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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사변의 두 주연배우, 장개석과 장학량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2008. 5. 15. 05:39

서안에는 중국 역사 상 유래가 없는 독특한 사건인 <서안사변>의 고장이다.


국민당의 장개석이 모택동 군대를 압박하던 시기에 발생한 <서안사변>은

일명 '12.12사변'(双十二事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36년 12월12일,

동북군벌인 장학량이 서북군벌인 양호성 군대와 함께,

<화청지>에 있던 장개석 공관을 습격해 체포한 사건이다.


당시, 장개석은 장학량과 양호성을 압박해 공산당 홍군 토벌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장개석은 반일투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홍군 토벌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나

장학량과 양호성은 선 반일투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인 두 군벌은 의기투합하고

경계에 유리한 <화청지>의 '오간청'에 머물던 장개석 공관으로

새벽2시 100여명의 군사와 함께 직접 작전에 나섰던 것이다.



<화청지>는 유명한 온천지이면서, 양귀비와 당 현종이 사랑을 나누던 별궁이 있는 곳이다.

뒷산은 '여산'으로서 산세가 험하였고 그 중턱에 자리잡은 곳이 바로 '오간청'인 것이다.


'오간청(五间厅)은 청나라 말기인 1900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고급관리들의 일종의 휴양시설인데, 1934년 중건되었고

서안에 두번 방문한 장개석이 사용했다고 전한다.


<서안사변> 당시, 빗발치는 총격전으로 건물에 총탄 자국이 있다.

장개석은 총소리에 놀라, 부관과 함께 겉옷도 걸치지 않고 맨발 차림으로 빠져나갔고

담장을 뛰어넘다가 넘어져 발과 척추를 다쳤다 한다.

부관이 업고 도망쳤고 산허리 어딘가 숨었는데, 아침 8시에 발견돼 서안으로 압송된다.



장개석 공관 내 집무실이다.

대만 중정박물관에 있는 그의 유물 전시관에 비해서는 초라하나

지금도 장개석의 초상화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등 그때 그모습으로 재현해 두었다.


장학량은 아버지인 유명한 민족주의자 장작림이 일본군대에 살해 당해 반일감정이 높았고

홍군 역시 같은 동포라는 의식이 강해 차마 홍군을 치지 못하고 매일같이 장개석에게 읍소했다고 한다.


충심을 간직한 민족주의자 장학량은 이곳에서 울며 호소했다 하니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인 <서안사변> 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공관 내 회의실인데 당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차원인지 국기도 걸려있다.


민족상잔의 비극을 동일하게 경험한 우리의 땅에

북한공산당의 역사적 유물이 있을리 없으니, 우리와는 상황이 참 다른 가 보다.

우리와 중국의 통일방식과 내용이 다르니, 역사의 흔적도 사뭇 다를 터이니 당연하겠지만,

때로는 중국식 포용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장개석 공관에서 산 위쪽으로 가는 길이다.

당시 군인들이 오갔을 곳이라 생각하니 좀 좁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문들이 이렇게 둥근 원으로 꾸미는 것은 여전하다.


안쪽 빨간 정자에서 <화청지>와 <오간청>이 훤히 다 볼 수 있다.



<화청지>에서 장개석 공관으로 가려면 이 작은 연못을 지나야 한다.

연꽃이 알맞게 피어서 보기 좋다.

나무그늘이 드리운 연못의 풍치를 보면서 고관대작들이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장개석도 이곳에서 군사전략을 모색했을 지 모르겠다.

'반일'보다 '반공'에 집착하다 사로잡힌 장개석이 풍류에 눈멀어

장학량의 민족애가 담긴 절규에 귀를 막았나 보다.


장개석 공관을 보고 나오면서, 서안 시내에 장학량 공관을 찾기로 했다.

원래 서안 지도에서 장학량 공관을 발견해 알고 있었는데, 굳이 갈 생각이 없었으나

장개석 공관을 보고 나니 그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서안 시내로 돌아와, 묻고 또 묻고 해서 겨우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장학량기념관'과 '서안사변기념관'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집 구조나 모양이 거의 똑같은 세 채의 집이 있다.


