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구이저우 소수민족 취재기 ①] 베이징에서 시장까지
 

베이징 출발 Z17 열차, 후난(湖南) 창사(長沙)까지 13시간 5분. 10월 28일 저녁 출발 아침 도착의 직행특급기차인 즈다터콰이(直達特快)는 오차 없이 순간 이동했다. 중국소수민족 로망을 지닌 취재팀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다시 구이저우(貴州) 행 버스를 탄다. 창사 버스터미널에서 뉴러우몐(牛肉麵) 한 그릇씩 배를 미리 채웠다. 장이머우 감독의 <귀주이야기>가 '귀주'가 아니듯 영화 속 중국 서북지역 배경이 아닌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 마을을 향해 간다.


구이저우 동남부 및 남부 지역은 먀오족(苗族), 둥족(侗族), 부이족(布依族), 수이족(水族) 등 소수민족이 거주한다. 송(宋)대 이전에는 쥐저우(矩州)라 했으나 기역자 모양의 자를 뜻하는 이 쥐(矩)와 구이(貴)의 현지 발음이 같아서 원(元)대 이후 줄곧 구이저우라 했다. 구이저우를 약칭하는 첸(黔)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행정지명으로 썼던 말이기도 하다. 첸링산(黔靈山)이나 첸링허(黔靈河)가 있다. '검을 검'의 첸을 산과 강 이름으로 쓴 유래가 있겠지만 칼라감성이 원초적인 중국에서 느낌 다른 은은한 낭만이 역사만큼 깊다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이어온 현지 소수민족의 애환 때문일지도 모른다.
 


간이침대 두고 손님 태우는 것은 불법... 그래서 재미난 일 벌어졌다


▲ 서울에서 온 일행과 베이징을 출발, 창사를 거쳐 카이리에서 1박 한 후 다시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시장 첸후먀오자이까지의 노선도. 이 마을 행정소재지는 구이저우 동남부 먀오족둥족자치주 카이리 시, 레이산 현, 시장 진이다. ⓒ baidu.com 지도


다음 행선지는 첸둥난(黔東南)먀오족둥족자치주의 주도인 카이리(凱裡). 창사에서 카이리까지는 다시 10시간 이상 가야 한다. 4명의 대원은 낯선 환경의 2층 침대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타기 전까지 시내를 두루 돌더니 점점 각 침대 칸을 다 채운다. 우리는 아예 맨 뒤쪽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한 줄에 3칸 침대이지만 맨 뒤는 사이에 간이침대를 넣어 5칸이다. 간이침대를 두고 손님을 태우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성 경계에는 검문이 있다. 후난 성 끝자락에서 갑자기 정차하더니 차장이 중국승객 2명과 나를 빨리 내리라고 한다. 바삐 서두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렸더니 7인승 버스에 옮겨 타라고 한다. 그제서야 이 상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대원들에게 운전석 문을 열고 큰소리로 '걱정할 일 아니니 10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침대 7칸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긴 버스 뒤쪽에서 이 급박한 명령(?)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3명은 갑자기 질겁을 했고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대원들은 '대장 친구가 없다'고 난리를 친 것이다. 
 


중국에 관한 위험한 선입견이 클수록 소동은 더 심각한 법. 운전석까지 달려가 소통의 절망을 느끼고 대장을 잃어버린 상실감, 두려움이 폭발했으니 차를 세우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누군가 영어로 'No Problem'이라 안정시켰다 했지만 10분은 참 긴 시간이다. 경계를 벗어난 후 재회한 기쁨은 한동안 버스를 시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수다를 침묵하며 이해해준 사람들이 고맙기조차 하다. 이렇게 우리는 구이저우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한 귀퉁이에 우리를 내려주더니 버스는 다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떠나갔다. 시내까지 연계하는 차량을 옮겨 타고 호텔을 잡았다. 베이징에서 차량 이동시간만 24시간, 1박2일만에 카이리에 도착한
것이다. 

▲ 먀오족은 쌀과 찹쌀 농사를 주로 한다. 찹쌀술 항아리
1근(500g)에 6위엔(약1,000원), 봉지에 담아서 판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둥족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가지와 감자로 만든 요리와 밥을 사고 1근에 6위엔인 먀오족 밀주, 눠미쥬(糯米酒)까지 나눠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다시 한번 의기투합. 취재여행의 별미는 역시 이야기이다. 만 하루의 여정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책 한 권을 탈고한 듯한 기분이다.


