 비례대표 후보 중 정구영, 윤치영, 김동환 등 상당수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돼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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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스터도 달동네의 아련한 추억에 한몫 한다. 불세출의 영화배우 김승호를 비롯 신영균, 조미령, 황해, 김희갑, 황정순 등이 출연한 강대진 감독의 <마부>도 있고 외국영화 <타잔> 그리고 <동백아가씨>도 나란히 붙어있다. 

성냥 생산량 전국 최고, 달동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성냥 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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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의 가옥 몇 채를 그대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안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성냥갑을 접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인천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를 막걸리 마시며 한두 번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인천은 <대한성냥>이라는 유명한 성냥공장이 있었나 보다. 성냥 생산량이 전국 최고였기에 인천하면 떠오르는 말이 '성냥'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가난했던 달동네 가족들은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부업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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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 두 개가 있다. 마루에 어른들 초상화를 모셔두고 있는데 지금은 아파트생활 문화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혹은 조상을 모시는 마음가짐이 예전과 달라진 것일 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가족사진들을 액자 속에 슬라이드처럼 꾸며 걸어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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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골목과 통해 있는 창문, 이불과 책상이 놓여 있는 달동네의 방안 모습이다. 방 안에도 사진액자가 걸려 있고 그 속에는 자식들 결혼사진이나 손자손녀 돌 사진도 있고 아주 자주 등장하는 다보탑을 비롯한 유명관광지 사진들이 걸리기 일쑤다. 참으로 정겨운 장면이며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따스한 가족사랑이 깃든 추억의 장면이며 또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가난으로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하더라도 저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족애를 떨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물지게도 메고, 연탄불도 갈고...박물관에서 하는 그 시절 체험



달동네의 부엌도 있다. 아궁이 두 개가 보이고 큰 솥과 주걱이 있다. 연탄도 사용하지만 나무로 밥을 하기도 했나 보다. 성냥도 보이고 공동수도에서 물 긷는 물통과 고무신도 보인다. 박물관 내에서 물지게를 지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연탄불 가는 체험도 있어서 당시 느낌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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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설학원인 청산학원이다. 지금과 같은 현대화된 학원이 아니라 사설교습소같은 분위기이다.

달동네박물관에는 달동네풍경을 잘 표현한 벽화, 밀랍인형도 있고 만화가게, 기념품가게 등도 있다. 관람공간이 아니라고 돼 있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양 옆 당시 달동네의 풍경을 잘 그린 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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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달동네의 현실은 고난과 가난으로 점철돼 있을 것인데 벽화로 그려놓으니 색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기억의 편린'을 끌어내는 힘이 숨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사라진 달동네의 풍경이 박물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옛날 달동네의 현실은 고난과 가난으로 점철돼 있을 것인데 이렇게 벽화로 그려놓으니 색다른 멋이 풍긴다. 그저 단순히 예술적 가치 이상의 '기억의 편린'을 끌어내는 힘이 숨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사라진 달동네의 풍경이 박물관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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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를 주제로 닥종이공예품이 전시돼 있는데 참으로 정겹기도 하고 애환이 느껴지기도 한다. 척박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할머니, 아버지, 자식 세대의 힘겨운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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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이 갓난 동생을 업고 행상을 나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있는 닥종이공예 모습도 슬프다. 단순히 공예품으로만 보이지 않고 애절한 감성이 돋는 것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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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로 만든 공예품으로 된 '달동네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이다. 바닥에는 당시 달동네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가 있다.

동네 부근에선 재개발 공사현장 많아, 추억과 도시개발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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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로 인해 허물어지는 달동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물관 벽을 깨고 바깥으로 배치된 공사사진이 사실감을 준다. 동인천역 부근은 아직도 재개발이 벌어지고 있는 공사현장이 많다. 어쩌면 이런 '추억의 편린'을 드러내는 박물관이 도시개발의 아픔을 희석시키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개발이 다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는 이로 인해 마음은 물론 경제적 손실이 생긴다는 마음을 새겼으면 좋겠다. 행정이나 정치의 문제이며 시민의식과도 연관된 것이니 쉽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개발이 좋은 이미지로 남으려면 아직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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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게도 있다. 당시 달동네 아이들에게 만화만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만끽하는 매체도 드물 것이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보거나 아예 고급양장의 책으로 사서 보거나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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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방 안에 '뱀주사위놀이'가 보인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놀이인데 지금 아이들에게 놀아보라고 하면 아마 싱겁다며 금방 싫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주사위를 던져 숫자만큼 이동하는데 이동한 곳마다 오르고 내리고 하는 계단이 있어 무사히 끝까지 가려면 의외로 까다롭다.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어른이라면 한두 번쯤은 다 해봤음직한 놀이이다. 옛날에도 의문이었는데 용이나 기린도 긴 동물인데 왜 뱀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든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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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가 하나 있다. 꼭 달동네와는 특별히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이 즐비하다. 로보트태권브이와 아톰이 인상적이다. 그 옆 귀퉁이에 박물관을 다녀간 아이들 방명록, 관람메모가 있다. 5월 2일 다녀간 소빈이란 어린이가 쓴 메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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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박물관에 와서 정말 좋았다. 다음에 또 올거고 옛날 모습이 그대로 있어서 좋았다. 인형들이 섬뜩하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달동네야! (박물관) 오래도록 남으렴! 2009. 5.2 토 소빈이가"

아이들에게 달동네가 무엇이고 어떤 생활과 문화가 숨 쉬고 있는 곳인지 알려줄 소중한 체험현장이 아닐까 싶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잘 알려주는 것도 좋고 이모저모 배경도 덧붙여 설명해서 생각의 힘, 인식의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은 어른들 몫일 것이다.

크고 작은 경험, 어떤 체험에서라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말과 글로 드러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른들이 모를 리 없다.

한두 번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창의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려는 노력이 쌓여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 어떤 현상에 대해서 자신만의 표현력을 기르려면 늘 보던 것이 아니라 색다른 느낌의 소재가 자극이 될 수 있다. 이 <달동네박물관>이 아마 좋은 공간일 것이다.

달동네박물관을 빠져나오며 옛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1970년대 초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전학 와 초등학교 5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서울 면목동 일대의 달동네에 살던 큰집을 먼저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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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한참 걸어 구불구불 올라, 다시는 찾기 힘들어 보이는 미로를 따라 큰집에 도착하니 다닥다닥 집들이 서로 엉켜 붙었고 물 긷는 사람, 연탄으로 범벅 된 골목길,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등 온통 낯설던 달동네가 파노라마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 비록 몇달이지만 달동네에서 살았던 어두운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나기도 했다.

20대에는 서울 상계동 철거투쟁의 현장에 잠시 머물렀다. 재개발로 희생되는 수많은 달동네 사람들의 삶과 아픔이 후다닥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이 되버리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재개발을 생각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가 떠오르고 정치인, 행정가들의 '민주주의 마인드'를 함께 걱정해야 하니 안타깝다.

'달동네박물관'이 그저 과거의 낭만을 아름답게 포장한 전시공간만이 아니라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물과 세상에 대해 바른 생각을 가지도록 이야기해주는 현장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소재를 지닌 박물관이니 시간 내 꼭 아이들 손을 이끌고 가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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