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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 57] 쿤밍 스린과 쥬샹, 소수민족촌

7월 30일, 아침부터 비가 내릴 듯 찌푸린 날씨였다. 울산에서 온 한국인 가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투어 일행을 만들었다. 윈난(云南) 쿤밍(昆明)에서 약 80km 거리에 있는 스린(石林)에 도착하니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루난(路南) 현 내에 있어 루난스린이라 부른다.

아주 오랜 옛날, 지금의 지구 모습이 생기기 전 바다가 융기한 카르스트(科斯特) 지형이며 돌로 숲을 이룬 스린. 약 2억8천년 전 바다의 모습이라 한다. 생생하게 보려는데 비옷 입어야 하고 우산도 써야 하니 시야가 영 불편하다. 그렇지만, 거대한 돌들이 숲을 이룬 듯 아름다운 장관은 비 속에서도 아주 맛깔스럽다.

돌 숲을 거니는 것인지, 바다 속을 거니는 것인지 착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빗물의 조화 때문일 듯하다. 바위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카메라와 캠코더를 꺼냈다 넣었다 두어 시간을 반복하면서 장엄한 광경을 세심하게 보았다.

스린(石林)은 바다 땅이 융기해서 만들어진 곳, 그래서 기이한 암석들이 숲을 이뤄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사람들은 연신 스린의 모습에 반해 돌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런다.

따스린(大石林)과 쌰오스린(小石林)으로 나누어진 스린은 석회암의 용해(溶解)로 발생한 용식(溶蚀)과, 침전(沉淀), 붕괴(崩塌), 함락(陷落)과 퇴적(堆积)을 반복하며 석봉(石峰)과 석주(石拄), 석순(石笋), 석아(石芽)들이 화려하고도 울창하고 푸른 삼림의 모양을 띠고 있다.

바위에 ‘石林’이라 새겨진 곳은 따스린 초입이다. 돌로 이뤄진 병풍 같은 모습의 스핑펑(石屏风)이라는 곳이다. 각인된 두 글자는 1931년 이족(彝族) 출신으로 반청운동을 하던 윈난 반군인 전군(滇军)에 참여해 나중에 윈난 성을 통일하고 그 주석이 된 윈룽(云龙)이라는 사람이 쓴 발문(跋语)에서 따온 것인데 그 필체가 스린에 딱 어울린다 할 정도로 멋지다.

  
▲ 스핑펑 카르스트 지형의 거대한 바위 숲 쿤밍의 스린
ⓒ 최종명
스린

거대한 바위 가운데 작은 연못에 방울방울 빗물이 떨어져 맺히고 있는 곳은 졘펑츠(剑峰池)이다. ‘剑峰’ 두 글자는 1935년에 이 지역 현장이던 왕씽윈(王行云)이 쓴 것으로 연못에 깊이 박힌 검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 샹쥐스타이 코끼리를 닮은 스린의 바위
ⓒ 최종명
샹쥐스타이

세차게 비가 쏟아져 잠시 돌 숲 사이에 몸을 피했다. 빗물을 머금고 있는 나뭇잎의 모습은 생명이 느껴지듯 푸르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초록 잎사귀도 스린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으리라.

잠시 비가 약해지면 다시 숲 사이를 뚫고 간다. 마치 그 옛날 바다 속을 거니는 듯 착각이 든다. 그러다가 하늘을 한 번 바라보니 갑자기 코끼리 코 모양의 암석이 보인다. 이름하여 샹쥐스타이(象据石台)이다.

그리고 스린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정자가 불쑥 나타난다. 바위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정말 온 사방의 바위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라 할 만하다. 이 왕펑팅(望峰亭)에서 바라보니, 바위들이 바다를 뚫고 나온 듯한 착각이 든다.

쌰오스린으로 가는 길에 롄화츠(莲花池)라는 호수가 있다. 비가 내려서인지 호수에 들어가 투망으로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 있다. 팬티에 비옷만 걸치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은 구경거리다. 팔뚝만한 크기의 고기를 잡자마자 바구니에 넣더니 들고 뛰어간다. 아마 음식점에서 이 요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스린은 소수민족 이족(彝族)의 터전이며 자치현(自治县)이기도 하다. 스린도 멋지지만 사람들의 모습도 참 예쁘다. 아스마스(阿诗玛石)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서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이들이 참 예쁘다. 분명 한족인데 이렇게 이족 옷을 입으니 색다르다. 흰색과 붉은색 바탕에 원색적 문양이 새겨져 있지만, 꽤 조화롭다.

  
아스마스 앞 연못에서 이족 전통 옷을 입고 있는 아이
ⓒ 최종명
스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것은 이족 소녀인 아스마(阿诗玛)의 전설 때문이다.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금이 빛나듯 예뻤으며 마치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했다고 한다.

