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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항저우에서 나만의 십경을 만들다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2008.07.01 15:37

[중국발품취재79] 항저우 시후 1

샤오싱(绍兴)에서 항저우(杭州)까지는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시후(西湖)의 낭만이 그리웠다. 2003년 출장 때 잠시 본 여유로운 풍광, 시원한 바람이 떠올라 터미널에서 후빈루(湖滨路)로 가는 동안 가슴이 울렁거렸다. 호반에 있는 호텔 가격이 꽤 비싸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물었더니 대부분 500위엔 이상이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1/5 가격으로도 깨끗한 호텔들이 많다. 짐을 놓자마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호수로 향했다.

호수! 수많은 호수 중에서 서쪽에 있는 호수, 시후는 중국에 꽤 알려진 곳만 해도 어림잡더라도 5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그 중 누구라도 항저우를 대명사로 꼽는다. 시내 남쪽에 동쪽 바다로 흘러가는 치엔탕장(钱塘江) 하류 부근에 있다고 해서 치엔탕후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기억하지 않아도 되겠다.

중국 4대 미인 중 시즈(西子), 즉 서시(西施)를 비유하면서 그녀의 은은한 화장과 짙은 화장 모두가 어울리는(淡妆浓床总相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읊은 북송의 시인 동파거사(东坡居士) 소식(苏轼, 1037~1101). 그래서 시즈후라 부르기도 한다. 서시는 춘추시대 오월동주(吴越同舟)의 월나라 사람으로 나라가 망한 후 월왕 구천(勾践)의 신하 범려(范蠡)에 의해 미인계로 오왕 부차(夫差)에게 보내졌으니 얼마나 미인일까. 소동파는 왜 시후에서 서시를 떠올린 것일까.

오후 2시. 호수는 잔잔하다. 약간 흐린 날씨지만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느낌이 간지럽기도 하다. 일년 내내 얼음이 얼지 않는 호수이니 바람이 몰아온 온기는 그저 한낮의 더위를 살짝 식혀주기도 한다.

  
항저우 시후와 배, 바이띠에서 본 모습
ⓒ 최종명
항저우

오른쪽, 왼쪽, 저 멀리 앞쪽을 봐도 다 호수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시후 십경(十景)’은 도대체 어디쯤 있다는 말인가. 어디로든 발길을 떼야 하는데 방향을 잡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곳곳에 숨은 경치를 빠짐없이 만끽하려니 말이다. 이틀 일정인 주제라도 욕심이 나는 것은 역시 ‘하늘아래 가장 아름다운 쑤항저우(苏杭州)’가 아닌가.

지도에 시후십경의 위치가 있다. 이 십경은 남송 시대 정한 것으로 구(旧)십경이라 하고 최근 무수히 다양한 컨셉트로 정한 것들은 모두 신(新)십경이라 칭한다. 어디로 갈지 정했다. 일단 오늘은 오른쪽, 내일은 왼쪽. 그리고 십경과 상관없이 이틀 동안 ‘나만의 십경’을 만들자 생각했다. 십경은 봄여름가을겨울이 다 있고, 낮과 밤 사이가 다 있으니 어찌 다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시후에서 적어도 10개의 감동이야 없을까 싶었다.

단교한연 断桥闲燕

시후는 하나의 동그란 원과 같다.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니 돤챠오(断桥) 위를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다. 십경 중 ‘단교잔설(断桥残雪)’로 알려진 곳이다. ‘청호(晴湖)는 우호(雨湖)만 못하고,우호는 월호(月湖)만 못하고,월호는 설호(雪湖)만 못하다’고 했다. 이 구름다리에 덜 녹은 눈이 쌓인 모습에 감탄한 것이다. 아쉽게 지금은 겨울이 아니다.

