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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관우 무덤 앞에서 삼국지를 떠올리다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4.25 14:48

[중국발품취재17] 경이로운 용문석굴과 관우의 묘

5월 6일 9시 좀 지나 짐을 호텔에 맡겼다. 룽먼스쿠(龙门石窟; 용문석굴)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었더니 바로 건너편이라 한다. 건너편에서 물었더니 여긴 없고 저쪽, 서쪽으로 가보라 한다. 아무리 한참을 걸어도 없다. 아주머니와 딸이 걸어가고 있어서 다시 물었더니 북쪽으로 더 가서 60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한다.

사거리 보여, 다시 물었더니 '여기 없을 걸'이란다. 마침 지나가는 토박이를 붙잡더니 묻는다. 그 친구 자기가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 한다. 5분 정도 걸으니 버스가 바로 있다. 그렇게 30여분 헤맸다. 버스가 지나는 노선을 나중에 알아보니 묵었던 호텔에서 나와서 건너편이 아니라 왼쪽, 즉 동쪽으로 가야 했다. 애초에 호텔 직원 말을 믿고 여러 번 묻지 않은 내 잘못이라 생각하자.

시내 중심에서 약 20km 떨어진 룽먼(龙门)이건만 거의 1시간이 걸린다. 시내버스니 당연하긴 해도 참 느리다. 룽먼에 도착하니 11시 30분.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석굴 입구로 갔다.

'세계문화유산'임을 새긴 바위 앞에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세계적으로 유산으로 인정하기에 넉넉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곧 그것은 입장료가 만만하지 않다는 증거. 80위엔(1위엔은 약 120원)이니 꽤 비싼 편이다.

▲ 용문
ⓒ 최종명

룽먼에는 이허(伊河)라는 강이 흐른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닌 두 개의 석굴이 있다. 서쪽에 있는 석굴을 서산석굴, 동쪽에 있는 석굴을 동산석굴이라 한다.

대체로 남북조 시대 북위 정권이 따통에서 뤄양으로 천도(서기 (493년)한 이후 윈강스쿠(云冈石窟)가 세운 숭불정신을 기초로 만들었다. 뤄양은 북위 정권 이후 남북조 시대의 서위, 동위, 북제 정권을 비롯해 수나라, 당나라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당나라 시대, 특히 무측천(武则天) 집권시기에 이르러 더욱 많은 석굴들이 건설되었다.

멋진 번자체로 용문(龍門)이라 적힌 곳이 석굴 입구. 강을 연결하는 두 개의 다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입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절벽을 따라 석굴과 불상이 이어진다.

▲ 서산석굴 부근 절벽
ⓒ 최종명

그 중에서도 고양동(古阳洞), 병양중동(宾阳中洞), 연화동(莲花洞) 등은 대표적인 석굴로 유명하다. 특히 고양동은 북위의 천도 직후 황실귀족과 궁정대신들의 조상(造像)으로도 알려져있다. 23년에 걸쳐 무려 80만명이 동원돼 만들어졌다 하니 그 열정이 놀랍다. 크고 작은 불상과 조각상이 바위와 동굴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으니 일일이 다 보고 느끼기에 너무나 많다.

병양중동 역시 24년에 걸쳐 완성된 동굴로 석가모니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사자상이 버티고 있으며 제자들이나 보살들의 미소 띤 얼굴과 함께 당시 불교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 봉선사 로사나 대불상
ⓒ 최종명

봉선사(奉先寺)는 너비가 30m에 이르는 최대의 석굴이라 할 수 있다. 무측천이 사비를 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한가운데 우뚝 선 로사나대불(卢舍那大佛)은 머리가 4m, 귀가 1.9m이고 전체 높이가 17.14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이다. 로사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신불 중 하나.

▲ 로사나 대불이 있는 봉선사
ⓒ 최종명

좌우에는 제자인 아난(阿难), 가예(迦叶)보살과 금강(金刚)과 신왕(神王)의 조각상이 보좌하고 있다. 거대한 규모임에도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과 미소와 철학까지 담은 듯한 빼어난 예술적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거대한 불상 사이 벽면에 자그마한 불상들도 그 존재가치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때묻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히 경이롭다 하겠다.

절벽 계단을 타고 계속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이어지는 크고 작은 석굴들을 보는 재미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작은 동굴 속에 살짝 들어가 보기도 하면서 사진도 찍는다. 아쉬운 것은 작은 조각상들의 얼굴, 특히 코가 많이 베어지고 사라진 것이다.

▲ 동산석굴
ⓒ 최종명

완쉐이치아오(漫水桥)강을 건너면 동산석굴이다. 산세가 좀 더 험한 이곳은 주로 당나라 시대, 특히 무측천 집권시기에 건설된 것이 많다. 바위 속에 구멍이 뚫린 형태로 동굴마다 불상이나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동산석굴에서 바라본 봉선사 석굴과 불상은 더욱 멋지다. 문득 뱃사공이 강을 오르다 거대한 불상과 처음 만났다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향산사
ⓒ 최종명

동산석굴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무측천 시대에 건립된 불교사원 향산사와 만나게 된다. 산 중턱에 자리잡고 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향산사는 그 경치가 아름다워 백거이(白居易)를 비롯해 많은 문인과 승려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또한, 1750년 청나라 건륭 황제가 다녀갔으며 1936년에는 장제스(蒋介石)과 그의 부인 쏭메이링(宋美龄)이 이곳에서 피서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백거이는 말년에 룽먼에서 생활했다. '향산거사'라는 별호처럼 그는 향산사에서 강을 바라보며 인생을 즐겼으리라. 그래서, 백거이의 묘원인 백원(白苑)이 이곳에 있다. 새소리가 들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아담하게 자리를 차지한 묘가 있고 아래 중턱에는 서늘하고 풍경 좋은 찻집이 있다. 거문고 소리 들으며 향 좋고 맛깔 나는 차 한잔 마신다면 도저히 발걸음을 떼기 힘들지도 모른다.

