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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차이나

하얗게 눈 내린 만리장성 트레킹

최종명작가 여우위에 2009.11.20 10:11

베이징 외곽 쓰마타이 창청 트레킹

 

 

지난 11월초 베이징 시내에 폭설이 쏟아졌다. 이틀 간격으로 내린 눈 때문에 날씨가 상당히 춥다. 중국에 온지 10년이 넘는 지인들과 쓰마타이창청(司)을 향했다. 10년 이상 중국에서 살았어도 눈 내리는 만리장성 위에 발을 디디고 선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다.

 

베이징 시내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미윈(密云)현 구베이커우(古北口)진의 쓰마타이 촌까지 차를 달렸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청더(承德)까지 잇는 101번 국도를 달려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런데 시내에는 폭설로 온통 난리였건만 의외로 외곽은 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인공강설이 시내에만 집중적으로 내렸던 것인가 보다. 그래도 뜻밖에 11월초에 몇 번 자연산 눈이 내렸으니 조금 하얀 눈이 언뜻 보이기는 한다.

 

베이징 외곽에는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창청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한겨울 눈 덮인 창청을 보러 올라 간다는 것이 꽤 어렵다. 그래서 10년 이상 베이징에 살았어도 눈을 밟고 창청을 걷기는 거의 힘들다.

 

매표소 앞에 도착해서 기온을 물어보니 영하 5도 안팎이다. 바람도 꽤 불어서 체감온도는 더 내려갈 듯싶다. 일행 중 한 친구가 도저히 이 날씨에 올라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우선 몸을 녹일 셈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오를 생각이다.

 

식당 마당으로 나가니 산골 농가의 모습이 참 예쁘다. 장방형 구조의 집 사이로 작은 마당이 있고 처마 밑으로는 빠짐없이 홍등이 하나씩 달려 있다. 농가답게 옥수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며 지붕에는 하얀 눈이 살짝 비단처럼 깔렸다. 지붕 너머 앙상한 가지 사이로 멀리 창청의 망루가 보이고 가파른 산 능선이 이어져 있다.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넓은 호수를 막은 저수지가 보인다. 베이징 외곽 창청이 있는 곳에는 유난히 호수가 많다. 미윈 현에도 베이징의 식수원인 저수지가 있지만 아예 이름도 수이창청(水)이 황화청(花城)에 있고 샹수이후(水湖)에도 창청이 연결돼 있다. 주변 산세가 가파르니 멋진 계곡도 많고 계곡 물이 고여 크고 작은 호수가 많은 것이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논란 끝에 창청을 오르기로 했다. 날씨가 춥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쒀다오(索道),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베이징 외곽 창청마다 케이블카가 조성된 곳들은 대체로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들이 북적댄다. 특히 바다링(八)창청의 경우 성수기에는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타야 할 정도로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쓰마타이도 개발이 되고 나서 유명관광지가 됐다는 소식에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온 것이다. 11월 영하의 날씨가 아니었다면 찾고 싶지 않았을 지 모른다. 사람들도 거의 없고 한적한 분위기이다.

 

입장료는 40위엔이고 케이블카는 올라가는데 30위엔이다. 창청의 바람이 세차게 깃발을 펄럭인다. 케이블카 앞에 커다란 바위에는 창청 전문가이자 고건축학자인 뤄저원(哲文) 교수의 멋진 문구가 새겨져 있다.

 

중국 창청은 세계 최고이고, 또한 쓰마타이창청은 중국 창청 중에서 최고라 할만하다.

(国长城是世界之最,而司城又堪国长城之最)

 

우리는 서둘러 케이블카를 탔는데 쓰마타이가 창청 중 최고의 경치인 줄 아직 모르겠지만 케이블카만큼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사방이 뻥 뚫린 2인용 케이블카에 올라타자마자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저벅저벅 덜컹거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자리에는 녹지도 않은 눈이 얼어붙은 채 하얗게 방석이 깔린 상태였다. 장갑 낀 손으로 마구 언 눈을 겨우 털어내고 앉았더니 엉덩이가 오줌 싼 이불에 앉은 듯 축축하다. 아래를 보니 함께 온 일행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선 채로 올라오고 있다. 아마도 시린 엉덩이가 싫었는지 모르지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웅장한 창청의 역사를 만끽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케이블카 이동시간이 무려 15분이나 된다. 좁은 공간도 문제지만 양 옆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다지 춥지 않다. 생각해보니 거대한 창청 산자락이 병풍처럼 막고 서서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싶다.

 

우리 일행만을 태운 케이블카는 서서히 최고봉 해발 986미터의 왕징러우(望京楼)를 바라보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비교적 얕은 산봉우리와 능선 위를 넘어 가니 서서히 멋진 원경이 펼쳐진다. 바로 옆 산에는 아담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났으며 빈틈에는 녹지 않은 하얀 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갈 지자로 난 길이라는 즈쯔루(之字路)를 따라 30여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숨을 헐떡거리며 지그재그 길을 다 올라가면 바로 바이윈러우(白云楼)가 나온다. 이 바이윈러우는 동쪽 편 8번째 망루이기도 하다. 쓰마타이창청은 동쪽 끝 최고봉인 왕징러우를 시작으로 큰 호수인 위엔양취엔(鸳鸯泉)까지 동쪽 망루 17개와 서쪽 망루 18개로 이뤄져 있다.

