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야기> 4편에는 신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다. 김일성, 그의 할아버지 김보현, 협상 달인 강신태, 작곡가 정율성을 비롯 조선인과 동북왕 가오강 등 중국인들의 동북에서의 항전은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마오쩌둥이 장제스와 동북을 놓고 벌인 내전에서 북한의 지원은 탁월했다. 혼란기에 펼치는 전략가들의 시야는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타고날지도 모른다.


북한을 갈 수 없으니 백두산을 중심으로 두만강과 압록강 강변에 있는 중국 도시들을 가노라면 중국과 북한의 어제와 오늘, 미래 관계가 끊임없이 안개 속에 갇힌 듯한데 이 책에는 숨겨진 많은 해답이 있는 듯하다.


2007년 연길에서 새벽에 떠나 두만강 너머 함경북도 무산 시를 내려다 보며 지났고 백두산에서는 천지 너머를 보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단동에서는 유람선 타고 북녘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기도 했으며 집안에서는 강 너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소리쳐 보기도 했고 60년대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담판으로 북한 영토가 된 강 중간의 조그마한 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저 다 중국 땅에서 바라본 북한일 뿐이었기에 ‘갈 수 없는 나라’의 그리움이었으리라.


연길에서 동북 만주를 달리며 끝없이 펼쳐진 벌판은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 옛날 말 달리던 북방민족의 얼이 숨쉬고 있고 항일전쟁용사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조국을 생각했던 곳이 아니던가? 발해 상경부 성터에서부터 신중국 이후 최초의 집단농장을 조선족이 일궜다는 화천에서는 민족향에서 만난 동포들과의 하룻밤도 너무 좋았던 시절이 그립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중국에서 바라본 무산


조중경계비 앞에서


백두산 입구


백두산 6월의 천지


만주벌판, 자무스 부근


압록강변 단둥


단둥 유람선 타고 바라본 북한 땅


여기서 중국인이야기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성루에 올라 투박하고 알아듣기 힘든 호남사투리로 신중국을 선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도를 수도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마오쩌둥이 일본 패망 후 국민당과의 내전을 치를 때 승리를 확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구상하면서 당연히 수도를 고민했을 것인데 그 최초의 구상은 북경이 수도가 아니었다.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하게 된 뒷배경 하나~


1948년 3월 당 중앙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동진해 산서 성을 해방한 후 건국 후 수도를 정하는 문제가 처음 거론됐으며 여러 번의 토의를 거친 후 수도 예정지로 고도 북경, 남경, 서안도 아닌 당시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하얼빈이 선정됐다. 린뱌오가 세계지도를 보는 것을 취미처럼 즐겼다지만 마오쩌둥도 중국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중국지도 보는 거 좋아한다. 벽에 늘 걸어놓고 산다. 왜? 어딜 갈까 늘 발걸음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한 마리 수탉으로 비유하길 좋아했고 흑룡강 성은 한 마리 하늘을 선회하는 고니를 닮았으며 하얼빈은 새의 목구멍 위치에 해당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하얼빈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방된 도시이기도 하고 소련의 지원을 얻어 안정적인 수도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 중앙은 ‘특별시’ 수도로 하얼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당사에 기록돼 있다. 신중국 성립 후 무주공산에 가까운 동북의 자원 활용과 외교적인 측면을 고려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뜻밖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민당이 미친 듯 동북으로 병력을 증파하고 교통로를 점령하자 상황이 급변했으며 다시는 당 중앙은 동북 거점 수도 구상을 논하지 않았다. 이후 낙양, 개봉 등을 포함해 수도를 고려하다가 최후에 북경(당시 북평)을 지목했다. 재미있는 것은 수도를 정하기 전 1949년 1월 동북국정치위원이던 왕자샹王稼祥과 나눈 이야기다.


마오의 “우린 곧 승리할 것인데 우리 정부는 수도를 어디로 하면 좋겠소? 당신 의견은 어떠오?”에 대한 왕의 긴 대답은 당시 그들의 고민과 함께 중국지도를 펼쳐놓고 생각해보게 한다. (지도를 펼쳐 보시라)


(이하 왕자샹의 말)


아주 중요한 문제네요. (엄숙한 말투로) 현재 국민당 수도 남경은 범과 호랑이의 자태를 지닌 호거용반虎踞龙盘의 요충지이지만, 역사적으로 역대 금릉(지금 남경) 왕조와 국민당 정부 모두 단명했습니다. 이런 숙명론적 역사인식을 믿지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남경은 동남부 해안과 너무 가깝고 향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아주 큰 단점입니다. 남경으로 정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게 아닌 듯합니다.


서안의 단점은 너무 서쪽에 편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중국의 강역은 진한시대나 수당시대가 아닙니다. 그때의 만리장성은 변경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중심지에 가로로 퍼져있습니다. 서안은 지리적으로 중심지로서의 장점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서안도 부적합합니다.


