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중국발품취재76] 푸젠 성 푸저우와 저장 성 원저우

9월 11일 푸젠(福建) 성 푸저우(福州)의 아침을 맞았다. 터미널에 가서 다음 행선지인 원저우(温州) 행 티켓을 예매했다. 역사문화 도시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지도를 보고 궁리를 해도 별로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핸드폰 배터리가 고장 났으니 새로 살 겸 시내 번화가 근처의 '삼방칠항(三坊七巷)'에 가자고 결정하고 도로 표지판을 보며 걸었다.

우이루(五一路), 우쓰루(五四路), 빠이치루(八一七路). 보기에도 벌써 역사적 사건이 떠오른다. 도로 이름이 '3.1운동', '4.19혁명', '5.16쿠데타'처럼 사건과 관련됐다고 보면 된다. 기억하기 좋을 것이라고 해서 붙인 것인가, 역사의 교훈으로 정한 것인가. '五一'는 국제노동절, '五四'는 1919년의 중국 반외세반군벌 시민운동, '八一七'은 푸저우 해방일이라 한다.

정말 한참을 찾아 헤맸다. 대도시치고는 도로 표시가 엉망이다. 고성 남쪽이라는데 도대체 고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가로 세로 몇 번 돌고 나서 보니 번화가 한쪽 귀퉁이 골목 입구 바오안(保安, 경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한 명이 앉아 있는 곳에 타샹(塔巷) 팻말이 조그맣게 보인다.

  
푸저우 삼방칠항 중 하나인 타샹 입구 지붕위에 걸린 탑과 후문 쪽에서 지키고 있는 바오안
ⓒ 최종명
푸저우

푸저우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시내 문화 거리에 3곳의 패방(牌坊)과 7곳의 골목(巷)을 묶어 옛 명나라부터 전통가옥마을이 조성돼 있다. 그 중 한 골목이 바로 '타샹'이다. 설마 번화가 바로 옆에 붙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진팡(衣锦坊), 원루팡(文儒坊), 광루팡(光禄坊)은 골목 입구 등에 돌로 만들어진 영역 표시를 하는 패방이다. 그 사이 골목에 '샹(巷)' 7곳이 있는데 양차오샹(杨桥巷), 랑관샹(郎官巷), 타샹(塔巷), 황샹(黄巷), 안민샹(安民巷), 궁샹(宫巷), 지비샹(吉庇巷)이 그것이다. 그 중 한 곳을 찾았으니 다 찾은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좁은 골목 사이로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전선이 엉켜 있다. 낡은 티가 많이 난다. 바로 10m 거리에 세계적 패스트푸드점들이 즐비한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다. 벽에는 미국산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집집마다 인적이 거의 없어 보이고 문은 꼭 닫혀 있다. 다정다감한 전통적인 느낌이 살아있지 않아서 이상했다.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푸저우 타샹 골목길의 벽들
ⓒ 최종명
푸저우

100여m 골목길을 지나니 아주 앙증스런 8층탑이 골목 입구 지붕 위에 살짝 보이고 그 아래 '타샹'이라고 쓴 곳이 나타났다. 가만 보니 탑의 아랫부분 반 정도가 토막 난 상태로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당나라 이후 조성된 마을인데 언제 탑이 만들어졌는지 또 어느 때 탑이 반 토막 났는지 알 수 없는데 1950년대에 이르러 이곳 입구 지붕에 고정시켜 관리해오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이상한 것은 이곳 입구에도 바오안 한 명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좀 뭔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영 알쏭달쏭한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지킨다는 것은 어느 정도 통행을 감시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째려보는 눈치가 보여 다시 되돌아 나왔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이번에는 황샹이 있다. 이 골목길 100여m를 다 빠져 나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도로가 완전히 다 파헤쳐 있기 때문이었다. 집들은 무너지고 철거된 분위기이다. 거리의 가게 주인을 대상으로 지역 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분위기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캠코더 뷰파인더에 바오안 복장을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묻는다. 외국인인데 여행 중이라 했더니 여권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닌가. 공안(公安) 경찰도 아니고 줄 이유가 없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푸저우의 삼방칠항 골목길과 가옥들을 철거하는 공사 중
ⓒ 최종명
푸저우

차분하게 "시내에서 돌아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하며 이유를 물었더니 이곳은 촬영금지 구역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그런 표시가 없다고 하면 일이 꼬일 터.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지 하니 더 이상 여권 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공사 중인데 외국 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고 거듭 이야기하기에 눈치를 챘다. 지역 주민의 입장을 무시하고 강제로 철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바오안은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로 갔다.

