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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만리장성에서 만난 장수하늘소?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2008.08.24 13:06

[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9] 졘커우 장성 북쪽 자락 시자즈생태원 2


 

졘커우(箭扣)장성 북쪽 방향 정면에는 해발 1534미터인 헤이퉈산(黑坨山)이 가로막고 있다.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다는데 가파른 산세가 장난이 아니다. 베이징 외곽은 동북방향에서 서북방향까지 고산들로 연결돼 있다. 해발 2303미터에 이르는 링산()을 비롯해 높은 산들로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다.

 

우리 나라 남한 땅에서 지리산과 설악산의 최고봉이 해발 1700에서 1900여 미터인 것과 비교해 베이징 시내에서 불과 100킬로 거리에 해발 2천 미터 고산이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줄줄이 방어벽 개념의 산성을 쌓느라 동원된 수십만 명의 일꾼들의 고난이 피부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산 능선을 타고 걷기도 힘든데 말이다.

 

봉화대에서 이 능선 저 능선 하늘도 찍고 산아래 동네도 햇빛을 가려가며 보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장성 망루에 핀 꽃들도 천연의 향기를 머금고 수백 년을 피었다 지고는 했으리라. 사람이 오가는데도 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달콤한 꿀 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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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장성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래쪽 능선에서 폭죽소리가 요란했다. 수십 발이 하얀 연기를 피우며 떠지니 매미소리만 진동하던 장성 하늘에 갑자기 전쟁이라도 난 듯 분위기가 확 변했다.

 

가끔 큰 행사가 있으면 장성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경우를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마 장성을 오른 사람들이 올림픽을 기념하는 것이거나 개인적으로 경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 자연의 소리 그대로를 느끼고 감탄을 연발하던 차라 화가 난다. 바로 옆 가까이에 있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산 능선을 내려갔다가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하기를 반복했다. 길이 제 멋대로라 망루 가운데를 통과하기도 하고 옆길로 우회하기도 해야 한다. 환갑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들이 함께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 것이 아슬아슬하다. 말투로 봐서 광둥 지방에서 온 사람들인 듯하다. ‘니하오()’를 먼저 건네면 그들도 반갑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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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쌓은 망루를 지났다. 명나라 장성은 기본 축대를 튼튼한 화강암으로 구축하고 벽돌을 만들어 쌓았다. 이런 장성을 좐청()이라 한다. 장성은 벽돌 외에도 돌로 쌓은 스청(石城)도 있고 황토를 다져 만든 항투청(夯土城)도 있다.

 

명나라를 개국 초기와 중엽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장성 건설을 했다. 초기에는 주원장(朱元璋)의 명을 받아 원나라 황궁을 철저하게 파괴한 서달(徐)이 몽골적을 비롯한 북방민족의 남하를 경계해 장성 정비를 단행했다.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긴 명나라는 중엽인 16세기말에 이르러 척계광(戚)이 산하이관(山海)에서 베이징의 쥐융관(居庸)에 이르는 600여 킬로미터의 장성을 신축하거나 정비했다.

 

1300여 개의 망루를 세워 군대를 주둔시켰으니 중국 역사상 이때야말로 지금의 장성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니 세계문화유산 만리장성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하지만 만주족은 전투 한번 제대로 치르지 않고 산하이관을 넘어 무사통과로 베이징까지 질주해 청나라를 세웠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망루에는 부서진 벽돌들이 일부 부서져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지만 서로 잘 엮여 있어 아주 탄탄해 보인다. 사람들이 잘난 체 하느라 군데군데 낙서로 지나간 흔적을 남긴 것이 눈엣가시이니 미개발 장성이 지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겠다.

 

장성을 종주하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멀리 산 아래로 굽어보면 어디에라도 망루와 망루를 연결해주는 성벽이 한 폭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장성과 달리 이곳의 멋은 자연 그대로 자라난 커다란 나무들과 벽돌과 화강암을 뚫고 자란 거센 풀들이 파란 하늘을 약간씩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개발하지 않았기에 맛볼 수 있는 천연의 장성인 셈이다. 성벽이나 도로 곳곳에 패랭이꽃이나 이름 모를 야생화도 인상적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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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꽤 위험했다. 각도가 높으니 쌓았던 벽돌들이 무너져 한쪽 귀퉁이에 놓아둔 나무를 잡고 내려와야 한다. 누군가 나무를 잘라 이렇게 계단을 대신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도저히 그냥 오르내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1시간 정도 더 내려가니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정말 하늘로 오르는 계단(天梯)이거나 쭉 뻗은 하늘로 오르는 한 가닥 줄(一线天)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배낭을 앞으로 메고 내려가려고 할 즈음 장성 성벽을 타고 오르는 징그러운 벌레 하나가 눈에 띤다. 수십 개의 가는 발을 움직이며 살살 벽돌을 타더니 성벽 너머로 쏙 사라진다.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양도 그렇지만 이렇게 높다란 곳에서 제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게 소름이 돋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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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개는 될 듯한 계단을 따라 한발한발 내려가면서 보니 시야가 쾌청하다. 잠시 멈춰 서서 하늘 한번, 능선 한번, 장성 한번 몇 번씩 나누어 봤다. 저 연이어 있는 장성, 과장을 섞어 만리나 된다는 벽돌들을 다 둘러보려면 몇 년이 걸려도 쉽지 않아 보인다.