소수민족 취재 첫 번째는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첸후먀오자이(千戶苗寨)이다. '자이'의 '채'는 울타리, 산채 등을 뜻하니 민족 이름을 붙여 쓰면 바로 민족마을이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렀다. 카이리에서 버스로 1시간 좀 더 걸린다. 시내를 벗어나 산골로 접어드니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을 끼고 크고 작은 소수민족 마을이 펼쳐진다. 검은색 지붕에 하얀 무늬가 보이면 먀오족 마을이고 마을에 높은 탑이 솟아있으면 둥족이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드러난 가옥형태로 민족을 나누어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사진이나 책에서 보던 모습은 지식이지 현장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푸른 나무 사이로 겹겹이 모여 사는 집집마다 역사가 있고 살아온 숨결이 보인다.


꼬불꼬불 산길이 점점 심산유곡이다. '까마귀가 불 타는 마을'이라는 샤오우사오촌(小烏燒村) 도로에는 시장이 열렸다. 농산물은 물론이고 고기, 야채 등 생필품, 그리고 모자, 옷, 신발도 보인다.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덕분에 버스가 장터 사이를 천천히 피해간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어진다.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그냥 장터가 아니다. 옷 매무새에는 별스런 칼라를 담았고 눈망울과 주름에도 신선한 향기가 돋기 때문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산 능선을 따라 검정 지붕의 집들이 천호에 이르는 중국 최대 먀오족 마을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다시 버스는 커다란 산 하나를 넘는다. 꾸불꾸불 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하염없이 달리던 버스가 드디어 시장(西江) 진에 도착한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천 가구나 모여 사는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집들이 산 하나를 통째로 뒤덮어 마치 요새 같다. 이다지도 깊은 산 속에 수천 명이 지고한 역사를 지닌 채 살아왔다니 신비롭다.


강물의 흐름과 마을의 분포 보니... 서울이잖아!


시장 진 먀오족 마을 입장료가 무려 100위엔(약 1만8천 원)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조그맣고 맑은 하천을 두고 위 아래로 얕은 능선에 천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 나무 판자로 만든 농가분포도는 얼핏 보면 마치 서울 지도를 보는 듯하다. 강물의 흐름과 마을의 분포를 평면으로 그려놓으니 정말 똑같다. 다만, 강의 위쪽, 즉 '강북'은 사실 동쪽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의 지도. 마치 서울 지도를 보는 듯 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강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간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데 따지고 보니 서쪽 강도 아니다. '서강(西江)'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얼까. 강의 이름도 바이쉐이허(白水河)이다.


현지 먀오족 발음으로 '지장(雞講)'이 '서강'의 중국발음 시장(xi jiang)과 같다. 그러니까 원래 이곳의 지명은 '닭이 말한다'는 뜻으로 중국어로는 지장이라고 하지만 먀오족은 시장이라 발음한다. 자연스레 '서쪽 강'이라 지명까지 변한 것이다. 즉, 시장은 먀오족 언어 '지장'의 중국표준어 음역인 셈이다.


'닭이 말한다'고 할 정도로 먀오족은 닭과 친숙하고 투계, 더우지(鬥雞)로 유명하다. 목덜미 주위가 피 빛 선연한 싸움닭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원래 순한 지 기력이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봐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다. 먀오족들은 닭을 정말 좋아하는지 더우쟈오지(鬥腳雞)라는 전통놀이가 있다. 손으로 한 발을 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인데 우리의 닭싸움과 완전 똑같다.


▲ 시장 첸후먀오자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더우지(투계). 피투성이 목덜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모두가 알듯 먀오족은 치우(蚩尤)를 조상으로 받든다. 투구 같지만 물소의 뿔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멋진 은빛 장식을 머리에 걸치는데 그 형상이 신화 속 치우와 닮았다. 중원 동쪽, 장강 중류에 거주하던 구려(九黎)부족이 수차례에 걸쳐 남하한 민족이다. 중국 남부지방으로 온 먀오족은 씨족 단위로 광범위하게 정착했다. 이곳 역시 시(西)씨 계열의 먀오족 부락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업고 다니는 모습도 흔하다. 엇갈리게 끈으로 묶고 등에 아이를 업은 노인이나 아주머니들이 거리에 많다. 은 장식 모자를 쓰고 앉은 아이는 물끄러미 낯선 이방인을 바라본다. 길모퉁이에서 아이들이 딱지싸움도 하고 트럼프놀이도 한다. 할머니를 따라 마실 나온 아이들은 신나게 사람 구경도 한다.


