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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5] 루쉰공원과 지엔쯔


4월 24일 오전 9시 칭다오(青岛)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거의 폐차 직전의 모습이다. 냄새도 장난 아니고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버스는 온통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이거 타실 수 있겠어요?" 하더니 김태송씨는 재빨리 매표소로 뛰어갔다. 뭐 이런 고생 각오하고 시작한 건데. 출발시간이 5분 밖에 남지 않아서 환표가 안 된단다. 걱정이 태산인 김태송씨를 남겨두고 버스는 출발했다. 칭다오에 가면 모 신문사 산동지사장을 만나보라고 연락처까지 적어주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 칭다오행 버스 표

 

버스 뒷자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사실 룽청에서는 행사 취재팀에 무임승차해 너무 편했던 것인지 마치 출장 온 기분이었는데 이 낡고 자그마한 샤오꽁공(小公共)을 타고 덜컹거리니 발품 취재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칭다오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250km 거리를 4시간 30분이나 걸렸으니 깨나 덜컹거린 셈이다. 게다가 칭다오 시 초입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모두 내려서 뒤에 오는 버스를 타라고 한다. 아무 이유도 없다. 다만, 혼잡한 시내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가려니 시간이 아까운 모양이다. 루산(乳山)에서 출발한 버스로 갈아탔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멨다 풀러야 하니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 버스는 나름대로 훨씬 깨끗했다.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쓰팡짠(四方站)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민박집 주인이 일러준 대로 여우뎬빈관(邮电宾馆)으로 향했다. 택시는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캠코더를 꺼내 찍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칭다오에는 온통 중국 각 도시의 이름을 따서 거리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정말 그렇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야 할 거리도 샹강씨지에(香港西街)이니 홍콩이다. 홍콩이니 칭다오의 남쪽 해안이란 말이다. 하여튼 참 재미있는 작명법이다.

빈관에 도착해 10분 가량 기다리니 주인이 나왔다. 조선족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짐을 풀고 음식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끓여준 라면 한 그릇 빨리 먹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본 해변이 너무도 아름다웠으니 서두를 수밖에 없다.

칭다오는 그야말로 시원한 해변을 끼고 발달한 도시이다. 게다가 해안도로에는 자전거 통행이 금지돼 있으니 번잡스러운 느낌도 없다. 한적하기도 하고 상쾌하고 편안한 산보로는 제격이다. 민박집에서 나가서 5분 거리에 제3 해수욕장이 있다. 무조건 걷자. 서쪽 시내 방향으로 걸으며 주변 모습과 서서히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 해안도로와 산책길 그리고 해변과 바다


해수욕장과 해수욕장 사이는 조그만 곶이 하나씩 돌출되어 있다. 그러니 해수욕장의 구분이 생기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 곶 하나를 돌아설 때마다 그 풍경이 사뭇 서로 다르다. 아담하고 조경이 예쁜 집들이 모여있는 곳도 있고 몇 개의 자그마한 카페가 있기도 하다. 저 집에서 살고 가끔 커피를 마시러 나오고 식사도 하고 하면 정말 좋겠다 싶다.

▲ 빠다관 거리

조금 걸어가니 빠다관(八大关) 팻말이 보인다. 지금은 온통 부유층의 별장이거나 고급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20세기 초 독일의 한 건축가가 설계했고 이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덴마크, 스페인 등 서구열강들의 사옥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빠다관 명칭은 중국의 8개 관문 이름을 따온 것에 유래한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비를 맞으며 중국의 유명 관문인 소관(韶关), 가욕관(嘉峪关), 함곡관(涵谷关), 정양관(正阳关), 임회관(临淮关), 영무관(宁武关), 자형관(紫荆关), 거용관(居庸关)을 넘었다. 거리 이름도 다 각 관문을 따서 지었으니 칭다오는 정말 중국의 전부를 표현하고 싶은 가 보다.

다시 바다로 나오니 신랑 신부들이 예복을 곱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비가 오는데도 분위기를 한층 살려보려고 화사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 정말 결혼사진 찍기에 이처럼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부럽다.






