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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의 작가 루쉰의 고거를 찾아서

최종명작가 2008. 9. 19. 11:44


루쉰(鲁迅)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루쉰이 살았던 곳은 이곳 샤오싱 외에도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살았던 베이징과 1927년에 머물던 광저우 그리고 193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살았던 상하이에도 그의 고거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4미터 정도 너비로 미로 같은 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당시 사용하던 우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치 가운데 구멍이 뚫린 주사위 모양 같다. 집과 집 사이는 8각형의 문으로 조성된 것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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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고향마을 입구


한쪽 건물에 중국 유명 판화가이며 후이족(回族)인 자오옌니엔(赵延年)의 삽화도(插图) 전시실이 보인다. <아Q정전(阿Q正传)>을 비롯해 작품 내용을 판화로 제작한 것이다. 루쉰의 저서의 표지들을 장식하고 있는데 한눈에 작품의 성격을 대변할 정도로 인상적인 판화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루쉰이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정원인 바이차오위엔(百草园)도 있다. 장자였던 아버지 주백의(周伯宜)와 어머니 루루이(鲁瑞) 사이에서 태어난 루쉰은 나름대로 할아버지의 후광을 받아 부유했다. 하지만 수재였던 아버지가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자 관원에게 손을 쓴 할아버지가 투옥되고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 후 급기야 가세가 기울었다. 어린 시절 물 쓰듯 남부럽지 않게 돈을 쓰던 루쉰은 가세가 기울자 세태의 비정(世态炎凉)을 느끼고 18세 되던 해 난징(南京)으로 공부하러 가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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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고거의 백초원


화원이라기보다는 채소밭에 가까울 정도로 허름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생활한 루쉰은 회고에서 낙원이었다고 할 정도로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 곳이다. 여름에는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기도 했고 겨울이면 눈밭에서 새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귀뚜라미(蟋蟀)를 잡고(捉), 뽕나무오디(桑椹)를 캐고(采), 복분자(覆盆子)를 따고(摘), 하수오(何首乌)를 뽑고(拔) 놀았다고 한다. <백초원에서 삼미서옥까지(从百草园到三味书屋)>라는 글에서 그는 어린 시절 이곳의 전원생활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옆에는 주가(朱家) 화원이 있다. 원래 바이차오위엔의 일부분이었는데 가세가 기울어 루쉰의 어머니가 이웃에게 넘겼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 옆에 파라솔과 의자가 놓여있다. 여행객들에게 공개하고 차를 파는 가게이기도 하다. 음료도 팔고 구정(古筝) 악기 CD도 판다. 가끔 연주도 하는지 구정이 놓여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니 한가한 분위기다. 사람이 와서 앉기 전에는 관여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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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로 변한 루쉰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