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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78] 루쉰의 고향 샤오싱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샤오싱(绍兴)으로 갔다. 2시간 남짓 도로를 달리는 중에 비가 점점 그치고 있다. 7월에 시안(西安)에서 만났던 유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숙소를 정하고 나니 다시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약속 장소로 가서 한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또 맥주를 한잔했다. 루쉰(鲁迅)의 고향. 이곳 정보를 많이 얻었다.

9월 19일 아침, 시내버스를 탔더니 금세 루쉰 고향 마을(鲁迅故里) 앞에 세워준다. 빗물에 젖은 거리에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입구 담벼락에 왼손에 든 담배의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의 루쉰(1881~1936) 초상화가 있다. 여느 다른 곳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달리 흑백의 판화 같은 분위기는 정말 대문호의 가치를 대변하는 듯하다.

루쉰은 필명인데 원래 이름은 저우장셔우(周樟寿)이고 나중에 다시 저우슈런(周树人)으로 개명했다. 5·4운동 이후 작품활동을 하면서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루쉰이 살던 집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도 있다. 그의 스승 집도 있다.

  
샤오싱 루쉰 고향마을 입구에 있는 벽
ⓒ 최종명
샤오싱


먼저, 조거(祖居)를 찾았다. 약 5백여 미터에 이르는 보행거리 초입이다. 저우자(周家) 라오타이먼(老台门)이라 부른다. 한림원 서길사(庶吉士)를 지낸 그의 할아버지인 주복청(周福清)이 살던 집, '한림(翰林)'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이 대문을 지나면 대청(正厅)인 더셔우탕(德寿堂)이 나온다. 손님들을 접객하는 곳으로 나란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원래는 닝셔우탕(宁寿堂)이었는데 청나라 도광제(道光帝)의 연호 민닝(旻宁)를 꺼려해 개명했다고 한다. 황제 연호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문 하나를 넘어가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샹훠탕(香火堂)이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청색 기와와 흰색 담장의 집 색깔이 고풍스러운데 보슬비가 내리니 운치가 그윽하다. 이곳이 예법을 중시하는 곳인지 모르는 듯 우산을 들고 한 아이가 샹훠탕 앞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역대 조종(祖宗)들의 패위(牌位)가 놓여있고 가운데 초상화 한 점이 걸려 있다. 가운데 주복청이 있고 양 옆에는 두 할머니 손(孙)씨와 장(蒋)씨가 앉아있다. 그 위에는 덕행과 행운이 유구하다는 뜻의  '덕지영형(德祉永馨)' 편액이 있고 벽에는 가훈인 '항훈(恒训)' 두 글자가 보인다. 크게는 배움을 통해 관인의 길을 걷고 작게는 삶 속에서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니 학자 집안의 치가격언(治家格言)으로 적절하고도 간명하지 않은가.

  
샤오싱 루쉰 할아버지 조거 내부 규수방에 있는 악기연습실
ⓒ 최종명
샤오싱


다시 한 칸을 건너가면 실제 생활하던 공간이 나타난다. 좌우로 긴 복도를 따라 침실과 서화실(书画室)은 평범하지만 독특한 것은 딸이 거처했던 샤오제(小姐) 규방(闺房)이다. 침실 외에도 수를 놓는 방인 수방(绣房)과 악기를 연주하는 방인 금실(琴室)도 있다. 친스에는 실제 모형의 아가씨가 전통 옷을 입고 연주하고 있기도 하다. 한 칸 소주방(少主房)도 있지만 여러 칸으로 나누어 규방을 갖춘 것이 매우 특이해 보였다.


불교를 믿었는지 불당(佛堂)도 있고 전고(典库)라는 창고가 있다. 처음에는 책 창고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벽면에 ‘당(當)’이라는 글자가 두 개나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전당 잡은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인 듯하다. 


넓은 주방(厨房)에는 갖가지 도구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큼직한 아궁이와 항아리로 봐서 식구가 꽤 많았던가 보다. 공간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밖으로 나가는 길, 건물 틈 작은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아담하게 자라고 있다.


