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중국발품취재75] 장저우 문묘, 마조묘, 자란먀오

푸젠(福建) 성 남부 도시, 국가역사문화도시(国家历史文化名城)이기도 한 장저우(漳州)에 왔다.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화루(新华路) 거리에는 ‘원창(文昌)’이라는 팻말이 붙은 누각이 서 있다.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 밤을 보냈다.

중국정부는 2007년 9월 전국에 있는 110개 도시를 국가가 관리하는 역사문화 도시로 선정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장저우이다. 간저우(赣州), 차오저우(潮州)도 선정됐다. 최근 남방의 문화도시를 계속 여행하는 중이니 참으로 행복하다. 장저우 역시 낯선 도시이나 문화도시의 풍모가 곳곳에 남아있어 기대가 크다.

다음날인 9월 10일 아침, 역사 문화 거리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살피면서 거리를 걷는데 ‘도관고금(道冠古今)’과 ‘덕배천지(德配天地)>라고 적힌 패방(牌坊)이 있는 골목이 나타났다. 이곳은 옛 장저우에서 번화했던 거리이다.

약국과 점포들이 그 예전 번성했던 기억을 간직하며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한 건물에는 아마도 문화혁명 시대의 흔적인지 노란 글씨로 ‘마오주석만세(毛主席万岁)’가 남아있다. 여행객의 눈에는 생경하고 기분이 내키지 않는 시선임에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다.

  
장저우 공자사당인 문묘 앞 거리의 활기찬 모습과 패방
ⓒ 최종명
장저우

바로 옆에는 공자의 사당인 문묘가 자리잡고 있다. 셔우원시루(修文西路)의 문묘는 옛날에는 1만5천 평방미터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지금도 그다지 작지는 않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문을 들어서니 대성전(大成殿) 앞에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공자의 석상이 인상적이다. 돌 하나로 깎은 듯 장신의 공자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턱수염, 양손을 도포자락에 감추고 오므린 모습까지 참으로 반듯한 석상이다.

한 사람도 없는 대성전 안에도 공자상이 있고 연분홍 빛깔의 꽃과 파인애플, 바나나 등 과일이 놓여있는데 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신에 녹차로 매번 공양을 하는 듯 찻잔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공자상 아래에는 넓은 공간을 두고 기린(麒麟) 조각상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우리가 걸출한 인물이란 뜻으로 쓰는 ‘기린아’의 유래가 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용처럼 신화 속 동물로 그 몸 전체는 비늘이 뒤덮고 있고 머리는 뿔 달린 사슴과 같고 꼬리는 소와 같다. 봉황(风), 거북(龟), 용(龙)과 더불어 신성시 하는 동물이다.

  
장저우 공자사당 문묘의 대성전 안의 공자조각상 모습, 연분홍 조화가 인상적이다
ⓒ 최종명
장저우

기린 앞에는 거북 등에 한 발을 딛고 있는 학 조각상이 또한 각각 서 있다. 원래 뱀까지 함께 있으면 더욱 길조이며 장수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 문묘에서 이런 신화 속 동물이나 상징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남방도시의 문화적 전통과 많이 관련되는 듯하다. 대신, 대성전 밖에는 용 문양이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의 석주들만이 옛 위용을 증명하고 있다.

  
장저우에 있는 팔괘루라 불리는 웨이전거와 팔괘보정
ⓒ 최종명
장저우

문묘를 보고 나와 역사 거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아무래도 지도를 보는 감각이 많이 약해졌거나 지도가 잘못된 것이리라.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져우룽장(九龙江) 방향으로 향해 갔다.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웨이전거(威镇阁)을 보기 위해서이다.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올 때 높이 솟은 누각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웨이전거는 일명 팔괘루(八卦楼)라 불린다. 52미터에 이르는 3층 누각 안에는 장방형의 암석으로 8각형으로 모양을 잡고 각각 음양 8괘를 상징하는 말인 ‘건(乾)’, ‘곤(坤)’, ‘진(震)’, ‘간(艮)’, ‘감(坎)’, ‘태(兑)’, ‘손(巽)’, ‘리(离)’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는 것이 아닌가. 팔괘보정(八卦宝鼎)만이 이 누각의 성향을 가름할 수 있다.

이 팔괘루 바로 옆에는 아주 독특한 사당이 하나 있다. 검붉은 벽에 ‘제천궁마조묘(齊天宮媽祖庙)’라고 적혀 있는 곳은 사당 뒷면이다. 굳이 옛 한자로 다 쓰고 ‘묘’만 간자체로 쓴 것이 약간 어색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지붕 위에 조각된 문양들을 보면서 그 느슨한 태도를 돌연 바꿔야만 했다.