큰일까지야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공연히 귀찮아질 뻔했다. 그래도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지우라는 이야기는 없어 다행이다. 다시 골목골목을 일일이 헤집고 다니기 어려워졌다. 다시 그 바오안을 만나면 낭패가 벌어질 것이다. 큰 길로 나가면서 보니 빨간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시 정부는 삼방칠항 공사를 통해 주민을 위해 공헌하려 한다'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봐서 시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듯하다. 설마 옛 골목의 정취를 다 부수지는 않겠지만 도시화에 따른 피해이니 부디 문화도시로서의 정서까지 다 뭉개지만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다시 푸저우에 오면 살펴봐야지 하는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바오안이 무례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방해 받은 것은 마음 상할 일이기는 하다. 게다가 푸저우 시내에서 볼만한 명소라고 겨우 하나 정하고 헤매다가 찾아왔는데 아쉽다.

결국 골목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고 큰 길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역사문화 거리의 분위기라도 익혀보려 했다. 주소가 황샹 4호라고 적힌 집 간판에 곽백음(郭柏荫) 고거가 보인다. 그는 19세기 중엽 청나라 도광제 시대 한림원(翰林院)의 학사에 오른 인물이다. 이렇듯 푸저우 역사와 인물, 민가의 구조와 생활 문화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이곳 팡샹 지역에는 유명인들의 옛집이 아주 많고 민가와 정원이 많아 명청 시대 건축박물관'이라고 소개돼 있다.

허물어진 건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거리를 무신경하게 걷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 어떤 불만이나 아쉬움을 토로할 곳도 없다. 푸저우는 예로부터 용수나무가 많아 룽청(榕城)이라 부르듯 거리에는 높이가 10m는 넘어 보이고 곧게 뻗은 나무들만 발로 툭툭 쳐볼 따름이다. 나무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는 모자를 것이니 좀 미안하긴 하다. 다만 나무 너만이라도 잘 살아남으라는 충고를 담은 마음이니 나무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폐허처럼 철거된 푸저우 시내 옛 골목길의 집들과 거리
ⓒ 최종명
푸저우

삼방칠항의 중심거리는 남북으로 길게 난 난허우제(南后街) 거리를 거슬러 좌우로 허물어져 가는 골목을 보며 걸었다. 가끔 벽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다시 큰 길로 나가 핸드폰 배터리를 48위엔(약 6500원) 주고 하나 샀다. 며칠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했더니 좀 답답했다. 영수증을 써주면서 고장 나면 이것 들고 다시 오면 교환해 주겠다고 한다. 착한 아가씨다. 하지만, 내일이면 이 지방을 떠난다고 했더니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한다. 마치 고장이 날 것이니 각오하라는 듯하다. 아직 고장이야 나지 않았지만 1년 안에만 오면 된다니 고장 나면 진짜 한번 가볼 까나.

9월 중순인데도 남방이라 여전히 덥다. 졸졸 흐르는 개천이 하나 보이고 그 옆에 분위기가 좋은 커피숍이 하나 보였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커피 한 잔하며 여유를 약간 즐겼다. 개천 건너편에 연극학원이 하나 보였다. 혹시 푸젠의 민극(闽剧)을 볼 수 있나 기대하긴 했지만 그저 학교다.

그래서 오후에 민극을 볼 생각으로 난공위엔(南公园) 근처에 있다는 극장을 찾아갔다. 민극은 경극(京剧)과 천극(川剧)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무대극이다. 경극은 베이징에서 봤고 천극은 청두에서 봤으니 민극을 푸저우 보면 좋겠다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애써 찾아간 곳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참 푸저우와는 인연이 신통하지 않다.

  
푸저우 난공위엔 호수
ⓒ 최종명
푸저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난공원으로 들어갔다. 작은 호수가 있고 수풀이 우거진 멋이 있긴 하지만 좀 썰렁하다. 공원 내에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다. 아마도 밤이 되면 이곳에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오는 듯하다. 술집 옆 작은 방에서 드럼과 기타 소리가 요란하다. 밤에 오면 그룹사운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연습 중인가 본데 고즈넉한 공원 산책을 하기에도 그다지 좋지 않다.

호수를 빙 둘러보는데 어린이들이 좋아할 조각들이 나타났다. 거북이, 뱀, 코뿔소를 비롯해 각종 공룡들이 호수 주위에 가득 늘어서 있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한 손에 먹이를 들고 입으로 뜯어먹고 있는 흉측한 공룡이 아주 기분이 나쁘다. 동물 조각 상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세운 것일 터 굳이 이렇게 흉물스러워도 되는가.

  
푸저우 난공위엔의 호수 주위에 있는 조각상들, 거북이와 코뿔소, 먹이를 뜯고 있는 공룡 등이 있다
ⓒ 최종명
푸저우

영 좋지 않은 기억이다. 빨리 호텔로 돌아가서 쉬는 것이 좋겠다. 푸저우 주변 1시간 거리에는 산과 폭포, 바다가 두루 있는데 아무래도 게을렀던 듯하다. 대도시에 오면 괜히 자꾸 편안하게 쉬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장기 여행의 피로감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혼자 달래본다. 새벽 3시까지 글도 쓰고 편집도 하고 그러느라 늦게 잤다. 잠도 잘 안 와서 뒤척인 시간도 한 시간은 됐을까.

