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계림산수 따라 카르스트 천년고진 황야오고진을 가다

[최종명의 중국 산책] 황야오고진

 

구이린 이강漓江 유람에 매료된다. 상공산相公山에 오르며 세외도원世外桃源에서 소수민족 문화도 즐긴다. 관암冠岩에서 웅장한 동굴에 감탄한다. 대나무 쪽배인 주파竹筏 유람은 최고의 낭만이다. 양숴阳朔 서가西街에서 풍물도 만끽하고 실경 무대극 인상류싼제印象刘三姐를 관람한다. 그렇게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림여행을 마무리한다. 하루 더 시간을 내라고 권유하고 싶다. 가까운 거리에 카르스트 지형을 고스란히 품은 고진古镇이 있다.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고진 중 하나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순박한 정서가 남아있다. 15년 동안 중국을 다녔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은 많지 않다. 황야오고진이다. 그 속살로 들어가 본다.



 

양숴에서 2시간이면 도착한다. 고속도로 출구를 나와 2km를 더 들어가면 고진이다. 황야오黄姚로 들어가는 문은 많다. 큰길과 가까운 북문으로 들어간다. 100m가량 안으로 들어가면 한복판이다. 민가를 고쳐 예쁘게 장식한 객잔이 많다. 공예품과 토산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 카페도 많다. 반질반질한 석판이 깔린 골목은 첫인상치고 제법 운치가 있다. 얼룩진 건물에 걸린 홍등은 퇴색된 벽화와 어울린다. 팔괘八卦 형태로 조성돼 부드러운 동선을 지닌 마을이다. 십자로는 단 하나도 없고 삼거리인 정자로丁字路만 만들었다. 마을은 반듯하다기보다 부드럽고 오히려 미로처럼 보인다. 표지판을 잘 살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거무스레한 담장을 따라 동네를 구석구석 살펴본다.

 

황야오고진은 송나라 시대 형성됐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광둥 출신 객가인客家人이 들어오면서 상업이 번성했다. 객가인은 중원에서 남방으로 이주한 한족으로 상업의 귀재다. 후난과 광시를 잇는 요충지여서 잇속을 차리기 유리했다. 예로부터 중원과 영남岭南을 잇는 길목이었다. 영남은 대체로 광둥과 광서 일대를 말한다.



 

거리 한가운데 안락사安乐寺가 있다. 명나라 말기 만력제 시대에 재물을 노린 반란이 일어났다. 좡족壮族과 야오족瑶族이 많이 살던 지방이다. 토사土司가 대리 통치하던 시대가 끝나고 관리를 직접 파견하는 개토귀류改土 정책의 여파다. 불만을 품은 소수민족은 한족 상인의 재산을 노린 반란을 일으켰다. 천호장군千户将军 이도청李道을 파견했다. 사태가 진압되자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사원이 크지 않지만, 창을 들고 말을 탄 장군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고진 중심 거리도 안락가安乐街.

 

크지 않은 마을에 가옥이 300채에 이르고 종사도 많다. 여러 성씨가 어울려 살아왔다. 약간의 구분이 필요했다. 모두 7개의 쪽문을 세웠다. 서문 앞 쪽문인 태평문太平门에 곽가대원郭家大院 있다. 원홍문 두 개가 원 안에 있는 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태양문太阳门과 월량문月亮이다. 해가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오는 문이다.




 

태양문 방향으로 조금 지나면 종사가 나타난다. 분양汾阳 곽씨 시조를 비롯해 대를 이어온 조상의 신위가 진열돼 있다. 당나라 시대 안록산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헌한 곽자의郭子仪를 중심에 놓았. 부근에 오씨吴氏 종사도 있다. 지도를 보면 고씨古氏, 임씨林氏, 양씨梁氏, 황씨黄氏, 노씨劳氏 종사도 있다. 규모에 차이는 있어도 종사가 보존돼 있다면 모두 일가를 이룬 집안이다. 많은 사당이 남았다는 말은 여러 성씨가 공존한 흔적을 보여준다.


 

큰 연못이 두 개 있다. 삼각형으로 솟은 진무산武山이 멀리 보인다. 카르스트가 낳은 봉우리다. 두 연못을 가르는 둑방에 서면 봉우리 반영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이 있으면 물이 있고 물이 있으면 다리가 있다. 다리가 있으면 정자가 있고 정자가 있으면 대련이 있다. 대련이 있으면 편액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봉우리와 구름, 파란 하늘까지 연못으로 반영되면 한 폭의 멋진 산수화다. 연못이 있으면 정자도 있고 신선도 자리를 잡는다. 안주 놓고 술병 들고 시는 노래가 된다.


 

황야오는 장수촌으로 알려져 있다. 복록보다 어렵다는 장수寿. 백수寿 잔치를 벌인 노인이 많다. 신비한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보석 같은 땅에서 사니 어쩌면 당연하다. 마을 동쪽에 에스(S) 자로 요강姚江이 흐른다. 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물 덕분에 건강을 유지해왔다. 연못 근처에 선인고정仙人古井이 있다. 다섯 등분으로 칸을 막은 우물이다. 식수로 사용하기도 하며 빨래를 하거나 채소를 씻는 용도에 따라 구분했다. 빨래터에서 아주머니들이 재잘거린다. 항아리를 들고 와서 조용히 식수를 받아 가는 할아버지도 있다.