가운데 떠오르는 해를 양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두 마리 용 좌우로 다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다른 자세로 날아오를 듯 서 있다. 금빛 비늘, 붉은 머리와 꼬리, 초록빛의 뿔을 하고 있는 용을 보니 정말 원색을 가지고 이렇게 영롱한 상징물을 새길 수 있을까 싶다. 또 한 쌍의 용은 초록색 비늘이다. 그 아래 아홉 명의 노인, 장수, 여인들 형상의 사람들이 말, 사자, 호랑이, 코끼리, 산양 등을 타고 있는 모습도 가관이다.

  
장저우 마조묘 지붕에 새겨진 용과 태양 등 민속신앙 이미지가 강한 조각상
ⓒ 최종명
장저우

천상성모(天上圣母), 천후(天后)라고 하는 마조(妈祖)를 신지(神祗)로 모시는 중국민간신앙의 하나이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마조의 이름은 임묵(林默, 960-987)으로 바다의 신으로 알려져 있어서 푸젠 지방의 선원이나 어부, 상인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부각된 것이다. 그녀는 승천해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는 신앙으로 발전했다.

그녀는 송나라 시대 독특한 문화풍습을 지닌 사회계층인 푸젠 성 왕족(望族) 집안의 1남 6녀의 막내로 태어나 글을 배워 사리에 밝고 능통했다고 한다. 16세가 되자 사람들이 신령한 아가씨(神姑)이자 용왕의 딸(龙女)로 불리게 되고 송 태종 987년 그녀가 28세이던 때 사람들에게 기적과 예언을 남기고 승천해 늘 바다의 액운을 관리하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이 됐다고 전한다.

  
장저우 마조묘 사당에 있는 천상성모인 마조상
ⓒ 최종명
장저우

푸젠 성 남부지방에서 유래된 이 민간신앙은 푸젠 뿐 아니라 타이완(台湾)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특히 타이베이(台北) 동북쪽 해안도시 지룽(基隆) 시에는 산 위에 11개의 분궁(分宫)이 있는 거대한 천후궁이 건립될 정도로 그 신앙이 뿌리깊다고 한다. 또한, 바다를 끼고 있는 대륙 곳곳에도 마조 사당인 천후궁이 있다. 푸젠 바닷가 도시는 물론이고 칭다오(青岛), 텐진(天津), 산하이관(山海关)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마조묘 입구로 돌아가니 정문 편액에는 ‘자후장대(慈护漳台)’라는 금도금 글씨가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 가운데 천후 마조가 마치 용왕이나 황제처럼 서 있다.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인데다가 뒷면 벽화에 노랗고 연두색깔로 채색된 용의 발에 ‘해(日)’와 ‘달(月)’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정말 해와 달을 주무르고 있는 신의 모습 그대로라 하겠다.

온통 붉은 빛과 금빛이 너무 찬란하고도 휘황해 눈이 다 붉어질 정도다. 기둥마다 용이 휘감고 있고 벽에는 등뒤에 깃발을 꼽은 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있기도 하다. 그 옆에도 사당처럼 금빛 찬란한 치장을 하고 조각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본두공(本头公)을 모시는 곳이다.

  
장저우 마조묘에 있는 본두공 사당
ⓒ 최종명
장저우

그의 이름은 백본두(白本头)로서 명나라 시대 최고의 항해사인 정화(郑和) 부대의 부하로 항해 도중 필리핀에서 현지인과 결혼하고 살았던 최초의 필리핀 화교로 알려져 있다. 학 두 마리와 소나무, 붉게 솟은 태양과 높은 산이 그려진 벽화가 인상 깊다.

몇 평 되지 않는 좁은 사당 안에서 한참 이것저것 신기한 듯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한다. 아무래도 사당 안을 촬영하는 것은 좀 무례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로 옆에 5층 쌍탑 옆에 십자가가 있는 예배당이 하나 있어서 놀랐다. 전통 민간신앙 사당 옆에 있으니 굉장히 낯설어 보인다. 아마도 오랫동안 마조의 붉은 빛 감도는 색상에 취해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팔괘루와 마조묘, 예배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함께 위치하는 것이 오히려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역사 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문묘 근처를 지나 지도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거리 팻말 하나가 보인다. 드디어 역사거리(历史街)를 찾았다. 이곳 거리는 당나라 시대부터 조성됐는데 명나라 시대부터 이어온 돌로 만든 패방 몇 개가 우뚝 서 있다.

