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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우루무치에서 누드 동물 먹어 말어?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5.15 18:30

[중국발품취재49] 다바자와 난산 목장

7월 2일 간쑤(甘肃) 성 둔황(敦煌)에서 신장(新疆) 우루무치(乌鲁木齐)까지 가는 버스. 저녁 6시에 출발해 15시간을 달리는 침대버스이다. 장장 천 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남북으로 뻗은 21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몇 시간 가다가 다시 동서로 뻗은 312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탄 침대버스였는데 나름대로 참 편하게 갔다. 저녁 9시가 가까워지니 서서히 어둠이 내린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 온 사방은 지평선만 보인다. 스르르 눈을 붙였다.

깐수성과 씬장 자치주 경계인 씽씽샤(星星峡) 부근 도로에서 잠시 버스가 정차했다. 근데 모두들 내려 노상 방뇨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휴게소 대신 고개 마루를 화장실로 택한 것이다. 밤 버스에 익숙하지 않아서 침대 밑에 뒀던 신발을 미처 신지 않고 내려왔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그냥 맨발로 볼일 볼 장소로 갔는데 아스팔트 도로도 울퉁불퉁했지만 길 옆 맨바닥에 까칠한 돌들이 있어서 발바닥 다 까졌다. 이 버스에는 화장실도 없는데 여자들은 어떻게 해결하지.

서서히 노을이 지려는 듯 하늘 빛깔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다. 계속 서쪽 하늘을 향해 달리니 노을이 달려오는 게 성난 황소 같다. 창문을 여니 너무 바람이 세다. 운전사 옆으로 가서 타는 듯한 노을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반은 파란색 또 반은 주홍빛의 노을 색이다.

계속 졸린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깼지만. 그리고 자고 나니 또 정차. 이번에는 주유소다. 내려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해가 뜨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 버스에는 한 열명 정도의 민공(民工)들이 타고 있었다. 민공은 농민공의 준말로 농촌에서 도시로 간 사람들로 사회 밑 계층에 있으면서 이렇듯 팀을 짜서 공사현장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발 냄새가 많이 났다. 역시 침대버스의 최대단점은 발 냄새.

그렇게 15시간을 밤새 달려 아침 9시에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우루무치에 도착해 숙소를 구하고 나서 쉬었다. 과일이 맛있고 저렴하기가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싱싱한 과일 천국 우루무치. 과일 잔뜩 사서 호텔에 있는 바구니에 담으니 그야말로 과일 한 바구니다. 오후에는 싱싱하고 달콤한 망고, 망궈(芒果)를 샀다. 1근 500그램에 7위엔, 우리나라 돈 1000원에 4~5개다.

  
▲ 망고와 리즈 우루무치는 싸고 당도가 풍부한 과일의 천국으로 유명하다
ⓒ 최종명
우루무치

정말 싸니 미치도록 망고만 먹었다. 망고는 처음에는 연두색이다가 점점 누렇게 변하는데, 보통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맛도 좋다. 처음부터 약간 자주색 빛깔이 도는 홍망궈(红芒果)가 있다고도 하지만, 오래 두면 서서히 한쪽 면부터 불그레해 지다가 빨갛게 익게 되는데 그야말로 레드망고다.

반 정도 붉어진 뒤 먹으면 그 새큼한 맛이 더욱 진하고 수박보다도 훨씬 더 달다. 호텔에서 내려다 보이는 과일가게 때문에 내내 밥 대신 과일로 해결했다.

다음날 7월 4일, 둔황에서 만난 학생을 마중하러 기차 역에 갔다. 혼자 배낭 메고 밤새 기차를 타고 온 친구를 내 숙소에서 재워주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더니 과일 앞에서 정말 눈빛이 확 달라진다. 정말 과일만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자치구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미라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입구에 위구르족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앉아있다. 역시 서구적인 눈매와 몸매가 위구르족 답다.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석기(石器), 청동기(铜器), 철기(铁器) 등 당시 이 지역의 문화재들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미라.