 

3시간 이상 장성을 넘고 넘었는데도 기껏해야 망루를 5개 지났다. 그만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햇살이 따갑지만 계곡에서 솟는 바람도 시원해서 오르막은 좀 더디지만 내리막은 곧잘 걷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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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가는 망루를 찾아야 하는데 함께 간 선배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간 선배가 너무 빨랐던지 내가 늦었던지. 마침 아래쪽으로 난 샛길을 보고 내려갔다. 한참 만에 위쪽에서 어디 있는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아래로 내려왔다고 소리치고 나서도 10여분이나 지나 다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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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가니 벽돌로 쌓은 성곽이 와르르 무너진 장성이 보였다. 무너진 채로 그대로 방치됐으니 대포를 맞은 듯 잔해가 나뒹군다. 언제 이렇듯 폐허가 된지 모르나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곳곳에 장성의 골격이 끊어진 곳이 많을 것 같은데 일일이 다 보수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 기나긴 장성을 쌓은 것도 역사이겠지만 한번 보수를 마음 먹기가 어디 그리 쉬울 것인가.

 

등산로를 사뿐사뿐 내려가는데 선배가 ‘장수하늘소다!’ 하면서 빨리 내려오라고 부른다. 장수하늘소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인데 실물로 본 적이 없으니 신기했다. 선배가 장수하늘소라고는 하지만 꼭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크고 작은 발이 8개이고 몸통을 다른 곤충에 비해 날씬한 편이고 머리 쪽으로 빨갛게 왕관을 쓴 듯한 멋진 모습이다.

 

사진을 찍으려니 그늘이라 잘 보이지 않아 마침 입고간 선배의 하얀 독도 티셔츠에 올려놓으니 엉금엉금 잘 기어 다닌다. ‘섬’을 지나고 ‘한국’을 지나 태극문양까지 살살 기어오르던 녀석이 툭 떨어졌다. 왠지 날개 짓과 몸짓이 어설퍼 보이는 것이 병에 걸린 것 같기도 하다. 풀숲 나뭇가지에 들어가 앉으니 빨간 테두리가 아주 선명하게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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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에는 또 생전 처음 보는 거미가 반경 1미터는 넘을 거미줄을 쳐놓고 있다. 촘촘하게 수백 개의 다각형이 서로 얼키설키 엮였다. 크게 한 손으로 원을 그릴 만한 크기의 거미줄 한가운데 딱 자리를 잡고 바람에 날리는 먹이들을 기다리는 거미도 이런 한적한 장성자락에서만 볼 풍경이 아닐까.

 

별 사탕처럼 앙증맞은 흰 꽃잎이 움큼 채 피었다. 열 움큼이 한꺼번에 자라 반짝이는 별빛처럼 빛나고 있고 숨은 듯 벌 하나가 붕붕 휘젓고 다니고 있다. 장성 성벽 아래 나무 그늘과 함께 살아가는 벌레와 꽃을 따라 서서히 내려왔다. 사람들이 가끔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거의 천혜의 미답에 가깝다 보니 흔히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산 아래로 내려서면서부터는 산골의 텃밭이 보이고 잘 자란 옥수수들이 수염을 자랑하면 파란 하늘을 향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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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긴 코스는 아니고 그저 10여 개의 망루를 거치는 장성 길이었지만 갖가지 경험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가, 오르내리는 시간까지 합쳐 5시간을 종주했더니 땀 범벅에 목도 마르고 지칠 대로 지쳤다. 주차장에서 음료수를 사서 해갈하고 있는데 베이징에서 온 젊은이 둘이 가지고 온 수박을 꺼내준다. 고향 충칭(重庆)에서 온 동생과 장성의 진면목을 보러 온 직장인이다. 참 고마운 일이기도 했고 반듯해 보여 명함을 주고 받고 베이징 시내에서 한번 보자는 약속까지 했다.

 

차를 달려 돌아가는 길이다. 정말 오성홍기를 단 하나라도 발견해보자는 심정으로 톈펑룽칭(天丰容庆)이란 마을로 들어섰다. 가구수가 30여 곳인 마을은 돌담과 옛집 정취가 담긴 것도 좋았지만 멀리 장성이 보이는 산의 모습도 인상에 남았다. 베이징 시내로 돌아오는 길. 해가 저물어가는데 서편으로 아직 채 노을이 들지 않았지만 햇살과 서서히 어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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