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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74] 차오저우 성벽, 자띠샹 골목, 당나라 시대 사원

9월 8일 아침 8시 30분 버스를 탔다. 간저우(赣州)에서 광둥(广东) 성 차오저우(潮州)까지, 대충 봐도 지도로는 5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다. 그런데 10시간이나 걸렸다. 교통사고가 나서 길이 막힌 것도 아니고 버스가 고장이 나지도 않았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그야말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가니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게다가 중간에 정차하는 곳은 왜 그리 많은지.

간저우 시내부터 중간 정류장을 거치더니 국도를 지나면서는 마을이란 마을은 다 서는 듯했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타고, 완전 완행 버스다. 신펑(信丰)을 지나고부터는 도로 사정이 아주 열악하다. 안위엔(安远)을 지나면서 가파른 산길들로 접어들더니 성 최남단 도시인 쉰우(寻乌)를 지난다. 어느새 광둥 성으로 접어들어 핑위엔(平远), 메이저우(梅州)까지 산 하나를 후딱 넘었다.

2006년 안후이(安徽) 성 남단에서 장시 성으로 넘어가는 도로와 비슷하다. 성과 성은 대체로 산을 경계로 가르니 중국에서 도로 여행을 하면 대체로 이와 같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서서히 평지를 달린다. 결국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정말 피곤했다. 더구나 이날은 내 생일날이었다.

숙소를 잡고 차오저우 시내의 강변으로 나갔다. 생일날 혼자 우울하게 밥을 먹는 것도 그렇고, 여기에 친구가 있지도 않으니 그나마 강바람이라도 맞으면 좀 낫지 싶기도 했다.

차오저우에는 우리나라 한강과 이름이 같은 한장(韩江)이 흐른다. 물론 한자는 다르긴 하지만 서울이다 생각하니 조금 정겹기도 하다. 삼륜차를 타니 광지먼(广济门) 앞에 내려준다. 휘황찬란한 코발트 빛깔의 조명이 깃든 성곽이다.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컬러 감각 앞에 말문이 막힌다.

  
차오저우의 강변 성곽인 광지먼
ⓒ 최종명
차오저우

20여 미터 높이의 성곽 양 옆으로 길게 성벽이 이어진다. 명나라 시대인 1370년에 처음 쌓은 성벽에 조명을 비추니 꽤 멋지다. 성벽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이 조명 때문에 마치 그림자 놀이하듯 흔들리니 이것도 볼 만하다.

차오저우는 산터우(汕头)와 합쳐 차오산(潮汕)이라 하며 자조적으로 '성의 꼬리, 나라의 다리(省尾国脚)'라는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곳은 '차오상(潮商)'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명나라 이후 사농공상(士农工商)의 제일 말단에 위치한 '상인'이기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중국 10대 상방(十大商帮)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3대 상방을 꼽으라면 산시(山西)의 진상(晋商)과 안후이(安徽)의 후이상(徽商)과 더불어 차오상을 꼽는다. 5대 상방에는 수저우(苏州)의 수상(苏商)과 닝보(宁波)의 저상(浙商)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명청(明清) 시대 이래 진상과 후이상은 쇠락한 반면 차오상은 커자(客家) 사람들 중심으로 모험적이고 '온갖 고통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딘다(吃苦耐劳)'는 정신으로 광저우, 션전, 홍콩, 동남아 등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중국을 대표하는 상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장을 따라 걸으니 왼편의 성벽 조명과 오른편의 강변 조명이 어우러져 눈길을 어디에다 둬도 다 멋지다. 10분 정도 걸으니 성벽을 따라 작은 진산(金山) 능선으로 베이거(北阁)가 나타난다. 강변에 서서 바라보니 누각들과 정자들이 서 있는 모습이 거대한 성채처럼 보인다. 관제묘(关帝庙)의 열린 문으로 관우(关羽)의 조각상이 보였다.