청나라 건륭(乾隆) 시대인 1754년에 건립됐으니 당시 학자이며 부호의 집 구경을 잘 했다 싶다. 밖으로 나와 신타이먼(新台门)이라 부르는 루쉰이 살던 집(鲁迅故居)으로 갔다. 이 집은 가칭(嘉庆) 시대에 기존 라오타이먼 서편의 집을 사서 건축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두 집은 구조가 엇비슷하다.

  
샤오싱 루쉰고거 앞 거리
ⓒ 최종명
샤오싱


이곳에서는 여섯 친족들이 함께 모여 살았기에 꽤 넓어 보인다. 루쉰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루쉰이 살았던 곳은 이곳 샤오싱 외에도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살았던 베이징과 1927년에 머물던 광저우 그리고 193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살았던 상하이에도 그의 고거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4미터 정도 너비로 미로 같은 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당시 사용하던 우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치 가운데 구멍이 뚫린 주사위 모양 같다. 집과 집 사이는 8각형의 문으로 조성된 것이 독특하다.


한쪽 건물에 중국 유명 판화가이며 후이족(回族)인 자오옌니엔(赵延年)의 삽화도(插图) 전시실이 보인다. <아Q정전(阿Q正传)>을 비롯해 작품 내용을 판화로 제작한 것이다. 루쉰의 저서의 표지들을 장식하고 있는데 한눈에 작품의 성격을 대변할 정도로 인상적인 판화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석구석을 보다가 복도를 따라 나오니 '한여소게(闲余小憩)'라고 새겨진 곳에 다다랐다. 산뜻한 예서체로 조그맣게 편액처럼 적혀 있는데 그 앞에는 연못이고 주위에는 나무들로 무성하다. 사각형으로 된 인공 연못에 나무들과 햇살이 반사돼 비치며 그 위로 떨어진 낙엽들이 점점이 흔들리면서 빗물에 젖기도 한다.


연못을 벗어나니 넝쿨이 엉켜 붙은 높은 담으로 둘러 쌓인 정원이 펼쳐졌다. 이곳이 바로 루쉰이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정원인 바이차오위엔(百草园)이다.


장자였던 아버지 주백의(周伯宜)와 어머니 루루이(鲁瑞) 사이에서 태어난 루쉰은 나름대로 할아버지의 후광을 받아 부유했다. 하지만 수재였던 아버지가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자 관원에게 손을 쓴 할아버지가 투옥되고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 후 급기야 가세가 기울었다. 어린 시절 물 쓰듯 남부럽지 않게 돈을 쓰던 루쉰은 가세가 기울자 세태의 비정(世态炎凉)을 느끼고 18세 되던 해 난징(南京)으로 공부하러 가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것이다.


화원이라기보다는 채소밭에 가까울 정도로 허름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생활한 루쉰은 회고에서 낙원이었다고 할 정도로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 곳이다. 여름에는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기도 했고 겨울이면 눈밭에서 새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귀뚜라미(蟋蟀)를 잡고(捉), 뽕나무오디(桑椹)를 캐고(采), 복분자(覆盆子)를 따고(摘), 하수오(何首乌)를 뽑고(拔) 놀았다고 한다. <백초원에서 삼미서옥까지(从百草园到三味书屋)>라는 글에서 그는 어린 시절 이곳의 전원생활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루쉰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바이차오위엔의 채소밭과 담장
ⓒ 최종명
샤오싱


밭 한가운데 1미터 높이의 바위에 한자로 '百草園'이라 써 있는데 뒷면에는 일어로 '百草の園', 영어로 'BAI CAO GARDEN'로 기록돼 있는 것이 낯설다. 푸른 나뭇잎이 빗물에 씻겨 더욱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나무 뒤 담벼락에 나뭇잎이 달라붙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색깔 그대로의 색감으로 깨알처럼 글들이 새겨져 있다.