잔설을 상상하며 다리 꼭대기에 오르니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있는 연들이 보인다. 할아버지 한 분이 제비 연을 날리고 있다. 한 마리 제비처럼 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가을 상공을 활공하고 있다. 얼레를 쉼 없이 빠르게 푼다. 무한정 하늘로 날아가도 거칠 게 없다. 까마득하게 올라 더 이상 풀 실이 없을 때까지 솟았다. 단교 옆에 앉아 할아버지와 연 사이의 거리만큼 가슴 속에 넣어야 할 감상을 퍼 담아야 했다.

  
항저우 시후 돤챠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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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도심 인민광장에서 새 때처럼 모여 오밀조밀한 연을 조금 비상하다 마는 그런 수준과는 감수성을 달리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잠시 멈춰 서서 서서히 호반 위의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읽어주는 제비 연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설호만 못하면 어떤가. 녹은 듯 만 듯한 돤챠오 위의 설경 대신에 보일 듯 말 듯한 제비 연의 까부는 재주만으로도 벌써 시후에 온 값을 했으리라. 한참 동안 난간 끄트머리에 앉아서 여유롭게 한바탕 곡예를 즐겼다. 이를 ‘단교한연’이라 해도 좋으리라.

  
항저우 시후의 돤챠오와 핑후 사이의 둑길인 바이띠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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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传)>의 주인공인 허선(许仙)과 백소정(白素贞)이 이곳에서 만나는 것으로부터 슬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백소정은 허선을 위해 신성한 풀을 훔쳐오는 줄거리의 경극 ‘따오션차오(盗仙草)’를 베이징에서 봤는데 이곳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백제고수 白堤孤树

시후에는 3곳의 제방(堤防)이 있다. 인공적으로 둑을 쌓은 바이띠(白堤)와 쑤띠(苏堤)있고 자연스레 형성된 것을 정비한 양궁띠(杨公堤)가 있다. 돤챠오부터 시작해 구산(孤山)이 있는 곳까지 연결된 곳이 바로 바이띠이다. 약 800미터 거리의 도로를 경계로 왼쪽이 시후, 오른쪽은 따로 베이시후(北西湖)라 부른다.

이 둑은 관개(灌溉)를 위해 쌓았던 것을 항저우 자사(刺史)로 부임해 온 백거이(白居易)가 중건했다고 전해지니 바이궁띠(白公堤)라 불리게 된 것이다. 백거이는 구산 자락에서 이 둑을 바라보며 술과 시를 짓는 것을 시후 최상의 낭만으로 여겼다고 전한다.

  
항저우 시후 바이띠. 호수를 배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이 쓸쓸해보인다
ⓒ 최종명
항저우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나무들을 스쳐 지나고 있다고 느껴졌다. 호수만 바라보느라 약간 지겨울 즈음 휘몰아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소리를 친 것일까. 시선을 거두어 나무들을 바라봤다. 사람 키보다 약간 커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도 서 있다. 커다란 호수 전체를 배경으로 쓸쓸하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백거이가 만든 둑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백제고수’라 하면 어떨까.

구산사유 孤山史游

바이띠 끝에는 호수 안으로 조금 몸을 밀어 들어가서 수면과 거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곳이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달밤의 보름달을 십경 중 하나인 ‘핑후쳐우위에(平湖秋月)’라 한다. 바로 해발이 겨우 35미터인 자그마한 구산과 잇닿아 있다.

구산은 남송 5대 황제인 리종(理宗)을 시작으로 청나라 강희제와 옹정제도 별궁을 지은 곳이다. 그래서 ‘외로운 산’이라 했다. 황제가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인 고가과인(孤家寡人)에서 나온 말이다. 구산은 섬이지만 화산이 분출돼 형성됐기에 육지와 잇닿아 있기도 하다.

  
항저우 시후 호반에 있는 황빈홍 동상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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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주위는 20세기 초 여성혁명운동가인 쳐우진(秋瑾)의 무덤과 동상도 있고 옹정제가 별궁개념으로 지은 4곳의 작은 사찰도 있다.

