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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중국발품취재 ①] 토담으로 지은 옹성, 사원이 있는 허베이 위현



베이징 지하철역 젠더먼(健德門) 북쪽 500미터 지점 베이자오(北郊)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9시가 조금 지났다. 10시에 위현(蔚縣) 행 버스를 무작정 탔다. 2월 18일, 주말에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를 불문하고 떠나던 게 정말 얼마만 인지. 중국에서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즐겁다.

 

일행이 3명이나 더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이제 일어났어요' 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한순간도 주저 없이 혼자 떠났다. 여행지에서 1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 주려면 무수히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말아야 한다. 덕분에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직선거리로는 베이징 서쪽 160킬로미터, 버스로 4시간이 걸린다. 개혁개방 30년 전부터 다녔을 법한 낡은 17인승 버스는 정말 오랜만에 타 본다. 그래서 그런지 풋풋하기조차 하다. 볼품은 없어도 빠르게 달린다. 베이징과 허베이(河北)의 경계인 관팅(官廳) 저수지를 지나 버스는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 지방도로를 쌩쌩 달렸다. 점점 농촌의 황량한 겨울 벌판이 드러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鎮), 향(鄉), 촌(村) 이름들이 낯설고도 정겹다. 황제성(黃帝城)과 치우천(蚩尤泉)이 있다는 판산(礬山) 진을 지나 109번 국도로 잠시 접어들었다.

 

위현, 베이징 옛 모습 찾아볼 수 있으리라 기대

 

베이징에서 허베이 서북방향 위현과 줘루 1박2일 노선


집집이 걸린 홍등 외에도 대문에는 갖가지 종이를 붙여놓았다. 토담집 나무 대문에는 '부자 되는 걸 축하한다'는 궁시파차이(恭喜發財)와 마름모꼴 종이에 복(福)자가 양옆에 걸려 있다. 빨간 바탕에 검은색으로 '신춘대길'을 뜻하는 춘련(春联)도 나란히 붙어있다. 연갈색 낡은 나무 대문이 아주 선명해졌지만 소박한 맛은 없어 보인다.

 

다시 지방도로와 갈림길인 차다오(岔道) 촌을 지나니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은 소오대산 입구 창닝(常寧) 향이다. 시허잉(西合營) 진에 잠시 정차하더니 승객 일부가 내렸다. 다시 지방도로를 1시간가량 달려 종착지에 이르렀다. 수억 년 전 바다로부터 융기해 푸석푸석한 흙으로 덮인 벌판을 4시간가량 달려온 것이다.

 

위현에는 흙으로 쌓은 고성이 있다. 중국 베이징대학출판사 미술편집자인 린성리(林胜利)는 자신의 책에 "마치 45년 전 베이징 고성에서 놀던 때처럼 흥분되는 곳"이라고 했다. 베이징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흥분된다.

 

현청(縣城)에서 고성이 있는 놘취안(暖泉) 진까지는 서쪽으로 2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버스 타는 곳을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거리도 한산해 가게에 들어가 물었더니 버스 타는 곳이 멀단다. 그냥 택시 타고 가라며, 택시 운전사라는 남편을 불렀다.

 

택시를 타고 벌판을 20여 분 달려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길을 따라 서쪽 끝까지 데리고 갔다. 놘취안구전(暖泉古鎮) 시구부(西古堡) 풍경구라는 팻말이 보였다. 마을 서쪽 토담 마을이라는 뜻이다. 3문4주3와(門柱瓦) 나무 패루가 하나 서서 입구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입장권을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백발백중 돈벌이 수단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뜻밖에 공짜다. 중국은 유명세, 자연 및 문화 경관이 좋을수록 입장료가 비싸다는 철칙이 틀린 적이 별로 없다. 무료입장이 왠지 어색해 머뭇거렸는데 사람들 몇 명이 당당하게 들어가고 있다.

 

옹성, 명나라 가정 시기때 처음 건축 돼

 


마을 지도를 보니 국(國)자 형태의 토성으로 누각과 사원, 민가가 촘촘하게 짜여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100여 평방미터 정도의 공간이 나오는 데 옹성(甕城)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이야 평화시대니 무덤덤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전쟁을 대비하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성은 명나라 가정(嘉靖) 시기 처음 건축됐는데 남쪽과 북쪽에 있는 옹성은 청나라 순치(顺治)제와 강희(康熙)제 때 각각 세웠다. 청나라 초기 옹성을 새로 건축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쟁 위험에 대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쪽 옹성을 지나 성으로 들어서니 남쪽으로 길게 뻗은 정제(正街)가 나타난다. 영어로 이야기하면 Centre Street이겠다. 한눈에 남쪽 옹성을 바라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성 전체 면적이 6만 7천 평방미터이니 어림잡아도 250미터는 더 되는 거리다. 남북으로 뚫린 중앙 길옆으로는 민가들이 골목길을 중심으로 동서방향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신기하게도 옹성 위에 사원이 있다. 옆길로 들어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아담한 삼관묘(三官廟)가 있다. 천지인(天地人)을 모시는 도교사당이다.