옆에는 주가(朱家) 화원이 있다. 원래 바이차오위엔의 일부분이었는데 가세가 기울어 루쉰의 어머니가 이웃에게 넘겼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 옆에 파라솔과 의자가 놓여있다. 여행객들에게 공개하고 차를 파는 가게이기도 하다. 음료도 팔고 구정(古筝) 악기 CD도 판다. 가끔 연주도 하는지 구정이 놓여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니 한가한 분위기다. 사람이 와서 앉기 전에는 관여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눈 인사를 하고 열린 문으로 뒤쪽으로 나가니 개천 하나가 흐르고 있다. 밤이 되면 아마도 은은한 홍등이 켜질 것이니 꽃밭에 파묻혀 물소리도 들으며 현악기 켜는 소리에 맞춰 홍주(红酒) 한 잔 하면 더없이 좋을 그런 분위기이다.

  
샤오싱 루쉰고향의 비샤펑징위엔에 있는 수상무대
ⓒ 최종명
중국
정원을 빠져 나와 루쉰고거 뒤편에 있는 비샤펑징위엔(笔下风情园)으로 갔다.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수상무대(水上戏台)가 나타난다. 물 위에 마련된 무대인데 누각 두 개가 나란히 서서 서로 자신의 모습을 더욱 멋지게 물 속에 드러내려고 자랑하듯 서 있다.

하나는 무대이고 하나는 관람석이니 공연이 열린다면 연못 속에 더 역동적인 자태를 드리우는 것은 아마도 무대가 있는 누각이 아닐까. 관람석 누각에는 위러궈(鱼乐国)라는 현판이 있으니 물고기도 즐거워하는 곳이라는 뜻일까.

수상무대 뒤편에 야릇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묵직하게 박혀있다. 그 뒤로 반듯한 원형 문이 있고 그 위에 '반려(磐廬)'라는 글자가 써 있다. '너럭바위'와 '오두막집'이라 한자도 새겨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정도다. 이곳은 루쉰 어머니로부터 사들인 주랑시엔(朱阆仙)의 집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훈수팅(婚俗厅) 내에 결혼식 장면이 모형으로 제작돼 있다. 샤오싱 지방의 결혼풍습에 대해 적어두고 있다. 결혼식 때는 매작(媒酌)인 남녀 증인이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신랑 측 증인을 '메이공(媒公)'이라 하고 신부 측을 '메이포(媒婆)'라 부른다.


또한, '정친(定亲)' 즉 혼사의 첫걸음이라 해 '두 집의 수준과 형편이 서로 맞는(门当户对)'다는 합초(合肖)를 하고 '부모의 명과 매작의 말을 준수'해야 한다고 대답하고 '팔(八)'자를 배열하기도 한다. 그런 다음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적은 첩(帖)을 서로 교환한 후 길상(吉祥)의 뜻으로 '십전과(十全果)'를 서로 보내면 혼사가 끝나는 것이다. 열 가지 종류나 되는 것이니 좋은 것은 다 있으리라. 여지(荔枝), 자포도(桂圆), 호두(核桃)、대추(红枣), 연밥(莲子), 잣(松子), 백자고(百子糕), 개암씨앗(榛子), 오동나무씨앗(桐子), 푸른콩(青豆) 등이다.


옆에 붙은 건물로 들어서니 항아리에 뉘얼저우(女儿酒)이라 적혀있다. 바로 화댜오저우(花雕酒)라고도 부르는 샤오싱의 유명한 황저우(黄酒)를 말한다. 항아리마다 꽃을 새겨 조각했는데 이것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샤오싱 황주를 담은 도자기 술병
ⓒ 최종명
샤오싱


옛날 샤오싱에 한 재봉사(裁缝师)가 있었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자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려고 항아리에 술을 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딸이 태어나자 실망해 화가 난 재봉사는 계수나무 아래에 항아리를 묻어버렸던 것이다. 총명한 딸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재봉기술을 배웠는데 그 기술이 빼어났기에 가게가 날로 번창했다.