 

영안문永安门으로 나서면 강변이다. 강 너머 사당이 보인다. 열 발자국 정도로 짧은 호룡교护笼桥를 건넌다. 사당은 흥녕묘兴宁庙라 부르고 진무대제真武大帝를 봉공하고 있다. 사당을 감싸듯 바로 앞에 진무정真武亭을 세웠다. 진무는 도교의 신이다. 명나라 영락제가 황제를 찬탈하고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화화 했다. 무당산에서 수련했다고 알려진다. 무당산武当山 꼭대기 금전金殿에 진무대제가 앉았다. 영락제의 얼굴이라고 알려진다. 천지를 굽어보는 금전보다 황야오의 진무는 훨씬 인간적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빛깔도 퇴색됐지만, 탐관오리를 꾸중하고 서민을 보호하는 형상이다. 가까이 다가가 소박한 자세의 진무대제에게 인사를 한다.



황야오를 지나가는 요강은 좁고 아담한 도랑이다. 그래도 배를 타고 유람하기도 한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산보한다. 고진을 화폭에 담는 사람도 만난다. 물감이 캔버스에서 번지면 서서히 고진이 채색된다. 어디에서 무얼 그릴지 생각하고 자연의 색깔을 담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예술이다. 카메라도 자연을 담아내지만 붓만큼 인간미는 없다.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운 세상이다. 마을을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동문루东门楼에 멈춘다. 성곽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방비를 위한 누각이다.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봉긋한 돌다리가 나온다. 2016519일 기념 우표 여섯 장을 발행됐다. ‘중국 고진시리즈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돌다리를 배경으로 삼았다. 봉긋한 아치형의 대룡교带龙桥. 다리 밑 강물 속에 우표 안내판이 있다. 소를 끌고 가는 어린이가 다리를 건너가려는 장면과 주변 건축물을 담았다. 멀리 카르스트 봉우리인 진무산도 보인다. 대룡교 옆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이름도 없다. 심지어 강물도 흐르지 않는다. 이런 다리를 한공교旱拱桥라 부른다. 홍수가 나면 범람을 방지하고 물길을 나눈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위험을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꼭 필요한 다리인데 우표에 없다. 생각해보니 사진에도 담지 못했다.


 

다리 위에서 북문 쪽을 바라보면 나무 한 그루가 마을 수호신처럼 자란다. 850년 수령인 용조용爪榕이다. 용의 발톱처럼 생겼다는 용수나무다. 200년 전에 이미 시든 줄기에 기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여전히 싱싱한 줄기는 푸릇푸릇하다. 생과 사를 다 포용하고 공생하는 나무다. 나무 옆에 마을로 들어가는 쪽문이 하나 있다. 역공지고亦孔之固라 부른다. 강도를 방어하는 문으로 사용했다. 한사람이 지켜도 만 명을 막아낸다는 문이다. 문 위에는 감시용 창문도 있다. ‘구멍 하나로도 단단하다는 뜻을 지닌 문이다. 역은 구멍뿐이라도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이자 일과 발음도 같다. 마을을 지키려는 지혜가 담긴 작명이다. 이름만 들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을까?




 

다시 영안문을 거쳐 안락가로 들어간다. 노란색 벽면에 마오쩌둥 주석이 보인다. 고진에 남아있는 문화혁명의 흔적을 보면 반갑다. 당시 그대로인지 그때 그 자리를 다시 그렸는지 모른다. 옆에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바구니가 열리자 박쥐 세 마리가 날아오르는 벽화다. 박쥐를 편복蝙蝠이라 하고 복은 곧 재물을 상징한다. 상인이 살던 마을마다 박쥐 문양이 많다. 평생토록 화목하게 살자는 백년호합百年好合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아야 행복하게 장수한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이리라.


농가반农家饭이나 토채관土菜馆 간판이 많다토속적인 음식이 많고 맛도 좋다황야오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품特产品은 더우츠우리말로 번역하면 메주라고 해도 된다만드는 방법이 똑같다양지바른 거리에서 더우츠를 말리고 있다공깃돌만한 크기다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흑두黑豆를 사용한다거리마다 더우츠로 만든 고추장인 라쟈오장辣椒을 판다.



 

광시 사람들은 매일 쌀국수인 미펀米粉을 즐겨 먹는다. 황야오 미펀을 한 그릇 가볍게 먹는다. 다른 지방보다 국물이 담백하고 면발도 쫄깃하다. 고진에 담긴 풍광과 역사문화가 녹아들었다는 기분 때문일지 모른다. 서서히 날이 저물면 유방有房 팻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밤이 깊어가면 조명이 비추는 거리로 탈바꿈한다. 조명 덕분에 낮에는 드러나지 않던 건물 곳곳이 드러난다. 갑자기 비가 내려 석판이 깔린 거리는 더욱더 황홀하다. 고진이 선사한 추억이 꿈속까지 따라오는 밤이다. 짜릿하고 행복하다.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 및 강사

崔钟名 中国文化作家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