 

천문을 관장하며 복을 하사하는 일을 하는 당요(唐堯), 지리를 관장하며 죄를 용서하는 일을 하는 우순(虞舜), 수리를 관장하며 재앙을 없애는 일을 하는 하우(夏禹)를 삼관이라 한다. 옹성 위 삼관묘 앞 좌우로는 북과 종이 걸려 있다. 여느 사원처럼 구색을 갖춘 것인데 워낙 공간이 좁다 보니 매우 아담하다.

 


옹성에서 바라보니 거리가 깨끗하고 한산하다. 집집 대문마다 홍등이 걸려 있어 무채색 거리를 칼라풀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동쪽에서 강한 햇살이 비추니 지붕 그림자가 거리를 진하게 물들이고 있다. 옹성 담벼락에도 홍등과 그림자가 붓으로 점을 찍은 듯 나란하다.

자그마한 사거리는 가로로 동항(東巷)과 서항(西巷)을 나누고 있다. 왼쪽 동항으로 접어드니 둥자다위안(董家大院)이란 간판이 보인다. 청나라 시기 일종의 금융기관인 표호(票號)까지 설립할 정도로 뛰어난 상인이 살던 집이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동씨 성이라 하니 집성촌 리더가 살던 곳이다. 원래 명나라 말기 지방 군대 책임자의 사택이던 총병부(总兵府)를 청나라 시대 상인 동씨가 인수한 집이다.

 

다른 집과는 달리 가로등의 두 배 크기로 담벼락을 쌓았다. 사당도 붙어있고 후원도 동루(東樓)와 서루(西樓)로 나눌 정도로 넓다. 부자 3대를 넘지 못한다 하는데 무려 8대에 걸쳐 부를 만끽했다고 전한다. 지금에야 쇠락해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옆집 민가 열린 대문으로 살짝 들어가 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넓은 마당에는 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강아지는 사람 인기척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집에서 졸고 있다.



동항 끝에 벽돌로 담과 대문을 쌓은 영성사(嶺聖寺)가 보였다. 열 걸음이 채 안 되는 작은 마당 앞 전각에는 복마전(伏魔殿)이라고 쓰여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신기한 것은 복마전이란 뜻도 그렇지만 관우 조각상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악의 소굴이자 정경유착이나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연상하는 이 말은 <삼국지>와는 무관하게 <수호지>에 등장하는 명언(?)이기도 하다.


불교사원 행세 하면서 충의 상징 '관우' 세운 전각 ... 재미난 앙상블



대문 벽면에 "산령(山嶺) 호랑이이자 무성(武聖)이고 오호대장의 한 분인 관정제군(關聖帝君)"을 모신 사당이라고 써 있지 않았다면 열 번도 더 확인 사살 차 둘러봤어야 했을 것이다. 친절하게도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고 서명까지 쓰여 있다. 스님이 관우를 섬긴다는 말이니 참 이해하기 어렵다.

 

불교사원 행세를 하면서 충의의 상징 관우를 세운 전각 앞에 도교의 고사인 복마전까지 참으로 재미난 앙상블이다. 역시 유불선을 나누지 않고 인민들이 선망하는 것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융합하는 중국 스타일답다.

 

다시 큰길로 나오니 서항 부근에 교육기관인 둥자이쉐(董家義學)과 마을회관인 둥자후이관(董家會館)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 더 걸었다. 공예품을 파는 문화점(文化站)이나 식당과 편의점 몇 곳이 군데군데 문을 열어놓았다.

 

위현은 가위로 종이를 오려 만드는 공예인 젠즈(剪纸)의 발원지이어서 곳곳에 역사인물이나 상징문양이 드문드문 보인다. 게다가 다른 지방과 달리 농촌 음식들도 풍부하다. 성곽 한 바퀴를 다 구경한 후 세심하게 살펴보려고 그냥 지나쳤다.



큰길을 다 걸어 남쪽 옹성 앞에 이르렀다. 동서남북이 대체로 대칭구조라 옹성은 엇비슷하다. 텅 빈 북쪽 옹성과 달리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 적은 종이가 붙었고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옹성 위에도 사원이 있어 올라가는 길을 찾다가 성 바깥으로 나가고 말았다.