점점 딸의 재주를 귀하게 여기던 재봉사는 자신의 제자와 결혼을 하게 된 날 매우 기뻐했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항아리가 생각났다. 술을 퍼내 손님들에게 접대하니 술 빛깔이 짙고(色浓), 향기가 코를 찌르며(香气扑鼻), 맛 또한 기가 막히게(味醇) 좋았다. 그래서 이 술을 뉘얼홍(女儿红) 또는 뉘얼저우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소문이 나니 너도나도 딸을 낳으면 술을 담그게 됐다고 한다. 아들을 낳으면 또한 술을 담그니 '좡위엔홍(状元红)'이라 불렀다 한다.


이 샤오싱 황저우가 담긴 화병이 너무 예쁘다. 샤오싱 황저우 최고의 브랜드는 '구위에룽산(古越龙山)'이다. 3대 고주(古酒)인 맥주(啤酒)와 포도주(葡萄酒)에 버금갈 정도로 예부터 마셔온 술인 황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제 루쉰이 공부했던 삼미서옥(三味书屋)로 가자. 루쉰이 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 말이다. <백초원에서 삼미서옥까지>에서 '문을 나서 동쪽으로 반리(半里)도 안돼 돌다리를 건너면 바로 내 선생님 집이다. 검게 칠해진 대나무 문을 따라 세 번째가 서방(书房)이고 한가운데 삼미서옥이란 편액이 걸려있다'고 했다.

  
샤오싱 루쉰고향에 있는 유명 사숙인 삼미서옥. 개천 앞 입구에 검은 칠을 한 대나무 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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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싱


아니나다를까 길 옆에 졸졸 흐르는 개천에 돌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루쉰중루(鲁迅中路) 266호' 주소지 표시 아래 검었겠지만 변색돼 대나무 색깔이 드러나고 있는 문이 나타난다. 이 대문을 지나니 대청인 쓰런탕(思仁堂)이 나오고 중여우판여우(重游頖水) 편액이 걸린 방을 지나면 긴 복도 앞에 높은 담장 벽이 나타난다.

이 담장 앞에 물이 담긴 조그만 종지 안에 붓 하나가 꽂혀 있다. 옆에는 반질반질한 돌로 된 바위가 있는데 바로 여기에 물을 묻혀 붓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는 곳이라 한다. 붓을 들어 내 이름을 한자로 써봤는데 부드럽게 잘 써진다. 비가 내려서인지 표시가 남지는 않았다.

담장 사이로 난 문을 따라 들어가니 별채가 하나 나오는데 한가운데 '三味书屋' 편액이 보인다. 훈장(塾师) 수경오(寿镜吾, 1849-1930) 선생의 초상화가 놓여 있고 그 아래 책상과 걸상 하나가 놓여있다. 아마도 훈장님의 자리인 듯하다. 왼쪽 구석에 루쉰이 앉았던 자리가 있다. '루쉰 줘웨이(座位)'라는 팻말도 있고 'DESK USED BY LU XUN' 영어로도 적혀 있다.


  
루쉰이 사용한 책갈피. 마음, 눈, 입으로 읽는다는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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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싱
서옥 안에도 종지와 붓이 놓여 있다. 넓고 평평한 마당벽돌(地坪砖)이 자리잡고 있다. 수경오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 장치를 이용해 글 쓰는 서법을 익히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이 사숙에서 루쉰은 학문을 익혔다. 서옥을 빠져 나오는데 루쉰이 책을 읽을 때 스스로 만들었다는 싼다오슈치엔(三到书签)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세 손가락처럼 생긴 이 책갈피는 각 손가락마다 '책 읽을 때는 세 가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마음으로 얻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 내야 한다(读书三到心到眼到口到)'는 글씨가 써 있다.


사실 이 말은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가 <훈학재규(训学斋规)>라는 책에서 쓴 말이다. 학문적 탐구가 강한 루쉰이었기에 그저 흘려 보내지 않고 스스로의 '학구'에 구체적인 용도로 책갈피에 새겼으리라. 훌륭한 학자 이전에 모범적인 학생이었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고 그 각오를 새길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새겨본다.
 

거리로 다시 나왔다. 보행거리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는 골동품과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특히 샤오싱 길거리음식 샤오츠(小吃) 중에는, 썩힌 두부로 외국인들은 먹기가 꽤 힘든 처우더우푸(臭豆腐)가 유명하다. 거리 곳곳에 이 냄새가 진동한다.