황하 연안의 개봉이나 낙양 등도 고도였지만 중원지방의 경제가 낙후돼 있고 이런 문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일 뿐 아니라 교통문제나 황하의 범람 등 문제로 인해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은 북평입니다. 북평은 해안지구에 위치하면서도 경제가 발달한 영역에 속하는데다 동북과 관내(산해관 안쪽)로 통하는 핵심적인 요로이기에 전략적으로 십분 중요하며 현재 중국의 혈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깝게는 소련과 몽골이 위치해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록 바다와 가깝지만 발해는 중국의 내해에 해당하고 요녕과 산동 두 반도가 둘러싸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봐도 비교적 안전합니다. 국제적으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수도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북평은 명청 제국의 수도이었기에 인민들도 마음 속으로 흔쾌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런 유리한 조건들을 생각해볼 때 수도는 당연히 북평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오쩌둥은 거침 없는 양자샹의 의견을 듣고 난 후 몹시 기뻐하며 ‘일리 있어, 일리 있어. (有道理, 有道理)를 연발하며 한편으로 웃으며 한편으로 말했다.


“당신 분석이 내 생각과 딱 들어맞네, 우리 수도는 북평으로 정해야 할 것 같네. 장제스가 수도가 남경에 있는 까닭은 그의 기반이 절강의 자본가였기 때문이었다면 우리는 수도를 북평에 정하고 우리도 그 기반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광범위한 노동인민대중일 될 것이다.”


1949년 3월 중순 마오쩌둥과 당 중앙은 북평으로 들어섰고 9월 21일부터 거행된 신중국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회 전체회의에서 ‘신중국의 수도를 북평에 설치한다.’는 안건을 토의한 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당일 정식으로 북평을 북경으로 개명했다.


<중국인이야기> 4편의 뒷부분 북한 이야기를 읽고 동북 지방을 다닐 때 기억을 하다가, 마오쩌둥과 김일성을 생각하다가 공연히 ‘수도’ 이야기만 잔뜩 푼 듯하다.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하얼빈의 성소피아 성당 광장의 야경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난징의 부자묘 앞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카이펑의 청명상하원 모습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뤄양의 최초의 불교사원 백마사 앞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시안의 당장안성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마오쩌둥 기념관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2,3권만큼이나 4권 <중국인이야기>를 읽으면 중국 방방곡곡을 땀내 닦으며 걷던 기억들로 설렌다. 장쉐량张学良의 고향 션양沈阳의 장솨이푸张帅府와 ‘시안西安사변’의 총탄 자국, 그의 첫 연금 현장이자 장제스蒋介石의 고향 시커우溪口의 미륵보살 성지, 대장정의 종착지 옌안延安의 동굴 집 야오둥窑洞, 베이징 마올후퉁帽儿胡同에 있는 마지막 황후 완룽婉容의 고거, 마지막 황제 푸이溥仪의 창춘长春 위만황궁伪满皇宫 박물관, 동북항일연군의 만주벌판까지. 옴니버스로 엮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책 속에 담긴 ‘중국인’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넘어갈수록 그들이 밟고 있던 ‘역사’ 속으로 물밀 듯이 나가고 싶어진다. 나의 중국문화답사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 장쉐량과 푸이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이니 어찌 흥분하지 않겠는가?


쑹메이링宋美龄과 장쉐량의 인연은 1부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묘사돼 있다. 그들의 정분이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깊었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시안사변 이후 53년 동안의 연금생활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시안사변 1937년 한 달 후 황푸군관학교 출신 국민당 특무 다이리戴笠의 호송을 따라 ‘제일유금지第一幽禁地’ 쉐더우산雪窦山에 온 장쉐량은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낙차 171m의 천장암千丈岩 폭포를 즐겨 찾았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장쉐량과 감정이입을 하노라면 당대 최고의 미남이자 권력핵심의 정치인이 토해냈을 사자후獅子吼가 들리는 듯도 하다.


쉐더우산에는 늠름한 청년 장군 장쉐량 조각상과 함께 연금생활 도중 단 3일도 곁을 떠난 일 없던 자오이디赵一荻 여사의 백옥 같은 조각상도 자리를 잡고 있다. 1960년대 쑹메이링은 해금을 도울 목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한다. 처와 첩을 둔 장쉐량은 일부일처 제도와 해금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미국에 있는 본처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본처 위펑즈于凤至는 장쉐량과 자오이디의 ‘순수한 사랑을 믿으며 백년해로하길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이혼에 동의한다. 장쉐량은 기독교에 귀의했지만, 장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아들이자 총통이 된 장징궈蒋经国에게 ‘절대 불가’를 유언하기도 했다. 72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았던 자오이디는 2000년, 장쉐량은 103세의 나이로 2001년 나란히 숨을 거두고 합장 됐다. 장쉐량을 평생 살펴준 쑹메이링도 2003년 천수를 누리고 그들 곁으로 떠났다.


