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회 산둥 2 공자 향기 가득하고 태산 일출 붉디붉다

 

 

5) 지난() 싱그러운 샘 맑은 호수에 마음을 담그고

 

산둥 성 수도(省會) 지난에는 몇 년 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온 도시가 공사 중이었는데 지금도 도시개발로 꽤 복잡하다. 하지만 샘이 많아 샘의 도시라는 뜻으로 취엔청(泉城)이라 하니 바오투취엔(突泉)으로 서둘러 가지 않을 수 없다.

 

바오투취엔은 시내 중심에 있는 공원이자 수많은 샘들 중 하나이다. ‘뛰어올라 솟아나는 샘이라는 뜻이니 이름도 역동적이면서도 기품이 있다.

 

공원 안에 들어서면 먼저 이청조()기념당과 만나게 된다. 남송 시대 유명한 여류시인이자 문학가이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안빈낙도 같은 느낌의 이안거사(易安居士)라 불리며 <여몽령()>과 같은 소설을 통해 규방생활의 절제된 모습과 마음 속 그리움의 정서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샘이 많은데 단청 색감이 도는 둥근 문, 바위와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아기자기한 공원이다. 많은 샘이 서로 이어져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바오투취엔이다.

 

바오투취엔(왼쪽), 이청조기념관(오른쪽위), 다밍후(오른쪽아래)

 

기록에 따르면 이미 2,700년 전부터 사람들과 친근했던 샘으로 일년 내내 평균 온도가 18도를 유지한다. 부글부글 솟아나는 물결을 따라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꽤나 평화로워 보인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정자, 사당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샘을 보고 있으니 그 어떤 시름조차 다 사라질 듯하다.

 

샘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박혀있는데 첫손에 꼽는 샘이라는 뜻의 '디이취엔(第一泉)'은 청나라 함풍제 시대 서예가인 왕종림(王鐘霖)이 썼으며 '바오투취엔(突泉)'은 명나라 시대 이 지방 고급관원인 후찬종()의 글씨라고 한다. 회색 빛 바위에 하늘색으로 새긴 돌의 느낌이 투명한 샘물과도 잘 어울린다.

 

공원을 나와 광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며 시 중심을 따라 황청루(城路)라는 골동품거리를 지났다. 다시 다밍후(大明湖) 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호수면적만 거의 100만평에 이른다는 어마어마한 호수이다. 놀이시설도 있긴 하지만 호반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당이나 정원이 참 멋지다.

 

산들바람도 불어오고 어둠이 차츰 짙어가는 호반 길을 따라 톄궁츠(公祠)에 이르렀다. 명나라 초기 베이징에 거주하던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황제의 지위를 찬탈하는 정난지변(靖難之)을 일으키자 병부상서 철현()이 고군분투해 싸우다 전사했다. 이곳은 바로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패장의 모습이 호반 위에 쓸쓸하게 남아있을 것 같아서 잠시 숙연해진다.

 

저녁이 되자 호수의 윤곽이 점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빨리 걸어도 2시간은 걸려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공원인데 어둠 때문에 서둘렀더니 다리도 지쳤다. 호수 속 섬 안에는 고풍스러울 듯한 식당이 하나 있는 지 불빛이 아른거리며 사람들 자취가 오락가락 한다.

 

6) 타이안(泰安) 황제도 오른 산에서 본 붉디붉은 일출

 

타이안 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타이산 입구 톈와이춘(天外村)에 도착한다. 태산은 톈와이춘에서 중톈먼(中天)사이, 그리고 중톈먼과 난톈먼(南天)사이를 나누면 오르는 시간이 각각 2~3시간으로 엇비슷하다. 물론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면 힘들게 등반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톈먼(一天)은 등정의 출발지점이다. 디이산(第一山)을 지나고 톈제() 문도 지난 후 작은 태산이라 이름 붙은 샤오타이산(小泰山) 사원에서 잠시 쉬기도 했다. 완셴러우(仙樓) 앞에서 입장권을 사고 서서히 태산의 악명 높은 계단들과 만났다. 고생해 쌓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계단을 따라 등산을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맨땅을 밟고 오르는 것만 못한 것이다.

