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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의 자랑, 중국을 깨운 소설  '변성'의 무대

[최종명의 중국 산책] 봉황고성과 다동

 

중국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담수호이자 장강(长江) 물줄기가 형성한 동정호(洞庭湖), 그 남쪽을 후난(湖南)이라 한다. 성을 관통하는 상강(湘江), 그래서 약칭을 이라 한다. 서쪽 지역인 상서(湘西)에는 아름다운 봉황고성(凤凰古城)이 자리 잡고 있다. ‘북방에 평요(平遥)가 있다면 남방에 봉황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천년 세월을 담은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평요고성에 버금가니, 조만간 등재될 듯 하다.

 

강변 야경이 찬란해 모두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잔잔한 타강(沱江)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토가족과 묘족이 많이 거주해 소수민족 문화도 풍부하다. 수많은 중국 고성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만하다. 오색찬란한 깃털을 휘날리며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봉황, 황후를 상징하는 새가 마을 이름이다. 어찌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부근에 직항이 있는 도시가 셋이다. 계림(桂林)에서 395km, (长沙)에서 425km, 중경(重庆)에서 530km. 결코 쉽게 갈 수 있는 낙원은 아니다. 상하이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동인() 공항에 도착하면 불과 1시간 거리다. 중국 여행을 빠르고 편리하게 도와주는 고속철도인 가오테(高铁)를 이용할 수도 있다. 201612월에 상해와 곤명을 잇는 후쿤() 고속철로가 개통됐다. 고성과 비교적 가까운 회화남(怀化南) 역이 있다. 봉황의 가치를 알려지면서 장가계(张家界)나 계림 여행 일정에 포함시키는 여행사가 늘어나고 있다.


                          

봉황에 도착하면 우선, 촉촉하게 젖은 듯 반짝거리는 돌길을 따라 걸어본다. 우기에는 폭우가 12시간 내내 쏟기도 했다지만, 강물은 아주 고요하다. 흐르는 건지 거울처럼 멈춘지 모를 정도다. 봄에 찾으면 홍매화(红梅花)가 향기를 내뿜으며 봉황을 맞이할 자태다. 이층으로 이뤄진 다리인 설교(雪桥)에서 보면 15개의 돈대가 강을 이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100m에 이르는 돈대 위 나무다리를 도암(跳岩)이라 부른다. 1704년 청나라 강희 43년에 처음 세웠고 건국 전까지 강을 건너는 주요 통로였다. 나중에 강 양쪽을 잇는 다리를 많이 건설했다. 다리 이름을 눈() 외에도 구름(), 안개(), 바람(), 무지개()로 지었다. 자연이 만든 낭만적인 조화를 모두 담았으니 봉황이 노니는 세상과 다름 없다.

 

한 발자국 너비의 돌다리도 있다. 깊은 강은 아니지만, 돌이 좁아 약간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여자친구를 업고 건너는 연인은 아랑곳 않는다. ‘사랑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약간 어울린다. 다리를 건너 한가로이 걷다 보면 강에 사는 민물 생선, 게나 우렁이도 만난다. 저녁이 되면 식당마다 삶거나 튀긴다. 입안이 심심하다면 광주리에 담아 파는 우메이()를 찾으면 된다. 까맣게 생긴 과일로 포도보다 더 달콤하다.

 



강 남쪽에 있는 고성은 문화거리이자 서민의 주거공간이다. 동서남북에 성문이 배치돼 있다. 골목마다 객잔과 식당, 카페, 가게가 들어섰다. 관광지로서의 모양새를 갖춘 거리다. 토가족 할머니가 공예품이나 먹거리를 팔러 거리로 나왔다. 파란 색조의 옷감에 꽃문양으로 수를 놓고 터번을 두른 할머니는 반가운 미소로 여행객을 대접한다. 화관을 파는 아주머니도 있다. 서문(西) 앞 문화광장에는 봉황 한 마리가 우뚝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날개짓을 하면 곧바로 거창한 비상을 할 태세다.

 

밤이 오면 봉황은 사라지고 야경이 등장한다. 어둠을 밝히는 데칼코마니, 고성은 밤에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풍광으로 화장을 한다. 강변 가옥과 다리는 일제히 조명을 밝힌다. 대낮보다 많은 소리가 들리는 밤이 왔다. 물을 끌어 올리는 수차()가 돌면 물 떨어지는 소리도 또렷하다. 황홀한 야경은 왁자지껄한 만찬을 차리고 술잔을 빠르게 비우도록 재촉한다. 불빛에도 소리가 나는 듯한 착각, 온갖 소리에 두 귀가 호강이다. 그리고 봉황에는 또 하나의 낭만적인 눈요기가 있다.





