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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나는 왜 '중국발품취재'를 시작했나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7.12.24 23:05

2007년 4월 20일부터 10월16일까지 중국을 두루 180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그랬습니다. 캠코더와 카메라에 담았지만, 마음과 머리 속에 쌓아둔 것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차곡차곡 '중국발품취재'라는 이름으로 지난 발자취를 새겨봅니다. 100편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써왔던 것을 좀 보완해나갈 예정입니다.

[중국발품취재1] 중국의 동쪽 끝, 인연의 땅 룽청

인천에서 한 시간이면 중국 웨이하이(威海)에 도착한다. 그런데 시차가 1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낮 12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역시 낮12시 40분이다.

4월 20일, 낮12시 40분에 공항에 마중 오겠다 했던 룽청덴스타이(荣成电视台 영성방송국) 김태송(金泰松) 아나운서에게 다소 미안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바로 요금이 가장 싼(TAX 포함 편도13만5000원) 중국국제항공(CA148). 이 비행기가 인천에서 늦게 이륙했는데, 그것은 오전에 인천으로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전에 웨이하이에 내린 비로 순연됐기 때문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배낭이 꽤 무겁네요" 하며 인사한다. "그렇지? 18킬로야! 많이 줄인 거야" 짐을 싣고 담배 한 대를 피고 출발하니 오후 2시다. 오래 기다린 셈이다.

웨이하이 시에 있는 룽청시에 온 게 이번으로 여섯 번째다. 초기에는 차이나TV에서 일할 때 룽청덴스타이와 사업 협력을 위해서 왔고, 최근에는 동생들 사업을 돕기 위해 왔다. 이번에는 중국발품취재의 출발지로 왔으니 인연이 꽤 깊다 하겠다.

룽청시와의 인연

중소도시인 웨이하이 시 산하 현시 급에 속하는 룽청시의 도로 사정은 매우 좋다. 넓고 한가롭다. 바닷바람도 흥을 돋우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근황을 이야기했다. 아차,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룽청으로 갔다.

원래 내 계획은 웨이하이 시내 민박집에서 묵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룽청으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룽청으로 들어서고 나서 미리 연락한 민박집 생각이 났으니 어쩌란 말인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긴 했지만 기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후에 '장보고기념관' 공식 개관식 행사가 있는데 취재진으로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취재가 편해질 듯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올해 1월 초에 '해신 장보고'에 관한 내 글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노출된 것을 이곳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하니 어쩌면 그 보상일 수도 있겠다.

호텔 체크인(友谊宾馆)을 하고 바닷가로 갔다. 어촌이나 농촌을 둘러보고 싶었다. 기대와 달리 너무 삭막했다. 해초로 지붕을 덮은 집 몇 채가 눈에 띌 뿐 그저 황망한 바닷가였다. 아무런 집이나 들어가서 취재도 해보고 싶었다. 김태송씨 도움을 받으면 취재가 가능할 거 같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무심하게 서 있는 집들을 보니 의욕만으로 취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발 안마를 받으며 쉬는 동안 김태송씨도 자기 일을 잠시 보러 갔다. 딸이 이제 네 살인데 아이 엄마는 시 공무원이어서 서로 교대로 돌보는 듯하다. 안마 아가씨와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전날 동생들이랑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으니 바로 곯아떨어질 만했다.

1시간 후 돌아온 김태송씨는 방송국 아나운서 곽 주임이 저녁 식사를 초대했으니 가자고 한다. 고맙기도 하고 바이져우(白酒)를 먹어야 하니 죽음이기도 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56도와 38도를 섞어가며 이 지방 술인 쟝쥔(将军)을 따뻬이(大杯)로 12잔인가 마셨던 기억이 확 스친다.

그 이후로도 술 권하는데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이곳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제는 술 먹자는 이야기만 나오면 냄새가 날 정도다. 참 이상한 것은 그래도 늘 주면 마신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만이라 술이 그립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 요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어제 밤새 마신 한국 소주와 맥주 생각을 바로 잊었다.

식당에는 벌써 곽 주임과 그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소개하고 인사하고 곽 주임 바로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서 왔으니 귀빈 대접인 셈이다. 중국에서 특히, 산동성에서는 칭커(请客)한 사람이 문에서 가장 먼 쪽 중심에 앉고 그 오른쪽이 최고 귀빈, 그 왼쪽이 두 번째 귀빈이다.

그리고 귀빈 다음에 초청한 기관이나 기업 측 사람들이 직위 순으로 사이사이 앉는다. 또한, 초청자 정면 맞은 편 사람은 음식을 주문하고 나중에 계산도 하는 역할이며 때로는 술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도 한다. 정말 오랜만에 중국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게 술을 마셨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까

▲ 휴지에 글을 쓰고 물을 뿌린 재떨이, 芝麻开花节节高

곽 주임은 김태송씨 상관으로 회족이고 아주 점잖다. 다시 친구들이 더 와서 모두 15명이 됐다. 그들에게 나를 문인이라 소개해서 쑥스럽긴 했지만 정말 유쾌한 자리였다.

첫날은 긴 장정의 워밍업 정도랄까. 어영부영하다가 하루가 갔다. 사귈수록 정감이 가는 똑똑하고 바른 김태송씨와 가볍게 맥주 몇 잔을 더 마신 후 잤다. 내일부터 카메라와 캠코더로 동시에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부담이 갑자기 생기는 건 무엇 때문일까.

1994년에 처음 접한 중국. 그때는 막연하지만 프론티어가 되고 싶었다. 2000년에는 어설프게 갑자기 베이징에 주재원 생활을 했었다. 2003년 중국전문채널 차이나TV를 준비하면서 중국의 대중문화와 방송매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고. 아, 2001년 시간만 나면 중국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1,800곡을 다운 받고 듣고 가사 외우고 그랬었는데. 그땐 정말 중국어도 모르면서 왜 그랬는지 몰라.

2004년 가을부터 1년, 외롭고도 질긴 어학연수 기간. 아마 그때가 그래도 가장 행복했는지도 모르지. 마음 편하게, 어쩌면 무책임하게 또는 새로운 비전을 위해, 그렇게 말이야. 작년 안후이(安徽) 성에서 머물면서 구체적으로 고민했던 일들. 중국과 취재가 나에게 큰 화두였지.

글을 쓴다는 것이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과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난 두 달 동안 인터넷과 책, 자료를 뒤지며 '중국발품취재'라는 것을 준비했나. 과연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차곡차곡 지난 일들을 되새기는 일이 자꾸 마음은 흥분된다. 올 것 같지 않은 잠이 그래도 오고야 말았다.

후기

이렇게 180일을 마치고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4가지 기본 장비인 캠코더, 카메라, 노트북, PDA를 들고 다녔는데, 어쩌면 2000년에 잠시 서강대-KBS 방송아카데미에서 디지털미디어저널리스트(DMJ) 과정 주임강사를 하면서 컨셉을 만들었던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라다닌 듯하다. DMJ과정을 기획한 전 조선일보기자인 우병현 대표(태그스토리)에게 여전히 힘겨운 부채가 남았는데, 그나마 약간의 면피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저널리스트이며 중국문화디자이너로 거듭 나기 좋은 '중국주유천하'였다.

"다시 또 갈래?"

"글쎄... 또 가고 또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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