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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70] 우한 황허러우

기차는 밤새 달렸다. 14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함께 달리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시안(西安)에서 출발, 한커우(汉口) 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호텔 구하기가 늘 갈등이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도시는 비싸고 작은 도시는 싸고, 같은 값이라면 좋고 나쁨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고민을 한번에 해결했다. 바로 호텔 체인점 회원이 된 것이다. 상하이(上海)에 본사를 두고 주로 남방 일대 대부분의 도시에 진출한 체인점 호텔을 찾아 냈다. 게다가 회원가입비 50위안(약 7천원)만 내면 10위안씩 할인도 해준다. 대부분의 호텔 숙박 비용이 168위안인데 아침도 포함이고, 무엇보다도 방마다 설치된 인터넷이 빠르고 무료다. 금상첨화. 앞으로 가야 할 도시 중 몇 군데를 빼고 대부분 다 있으니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어졌다.


약간 좁기는 하지만 호텔이 정말 깨끗하다. 지방의 허름한 호텔을 인수해 리모델링 체인점을 열었으니 당연히 깔끔하고 친절하고 편하고 좋다. 이렇게 3성급 시설로 저가형이면서 전국적인 체인 호텔이 갈수록 많아질 것 같다.


짐을 풀고 씻고 인터넷의 속도를 확인했다. 바깥은 '찜통도시' 우한(武汉)답게 정말 푹푹 찐다. 오늘이 9월 2일인데도 말이다. 실내의 서늘한 온도에 취해 졸리기 시작했지만 일정이 빠듯한 여행자의 신분이니 어찌할 것인가.


버스를 타고 우한의 우창(武昌) 지구 셔산(蛇山)에 있는 황허러우(黄鹤楼)에 도착했다. 우한은 후베이(湖北) 성의 성도이다. 예로부터 '후샹(湖湘) 문화'라 하여 후베이와 후난은 문화적으로 동질적이다. 후난의 창사에서 중원 중심 시안으로 갔다가 다시 후베이의 우한으로 온 셈이다.


우한은 1949년 5월 중국공산당 군대가 진주한 후 한커우, 한양(汉阳), 우창 세 도시를 묶어서 지은 이름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창장(长江) 지류 중 가장 길다는 한수이(汉水)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한장(汉江)이라고도 불리는 한수이 역시 1532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강인데 이곳 우한에서 창장과 만나는 것이다. 한수이와 창장을 경계로 위, 촉, 오 삼국이 자웅을 겨루기도 했으니 이곳은 삼국지 전투의 역사 기록이 많은 곳이다. 우한은 삼국지 최대의 격전인 적벽(赤壁)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우한 황허러우 남대문 입구 공예품 거리의 종이우산
ⓒ 최종명
우한

황허러우 남대문(南大门) 옆에는 공예품과 토산품을 파는 골목이 하나 있다. '황학고사(黄鹤古肆)'라는 이름인데, '肆'는 따시에(大写)로 '사(四)'를 뜻하기도 하지만 '가게'라는 뜻도 있으니 '옛날 가게'라는 뜻이다.


옛날 분위기에 맞는 상품을 판다는 의미일 듯하다. 양 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연한 빛깔의 종이우산이 두 줄로 하늘을 향해 걸려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니 햇살을 받아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색채를 띠고 있는 모습이 황홀한 지경이다.


문으로 들어서니 작고 아담한 연못이 나타난다. 바로 '어츠(鹅池)'이데 이곳에는 명필 왕희지(王羲之)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왕희지는 황허러우에 거위를 놓아준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서생들과 거위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거위는 '날짐승 중 호걸이며 눈처럼 희며 구슬처럼 깨끗하고 한 점 티끌도 없다'고 하면서 땅 위에 '鹅'자를 썼다.


그런데 한 서생이 그 글자를 좋아해 매번 모사(临摹)를 했고 이 아름다운 글자를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우고 연못을 만들었다. 또 연못에 거위를 기르고 그 신비로운 자태를 관찰했는데 오로지 '鹅'자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도 연못 위에 거위 몇 마리 노닐고 있다.