 

读你千遍, 不如一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보인다. 천 번을 읽어도 한번 보느니만 못하다고 자랑하는 공연이다. 션충원(沈从文)의 중편소설 「변성(边城)」을 각색한 공연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중국 사람은 대부분 잘 아는 문학가이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다. 루쉰(鲁迅)의 「아Q정전(Q正传)」에 이어 두번째로 그 가치를 인정한 작품이 바로 「변성」이다. 봉황고성 외곽에서 매일 밤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3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해 20154월에 초연했다. 유명 관광지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무대극이다. 전체 줄거리를 6막으로 나누고 자연을 그대로 무대 배경으로 했다. 화려한 전통 의상과 적절한 조명은 관객의 시선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꼭꼭 붙잡는다. 주인공 외에도 많은 출연진이 적재적소에 등장해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주인공인 어린 아가씨 취취(翠翠)가 무대에 오르고 뱃사공인 외할아버지가 강변에 등장한다. 늘 붙어다니는 강아지는 가족 같은 조연이다. 신해혁명 이후 군벌 시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엄마 없이 자란 취취는 마을 청년 나송()을 사랑한다. 그의 형인 천보(天保)도 그녀를 사랑하니 삼각관계다. 애정소설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단오가 되자 사랑의 결투는 노래 대결로 드러난다. 폭풍 같은 강물이 흐르는 전광판 위를 밧줄 타고 하강하는 장면은 운명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 운명은 중국의 각박한 현실을 비유하고 비극으로 치닫는다.

 

노를 젓는 청년들, 납염 옷을 빨래하는 아가씨들, 사랑의 춤을 추는 남녀, 주인공 셋이 함께 줄 타는 장면은 슬픈 삼각관계와 현실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천보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나송은 고향을 떠난다. 홀로 남은 취취는 외할아버지, 강아지와 살아가지만, 고통의 나날이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는 해탈처럼 또는 현실의 극복처럼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테마가 녹아있지만, 변방 마을을 배경으로 당시 중국의 현실과 대안을 그리는 소설이다. 무대 위에 제대로 펼쳐놓고 있다. 75분 동안 이어진 공연이 끝나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하다. 번역돼 있으니 소설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면 훨씬 감동적이다. 그래야만 진지한 서사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사실 「변성(边城)」의 실제 배경은 다동(茶峒)이다. 중경, 호남, 귀주(贵州)의 교차 지점이자 봉황고성에서 서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마을이다. 공연을 보니 다동이 참 궁금했다. 지난해 6월 말 장가계를 다녀오면서 일부러 다동을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 장가계에서 180km 서남쪽이니 가까운 편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미리 숙소를 예약했다. 버스에서 내려 다리 밑을 지나니 잔잔한 강물이 반겨준다. 후난을 흐르는 유수(酉水)의 지류다. 거울보다 선명하게 산과 건물을 반영하고 있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라 아주 조용한 동네다. 잘 살피면 소설 속에 그려진 인문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네다.

 

강 옆에 바로 붙어 있는 여우란쥐(悠然居) 객잔도 고향 집처럼 포근하다. 침실과 화장실, 식당까지 마음에 든다. ‘변성의 무대를 보고 싶어 왔다.’는 말에 주인은 중국어로 된 책까지 선물로 준다. 문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에서 여유자작하니 힐링 그 자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문화여행은 다동과 잘 어울린다. 주인은 좋은 차도 마음껏 마시게 해준다.

 

폭 좁은 강에 있는 작은 섬 취취도가 있다. 소설처럼 먼 산을 바라보는 취취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강아지도 골목에 앉아 있다. 불쑥 나타난 듯, 살아있는 강아지로 착각한다. 강변 길은 100m 정도로 짧고 한산하다. 세 성의 가운데에 있으니 한 번에 세 성의 맛을 먹는(一口吃三省)’ 식당 간판이 있다. 대바구니에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강물에 채소나 고기를 씻고 낚시도 한다. 전통가옥 조각루(吊脚楼)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강 쪽으로 넘어갈 듯, 지지대를 의지하고 있다. 얕은 산도 강물의 반영으로, 찰싹 내려앉아 있다.

 

소설에서 뱃사공인 취취의 외할아버지가 끌던 배를 라라두(拉拉度)라 부른다. 강과 강을 잇는 줄을 끌어당기면 배가 움직인다. 지금도 뱃삯 2위안을 내고 탈 수 있다. 뱃사공이 홈이 파진 나무로 줄을 당기니 천천히 배가 이동한다. 강 건너편에는 장정(长征) 당시 홍군이 지나간 역사를 기념해 어록탑(语录)을 세웠다. 마오쩌둥 주석의 장정 시절 얼굴도 보인다. 강을 건너면 중경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성이다.

 

배에서 내려 잠시 머문다. 하늘로 향해 걸린 유지산(纸伞)을 바라본다. 분홍빛과 하늘빛의 은은한 우산이다.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며 하늘나라에서 취취를 향해 미소를 보내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동으로 돌아가려고, 호남 성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라라두를 탄다. 5분이면 건너는 짧은 시간이다. 봉황고성과 다동에서 만난 후난의 정서, 여유롭게 움직이는 배가 일으키는 작은 파도에 묻어 샘물처럼 솟아난다. 소설과 공연, 봉황과 다동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살아나는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



http://gongja.daejin.ac.kr/contents/cor/eboo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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