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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인코리아

청실홍실과 기러기가 주인공인 전통혼례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9.04.11 11:16

지난주 일요일(4월 5일) 다소 흐리긴 했지만 때맞춰 포근한 날씨였다.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지인의 전통혼례가 있었다. 한겨울이 다 지나고 초봄햇살과 함께 온 푸릇푸릇한 생기가 좋았지만 역시 자주 볼 수 없던 생소한 혼례방식에 눈길이 갔다.

혼례가 양가의 결합이라는 사고방식이 풍부한 우리 전통혼례이니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로 시작한다. 깨갱깨갱 꽹과리 소리를 시작으로 징과 북, 장고가 어우러진 전통사물놀이 패가 혼례마당 주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귓전을 때린다. 온 동네 떠나갈 듯 징 소리를 내는 채의 포물선도 힘껏 오르내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마당에 신랑이 들어오고 있다. 뒤에 기럭아범이 따른다.

마을 어귀부터 시작된 행렬이겠다. 전통혼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초롱을 든 남녀아이가 한복차림으로 앞섰다. 뒤를 따라 말을 탄 신랑이 의젓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신부를 태운 건장한 4명의 가마꾼이 뒤를 따른다.

가마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지만 사인교(四人轎)가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가마를 그저 교(轎)라고 하나 어깨수레라는 뜻으로 견여(肩舆)라고도 한다. 그래서 정약용은 '가마 메는 그림 그려 임금님께 바치려네' 하며 견여탄(肩輿歎)이란 시를 짓기도 했다. 견여탄들이 가마 탄 신부의 타임머신을 탄 듯 즐거운 것은 신랑 친구인 덕분인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마꾼 4명이 사인교에 탄 신부를 태우고 이동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가마에는 '청실홍실' 청홍사(靑紅絲)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녹실(綠-), 황실黄, 남실(藍-)도 데롱데롱 달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찰랑거린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신부의 미소가 비치는데 꼬마 아이들이 신기한 듯 쫓아가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는 혼례가 이뤄지기 전 단계도 재미있다. 예전에는 신랑과 신부가 사전에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자 집안이 여자 집안에게 관심이 있으면 청혼하고 다시 허혼하는 과정을 거치게 됐다. 이때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하는데 매파(媒婆)의 역할이 등장하며 궁합(宮合)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과정을 의혼(議婚)이라 한다. 이후 혼인이 성사되면 남자 집은 사주(四柱) 단자를 보내고 여자 집은 택일(擇日) 단자를 보내는 연길(涓吉)을 하게 된다. 이처럼 신랑 신부가 되기 위한 양가 집안의 왕래 과정을 납채(納采)라고 한다.

납채 이후에는 우리가 흔히 '함(函)'이라 부르며 그 의례 일부가 남아있는 납폐(納幣)를 하게 된다. 보통 결혼식 전날 누가 누구에게 왜 보내는 예물인지를 글로 쓴 혼서(婚書)와 혼수(婚需) 및 채단(綵緞)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특히 혼서는 일부종사를 담고 있어 죽을 때 관 속에 넣는다고 하니 혼인증명서나 다름 없는 듯하다. 이 함 속에는 흔히 청실과 홍실을 매듭 짖음 없이 묶는 동심결(同心結)인 청홍사(淸紅絲)가 함께 들어있어 '청실홍실'이야말로 백년해로의 상징이라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실, 홍실을 비롯 갖가지 명주실로 드리운 가마를 타고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모습!

드디어 사물놀이 패가 혼례마당에 이르러 한바탕 앞마당놀이를 시작한다. 한동안 사물놀이로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하는 동안 신랑과 신부는 혼례마당으로 들어온다. 마당 양편에 동쪽에는 신랑이 서편에는 신부가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이로서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친영(親迎)이 시작된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그 방식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대체적으로 전안례(奠雁禮)와 초례(醮禮)인 교배례(交拜禮), 동뢰지례(同牢地禮), 합근례(合巹禮), 후례(後禮)인 현구고례(見舅姑禮)의 순서로 진행된다. 

