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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6 상하이 작은 어촌이 중국과 세계를 움직이다

 


상하이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봉토였다. 동진(东晋) 시대에는 후두(扈瀆)라고 했는데 후(沪).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상하이 진이 된다.


명나라 학자이자 과학자로 기독교선교사와 교류한 서광계(徐光啟)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과 함께 개항한다.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 일약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금융과 3차 산업, 운송의 중심지이자 경제 수도로 발전한다.


해외지향적이며 애향심이 강해 지극히 배타적인 상하이 사람들은 실용과 실리추구가 강한 대단히 이성적인 성향을 지녔다.


천안문사건 이후 장쩌민(江澤民)이 중앙무대에 진출하면서 공산당 내 비공식그룹인 상하이방 출신들이 정치세력화 했으며 시진핑(習近平)이 당내 최고 권력을 노리고 있다.


1) 상하이 上海 세계인이 다 모이는 상업거리 복잡하다


상하이의 가장 번화가인 난징루(南京路)를 찾았다. 19세기 중엽 외국 열강이 상하이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래 가장 번성한 상업거리로 큰길이라는 뜻으로 다마루(大馬路)라 불리기도 했다.


애드벌룬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난징루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 지하도에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까지 계속 물 밀 듯 발길이 늘어난다. 입구에 아빠 등에 업힌 아이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이 모두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조각상 뒤로 난징루 부싱제(步行街)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 거리이다.


마침 파란 하늘이 거리를 더욱 활기찬 분위기를 만든다. 거리를 왕복하는 유람 버스가 지나다닌다. 종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니는 버스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버스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복잡한 가운데 나름대로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난징루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이 거리는 1930년대 셴스(先施), 융안(永安), 신신(新新), 다신(大新) 4곳의 현대적인 백화점이 상업을 주도했다. 유럽식 건축양식을 띠고 있는 건물들이 몇 곳 남아있기는 해도 유행이 앞서가는 복잡한 거리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길거리에 학생들이 잔뜩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니 팬클럽 회원들인 듯하다. 오늘 저녁에 열리는 여행축제 개막식에 참여하는 가수인 장뎬페이(張殿菲)를 응원하러 나왔다. 담 너머로는 개막식 리허설이 진행 중인데 행사까지 이렇게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상하이 유력방송국인 둥팡위성(東方衛視)의 남자가수 등용문을 통해 알려진 신인가수인데 팬들이 외치는 성화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대단하다. '왕자전하가 상하이에서 가장 사랑스럽다(王子殿下上海最愛)'는 팻말이 특이해 물어 보니 별명이라 한다.


세계인들이 활보하는 거리답게 외국인들이 참 많다. 한 외국인이 발 돋음을 난징루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몇 명이 몰려다니며 난징루의 활기를 느끼며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하고 있다. 노상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상하이가 이렇게 파란 하늘을 선보이는 일이 드문데 정말 멋진 하늘이다. 애드벌룬만큼 높은 빌딩도 하늘로 솟구친 듯 뽐내고 있다. 유리창에 비친 건물들도 세계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상하이를 보여 주고 있다.

 


난징루(왼쪽), 난징루 입구(오른쪽 위), 가수 피켓(오른쪽 가운데), 펑징 마을(오른쪽 아래)


다시 난징루 입구에 오니 예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상하이 서남부에 있는 문화고을인 펑징진(楓涇鎮)을 소개하는 곳이다. 농민화를 전시하고 있고 단청인가(丹青人家)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상하이 주변에도 옛 고을이 많다. 지금은 중국 경제수도로 일컫고 있지만 그 옛날 그저 창장 하류의 어촌 마을이었다.


상하이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옌안고가도로(延安高架路)는 15킬로미터에 이른다. 동쪽 끝 와이탄(外灘)에서 서쪽 끝 홍챠오공항(虹橋機場)에 이르는 도로를 달린다. 택시를 타고 고가도로를 달리면 곳곳에 높이 솟은 빌딩들을 감상하기 좋다.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의 면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상하이에서 중국포럼의 상해탄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학생들과 주재원들이 모여 1달에 한번씩 모임을 하는데 마침 참여할 수 있었다. 푸단대학 부근 오월인가(吳越人家)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춘추시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오 나라와 월 나라가 차례로 상하이를 지배했으니 그 이름만으로도 상해요리인 것을 알 수 있다.


담백하고 약간 단맛이 도는 싱싱한 요리가 나올 때마다 뜻밖에 맛 있는 식당 하나를 찾았다는 감탄이 이어진다. 비싸지도 않고 채소와 생선, 고기에 상하이식 소스에 듬뿍 담긴 맛이 한결 입안도 개운하다. 가는 국수에 야채가 섞인 재미난 이름의 뤄한징쑤몐(羅漢淨素面)과 상하이 싼더리(三得利) 맥주가 인상에 남는다.


