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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옌볜에서 우리 한복을 만든다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5.10 16:21

[중국발품취재35] 한중비즈니스포럼 장춘 및 연길 행사

5월 30일 아침이다. 호텔 조찬을 먹으러 갔는데, 꽤 정갈하다. 3성급 호텔치고는 수준 높고 음식 맛도 괜찮아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내 의지대로 식사하기 힘들다. 일행이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세리(SERI)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한중비즈니스포럼의 중국 장춘-연길 포럼이 시작된다. 한중포럼은 8천여 명의 중국전문가들이 모인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모임인데 올해 3번째로 중국 현지 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취재 일정이 맞아 참여했다.

행사 일정 동안 특급 호텔과 그에 준하는 식사가 제공되고 백두산 등산까지 할 수 있다니 설레인다. 게다가 현지 합류의 경우 회비(800위엔)도 저렴해 금상첨화라 하겠다. 그래서, 행사 일정 전체를 취재하기로 하고 가급적 실시간으로 블로그나 포럼에 게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며칠 전부터 틈틈이 미리 자료준비를 했다.

창춘(长春)의 5성급 호텔인 샹그릴라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숙소이면서 중국 정부 측과 포럼을 하게 될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온 일행들과 합류해 점심을 먹고 곧바로 시내 서남쪽에 위치한 아우디 생산공장인 창춘띠이치(长春第一汽)를 방문하러 갔다. 정확하게 말해서 중국에서 유명한 자동차생산회사인 이치(一汽)의 폭스바겐(大众) 브랜드의 생산라인을 보러 간 것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아우디(奥迪)를 생산한다.

  
▲ 장춘 자동차 공장 앞 '현대화된 자동차 공업기지를 건설하자'는 강택민의 글이 있다
ⓒ 최종명
장춘

아쉽게도 공장 생산라인은 촬영이 금지돼 있다. 포럼 회원들은 약 1시간가량 전 생산공정을 둘러보면서 하루 생산량이나 판매가격 등을 물어보는 등 중국 최대의 자동차 생산기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아우디 한 대 가격이 50~60만 위엔 한다는 것이 기억난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 잠시 기다리니 지린(吉林)성 부성장이 참여한 포럼이 시작된다. 중국 측 주최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中国国际贸易促进委员会) 길림성 분회이다. 중국의 무역 관련 인사 및 기업과 단체들이 모인 중국촉진회(中国贸促会CCPIT)는 1952년에 설립된 중앙조직으로 해외 기업들과의 교류를 주로 담당한다. 1시간 30분가량 인사말과 상호 소개와 기념촬영을 한 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 포럼 행사 길림성 부시장과 함께
ⓒ 최종명
길림성

넓은 홀에 깔끔한 음식들이 연이어 나오고 중국 바이져우(白酒)도 한 잔 하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다 씻겨나가는 듯하다. 이런 만찬 자리는 중국 측과 한국 측 사람들이 골고루 섞어 앉게 된다. 서로 명함도 교환하고 대화도 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의형제를 맺기도 한다. 그렇게 먼저 술을 주고받으면서 친해지는 방식이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문화 중 하나인 것이다.

두주불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주량이 된다면 의외로 친한 중국 벗들을 사귈 수 있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 마시는 태도를 보고 사람을 관찰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가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요즘에는 중국의 정부기관들과 만찬을 하면 대취할 정도로 술을 권하지는 않고 기분 좋게 취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많이 좋아진 듯하다.

이번 포럼에서 호텔 방을 같이 쓰게 된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손 이사와 아주 친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저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 거 같은데요' 하던 손 이사. 그러나 역시 내가 두 살 어렸다. 한 방을 쓴다는 것은 약간 부담이 되기도 하는데 푸근한 성향에 배려도 깊어서 친한 벗이 된 것이다. 호텔 방에만 들어가면 영상 편집하고 인터넷으로 송고하는 과정에서 시끄럽고 번잡스럽게 작업하는데다 담배도 많이 피우는 내 스타일을 이해해주니 참으로 고맙다.

다음 날인 5월 31일, 우리는 지린성의 지린(吉林)시 개발구 탐방을 했다. 투자환경이 아주 좋아 포브스가 선정한 최상의 투자적격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투자 설명회를 듣고 바로 옆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술자리가 아주 화기애애하다. 회원들은 지린시 경제개발구 사람들과 낮부터 독주를 주고받은 것이다. 개발구라는 곳은 일종의 산업단지인데 중국 어느 도시를 가도 대체로 한두 군데씩 있다.