대신에 아주 향긋한 냄새와 맛도 있다. 바로 황제가 먹던 간식이고 마치 수염처럼 가늘다 해서 룽쉬탕(龙须糖)이라는 엿 과자이다. 마치 백발처럼 생겨서 민간에서는 인쓰탕(银丝糖)이라고도 한다. 거리마다 이 룽쉬탕을 파는 가게마다 맛을 보라고 조금씩 떼어준다. 정말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으며 달콤하고 부드럽기가 솜사탕 저리 가라 할 정도다. 10위엔으로 한 통을 샀다. 밤에 심심할 때 먹으면 정말 좋겠다 싶어서.

  
샤오싱의 특산인 룽쉬탕 파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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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고향마을을 벗어났다. 남쪽으로 걷다가 다시 서쪽으로 찾아간 곳은 20세기 초 여성혁명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쳐우진(秋瑾, 1875-1907)의 고거(故居)이다. 그녀는 구슬 같은 벼슬이라는 뜻의 옥경(璿卿)이라는 자(字)보다 또 다른 자인 싸우는 영웅인 경웅(竞雄)처럼 짧고 강렬하게 살다간 사람이다. 활발한 혁명봉기를 주도하다가 체포돼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다. 그녀의 일생은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쑨원(孙文)과 그의 부인 숭칭링(宋床龄)은 그녀의 비문 앞에 헌화하고 조의를 표한다. 고거 입구에는 그녀의 반신상 뒤로 붉은 색 배경에 쑨원이 쓴 '중국영웅(中国英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여성영웅의 자태답다고 느껴진다. 허창탕(和畅堂)도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그녀의 기상이 느껴진다.

뒤뜰에는 연못 속에 금붕어들이 하염없이 물살을 헤치고 다닌다. 주인은 간데 없으니 알아서 물 속 세상을 헤집고 살아야 하는 듯 말이다. 처마 밑까지 자란 사과나무에는 그녀의 삶을 안타까운 듯 설익었다.


비는 거의 그쳤다. 북쪽으로 걸어 루쉰루와 만나 다시 서쪽으로 약간 걸어가면 창챠오즈제(仓桥直街)가 나온다. 이곳은 2003년 유네스코(联合国教科文组织)가 시상한 아시아 지역 ‘문화유산보호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강남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거리 이름답게 남북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좁은 직선 길이다. 좌우로 2층 구조의 집 1층은 대부분 골동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이다. 홍등이 걸려 있고 상호가 적힌 깃발들이 날리고 있다. 이색적인 분위기의 거리를 알록달록한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다닌다. 한산한 거리이다.


이 거리에서 왼편으로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니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은 샤오싱의 진후(鉴湖)의 물이 흘러 디귿 자로 흐른다. 대쪽을 엮고 흑색을 칠한 덮개를 배에 장착한 독특한 형태의 배인 우펑선(乌篷船)이 떠다닌다. 물이 많은 샤오싱의 교통수단이지만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샤오싱 시내의 문화거리 창챠오즈제 옆 개천 위를 오고가는 우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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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변을 따라 수상가옥이 빽빽하다. 2층의 목조건물들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집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어서 노인네들이 하천을 바라보며 마늘을 까는 지 앉아있다. 바짝 붙어있어서 일까. 집집마다 '파란 하늘과 푸른 하천을 보호하자(保护蓝天碧水)'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걸려 있다.


하천 몇 군데에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다리가 보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올라갔다가 내려간다고 해서 구름다리라 했겠지만 다리 아래를 지나가는 배들에게는 반달다리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하천에 비친 다리는 보름달처럼 둥글기도 하니 말이다. 다리 옆에는 '옌위(雁雨)'라는 이름의 차예관(茶艺馆)이 있는데 기러기와 비, 정말 낭만적인 조합이 아닌가. 2층 누각에서 차를 마셔도 좋고, 밤에는 악기소리 들으며 샤오싱 와인 한 잔 마시면 시름 걱정 다 잊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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