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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2] 옌다이세제를 거쳐 허우하이를 걷다



 

패방 옌다이세제(烟袋斜街)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경이다. 8월 9일 그날 중국인이 미국인을 살해한 현장인 구러우(鼓)를 지나왔는데 그 어떤 살기도 없이 말끔했다. 구러우를 지나고 나서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던가 보다. '시간차'가 절묘했다. 어쩌면 옌다이세제에 가지 못하고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였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섬찟! 그런 느낌이다.

세제(斜街)는 ‘경사진 길’이고 옌다이(烟袋)는 ‘담뱃대’이니 이곳이 원래 무슨 동네인지 짐작이 간다. 구러우세제라 불리다가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니 그 역사도 감지된다. 지금은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변해 유럽풍 음식점도 많고 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많다.



이 길거리에는 시장바닥처럼 토속적인 먹거리와 민속 공연 등 볼거리가 많았는데 올림픽 기간이라 불법 영업을 단속했으리라. 정겨운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아쉬운 마음이 약간 드는 즈음, 대가 집 규수들이나 입을 듯한 하늘하늘거리는 선녀옷을 입고 종이우산으로 살포시 햇살을 가린 아가씨들이 거리를 이리저리 활보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사진과 영상을 번갈아 찍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나 대신 질문을 하는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이런 모습으로 무슨 행사를 하는 것인가?"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것뿐이에요."

그리고 몇 마디 더 물었는데 올림픽 개막식 소감 등등. 그저 놀러 나온 모습치고는 꽤 꽃 단장한 차림이다. 더운 날씨에 기나긴 옷을 걸쳤는데도 얇디 얇아 바람 하나는 잘 통하지 싶다.




몇 발자국 갔을까 한 아가씨가 달려왔다. 가만 보니 내 옆에서 질문하던 아가씨였는데 영상카메라를 든 동료들과 함께 있다. ‘중국사람 아니죠?’ ‘아닌데요’ ‘그럼,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지요’ 했더니만 ‘개막식 봤느냐?’ ‘봤지요’ ‘어디서? 혹시 냐오탸오에서?’ ‘아니 친구 집에서 봤어요’ 곧바로 ‘차이팡하오마(采访?)’ 인터뷰 좀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방송과 여자한테 약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마지막으로 ‘한국선수와 중국선수 파이팅 자여우’ 하고 나니 명함 있으면 달라고 한다. 나 역시 영상을 찍고 나면 나이든 사람이면 명함 달라는 것이 가장 편하니. 자막용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 이럴 때 써먹는구나. ‘한국에서 가장 영향 있는 인터넷신문매체지요’ 라고 하니 ‘기자가 기자를 취재했네요’ 라며 웃는다. 명함은 교환해야 맛이지.



중국 남방의 ‘푸졘하이샤방송국(福建海峡电视), 정즈핑(志苹), 지저()’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니 ‘푸졘에 오면 연락하세요’ 푸졘 성의 성도 ‘푸저우(福州) 가본 적 있다’고 하니 말이 빠르게 통했다. 사진 한 컷 찍고 서로의 취재를 위해 아쉽게 헤어졌다.


옌다이세제를 빠져 나와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앗! 강이다’ 느낌이 온다. 바로 인딩챠오(银锭桥) 다리 때문이다. 이 다리 아래 물 위로 배가 떠다니는 모습이 영락 없는 하천 다리니 말이다. 사실은 하천이 아니라 호수다. 길게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고인 호수 물인 것이다.

인딩챠오는 쳰하이(前海)와 허우하이(后海)를 가르는 다리이다. 물길이 끊어진 것은 아니니 엄밀하게 말해 두 호수는 하나인 셈이다. 다리를 경계로 나누어 부르는 이름인데 바다로 이름 지은 것은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넓고 좁은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니 절대적 크기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이처럼 황제의 거처인 구궁(故
) 북서쪽 편에는 비교적 물이 풍부하다. 구궁 서쪽 가장 아래에서부터 난하이(南海), 중하이(中海), 베이하이(北海)가 있는데, 중하이와 난하이를 합쳐 중난하이라 하고 이 부근은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 국가지도자들이 거처하는 곳이기도 하다. 베이하이는 호수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베이하이 북쪽으로 차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첸하이이고 밤이 되면 베이징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번화한 거리로 변한다. 허우하이는 다른 호수에 비해 서북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허우하이 더 위쪽에 있는 작은 호수는 시하이(西海)이다. 정말 황궁 서편은 호수의 연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곡창 지대인 남방에서부터 징항(
京杭)운하를 따라 진상했는데 지금의 베이징 동쪽 운하 종점 통저우(通州)에서 다시 물길을 따라 허우하이 부근까지 왔다고 하니 정말 수 양제를 비롯 운송수단을 갈구한 사람의 욕구는 참 멀고도 끈질기다고 하겠다.

