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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서편 중산공원은 문입구가 3개라 했다. 볼거리가 의외로 많아서 여러번 나누어 글을 쓰고 있다.

저멀리 뒤에 보이는 입구는 남문이다. 남문을 들어서면 바로 '빠오웨이허핑팡'(保卫和平坊)와 마주친다. '팡'(坊)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 모양의 '파이'(牌)를 말한다. 그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바로 청나라 말기 민중들의 자발적 봉기인 의화단(义和团) 진압을 위해 북경까지 들어온 서구열강 중 하나인 독일의 주중공사인 '케틀러'(Klemens von Ketteler)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1900년 '케틀러'는 의화단에 의해 암살 당했고 1901년 굴욕적인 신축조약, 일명 베이징의정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커린더파이'(克林德牌)였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독일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하자 '궈츠'(国耻)라 여겨 1919년에 중산공원으로 옮겨 '꽁리짠셩'(公理战胜)이라 부르다가, 1953년 아시아태평양대표자회의(亚洲太平洋地区和平友好会议) 때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保卫和平' 4글자는 항일운동가이며 문학가인 '궈므어뤄'(若)가 썼다 하는데, 깜빡 사진을 못찍었다.

'마오쩌똥' 정부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신축조약 때의 배상금이 엄청난 금액이었다 하니, 민중들의 피눈물 어린 봉기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서구열강과의 치열했던 근대화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그저 여유롭다.    

남문을 들어서면 '위대한 혁명 선구자' 손문의 동상이 서있다. 우리는 보통 선구자라 하는데, 중국은 '시엔취저'(先驱者)라고도 하지만 '시엔싱저'(先行者)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이다. 중산공원 내에도 그의 흔적이 있는 박물관이 있고, 이번에 다녀온 남경 중산릉도 있고 하니 앞으로 자주 만날 듯 하다.

동상 앞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아빠는 멋진 폼으로 사진을 찍고 있건만 아들은 왜 나를 쳐다보나. 오성기를 들고 관광을 다니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도 태극기를 들고 여행을 다니던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들 우혁이(초등6)에게 태극기를 들고 경복궁에 가자고 하면 과연 뭐라 할까.

이 녀석 계속 나를 쳐다보더니, 내가 '워스한궈렌'(我是韩国人)이라고 하고 사진을 찍자하니 좋아한다. 좀 긴장했는지 국기를 입에 물고 그저 째려 본다. 뒤에 엄마친구 딸, 누나도 같이 화면에 쏙 들어왔다.

중산공원에는 '라이진위쉔'(来今雨轩)이라 부르는 정겨운 찻집이 있다. 1915년에 만들어졌다 하니 옛스러워 보인다. 찻집 이름이 더 정답다. 두보의 시 '추술'(秋述)에서 따왔다 한다.

'비가 오면 물고기는 즐거우나(多雨生鱼) 이끼는 떨어지고(青苔及塌), 오랜 친구는 오건만(旧雨来) 새 친구는 오지 않는다(今雨不来)'며 말년 와병 중에 쓴 시.  이 은유 넘치는 낭만적인 시어에서 나온 '来今雨'은 바로 '언제든 옛친구나 새친구 모두 오라'는 뜻이라 한다. '轩'은 집인데, 찻집들이 많이 쓴다.

이 유명한 찻집 앞마당에 외국인들이 쉬고 있다. 동양의 한적한 공원, 그윽한 차향 어우러진 분위기를 만끽하는 서양인들도 여유의 고마움을 아는 듯하다.

늘어지는 나무줄기를 위해서 만들었을까, 그렇게 하면 작은 쉼터가 되리라 생각했을까. 온통 나무숲으로 둘러쌓인 곳에 하얀 색감도 나쁘지 않다. 작은 의자에 앉아 쉬노라면 마음이 커질까.

공원이 꽤 넓어 24만 평방미터이니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많이 띤다. 원형의 문은 늘 포근하고 햇살과 그늘을 다 품어낸다. 차량이 드나들지만 않는다면 고즈넉해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더욱 편하게 해주련만. 느릿느릿 걷는 이들의 여유와 반대로 햇살까지 등지고 오는 차 한대로 인해 아쉽다.

여기 아쉽지 않은 그림이 있다. 연한 주홍 윗옷과 헐렁한 회색 바지, 하얀 모자를 쓰고 둥근 원 아래에서 터덜, 터덕 걷는 발길을 보노라면 투명한 바닥에까지 슬쩍 드러내놓은 여유가 한결 미학이다. 긴 구심은 뿌엿지만 깊으니 주변 나무들도 생생하게 살아나온다. 중산공원에는 다른 공원과 달리 이런 기품이 있었구나.