  
차오저우 성벽 가운데 자리잡은 베이거 입구
ⓒ 최종명
차오저우

사당 문으로 관우의 늠름한 모습과 휘날리는 수염이 보인다. 달리는 차량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민중들의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옆에 관평(关平)이 서 있는 모습도 얼핏 보인다. 양 옆을 보좌하는 또 하나는 아마 주창(周仓)일 것이다.

그 오른쪽으로는 쉬엔텐거(玄天阁)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누각 중심에는 현천상제(玄天上帝)의 입상 하나가 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긴 칼을 걸친 모습이다. 주역(周易)에서는 사방의 보호신이 있어 각각 동청룡(东青龙), 서백호(西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라 한다. 차오저우 사람들은 성곽 북쪽에 베이거를 짓고 북제(北帝)를 신봉해 누각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

또 옆에는 높이 7미터의 불탑 하나가 빛을 내며 보이는데 돌로 만들어진 불교식 등대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멀리 강변을 따라 고기잡이를 갔던 배들이 이 탑을 보고 귀가하게 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조명은 붉지만 이 탑만큼은 흰색 조명을 비추니 더 돋보인다.

강변 길을 계속 걸어 항구 앞까지 도착했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식당 하나가 있다. 횟집이나 포장마차처럼 물고기와 야채 등을 진열해 둔 곳으로 가니 이름도 모를 민물고기들이 많다. 이곳 차오저우 사투리도 꽤 알아듣기 힘들다. 오늘은 생일. 혼자 자축하려고 맥주와 민물고기 요리를 시켜서 밤 늦도록 앉아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차오저우 한장 강변에 있는 해산물 파는 간이 식당
ⓒ 최종명
차오저우

물고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탕에 밥을 말아서 먹고 맥주 한잔에 안주로 고기비늘(鱼鳞) 요리를 먹었다. 아마도 생일이라 뭔가 특별한 것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특이하게 비늘로만 만든 요리를 시켰는데 의외로 맛있다.

이 지방에는 '차오산샤훠저우(潮汕沙锅粥)'라고 하는 유명한 게죽 요리가 있다. 예전에 광저우(广州)에서 먹었던 게 생각나서 입맛을 다졌지만 강변 식당에서는 아쉽게도 없었다. 게를 넣고 쌀을 으깨어서 야채와 함께 만든 죽. 남방에 가면 한여름 밤에 식당마다 모두들 맥주에 곁들여 먹는 이 게죽이야말로 최고의 별미가 아닐까 싶다.

숙소로 돌아왔다. 인터넷이 안 되는 호텔이다. 주변 PC방에 가니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여권을 보여주고 1시간 동안 인터넷을 했다. 오늘 하루 쓸쓸한 생일날. 그래도 또 내일 일정도 챙기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정보도 기본적으로 번역하고 동선도 챙겨야 하는 여행객으로서의 기본적인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9월 9일 아침, 시내 동쪽에 있는 자띠샹(甲第巷) 골목을 찾았다. 차오저우의 전형적인 옛 민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띠팡(甲第坊)을 들어서면 명청(明清) 시대의 풍격(风格)이 가득한 골목과 집들이 가지런하게 어우러져 있다.

석회(石灰)와 모래흙(沙土)으로 벽과 집의 골격을 쌓았다. 저택(府第)마다 부유한 차오저우 상인들의 자유분방한 마인드를 반영하듯 흰색 담장(白墙)에 회색기와(灰瓦)가 외부를 장식하고 있다. 또 문과 벽 곳곳에 새, 사자, 사슴, 태극 문양을 비롯 풍부한 정서가 담긴 채색화들로 가득하다. 한편의 아름다운 벽화 전시관을 보는 듯하다.