허우하이 호반을 따라 서서히 여유로운 산책을 했다. 버드나무 흐드러지고 살랑 바람까지 물 향기를 담아오는 호반의 낭만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후통(
胡同) 유람 자전거와 삼륜차들이 ‘라오베이징(老北京)’ 소리치며 유혹하지만 발품이 훨씬 품격(?) 있다.



호반 놀이터에서 농구하는 아이들, 엄마와 아이가 탁구를 치는 모습이 정겹다. 그 옆으로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웃통을 벗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기도, 여유롭기도 하다. 푹푹 찌는 베이징 여름에 ‘웃통 입고 있는 게’ 미덕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본들 소용없다. 정부가 정책과 첨단기술로 더위까지 조절할 수 있는가. 웃통 벗고 다니는 것은 중국에서 어느 정도 이해되는 일종의 문화이지, 야만이 아니다. 누가 야만이라 했던가. 그것은 야만을 경험한 사람들의 속 좁은 관념일 뿐이다.



이미 뉴스도 아니다. 중국에서 나름대로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진정 중국 사람 속에서 삶과 문화를 이해하면 당연하고도 이해가 쉬운 일이건만 꼭 트집 잡고 꼬집으려는 양, 글 쓰고 사진 찍고 거기에 의미까지 부여하는 것은 유치해 보인다.

허우하이 거리에서 물 한 병 사며 ‘정말 덥다’고 했더니 주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몐페이더쌍나(
免费的桑那)’ 이 말 듣고 한참을 웃었다. ‘공짜 사우나’라는 말이니 정말 베이징 여름을 이처럼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하하, 사우나에서 어떻게 웃통을 입고 있을 것인가. 다 벗고 다닐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정말 웃통 벗는 일이 좋고 나쁨을 떠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재치 있는 조크! ‘워통이러(我同意了)’

긴 허우하이를 계속 걷다 보니 사람들이 죄다 웃통은 물론 팬티만 빼고 다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수십 명이 아예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있다. 쳰하이나 다른 호수에서도 봤지만 이곳 허우하이는 아예 풀장으로 변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장난치고 놀고 손녀는 고무튜브를 타고 논다. 젊은이들은 다이빙도 하고 멀리 헤엄쳐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한다.




바깥에는 수영복차림의 어른들이 낮잠도 자고 마작이나 트럼프로 소일하고 있으며 경찰들도 그저 사고나 나지 않으면 하는 눈치로 앉아있다. 큰 물통을 하나씩 들고 와서 수영한 후 몸 간단히 씻고 다시 옷 입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짜 사우나’인 베이징 여름의 ‘호반풀장’이 바로 허우하이인 것이다.

이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경찰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또 어쩌면 중국이다. 한 면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닌가. 수영 하는 사람들 사이로 호수의 쓰레기를 치우는 배가 지나가고 잠자리나 파리도 그들의 첨벙거리는 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곳, 바로 허우하이의 멋이기도 하다.

허우하이 끝에서 지하철 역으로 가려고 길을 찾다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인데 높은 담장과 단층 집의 조화가 오묘했는데 그 사이로 까페 하나가 불쑥 나타나서 놀랐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구석진 곳에 말이다.

‘Loca café(로카까페)’ 앞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3번 놀랐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곳에 이렇게 서구적인 커피숍이 있다는 것, 진한 갈색 대문 입구에 달린 밥숟가락, 그리고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화면에 맞은 편 담벼락이 또렷해 사진 찍는 순간.

마침 아는 사람이 저녁 함께 먹자는 문자가 왔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다음에는 꼭 이 ‘우연한 즐거움’을 준 까페에 꼭 한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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