혼례를 시작하기 전에 비록 오늘의 두 주인공과 집안의 내력을 다 알지 못하고 더더군다나 의혼, 납채와 납폐를 모른다. 요즘 전통혼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대로 이렇게 전통문화의 숨결 속으로 들어온 신랑 신부가 어떤 이들인지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랑이 혼례마당 동편 부모 앞에 서 있다!

신랑 전재규 군은 2대를 이어 온 한의사다. 혼인 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저 평범한 한의사가 아니다. 우선, 주역의 대가인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이 제창한 홍역학(洪易學)의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동방문화진흥회가 주관하는 역대 3번째 주역 전문을 통강했다. 옛날 전통 방식으로 주역 중간부터 스승이 읽으면 그 다음부터 강독하는데 이를 통강한 사람이 채 30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라 한다. 한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주역의 사상이었기에 2007년 지리산에서 꼬박 1달 동안 칩거하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환자치료에 대한 애정으로 그가 배운 또 하나의 기예는 바로 기천문이다. 기천문은 산중도인들이 이어오던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수련 법이면서 한민족의 무예도 정신, 사상, 철학, 문화, 예술, 의술 등이 녹아 들어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무예와 다르고 종교의식과도 다른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라 생각해 수련했다고 한다. 그는 정식으로 기천문 지도자과정을 거친 후 기천문의 육합단공(六合丹功)을 기반으로 환자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가 끝나고 신랑의 친구들이 기천문공연으로 뒤풀이를 하고 있다. 마당에 청색과 홍색이 나뉘어 깔려 있는데 홍색은 신랑이 다니는 길이고 청색은 신부가 다니는 길이다.

대구한의대(학사)와 경희대학교(석사)에서 열심히 공부한 한의학도로서 이후 오랫동안 수련의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환자를 위해 연구하며 인간적인 한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역과 기천문 전문가이면서 그는 또한 여행가이기도 하다. 유럽, 중국, 인도 등지를 배낭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왜 여행을 다녔는가 물었더니 "의사 전재규와 사람 전재규를 통일"하려는 것이었다 한다. 

백두산 9봉을 매일 하루에 하나씩 아홉 번 등정하면서 민족정기도 삼키고 환자 치료의 열정을 배웠으며 인도 캘커타에 있는 테레사수녀가 만든 '임종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동고동락하기도 했다. 인도 바라나시를 여행할 때 소싸움 도중 크게 다쳐 척추가 부러지고 욕창이 생겨 고름까지 나오는 환자 소를 15일 동안이나 돌보고 있는 한국여자의 요청으로 소를 치료했던 기억이 여행 중 가장 큰 자극이었다고 한다.

막상 소를 숭배한다는 인도사람들조차 방치해 죽어가는 소를 돌보는 이방인이야말로 의사의 마음을 지닌 진정한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 한국여자를 보면서 의사가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몸소 각성했다니 정말 진정한 여행을 경험한 것이라 하겠다.

주역선생님이 그에게 의인(宜仁)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한다. 신랑의 인상과 의지에 참 걸맞다. 그는 '따뜻하게 바라보기, 안아주기도 의술이다'라고 한다. 환자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젊고 진실한 한의사가 아닐까 싶다. 그는 경기도 동탄에서 의인한의원을 개원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원프로구단의 안영학선수, 연예인 마르코씨와도 환자와 의사로 좋은 인연을 쌓고 있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전안청

신랑이 동편에 자리를 잡자 신부도 가마에서 내려 서편에 자리를 잡았다. 신랑 신부 뒤쪽으로는 병풍을 치게 된다. 이어 주례자의 홀기에 따라 식순이 진행된다. 홀기(笏記)란 제례와 혼례에서 한자어로 된 식순 말이어서 꽤 어렵다. 그래서 주례자의 홀기 뒤로 그 해석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전안례에서 '壻出次至門外東面(서출차지문외동면)'이라 소리하면 '신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가서 동쪽에 서시오' 하고 불러준다. 이에 따라 모든 의식이 진행된다.

