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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청일전쟁 상처 남아있는 섬, 류궁다오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 1. 5. 19:36

[중국발품취재4] 한나라 몰락· 황족들인 유씨 흔적 곳곳 남아

오전에 행사차량이 다시 적산법화원에 들렀다. 적산명신(赤山明神)과 분수쇼를 다시 보라는 것이다. 사실 다른 취재진들을 위한 배려였는데 사전에 행사 일정을 잘 몰랐기에 나만 의아했을 뿐이다.

명신 동상에 올라 김태송씨, 헤럴드경제 기자와 사진을 찍었다. 이제 헤어져야 하니 며칠이지만 정이 들었는데 아쉽다. 우리 일행을 위해 분수쇼도 펼쳐졌다. 역시 법화원의 가장 흥미로운 광경을 물과 불이 함께 휘둘러대는 모습일 게다.

일행은 곧바로 웨이하이(威海)시로 이동했다. 중국은 베이징(北京)을 특별시로 하고 티엔진(天津), 상하이(上海), 광저우(广州), 충칭(重庆)을 직할시로 했다. 그리고 각 성마다 성의 수도를 만들었다. 중국 사람들은 성후이(省会)라고 하고 우리는 성의 수도라며 성도(省都)라고 쓰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성후이가 있고 그 아래 시(市)가 있게 된다. 성후이와 일반 시 사이에는 중앙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시가 몇 개 있는데 칭다오(青岛), 션전(深圳) 등이 속한다.

일반 시 아래 대체로 2~5개 정도의 현시(县市)가 있고, 현시 아래에는 전(镇)이라는 행정개념이 있다. 그러니까 산뚱(山东)성의 경우, 지난(济南)이 성후이이고 웨이하이는 산뚱성의 많은 시 중 하나인 셈이다. 웨이하이시에는 룽청씨엔스를 비롯해 몇 개의 현시가 있고, 룽청시에는 적산법화원이 있는 스다오를 비롯해 또다시 몇 개의 쩐이 있게 되는 것이다. 다소 헷갈리는 것은 현시급의 시도 그냥 시로 부르니 다소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룽청 (현)시의 스다오 진에서 웨이하이 시로 이동했다. 그리고 해안도시이기도 한 깔끔한 도시 웨이하이시에 있는 작은 섬 려우꽁다오(刘公岛)로 향했다. 유공도는 배를 타고 약 20분을 가야 한다. 선상에서 보니 웨이하이시와 섬을 잇는 케이블카 공사를 하고 있다.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아마 저 케이블카를 타고 갈 지도 모르겠다. 거리가 4~5㎞가 되는 바다 위를 날아가는 기분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허베이(河北)의 멋진 여름휴양지 친황다오(秦皇岛)에의 난다이허(南戴河)에도 바다 위를 가르는 케이블카가 있다. 2004년 여름 타 본 적이 있는데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정말 낭만적인 비행을 체험한 적이 있다.


▲ 웨이하이와 유공도는 잇는 해안

유공도 북쪽은 절벽으로 이뤄져 가파르고 남쪽은 완만하다. 동서로는 4.8㎞, 남북으로는 1.5㎞에 이르는 섬이다. 이 섬을 유공도라 부르는 것은 동한시대 황족인 유공 일가가 이주했고 주민들에게 존경 받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 유공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정면에 있는 철제 조각물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기원전 206년에 한나라가 진나라에 이어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했다. 그런 한나라는 왕망에 의해 망했는데 이를 서한이라 하고 이후 서기 25년에 역시 황족인 유수(刘秀), 한 광무제가 새롭게 한나라를 복원했으니 이를 동한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량한(两汉)시대라 한다.

동한 말기가 되면 유명한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이후 중국 역사는 삼국시대로 접어든다. 서기 220년 동한이 망하고 혼란한 시절, 황족이었던 유공 일가는 이곳으로 도피했다. 유공도에는 사당을 비롯해 대부분이 유씨 일가에 대한 기념관이다. 가이드의 설명도 대부분 유씨 일가의 행적에 대한 소개이다.

▲ 유공도박물관 내 관광객들

또한 이곳은 청나라 말기 정권을 좌지우지했던 북양군벌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그래서 청일전쟁에 대한 기억과 자취를 전시한 갑오전쟁기념관이 있다. 일행이 이곳에서 전쟁의 상흔을 떠올리는 영화를 보고 있는 사이에 나는 밖으로 나와 곳곳을 돌아다녔다.

▲ 갑오전쟁기념관 안에 있는 함대 표시가 있는 닻


갑갑한 영화관보다야 깔끔하게 조경이 된 바깥이 훨씬 구경거리가 많다. 게다가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고 있는 꼬마와도 이야길 할 수 있었다. 개구쟁이 아이들과 같이 놀면 동심으로 돌아가며 마음이 즐거워진다.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발음은 좋은 중국어 발음학습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혹시 일행이 이동할까봐 두 번씩이나 되돌아가서 확인했다. 무슨 영화를 그렇게 오래도 보는지. 30분 이상 혼자 즐겁게 돌아다닐 기회를 준 건 고맙지만 말이다.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2003년에 왔을 때에는 물을 튕기면 피아노 음계소리가 나는 곳이 있었다. 그곳을 찾았더니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이긴 하나 물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한 여름이거나 관광객이 많아야 하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 유공도 모습1

▲ 유공도 모습2


▲ 유공도 모습3

▲ 유공도 내의 케이블카


이제 일행은 웨이하이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간다. 나도 내 갈 길을 가야 한다. 유공도에서 배를 타고 빠져 나오는데 김태송씨가 왔다. 오늘 하루 더 룽청에서 쉬고 내일 가라고 한다. 그래 이제 보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저녁에 김태송씨와 훠궈(火锅)를 먹었다. 샤브샤브라고 보통 알려진 스촨(四川) 요리다. 룽청이 바닷가이니 역시 다양하고 값싼 해산물이 많다. 해산물 샤브샤브를 맛있게 먹었는데 김태송씨가 칭커(请客)하겠다고 먼저 계산한다. 헤어지기 섭섭해 간단히 맥주와 포도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헤어졌다. 내일 아침 버스터미널까지 안내해주겠다니 내일 다시 만나자.


후기

김태송씨는 연길이 고향으로 전 영성방송국 국장이 스카웃해 온 아나운서이며 기자이다. 영성방송국에는 한국어 방송프로그램이 있다. 지역에 100여개의 한국기업들을 위한 지역소식을 전달한다.

그렇게 영성에 온 지 거의 7년. 그러고 보니 나와도 서로 만난 지 5년이 넘나 보다. 지금이 친동생처럼 막역하다. 굉장히 똑똑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영성을 벗어나 더 많은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친동생들이 하는 중국사업을 도와주고 있는데, 중국발품취재 중인 6월 중순, 동생들과 함께 북경에서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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