노래도 잘 했고 꽃 수도 잘 놓았으며 삼베도 잘 짜는 등 다재다능했다. 전통명절인 훠빠제(火把节)가 되자 그녀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아헤이(阿黑)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시집 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사실 아헤이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주인을 위해 산에서 나물과 과일을 따는 노역을 하다가 길을 잃었는데 아스마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그때부터 함께 자랐던 사이이기도 하다. 아헤이는 양치기 일을 하러 멀리 떠나게 되는데 아스마는 그가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아스마의 혼담이 오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헤이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스마가 시집을 간 후였다. 아헤이는 그녀를 구해 함께 도망을 치게 되고 폭풍우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때 한 마리의 꿀벌이 나타나 그들을 스린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스마가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고, 아스마는 아헤이를 부르며 빨리 흰 돼지와 흰 수탉을 잡아서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소리친다.

  
▲ 아스마스 이족의 장편서사시인 <아스마>의 전설이 있는 스린
ⓒ 최종명
이족

아헤이가 이 소리를 듣고 49개의 산을 다 돌아다녔는데 흰 수탉은 구했지만 흰 돼지를 구하지 못했고 겨우 검은 돼지를 찾았다. 그는 검은돼지에 흰 색 점토를 칠했고, 그 모습이 흰돼지와 다름없음에 기뻐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던지라 마지막 하나 남은 산을 넘다가 잠시 잠든 것.

그 와중에 다시 용왕이 큰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비 때문에 검은 돼지에 입혔던 흰색 점토가 다 씻겨졌다. 결국 절벽에서의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됐고 아헤이는 대성통곡을 하며 후회를 했다. 이후 아스마는 영영 내려오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다. 그리곤 오랜 세월이 지나 침식이 반복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스마 석상 아래 있는 연못은 당시 흰색돼지를 씻겨버린 빗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정말 재미난 전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아스마'는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소수민족 이족의 장편서사시이기도 하다.

스린을 나와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 천안에서 온 교감선생님 부부, 서울에서 온 젊은 연인 틈에 끼었다. 메뚜기 요리가 일품이다. 바삭바삭하게 굽기도 했지만 매운 고추가 함께 있어서 반찬으로도 손색이 없다. 푸짐하게 먹고 다시 엄청나게 큰 종유동굴(溶洞)인 져우씨양(九乡)으로 갔다.


  
▲ 쥬샹 계곡 사이로 붉으면서도 황토를 머금은 물살이 세차게 흘러들고 있다
ⓒ 최종명
쥬샹

종일 비가 내렸으니 동굴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강물이 폭포보다도 더 세차고 아주 폭발적이다. 그 빛깔이 붉은 듯도 하고 누런 듯도 하다. 계곡 바위 색깔이 짙은 붉은 빛을 내고 있고 황토까지 긁어 흐르니 물 빛깔이 사뭇 야릇하다. 이곳에는 고대 바다 미생물인 녹조류 화석이 포함된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하는 첩층석(叠层石)이 풍부하다.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뿌리는 물살을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마치 고고학자가 신비한 동굴에 처음 발을 내미는 듯하다. 동굴 속에는 조명에 비친 종유석들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동굴 속에 아주 넓은 광장도 있다. 아주 오래 전 그 옛날에 이곳에서 살았을 법한 원시인들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쥬샹 동굴 안에 있는 종유석들이 조명에 드러나고 있다
ⓒ 최종명
쥬샹

져우씨양(九乡)은 오색찬란한 조명으로 종유석들의 신비한 자태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동굴 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융기된 계곡 사이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동굴 속에 만들어진 자연 연못도 아름답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한 움큼 피어 있기도 하고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언뜻 깊은 동굴 속이 보일 듯 말 듯 하기도 한다.

이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배를 타기도 한다는데, 비가 많이 내려 물살이 가팔라 운행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동굴을 빠져나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우리 일행은 쿤밍으로 되돌아오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무를 샀다. 한 바구니에 10위안 정도. 막 밭에서 뽑은 무가 아주 싱싱해 보인다. 그리고, 해발 2천m가 넘는 쿤밍의 정겨운 농촌 풍경을 따라 2시간을 달려 시내로 되돌아왔다.

7월 31일 아침, 쿤밍을 떠나 따리(大里)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데 민박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인 아저씨가 전화를 바꿔준다.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아가씨가 1시간 후 정도면 쿤밍 역에 도착하는데 함께 윈난 성을 여행할 일행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중국어도 모르는 것 같은데 함께 다니면 피곤하실 거라며 눈치를 준다. 중국에서 혼자 여행한다는 것에 마음이 약해져 이미 약속을 한 후다.

쿤밍 역에서 만난 주연씨는 혼자 방학을 이용해 베이징(北京), 씨안(西安)을 거쳐 윈난 성을 여행하고 꾸이린(桂林)과 상하이(上海)를 둘러보는 코스를 정하고 왔다고 한다. 처음과 달리 갈수록 중국에서 혼자 여행하는 것이 불안해 쿤밍에서 일행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쿤밍민족춘(昆明民族村)으로 갔다. 따리 행 버스를 타기 전까지 3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55개 소수민족과 한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 볼 수 있지만 사실 95% 이상이 한족이니 소수민족들은 서로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멍구(蒙古), 후이(回), 장(藏), 위구르(维吾尔) 민족 등 성급에 준하는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거주지에 현이나 향 등의 형태로 일정한 자치를 보장 받아 살아가는 민족이 대부분이다. 소수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를 한곳에 모아 민족촌을 형성해 관광상품으로 만든 곳이 중국 곳곳에 있다.