▲ 조개를 줍는 사람들


▲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비에 살짝 젖은 길은 더 없이 상쾌하다. 옷이 젖어도 상관없는지 해변에는 낚시도 하고 조개도 줍고 물장난도 치고 심지어 수영까지 한다. 모래사장에서는 배구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한여름에만 가곤 하는 해수욕장이 늦봄 비에 젖어도 좋다니. 아마 발품으로 걷다 보니 살아난 느긋함과 여유 때문일까.

▲ 노신공원의 책
▲ 루쉰상

 

계속 걸어서 루쉰(魯迅)공원에 이르렀다. 루쉰이야 중국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낯익은 문학가이자 민족주의자 아닌가. '아Q정전'으로 잘 알려져 있어 우리도 한번쯤 읽어보고 감명받기도 한 작품이다.

정문의 '노신공원' 글자체는 루쉰의 그것이라 하니 더욱 정겹다. 원래는 해빈공원이라 했는데 1950년에 루쉰을 기려 이름을 바꿨다. 나무 숲에 싸여 있고 바다와 붙어있는 공원이라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다.

공원을 빠져나와 조금 걸어가다 보니 도로 건너편에 티엔허우궁(天后宫)이 보여 횡단보도를 건넜다. 좁은 2차선 길인데도 칭다오는 제법 질서정연해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다. 티엔허우궁은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건물이 모두 나무로 지어진 목조건축물이다. 물론 청나라와 중화민국 시대를 거쳐 1996년에 전면 복원했다. 안타깝게도 사진을 못 찍게 한다.

눈으로 살펴봐도 여느 사원이나 궁과 별다른 게 없어 보여 실망스러웠다. 밖으로 나오려다가 문득 왼편으로 민속박물관이라는 곳이 보였다. 상품이나 파는 곳이겠지 하며 들어섰다. 역시 공예품 가게와 별다를 게 없다. 더구나 중국 전역 어디에 가도 있는 그런 물건들이다. 그렇게 또다시 실망의 연속이었는데 우연히 아주 마음씨 좋은 민간예술인을 만났다.

▲ 리원링 여사의 지엔쯔 작품들


지엔쯔(剪纸)는 종이를 오려서 여러 형태의 모양을 내는 중국 민간 예술 중 하나인데 뜻밖에 칭다오의 민간예술인 호칭을 받는 리원링(李文玲) 여사의 환대를 받았다. 기웃거리는 모습에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가게에 살짝 들어가 사진도 찍고 몇 가지 물어보니 예전에 한국 모 방송국에서 취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시연을 해주겠다니 이 얼마 고마운가.

'이건 토끼지요' 한다.
'제가 토끼띠 해에 태어났어요' 했다.

5분여에 걸쳐 가볍게 삭삭 가위로 오려 가니 차츰 귀여운 토끼가 뛰어오는 듯하다. 종이를 펼치니 두 마리 토끼가 대칭으로 달려온다. 그리고는 선물로 준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너무 친근하고 달콤한 만남이다.

▲ 리원링 여사에게 선물 받은 토끼 지엔쯔


어느새 비도 다 갰다. 노을이 진다. 비가 온 날에 노을이라니. 노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박집에 빨리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민박집 아주머니 장 담그는 솜씨는 놀랍다. 한국에서도 이런 장맛은 정말 맛보기 힘들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고 입에 넣으니 진국의 장 내음이 목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주인아저씨가 주는 바이지여우(白酒)를 몇 잔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종일 돌아다녔으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새벽까지 잤다.

 

후기


지엔쯔는 중국에서 소위 문화거리나 골동품, 공예 상점에 흔하디 흔하다. 다만, 대부분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대부분인데, 직접 가위질로 쓱싹 만들어내는 모습은 보기 쉽지 않다. 그 덕분인지 동영상도 3만명 이상이 봤는데 아무래도 '가위로 종이오리기'라는 것이 민간예술로 승화된다는 것이 신기해서 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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