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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백두산과 아리랑 그리운 우리 동포여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5.12 16:17

[중국발품취재36] 백두산과 <천년아리랑>

6월 1일 오후 우리는 옌볜(延边) 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다. 15년 전 척박한 조선족 동포사회에 교육사업의 기치를 든 김진명 설립총장은 뜻밖에도 미국시민권을 지닌 한국인. 김 총장은 외국인 최초로 합작형태이긴 하지만 독립적인 교육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외국계 대학을 설립했던 것이다. 그의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보고 듣자니 선견지명을 지닌 애국자가 따로 없다는 존경이 우러난다.

게다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살아생전 합의한 평양과학기술대학 협정서를 보여주며 곧 평양에도 우리나라 교수진들이 진출해 북한 동포학생들 교육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의 남한과 개혁개방 단계에 있는 북한, 그리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동포사회의 고향이기도 한 옌볜을 잇는 진한 민족애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한국에서 온 200여분의 교수님들이 급여도 받지 않고 조선족 후학을 위해 봉사하는 마인드 앞에 진한 감동이 솟아날 수밖에 없다. 대학 곳곳에 김 총장님과 교수님들의 따스한 정감이 배어 있다. 그 중에도 총장님 사모님이 기증한 공예품과 민속품 등으로 꾸며진 긴 복도를 따라 가는 길은 참으로 따뜻했다. 복도 창 밖 운동장에는 조선족 동포학생들을 보니 반갑다.

최고경영자과정을 맡으신 김성준 교수님 연구실. 책꽂이에 책들이 모두 거꾸로 꽂혀 있다. 먼지가 많아서 그랬는데, 삼성에서도 근무하시고 정년으로 퇴임하셨으니 오랫동안 연구하던 책들을 이제는 모두 거꾸로 회고하고 재차 연구하실 의지의 표현이라 하시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벽에는 ‘老师也像朋友一样’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친구 같은 선생이 되자’는 뜻이라 하시며 겸연쩍어 하신다. 정말 ‘스승이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약 3시간에 걸친 포럼을 통해 옌볜과기대 최고경영자과정 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대부분 옌지(延吉)에서 기업을 경영하거나 각 예술문화단체 등에서 일하는 일꾼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옌볜 가무단의 특별소품을 관람했다.

첫 번째 작품은 <선녀와 나무꾼>이다. 국가2급 배우인 채용과 오성복이 열연했다. 내용은 조선족 동포들이 인구 이동으로 인해 부부가 이별한 것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고향에 남아 있는 남편들의 고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의 남편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나무꾼과의 만남을 통해 떠나간 안해(아내 또는 선녀)를 찾으며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계몽적인 내용이다.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꿔 담아 재미있게 구성한 것이 포인트이며 약간 낯선, 그러나 이미 익숙해지기도 한 연변 말투와 어울려 흥겹게 동화되는 작품이다. 다소 계몽적인 메시지이지만 중국 조선족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세련된 무대에 비해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감칠 맛 나는 연기와 관중과 호흡하는 애드립으로 인기를 많이 끌었다.

  
▲ <선녀를 찾아주세요> 연변가무단의 특별소품 공연 중
ⓒ 최종명
연변


또 하나의 소품은 <오줌싸개>. 옌볜 사회에서 꽤 유명한 국가1급 배우인 리옥희와 김미화(국가3급)가 출연하며 극본 김정권(국가1급 작가), 연출 최인호(국가1급 연출)이다. 설날이 다가오는데 고향인 농촌에서 늙은 어머니는 도시에서 사업하는 큰 아들네 식구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이큐가 차(差 낮다)한 딸 역시 오빠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전화를 건 아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오지 못한다고 하자 크게 어머니는 상심한다. 그래도 효성스러운 딸로부터 마음의 괴로움을 달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감동적인 연기와 함께 '못 생긴 나무 산을 지키고 있구나'라는 멘트가 가슴을 찌른다. 현장에서 볼 때는 평범한 스토리의 소품이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고 또 보니 아주 섬세하고 진한 디테일이 느껴진다. 잔잔하게 감동을 샘솟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두 번 세 번, 맛 볼 때마다 더 깊어지는 장국 같다. 잘 생기고 큰 거목은 다 장작이 되었겠지만 '못 생긴 나무 산'이야말로 꿋꿋하게 큰 산의 생명 줄이 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 포럼 일행을 위해 일부러 열정적인 무대를 꾸며주니 정말 고맙다. 세련된 무대는 아니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연기, 감칠 맛 나는 대사가 오히려 푸근해지는 듯하다. 대화가 통하고 인정이 교류하며 말하지 않아도 동포였다.