 

창청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미끄럽다. 눈을 밟으며 서서히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망루 하나를 지나면 또 다시 바로 앞에 망루가 나타나고 양 옆으로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 다소 흐린 날씨이긴 해도 멀리 하늘과 구름 그리고 흐릿하지만 윤곽만큼은 사라지지 않은 산 능선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이렇게 높은 창청에 오르면 더우나 추우나 돌 조각을 깨고 벽돌처럼 만들어 성을 쌓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늘 생각난다. 지금은 그 체취가 이미 역사 속에 침전됐겠지만 간혹 잔해처럼 부서진 돌 조각들이라도 나오면 언뜻 과거의 현장에 다가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쓰마타이창청의 최고봉은 아쉽게도 개방하지 않는다. 동쪽 13망루인 둥팡션타이(东方神台)에서 멈춰야 한다. 망루 사이에 난 구멍으로 개방하지 않은 창청의 가파른 능선을 바라보니 매우 위험해 보인다. 아직도 몇 개의 망루를 더 지나야 최고봉에 이른다. 일반인에게 개방되지는 않았지만 샛길이 있다. 시간이 많았다면 아마도 계속 올랐을 지도 모른다. 창청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고개를 돌리면 창청의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 창청은 가깝게 봐도 좋지만 역시 마치 용이나 거대한 뱀이 산을 타고 넘어가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더구나 아직 녹지 않아서 올 겨울 내내 하얗게 뱀 껍질처럼 남아있을 듯 보인다.

 

쌓인 눈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매우 미끄럽다. 계단으로 이뤄진 곳도 있지만 거의 미끄럼틀처럼 된 곳도 있다. 양 옆에 있는 벽돌이나 돌 조각에 의지하지 않으면 주르륵 미끄러져 다치기 십상이다.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올라올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처한 위기이다. 눈 덮인 창청을 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어쩌면 행복한 위험이기도 하다.


케이블카는 오후 4시 30분이 넘으면 운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창청에 있는 눈길을 밟으며 차분히 내려가야 했다. 망루를 지나면 또 망루가 나오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면 멀리 펼쳐진 광활한 시야가 멋지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쌓인 눈만이 조명이 되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아래를 보니 쓰마타이를 동쪽과 서쪽으로 가르는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바로 위엔양취엔이 발 아래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약간 눈이 쌓인 상태가 아니라 폭설이 내렸다면 그래서 얼어붙어 빙판이 됐다면 창청에 오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11월 초에 내린 눈이어야만 눈길을 밟으며 창청의 멋진 모습에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 아닐까 싶다.

 

하산 길을 아는 일행이 먼저 내려갔다. 뒤에 남은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지체했더니 일행과 헤어졌다. 날이 거의 어두워져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가야 하는데 다행히 핸드폰이 정상적으로 연결이 되는지라 안심이다. 정신 없이 내려가다 보니 출렁다리인 쒀챠오(索)에까지 이르렀다. 이 다리는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동쪽과 서쪽 망루를 이어준다.

 

서쪽 망루 쪽으로는 북제(北齐)시대 만들어진 창청의 유적지가 있지만 날이 어두워 엄두를 내기는커녕 돌아갈 일도 막막하다. 당연히 호수 옆으로 길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길이 없다. 급하게 전화를 했더니 너무 많이 내려왔다고 한다.





 

다시 이번에는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힘들게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가야 한다니 함께 있던 일행이 다소 겁이 났나 보다. 날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급하게 뛸 듯이 가파른 창청 길을 되돌아 올라 망루 하나를 지나서야 겨우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창청 벽에 조그만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어두워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길을 찾았다고 일행을 안심시키고 조금 기다렸다가 망루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호수를 휘감고 있는 도로인 판산루(盘山路)를 걸었다.

 

점점 기온이 떨어져 거의 영하 7~8도는 넘는 듯하다. 어두운 산책로는 걸으며 우리는 오늘 하루 생각보다 멋진 겨울 창청, 적당히 눈이 덮여서 오르내릴 수 있던 창청의 흔적을 기억 속에 담았다. 다시 일행과 만나 길을 잘 찾으라고 미리 출구에 대한 정보를 주면 좋았지 않았냐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쓰마타이창청의 설경으로 우리를 데리고 온 선배가 한없이 고마웠다.

 

식당에서 뜨거운 차를 한 잔씩 했다. 10년도 넘게 중국에서 살았지만 눈을 밟으며 창청의 겨울을 만끽하기는 모두 처음이다. 힘든 등산과 하산의 무용담으로 몸도 마음도 녹아 들었다. 끝도 없이 이어진 기나긴 창청 중에서도 베이징 외곽 창청을 오를 때마다 매번 다른 감상에 젖는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창청이 수도 없이 많은데 4계절마다 또 다를 수 밖에 없는 절경이니 이 또한 여한이 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눈 덮인 겨울철 창청에 오르는 일이 그 중에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니 잊혀지기 힘든 날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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