  
장저우 역사거리에 있는 상서탐화 패방
ⓒ 최종명
장저우

예부터 패방을 중심으로 구분해 골목 이름을 나누는 것이 이곳 푸젠 지방의 독특한 마을 구조이기도 하다. 패방을 자세히 보면 돌로 만든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 중에도 명나라 시대인 1605년에 만들어진 ‘상서탐화(尚书探花)’ 패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과 뒤에 각각 상서와 탐화가 각인돼 붙여진 이름이다. 글자 아래 돌 위에는 한자도 많이 써 있지만 고관대작이나 선비인 듯한 사람들의 행렬을 조각한 것이 아주 정밀하다. 탐화 위쪽에는 마치 현판 같은 모습으로 흐릿해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사영(思榮)’이라는 글자가 있고 용인지 뱀인지 둘러싸고 있다. 이렇듯 높이 11미터 크기의 패방 속에는 꽤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역사거리의 가옥 구조는 ‘죽간착(竹竿厝)’이라 부르는데 집들이 모두 대나무처럼 쭉 뻗은 고층구조로 이뤄져 있다. 집집마다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 구조로 생활하는 것이 아마도 이곳 기후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작은 사당 간판이 보였다. 장저우 민가에 세워진 중국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사당인 가람묘(伽蓝庙)이다. 단 3평방미터 정도의 크기로 언제 누가 세운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백 년은 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 사당은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가 최근 이 지역을 역사거리로 만들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라 한다. 이후 이 기네스 기록을 조사해보니 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당이 6평방미터 규모였다고 하니 아마도 세계에서도 가장 작은 사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스샹(打石巷) 골목 사당 입구에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팻말이 있으니 말이다.

  
장저우 가람묘, 왼쪽은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안에서 입구 계단 쪽을 본 모습
ⓒ 최종명
장저우

이 지역 가옥구조와 거의 비슷한 사당이라 계단을 올라갔더니 문이 잠겨 있다. 이런 사당을 흔히 보기 어려운데 안타까운 마음에 떠나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잠시 서 있으니 갑자기 문이 열린다. 바깥에 인기척이 있으니 사당 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아 사람이 사는구나. 사당을 보러 왔다고 하니 문을 열어준다. 계단을 올라가니 왼편으로 사당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아주머니가 혼자 사는 방과 부엌이 보였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동거 중이다.

사당 안은 정말 좁다. 가로는 1미터, 세로는 기껏 3미터가 될까 말까 할 정도다. 한쪽 벽에 가람의 불상이 앉아있다. 가람은 중국에서 생성된 개념으로 사찰을 수호하는 신이며 관리자이다. 당나라 이후 융성한 불교 사찰을 지키는 신으로 가람신이나 가람왕이라 칭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원이라는 장저우의 가람묘
ⓒ 최종명
장저우

가람 불상은 마치 상감들이 쓰던 모자를 쓰고 수염이 길고 어깨를 감싼 도포자락이 온몸을 다 덮은 모습이다. 향이 피어 오르고 있으며 칼로 벤 자욱이 변색된 사과 하나가 놓여 있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어두컴컴한데 봉긋한 모양의 조명등 2개가 불을 밝히고 있다. 유리병에 빨간 장미꽃이 꽂혀 있고 도자기 병 2개에는 행운목이 각각 푸르른 잎사귀를 뽐내고 있기도 하다.

벽에는 복을 염원하는 물건들이 걸려있다. 접복(接福)이라 적힌 장신구들은 중국의 서민들이 사는 집에 걸려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벽걸이 시계도 하나 걸려 있고 입구 문에도 빨간 종이에 ‘풍조우순대사복(風調雨順大赐福)’이라 쓴 글씨가 붙어있다. 바람과 비를 잘 다스려 큰 복을 내려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 밖으로 작은 베란다가 있다. 향을 피우는 불을 지피는 화로가 하나 놓여있고 바닥에는 화분 10여 개가 가지런히 햇살을 받고 있다. 아래에서 봤던 깃발들이 대나무에 매달려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장저우 역사거리에 있는 가람묘
ⓒ 최종명
장저우

이 가람 사당 안에 있으니 완전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앞뒤로 열린 문으로 환한 햇살이 너무 강해 바깥의 깊은 심도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사당 안의 모습은 사실 많은 사원들에서 봤던 소도구들에 비해 그 종류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훨씬 가까이에서 눈과 코로 그 느낌을 다 보고 맡으니 아주 다른 경험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람’이 주는 뉘앙스는 신의 경지라기 보다는 마치 어느 큰 건물의 자금 관리 책임자로부터 출생했으니 더욱 인간적인 소통을 한 듯하다. 그래서, 밉지 않은 인상이니 이곳을 찾는 신도들도 친근한 가람 앞에서 솔직하고도 흔쾌히 자신의 복을 빌어도 좋을 공간이 아닐는지.

다시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다. 주인 아주머니를 찾아 물어보려는데 열심히 청소를 하는 중이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좁은 공간에서 훑어 보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

역사거리의 추천 경로를 따라 갔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유명한 상업거리였던 곳이라 그런지 백년노점(百年老店)이라고 붙은 가게들이 있다. ‘텐이(天益)’라는 이름의 약방을 지나 중산공원 건너편으로 작은 골목길이 보인다.

뤄춰샹(罗厝巷) 골목으로 들어서니 다른 곳에 비해 거리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고 집들도 꽤 넓으면서 단층구조인 것이 일반인들이 살던 곳은 아닌 듯하다. 이 부근은 장저우 부아(府衙)가 있던 곳이기도 한다. 골목 끄트머리에 가니 쥐샹위엔(菊香苑)이라는 팻말이 붙은 집이 보인다. 국화 향기 그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름만으로도 향긋하기 그지 없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