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베이징 최고봉 둥링산(東靈山)

 

지난 7 7일 아침 8. 베이징(北京) 최고봉을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1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하는 산악회 코스. 참 오래 기다렸다. 멀기도 하지만 교통도 불편해 혼자 가기 꽤나 힘든 산이다. 베이징에 오래 살았어도 쉽게 가기 힘들다. 30여 분만에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베이징 서쪽 먼터우거우구(門頭溝區)로 접어든다. 곧바로 109 국도(國道, G109), 2차선 도로를 조심스레 달린다.

 

109번 국도는 베이징을 출발해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네이멍구(蒙古), 간쑤(甘肅), 칭하이()를 지나 시짱(西藏) 티베트 수도 라싸(拉薩)에 이르는 장장 37백 킬로미터가 넘는 도로다. 자이탕진(齋堂)과 칭수이진()을 지났다.

 

국도를 1시간 30분 달린 후 솽탕젠촌(雙塘澗村)에서 우회전, 103 현도(縣道, X103)로 들어섰다. 가파른 고개를 넘지 못하고 시동이 풀썩 꺼졌다. 숨 한번 고르더니 다시 위험천만한 꼬불꼬불 산길을 넘으려 용을 쓴다.



링산 자연풍경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입장료 45위안. 베이징 인근 산 입장료치고는 비싸다. 문을 통과해 20여 분 더 올랐다. 해발 1,800미터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출발한 지 3시간을 넘겨 가까스로 버스에서 내렸다.

 

안개가 자욱하다. 먼발치나마 능선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등산 길을 따라 오른다. 안내문에는 태산, 황산, 루산(廬山, 장시 북부에 있는 명산)보다 높은 ‘베이징 제일봉(北京第一峰)’이자 ‘베이징 서쪽 작은 티베트(京西小西藏)’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티베트를 옮겨 놓은 듯, 다르촉과 마니룬

 

티베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오색 깃발인 다르촉이 펄럭이고 있다. 보통 풍마기(風馬旗)라고 하는데 티베트 말로 바람을 ‘룽(), 말을 ‘다(), 보통 ‘룽다’라고도 부른다. 경전을 새겨 넣기에 경번(經幡)이라고도 한다. 티베트 사원이나 라싸 거리마다 사람들이 흔히 돌리는 마니룬(瑪尼輪)도 보인다. 매년 7월부터 9, 두 달 동안 시짱(티베트) 풍물제가 열린다. 티베트 민속 춤과 노래, 음식과 향연이 어우러진다.

 

다르촉이 휘날리는 계단 길을 따라 오른다. 금새 리프트, 란처(纜車) 타는 곳에 이른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도 되지만 최정상까지 오르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왕복 120위안, 올라가는 표(70위안)만 샀다. 차례를 기다려 두 사람씩 자리에 앉으니 빠른 속도로 쑥 올라간다. 점점 솟아오르더니 이내 넓은 고원이 시야로 들어온다.



앞서 오르는 사람이나 뒤 따라오는 사람이나 모두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살피기에 정신이 없다. 왼쪽은 안개 휩싸인 능선이 흐릿하고 오른쪽은 등산 길이 선명하다. 발 아래는 울긋불긋한 풀과 꽃이 폈다. 등산 길 옆에는 말들이 털을 휘날리며 사람들을 태웠다.

 

하늘을 비행하는 기분이 이럴까? 멋진 초원을 내려다보는 느낌까지 환상적이다. 1.5킬로미터 거리, 400여 미터를 고도 상승해 20여분을 날아왔다. 한여름인데도 어느새 싸늘한 냉기가 엄습한다. 냉기를 가득 담은 안개가 온몸을 휘감더니 바람 따라 사라진다. 산 아래와 10도 이상 차이 나는 해발 2천 미터이니 당연하다. 1회용 비닐 옷을 입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 냄새, 초식 동물의 응아괜찮아

 

탁 트인 고원을 걸으니 마음까지 후련하다. 등산 길은 약간 오르막이면서 평탄하다. 여전히 바람은 오락가락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오르막 한 편에 한 그루 나무가 옹골지게 서 있다. 꿋꿋하게 바로 서서 쉼 없이 흔들리는 나무에 이름이 있다. 누가 지었을까? 풍향수(風向樹)라 한다. 산악회 회장과 총무가 ‘바람돌이’같이 뛰어가 멋진 포즈로 나무 아래 섰다.