푸단대학 앞에서 학생들과 2차로 술을 마시고 헤어지고 직장인 회원만 따로 술 한잔을 더 했다. 부글부글 양고기가 익는 가운데 직장 생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중국, 그것도 가장 부유한 동네 상하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참 버거우면서도 부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상하이 上海 황푸 강에서 바라본 우뚝 솟은 중국경제의 상징


상하이 둥팡밍주(東方明珠)가 바라다보이는 와이탄을 찾았다. 중국어에서 와이(外)는 강의 하류를 뜻하니 이 강과 창장이 서로 만나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는 것. 강변을 따라 영국을 비롯 서양 열강이 조계를 조성한 곳이었다.


황푸(黃浦) 강을 따라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동영상 광고판을 배에 싣고 떠다니기도 한다. 배가 지나가니 중국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의 이정표처럼 우뚝 선 둥팡밍주 탑이 늠름하게 서 나타난다. 강 건너 푸둥 지역의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468미터에 이르는 뾰족한 탑의 꼭대기로 시선을 두니 파란 하늘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모처럼 맑은 날씨이니 멀리서도 상하이의 상징 탑이 선명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 화물선이 줄을 이어 강 상류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춘신군의 봉읍지이었으며 가난한 어촌 마을에 저렇듯 높다란 동팡밍주가 자리잡았다니 놀랄 일이다. 상하이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서구열강이 열어 놓은 어촌 동네가 불과 1세기 만에 세계적인 도시, 중국을 대표하고 중앙정치를 좌우하는 도시로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변 길인 와이마루(外馬路)에 모인 사람들은 강 너머 푸둥을 보면서 상하이의 발전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이 바야흐로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발 돋음하고 있는 활기찬 미소가 넘치고 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광장 한편에 동상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신중국 성립 후 최초의 상하이 시장이며 외교부장을 역임한 천이(陳毅)를 기념하는 조각상이다. 상하이의 발전은 곧 중국의 성장을 상징하니 상하이 시장은 곧 중앙 무대에서도 인정 받는 셈이다.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마오쩌둥 이후 공산당 중앙을 장악하면서 상하이방이라는 그룹이 등장한다. 보통 상방(商幫)은 상인들의 지역 연합을 뜻한다. 청나라 말기에는 관상(官商)이 등장하는데 정치와 경제가 유착하기 시작한다. 특히, 상업적으로 성공한 호설암(胡雪岩)과 성선회(盛宣懷)는 각각 관료인 좌종당(左宗棠)과 이홍장(李鴻章)의 비호를 받게 된다.


상하이방은 천안문사태 진압을 적극 지지한 당시 장쩌민 상하이 시 서기가 국가 주석이 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상하이방 견제를 위해 안후이(安徽) 출신이며 공산주의청년단(共青團)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후진타오(胡錦濤)가 주석이 됐지만 향후 차기 실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긴박한 당 내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향후 당분간은 당내 궁칭퇀 그룹과 혁명원로의 2세 그룹인 타이즈당(太子党)과 상하이방의 연합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둥팡밍주가 보이는 와이탄(왼쪽), 와이탄 건물(오른쪽 위), 허핑호텔(오른쪽 아래)


와이탄은 강 너머 빌딩 숲,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과 화물선, 강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활력도 보기 좋지만 강변도로를 따라 늘어선 옛 건물들도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거리는 1885년부터 영국황실건축사협회 주도로 모리슨양행(瑪禮遜洋行)이라는 건축설계사무소까지 설립해 서양식 건축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중국은행과 공상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893년 지어진 일본 요코하마 은행이었고 허핑판뎬(和平飯店)이 있는 샤쉰빌딩(沙遜大廈)은 1872년 영국 자본이 건축했다.


지금도 와이탄은 외국계 회사들의 업무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상하이푸둥발전은행(上海浦東發展銀行)이 있는 와이탄 12호 건물을 보니 세계 각국의 유명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영국계 펀드 회사와 독일계 우유회사를 비롯 스페인과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상하이 영사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1세기 전에 서구열강은 전쟁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킨 후 이곳에 진입했다. 이제는 자본의 힘으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곳에 입주해 있다. 20세기 중국 최고의 성장 모델은 바로 상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자본과 상품의 힘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려고 한다.


와이탄에 서면 높이 치솟는 둥팡밍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경제성장만이 꼭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없다. 성장에는 합리적인 분배라는 동전의 양 면 같은 경제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는 중국의 일반 서민들은 상하이 번화가의 호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와이탄에서 난징루와 연결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혼잡한 거리를 깨끗하게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청소부가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거리에서 빨간 부채를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할아버지는 외국인들에게 멋진 모습을 선보이고 싶은가 보다. 마치 중국과 세계의 중심인 상하이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하다. 마치 자유롭고 풍요로운 상하이를 보여주려는 듯 보인다.


3) 톈진 天津 천진난만한 아이들 동상이 있는 거리


베이징에서 톈진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D열차 편인데 고속열차를 뜻하는 둥처주(動車組)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중국 기차 편은 대개 이니셜로 표시하는데 아주 빠르다는 터콰이(特快)를 뜻하는 T열차가 있고 Z가 붙은 것은 도시와 도시를 직통으로 연결해 빠르게 이동하는 즈다터콰이(直達特快)이다.


