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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증 없이 티베트의 발원지를 가다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5.19 12:38

[중국발품취재 55] 알롱창포 강을 건너 티베트 발원지 쌈예사원

2007년 7월 20일 새벽 6시, 우리 일행은 쌈예(桑耶) 사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래 7명이었는데, 한 친구가 버스시간을 1시간 잘못 알고 있었다. 나중에 혼자서 찾아와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쌈예의 7인'이 됐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도 다들 잠을 잘도 잔다. 어둠 속에 언뜻 비치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캐롤'이 나와서, 안 그래도 애써 잠을 기다리던 분위기를 가셔버린다. 어둠이 걷히자마자 내린 곳은 알롱창포(雅鲁藏布) 강을 건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 여행객과 현지인을 가득 실은 배는 아침 공기를 가르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알롱창포 강 위에서 1시간가량 항해를 했다.

  
▲ 알롱창포 강의 배 1시간 가량 배를 타고 알롱창포 강을 건너 쌈예로 가는 길
ⓒ 최종명
쌈예

알롱창포 강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은빛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한다. 히말라야(喜玛拉雅) 산 해발 5300미터 중턱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흐른다. '세계의 용마루(屋脊)'라는 칭장고원(青藏高原) 남부를 가로지르는 이 강은 티베트 장족(藏族) 사람들의 요람으로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늘의 강이라는 '톈허(天河)'라 부르며 장족들의 원천이라 한다.

강에서 내려 다시 이동해야 한다. 트럭 운전사는 아무리 값을 깎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잠시 기다리던 버스도 떠나버렸으니 도저히 방법이 없다. 버스 요금과 같은 가격으로 앉아 갈 수 있으니 당연히 배짱일 터. 트럭 앞자리에는 운전사의 3살 난 아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가는 동안 바나나를 주니 참 맛있게 먹는다. 입 주위에 바나나 먹은 티를 내며 뒤를 돌아보며 우리와 이야길 주고받는다. 동그랗고 선하게 생긴 눈망울로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40분가량 달려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일컫는 쌈예 마을에 도착했다.

  
쌈예로 가는 트럭 운전사의 아들
ⓒ 최종명
쌈예

라싸처럼 번잡하지 않고 한적한 쌈예 진(桑耶镇)에 도착한 것이다. 사원 앞에 있는 자그마한 숙소를 잡았다. 1인당 15위엔. 한 방에 침대가 딱 여섯 개였는데 그야말로 우리를 위해 준비됐구나 싶을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누군가 이곳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서둘러 사원 입구 숙소를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마을 곳곳에 숙소는 꽤 많았다.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피곤해서 자유시간에 잠을 잤다. 1시간 정도 자고 난 후 사원 구경을 갔다. 쌈예 사원 입장료는 40위엔. 카메라로 사진 찍으려면 150위엔, 캠코더 촬영은 무려 1500위엔이나 했다. 무려 20만원이니 아예 촬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기원전 인도 왕자가 티베트로 와서 부족국가를 통일한 후 33대 쏭첸깐뽀(松赞干布)의 부흥기가 있었고 37대에 이르러 티쏭데우첸(赤松德赞, 742~797)은 서기 762년부터 건립을 시작해 779년에 씨장 제일의 사원(西藏第一座寺庙)이라는 쌈예 사원을 완공했다. 그는 문수(文殊)의 현신이라 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어진 왕이기도 했고 인도와 당나라 등과도 교류하는 등 불교를 부흥시키고 통합하는 데 노력했다고 전한다.