중국어로 미라는 페르시아(뽀쓰 波斯) 말로 'mumiai'에서 온 무나이이(木乃伊)라 발음한다. 아쉽게 미라는 찍지 못했지만, 한 아주머니가 차근차근 너무도 상세히 설명해줘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모두 21구의 구스(古尸), 오래된 시체가 있다. 4천년 전 신비의 나라이던 러우란(楼兰) 시대 미녀도 있고, 체형이 남자처럼 키가 큰 3200년 전 하미(哈密)의 여인도 있으며 투판(吐蕃)의 영토이던 쑤베이씨(苏贝希)에서 발견된 장군도 전시돼 있다.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연구가치가 높다고 한다.

  
우루무치 신장박물관에서 만난 위구르 아주머니들
ⓒ 최종명
우루무치

대체로 서역으로부터 온 사람들의 체형이라고 소개하는데, 따지고 보면 어디에서 왔느냐가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신장 지역에서 살았던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통역을 듣고 즐거워하는 동행을 보니 나 역시 뿌듯했다.

  
우루무치 신장박물관에서 본 위구르족 민속관
ⓒ 최종명
우루무치

역시 언어를 모르고는 그 지역의 문화를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재미있게 설명을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공예품 파는 가게로 데리고 간다. 싸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데 가만 보니 1만위엔(약125만원) 이상 하는 고가품들이 대부분이다. 여행객들에게 이런 것을 사라는 것이 무리다.

우리는 거리를 걷다가 시내 얼따오챠오(二道桥) 부근에 있는 야시장을 찾아갔다. 궈지따바자(国际大巴扎) 부근이다. 바자(巴扎)는 페르시아 말, 즉 이란어로 사람들이 운집한 곳이라는 뜻이다. 곳 시장이라 해도 무방하다. 위구르(维吾尔)라는 말 역시 ‘단결(团结)’을 의미한다.

위구르 족은 서기 3세기 경에 바이칼(贝加尔) 호수 이남부터 이르티슈(额尔齐斯) 강과 발카쉬(巴尔喀什) 호수 일대에 살던 이슬람 계 유목민들이 주류다.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자기만의 언어와 풍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며 티베트의 장족(藏族)과 함께 가장 독립 지향적인 민족이다. 더구나, 신장 일대는 엄청난 매장량의 석유 등 자연자원이 풍부해 중국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영토이기도 하다.

따바자에는 정말 리얼하게 갖가지 동물들이 모두 옷을 다 벗고 있다. 포장마차들마다 양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등. 그야말로 적나라한 모양으로 있어 다소 질리기도 하다. 도대체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포장마차 가게마다 중국어와 위구르어가 동시에 써 있는 것은 역시 소수민족 자치구에서 늘 보는 일이다.

  
따바자 포장마차에 통채로 걸려있는 양고기
ⓒ 최종명
우루무치

손님들의 주문에 따라 손도끼와 칼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한 열 살 정도 된 아이가 능숙하게 양고기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내장을 꺼내기도 한다.

백주 한 병과 양고기 요리를 시켰다. 한 근에 20위엔. 저울에 무게를 재더니 빠르게 썰어준다. 막 잡은 고기를 먹으면 그 맛에 흥분하지 않던가. 우리는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노상에서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람들은 양고기를 넣은 볶음밥인 좌판(抓饭)을 먹고 있기도 하다. 먹고 싶기는 한데 술과 함께 먹기는 벅차 보였다.

좌판을 먹는 아주머니와 같이 앉은 중년의 회사 사장은 이미 술을 엄청 마셔서 취했다. 직원을 데리고 와서는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다. 자꾸 귀찮게 구니 우리에게 말을 걸며 피하는 아주머니랑 우리가 몇 마디 주고 받으니 곧 사장이 술을 따라주며 마시라고 한다. 이거 참 난감한 일이다.