어츠 뒤에는 마오쩌둥(毛泽东)의 시를 새긴 비석과 정자가 있다. 1차 국공합작이 장제스(蒋介石)의 정변으로 결렬 위기에 처하고 우한 국민당정부가 분공(分共)을 획책하던 암울한 상황에서 황허러우를 찾은 그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황학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까?(黄鹤知何去)'라고 심정을 내비쳤다. 덧붙여 '술을 뿌리니 요동치고, 마음은 파도처럼 격정이 솟누나!(把酒酹滔滔, 心潮逐浪高!)'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정자를 따라 얕은 산을 오르니 황허러우의 장관을 보러 온 수많은 문인들이 남긴 시문이 적힌 돌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거대한 암석 벽에 이백(李白)이 쓴 '장관(壯觀)'이 눈에 들어왔다. 이백은 따퉁(大同) 헝산(恒山)에 있는 현공사(悬空寺)에서 본 것과 똑같이 '장관'이라 썼는데 '장'자 옆 오른편에 점 하나를 더 찍었다. 잘못 쓴 것이 아닌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감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한 황허러우의 벽에 이백이 쓴 '장관', 오른쪽으로 점이 가일수돼 있다.
ⓒ 최종명
우한


또 하나의 벽에는 당나라 시대 문인이며 시인인 최호(崔颢)가 남긴 멋진 시문이 있는 부조(浮雕)가 있다. <최호제시도(崔颢题诗图)>라 부르는 이 벽에는 구름 사이에서 긴 소매를 휘날리며 꼿꼿한 자세로 운필(运笔)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벽 중앙에는 연한 초록색을 머금어 더욱 생생한 느낌을 주는 그의 불후의 명시 <황학루(黄鹤楼)>가 새겨 있다.


    昔人已乘黄鹤去,此地空余黄鹤楼。

    선인은 황학을 타고 가고, 여기 황학루만 남았구나.

    黄鹤一去不复返,白云千载空悠悠。

    황학은 돌아오지 않고, 백운은 천 년을 지키고 있네.

    晴川历历汉阳树,芳草萋萋鹦鹉洲。

    한양 나무는 청천에 빛나고, 앵무 섬에는 풀 향기 가득하구나.

    日暮乡关何处是,烟波江上使人愁。

    날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피어나는 강 안개에 수심에 잠기누나.


최호의 시에 등장하는 황학을 타고 날아간 선인은 누구일까.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이런 치허런(骑鹤人)은 많다. 남조 시대 소설가인 은은(殷芸)이 쓴 고사에도 보면 '양주 관리가 되고 싶다'는 사람과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 '학을 타고 훨훨 날고 싶다'는 사람의 소원을 모두 합쳐 '전대에 돈을 가득 넣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고 싶다(腰缠十万贯,骑鹤下扬州)'고 했다. 그래서 '양주의 학(扬州之鹤)'은 사자성어로 '이것저것 좋은 것을 다 누린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한 황허러우에 있는 시인 최호의 시 <황학루>와 그림이 어우러진 벽화 <최호제시도>
ⓒ 최종명
우한


아주 옛날 자안(子安)이 학을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에서 '황허러우'라는 이름이 유래했으며 촉나라의 비의(费祎) 역시 이곳에 와서 황학을 타고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최호의 시에 취해 맞은 편 정자에 앉았는데 이 정자는 바로 이백의 절필과 관련된 거비팅(搁笔亭)이다. 이백은 황허러우에 들러 '장관'에 도취한 후 최호의 시 앞에 이르렀다.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니 말조차 하기 어렵네, 최호가 벽에 그린 시만이 머리 속에 맴도네(眼前有景道不得, 崔颢题诗在上头)'라고 크게 탄식하며 절필을 선언했다고 전한다. 이 말이 급속하게 전해지면서 최호와 황허러우는 더더욱 유명해졌다.


황허러우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갔다. 대체로 관광지마다 공연이 벌어지는데 관람비가 입장료에 포함된 것이라면 반드시 찾아가 볼 일이다. 다만,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오후 공연을 보러 다시 어츠 연못을 지나 뤄메이쉬엔(落梅轩)으로 서둘러 갔다. 2층 공연장은 어느덧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기다리고 있다. 앞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으려 하니 돈을 내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였다. 10위안으로 녹차를 시켰다.


무대 한가운데 편종(编钟)이 있고 따지(打击) 악기 북인 구(鼓), 피리인 띠즈(笛子)와 작은 도자기처럼 생긴 나팔인 쉰(埙), 생황인 따셩(大笙)도 보인다. 머리에 리본 장식을 한 미인이 연주하는 가야금처럼 생긴 현악기 구정(古筝) 독주가 시작된다. 각 악기들마다 독특한 음색을 지니고 있어 합주는 색다른 경험이다. 몇 번 들으니 이제 익숙한 소리로 다가온다.


  
우한 황허러우 공연장에서
ⓒ 최종명
우한


'신데렐라'라는 뜻의 회이꾸냥(灰姑娘)이란 유행가를 연주한다. 전통악기로 유행가를 들으니 차 한잔 값을 할 정도로 괜찮구나 생각했는데, 이어 편종 소리가 "땡땡땡땡 때데데뎅" 울린다. 귀를 기울였더니 베토벤의 '합창'이 아닌가. 망치로 두드리는 종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계속 이어진다.