아담하고 예쁜 식당과 찻집도 있고 몇 채의 민가들도 있는 아름다운 거리이기도 하다. 육지로 연결된 시링챠오(西泠桥)에서 본 산과 호수, 호수를 가득 수놓고 있는 수련도 예쁘다.

다리를 건너면 중국 최고의 명기라 일컫는 소소소(苏小小)의 자그맣고 동그란 무덤이 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총명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녀는 뭇사람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기생이 되었다. 그녀는 19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나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어 황진이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재상의 아들 완욱(阮郁)과 못다 이룬 사랑, 산자락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서생 포인(鮑仁)의 인물 됨됨이를 한 눈에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성품, 3번이나 거부한 관찰사 맹랑(孟浪)의 위협에도 멋진 시구로 위기를 벗어난 배짱 등 그녀는 시후를 거쳐간 백거이와 소동파를 비롯 수많은 이들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수호전(水浒传)>의 의사(义士)로 칭송 받는 무송(武松)의 무덤 역시 호반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무송은 우얼랑(武二郎)으로 형인 우다랑(武大郎) 무식(武植)의 부인인 반금련(潘金莲)의 <금병매>에 등장하지만 역시 호랑이를 때려잡는 호걸로 민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펑위팅(风雨亭) 앞에는 중국 근현대미술의 대가인 황빈홍(黄宾虹)의 동상이 있다. 그는 ‘서호서하(西湖栖霞)’와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말년에 시후에 머물며 여생을 마쳤다. 손을 위로 뻗어도 할아버지 동상의 손에도 미치지 않는 꼬마아이의 몸짓이 귀엽다.

구산 풍경은 시후에 기대어 눈과 마음을 달래려 한 많은 역사를 만날 수 있으니 구산사유라 한들 어떻겠는가.

곡원추허 曲院秋荷

시후 북쪽 호반 자동차 도로를 따라 가면 또 하나의 제방 길인 쑤띠(苏堤)가 보인다. 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인공 둑길은 작은 호수 3개를 분가시켰다. 그 중에서 송나라 시대 민족영웅으로 칭송 받는 위에페이(岳飞) 사당 바로 앞이라 위에후(岳湖)라 이름했다.

이 호수에서는 장이머우(张艺谋)의 중국 3대 호반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공연인 인상서호(印象西湖)가 매일 밤 펼쳐진다. 윈난(云南) 리장(丽江)과 광시(广西) 양숴(阳朔) 그리고 이곳이다. 양숴에서 본 장면이 기억나서 매표소로 가니 할인도 없이 200위엔이 넘는다. 마침 호수 위에서 리허설이 한창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막힌 장막 사이로 훔쳐보려 하지만 바오안(保安)들이 계속 쫓아다니며 막고 있다.

  
항저우 시후의 위에후 뒷편 정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만난 연못 위에 수련이 둥둥 떠 있다
ⓒ 최종명
항저우

공연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십경 중 하나인 ‘취위엔펑허(曲院风荷)’의 절경이 있는 곳이다. 장이머우는 송나라 이래 바람에도 끄떡없이 뿌리를 이어온 연꽃들을 제치고 호수 위에 떠오른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영웅>으로 중앙집권 통치의 당위성에 투항한 감독으로, 그래서 얻은 것이 올림픽 총감독인 줄로만 알았는데 호수를 통째로 장악까지 할 줄이야 몰랐다.

‘명석찻집(明石苑)’이라고 한글로도 적혀 있는 표지판을 따라 가보니 정말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개울도 흐르고 연못들이 이어진다. 거꾸로 돌아 위에후 뒤쪽으로 가니 한참 연습 중인 배우들과 고함을 치는 현장 감독의 마이크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하지만, 호수와 숨을 함께 쉬는 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연못들마다 수련(水莲)이 떼지어 피어 있으니 십경이라 불러도 좋을 만하다. 햇살에 비친 부용(芙蓉)을 어떻게 설명할까. 스스로도 예쁘지만 물 속에 비친 빛깔도 그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다.