날씨는 여전히 덥다. 온통 불상의 향연을 치르고 향산사에 가느라 가파른 계단길도 오르고 백원의 향기도 느꼈으니 이제 돌아가야 한다. 룽먼치아오(龙门桥)를 건너는 공원차량을 타고 입구로 돌아왔다.

3시간 이상 돌아다닌 셈이다. 빨리 움직여야 룽먼의 또 하나의 명물, 관우의 묘를 볼 수 있다.

택시요금을 물어보니 20위엔을 달라고 한다. 기사들이 내 몰골을 보더니 서로 눈짓하며 부른 것이다. 사람을 티 나게 훑어보고 값을 부르는 중국 기사들을 보면 생리적으로 반응이 온다. '안 타'

버스를 타려고 가니 15위엔 해주겠다고 한다. 이미 1위엔을 내고 버스를 탔는데 말이다.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다시 20분 정도 걸으면 관우의 무덤 관린(关林)이 있다.

이곳 관우의 무덤은 삼국지에도 나온다. 저녁에 아들과 메신저를 했는데, '아빠 오늘 관우 무덤에 다녀왔어' 했더니 '알아, 손권이 관우를 죽이고 조조에게 보내 누명을 넘기려 했는데 조조가 관우 주검을 아주 성대히 장례를 해줬다고 나와' 그렇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아는 관우의 묘가 바로 이곳 뤄양 룽먼에 있다.

▲ 관림에 나부끼는 깃발들
ⓒ 최종명

관린에 들어서면 좌우로 깃발이 펄럭인다. 인용과 충의의 상징 관우. 중국사람들이 신으로 받들어 모시며 관공이라 높이 부르고 가는 곳마다 관제묘 또는 사당이 있기도 하다. 관린에도 그의 조각상이 있고 양옆에는 그의 아들인 관핑(关平)과 부하장수 저우창(周仓)이 나란히 서 있다.

관우의 수급이 있는 무덤 관린은 실제로는 명나라 때인 1592년에 사당으로 건립된 것이다. 이후 청나라 건륭황제 때에 이르러 150여칸이나 되는 규모로 발전했다. 관우는 중국에서 유교, 불교, 도교 모두 존경하고 받드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래서 늘 그의 사당은 종교의 혼합체 같은 느낌을 준다.

▲ 관제로 칭송 받는 관우
ⓒ 최종명

관제총(关帝冢)에 이르면 돌로 세운 베이팡(牌坊)과 베이팅(碑亭)이 차례로 보이고 그 뒤에 무덤이 있다. 실제로 무덤 앞에 서면 좀 답답하다. 좁은 공간에 차례로 서 있는 베이팡과 베이팅이 연이어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무덤을 돌아보면 8각형 모양으로 높이가 10m, 너비가 250㎡에 이르고 단단한 돌로 외벽이 꾸며져 있어 단단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관우의 묘원 앞
ⓒ 최종명

무덤을 한 바퀴 돌아보고 빠져나오는데 삼국시대 천리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장을 나부끼던 그의 수염을 매만지고 싶었다. 자꾸 자라나는 내 수염은 갈수록 덥수룩해지는구나. 비록 역사에서 꿈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많은 이들로부터 추앙받는 관우를 떠올리며 자꾸 수염을 만지작거려 본다.

'걸어다니는 삼국지' 아들의 한때 별명이다. 삼국지를 너무 좋아해 온통 삼국지 책과 만화에 빠져 살았고 중국 출장 때마다 관우 동상 하나 사 가지고 가면 좋아라 하던 때가 있다. 북경에 놀러 왔을 때도 물건 사는 걸 지독히 아까워 하는 녀석이지만 관우 조각상 앞에서는 늘 망설이던 아들이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서 낭만과 지혜의 보고인 역사책도 제대로 못 읽어서 안타깝다.

▲ 관림 입구 문 바깥쪽
ⓒ 최종명

다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덜컹거리면 시내를 한 바퀴 다 돈 후에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좀 싼 호텔을 구하려고 큰 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고 인터넷도 되고 친절한 꺼린하오타이지여우디엔(格林豪泰酒店), Green Tree Inn이다.

이곳에서 이틀을 숙박했다. 다음날 꼬박 취재기를 쓰면서 하루를 푹 쉬었다. 이제 허난(河南)성에서도 마지막이니 그동안 밀린 숙제를 열심히 했다. 푹신한 침대와 깔끔한 호텔, 인터넷이 되니 종일 사무실처럼 책상에 앉아 있으니 여행 중이라는 느낌이 잠시 사라졌다. 애초에 여행하고 취재한 것을 글 쓰고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송고한다는 계획이었다. 갈수록 다소 버거운 생각이 들지만 조금 늦더라도 꼬박꼬박 이어갈 생각이다.

배 고프면 잠시 밖에 나가 가볍게 먹고 또 들어오고 그러니 호텔 직원이 매번 쳐다본다. 하기야 반바지 차림에 수염은 하얗게 드러내고 들락거리니 말이다. 하루를 쉬니 약간 생긴 물집도 조금 아물어 간다. 다음 행선지는 핑야오(平遥)이니 기차표만 예매하면 당장 신경 쓸 일도 없다. 다행히 호텔 부근에 예매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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