  
차오저우의 옛 가옥 마을 자띠샹, 문 입구에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 최종명
차오저우

차오산 지방의 독특한 가옥형태를 일러 '사점금(四点金)'이라 한다. 베이징의 사합원(四合院)과 비슷한 구조로 사각으로 되어 있으며 집 안에 작은 우물이 자리잡고 있는 형태다. 특이하게 이곳 가옥은 약간 안으로 움푹 들어가서 대문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을 '비두(壁肚)'라 한다. 이곳 양 옆에는 화려하고 상징적인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집집마다 길조나 장수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지만 벽들이 오래돼 갈라지고 있는 곳도 많다. 벽에 낀 이끼가 다소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곳곳에 꽃들이 펴 있어 동네가 아담해 보인다. 샹(巷)은 골목길로서 행정 상 최소단위라고 보면 된다.

'띠(第)'는 저택이나 가옥이라는 말이다. 루린띠(儒林第), 따푸띠(大夫第), 한린띠(翰林第), 즈정띠(资政第), 와이한띠(外翰第) 등 관직을 딴 우아하고 패기가 넘치는 문체로 대문 위에 썼으니 당시의 위엄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차오저우의 옛 가옥 마을 자띠샹, 문 입구에 그려진 그림과 골목 거리 모습
ⓒ 최종명
차오저우

이 좁은 골목길에서도 다시 좌우로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 또 있는데 그런 길은 가로길이라 해서 '헝(横)'이라고 한다. 이헝(一横), 얼헝(二横), 이런 식의 좁은 길로도 들어가 보면 작은 문이 있고 그 안에 집들이 있다.

골목을 벗어나면 재래시장 하나가 있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도 있고 생선과 고기를 파는 곳도 많다. 고기를 칼로 빠르게 썰어서 파는 모습, 토막 내어 파는 생선에 핏물이 흥건한 모습을 보니 기운이 샘솟는다

골목길인 샹(巷)을 벗어나 더 큰 길이 '루(路)'나 '제(街)'다. 윈환루(云环路)와 타이핑루(太平路)를 가로로 연결한 골목길 중 하나가 자띠샹이다. 이밖에 옛날 고성 안에는 많은 가옥촌이 있다. 여우(猷), 자오(灶), 이(义), 씽(兴), 자(家), 스(石), 구(辜), 정(郑), 안(庵) 등의 이름이 들어간 옛 풍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라오제샹(老街巷)들이 많이 있다.

  
차오저우의 옛 가옥 마을 자띠샹, 담장 너머로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 최종명
차오저우

이런 인문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은 옛날부터 꽤 유명했던가 보다. 청나라 건륭제 시대의 차오저우의 최고책임자 지사(知府)이던 주석훈(周硕勋)이 쓴 <조주부지(潮州府志)>에 보면 '명문귀족들은 저택을 소유하고는 반드시 가묘를 세웠으니 아주 웅장하고 아름답다(望族营屋庐,必建立家庙,尤加壮丽)'고 했다.

큰 길로 나와 북쪽으로 100미터 정도 걷다가 다시 동쪽으로 100미터 지점에 당나라 시대 세워진 사원인 '카이위엔쓰(开元寺)'가 자리잡고 있다. 당나라 현종 시대인 개원(开元) 26년인 738년에 처음 건축됐다.

  
차오저우의 당나라 시대 사원 카이위엔쓰 정문 앞 거리
ⓒ 최종명
차오저우
 

당 현종은 불교 보급을 위해 전국 각지에 카이위엔쓰라는 이름의 사원을 짓거나 기존 사원의 이름을 변경했다. 당시 전국에는 같은 이름의 사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것이다. 광둥(广东)성 차오저우를 비롯해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 취엔저우(泉州), 안후이(安徽)성 쉬엔청(宣城), 허베이(河北)성의 정딩(正定), 싱타이(邢台), 저장(浙江)성의 우시(无锡) 등에 카이위엔쓰는 많다.