그랬더니 문제가 생겼다. 늘 5개월 동안 제 시간에 잘 일어났는데 눈을 떠 시계를 보니 버스시간이 딱 20분 남은 것이 아닌가. 짐은 하나도 안 쌌는데 큰일이다. 순간 판단. 여기는 중국이다, 한번 해보자. 급히 짐을 배낭에 쏟아 넣고 묶는데 5분이 휙 지났다. 모자 쓰고 배낭 메고 열쇠 챙겨 나와 프런트로 내려가니 체크아웃 하는 사람들이 잔뜩이다. 시간 없으니 빨리 해달라고 했다.

체크아웃 하면서 도대체 느릿한 직원의 움직이는 모습이 오늘따라 심각하다. 버스 탈 시간이 지났다고 사정을 하는데도 남일 보듯 하는 태도는 이미 각오했던 바 제발 버스가 출발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대했다. "부야오파퍄오(不要发票)(영수증 필요 없다)"고 하고 뛰어나왔다. 가까운 거리지만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택시도 없다. 그래서 뛰었다. 뒤에는 20kg, 앞에는 5kg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힘이란 힘은 다 빼서 써먹은 듯하다.

횡단보도 무단횡단. 500여 미터 거리를 단숨에 날아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터미널에는 짐 검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다시 배낭을 내리고 다시 메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갔더니 원저우 가냐는 묻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렇다고 하니 빨리 타라고 꾸지람 섞은 호통이다. 그래도 고맙다. 버스가 아직 떠나지 않을 것을 보고서야 마음이 툭 풀렸다.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 지났다.

아침부터 완전 기적까지 만들고 나니 버스에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여기가 중국이고 여행 중이니 망정이지 몰골이 말이 아닌 채로 이렇게 다니는 것은 정말 해선 안될 일이다. 5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꼼작하지 않고 잠을 잤다.

푸젠 성을 지나 저장(浙江) 성 원저우에 도착했다. 숙소를 구하고 인터넷을 켰다. 아는 한국사람이 이곳에서 성형외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화를 거니 통화가 안 된다. 핸드폰 번호가 바뀐 듯해 인터넷으로 한국사람이 참여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물었더니 한국 의사가 있는 것은 맞는데 찾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분명 전 가족이 이사온 것으로 들었는데 찾기가 힘들다.

오후 늦게 숙소를 나와 원저우 나들이를 했다. 야경이라도 구경할 요량이다. 강변도로인 왕장루(望江路)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다. 그 중에 아리랑(阿里郎)이라는 한국음식점 간판이 있어서 오랜만에 삼겹살에 된장찌개까지 먹었다.

  
원저우 강변 한국식당(좌) 등과 양고기 꼬치
ⓒ 최종명
원저우

왕장루에서 보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우장(瓯江)이 흐르고 강 중심에는 장신위(江心屿)라는 섬이 있다. '위(屿)'라는 말도 섬인데 다소 작은 섬을 이를 때 쓴다. '다오(岛)'는 다소 큰 섬을 이르니 우리가 '도서(岛屿)' 지방이라고 하면 크고 작은 섬이 많은 지방을 이를 것이다.

밤 깊고 강 건너편 야경이 멋지다. 섬 가운데 높은 탑 두 개가 동서 좌우로 둥타(东塔)와 시타(西塔)으로 서 있다. 이 장신위는 중국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한 4곳 중 하나이다. 나머지는 져우룽장(九龙江) 하류의 푸젠 샤먼(厦门)에 있는 구랑위(鼓浪屿)와 하얼빈(哈尔滨) 시 숭화장(松花江)에 있는 타이양다오(太阳岛), 창사(长沙) 시 샹장(湘江)에 있는 쥐즈저우터우(橘子洲头)이다.

  
원저우 강변에서 본 장신위 섬에 있는 탑 야경
ⓒ 최종명
원저우

타이양다오에서는 세계적인 빙등제(冰灯节)가 열리고 쥐즈저우터우와 구랑위 역시 유명한 관광지인 것처럼 장신위 안에도 놀이공원이 있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밤에 왔으니 당연히 공원 구경을 하기 어려웠다. 들은 바에 따르면 카이펑(开封)에 있는 종합문화세트장인 청명상하원(清明上河园)과 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다고 한다. 멀리 마텐룬(摩天伦)이라 부르는 거대한 회전바퀴도 조명을 받아 위용을 밝히고 있다.

  
원저우 강변에서 본 장신위 섬 놀이공원 야경 모습
ⓒ 최종명
원저우

배를 타고 섬으로 갈 수도 있고 다리를 따라 걸어가도 되는 가 보다. 강변 길을 따라 원저우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고급레스토랑들이 성황 중이다. 정말 부자동네임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도시가 있듯이 중국에서는 원저우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강변 식당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강 바람을 맞으며 한참 앉았다. 생선구이 한 마리와 오랜만에 양고기 꼬치를 시켜 먹었는데 서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보니 맛도 다르고 굽는 방법도 다르다. 생선도 비린내가 좀 나는 것이 영 실패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