그림1 쉐더우산 연금 장소에 있는 장쉐량과 자오이디 조각상


장쉐량만큼 삶의 우여곡절이 깊던 인물은 마지막 황제 푸이다. 3부 ‘무너지는 제국’에서 비록 수감 중이긴 했지만, 자신의 네 번째 부인 리위친李玉琴에 의해 이혼당하는 황제라는 오명을 얻는다. 진시황 이래 어느 황제도 이혼이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여전히 황제 대우를 받던 시기에도 푸이는 이혼당한 전례가 있다. 황후와 황비를 동시에 얻어 결혼한 푸이는 퇴위 후 1931년 8월 ‘마지막 황비’ 원슈文绣로부터 이혼선언을 당한다. 이를 역사에서 ‘도비혁명刀妃革命’이라 부르는데 황제 푸이의 엄청난 충격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혼에 이르게 된 까닭을 황후 완룽의 시기와 질투 때문으로 여긴 푸이는 크게 상심했다. 완룽은 허울뿐인 황후로 전락했고 우울증에 시달려 아편에 집착했으며 시위와의 불륜으로 임신까지 했으니 황실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아닐 수 없다. 1937년 푸이는 만주족 출신의 탄위링谭玉龄과 결혼해 그녀의 사진 뒷면에 ‘내가 가장 사랑한 위링’이라 손수 쓸 정도로 다정했지만 5년 만에 의문의 병사를 했다. 그리고 책에서 자세히 언급한 리위친과 결혼하게 되지만 1957년에 다시 이혼 소송으로 둘 사이의 관계도 끝나고 만다.


창춘의 위만황궁박물관에는 <황제에서 평민까지>라는 푸이의 일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있다. 그의 일생을 화려했지만 불우했고, 처량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말년을 보낸다. 체포 후 곧 죽을 목숨이라 생각했지만 15년의 수감 생활 후 수많은 반성과 신중국 지지 선언을 거쳐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후 마지막 부인 리수센李淑贤과 결혼한다. 


둘 사이는 아주 금슬이 좋았지만, 푸이는 문화혁명 초기 홍위병들에게 고초를 겪기도 한다. 1967년에 결국 신장암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사망 후 유해는 베이징 인근 팔보산 혁명공동묘지에 안치됐다가 1995년 청나라 서쪽 황릉 부근 사설 묘원인 화룽华龙능원에 이장된다. 3살에 황제가 되었지만, 자금성에서 쫓겨난 황제라는 숙명 때문이었으니 청나라 황실 능원인 동릉과 서릉 어디에도 안치되지 못했다. 


그림2 위만황궁박물관에서 본 황제 즉위 시절과 수감 후 재판 장면


마지막 황릉은 선통제 푸이가 아닌 광서제의 몫이다. 청나라는 재정문제로 갈수록 황릉의 규모가 축소됐는데도 광서제의 숭릉은 화려하고 거대하다. 숭릉에 서면 푸이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숭릉 뒤쪽 200m 지점에 잠들어 있는 푸이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20세기 <중국인이야기>의 한 장면이니 말이다.


김명호 저자의 <중국인이야기>를 4편까지 읽으면서 늘 ‘중국문화여행’의 발품을 떠나고 싶었다. 중국판 ‘아라비안나이트’는 밤을 새워 읽어야 하듯 우리는 ‘중국’도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살피듯 정치와 경제도 제대로 파악하는 길만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나라와 선의의 경쟁과 우호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신드바드’가 모험을 떠났음직한 항구 과다르Gwadar는 중국이 40년 운영권을 보유했다. 국제정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일대일로一帶一路, 신실크로드로 질주하는 중국을 이해하는 코드로 <중국인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중국’ 붐을 일으켜서 바르게 ‘중국인’을 읽어야 한다. 천일야화보다 더 기나긴 ‘차이니즈 나이트’가 또 기다려진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내 여행사 패키지와 현지 가이드의 협작


다른 여행도 아니고 중국패키지여행이라 댓글 달기 시작하다가 한국인을 '호갱'으로 양산하고 있는 국내 대형여행사와 중국현지 가이드의 협작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강한 흥분으로 잠시 원고작업을 놓고 글을 쓴다.


http://omn.kr/cy0t

 

