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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열 여섯에 임신, 평생 따라 다니던 낙인

최종명작가 차이나는 발품 기행 2009. 5. 16. 12:50

[진흙속중국영화캐기-06] 여성감독 리위의 <홍옌>

리위(李玉)는 젊고 대담한 여성감독이다. 그녀는 2007년 작품인 <핑궈(苹果, Lost in Beijing)>에서 전반부 15분의 노골적인 성 묘사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하고 인터넷에 배포했다는 죄목으로 제작사와 함께 중국 정부로부터 2년간 제작금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의 실제 징계사유라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면 <핑궈>가 중국의 사회적 현실을 능욕하고 모멸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부정적 시각 때문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핑궈>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감독이지만 그 이전부터 주목 받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2001년 첫 장편 극영화 <올해 여름(今年夏天, Fish and Elephant)>으로 주목 받았으며 두 번째 작품 <홍옌(红颜)>은 제6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저 예산 영화인 <홍옌>은 중국 쓰촨(四川) 지방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인 샤오윈(小云)의 삶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래서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삶의 모습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으로 노출되고 있으며 자막이 없다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거친 지역 방언이 그대로 화면에 담겼다.

1983년 어느 산골마을. 16살 소녀 샤오윈은 개천에 몸을 담그고 거꾸로 누워있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는 사실을 물 속에서나마 잊어보려는 것일까.

그녀는 학교조회 시간에 메모를 건네 임신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남자친구 왕펑(王峰)과 샤오윈은 왕펑 누나를 찾아가 고백하게 된다.

샤오윈은 학교 화장실에서 배가 부른 채 볼일을 보는 도중 발각돼 가족은 물론 학교와 온 마을에 큰 충격을 준다. 샤오윈은 엄마에게 뭇매를 맞고 학교 스피커를 통해 공개적으로 퇴학 당한 내용이 알려져 온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왕펑은 도시에 있는 삼촌에게 건설인부로 보내진다.

초등학교 선생이며 무섭고 엄격한 샤오윈 엄마 쑤라오스(苏老师)는 의사인 왕펑 누나와 상의해 불법 시술로 아이를 낳게 한다. 그리고 강 건너 멀리 사는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한다. 샤오윈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샤오윈은 아빠 없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쓰촨무대극(川戏)의 배우이자 가수로 살아가고 있지만 늘 지루한 일상이다. 유부남과 부적절한 내연 관계에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의 볼거리 중 하나. 쓰촨 극의 역할 중 화단(花旦)으로 출연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 무대극인 경극(京剧)이나 천극(川剧) 중 여성캐릭터를 단(旦)이라 한다. 그 중에서 행동이 활발한 배역을 화단이라고 하는데 행동거지가 다소 방탕한 역할이 많다. 영화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역할로 화단을 설정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숙하며 온화하고 귀티가 나는 배역은 정단(正旦) 또는 칭의(青衣)라고 한다. 극의 주제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대체로 비슷한 역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의상으로도 구분한다. 그 밖에도 무예가 뛰어난 배역의 무단(武旦), 여장군인 도마단(刀马旦), 가난하지만 인자한 노부를 맡는 노단(老旦), 어릿광대와 같은 캐릭터를 지닌 채단(彩旦) 등이 있다.


10년 전 사건 이후 샤오윈은 여전히 엄마를 비롯한 온 마을의 멸시와 희롱의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독하고 착잡한 인생이던 그녀에게 소문 난 개구쟁이이며 말썽만 부리고 다니는 10살 소년 샤오융(小勇)이 나타난다. 샤오융은 왕펑 누나의 아들이다.

샤오융은 샤오윈을 윈제(云姐), 즉 누나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따른다. 샤오윈이 목욕하는 장면을 우연히 훔쳐보다가 들켜서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그 벌로 빨래를 하기도 한다. 극장에 공연 보러 가서는 노래하는 샤오윈에게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샤오윈이 좋아하는 물고기를 잡아 주려고 다른 사람이 잡은 것을 몰래 훔쳐 샤오윈의 집 앞에 놓아두기도 한다. 두 마리가 나란히 묶여 있는 물고기를 본다. 샤오융이 귀찮게 여겨지던 샤오윈은 슬그머니 웃음이 돈다.


한편 마을에서 돈 많은 사장인 쳰라오반(钱老板)은 샤오윈의 여자친구 미미(咪咪)에게 구혼을 한다. 그리고도 샤오윈을 돈으로 유혹하며 겁탈하려고 한다. 샤오윈은 유부남과의 내연관계가 들통나 무대 위에서 머리채를 잡힌 채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이 난리의 와중에도 샤오융은 샤오윈을 돕는다.

둘이 함께 전기를 훔쳐 고기를 잡다가 들켜 도망치며, '나중에 누나가 늙어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면 내가 돌봐줄게'라고 다감하게 말한다. 간절한 혈육의 정이 느껴지는 샤오윈은 샤오융이 너무 귀여워 볼에 뽀뽀해달라고 한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됐다. 그들 사이에는 살뜰한 정이 싹트고 있었으며 무언가 모르게 서로 끌리는 마음이 생겨 늘 함께 붙어 있게 된다.


그러던 중 10년 전 샤오윈의 아이를 임신하게 했던 왕펑이 죽었다는 전갈이 온다. 왕펑의 누나는 시체의 뼈 조각을 빨간 헝겊에 싸서 화병 속에 넣어둔다. 사망 사실은 샤오융이 길거리 가게에서 만난 샤오윈에게 전달한다. 샤오윈은 당황스러웠지만 10년 전 사건의 상처를 떠올리는 것이 싫다.