장학량은 그 중 가운데 집에 머물렀다 한다.

제일 안쪽으로는 <서안사변> 이후 중국공산당 간부들 집무실이니, 그렇게 꾸며놓았다.

다른 한 채에는 '대만문제연구소'인가가 전시도 하고 약간의 업무도 보는 것 같다.


동북군벌이며 국민당 장군인 장학량이 <서안사변>의 조직자로 평가되면서

중국에서의 평가는 '위대한 애국자'인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민족주의자이던 그가 본토에서 머물지 못해

대만에서 평생을 살았고, 말년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여생을 마쳤으니 구구한 인생이다.


지금의 요녕성인 '봉천'에서 1901년에 태어난 장학량은 2001년 향년 101세로 여생을 마쳤다.


사후 당시 강택민 주석이 '장학량선생의 역사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중국공산당과 인민을 대표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했으니

1세기를 거뜬히 살다간 그는 13억 인민들의 조의를 받고 행복했을까.


기념관에는 장학량에 대한 자료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선한 인상의 백발 할아버지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을 보니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역사적 쾌거를 발상한 장군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자료사진에 장학량, 양호성, 장개석이 나란히 앉아있다.


<서안사변>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하나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로부터 얻은 정보는 바로

<서안사변>에 참여했던 한 조선인에 대한 내용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휘'라 한다.

1936년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장학량 부대 지도원으로

당시 장개석 부대와의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21살에 불과하던 젊은 조선인은 1937년 1월 연안 운향으로 도피했으며

그곳 팽덕회 부대의 소개로 항일운동의 거두인 연안파 무정 장군과 해후한다.


북한공산당의 중앙위원이 되기도 한 무정은

서휘에게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공산당에서 혁명학습과 경험을 갖추고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을 받는다.


이에 영향을 받은 서휘는 무정을 도와

많은 조선인들이 당시 연안에 있던 홍군에 들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한다.


참고-> http://www.koreancc.com/ 


일제시대 조선의 젊은 청년들이 중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뛰어난 혁명가들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2003년 12월, 출장으로 연변자치주의 연길에 가서 만났던

연변방송국 모 국장께서 하신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의 요지는 이렇다.


많은 선배 애국혁명가들의 자료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사람일지, 북한사람일지, 중국조선족일지 누구라도

항일시대의 인물들을 찾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일이 아닙니까.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최근 장쯔이 주연 <모리화 피다> 중에 등장하는 중국인민배우 김염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듯 하면서도 잘 모르는 항일혁명가들을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에게도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장학량 공관의 집무실 겸 침실이다.

이곳도 깔끔하게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고심 끝에 장개석 체포작전을 결심했던 곳이리라.


체포한 장개석을 모택동과 주은래는 공개처형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공산당에게 영향력을 여전히 미치고 있던 소련의

코민테른 지도부는 그를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코민테른 지도부는 중국공산당보다 장개석의 국민당을 통해

일종의 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하는 2단계 혁명노선을 실현하려 했다.

소련의 소비에트 혁명과 동일한 방식인데,

이 노선에 반대해 스스로 중국의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된

모택동, 주은래 등의 홍군은 왜 그를 석방했을까.


이후 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고 일본군대와 맞서 싸우게 된 계기가 <서안사변>이니

당시의 도처에 깔린 적들과의 험난한 싸움에서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기 때문일까.

이후에도 장개석 군대와는 늘 앙숙이었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홍군은 1945년 북경에 진군하고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냈으니

최후의 승리자인 것은 분명하다.


민족주의자 장학량, 서구적 자본주의자 장개석은 <서안사변>의 주인공이다.

역사는 그들을 운명처럼 서안에서 만나게 했지만

서안보다 지리적으로 북쪽인 연안에 있던 모택동의 홍군에 의해 짜여진 각본은 아니었을까.


<화청지>와 서안 시내에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공관을 보면서

자기 이념에 충실했던 인물들의 삶의 행간을 따라가 봤다.


글|사진^여우위에 newonoff@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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