 

산을 내려오는 사람도 많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짐을 실어 나르는 짐꾼들이 계단을 오르면 모두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어깨와 허리 힘만으로 정상까지 짐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체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는 생계이겠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구경거리이다 보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중간지점인 중톈먼에 도착했다. 정말 더 이상은 이 돌계단 못 오르겠다고 나자빠질 즈음이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좀 쉬면서 기분과 체력을 충전했다. 재물 신을 모시는 사당(財神廟) 앞에는 소원을 비는 열쇠가 주룩주룩 달려 있다.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10분만에 난톈먼에 도착했다. 젊은 학생들이 산 아래에서부터 줄곧 걸어서 올라오는 것에 비하면 훨씬 편안한 정상으로의 비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땀 한 톨 흐르지 않는 모습을 좀 숨겨야 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했다.

 

암석 벽이 온통 서예 전시장인 다관펑(大觀峰)을 지나는 계단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최정상이다. 그 표지판은 바로 위황딩(玉皇)이라는 사원 마당에 있다. 보통의 정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열쇠를 달고 예를 갖춘다. 산 정상을 마당으로 해서 사원을 세웠기 때문이니 이런 정상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다시 난톈먼까지 내려와 숙박을 정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하라고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푹 잤다. 재빨리 이빨 닦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모두들 중국 군용 윗도리 잠바를 입고 있어서 물어보니 정상에 가면 아주 추울 것이라 한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 같지만 춥다고 하니 하나 빌려 입고 행렬을 따라 올라갔다.

 

해가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니 해가 서서히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붉은 해는 장엄하고도 신선했다. 중국 땅에 와서 이렇게 일출이란 것을 보니 감회가 또 새롭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잡아 만 명은 넘어 보인다. 서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기원이 다 다르겠지만 일출 앞에서 무언가 같은 대상을 향해 나란히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듯싶다. 서로에 대한 눈인사가 평소와 달리 따스하다.

 

위황딩(왼쪽), 일출 모습(가운데), 하산 길 계단(오른쪽)

 

일출을 본 기분이 컨디션을 끌어올렸는지 난톈먼에서 중텐먼까지 계단을 따라 과감하게 내려갔다. 어제 이 가파른 계단을 걸어올라 왔다면 탈진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길이다.

 

태산 계단은 정말 많은데 도대체 몇 개인지 찾아봤다. 한 여행책자에는 6,660개가 있다고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다 제 각각이다. 6,290개가 신빙성이 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계단 숫자야 숫자일 뿐이고 오히려 고행의 계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십팔반(十八)이란 말이 재미있다.

 

룽먼()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난톈문 쪽으로 뒤돌아 십팔반 전체 경관을 보라'는 문구와 함께 십팔반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팻말이 있다. 십팔반이라 부르는 약 1,600개의 이 가파른 계단이야말로 등산로 중에서 가장 숨찬 곳이니 인생에 비유할 만 하다.

 

태산을 오르고 평생에 한번 보기 힘들다는 일출까지 무사히 봤으니 소원 풀었다. 다시 타이안 역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공자의 숨결을 느끼러 출발한다.

 

7) 취푸(曲阜) 공자 조각상 호나우딩뇨와 닮았네

 

취푸의 쿵먀오(孔廟), 쿵푸(孔府) 그리고 쿵린(孔林)을 합쳐 싼쿵이라 하는데 이 셋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이다. 위대한 사상가이며 교육자, 정치가인 공자(孔子)가 그 중심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취에리()라고 쓰여있는 패방을 지나니 공예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벌써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는데 취에()라는 말이 곧 대궐 문이란 뜻이니 공자를 황제의 반열로 대우한 역사가 서서히 느껴진다. 북방민족이거나 중원의 한족정권이거나 황제는 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공자를 성현으로 끌어올린 역사가 바로 중국 역사이기도 하다.

 

쿵먀오는 중국의 3대 궁전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되는데 남북으로 1킬로미터가 넘고 행랑채가 400칸이 넘는다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쿵먀오의 본 건물인 다청뎬(大成殿)은 폭이 45.78미터이고 깊이가 24.89미터, 높이가 24.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베이징 고궁()에서 가장 큰 건물인 타이허뎬(太和殿)에 견줄 만하다.

 

다청뎬 앞에 있는 열 개의 돌기둥에는 두 마리 용이 구름 속을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구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있다. 이를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얼룽시주(二龍)이라 부른다. 이 하늘을 찌를 만한 기세는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자 현재 중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부각되고 있다.