 

오르락내리락 안개 속을 뚫고 간다. 갑자기 초원에 걸맞지 않은 냄새가 코로 날아든다. 길 옆에 한 움큼씩 말 배설물이 흙과 섞였거나 굳고 있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초식 동물의 응아라 고약하지는 않다. 다만, 초원을 넓게 펼쳐 보지 못하고 자꾸 발 아래가 신경 쓰일 뿐.

 

가운데 맨땅 사이 양 옆으로 확 트인 초원이 나타났다. 이곳 지명을 ‘시뉴왕위에(犀牛望月)’라 부른다. () 나라 윤희(尹喜)의 저술로 추정되는 도교 문헌 <관윤자(關尹子)>에 나오는 말로 “물소(犀牛)가 달을 해인 것처럼 바라본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겉모양이 비슷한 사물을 생판 다르게 인식한다는 뜻이니 그만큼 풍광이 신비롭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얕게 자란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들이 많다. 세찬 바람이 안개를 이리저리 휘감고 갈 때마다 소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다가가도 아랑곳 않고 제 할 일만 한다. 흑백 얼룩 무늬 소와 샛노란 금연화()가 잘 어울린다. 뿔이 없는 소도 있지만 넓은 뿔을 달고 있는 소도 있다.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야생하는 마오뉴(), 바로 야크(Yak).

 

바람이 더 세차다. 등산 길 따라 더 올라가 커다란 돌무덤 아래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을 요량이다. 안개비가 계속 촉촉하게 내려 온몸이 젖었지만 고원에서 먹는 밥맛은 꿀맛이다.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지 마라.



밥 달라고 찾아온 야크! 막걸리 통도 안 무서워

 

정상 못 미친 부근부터 야크를 방목한다. 갑자기 야크 한 마리가 느릿느릿 습격(?)했다. 밥 먹는 회원 등 뒤 1미터 앞까지 어느새 다가왔다. 느닷없이 다가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엉겁결에 들고 있던 막걸리 통으로 위협해도 묵직하게 서 있을 뿐이다.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주니 신기하게도 넙죽 받아먹는다. 생김새와 달리 정말 순둥이. 더 얻어먹겠다고 애처롭게 서 있으니 신경이 쓰인다. 자리 정리를 한 후 정상을 향해 떠나자 사라졌다.

 

다시 산을 오르자 아이들이 말을 타고 내려왔다. 두 아이가 말을 탔는데 꽁무니를 뒤쫓는 망아지 한 마리가 촐랑촐랑 따르고 있다. 엄마 뒤를 따르는 것인가? 몸매 날렵하고 목 갈퀴와 꼬리가 간지 나는 말과 달리 앳돼 보인다.




말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는 마창(馬場)에 이르렀다. 어른 한 명은 너끈하게 태울 만큼 힘 세고 늘씬한 말들이 서 있다. 중국 말 중에서도 가장 멋지고 날렵하다는 이리마(伊犁). 신장(新疆) 우루무치 동쪽 이리 카자흐족 자치주 고원에서 서식하는 희귀한 말이다. 

 

등산 길 여러 곳에 돈벌이 수단으로 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5~6군데에 일정한 거리를 나누어 영업을 하고 있다. 말을 혹사시킨다는 지적이 있는지 올라갈 때는 태우지 않고 내려갈 때만 태운다. 5~10여분 거리를 하산하는데 20위안( 3,800)을 받는다.

 

이제 곧 정상이다. 갑자기 짙은 안개가 쏟아져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바람이 아니다. 강풍은 물기를 머금은 안개인지 구름인지를 마구 배달하고 있다. 온 사방이 오리무중이다. 아무 도 보이지 않지만 가끔 바람 사이로 야크 울음 소리가 나는 듯하다. 딸랑딸랑 소방울(牛鈴) 소리도 들린다. 방울 소리라도 있어야지 사라진 야크를 이내 찾을 것이다. 꼭 바람의 데시벨만큼 방울이 딸랑거리는 것일까? 들렸다 말았다 하는 소리를 이정표 삼아 조심스레 올라간다. 



해발 2303미터, 베이징에서 제일 높다

 

드디어 정상. 링산 주봉 해발 2303미터라 새긴 비석 하나가 한가운데 뿌리를 박고 서 있다. 링산은 남쪽을 뺀 동, , 북 링산이 있다. 베이링산(北嶺山)2011 1월 초 한겨울 강풍 속에 등산한 적이 있으며 해발이 2천 미터가 다소 못 미친다. 시링산(西靈山)은 해발이 2420미터다. 위치가 허베이(河北) 줘루(涿鹿) 현이라 베이징 최고봉을 둥링산에게 빼앗겼다. 산악인들은 3개 산을 하루 만에 연이어 약 50킬로미터를 주파하기도 한다. 전문 산악인 훈련 코스인데 가끔 조난 사고도 난다.

