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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기고/오마이뉴스

'국가보안법적 착각'으로 찾아간 북한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8.05.02 20:57

[중국발품취재30] 통일이 되면 다시 오고 싶은 단둥


5월 24일 아침, 민박집 투숙객들이 모두 모였다. 그 중 서 선생님이 기억에 특별히 남는다. 스웨덴에서 유학한 지질학 전공자이신데 학식도 높고 겸손하시다. 게다가 '중국발품취재'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니 더욱 그렇다. 중국어를 배우시는데 기초라 하시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환갑도 지나신 듯한데 여전히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젊은 우리가 각성할 일이다.

계속 비가 온다. 날씨가 정말 돕지 않는다. 북한 땅과 압록강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다니.

점심까지 먹고 나니 비가 얕아진다.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다. 마음이 급했다. 택시를 타고 압록강 강변 길로 갔다. 북한 땅으로 가는 배를 찾는데 쾌속정을 타라고 손짓한다. 35위엔인데 보통 뱃삯인 20위엔만 내라고 한다. 얼른 구명조끼를 입고 쾌속정에 올라탔다. 이미 중국 젊은 한 쌍이 타고 있다.

  
순식간에 다녀온 북한 땅.
ⓒ 최종명
중국

배는 정말 빨랐다. 휙, 부웅 하더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헤치고 달린다. 강 중심으로 치닫는 배는 5분 만에 안개까지 휙 몰아내고 북한 땅 앞에 급정거했다. 낚시하는 사람, 강변을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모두 북한 사람들이다. 낯설 것도 낯익지도 않은 그저 조선사람으로 보인다. 쾌속정은 파도에 휘청거리며 서 있는데다가 안갯속에서 얼핏 보려니 영 불안하다.

쾌속정은 중국 젊은이들 사진 한 장, 나도 한 장, 동승한 승무원 아가씨가 찍자마자 급 유턴이다. 그리고는 다시 정신없이 내달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싱겁기가 그지없다. 아무리 할인해서 20위엔이라 해도 그렇지. 그렇지만 더 오래 타고 싶지도 않다. 허탈하기도 하고 공포에 떨기도 했으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단둥에서 쾌속정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방생하러 가는 배.
ⓒ 최종명
중국

다시 강변을 터덜거리며 걷는데 40여 명 되는 중국사람들이 나루터에 둘러서서는 스님의 염불에 따라 '나무아미타포'를 왼다. 입구에 있는 아가씨에게 물으니 방생하러 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탈 수 있는지 물으니 20위엔 내라고 한다. 얼른 들어갔다.

곧 두 대의 배에 나누어 신도들이 탔다. 방생할 물고기를 담은 통을 통째로 싣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음력 4월 초파일이다. 배는 서서히 큰 원을 그리며 출발했다. 모두 신도들이고 줄기차게 '나무아미타포'를 외니 나만 좀 썰렁하다. 천천히 염불 소리에 맞춘 듯 배는 느리게 움직인다. 서서히 강의 중심으로 가는 듯하다. 안개는 여전했고 비는 점점 멈추는 듯하다.

배가 멈췄다. 방생하려는가 보다. 그런데 스님만 뱃전으로 나가게 하고는 급하게 문을 닫는다. 캠코더 스탠바이 상태에서 영 허전하다. 겨우 앞 배에서 스님이 물고기를 통채로 강물에 쏟아 넣는 모습만 잠시 담았다. 방생의식이 있을 법한데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더라도 너무 잠시 잠깐 만에 방생이 끝나고 말았다. 신도들은 끊임없이 염불을 따라 부르고.

방생이 끝나자 배는 다시 서서히 안개를 헤치고 간다. 정신이 없었을까, 안갯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일까. 착각 시작이다. '국가보안법적 착각'이라 스스로 인정한 일이 생긴 것이다. 정확히 말해 어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나 혼자 만의 착각이었을 뿐.

배가 움직인 것은 맞는데 어디로 움직이는 것인지 압록강의 안개는 알려주지 않았다. 배가 안개를 뚫고 육지 가까이 가니 낚시하는 사람, 강변을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모두 북한사람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아니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북한 땅에 종교행사라도 하려고 가는 것인가. 민박집 주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배 타고 가면 어느 곳에 잠시 북한 땅을 밟고 올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긴 했는데.



  
방생 배에서 내려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
ⓒ 최종명
중국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린다. 맨 뒤에서 조마조마 내릴까 말까 하는데 빨리 내리라고 승무원이 소리친다. 육지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나루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 나루터에 잠시 내리는 것이야 뭐 국가보안법에 걸릴까 싶었다. 나루터에 내리고도 발이 붕붕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이거 참 취재고 뭐고 다 끝인가.

8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들의 이상한 공포심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니. 나만 그런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실정법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더욱 사람의 간을 옥죄는 것인가 보다. 하여간 캠코더로 주변풍경을 찍다가 안갯속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것부터 시작이었다.