 

안에는 높이가 3.3미터에 이르는 공자 조각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브라질 축구선수인 호나우딩요처럼 앞 이빨 두 개가 돌출돼 있다. 호나우딩요와 닮은 공자, 생각만 해도 적절하면서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공자조각상을 많이 봤지만 이렇듯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조각상은 본 적이 없다.

 

크고 둥근 눈, 넓은 코에 튀어나온 이빨, 미남형은 아니지만 양손을 모으고 예를 갖춘 모습이 유교스럽다고 한다면 표현이 이상할 지 모르겠다. 양 옆으로 안회(顔回), 증삼(), 공급(孔及), 맹가()의 동상이 보좌하고 있다.

 

이에 비해 쿵푸는 쿵먀오의 서쪽에 있는데 공자의 후손들이 살던 터전으로 행정기관과 주거공간이 복합된 곳이다. 공자의 후대 사람들을 옌성궁()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공자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는 사람인 옌성궁들의 생활과 가족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다양한 기능과 위상을 가진 건축물들이 463칸이나 되는 거대한 집이다.

 

쿵먀오 공자 상(왼쪽), 쿵푸(오른쪽위), 쿵린 공예품 거리(오른쪽아래)

 

가운데 본채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가묘가 있고 서쪽으로는 공부방인 학원으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앞쪽으로 업무를 보던 관아가 있고 뒤쪽으로 주택이자 정원이 있다.

 

쿵린은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공예품 거리가 형성돼 있다. 공자의 얼굴을 상품화한 것도 흥미롭고 '친구가 멀리서 오면 그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不亦)라는 논어의 명 대사가 가방에 적혀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쿵린은 중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정비된 묘원이라 할 만하다. 공자 묘뿐 아니라 공씨 집안의 가족 묘도 있으며 유명 서예가들의 비석들도 곳곳에 많이 놓여 있다. 공자보다 먼저 죽은 아들 백우(), 공리()와 공리의 아들 자사(子思), 공급(孔及)의 묘가 있고 그 뒤에 바로 공자 묘가 있다.

 

공자 묘 앞에 서니 2,500여 년 전 한 뛰어난 사상가의 힘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현대의 문화혁명에도 아랑곳 없이 굳건하게 오늘에 이른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와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을 생각하는 지혜와 학문이야 변할 리가 있겠는가. 종교지도자가 아니면서 그 어떤 종교 창시자보다 더 존경 받고 추앙 받는 이가 어디 또 있을까. 아마 그런 면에서 공자가 돋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8) 취푸(曲阜) 공자의 일생과 사상을 다룬 무대공연 행단성몽

 

저녁에는 넓은 야외 공연장에서 막이 오른 행단성몽(杏壇聖夢)을 보러 갔다. 취푸 시가 의욕적으로 기획 제작한 이 공연은 정말 볼 만하다. 차분하게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감상해 보기 바란다.

 

공자는 66세의 아버지와 20세가 채 안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479년까지 살며 장수했다. 공자의 일생과 사상을 주제로 50여 명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마차를 비롯한 각종 소품들이 다채롭기도 하거니와 음악과 무용, 무술과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종합예술을 본 느낌이다.

 

사대부의 문방사우도 등장하고 전쟁 속 군무도 표현하는 등 다양한 유교문화적 아이템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보는 내내 감동적이었다. 중간에 한국 무용이 잠깐 등장하는 것에 좀 놀랐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상업적으로 봐도 한국에서 공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근처 야시장에 들러 양고기 구이에 맥주를 마시는데 앞자리에 있는 여자아이가 귀엽게 웃으며 친한 척을 한다. 귀엽다고 했더니 자기 아빠한테 가서 귓속말을 속삭이더니 담배를 가져와 건네줘서 깜짝 놀랐다.

 

마침 지갑을 뒤져보니 한국 돈 천원 지폐가 있어서 기념으로 가지라 했더니 좋아한다. 그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네 자리로 오라고 해서 자리를 옮겨 생맥주를 함께 마셨다.

 

취푸에는 격의 없이 대해주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 많은 듯 보여 더욱 정이 가는 도시였다. 공자와 대화했고 공자의 공연을 봤으며 야시장의 느긋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인해 취푸의 밤은 더욱 깊어가는데 하늘에 뜬 달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행단성몽 공연 모습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저작자 표시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