2년 전쯤, 북경에서 팔달령(한국인 무지 많이 가는 만리장성) 일일투어가 진행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칼을 빼 들고 여행객(중국인)들을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칼부림까지 하는 가이드의 횡포(중국에서는 '손님이 왕'이 아니라 가이드가 왕이다.)는 사회문제로 비화돼 중국 정부는 관광산업의 비리와 모순을 해결하려고 소위 노-옵션을 빙자한 저가패키지투어의 실상을 조사하고 불법적인 여행사업에 대해 철퇴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쇼핑을 유도하고 20% 이상의 높은 백-마진을 보장하는 현지여행사들의 횡포는 상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에 비해 현장감이 떨어지고 해외라는 조건 때문에 외국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하기 일쑤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인정에 울고 명분에 울고 또 쪽 팔림에 울며, 때로는 공포심으로 가이드가 유도하는 다양한 옵셥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이런 정황을 너무도 잘 아는 한국의 대형여행사들도 문제는 심각하다. 따지고 보면 여행을 즐기는 일에서 더 비싸고 싸고의 차이가 있겠는가? 초저가 운운하며 비행기값(미리 확보한 좌석으로 저렴함)과 호텔(정가에 비해 반 이상 저렴함), 식사(한끼에 3~4천원이면 많은거다), 입장료(단체할인이 된다), 버스(인원이 많으면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 등만 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먹으라는 식으로 패키지여행을 판매하고 있다. 싼게 비지떡인데다가 간만에 즐거운 여행길이 불편을 넘어 불쾌와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도 여행비용을 현실화하고 가이드팁을 비용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횡포를 없애고 있다. 중국 전역에 널려 있는 쇼핑센터의 상술이 아무리 쇼핑호스트 빰친다 해도 살 이유가 없다. 물건도 나중에 보면 후회할만큼 고가인데다가 품질이 좋을리 없다.

 

나도 문화여행을 기획해 인솔을 다녔고 1년에도 몇번씩 중국여행을 인솔하고 다닌다. 3년 가량 했는데, 이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 가장 효율적인 문화여행이 무엇인지 대충 정리가 됐다. 내가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방식은 이렇다.

 

- 최소한 여행프로그램을 4~6개월 전에 공지하고 인원을 모은다.

- 중국에서 비수기에 장기여행을 떠난다.

- 최소인원(여행지에 따라 다르지만 6인 이상 ~ 20인 이하)이 모이면 바로 티켓팅한다.

- 비행기 티켓이 가장 저렴할 때를 판단한다.(각각 다르지만 4개월~2개월 사이)

- 현지여행사에게 여행동선을 제시하고 가급적 비용을 구체화해서 견적을 받는다.

- 기사/가이드 팁을 별도로 하되, 장소에 따라 현지가이드 없이 떠난다.

- 자료집을 제공하고 현장 및 버스 이동 때 문화강좌를 병행한다.

- 가이드보다 더 중요한 건 동행하는 사람이니 좋은 여행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 현지비용을 공개하고 1/N로 한다. 장담하건 데 그 어느 여행프로그램보다 저렴하다.

- 현지여행사 도움 없이 입장료, 호텔을 사전 예약하면 매우 저렴하고 유리하다.

- 현지 식당은 굳이 가이드 도움 없이 직접 현장에서 찾아 맛 있는 요리를 먹는다.

- 기사와는 가급적 함께 식사를 해 서로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

- 현장 사진과 영상을 찍어 공유하고 사후 디지털파일로 제공한다.

 

위의 방식으로 중국문화여행을 진행합니다. 프로그램 기획, 현지 섭외, 문화강좌 및 안전한 인솔에 대한 대가로 1인당 일정금액을 받습니다.

 

10여 년간 중국 300여 도시를 다녔고 30여 종류의 문화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인솔했던 경험을 살려 <13억과의 대화> 연구소(또는 협동조합) 형태의 조직(기획출판, 강의, 미디어, 문화여행, 취재, 컨설팅 등)을 갖출 생각입니다. (아마도 2014년 하반기나 2015년 상반기...아니면 그냥 계속 프리랜서로...)

 

하여간, 가격(덤핑)경쟁으로 여행객만 '호갱'으로 모는 지금의 패키지 여행이 없어지고 프로그램과 콘텐츠로 경쟁하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여행은 한국사람들이 가지 않지만 평화롭고 이국적이면서 안전한 곳에서 1주일, 보름 이상 거주하며 인생의 소중함을 맛 보는 여행이다.

 

<민란> 원고 작업이 끝나면 "중국문화여행"에 대한 개념과 방안을 정리하고 싶다.

 

제 중국문화여행의 공지와 진행은 밴드(http://www.band.us/#/band/4573749)를 통해 공유하며 블로그와 SNS에도 알리고 있다



현재 7 22일 출발하는 실크로드 문화여행은 19명으로 마감했으며, 101일경 출발하는 티베트여행과 11~12월 중에 강남수향마을, 내년 1월 운남 하늘여행이 예정돼 있다.

 

.................................................................................

중국문화여행 연간계획

- 때맞춰 최소한의 인원이 함께 모집되면 떠납니다.