▲ 구이저우 시장 먀오족 마을. 아이를 업고 가는 할아버지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 할머니를 따라나온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보여주면 아주 즐거워한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 마을 큰길은 그 자체로 문화풍물거리이다. 전통 공예 가게가 즐비하며 순은방 간판은 검은색 바탕 위에 붉게 빛난다. 손으로 직접 짜서 모자, 신발을 파는 수제방(手繪坊) 이름은 아나이(阿娜依)이다. 영화로 제작될 만큼 유명한 전설이다. 심청처럼 아나이는 먀오족 아가씨의 이름이다. '아'가 이름이고 '나이'는 먀오족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작약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 식으로 보면 '이진달래' 정도겠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랑 지내며 자수와 노래 솜씨가 좋았고 예쁘고 마음씨가 착했으며 나중에 둥족 청년과 만나 결혼해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예쁜 아가씨, 그리고 고난과 사랑, 노래의 정서가 담긴 소수민족 이야기는 이렇게 일맥상통하며 다소 천편일률적이다. 쿤밍 이족(彝族)의 '아스마(阿詩瑪)'나 구이린 좡족(壯族)의 '류싼제(劉三姐)'와도 닮았다.


▲ 전설 속에 나오는 사랑의 주인공 '아나이' 이름을 한 수제방 간판. 먀오족은 치우를 숭배하며 물소의 뿔 같은 모양의 장식으로 유명하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하지만, 취재여행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전설은 늘 같아 보여도 늘 새록새록 새롭다. 사랑이 주는 감흥은 민족이나 인종 그 어디에도 차별이 없다. 민족마다 서로 다른 차이를 뛰어넘는 역사와 문화, 애절한 각 민족의 자기고백은 이방인에게는 언제나 신선하다.


후루루 입 속으로 넣은 먀오족 비빔면, 그 맛은?


거리마다 커잔(客棧)이 수두룩하다. 너무 소란스러울까 걱정도 된다. 어쩌면 멀리 소수민족 마을을 찾은 것은 도시답지 않은 한가(閑假)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을 건너 맞은 편 언덕 위로 올라갔다. 농가를 개조한 여관이다.


▲ 구이저우 시장 첸후먀오자이, 먀오족 아이가 은 장식 모자를 쓰고 있다.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먀오족 가옥은 나무로 지은 2층 누각 형태이다. 이를 댜오쟈오러우(吊腳樓)라 부르는데 조문한다는 뜻의 '조' 자의 형태와 비슷하다. 이런 형태는 산골생활을 하는 소수민족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넓게는 광시(廣西) 등 남방지방의 대나무와 풀로 엮어 만든 집을 말하는 간난식(杆欄式) 가옥에 포함된다. 중국 4대 고대민가건축 중 하나로 베이징 등 북방지역의 쓰허위엔(四合院), 윈난의 장방형으로 도장처럼 생긴 이커인(一顆印), 남방의 커자(客家)부족의 투러우(土樓)와 함께 전형적인 전통가옥이다.


짐을 풀고 창 밖을 보니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하천에서는 고기를 잡고 안개 낀 앞산은 까맣게 뒤덮은 나무집들로 빽빽하다. 서둘러 취재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허기부터 채우고 공연을 보기로 했다.


강 다리 위에 넓은 면발에 향긋한 소스로 비빈 미피(米皮)가 보인다. 이 비빔면은 중국 어디서나 있지만 먀오족 입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후루룩 입 속으로 넣으니 한마디로 대성공이다. 적당하게 고소하며 달고 상큼한 맛깔 때문에 입맛이 마구 돌았다. 콩 국물인 더우장(豆漿)에 곁들이니 안성맞춤이다.


▲ 비빔면의 일종인 미피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인절미 만드는 떡판이 놓여 있다. 츠바(糍粑)라 하는 찹쌀로 만든 떡이다. 좁고 깊은 절구통과 달리 이들은 넓고 평평한 떡판을 사용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밤 절구에 넣고 떡메를 쳐서 떡을 만들어오는데 관광객들이 즐기는 먹거리라 한다. 쫄깃한 떡 맛 그대로, 어쩜 이렇게 고향 맛이 나는 것인지.


▲ 찹살떡인 츠바 만드는 모습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어느덧 배도 부르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거리니 피로를 조금 풀어본다. 베이징에서 약 2500킬로미터 떨어진 이 먼 소수민족 마을을 조용히 음미한다. 역사처럼 한없이 오래여도 좋다. 느긋하게 잠시 앉았던가 싶었는데 우리 취재팀은 곧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색다른 리듬의 풍악소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