  
▲ 쌈예 사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어울리는 사원의 모습
ⓒ 최종명
쌈예

수많은 학자와 승려를 양성하기도 했는데 7명의 귀족 출신을 출가시켜 유명한 승려로 키웠는데 이를 이름하여 '쌈예 7인의 선각자(桑耶七觉士)'라 부른다. '쌈예의 7인'인 우리는 이곳에서 티베트 불교의 선구자 7인의 흔적과 만난 것이니 재미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사원을 들어가지 않고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사원을 사방으로 둘러싼 4개의 탑들을 둘러보는 것으로도 꽤 즐겁다. 붉은색, 흰색, 녹색, 검은색으로 이뤄진 탑들은 대체로 구성이 비슷한데 각각 법륜(法轮), 길상(吉祥), 여래(如来), 열반(涅磐)을 상징한다. 탑 중간 부분에 매서운 두 눈동자가 노려보고 있어 흥미롭다. 마치 세상만사를 다 꿰뚫고 있다는 듯 사방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죄짓고 살지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뾰쭉하게 솟은 모양도 독특하지만 탑 속에는 '달라이 라마(达赖 喇嘛)'의 초상화를 두고 예를 올리기도 한다. 티베트 어디를 가도 공개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는 않고 대신에 사원 안이나 이렇게 탑 안에 모셔져 있는 정도이니 적절한 타협이라 느껴진다. 연꽃 문양의 조명 등이 유리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불상들을 은근하게 비추고 있다.

  
▲ 쌈예 사원의 탑 내부 달라이라마 사진과 인민폐 1각, 그리고 연꽃 모양의 향불
ⓒ 최종명
쌈예

'달라이 라마' 초상화 주변에는 중국 인민폐가 많다. 중국 돈은 1위엔 아래 10분의 1의 가치인 쟈오(角)라는 단위가 있는데 1980년대에 발행된 1쟈오(壹角) 종이돈이 유리와 바닥에 군데군데 많이 보인다. 종이돈마다 소수민족의 얼굴 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2쟈오에는 조선족 얼굴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1쟈오에 장족 얼굴이 있겠구나 하고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5위엔에 장족 얼굴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5위엔이란 돈이 꽤 큰돈이니 순례자들은 겨우 1쟈오 정도로 성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탑 내에는 연료로 사용하는 야크 똥이 한 무더기 쌓여 있기도 하고 독특한 문양의 기와도 놓여 있다. 장족 라마불교 신도들이 마냥 돌리는 마니통(转经桶)이 사방을 둘러 걸려 있다.

사원 주변은 한적하지만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티베트 불교의 발원지라 부를 만큼 성지이기 때문이다. 쌈예 사원을 거쳐 4개의 탑을 차례로 순례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갔다. 느릿느릿 마니통을 돌리면서 순례의 발길은 참 조용하다. 라싸 시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는데, 이곳에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 거의 없다. 탑 주위에 있는 양, 소, 야크 등도 겨우 돋은 푸른 풀을 뜯어 먹으려고 움직이지만 여느 다른 곳에 비하면 아주 느릿하다. 사람이 다가가도 거의 본체만체한다.

  
▲ 홍탑과 소 쌈예 사원 주변에 4개의 4색 탑이 솟아 있고 그 주변을 소나 양, 야크들이 거닐고 있다
ⓒ 최종명
쌈예

사원 곳곳을 둘러보고 오니 함께 오지 못했던 수신이가 찾아왔다. 정말 기적처럼 그 먼 길을 혼자서 꿋꿋이 찾아온 것이다. 1시간을 착각한 후 다음 버스를 타고 왔는데 우리처럼 알롱창포 강을 건너지 않고 왔다.

사실은 이곳은 라싸에서 허가서를 받아야 오는 곳이다. 즉, 버스에서 검문이 있는데 그걸 피하려고 강을 건너온 것이었다. 수신이는 현지인인 양 연기를 한 후에 무사히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나무젓가락을 비녀로 머리를 묶고 나타난 모습을 보니 너무 반갑다.

저녁 무렵 티베트 석청을 따러 온 여장부 리아씨가 중국 남자와 숙소 앞에 서서 나를 급히 부른다. 리아씨는 중국어가 서투니 대신 대화를 해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일행 모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것이다. 이곳 정부의 건설공사를 총괄하는 따(达) 선생은 갑자기 정부 건물로 들어선 리아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주변 지역의 관광을 시켜준 것이다. 당찬 리아씨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소위 물주를 데리고 온 셈이었다.

  
쌈예 사원 입구 바로 앞 숙소
ⓒ 최종명
쌈예

그래서 우리 모두 따 선생이 초대한 저녁을 먹었다. 술도 마시고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따 선생은 다시 노래방에서 놀자고 했다. 노총각 따 선생은 아주 점잖으면서도 농담을 아주 잘하는 사람인데다가 스스로 류더화(刘德华)를 닮았다고 할 정도로 잘 생겼다.