- 비수기, 최소비용, 비용의 1/N, 현장문화강의

- "작가와 동행" 컨셉의 여행으로 패키지여행 및 보통 여행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01. 운남 하늘 민족문화 (1~2월 겨울)

02. 강남 수향문화 마을 (11~3)

03. 복건 객가문화 토루 (2~3, 11~12)

04. 계림 귀주 민족문화 (2~4, 10~12)

05. 실크로드 역사문화1 (신강) (6~9)

06. 실크로드 역사문화2 (감숙) (7~9)

07. 티베트 역사문화 (6~10)

08. 내몽골 오색 문화 (7~8)

09. 고구려 백두산 역사문화 (7~9)

10. 중원 문화 (치박,서주,상구,개봉,낙양,서안) (3~5, 9~10)

11. 신비의 왕국 서하 문화 (6~8)

12. 장강삼협 역사문화 (3~5, 9~10)

13. 가족을 위한 북경 문화 (1년 내내)

 

위 여행 외에도 매년 새롭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해 동행하는 중국문화여행입니다. 여행 프로그램은 블로그(13억과의 대화, www.youyue.co.kr)를 통해 알리며 제 밴드(카톡으로 연락주시면 링크 보냄)와 페북을 통해 링크됩니다.

 

카톡:youyue 이메일: pine@youyue.co.kr

.................................................................................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문화여행 박정희 무덤 자리를 조선의용대 열사로

 

96주년 기념이라고 시끄럽다. 특별하게민족적인 나라가 된 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던 주말, 고 김학철 선생에 대한 SBS 특집을 보다가, 한단 생각났다. 2013 1월 북경을 출발해 지인 3분과 개척여행을 한답시고 굳이 한단을 찾은 이유는 석정 윤세주 열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단은황량몽한단학보고사와태극문화, 진시황 출생지, 나라 문화뿐 아니라 항일투쟁 혁명열사의 피가 서린 곳이다. 시내 한 가운데 조성된 혁명열사능원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원이다. 혁명열사기념당 앞에는 시민들이 나와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엄마 따라온 아이가 너무 귀여워 과자도 주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기념당 안 한쪽 면에 <아리랑> 곡조와 함께 윤세주, 진광화 두 조선인 열사를 '특별하게' 모셨다. 밀양 출신의 윤세주 열사와 평양 출신의 진광화 두 분이 남북을 대표하듯 나란히 중국 한단에 자랑스레 서 계시니 참 기쁘다. 그러나 슬픔도 있어, 우리는 조용히 묵념을 올리고 항일전쟁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야욕, 중국공산당과 팔로군, 조선의용대의 조선인 열사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과거 반민족적인 행위의 반성과 속죄는커녕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의 최고위층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들을 떠올려도 본다.

 

우리는 항일운동 시기 국내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 도무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듯하다. 또는 알고자 하면 무언가 자꾸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일을 부관참시로 다스리는 그날이 오면 중국 전역에 흩어져 계신 무명총无名까지 다 모셔서 성대한 제례를 올려야 할 것이다. 박정희 무덤 자리는 열사들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20세기에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다고 천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경서역에서 고속열차를 타면 2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단동역 기차 역에서 내려 택시 타면 20분이면 도착한다. 입장료는 없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삼국지 초반을 감동으로 수 놓은 도원결의, 그 현장을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줘루(涿鹿). 실제로 지금도 사람들이 모여 도원결의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소설처럼 한날 한시에 죽겠다는 맹세, 과연 제대로 지켜질 지 모르지만 그 의지야말로 인정하고 싶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신선거神仙居, 이름부터 신비롭고 절경의 냄새가 풍긴다. 신선거는 절강성 태주台州 시 선거현仙居에 위치한 국가4A 급 관광지이다. 신선거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화산 유문암 지형으로 기암절벽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화산 암석 중에서도 유문암 지형은 바위의 색깔이 아주 하얗게 표피를 이루고 있어 운무에 휩싸이면 그 은은한 빛깔이 더 화사해 보인다.

 

암석들 이름도 다양해서 관음암, 여래상, 영객산신, 장군암, 수미인睡美人 1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오르내릴 때 다 케이블카가 마련돼 있어 쉽사리 산에 오를 수 있고 힘들지도 않고 트레킹 코스가 잘 관리돼 있다. 길을 따라 오르내리고 산봉우리 능선을 여러 바퀴 돌고 돌아 가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맛이 아주 좋다. 계곡이 깊어 곳곳에 물길이 터져 나오는 폭포도 많다. 어쩌면 황산의 자연경관보다 더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전 과정을 둘러보는데 약 4시간이면 충분한데 그 절정은 바로 하늘에 걸려 있는 출렁다리인 남천교南天이다. 절벽 사이를 서로 연결한 다리로 환상적인 절경을 선보인다. 이런 다리는 오래 전 용호산龙虎山에서 본 선교, 여산庐山에서 본 철삭교铁索桥에 이어 최고로 손꼽힌다.