6월 2일 새벽 5시. 우리는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백두산 박사님'으로 통하는 연변과기대 최창흡 교수님께서 발굴하신 백두산 가는 길은 기존 관광객들이 안도현과 이도백하를 거쳐 가는 코스 대신에 용정, 화룡, 남평, 숭선, 광평을 거쳐 가는 코스이다. 두만강 바로 옆 비포장 군사도로를 따라가는 길이다.

시간은 6시간 이상 걸리지만 바로 코 앞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으며 백두산 옆 발원지에서 시작한 두만강 줄기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셈이니 그 감회가 새롭다 하겠다. 점점 좁아지는 물줄기를 따라 적막한 도로이지만 우리 일행은 교수님들의 백두산과 북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경계석 앞에서 중국과 북한 경계석 앞에서 연변과기대 최창흡(가운데), 김성준(오른쪽) 교수
ⓒ 최종명
경계석


북한 함경북도 무산시를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고 ‘조선’과 중국의 경계석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새벽에 출발했기에 출출한 차에 숭선에서 먹은 아침은 꿀맛이다. 아침을 먹은 식당 바로 건너편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다.

  
▲ 북한 땅 무산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이 북한 땅 무산
ⓒ 최종명
북한


중국 영토 '장백산' 정문에 도착한 후 우리는 여전히 천지의 날씨 상황을 알 길이 없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차량이 운행되지 않으면 장백폭포만 보기로 했다.

차량을 이용, 천지 간판이 보이는 입구에 도착하니 천지 오르는 지프차가 운행 중이다. 다행이다. 해발 2749미터(최창흡 교수님 주장)를 오르는 지프차는 무서운 속도로 올라간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며 난폭하게 운전하는 기사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조용히 앉았다.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질 리야 없겠지 염려하면서 말이다. 날씨는 오락가락,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모두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 백두산 입구 백두산의 중국 쪽 입구
ⓒ 최종명
백두산


지프차에서 내리니 온통 주위가 안개로 자욱하다. 게다가 눈도 아직 녹지 않았고 날씨는 영하 10도 정도로 쌀쌀하다 못해 한겨울이다. 서서히 천지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맑아지는 게 아닌가. 이 무슨 행운이요, 공덕이란 말인가.

천지는 아직 꽁꽁 얼었지만, 그 웅장하고 늠름한 자태는 마음을 확 녹이고도 남았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듯하다. 삼각대를 놓고 천지를, 북한을 향하는 손이 얼어붙는다. 1분 이상 손을 내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춥다. 비도 내렸다 그쳤다 난리다. 그렇지만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백두산의 그 진한 인상은 시야에서 떠나질 않는다.

  
▲ 햇살을 머금은 천지 6월이라 아직 얼어붙은 천지 위로 햇살이 살짝
ⓒ 최종명
백두산


약 1시간 머문 백두산 정상이지만 천지 앞에 서니 시간도 멈추는 듯하다. 수 천년 이어온 조선 민족의 거산 앞에서 1시간도 감지덕지였다. '겨레의 숨소리' 백두산. 그리웠던 만큼 비록 짧지만 알찬 사랑의 숨결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산봉우리 하나에도 시선을 남겼고, 바위에도 살짝 손길을 대고 스스로 속내를 숨겨본다. 언젠가는 우리 동포들 모두 손잡고 천지에서 감동의 통일노래를 합창하리라.

  
▲ 백두산 천지 눈 쌓인 천지에 모인 많은 관광객들
ⓒ 최종명
백두산


산을 내려가는 길 또한 오르는 길처럼 험하다. 하늘과 산들이 멋지게 조화를 부리니 비가 오려나, 날이 밝아지려나 이런 저런 생각도 들고 역시 백두산에 오니 생기가 넘친다. 그리고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을 오를 날은 언제일까 손 모아 빌고 또 빌면서.

백두산 천지를 보고 내려와 구름 속에 갇힌 장백폭포를 보러 갔다. 온천수가 하얀 김을 뿜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 웅장한 폭포가 나타난다. 장백폭포는 하늘에서 내려와 비를 뿌리는 근원인가. 카메라 앵글에 빗물인지 폭포수인지 자꾸 묻어난다. 폭포는 무서운 기세로 흘러 강이 되겠지. 백두산에 다시 세차게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장백폭포가 떨어지듯 말이다.

  
▲ 장백폭포 멀리서 바라본 장백폭포
ⓒ 최종명
장백폭포


다시 버스를 타고 옌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포럼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나는 이틀을 더 묵었다. 그것은 바로 옌볜 가무단의 <천년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옌볜 가무단은 1946년 3월 10일 조선의용군제5지대 선전대가 그 모태라 한다. 이 선전대는 ‘태항산 항일근거지 북조선 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그룹’이라는 긴 이름의 혁명조직에 속해 있었기에 그 전통이 사뭇 길고도 붉다고 하겠다.