  
▲ 길림시 점심 오찬 길림시 경제개발구 주최 오찬
ⓒ 최종명
길림

오후에는 물줄기가 길고 좁으며 하늘에서 보면 마치 진주(珍珠)같다고 하는 쏭화후(松花湖)에 갔다. 면적이 550제곱킬로미터, 수심이 75미터에 이르는 호수를 2시간 동안 배를 타고 유람한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부니 적당히 취한 술기운도 금방 날아간다. 달콤한 공기가 호수를 스치고 솟아오르고 펄럭이는 깃발 아래 갑판에 서서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노라니 정말 신선노름이다.

  
▲ 송화호 유람선 길림시 송화호 유람
ⓒ 최종명
길림
 
  
▲ 연길역 길림성 연변자치주 연길시
ⓒ 최종명
길림

6월 1일 오전, 옌볜(延边) 조선족자치주 옌지의 개발구를 방문했는데 조선족 기업뿐 아니라 많은 한국기업 입주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기업들이 이곳 조선족 인력을 활용해 수익을 만들고 이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복을 제작하는 혜미한복에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류송옥 사장은 50대 아주머니였는데 순박한 마음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어우러져 순풍에 돛 단 듯 사업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우리 복장’으로 우수상을 받고 한복으로 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시작한 여성사업가인 셈이다.

한복의 장점을 연구하기 위해 북한과도 교류가 많다는 류 사장은 유명 홍콩영화배우 청룽(成龙)에게 우리 한복을 만들어줬는데 너무 잘 어울린다며 우리 옷의 긍지도 사뭇 높다. 옌지의 과학기술대학에 있는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하고 있기도 하다. 부디 남한과 북한의 옷감을 잘 연구해 세계로 뻗어가는 독창적인 '복장예술'을 구현하길 기대한다.

  
▲ 예미한복 류사장과 포럼 여성회원 연길시 개발구 한복 제조업체
ⓒ 최종명
한복
  
▲ 조선족 기업이 만든 우리 한복 연길시 예미한복
ⓒ 최종명
연길

무엇보다도 옌지는 말이 통한다. 거리 간판도 한글로 쓰여 있어서인지 낯설지 않다. 2004년 12월에 처음 갔을 때보다 굉장히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가 다르게 옌지도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변화가 개혁과 개방,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조선족 사회는 반대로 점점 피폐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다.

조선어를 사용하는 학교는 점점 사라지고 자치주를 떠나 상하이(上海)나 션전(深圳), 광저우(广州 ) 등 경제 중심지로 이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혼자 남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는 가족구조. 그 해체가 심각하다.

개발구 탐방을 마치고 곧이어 자치주 부주장이 참여한 포럼 행사가 진행됐다. 백두산 천지가 벽에 걸려 있고 양탄자, 샹들리에가 화려한 호텔 회의실이다. 방송국에서 촬영도 나와 이번 행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다정다감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말이 이어지고 부주장과 우리 일행의 단장이 서로 대화를 나눴다. 안타까운 것은 조선족 자치주의 부주장은 한족이어서 통역이 필요했다는 것.

  
▲ 연변자치주 부주장과 함께 회의 중 취재 중인 연변방송국 카메라맨
ⓒ 최종명
연변

사진 촬영을 하고 만찬 장소로 갔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안내한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러나 모두 한족이다. 이번 전체 행사 만찬 중 가장 음식 맛도 좋고 푸짐했다. 차려 나오는 음식들도 수준이 높았다.

  
▲ 한복 입은 한족 종업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
ⓒ 최종명
한복
 
 
옌볜 과학기술대학 교수와 주 정부 관계자, 개발구 간부들은 우리 일행과 테이블마다 나눠 앉아 술도 권하고 음식도 맛나게 먹었다. 조선족 사회에 대한 염려도 이야기했고 개발구에 한국기업 유치에 대한 아이디어도 들었다. 훈훈한 정이 오가는 차분한 만찬이었다.

  
▲ 연길 행사 만찬장 한복 입은 아가씨들
ⓒ 최종명
연길

조선족자치주에 근무했고 지금은 한 지방 현의 조선족 부현장이 조선족 사회의 ‘가족’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도 6~70년대를 거치며 경제성장을 하면서 한 세대가 희생한 것이 아니냐. 우리 조선족 사회도 누군가는 고생을 해야 한다면 지금 세대가 그렇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 잘 사는 민족이 될 수 없다. 그렇게 이야길 듣고 보니 조선족 사회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감상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도 옌지를 처음 찾았을 때, 옌지 조선어 방송국의 김동환 국장이 한 말도 떠오른다. 일제 시대 혁명을 하던 세대들이 이제 한분 두분 돌아가시는데 그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미흡하다. 민족적 가치를 유지하려는데 자본도 없고 한족 중심의 중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통제도 있다고 했다. 민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각각 살고 있는 동포란 진정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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