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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37] 헤이룽장 성 닝안현과 화촨현을 가다

6월 5일 아침 일찍, 옌지(延吉)에서 만난 화촨(桦川)현  주태호(朱泰虎) 부현장과 함께 헤이룽장(黑龙江) 성을 향해 떠났다. 주태호 부현장은 조선족으로서 중국 화촨 현 인민정부의 공식 선거로 당선된 사람이다. 시장조사를 목적으로 가는 두 분 김 사장과 함께 동행이다. 나로서는 만주벌판을 지나 러시아 국경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취재여행을 갈 수 있으니 정말 기분 좋은 일정이라 하겠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다. 옌지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초록색 나무들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부드러운 심성의 주 부현장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달린다. 옌지에서 주로 생활했던 주 부현장은 94년부터 한국과 무역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해서인지 한국의 상황을 매우 소상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던 중 건강이 악화돼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조선동포를 비롯 우리 민족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각성이 생겼다. 부현장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자신의 노하우를 지역과 민족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려는 그의 삶의 자세가 참 마음에 든다. 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된 다섯 명의 부현장 중 한 명이기에 더욱 자랑스러워 보였다.

산골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려 조선족 거주지역인 왕칭(汪清) 현을 지나 서북 방향으로 1시간을 달리니 닝안(宁安) 현 뚱징청(东京城)과 뽀하이(渤海) 진에 도착이다. 그는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데 발해 유적지를 소개해 준다며 도착한 곳이다. 바로 발해상경(渤海上京) 유적지. 그러니 벌써 지린(吉林) 성을 벗어난 것이다.

헤이룽쟝 성 닝안 일대에 유적으로 남아 있는 발해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먼저 뽀하이샹징(渤海上京) 옛 터와 박물관을 찾았다. 상경 용천부(龙泉府)는 발해의 다섯 중요 도시 중 하나로, 이곳 뽀하이 진은 일명 동경성(东京城)이라 부르는 도읍지이기도 하다. 동경 용원부(龙原府)는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珲春)에 있으며 팔연성(八连城)이라 하며, 중경 현덕부(显德府)는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龙), 남경 남해부(南海府)는 지금의 북한 청진시, 서경 압록부(鴨綠府)는 지린성 바이산(白山)에 있었다 한다.

대조영(大祚荣)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민족과 말갈족의 연합 왕국인 발해는 당나라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 698년 건국한 나라로 초기에는 진국(震國)이라 했다. 이후 713년에 국호를 발해로 개명했다. 이후 229년 동안 독자적인 민족 문화와 정치 체제, 5경 15부에 이르는 영토를 경영하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렸다.

발해상경용천부 박물관은 아주 작은 규모다. 사진을 찍는 것을 몹시 꺼린다. 박물관이라고는 하나 건물 한 채에 썰렁한 분위기에 부근 옛 터에서 채집했다고 하는 문물 몇 점만이 전시돼 있다.

  
▲ 발해상경유적지박물관 헤이룽장성 닝안현에 있는 발해국 수도인 상경 용천부의 유적 박물관 내부
ⓒ 최종명
발해

발해 상경 유적지도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당시 당나라 수도이던 장안(长安) 성의 건축양식을 따라 5분의 1의 크기로 건축됐다는 상경 동경성은 동서 4.68킬로미터, 남북 3.47킬로미터에 이른다. 당시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밭 터 곳곳에 있는 정방형의 주춧돌이 여전히 당시 역사를 무겁게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최근에 가지런히 재구성한 흔적이 역력한 성벽과 성문을 따라 걸으며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배웠던 발해의 땅을 디딘다는 감회가 새록새록 솟는다. 역시 이곳 입장권과 입구 팻말에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지방 민족정권’이라고 써 있다. 게다가 고구려를 의식해 ‘말갈족이 주체가 되어 건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있는 <대조영>이 이곳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

  
▲ 발해상경용천부 옛 성터 발해국 수도인 상경 용천부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터
ⓒ 최종명
발해

다시 차를 타고 201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 국도는 따렌 부근 뤼순을 시작해 동북 최북단 도시 허깡을 잇는 1964킬로미터의 도로다. 닝안 부근 한 도로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마손 장국집’이라는 친근한 우리말 식당이다. 얼마 전 중국 CCTV가 방영한 26부작 드라마 <엄마의 장국집>이 생각난다.