신중국이 건국한 지 1주년 당시 베이징 쭝난하이(中南海)에서 소수민족연합으로 마오쩌뚱의 시를 주제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신중국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야말로 당시 소수민족들에게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후 30여 차례 이상 중국의 수도에 상경해 공연도 했으며 점차 그 이름이 알려지면서 10개국 이상 외국에 초청돼 공연도 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합창곡 <장백의 노래>로 가무단의 이름을 알렸다면 1990년대에 이르러 대형무용극인 <춘향전>을 11회 아시안게임 예술제에 출품해 좋은 반응을 보였다. 대형뮤지컬 <아리랑>으로 전국 가극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도 했다. 이 두 작품은 중국문화부의 제1회 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형무용서사시 <장백정(长白情)>과 교향곡 <신묘한 장백산> <천년아리랑 千年阿里郎> <장백산의 봄> 등 최신 작품도 있다.

이 중 2007년 올해 새로 기획된 <천년아리랑>이 공연된다는 것을 알았고 취재 일정을 이틀 더 연장하면서 기다렸다. 원래 사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매일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아마도 가무단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한동안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옌볜 과학기술대학의 김성준 교수님은, <천년아리랑>을 꼭 보고 떠나겠다는 말에 VIP 좌석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가무단 단장이 과기대 최고경영자과정 수강생이니 아마 쉽게 도와주신 듯하다. 가무단 재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 무료로 보려니 약간 마음에 찔렸다. 정말 감동적인 <천년아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는 공연 내내 마음 속으로부터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다 전할 수 있을까마는.

막이 오르면 '장백 웨침'이 시작이다. 북춤이다. 그리고 이어 우리 민요를 연창, 즉 합창한다. '장백 메아리'는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이는 여성스런 소고 춤이며 둥근 악기처럼 살랑 돌아가는 몸짓은 나긋나긋한 아낙네의 몸짓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서혼'은 붓과 부채 속에 담긴 선비의 유연하고 기개가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이름하여 '글 속에 담긴 혼'이라 하니 정열적이고 힘찬 남정네의 혈기라 하겠다.

  
▲ '장백 웨침'과 '민요연창' 연변가무단 천년아리랑 공연 중
ⓒ 최종명
연변가무단


봄에 피는 꽃 진달래는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꽃(州花)이다. 더불어 '조선족 인민들의 생활신념'이라고 한다. <천년아리랑> 속의 '진달래'는 너무나 아름다워 진홍빛으로 물든 눈을 비비고 또 비벼야 한다. '진달래' 무용을 연기하는 많은 배우들 중에 진달래 꽃 속에서 진달래보다 더 예쁜 꽃이며 희망을 온몸으로 연기한 배우는 박연화(朴延花)라고 한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 공연이 끝난 후에 가무단 단장에게 '진달래를 연기한 배우가 너무 이쁩니다'하며 인터뷰를 좀 하려고 그랬는데 '우리 단 250여 명 배우들 다 하나같이 모두 이쁩니다'라 한다. 공연 시작 직전에 과기대 본부장이 대학 선배인 것을 알게 돼 함께 나가게 되는 바람에 박연화 배우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쉽다.

  
▲ '진달래' 연변가무단 천년아리랑 공연 중
ⓒ 최종명
진달래


'물동이 춤'은 머리에 물동이를 얹고 살금살금 춤을 추는데 그 모양이 예쁘기도 하고 언뜻 서커스를 연상하기도 한다. 신랑 각시가 혼례를 올리는 날의 모습을 춤으로 구현했는데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다. 얼굴빛이 붉게 물들 정도로 약간 야하기도 하다.

가마를 타고 시집 가는 모습도 좋고 서로 맞절하고 장난 치는 모습도 즐겁다. 동네 사람들 모두 나와 축하해주고 한바탕 놀이가 뒤범벅인데 진정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았다 하겠다. 밤은 깊어가고 동네 아낙들은 신랑 각시의 첫날밤을 훔쳐본다.

  
▲ '꽃분이 시집가네' 연변가무단 천년아리랑 공연 중
ⓒ 최종명
연변가무단


아낙네들은 '장고' 춤으로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남정네들은 '상모' 춤으로 아낙네들과 함께 하나가 된다. '장고'에 이어 '상모' 춤이 연신 한마당을 이루니 혼신을 다 끌어모아 무대를 한마음 한뜻의 '민족 한마당'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연길에 가시면 꼭 <천년아리랑>을 보기 바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꼭 공연이 성사되길 바래 본다. 백두산과 아리랑. 며칠 동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또 떠나야 하지만 천지와 진달래의 모습이 아른거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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