게다가, 나랑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하더니 나를 자신의 친구인 씨장대학(西藏大学)의 교수와 내가 닮았다고 한 열 번을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가 리아씨가 마음에 쏙 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농담으로 잘 해보라고 했건만 리아씨는 "아냐 이건 아녀"라며 우리의 정겨운 혼담(?)을 한사코 거부했다. 장족 현지인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을 들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따 선생이 다시 왔다.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라싸로 돌아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파리들이 잔뜩 붙는 식당으로 갔다. 그렇지만 음식 맛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장족들이 주식처럼 먹는 음식을 준비해 준 것은 정말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족들이 즐겨 마시는 나이차(奶茶)도 마셨고 감자 맛이 정말 좋은 '샹짜이(香寨)'라는 이름의 카레 밥도 먹었다. 헤어지기 서운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에 티베트에 오면 꼭 다시 연락하라는 따 선생은 정말 마음이 따뜻했다.

  
▲ 쌈예에서 만난 따 선생 헤어지기 전 장족 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 최종명
쌈예

쌈예에서 짜낭(扎囊)을 거쳐 라싸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버스는 단순한 시내버스가 아니라 순례자의 버스라 할 정도로 여러 유명한 사원들을 거쳐 간다. 우리는 설마 돌아가는 길에도 검문이 있을까 두려웠지만 마음만은 푸른 하늘 덕분에 상큼했다.

알롱창포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체탕(泽当)을 지나 일명 자씨츠르(扎西次日)라 불리는 산 중턱, 절벽에 우뚝 솟아있는 윰브라캉(雍布拉康) 사원에 도착했다. 버스는 승객들이 절벽에서 바라보는 갖가지 절경과 사원의 이색적인 모습을 다 차분히 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 윰브라캉 기원전 절벽 위에 세운 궁전이었다가 티베트 사원으로 개조
ⓒ 최종명
윰브라캉

해발 3700미터 지점의 윰브라캉 사원은 기원전 2세기경 티베트 왕조 최초의 왕인 냐티첸뽀(聂赤赞普)의 궁전으로 알려졌다. 그는 천신의 아들(天神之子)이라 불리며 신화를 지닌 역사 인물이기도 하다. 정말 티베트의 역사의 발원지에 온 것이다.

  
기원전 궁전이던 것이 지금은 사원으로 변한, 절벽 위에 세원진 윰브라캉
ⓒ 최종명
윰브라캉

윰브는 어미 사슴(母鹿)이라는 뜻이고 라는 뒷다리(后腿), 캉은 신전(神殿)을 뜻한다. '어미 사슴 뒷다리처럼 생긴 궁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33대 왕인 쏭첸깐뽀는 이곳을 사원으로 개조했고 당나라 문성공주와 함께 이곳에서 여름 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가파른 절벽 위에 망루(碉楼)와 전당(殿堂)와 승방(僧房)으로 구성된 이 사원은 정말 파란 하늘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확 트인 사방을 보노라니 가슴이 다 뚫린다. 절벽 아래에는 논인지 밭인지 모를 농토가 잘 정리돼 있다.

다섯 개의 마니통 옆에 길쭉한 항아리처럼 생긴 화로 속에는 마른 나무장작이 하염없이 타면서 연기를 뿜고 있다. 장족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손을 꼭 잡고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말과 낙타들은 손님을 기다리는데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니 영 낭패다. 공예품을 파는 마차의 파란색 파라솔이 하늘과 어울려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내려오니 다시 버스는 출발이다.

  
윰브라캉 사원의 마니통 옆을 지나 내려가고 있는 장족 할아버지와 할머니
ⓒ 최종명
윰브라캉

오후 1시에 쌈예를 출발한 버스는 어느덧 저녁 7시가 다 되어 라싸 시내로 들어왔다. 1박 2일 진정 티베트다운 곳으로 순례의 길을 다녀온 느낌이다. 복잡한 라싸로 돌아오니 더 그립다.

이제 내일이면 라싸를 떠난다. 쌈예의 7인들과도 헤어진다. 며칠 만에 정이 흠뻑 들었다. 새벽까지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공교롭게도 7명 모두 혼자 떠난 여행, 그리고 라싸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다음날에도 비가 왔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고 비행기를 타고 청두로 다시 나왔다. 비행기는 4시간이나 연착해 지루했지만 쌈예의 기억과 티베트에서의 1주일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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