술 한잔 받고 한잔 따라주고 일어났다. 따바자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슬람(伊斯兰)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옛 실크로드의 번영을 되찾아보려는 듯 아주 현대적인 감각으로 거리와 건물, 그리고 조명으로 화려하다. 이슬람 분위기가 풍기는 곳에서 쇼핑 나온 위구르 가족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주면서 자세히 보니 정말 잘 생겼다. 큼직한 눈망울과 부리부리한 눈썹. 정말 위구르족의 눈은 매력적이다.

  
우루무치 따바자 부근 광장의 이슬람풍 건물
ⓒ 최종명
우루무치

우루무치에서 우울해 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다음부터이다. 중국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가 보다. 가방에서 캠코더를 꺼내는데 뭔가에 살짝 걸려 있었는데 그걸 빼다가 그만 손을 놓치고 만 것이다. 캠코더가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또르르 굴러가는 게 아닌가. 그런데, 캠코더의 테이프를 넣고 빼는 부위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원래 계획은 동행을 데리고 우루무치 시내의 번화가를 찾아가 젊은이들이 노는 문화를 즐겨보려 했었는데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동행이 잠든 사이 캠코더 대리점을 찾아갔다. 고칠 수 있겠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대리점 기술자가 '메이원티(没问题)'(문제 없다)라고 해서 2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에 노트북을 고치러 온 20대 후반의 직장인과 친해졌다. 그 친구 말도 당연히 고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준다. 인상도 좋고 똑똑한 친구라 서로 친해지자고 했다.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고 저녁에 서로 시간이 되면 식사하자고도 했다.

  
둔황에서 만나 우루무치에서 함께 여행한 한국 대학생
ⓒ 최종명
우루무치

대리점 기술자는 아무래도 여기서는 못 고치고 베이징이나 광저우에 가라고 한다. 이런 베이징이 어디 서울에서 인천 가는 거리인가. 2시간이나 기다렸다고 울상을 했더니만 한 10번은 미안하다고 한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돌발상황, 우울 무지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루무치와 '우울무지'가 발음도 비슷한데. 스스로를 탓해봐야 무엇 하랴.

호텔로 돌아오니 동행이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고추장과 깻잎도 남겨두고. 카스(喀什)를 거쳐 퍼밋(permit) 없이 티베트 라싸로 들어가겠다는 야심 찬 노정인데 챙겨주지도 못했다. 나중에 라싸 길거리에서 언뜻 봤는데 서로 아는 척 못했다. 아니 그 친구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혼자 남고 보니 더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캠코더 고장 전에 예약한 씨안(西安) 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베이징(北京)으로 가야 할 사태가 발생했다.

여행사에 가니 취소하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내일 베이징 행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다. 편도인데도 2천위엔(25만원)이 넘고 할인도 없다. 고민하다가 일단 씨안으로 그냥 가기로 했다.

우루무치에 도착해 서북 끝이기도 한 싸이리무(塞里木) 호수를 포기한 것과 캠코더 고장. 이렇게 '우울무지'로 있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난산(南山) 목장을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호텔 직원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 모른다. 길거리에 서 있는 택시운전사에게 난산 목장 가는 버스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없다고 하겠지.

  
▲ 난산 목장 우루무치 남쪽에 청나라 시대부터 유명한 목장촌에서
ⓒ 최종명
우루무치

택시를 하나 잡아서 100위엔에 협상을 했다. 좀 싸다 싶었는데 출발하자마자 자기 부인과 딸을 데리고 가도 되냐는 것이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30분 정도 다른 방향으로 가더니 합승을 시켜서 되돌아왔다. 좀 빨리 가자고 했더니 미안했는지 엄청난 속도로 달려 1시간 만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친절하게도 산 능선 부근 목장 정문 앞까지 내려다 준다. 택시기사는 말 타는데 1시간에 25위엔이면 가능하니 무조건 깎으라고 하고는 돌아갔다.