  
▲ 정겨운 이름의 식당 '엄마손 장국집' 동경성에서 201번 국도 부근에 있는 식당
ⓒ 최종명
엄마손

된장국이라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기대했지만 사실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한다. 중국화된 중국동포의 맛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한족이고 종업원은 우리 말을 좀 하는 조선족이긴 한데, 다리를 약간 저는 장애인이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만, 고등학생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실한 여학생이다. 맛은 ‘엄마손 장국집’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201번 국도는 벌판을 달린다. 그야말로 만주벌판이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만큼 왼쪽 오른쪽 보는 곳마다 훤하게 펼쳐진 넓은 벌판이다. 게다가 곡창지대라 논과 밭이 한없이 길게 형성돼 있다.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렇게 오후 내내 달리는데도 그 모습이 똑같은 벌판이 하염없이 펼쳐지니 말이다.

중국 동북 도시 쟈무스(佳木斯)를 지나니 서서히 해가 진다. 오후 내내 맑던 하늘도 다시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쟈무스 시내를 통과하는데 분위기가 러시아 영향을 받은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다. 여기서 불과 2~3시간이면 러시아 영토이니 그럴 법도 하다.

  
▲ 헤이룽장 성 쟈무스 시내 201번 국도로 만주벌판을 달려 중국 동북 도시 쟈무스 시를 지나고 있다
ⓒ 최종명
쟈무스

우리 목적지인 화촨은 쟈무스 시에 속해 있는 쑹화쟝(松花江) 하류의 작은 현이다. 주 부현장의 소개에 의하면 러시아와의 무역으로 재정자립도가 굉장히 높은 곳이라 한다. 현 정부의 지정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고, 역시 중국 바이져우(白酒) 흠뻑 마시고 이내 잠이 들었다.

6월 6일 아침 늦잠을 잤다. 시장조사를 온 두 김 사장이 벌써 일어나 식당으로 갔는데 나만 늦은 것이다. 역시 사업으로 온 사람들이 나처럼 여행 겸 취재로 온 것보다는 더 긴장했나 보다. 아침을 먹고 쑹화쟝 강변의 멋진 모습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정신을 좀 차렸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곡창 지대에 걸맞게 쌀 가공 공장이다. 일본 푸스미예꽁스(付士米业公司)는 벼를 탈곡하는 과정부터 완제품으로 포장되는 전 공정을 완전 자동화했다. 2006년 4월부터 20만 평방미터 부지에 연간 생산규모가 20만 톤인 공장을 설립하고 올해 2월부터 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쌀을 생산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꽤 복잡하고 여러 공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 화촨현의 일본 진출기업의 쌀 생산공장 입구 헤이룽장화촨푸스미예꽁쓰
ⓒ 최종명
화촨

다음으로 찾은 곳은 화촨현 내 리펑(梨丰) 향 인민정부 소개로 돼지 키우는 곳을 찾았다. 원래는 소를 목축하는 곳을 찾았는데 현 내에는 아마도 없었나 보다. 땅이 질퍽해 신발에 온통 흙을 묻히고 향 서기와 함께 지독한 냄새 나는 우리를 방문했다. 시장조사의 컨셉트가 쌀과 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 화촨현 리펑 마을 동물농장에서 비어있는 우리에서 본 바깥 우리 모습
ⓒ 최종명
화촨

인민정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대접을 받았다. 무엇보다 신나는 것은 쫄깃하고 맛 좋고 영양가 풍부한 개고기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행인 두 김 사장이 어쩌면 송구스럽게도 개고기를 못 먹는다 한다.

체면불구하고 두 눈 질끈 감았다. 식당 주방에도 들러 활기차고 시끄럽게 요리중인 분위기도 찍었다. 그리고, 푸짐한 음식들 때문에 정부 관료들의 권주에 흔쾌히 따랐다. 두 분 사장은 시장조사 중이기도 했고, 한 분은 술을 잘 못하시니 나라도 장단을 맞춰야 했다.