 

비석을 배경으로 너도 나도 기념 사진을 찍는다. 오성 홍기가 세차게 나풀거린다. 음료수 파는 아저씨가 한가로이 앉아 있다. 지상볜(吉祥鞭)과 핑안파오(平安炮) 역시 판다. 볜바오(鞭炮)는 폭죽이다. 복이 곧 최고라 믿는 중국 사람들이다 보면 폭죽 펑펑 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길상과 평안만 기원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자연이나 풍광에서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바람이 너무 세 중국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터뜨릴 엄두 내기도 쉽지 않다.  

 

주봉 비석 옆에 한 무더기 돌이 쌓여 있는데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다르촉이 매달려 있다. 티베트 경전을 새긴 각양각색의 헝겊이 줄에 매달려 있다. 돌을 쌓고 다르촉을 덮어 엮은 더미를 마니두이(瑪尼堆)라 한다. 마니룬과 더불어 티베트 곳곳에 흔하다. ‘마니’라는 말은 불교 천수경에 나오는 옴마니파드메훔(唵嘛呢叭咪哞)’의 준말이다.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뜻하는 법문으로 티베트 사람들이 흔히 암송하는 육자대명주(六字大明咒), 주문(咒文)이다.  



마니두이 옆에 야크들이 풀꽃을 뜯고 있다. 검은 눈동자와 흰 눈동자 사이, 살짝 붉은 핏빛이 감돈다. 몸무게가 200킬로그램도 넘는 몸집 앞에 섰으니 순간 긴장이다. 살짝 더 들어서니 이마와 앞가슴만 조금 하얗고 온통 검은 블랙야크와 눈을 마주 쳤다. 한참 눈을 마주치더니 조심스레 경계심을 푼다. 목에 걸린 소방울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에델바이스 먹고 사는 블랙야크?

 

가만 보니 주변에 에델바이스가 많이 폈다. 중국말로는 훠룽차오(火絨草) 또는 쉬에룽화(雪絨花)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산솜다리라고 한다. 알프스나 설악산뿐 아니라 링산 꽃 중 단연 최고라 할만하다. 에델바이스가 이다지도 많은데 왜 신경 쓰이게 하느냐는 눈빛은 아니겠지. 블랙야크가 사는 고원에는 수많은 풀꽃들이 핀다.



▲ 둥링산 고원에 피는 들꽃. 산양귀비(왼쪽 위), 산장미(왼쪽 아래), 꽃꿩의다리(오른쪽 위), 패랭이꽃(오른쪽 아래)을 비롯 수많은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얀 에델바이스와 노란 금연화가 가장 많았다. 산양귀비(野罌粟), 꽃꿩의다리(瓣蕊唐松草), 산장미(野薔薇), 패랭이꽃(瞿麥), 도꼬마리(卷耳), 연지꽃(胭脂花), 시호(柴胡), 뻐꾹채(漏盧), 마타리(黃花龍牙) 이루 헤아릴 없을 정도로 많은 고원 들꽃이 피어난다. 한군데 다 모여 있지는 않고 저마다의 군락을 짓고 피고 진다. 6~7 고원은 정말꽃이 만발하다. 고원 꽃은 약용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호 지역으로 지정해 신경을 쓴다.

 

그야말로 특이한 식물 분포 야크만을 위한 환상적인 식량 창고인 셈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 베이징 최고봉 정상을 부엌 삼아 식욕을 만끽하고 있다. 야크에게는 채식주의자의 까다로운 입맛도 부럽지 않을 듯하다. 티베트에 가면 관광 상품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식용으로 취급 받지만 나름대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보인다.


 

하산 길도 날씨는 여전히 변화무쌍하다. 순간 안개가 걷히자 초원을 달리는 이리마가 멋져 보인다. 야크 뿔도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베이징 최고봉에는 중국 서남부와 서북부를 대표하는 소와 말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노래 읊조리며 산을 내려오면서도 정상의 블랙야크가 생생하다. 가을이 오면 다시 오자고 떼를 써야겠다. 파란 하늘이 확 열리는 날, 다시 정상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찾아보자





댓글
댓글쓰기 폼
Total
1,719,205
Today
107
Yesterday
148
+ daumblog, 1,100,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