우울한 마음을 확 벗을 만큼 난산 목장은 정말 푸르렀다. 청나라 시대 이래 목장으로 유명한 이곳의 파란 하늘, 푸른 초원, 몽골빠오(蒙古包),날씬한 말들을 보노라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진다. 빠오에서 묵으면서 승마도 배우고 근심 다 털고 쉬고 싶다. 서양 여행객들이 텐트까지 들고 와서 푹 쉬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그래 여행은 이렇게 여유가 있어야 되는 것인데. 취재여행이랍시고 너무 일정이 빡빡한 거야.

  
난산 목장의 두마리 말이 서로 의지한 채 잠을 자고 있다
ⓒ 최종명
난산목장

이곳에는 목장이 여러 군데가 있다. 철조망을 넘어 다른 목장으로 이동했다. 흰 말과 갈색 말 한 쌍이 서로 목을 껴안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저 말도 서로 위로해줄 상대가 있건만 홀로 다니는 여행객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누가 다스려주나. 갈수록 보이는 것이 모두 우울 모드이니 큰일이다.

  
난산 목장에서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버는 꼬마아이가 백마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
ⓒ 최종명
난산목장
목장을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는데, 7살이나 됐을까 싶은 한 꼬마 여자아이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오더니 "슈슈, 페이니치마하오마(叔叔,陪你骑马好吗)"(아저씨 말 태워 드릴게요)라고 한다. 멋진 백마를 타고 온 귀여운 아이다. "아니 나 돌아가야 해"하니 아쉬워한다.

부근에 카자흐(哈萨克) 족들이 많이 산다고 하는데 목장 내에 집들이 많다. 임시 가건물처럼 보이는 곳에 남자아이 둘이 있어서 다가갔다. 코흘리개 동생이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혀를 내밀며 재롱도 떤다. 1위엔을 주니 받고 해맑게 웃기도 한다.

내일 일정만 아니라면 이곳에서 며칠 쉬었다 가고 싶다.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집안에서 엄마가 나오더니 뭐라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겠다. 한 10여분 더 놀았으니 "낯선 사람이랑 놀지마" 이런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목장을 나와 터덜터덜 걸어내려 왔다. 난산 목장은 골짜기 이름에 따라 몇 군데에 걸쳐 있다. 제일 유명한 곳은 바이양거우(白杨沟)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는 관광객들이 많은 편이라 한다. 택시 운전수가 도대체 어디에 내려준 것인지 몰랐는데 내려오다가 보니 반팡거우(板房沟)라는 팻말이 보였다.

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이 꽤 멀다. 마침 버스가 지나길래 잡으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친다. 투덜대고 있는데 자가용이 멈춰 선다. 마을까지 태워준 고마운 분이다.

  
마작 패와 1위엔 중국돈을 들고 있는 카자흐 족 꼬마
ⓒ 최종명
우루무치

마을에 도착하니 시내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려고 한다. 타려고 하니까 우루무치 시내로 가려면 15분 정도 기다리라고 한다. 어느 다른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온다는 것이다.

길거리 포장마차가 있다. 양고기 꼬치를 10개 시켜 먹고 있는데 15분이 채 안 돼 버스가 왔다. 돈 계산을 하는 동안 기다려준다. 안 그랬다면 1시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시내로 돌아와 다시 호텔에서 점점 붉게 익어가는 망고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었다.

복숭아, 리즈, 수박, 멜론, 방울토마토, 자두. 가장 유명하다는 포도가 제 철이 아니어서 약간 아쉽긴 했지만, 이 달콤한 녀석들이 없었다면 더 우울했을 우루무치.

여전히 떠오르는 캠코더 생각에 다시 소심해지긴 했지만 따바자의 고기 맛과 난산 목장의 여유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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