베이징 야윈춘(亚运村)에도 있고 이곳 쿤밍에도 민족촌이 있다. 조금 산만해 보이기도 하고 놀이공원 같기도 하지만 곳곳에 소수민족들 마을 모습이나 작은 문화공연 등이 어우러져 나름대로 재미있는 곳이다.

전체 민족인구가 채 50만 명이 안 되는 한 작은 소수민족인 라후족(拉祜族) 마을에 들어서니 기타 소리가 정겹게 울리고 선남선녀가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의 연가를 불러주는 모습인 듯하다. 라후족은 북방의 깐수성과 칭하이성에서 이주해온 장족(羌族) 계열로서 미얀마(缅甸)와 윈난 성의 경계를 가르는 강인 란창강(澜沧江) 유역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 라후족 쿤밍 소수민족촌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는 라후족 총각과 처녀
ⓒ 최종명
라후족

각 민족의 전통 가옥구조로 마을을 꾸미고 전통복장을 입고 있거나 민속공연을 하고 있는 곳이다. 각 민족의 형성과정이나 거주지역에 대한 정보도 살펴볼 수 있는데 소수민족의 영향력이 클수록 마을도 큼직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무래도 소수민족 중에서도 그 수가 몇 십만 명 정도인 소수민족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꾸민 듯해 다소 아쉽긴 했다.

이곳에서는 시간표에 따라 각 민족의 전통 공연이 벌어진다. 마침 쿤밍을 자신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의문자도 보유하고 있는, 전통복장과 따거(打歌)라는 독특한 형태의 춤을 추는 이족(彝族)의 전통 문화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이족 전통공연이 벌어지는 장소 옆에 술 항아리와 옥수수, 홍등으로 꾸며놓은 술집
ⓒ 최종명
이족

남자들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고 여자들은 춤을 춘다. 공연 막바지에는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 친근해서 놀랐다. 따거는 이족들이 결혼식 후 뒷풀이를 할 때 추는 춤으로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손에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들도 이런 형태의 춤을 추기도 하고 우리에게도 이런 유형의 춤이 있으니 아마도 꼭 이족만의 독창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춤이라는 것이 여럿이 어울려 즐겁게 노는 문화가 체계화된 것이라면 그 춤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은 그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마인드가 비슷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관객과 어우러지는 소수민족의 공연 모습은 한족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형태여서 신선했다.

이런 형태의,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춤과 음악에는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민족들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으니, 문화적 정서가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해서 기뻤다. 악기와 춤사위에서 약간의 차이는 나겠지만 손 맞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돌고 돈다는 점에서 마치 우리의 '가족' 같은 느낌을 발산해 더욱 신났다.

  
▲ 이족 공연 쿤밍을 근거지로 살아온 이족들의 공연이 소수민족촌에서 열리고 있다
ⓒ 최종명
이족

시간표를 보니 코끼리(大象) 쇼가 있다. 지도를 보고 급히 찾아갔다. 작은 노천극장이지만 관객들로 빈 자리 없이 꽉 찼다. 코끼리 코에 올라타 사진도 찍는다. 아이나 어른이나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준다. 물론 바나나를 파는 사람들 수입이 짭짤하겠다. 코끼리 세 마리가 재롱을 핀다. 예쁘게 인사도 하고 책상다리를 한 채 앉기도 한다. 두 마리 코끼리 코 사이에 앉아 보기도 한다. 코끼리 입이 가까이에서 보니 꽤 무섭다. 하여간 날름 잘도 집어 먹는다.

관객 중에서 남자와 여자 한 명씩 나왔다. 바닥에 누운 여자 배 위로 코끼리가 코로 장난을 치며 때린다. 배도 누르고 가슴도 누르는 등 재미있게 장난을 친다. 이번에는 남자가 누웠는데 아주 예민한 부분까지 마구 두드리니 관객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 코끼리 쇼 쿤밍 소수민족촌에서 열린 코끼리 묘기
ⓒ 최종명
코끼리

터미널에 도착해 네이멍구(内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만났던 어학연수생에게 전화를 했다. 쿤밍이나 따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게 이맘때쯤이다 싶었다. 그 친구는 며칠 전에 이곳에 왔다가 터미널에서 여권이 든 가방을 소매치기 당해 베이징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바로 그 터미널에 있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서 목에 거는 가방을 잠시 내려둔 사이에 누군가 훔쳐 달아난 것이라 한다. 배낭을 조심스레 다시 챙겼다.

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달렸다. 쿤밍을 거쳐 따리와 리장(丽江), 중뎬(中甸)에 이르는 황금 여행코스를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따리에도 비가 내렸다. 따리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따리 고성으로 들어서니 이미 밤 11시가 넘었건만, 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에 휩싸여 있고, 거의 모든 레스토랑들은 술 마시고 노는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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