 

문밖 벽에 용의 얼굴을 한 사자가 새겨져 있고 호국유민(護國裕民)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바로 옆에는 재신묘(財神廟)가 있는데 재물 신을 모시는 일이 호국인지 모르겠지만 증복(增幅)과 국태민안도 붙여놓았다. 재신묘는 지방마다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별칭으로 호국사라 부르는 곳도 더러 있기는 하다.

 

영화 <귀신이 온다> 촬영지로 유명한 곳



성 밖으로 나오니 황량한 벌판이 나타났다. 앙상한 나무 두 그루가 황토 빛 토담을 배경으로 서 있으니 더욱 썰렁하다. 성곽 바깥으로 민가가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황토 빛깔이 묻어있고 허름한 가옥구조가 독특해 영화촬영지로 꽤 유명하다.

 

특히 2001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귀신이 온다>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의식 있는 6세대 감독이자 배우인 장원(姜文)이 연출하고 주연한 이 영화는 1945년 화베이(华北)의 한 농촌에 낯선 사람이 일본군과 통역을 포로로 남기고 가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성 밖 민가뿐 아니라 옹성 주변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흑백영화지만 그림자 조명의 대비를 통해 일본군과의 긴장감을 잘 표현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영화를 다시 보니 토담 성과 옹성, 거리 곳곳이 등장하니 새로운 맛이 났다.

 

노새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옆에는 노새 먹이인 덩그러니 사료창고 하나가 자물쇠로 잠겨 있다. 좀 멀리 걸어가 토담 위로 올라가 보니 멀리 성곽이 보였다. 성 밖 촌락도 다 쓰러져 가기는 해도 사람들이 사는 흔적이 있다.

 

다시 성 안으로 돌아갔다. 남쪽 옹성 공간에는 무대인 구시러우(古戲樓)가 있는데 마을광장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도 <귀신이 온다>에서 마을 주민이 보는 앞에서 일본군에 복수한 주인공이 공개재판을 받아 목이 베어져 나뒹굴던 곳이기도 하다.



옹성 위에는 지장사(地藏寺)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일본군 본부가 있던 곳이다. 청나라 순치제 때 당시 마을 유지이던 동여취(董汝翠)가 건축했다. 안으로 들어가 옆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가운데가 비어있는 장방형 형태로 4면에 각각 전각이 조성돼 있다. 언뜻 봐도 보기 드문 독특한 형태가 아닐 수 없다.

 

740평방미터 규모의 옹성 위 사원이 이렇듯 독특하다 보니 전설도 재미있다. 어느 날 10명의 가난뱅이 노인들이 더위를 피하려고 비어있던 집 아궁이 안에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동여취에게 "이곳에 염왕전(閻王殿)을 세우는 게 딱 좋다"고 하며 설계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몇 년 후 정말 설계도처럼 염왕전을 짓고 첫 불공을 드리는 날 노인 10명이 다시 나타났다. 동여취는 매우 감격해 사원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라고 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간 노인네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야 노인들이 염라대왕의 현신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사원 1층 문 입구에 현성암(顯聖庵)이라고 조각했다. 이후 현신의 깨우침을 따라 널리 선행을 다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덕망 높은 상인이 됐다고 한다.

 

중국, 불교와 도교 구분 무의미하다



역시 중국은 불교와 도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4면에는 전각 이름이 각각 지장전, 관음전(觀音殿), 노군묘(老君廟, 노자의 신격화), 보살전, 십대염왕전 등으로 종교 융합적이다. 이렇다 보니 겉모습만으로는 본전 지장전이 어디인지 애매하다.

 

전각 앞으로 난 좁은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니 알 듯하다. 바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가지고 논다는 얼룽시주(二龍戲珠)가 있는 곳일 것이다. 왕관도 쓰고 붉은 구슬을 손에 쥔 지장보살이 앉아있고 후광을 드러내려는 듯 조명을 달아 낮인데도 깜박거리고 있다.

 

염왕전 안으로 들어서니 창문에 연붉은 벽지를 발라놓았다. 어두컴컴하기도 했지만 10명의 염라대왕 현신을 찾아 붉게 머금은 햇살이 고루 비추는 듯하다.

 

옹성을 내려와 다시 성 안으로 들어섰다. 문득 종교 투어를 다녀왔던가 싶다. 자연으로부터 만든 성곽 안에 서민들의 생로병사가 담겨있는 거리를 거닐었다. 반듯하면서도 훈훈한 토담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긋한 음식 향내가 나는 듯하다. 사람 내음 맡으러 걸었던 길을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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