전안례는 사모(紗帽)를 쓰고 자단령(紫團領)을 입고 혁대(革帶)를 매고 흑화(黑靴)를 신은 신랑이 기럭아범에게서 받은 기러기를 전안청으로 가져가 절하는 의식이다. 생명이 끝날 때까지 짝을 바꾸지 않고 믿음과 절개를 상징하는 기러기 한 쌍을 전안청 앞에 머리가 북쪽을 향하도록 남북으로 가지런히 놓는다. 신랑이 절하는 동안 신부 옆에서 의식을 돕는 수모가 기러기를 신부에게로 가져간다. 

전안례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예쁜 한복차림에 족두리를 쓰고 볼에는 비록 색종이이어도 연지곤지 찍은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중 신부 측의 청색, 신랑 측의 홍색

그만큼 최근 신부의 모습이 조금 안타깝기도 했기 때문일까. 신부는 김리아 양. 티베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리랑로드 대표' 명함을 들고 중국 웨이하이(威海)에서 자동차로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와 입경허가도 없이 티베트에 들어와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있는 석청을 따러 온 아가씨였다. 1킬로그램이 수십만원 한다는 석청을 따서 소비자를 개발하겠다는 당찬 포부에 걸맞게 도무지 두려움이라 모르는 모험 가득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하던 정신노동을 박차고 석청을 따는 육체노동을 향해 '아리랑로드'를 개척하던 그녀는 석청을 따고 난 후 실크로드를 따라 둔황(敦煌), 우루무치(乌鲁木齐), 허티엔(和田)과 중국 끝 타쉬쿠르간을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 태국까지 이르는 노정에서 수많은 지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사건 사고를 연발 터뜨리던 맹렬여성 그 자체였다. 

전안례가 진행되는 동안 신부는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예쁜 한복차림에 족두리를 쓰고 볼에는 비록 색종이이어도 연지곤지 찍은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만큼 최근 신부의 모습이 조금 안타깝기도 했기 때문일까. 신부는 김리아 양. 티베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리랑로드 대표' 명함을 들고 중국 웨이하이(威海)에서 자동차로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와 입경허가도 없이 티베트에 들어와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있는 석청을 따러 온 아가씨였다. 1킬로그램이 수십만원 한다는 석청을 따서 소비자를 개발하겠다는 당찬 포부에 걸맞게 도무지 두려움이라 모르는 모험 가득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례청 상차림. 청초와 홍초를 비롯 서로 대칭구조로 밥과 국 수저와 곡식과 생선, 고기, 떡이 나란히 3열로 놓여있다. 신부자리에서 본 모습으로 왼편이 북쪽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례청 상차림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하던 정신노동을 박차고 석청을 따는 육체노동을 향해 '아리랑로드'를 개척하던 그녀는 석청을 따고 난 후 실크로드를 따라 둔황(敦煌), 우루무치(乌鲁木齐), 허티엔(和田)과 중국 끝 타쉬쿠르간을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 태국까지 이르는 노정에서 수많은 지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사건 사고를 연발 터뜨리던 맹렬여성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시 예전 광고대행사의 상하이 지사에서 근무하며 지독한 야근,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며 고객과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성과를 내며 또다시 '역시 리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었다. 결국 오랜 여행과 질풍 같던 상하이 근무의 후유증으로 결핵을 앓게 됐고 다시 치열한 투병생활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다시 태국 지사를 셋업하는데 참여하기도 했으니 '도무지 에너지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게다가 신부는 결혼식을 불과 1달 앞두고 밤새 가며 그간 행적을 집필해 원고를 출판사에 무사히 넘겼다고 하니 놀랍다. 그야말로 '실크로드가 있다면 나에게는 아리랑로드가 있다'는 포부 하나로 살아온 그녀의 모습이 혼례마당에서 떠오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니 한복과 족두리 연지곤지 속에 숨겨둔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중 절하는 신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중 기러기를 안고 가는 신랑

태국으로 가기 직전 지금의 신랑과 사랑을 키웠던가 보다. 그들은 우루무치에서 만나 1주일 정도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는데 궁합 보고 사주단자를 주고 받는 일이 도무지 필요 없는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인'과 '개척 프로세스 아리랑'이 만났으니 말이다.