  
압록강 철교를 향해 가는 배.
ⓒ 최종명
중국

나루터에서 기나긴 5분을 버티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배가 다시 출발하는지 사람들이 승선한다. 일단 벗어나자. 45위엔 내라고 한다. 450위엔이라고 했어도 냈을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인지 아는 사람도 없고 본 사람도 없으니 일단 배가 출발하니 약간 마음이 놓였다.

  
배에서 본 압록강 중국 측 단교.
ⓒ 최종명
중국

물론 80년대의 대공분실 형사들이라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간파하고 있을 것이니 완전히 안심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배가 크게 원을 그리며 강 상류 쪽으로 움직인다. 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다.

배는 단교를 선보이며 이동한다.
강에서 보니 정말 끊어진 철교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중국사람들은 연방 떠들며 사진을 찍는다. 마음이 진정되자 자연스레 카메라와 캠코더를 번갈아 가며 바쁘게 찍는 본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배는 강변을 따라 서서히 이동하더니 안개를 약간 걷어내더니 다시 북한 땅을 선보인다.

마치 전시관처럼 북한 강변, 북한 국기를 꽂은 고기잡이 배, 구호가 적힌 간판, 그리고 사람 사는 집, 벌레가 울어대는 나무들. 낯익은 듯 낯선 듯 강변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손 흔들어 주는 북한 어부들.
ⓒ 최종명
중국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는 좀 차분하게 다시 북한 땅을 살폈다.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고기 잡을 준비를 하는 것인지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동포, 언젠가는 서로 손잡고 악수를 하거나 팔씨름을 하거나 혹은 어루만질지도 모르는 손.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가가서 힘차게 악수를 건네고 싶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적 착각' 상태인데도 마음으로부터 간절한 염원이 샘솟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님이나 임수경 전대협 대표는 그 시절 어떤 마음이었을까. 북한 동포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고기 잡는 어부의 손길을 클로즈업하면서 기억의 타임머신을 탔다.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앗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곳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처음 방생 배를 탔던 곳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땅일 것이라 착각했던 곳이 원래 그 자리, 지금 막 돌아온 곳이라는 말이 된다. 이런 대단한 착각을 하다니. '대단한' 국가보안법 때문이야.

생각해보면 중국 강변이나 북한 강변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중국사람이나 북한사람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기도 하거니와 말이다. 적어도 먼 곳에서 안개의 훼방이라면 충분히 이런 착각이 가능할 듯하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했다.

아니 아무도 걱정하지 않은 일을 혼자 조마조마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찝찔하기도 했다.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평양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제발 국가보안법 어떻게 안될까.

  
참전 중공군 동상 중 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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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변으로 올라왔다. 압록강 중국 쪽에는 끊어진 철교, 단교에 오를 수 있다. 철교 앞에 오르니 6·25전쟁 때 참전한 중국군인들의 진군을 구현한 동상이 번듯하게 서 있다. 아마 6.25전쟁을 경험한 아버지 세대들이 본다면 섬뜩하지 않을까 싶다.

  
압록강 단교 입구.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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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교를 따라 걸었다. 미군 폭격기가 단교에 걸려있다. '잊지 말자 6·25'처럼. 끊어진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다. 높아서일까. 불과 20~30미터에 불과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50년보다 더 멀어 보인다. 어젯밤에 본 중국 쪽 철교의 휘황찬란한 조명이 생각난다.

  
압록강 북한 쪽 단교.
ⓒ 최종명
중국

북한 쪽 단교 앞에서 뚝 끊어진 조명. 통일이 되면 이 철교를 다시 이을까. 아니면 영원히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둘까. 다시 잇지 않더라도 조명만이라도 이었으면 좋겠다. 중국 쪽 철교보다 더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빛나는 우리 민족의 빛깔을 영원히 반짝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단교에는 일본 관광객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일본인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미군 폭격기가 부순 덕분에 만들어진 관광상품을 보러 말이다.

  
단교에서 사진 찍는 일본인.
ⓒ 최종명
중국

압록강 강변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다. 한국상품을 파는 가게도 있고 북한상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상품들이 한 곳에서 팔리고 있는 것이. 그만큼 통일이 다 되었다는 것인가.

'조선상품'은 한국인들이 사고 '한국상품'은 북한사람들이 살까? 중국사람들은 다 살까? 해가 지기 시작이다. 또 하루가 지난다. 내일은 또 해가 떠서 많은 사람들이 압록강 위를 오가겠지. 북한 땅이 관광상품이 된 압록강을 얼마나 더 오갈까.

  
북한 식당.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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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면 바로 다시 단둥에 오고 싶어졌다. 그때는 이 압록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때는 '대단한' 착각도 없는 마음의 자유를 담고 서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또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소심한 성격이 다 드러나서인지 약간 피곤했다. 민박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조용한 거실에서 밤늦도록 검은 하늘을 지켜봤다. 거실 유리에 비친 하늘은 도통 햇빛도 없이 새벽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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