 

선거현에는 신선거 외에도 파탄고진滩古镇과 공우촌公盂村, 고천고민거高迁古民居, 영안계곡永安溪 대나무 표류 등 문화콘텐츠가 많다. 기회되면 설두산과 묶어 태주 문화여행 코스를 개발해 봐도 좋을 듯하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공산당과 합작해 먼저 항일투쟁에 나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난 장개석은 1937년에 돌연 장학량을 구금한다. 장학량은 장개석의 고향인 절강성 봉화시 계구현 설두산(雪竇山)에 유폐되고, 상해에서 친 자매처럼 함께 거주하던 우봉지와 조일적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설두산으로 가 장학량을 돌본다. 이때 조일적은 아들을 낳았고, 얼마 후 일본군은 장개석의 고향을 침공한다.

장학량이 하와이로 이주한 후 2000년에 조일적이 사망하고, 10개월 후 장학량도 사망하자 둘은 합장되었다. 장학량은 어린 시절에는 경비행기를 타고 만주벌판을 날아다녔고,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한때는 아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03세라는 장수를 누렸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을 만큼 장기간의 정치 보복을 당했지만 천수를 누린 이유는 조일적과 함께한 세월 때문인지도 모른다. 72년간의 사랑이다.

13억인과의 대화』 중에서...


현대사에서 설두산이 유명한 이유는 서안사변의 주인공 장학량의 구금지였다는 것이다. 13억인과의 대화에서는 ‘72년 간의 사랑에 나오는 장학량과 조일적 여사의 이야기 현장이기도 하다. 1934년 상해의 한 여행사가 초대소로 건축했는데 서안사변 후 1937년 1월 장학량이 이곳으로 구금됐다. 이곳에서 장학량은 약 7개월을 머물게 된다. 1988년 장학량 전시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바깥 정원에 조일적 여사의 조각상도 있다.  


물론 장개석과 송미령의 여름 휴가를 즐기던 별장도 하나 있다.

 

해발 800미터에 불과한 산이지만 멋진 폭포가 많다. 특히 천장암千丈岩폭포는 장학량이 구금된 후 자주 오르내리며 무료함을 달래던 곳이다. 폭포는 낙차가 170미터에 이른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설두산窦山은 절강 성 봉화 시에 위치한 명산입니다. 200여명의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설두산 트레킹 대회가 열렸습니다. 주최 측은 장개석이 아들과 함께 다녔던 길을 처음으로 개방하고 대회를 열었습니다. 장개석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는 따로 기사로 알려드리겠지만 대회 특별공연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봉화 시의 유일한 무형문화재 공연, 용무龙舞입니다. 2008년 2월 문화부의 비준을 받아 공식적으로 인정돼 잘 알려진 무형문화재 전승자는 봉화 시의 자랑입니다. 10명이 한 팀이 돼 커다란 용 문양을 들고 휘황찬란한 군무를 보여줍니다. 한나라 시대부터 생성됐다고 하지만 기록이 미비하고 청나라 말기에는 자주 시연되곤 했던 듯하다. 오래 전부터 전승돼 오던 이 지방 문화예술이 20세기에 이르러 장개석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기록이 있다.

 

5분 동안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활기차고 우렁찬 동작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수많은 토템을 물리치고 중국 민족의 대표 토템이자 상징이 된 용을 무기로 만들어진 문화, 무형문화재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어디서라도 이런 독특한 공연을 보노라면 문화의 전승과 보존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강남스타일과 아무 상관 없는 중국 강남 수향, 마을과 하천이 하나로 묶여 있어 낭만적인 경치와 인문적인 분위기가 싱그럽게 어울립니다. ‘강남고진(江南名)’의 하나인 우전(乌镇)은 태호(太湖) 남쪽이자 절강 성 가흥() 시 동향()이란 곳에 있으며 상해와 항주 중간에 위치합니다.


6대 수향은 강소 성에 3, 절강 성에 3곳인데 강소 성에는 곤산(昆山)에 있는 저우좡(周庄), 오강(吴江)에 있는 통리(同里), 소주(苏州) 시내에 위치한 루즈(甪直)이며 절강 성은 우전 외에도 호주(湖州)에 있는 난쉰(), 가선(嘉善)에 있는 시탕(西塘)입니다. 사람들마다 제각각 선호하는 곳이 다 다르지만 저는 1순위로미션 임파서블3’ 촬영지 시탕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외에도 강소 성, 절강 성과 상해에는 수 많은 수향 마을이 있습니다. 강남 수향만 묶어 여행 프로그램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 마을 속에 담긴 풍경과 문화를 함께 맛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겁니다.