이제 그들의 기러기가 신랑의 인술을 담은 손길로부터 신부의 아리랑로드가 깔린 마음 속으로 들어갔으니 곧 교배례가 이어진다. 신부의 아버지가 초례청(醮禮廳)에 있는 청초 및 홍초에 불을 밝힌다.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섰고 그들이 절을 하는 사이에 초례상 위에 있는 먹거리에 눈길이 갔다. 

상은 신부 자리, 즉 서편에서 봐서 남북으로 세 줄로 나란히 음식이 놓여있다. 북쪽에 청초가 있고 남쪽에 홍초가 있는데 한가운데 동서 양끝으로 밥그릇이 있고 그릇 앞으로 노란 콩, 백미가 있다. 이는 서로 대칭이다.

역시 신랑과 신부의 오른쪽 줄에는 각각 국그릇 옆과 수저가 놓여있고 순서대로 바다 생선과 땅을 디디고 사는 돼지고기와 날개 달린 닭고기가 나란히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이어서 팥과 떡이 담겨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의 신랑 신부의 신발

먼저 신랑과 신부가 연이어 손을 깨끗이 씻는다. 신랑은 남쪽을 향해 신부를 북쪽을 향해 손을 씻는다. 그리고 '新婦再拜(신부재배)'와 '신랑답일배(新郞答一拜)'가 이어진다. 왜 누구는 두 번 절하고 누구는 한번 절하는지 따지지 말자. 신랑 두 번 절할 때 신부 네 번 절한다고 전통혼례를 하지 말 것도 아니라면 말이다. 하여간 신부가 재배하는 동안 신랑이 읍(揖)하고 있는 모습이 진지하다.

이어 동뢰지례가 행해지는데 신랑과 신부가 각각 밥을 밥 한번 국 한번 천천히 세 번 떠서 먹는다. 이는 천지신명에게 음식을 나누는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예전에는 이때까지도 신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다 아는 사이이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니 오히려 약간 쑥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초롱동이와 신랑 신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초롱동이 뒷모습과 혼례 현장

다음으로는 신랑 신부가 서로 술을 나누는 합근례이다. 소위 합환주라고 하는 이 의식은 술잔(巹)을 나누는 일이며 술로 서로의 마음을 합하는 의미가 있다. 이 의식은 조금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막상 보니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신랑과 신부의 수모들이 서로 자리를 왔다 갔다 바꾸기도 하는데 이는 술잔에 마음을 담아 주고받는 것일 터이니 참으로 진정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먼저 자리를 옮긴 수모들이 표주박에 따른 술잔으로 신랑 신부는 땅에 붓는 고수레를 한다. 고수레는 지신(地神)에게 예를 올리는 행위이다. 다시 표주박에 따른 술을 신랑 신부가 나누어 마신다. 이후 수모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료를 찾으니 때로는 신랑 잔을 위로, 신부의 잔은 밑으로 해서 서로 바꾸기도 하고 신부가 마시던 술잔을 가져가면 신랑이 다 마시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약간 생략돼도 두 사람의 하나됨을 축복하는 일이 이미 하늘 끝에 닿았음이리라.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천지신명에게 인간세상의 남녀가 연분으로 서로 만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재미있고도 곳곳마다 제각각 뜻과 격식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합근례 중인 신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합근례 중인 신랑

이렇게 합근례를 치르고 나면 신랑은 신부에게 가서 가리개를 내리고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쁜 마음을 온 천하에 알리려고 닭 한 쌍을 높이 날리기도 하고 신부를 업기도 하며 하객들은 상 위에 있는 팥과 쌀을 한줌씩 쥐고 있다가 신랑신부에게 축하의 표시로 던져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신랑과 신부를 시샘하는 액을 떼는 의식이라 한다. 이렇게 초례를 끝냄으로써 혼례식이 끝난다.