  
▲ 개고기 요리 화촨 현 리펑 향 식당에서 먹은 지역명물 개고기 요리
ⓒ 최종명
화촨

다시 우리 일행은 러시아 영토와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푸진(富锦) 시로 갔다. 화촨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가는 동안 취기가 올라 내내 잤다. 푸진 시는 러시아 하바로브스키와 아주 가까운 도시이다. 이곳에서 개발구 사람들과 회의를 한 후 다시 돌아왔다. 푸진 시 역시 아담한 도시이지만 파란 하늘과 흰 구름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 최북단 도시 푸진 시 러시아 하바로브스키와 불과 1시간 거리인 헤이룽장 푸진 시내 모습
ⓒ 최종명
러시아

차로 돌아오면서 부현장이 저녁은 조선족 자치향 사람들 집에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조선족 마을이라 소개한다. 그 옛날 만주벌판을 달리던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씽훠(星火) 조선민족향(朝鲜民族乡)은 1500여 가구에 5천여 명의 조선족 동포가 100%인 자치마을이다. 1950년대 초에 개발된 중국 최초의 집단농장(第一集体农庄)이다. 집단농장이 꾸려지자 점차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조선족 동포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규모를 형성하게 됐다. 최북단 조선족 자치 마을이기도 하고 헤이룽장 성의 조선족 최대 거주지이기도 하다.

  
▲ 성화 향 조선족마을 중국 최북단의 조선족 자치마을인 성화 향의 집단농장 마을
ⓒ 최종명
조선족

한 줄로 정연하게 세워진 집들이 계획 마을답다. 한 집에 들어서니 이미 아주머니 몇 분이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인사를 하고 모두 정겹게 앉았다. 북한 지방 사투리인 듯 말투가 색다르다. 옌볜 조선족 자치주 사람들 말투와도 아주 다르다. 중국 내에서도 조선 동포 말투가 서로 다른 것은 우리 나라 지방 사투리가 많은 것처럼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말투 차이가 느껴질 만큼 이곳은 꽤 북쪽인 셈이다.

주 요리는 ‘닭곰’이다. 닭 백숙과 거의 비슷하다. 향 서기를 비롯 향장과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향 서기는 50대 초반 정도인데 우리 말이 좀 서투르긴 해도 열심히 우리 말과 중국어를 섞으며 친근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참 모범적인 일꾼의 모습이다. 다른 간부들도 대체로 열의를 가지고 우리를 대해 준다.

고향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조선족 사회를 논하기도 했다. 때로는 한족 중심의 정부에 대해 다소 비판을 하기도 한다. 또한 많은 마을 사람들이 현재 한국으로 일하러 가서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도 한다. 하루 빨리 온 가족이 모여 행복을 꾸려야겠다고도 한다.

  
▲ 성화 향 조선족마을 저녁 만찬 상 가운데 닭곰요리를 비롯해 조선동포들이 준비한 저녁 만찬
ⓒ 최종명
조선족

이런저런 이야기에 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같이 간 김 사장은 너무 신이 났던지 권하는 술을 엄청 마셨다. 그러면서도 동포애가 살아나니 취하지도 않는다. 북위 47도에까지 와서 우리 말로 대화하는 동포를 만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을까 싶다.

헤어지기 너무 섭섭했던가. 주 부현장의 제안으로 주변 도시 중 가장 번화하다는 허깡(鹤岗)까지 드라이브도 했고 쟈무스(佳木斯) 시로 이동해 노래방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게 됐다. 모두 우리 노래, 중국 노래 한 곡씩 뽐냈다.

화촨으로 시집 와 살면서 자치 향 정부의 문화부문을 담당하는 아주머니는 ‘섬마을선생님’을, 우리 일행 김 사장은 중국 노래인 ‘쭝궈런(中国人)’을 불렀으며 주 부현장은 ‘나 혼자 만이’, 부향장은 ‘위에량다이뱌오워더씬(月亮代表我的心)’을 불렀다. 화면에 갑자기 누군가가 영화 <신화>의 주제가를 신청했는데,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청룽(成龙)과 김희선이 함께 부른 노래 ‘션화(神话)’를 계속 듣고 있다.

밤이 늦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지만, 노래말처럼 우리는 중국 최북단 조선족 자치마을 사람들에게 '사랑한단 말도 못'하고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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