지난달(11) 마침 우전은 마을 곳곳에 연극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향에 비가 내리면 우수에 젖기 좋습니다. 쾌청한 날에도 물론 엄청 좋고 눈 오는 날이라면 아마 더욱 환상적일 것입니다. 수향도 사람이 사는 마을인지라 관우 사당이 있고 문창각이나 백련사 등 종교사원이 있습니다. 염색하던 곳이며 소금업으로 살던 흔적도 곳곳에 있습니다. 그냥 수향의 분위기만 느끼기 보다는 마을 곳곳의 인문적인 설명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일 것입니다.

 


우전 마을 입구입니다. 혼인에 관한 두 신선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름하여 和合二仙.


수향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



염색한 옷감을 말리는 중






공예품 가게도 많은데...황제에게 진상하던 빗입니다. 홍루몽의 13명 미녀를 캐릭터로 만든 것~






수향 마을에는 하천 다리가 아주 많습니다. 다리 이름도 운치 있습니다.




아치 형 다리도 꽤 많습니다.



관우 사당...재물신이지요~ 관우는 무재신입니다.



술집 이름이 아주 멋집니다. 청천과우~~~


중국에서 물고기는 재물이나 시험(과거)과 관련됩니다.



연극제 기간에는 이렇게 배를 타고 퍼포먼스를 합니다.



우전 특산인 삼백주...백미, 백면, 백수를 말합니다. 38도 500ml, 남녀노소가 즐겨마신다는 지역 술입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번 11월에 약 20일 북경에 머물며 상해에서 함께 올라온 아주머니 3분 모시고 골목 문화투어를 비롯해 14분 아주머니 모임 인솔, 현지 모 기업 법인 대표 인솔, 지인 6명이랑 도원결의 현장 답사, 후배랑 개척투어, 산악회 등산 등 시내를 많이 다녔습니다.


북경 골목문화투어의 핵심코스는 난뤄구샹(南锣鼓巷)-구러우(鼓楼)-옌다이세제(烟袋斜街)-인딩챠오(银锭桥)-스차하이(什刹海)-허화시장(荷花市场)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최고입니다. 제 책 [13억 인과의 대화] 속 역사문화에 관한 스토리를 대부분 이야기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부한 문화 향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몇 번 왔던 아주머니도 제 이야기에 숨은 중국문화의 비밀에 새삼 감성에 젓기도 하는 걸로 봐서 수십 번 아무리 중국 다녀가면 뭐 하나? 그 속에 담긴 보물을 듣고 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영상은 스차하이 호반 연꽃이 다 시들어 겨울을 준비하는데 허우하이(后海)에서 자주 보던 청동오리 떼가 조용히 앉아 노닙니다. 잔잔한 호수, 아늑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오리들의 조용한 자태가 참 마음에 듭니다.




이 장면을 찍은 곳 바로 뒤편에 북경 오리구이 전문점 췐쥐더(全聚德)가 있습니다. 원래 남경요리였던 게 명나라 영락제의 반란과 함께 북경 천도를 따라 올라온 오리구이, 영락제의 정통성 회복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인 고궁, 만리장성, 무당산 금전을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오리들은 남 일인 양 날개 짓만 여전합니다.


징과 북을 만들던 골목이라 붙은 난뤄구샹 후통은 북경에서 가장 핫한 문화거리입니다. 늘 찾던 곳인데 이번에 발견한 경극 캐릭터 가면이 그려진 나무가 인상적이네요~


중국의 대부분의 사원이나 도시 성곽에서 동서로 종과 북을 치는 누각이 있는데, 북경은 남북으로 배치된 게 특징입니다. 멀리 보이는 게 종루, 가까운 게 고루!


곰방대 만들던 곳이라는 골목인데 구불구불한 옌다이세제.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며 스차하이로 이어지는 골목 문화거리입니다.




옌다이세제 거리에서 만난 중국 할머니. 잠시 멈춘 이유는 바로 할머니가 손수 바느질로 만들어 입은 옷감의 산뜻함 때문입니다. 참 인상도 좋고 친절해 사진 한장~


스차하이 호반 주변에는 이런 사합원 집 앞의 대문이 자주 보입니다. 이곳에 담긴 먼당후두이(门当户对)의 비밀을 설명해주자 당연히 기념사진을 찍어야겠지요~


스차하이는 그 옛날 원나라 시절 주변에 10곳의 사찰이 번성했다고 해서 붙은 지명입니다. 역사 이야기 들으며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일까요?