비록 편곡이 돼서 겨우 3분 동안의 연주지만 음의 파장이 주는 길고도 긴 여운이 한참 동안 귀속을 맴돌고 사라지지 않는다. 퓨전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중국 땅 한복판에서 궁중악기가 쏟아내는 클래식한 가락을 들으니 '동서양 문화의 화해'라는 생각이 든다.


  
우한 황허러우에 있는 남송시대 장수 악비의 동상
ⓒ 최종명
우한

공연장을 나와 황허러우 제일 동쪽 끝에 있는 악비(岳飞)의 동상을 찾아갔다. 악비는 12세기 남송의 장수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항거한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북송의 수도인 카이펑(开封)을 내주고 밀려난 한족으로서는 이곳에 진을 치고 여진족과 대치한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높이 8미터에 이르는 그의 등 뒤에는 한 필의 말이 함께 조각돼 있다. 왼발을 내딛고 오른발을 힘껏 들어 내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는 앞 왼쪽을 향해 약간 숙인 모습이 강인한 인상을 풍기며, 휘감은 듯 날리는 꼬리까지 사람을 가지고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보여준다.


악비에 대한 비문도 있고 정자도 있다. 게다가 황허러우 방향으로 향하는 산길에는 패방(牌坊)인 악비공덕방(岳飞功德坊)이 있다. 높이 10.7미터, 너비 7미터 규모에 네 기둥과 다섯 들보가 어우러진 흰색 대리석 모습이 장엄하다.


기둥마다 양쪽으로는 두 마리씩 모두 여덟 마리의 돌 사자가 조각돼 있어 민족의 영웅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윗부분에는 용 문양이 새겨진 그림이 있고 앞뒤로 '정충보국(精忠報國)'과 '공업천추(功業千秋)'라는 글자를 새겨져 있다.


  
우한 황허러우에 있는 악비의 공덕을 기리는 패방
ⓒ 최종명
우한

악비가 후베이를 중심으로 의용군을 일으키고 나라를 구하자고 했던 시대인 12세기 초 우리는 고려시대였다. 중국은 여진족인 금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남쪽으로 밀려난 송나라는 중원 일부와 강남 지역에 영토를 확보하고 있었다.


베이징 북쪽은 몽골족들이 초원을 지키며 힘을 기르고 있었고 서북쪽은 서하(西夏), 서쪽은 티베트 왕국인 토번(吐蕃), 서남쪽은 따리(大里) 국이 자리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역사상 한족이 군사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미미했던 시대가 또 있을까 할 정도다. 당시 '민족의 영웅'은 강남으로 밀려난 한족의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악비공덕방과 비슷한 모양의 패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길을 걸었다. 황허러우의 4계절을 상징하고 있다.


오솔길처럼 좁은 산길을 완만하게 올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바이윈거(白云阁)가 다다랐다. 서기 4세기 동진(东晋) 시대의 난러우(南楼)의 별칭으로 알려져 있고 앞서 최호의 시뿐 아니라 20세기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궈모뤄(郭沫若)와 마오쩌둥의 시에서도 언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지나면 멀리 웅장한 황허러우의 자태가 등장하는 곳에 바오퉁딩(保铜顶)에 천년길상(千年吉祥) 종(钟)이 있다. '천년을 기다려 한번 친다'는 종을 치려면 돈을 내야 한다. 10위안은 3번, 20위안은 6번, 30위안은 9번 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종을 치는 회수만큼 그에 맞게 그럴 듯한 덕담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각 숫자의 음을 빌어 덕담을 만들고 의미하니 참 절묘하기도 하고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一은 '일생평안(一生平安)', 二은 '재운형통(财运亨通)', 三은 '길상여의(吉祥如意)', 四는 '사업유성(事业有成)', 五는 '오복임문(五福临门)', 六은 '육육대순(六六大顺)', 七은 '칠성고조(七星高照)', 八은 '팔면위풍(八面威风)', 九는 발음이 같은 '久'를 써서 '지구천장(地久天长)'의 복을 받게 된다. '천장지구(天长地久)'는 홍콩 영화의 불후의 명작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의 존재만큼 오래되고 영원하다'는 의미이니 더이상의 덕담이 있을까.


  
우한 황허러우에 있는 <천년길상> 종, 그 뒤로 황허러우가 보인다.
ⓒ 최종명
우한


예전에 산둥 지난의 방송국 부국장과 주임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국문과 출신이라는 주임은 술을 권유하며 "한잔을 마시면 이런저런 복이 오니 마셔야 한다"해서 첫 잔을 기분 좋게 마셨더니 "두 잔을 마시면" "세 잔을 마시면" 그러더니 결국 "아홉 잔을 마셔야 천 년의 복이 온다"고 했다. 조심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은 아흔아홉까지 충분히 권주의 명분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풍부한 입심을 가졌으니 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악주(鄂州)가 바로 이곳이다. 오나라 손권은 삼국시대이던 서기 223년에 이 황허러우를 세우고 전초기지이자 요새로 삼았다. 이곳 창장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촉나라, 북쪽으로 위나라와 대치하고 있었으니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군사적 목적의 누각을 세운 것이다.


