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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 인민을 춤추게 하라>를 연재하며...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이 침몰하더니 ‘사람’은 사라지고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짓거리를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소주 잔에 울분까지 섞어 마셨다. 소화 불량에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더니 면역력까지 떨어지자 이번에는 ‘메르스’ 창궐로 국민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으며 ‘4대강’을 저주라도 하듯 40여 년 만에 등장한 극심한 가뭄은 국토를 갈라놓고 노동자, 농민, 서민의 주름살을 깊게 파내고 있다. 


자연재해와 가렴주구가 들끓으면 여지 없이 민초들은 지도자를 찾고 깃발을 들어 항거했다. 비록 실패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았던 민란의 중국 역사,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술김에 뱉은 말로 인해 중국 역사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비록 중국 민란이지만 우리의 현실이, 미래가 암울하니 혹여 ‘성공하는 민란’의 힌트 하나라도 된다면 억울하지 않겠다.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없는 역사였기에 ‘인민’의 고통과 함께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현실만 보더라도 공감 못하는 바는 아니다. 


13년 동안 300여 도시, 중국 방방곡곡을 다녔으며 앞으로도 200여 곳을 더 다니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세월호’와 ‘메르스’가 발목을 자꾸 잡고 있으니 ‘욕’ 나오지 않겠는가? 이게 다 대통령 잘못 뽑은 업보려니 자조하고 ‘민란’ 쓰고 나면 양심의 1%만큼 면죄부라도 된다면 면역력을 키워 다시 중국으로 떠나볼까 한다. ‘아름다운 나라’,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면 ‘민란’으로 ‘인민을 춤추게 하라’, ‘인민’은 ‘종북’ 냄새가 나나? 그럼 노동자, 농민, 민중, 민초, 일반대중, 전 국민…




메르스 14번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14’는 굉장히 좋지 않은 숫자로 중국사람들은 생각한다. 어딘가 ‘의도’가 있지 않으면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무지몽매한 대처. 어쩌면 ‘세월호’의 아이들과 국민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엄청난 ‘저주’는 ‘슈퍼전파자’ 14번 환자를 통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생긴다. 중동으로부터의 1번 환자의 유입 이후 1~2명으로 막을 수 있던 메르스를 14번 환자에게까지 이르게 하다니, 그것은 저주가 분명하다. 


야오쓰要死[yàosǐ]: 죽이다, 죽고 싶다, 몹시


1은 원래 yī 라고 발음하는데 전쟁 중 스파이들이 1 발음이 7[qī]와 잘못 들릴 수 있어서 yao로 대신 말하면서 굳어졌다. (7은 qi가 아닌 guai라고도 함) ‘이’와 ‘야오’ 둘 다 혼용하지요. 지방마다 쓰는 말도 다소 다르고. 중국 핸드폰 넘버는 13~으로 시작하는데 이싼[yīsān]이라 하지 않고 야오싼이라 하며, 범죄신고전화 110도 야오야오링이라 한다. 


4는 sì로 발음하며 死를 연상한다. 


그러니 14는 아주 불길한 숫자다. 게다가 十四[shísì]는 ‘실제로 죽다’는 实死[shísǐ]와 병음이 같다. 


14번 환자는 완치됐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와의 접촉 후 확진 환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저주는 무섭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애써 세월호를 바라보던 ‘강남’, ‘대구경북’, ‘70대’에게도 여지 없이 메르스는 비켜가지 않았다. 그리고 14번 환자는 ‘삼성’이라는 대한민국의 괴물까지 ‘감염’시켰다. 부회장이 눈물을 비치며 ‘쇼쇼쇼’까지 연출했다.


자연재해와 가렴주구가 겹치고 대형 사건이 터지면 역사에서는 곧 ‘민란’의 시대가 도래하더라. ‘죽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거나 ‘야오쓰’는 쓰임새가 여럿이겠지만 앞으로도 2년이나 남은 박근혜 정부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로지 ‘민란’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 해답을 위해 꼭 ‘민란’을 쓴 건 아니지만 ‘민란’의 역사가 곧 2015년의 현실과 아주 닮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민란’에 자주 등장하는 제왕들과 아주 닮았다.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제왕의 ‘끝’은 늘 좋지 않았다는 것인 민란의 역사였다. 그리고 민란은 ‘인민을 춤추게’ 했던 역사였지만 비록 실패할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 했던 수 많은 ‘저항’은 역사 책갈피 곳곳에서 살아있더라.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하며 원고가 마감되면 ‘진지한’ 삽화를 곁들인 책으로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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