  
차오저우의 당나라 시대 사원 카이위엔쓰 천왕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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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저우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도 그 본래의 이름인 '카이위엔'이라는 이름이 쓰여졌다. 그만큼 중국 역사상 5대 태평성세 중 하나로 알려질 만큼 당 현종 시대에 정치와 사회가 안정됐던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대체로 혼란의 시기를 종식하고 전국을 통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룩된 성세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나라 유방의 통일 이후 무제 시기의 '문경지치(文景之治)', 당나라 이연의 통일 이후 태종 시기인 '정관지치(贞观之治)', 현종 시기인 '개원성세(开元盛世)', 명나라 주원장의 통일 이후 영락제 시기인 '영선지치(永宣之治)', 그리고 청나라 초기 강희, 옹정, 건륭의 3대에 이르는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가 바로 중국 역사상 가장 안정 성세를 보였다고 한다.

카이위엔쓰는 여러 번 중건되긴 했지만 광둥성 동부지방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12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내부는 굉장히 오래된 사원의 모습을 띄고 있다. 찾아오는 신도들도 많고 승려들도 많아 보인다.

사원으로 들어서면 천왕전(天王殿)에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이 말은 불경인 <반야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에 나오는 말로 '탐욕을 버리고 고해의 바다를 벗어난다'는 의미로 20세기 초 유명한 미술가이며 서예가인 려우하이쑤(刘海粟)의 글씨체라 한다. 그 편액 위로 지붕에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고 그 가운데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차오저우의 당나라 시대 사원 카이위엔쓰 천왕전, '도일체고액' 편액이 보이고 그 안에 미륵불 입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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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저우

천왕전 안에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화사하게 웃으며 다감한 모습의 미륵불(弥勒佛) 전신상이 있다. 그래서인지 바로 위로는 갑골문(甲骨文) 연구의 대가로 고문학자인 상청줘(商承祚, 1902~1991)가 쓴 '개대환희(皆大欢喜)' 편액이 걸려 있다.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의 글자체가 석가모니를 이어 중생을 계도할 미래불의 부처를 잘 묘사하는 듯 보인다.

대웅보전(大雄宝殿)으로 탁발행각(托钵行脚)의 모습을 한 많은 승려들이 들어간다. 수행 중인 승려들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식사를 하는 시간인 듯하다. 그들을 따라 가니 영동불가원(嶺東佛家院)이 나타난다. 이곳은 불자 제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다시 돌아 나오는데 열두어 살 돼 보이는 교육생 한 명과 마주쳤다. 맑은 웃음을 띄며 가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훌륭하게 자라서 많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불쑥 생긴다. 종교의 자유가 그다지 만끽되지 않는 사회에서 불자로 살아가는 일이 선망의 대상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큰 사원에는 교육원이 함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보전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지장각(地藏阁)과 관음각(观音阁)이 있다. 역시 관음각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의 불상이 있다. 그 위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나오는 말인 '온갖 고해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감로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甘露法雨)'을 편액으로 걸었다.

대웅보전 뒤는 장경루(藏经楼)가 있다. 나무들이 많아 숲과 같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오로지 향이 피어 오르는 쾌청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예를 올리고 있다. 양 손으로 불을 붙인 향 3개를 머리에 붙이고 3번 절을 한다.

  
차오저우의 당나라 시대 사원 카이위엔쓰 장경루
ⓒ 최종명
차오저우

이곳은 청나라 건륭제의 <건륭판대장경(乾隆版大藏经)>이라 불리는 중국의 1급 문물인 목판 대장경을 보관했던 곳이라 한다. 용 문양이 새겨진 724개의 상자에 7240권의 대장경을 담았다고 해서 속칭 <용장(龙藏)>이라 불리기도 한다.

낮 12시가 지났다. 남방의 상인도시이면서 문화도시인 차오저우를 떠나야 한다. 아쉬운 것은 근대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흔적을 많이 찾아보지 못한 것이다. 다음에는 중국의 10대 상방과 더불어 차오저우의 진정한 상인정신을 둘러볼 기회를 만들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1시 30분 버스를 탔다. 광둥 성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푸젠 성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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