손권은 악주를 전략적 요충지로 하면서 '무로써 나라를 다스려 번창한다(以武治国而昌)'고 하니 '우창(武昌)'의 이름이 된다. 동정호 위에양(岳阳)에 있는 위에양러우(岳阳楼), 난창(南昌)에 있는 텅왕거(滕王阁)와 함께 강남의 3대 누각(江南三大名楼) 중 하나인 황허러우는 '천하강산제일루(天下江山第一楼)'라고 당당하게 불리기도 한다.


황허러우는 오랜 기간 여러 번의 훼손과 참화를 거치다가 1884년 큰불로 그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다가 1985년에 이르러 50여 미터에 이르는 웅대한 모습으로 중건됐다. 1층 벽면에는 전설을 상상해 그린 듯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모습, 구름 속에 쌓인 황허러우 위로 날아가는 황학의 멋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한 황허러우와 황학이 날아가는 그림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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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높이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래로 구비구비 흘러가는 창장의 모습이 훤하게 드러나고 마치 발아래 있는 듯하다.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새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왼쪽으로는 유비의 군대, 오른쪽으로는 조조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손권의 모습을 상상했다. 208년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처럼 손권은 222년 '화소연영(火烧连营)' 계책을 써서 유비의 군대를 물리친다. 이후 황허러우를 짓고 229년 이곳 우창에서 황제 즉위를 하게 된다.


각 층을 차례로 내려오는 동안 전시실과 공예품가게 등을 하나씩 둘러볼 수 있다. 벽마다 황허러우와 관련된 전설이나 역사가 그림으로 새겨져 있있고 붓이나 북, 서예와 산수화도 마음껏 볼 수 있다. 다 보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누각 안은 약간 어둡고 덥다. 한 화공이 부채 위에 그림이나 서예 글씨를 써서 파는데 조명등을 밝히고 그 뒤로 선풍기까지 두고 열심히 그리고 있다. 악비나 손권 등 황허러우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의 초상화가 새겨진 부채가 참 탐이 나긴 했다.


아래로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학 한 쌍이 다정하게 서 있다. 바로 '황학귀래(黄鹤归来)' 동상이다. 학 두 마리가 창장 쪽 정문을 향해 정답게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옆에 가서 보니 이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거북이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 위에 학이 있는 형상인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우왕(禹王)이 치수를 하니 옥황상제가 거북이(龟)와 뱀(蛇)을 내려 보내 일을 도왔다고 한다. 이 모습을 굽어 보던 선학(仙鹤) 두 마리가 감동을 해 환골탈태해 속세로 내려오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했다고 한다.


  
우한 황허러우 앞 광장에 서 있는 <황학귀래> 상과 패방
ⓒ 최종명
우한


전설이 아니더라도 거북이와 학 모두 '천수를 누림(遐龄)'을 누구나 인정하는 상서로운 동물인데다가 뱀 역시 '영구(长久)'함을 상징하니 이 셋의 조합이야말로 그 어떤 가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황허러우 앞 서쪽 광장 양 옆으로 두 개의 정자와 건물이 배열해 있고 그 앞에는 강산입화(江山入画)라고 쓴 현판이 새겨진 패방이 우뚝 서 있다. 그러나, 이것은 뒷면이고 그 앞면에는 싼추이러우(三楚一楼)라고 써 있다. 이 패방을 넘어서면 바로 이곳의 정문이기도 한 서대문(西大门)에 이른다.


  
우한 황허러우 서대문에서 본 백탑, 패방과 황허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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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대문 앞에는 원나라 시대 세운 백탑인 셩샹바오타(胜像宝塔)이 자리잡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왔다면 가장 먼저 만났을 탑이기도 하다. 이 백탑은 다각형의 조화로 이뤄져 있어 오래 봐도 지겹지 않고 아름답다. 이 탑은 아래는 둥근 받침대(座)가 있고 그 위로 병(瓶), 바퀴 살 모양(相轮), 우산덮개(伞盖) 그리고 봉분(宝顶)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문을 나와 뒤를 돌아보니 백탑, 패방, 누각이 서로 그 역사의 숨결을 달리하고 일직선으로 나란히 줄을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말 그 앞에 서서 아래에서 위로 약간 앵글을 맞춰 찍으면 멋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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