중산공원 3개 문 중 하나인 '취에여우먼'(阙右门)이다. '취에'(阙)란 궁궐 문 양측에 있는 망루라 하니 바로 자금성 입구인 '우먼'(午门)과 연결된다. 천안문 동편의 '노동인민문화궁' 서북문과 대칭 지점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방향으로 따지면 동북문 정도 될 듯하다.

이곳은 '위위엔'(愉园)이다. 벽에 구멍을 파고 어항을 만들어 전시해놓은 곳이다. 물고기를 '위'(鱼)라 하니 '물고기 정원'보다는 같은 음의 '위'(愉)를 써서 즐겁다는 뜻의 '메리랜드'(Merry land가 된 듯 싶다. 물고기가 많지는 않지만 그늘 속에서 하나씩 보는 것도 눈요기로 좋다.

3마리 물고기가 서로 시선 방향이 다 다르다. 그냥 물고기구나 하면 볼 게 없지만 쓸데 없이 물고기의 눈을 쳐다보면 심심하지 않고 좋다.

벽화처럼 가두더니 또, 마당에는 큰 어항을 만들어 두고 쇠그물로 가뒀다. 헤엄치는 모습이나 보려고 가까이 갔더니만 햇살이 나도 가두려하는 듯하다.

민망하기 그지 없는 연인들의 모습도 여유로 보니 또 볼만하다. 좀 멀었더니 서너가지 색감 마저도 흔들렸다. 얼마전 차이나TV 사장과 PD가 북경에 왔는데, 카메라렌즈만 100만원이 넘는 스틸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정말 부러웠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앗! 아니다. 3년전에 공항면세점에 산 디지털카메라(삼성케녹스3.2메가픽셀)로도 충분. 그저 내 블로그 글 꾸미는데 지장 없고, 몇장 사진에도 공감해주는 몇사람이면 족한 것을. 그리고, 이런 야릇한 장면은 흔들리면서 봐야 더 인상에 남을 것이니 말이다.

소수민족복장을 하고 엄마따라 온 귀여운 아이. '야 너 정말 이쁘구나. 사진 찍을까?' 했더니 창피한 지 막 도망치더라. 엄마가 '괜찮아'라니 다시 되돌아와서는 아주 깜찍하게 동작까지 좌우로 흔들며 재롱이다. 엄마의 아량으로부터 나온 아이의 천진한 모습도 어쩌면 중산공원이 만드는 여유로움이 아닐런지.

그러자 그 옆 친구는 더 재밌다.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자기도 찍어달라는 메시지임에는 틀림없다. 귀여운 아이들.

이때 떠오른 것인데, 나중에 한국에 갔다가 다시 중국에 올때는 인사동에 들러 아주 한국적이며 싼 물건을 엄청(? 여유가 허락하는 만큼) 사 올 생각이다. 이럴 때 중국 아이들에게 '너 정말 이쁘구나, 여기 사진 봐, 멋지지? 그리고 이건 아저씨가 고마워서 주는 선물!' 해야지 마음 먹었다. 올 2월 북경 올 때 인사동에서 한개에 천원하는 책갈피를 사와서 중국친구들에게 주니 아주 아주 좋아하더라. 한국의 마음을 그저 가볍게 씀씀이 하는 게 오히려 가볍지 않게 마음을 전하는 건 아닐까.

음지는 완전히 검으나 햇살에 비친 양지는 너무 희다. 그 경계에 아이를 안고 섰거나, 쪼그려 앉았거나 걷거나 모두 마음이 급할 게 없어보인다.

문 밖 사람들 모두 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 정말 휴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원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여유롭다.

작은 정자에 남녀가 앉아 있다. 이들도 다정한 밀어를 속삭이거나 노골적인 표현을 하던 중이었을까. 마침 남자가 전화통화 중이어서 정자 안까지 올라가 봤다. 별 천연색 치장 없이 다소곳한 색감이라 마음이 편해지는 정자다. 이곳에 앉아 꽃과 나무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겨도 좋을 듯하다. 아니 저 연인들에게는 서로가 꽃이고 나무일까.

서문 입구에 있는 괴석이다. 어디서 가져다 놓은 것인지 모르나 돌답지 않게 울퉁불퉁한 것이 조금 흉칙하기도 하다. 돌답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지도 모르겠다.

서문으로 들어왔다가 서문으로 나갔다. 저 복무원은 늘 저렇게 서있는 듯하다. 중산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사하려는 듯 조용히 서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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