한편 샤오윈의 엄마 쑤라오스는 10년 전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당시 의사이던 왕펑 누나가 약속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입양했다고 해 자신들은 다른 아이를 입양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다. 쑤라오스는 10년 전 입양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왕펑 누나네 집으로 찾아간다. 집에 혼자 남아있는 샤오융과 함께 옛날 사진을 보다가 샤오융이 샤오윈이 낳은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샤오윈을 불러 10년 전에 몰래 낳은 아들이 바로 샤오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데려와 키우자고 한다. 샤오윈은 '죽었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못 믿겠다'고 하고 끝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샤오융이 연습실에 찾아와도 모른 척하며 피한다. 샤오융은 이유를 모른 채 서러워한다.


샤오윈은 샤오융이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됐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몰래 훔쳐보기만 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데려다 키운다는 것도 참 쉽지 않다. 10년 내내 마치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진 '홍옌'으로 살아온 현실이 무겁다. 화단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려는 샤오윈을 찾아온 샤오융에게 무덤덤하게 밀어낸다. 그리고 이혼한 내연의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샤오윈이 결혼하는 날이다. 샤오융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샤오윈을 바라본다. 술 마시고 떠드는 혼례 분위기가 갈수록 시끄럽다. 짓궂은 장난이 심해지고 샤오윈이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 속에서 계란이 깨진다. 몸 속 날계란을 꺼내고 옷을 씻으려는 샤오윈에게 이전에 겁탈하려던 첸라오반이 술 취한 채 다가와 희롱한다.


샤오융은 신랑에게 이 사실을 재빨리 알리고 신랑은 술병을 깨고 싸울 태세다. 첸라오반은 오히려 샤오윈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헛소리를 한다. 샤오융은 자신이 다 봤으며 첸라오반이 거짓말 하는 것이며 샤오윈을 괴롭혔다고 소리친다. 첸라오반이 샤오융을 붙잡고 때리자 샤오윈은 신랑이 들고 있던 깨진 술병을 뺏어 첸라오반을 찌른다.

혼례는 난장판으로 끝났고 신랑은 자신이 한 소행이라고 경찰에 말한다. 그리고 7일간 수감된다. 샤오윈은 심경의 변화가 생겨 파혼을 하고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왕펑 누나를 만난다. 샤오융으로 인해 남편이 의심하게 됐고 1년이 채 안돼 이혼당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는다. 왕펑 누나는 동생의 아들인 '샤오융이 없으면 세상 살 의미가 없다'고 한다. 샤오윈도 '10년 동안 오히려 나를 도와준 거네요'라며 10년 전 일로 인한 마음의 짐이자 실타래를 푼다.

더 이상 고향 마을에서 낙인으로 살지 않으려는 샤오윈은 마을을 떠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샤오융을 만난 샤오윈. 둘의 대화가 슬프고도 담담하다. 샤오융은 헤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퍼 도저히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아들 샤오융에게 가슴 속 응어리진 말을 하고 싶지만 억눌러 참는다.

샤오윈은 샤오융의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 하나하나 '우리 코와 우리 입술, 우리 눈 모두 비슷하지 않느냐?'고 한다. 또 '우리 이마도 불룩 나온 거 하며 비슷하지?' 하며 마음을 풀어준다.


샤오융 : 누나, 저 잊으면 안돼요!
샤오윈 : 나중에라도 생김새가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바로 넌 줄 알 게 될 거야!
샤오융 : 제가 누나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요?

떠나가는 딸을 보며 통곡하는 엄마를 뒤로 하고 샤오윈은 대도시를 향해 떠나간다. '홍옌'처럼 살던 마을을 뒤로 하고 기차를 탄다. 기차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샤오융은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영화가 끝난다.

2005년 제63회 베니스영화제 유럽예술상을 수상한 후 베이징에서 시사회 당시 여배우이며 감독인 쉬징레이(徐静蕾)와 여배우 취잉(瞿颖) 등이 영화를 보고 말 없이 눈물 흘렸다고 보도될 정도로 이 영화는 굉장히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리위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하면서 '홍옌이란 말은 남성이 만든 것이지 죄라고 할 수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허물을 짊어진 속죄양처럼 살아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지금의 중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을 자신 있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6세대 영화의 제작방식을 따르면서도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독특한 주제의식을 지닌 리위 감독은 주목 받는 젊은 여성감독이다.

앞으로 그녀의 영화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판치는 중국 곳곳에서 소외되고 열악한 질곡 속에 사는 여성들을 조명할 것이다.

그녀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옌'에 대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는 물론이고 젊은 여성감독의 비전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진다.

"홍옌은 중국에서 아주 떳떳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상이 넘치는 공간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희망이 담긴 영화인데 그 이유는 어두운 운명 속에서도 출구를 찾아가는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아이가 나타나면서 한 여인에게 생명의 빛을 가져다 주고 있으며 잠시나마 해방을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을 떠나가는 것은 홍옌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이 될 낙원을 향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리위가 그린 <홍옌>의 메시지가 과연 희망의 출구를 찾는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홍옌> 이후 그녀를 주목하게 한 영화 <핑궈>에서 도시의 가난한 여성이 돈과 남성의 노예로 살아가는 질곡으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희망이 보이는 낙원에 도착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둑 길 (0000)

Dam Street 
8
감독
이옥
출연
황흥요, 이극순
정보
드라마 | 중국, 프랑스 | 93 분 | 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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