터콰이보다 정차하는 곳이 많아서 대도시가 아닌 지방을 가려면 K가 붙은 터수(特速)기차를 타야 한다. 영문이니셜이 없이 숫자로만 표시된 것은 푸콰이(普快) 기차이다. 에어콘이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것도 있는데 아주 시골로 가려면 타야 한다. 가끔 L이 붙은 기차가 있는데 이는 린스(臨時), 즉 임시 열차이다.


이 고속철도는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린다.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타고 온 적이 있는데 약 10시간이 걸린다. 두 도시의 철로거리가 1,500킬로미터에 미치지 못하니 아직 그 정도 속도를 내면서 달리지는 않는 듯하다.


천진으로 가는 D열차는 69분만에 도착했다. 이전에 비해 약 10분 정도 빨라진 듯하다. 중국 고속철도 이름은 조화라는 뜻의 허세하오(和諧號)이다. 깨끗할 뿐 아니라 에어컨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도 완벽하게 금연이라 공기도 상쾌하다. 우리나라 KTX처럼 기차를 타는 순간 담배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맑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다소 난감하기는 했지만 상쾌한 기차 여행이었다. 앞으로 중국 기차가 더 빠르고 쾌적하게 변할 것이니 중국 기차 여행 하기가 한결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와 함께 중국 직할시인 톈진도 서구 열강이 조차한 곳이었다. 1860년 영국과 독일연합군의 침공으로 조계가 형성됐고 1900년에는 8개국 연합군이 침공하기도 했다. 톈진에 도착한 후 100년 전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리를 찾아 봤다.


허핑취(和平區)의 다리다오(大理道) 거리를 걷노라니 100 년 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옛 건물들도 유치원이나 관공서, 회사로 사용하고 있어서 옛날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길 양 옆으로 큰 가로수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한적한 거리에는 그저 자전거만이 빠르게 지나다닌다.


서양식 2층 건물구조의 가옥에는 붉은 색 나무 문이 있고 벽면으로 어린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의 벽화가 새겨 있다. 이 가옥은 중화민국 시대 목기(木器) 상인이던 즈위푸(訾玉甫)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시의 역사풍모건축(歷史風貌建築)으로 보호하고 있다.

 


손에 손 잡고(왼쪽 위), 무슬림 식당(왼쪽 아래), 피리 부는 아이(오른쪽)


사거리 옆 조그만 광장에 재미있는 돌 조각 상들이 있다. 서양 아이들에 탁자에 앉거나 서서 놀고 있는 모습인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발가락을 간지럽게 하려는 동작이 아주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이 조각상에 이름이 적혀 있는데 바로 장난치면 논다는 뜻, 완솨(玩耍)이다.


부근에는 또 서양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해맑고 귀엽다. 가운데 아이는 양쪽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며 앞 뒤 2명의 아이는 앞 뒤로 누군가의 손을 내밀어 잡으려는 시선이며 동작이다. 꽃밭에서 노는 아이들이니 더욱 밝아 보이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 이름은 손에 손 잡고 라는 뜻으로 셔우라셔우(手拉手)이다.


조금 더 지나니 루난화위엔(睦南花園) 건너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조각 상이 다정하게 앉아 있다. 돌로 만든 조각인데 할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할머니는 그 옆에 강아지를 안고 조용히 앉아 있다. 이 조각상에도 이름이 있는데 저녁 노을이라는 뜻의 완샤(晚霞)이다. 늦은 오후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옆에서 사람들이 장기를 두는 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리다오 74호에는 신장(新疆)요리와 칭전(清真)요리를 파는 무쓰린(穆斯林) 식당인 후이팡러우판좡(會芳樓飯莊)이 있다. 밥을 뜻하는 판(飯)과 마을이나 산장이라고 할 때 쓰는 좡(莊)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서 판좡이라고 하면 고급식당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오히려 밥을 파는 집이라는 뜻으로 식당을 뜻할 것 같은 판뎬(飯店)은 호텔을 말한다. 가지런하게 꽃으로 단장한 입구와 시원하게 물소리가 들리는 정원이 있다.


거리에 아이들 동상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또 돌 조각상이 보인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코끼리를 올라타고 놀고 있다.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잡아주려고 손을 꼭 잡고 두 명의 아이가 타고 있으며 한 아이는 코끼리 머리 위에 타고서는 신이 난 표정이다. 이 조각상 이름은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의 콰이러(快樂)이다.


바로 옆에는 왼발을 들고 손으로 피리를 부는 아이 조각상이 있다. 바람소리를 반주 삼아 흥겨운 노랫가락을 하늘로 날려보내려는 듯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선율가락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멋지게 분다는 뜻으로 여우양(悠揚)이라고 새겨 있다. 참으로 아이의 발랄한 모습답게 적절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톈진에서 옛날 분위기가 살아있는 거리를 찾아 다녔는데 다채로운 표정으로 생기발랄한 아이들 모습과 만난 듯하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저녁노을도 아이들의 눈빛을 더욱 밝게 비추고 있고 어스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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