  
항저우의 위에후 뒤 연못 위에 피어난 꽃과 나무잎
ⓒ 최종명
항저우

어디 그뿐인가 나무들도 일자로 솟았고 일자로 박혀 있다. 가을 나뭇잎은 옷을 갈아입고 수면 위로 몸을 숙여 연 잎을 가리고 있다. 시후의 거대한 자태보다 오히려 소박하고 다정한 산책로이니 ‘곡원추허’라는 말이 제격이다.

뇌봉야홍 雷锋夜红

저녁 무렵이다. 어스름도 내리고 호수도 점점 암흑으로 변한다. 다시 되돌아 숙소로 가야 하는데 버스나 택시를 타려고 기다렸다. 문득 시후의 십경은 사시사철, 낮과 밤이 다 다른 절경이라는 생각에 다시 왔던 길로 걸었다. 밤의 호반을 놓칠 수야 없다.

  
항저우 레이펑탑이 조명이 빛나고 있고 밤배놀이를 하는 배 호롱불과 나란하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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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을 따라 핑후를 지났다. 바이띠 둑 길도 이미 어둠 속에 묻혔지만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불빛이다. 몇 미터 간격으로 가로등 불빛 사이로 호수 위를 배들이 오고 간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배에는 하나같이 호롱불 하나를 대롱대롱 달고 있다.

멀리 보이는 레이펑(雷峰) 산에 화려하게 불타는 듯 조명을 밝힌 레이펑탑을 보고 있는데 호롱불 돛단배가 시야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다.

호롱불과 레이펑탑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 호수 남쪽 끝과 이곳 북쪽 끌의 거리만큼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어둠 때문이리라.

석조로 유명해 ‘레이펑시자오(雷峰夕照)’를 십경으로 꼽지만 시후 가장 높은 곳에서 호수 어디라도 다 비추고 있는 탑의 자태도 멋지다.

그 옛날에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던 절경이 아닐까.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붉게 피어나고 멀리서 볼수록 더 빛나는 듯하며 바로 옆에 있는 호롱불과 홍등과도 조화를 이루니 ‘레이펑예홍’이라 부르고 싶다.

고개를 돌려 시내 방향을 바라보니 불야성이 따로 없다. 빌딩들마다 오색찬란한 조명을 쏟아내며 광고에도 여념이 없다. 자세히 볼 필요가 없다. 그저 통째로 묶어 보면 멋지다.

  
항저우 시후의 밤. 불야성으로 변한 시내 빌딩을 바라보며 나무와 배가 실루엣으로 변한다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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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옆으로 공예품 가게들이 밤이 되자 오색찬란한 빛깔로 유혹하기 시작한다. 술집들도 시후 옆에 있는 것만으로 은은하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도 있지만 한적한 곳도 많다. 호수의 반을 빙 둘렀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기가 도니 머리가 빙빙 돈다.

호텔 옆에 고층 건물 꼭대기 층에 한국식당이 있다. 동포가 주인이다. 음식 맛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 손님이 많지 않다. 10층이나 되는 곳에 밥을 먹으러 올라가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한국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우리말로 된 안내책자도 있다.

  
항저우 시후의 한 공예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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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시후 부근에 한국식당이 꽤 많다. 굳이 중국에 여행 와서 우리 음식 먹으라고 권장하기는 싫다. 하지만 혼자서 중국식당 가서 무얼 먹기도 참 난감한 ‘홀로 여행’이니 된장찌개나 파전에 소주 한 병이라면 혼자 먹기에 부담이 없기는 하다.

오늘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후 십경 중 다섯 군데를 돌았다. 이렇게 자신만의 감상 포인트를 잡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꼭 항저우가 아니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는 여행. 남들이 일러준 느낌을 그대로 따라가서 기념사진으로 위로하는 것보다는 뭔가 색다른 여행 소감을 만들어보는 것이 즐거움이 아닐는지. 내일은 또 무슨 절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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