거의 1시간 가량 진행된 혼례 내내 귀여운 초롱동이들이 너무 힘겨웠나 보다. 다 끝난 것이 너무나 기쁜 모양이다.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니 뒤풀이 공연이 있다. 신랑 친구들이 기천문 공연을 하고 신부 친구들은 축가를 불러준다. 이어 신부 친구들이 덕담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고 신랑이 인도에서 만난 친구는 기타를 치며 축가를 부른다. 

이런 공연이벤트도 참 재미있다. 신랑 신부가 그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 커뮤니티를 서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니 말이다. 가족친지들도 모두 이런 전통혼례와 이어진 공연까지 흥미진진해 보인다.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 속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드린 지도 모르겠다.

초례청을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한다. 이는 일반 예식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전통혼례인지라 한복 입은 사람들이 많으니 아름답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가족 사진촬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 후례 폐백 중인 신랑 신부

하객들이 봄바람을 따라 뷔페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신랑과 신부는 후례로 이어진다. 현구고례는 예전에는 신부가 신랑 부모를 비롯 친족과 첫 상견례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폐백이라고도 하며 지금도 꼭 거르지 않고 하는 의식이다. 폐백은 대추와 포가 등장하는데 시아버지가 대추를 던지는 것은 아들을 낳아 대를 이으라는 뜻인데 요즘 그 의미는 세월의 변화만큼 그저 웃을 수 있는 미덕일 듯하다.

2009년 처음으로 경마공원에서 치르는 전통혼례를 '의인' 신랑과 '아리랑로드' 신부가 치른 것이 자랑스럽다. 신랑 신부로 만난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앞으로의 삶이 더욱 인간답고 도전적일 것 같아서 말이다.
 
서울 경마공원 전통혼례는 일반인에게 무상으로 공개되고 있다. 이렇듯 시민들의 전통문화 보급 차원에서 비용 부담 없이 치를 수 있는 곳이 의외로 꽤 많다고 한다. 물론 전통혼례를 기존 예식장문화에 식상한 신랑 신부들을 위해 상품으로 개발한 전문업체들도 많다. 무상으로 공개된 곳은 아무래도 일년 일정이 빠듯하다. 기왕에 전통혼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비용도 잘 따져보면 백년해로의 첫 디딤이 신선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통혼례에서 신랑 신부가 하객에게 인사하는 모습






댓글
  • 김리아 사부, 이 글을 <<길위의 한의사>>에 포스팅 하구 싶은데..방법 좀 알려주세요~~~ ^_^ 2009.07.11 03:50
  • 조용훈 http://www.env-news.co.kr/bbs/board.php3?table=gesi&query=list&p=2

    전통혼례를 찾는 인구가 많다는데...

    이유를 찾아보니 기존의 드레스에 집착하지않고 옛 선조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작은마음이 싹을 틔우나봅니다.사실,기러기는 오직 일편단심으로 한사람을 존중하며 정조를 지키는 새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새들도 있겠지만 왜? 기러기를 선택했을까요!기러기는 인간의 본연의 심성과 어울리며 부부간의 사랑과 정조를 지켜주는 깊은 의미를 지닌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님들 2009년8월9일 동대문에 s기념관웨딩홀 이벤트에 참여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기럭아범이 등장 했는데...그 "ㄱ ㅣ 럭 아 범"이 등장하며 손에 꼭 쥐고 전통혼례식장에 입장했을 때 "하필이면 기러기를 들고 입장을 했을까?"생각하며 인터넷사이트에 검색하게 되었답니다.그 결과 "기러기"의 본 습성을 알게 되었답니다.결혼을 앞둔 신랑,신부님들께서는 전통혼례에서 기러기(원앙새)가 왜!꼭 등장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2009.08.31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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