스차하이의 첸하이(前海)에 나란히 줄을 선 오리떼 10마리. 데콜코마니처럼 나누어진 호반을 응시하는 녀석들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은 명랑하답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징청마오런(京城猫人)

 

30일간의 중국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만남과 대화의 주인공은 고양이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국 며칠 전 그토록 가고 싶던 베이징 고거 중 하나인 기효람고거를 들렀다가 우연히 징청마오런으로 유명한 마궈시(马国玺). 고양이랑 40년 넘게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청나라 최고의 천재이자 건륭제의 총신으로 [사고전서]의 총편집자 기효람의 옛 집에서 그림을 팔고 있는 그는 회족인데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친근한 반려동물이라 합니다.

 

한 손으로 천천히 그려나가는 모습과 선과 면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동작이 고양이와 함께 살며 잡아낸 필체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성 싶습니다. 그래서 6장을 한 셋트로 만든 그림을 산 후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발품취재 기효람 고거 편에서 그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 의료시장 개방과 '한중FTA 시대'를 맞아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의 중국 현지화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도 중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도모해야 우리 산업의 전망이 밝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사진설명: 베이징대학인민병원 가오청즈 주임의 '중국 임플란트 시장의 역사와 현황' 주제발표 모습)

전국 12개 성 대리상 참석, "중국 시장 개척의 동반자가 되겠다"

치과용 임플란트 전문업체 디오(www.dio.co.kr) 중국법인은 지난 15일, 베이징에서 전국 12개 대리상 총경리 및 실무진을 초청해 2015년도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디오는 이번 행사를 통해 13억 중국 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치과 병원의 임플란트 시장에서 유럽 및 미국, 일본, 한국 기업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지난 5년 여간의 중국 진출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을 새롭게 도약할 시점으로 판단, 원칙과 신뢰에 기반한 공격적 마케팅을 전개하고 코스닥 기업으로서 중국 시장에서 임플란트 설비 및 솔루션으로 시장을 넓혀가면서 현지 각 성별 대리상과 보다 진일보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날 오전, 오후 4개 세션으로 나누어 설명회가 열렸다. 베이징대학인민병원(北京大学人民医院)의 가오청즈(高承志) 주임의 '중국 임플란트 시장의 역사와 현황'이라는 주제발표는 중국 임플란트 도입기부터 축적된 생생한 임상 자료와 함께 향후 시장 전망 및 글로벌 기업의 장비 및 기술을 중심으로 소개됐다. 가오 주임은 임플란트 시술에 관한 식견과 경험을 지닌 전문가로 알려져 있어 대리상들과 좋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 부임한 유시용 디오 중국법인 총경리는 두 번째 세션에서 새로운 전략상품이자 디지털 솔루션인 디오나비(DIONAVI)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시장 접근 전략을 제시했다.

중국시장의 핫이슈인 디지털 임플란트 시장에서 환자 중심, 의사 효율성의 제품 개발 철학을 강조하며 기존 제품은 임플란트를 식립하기 위해 1,000rpm에 이르는 고속 드릴을 사용하는데 비해 50rpm에 불과한 저속으로 설계돼 물을 쓰지 않고 통증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치료기간도 짧아 소음의 공포로부터도 자유롭기에 향후 미래 디지털 시장을 중국에서도 열어가자고 제안했다.

또, 최근 항저우에 관련 전문기업을 설립하고 성 총대리 협력을 약속한 쉐린(雪林) 총경리는 "중국도 이제 디지털 치과가 필요하다. 부유한 동네 절강지역 곳곳에 디오의 깃발을 꼽겠다"고 말했다.

이에, 상하이, 산둥, 산시, 충칭, 광시 등지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설명회에 참석한 대리상 및 총경리들은 "출혈도 없는 무절개 식립 및 보철이 가능하며 수술 후 관리도 편리한 신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한국기업의 중국 시장 개척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화답했다.

(사진설명: 유시용 디오 중국법인 총경리는 두 번째 세션에서 새로운 전략상품이자 디지털 솔루션인 디오나비(DIONAVI)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시장 접근 전략을 제시했다)

'디지털 임플란트 시대'에 관한 기술지원과 세부 솔루션 임상자료와 함께 선보여

한국 본사에서도 기술연구소 김영환 이사를 파견해 '디지털 임플란트 시대'에 관한 기술지원과 세부 솔루션을 임상자료와 함께 선보였으며 각 부분에 질문과 응답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해외 마케팅을 위해 본사의 교육센터 운영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며 중국 의료진의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술 세션에 관심을 보인 상하이 화성렌멍(华盛联盟) 장퉁(蒋通) 총경리는 "현장에 꼭 필요한 강좌였고 이번 설명회 준비가 아주 적절했다.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유시용 총경리는 2015년 전략과 정책을 밝히는 세션에서 교육, 가격정책 및 현지화 전략을 비롯해 현지 세미나 및 기술 스터디 그룹, 광역 성별 설명회 및 한국 본사 방문교육 일정에 대해 공개하면서 중국 시장 현지화의 핵심코드인 네이밍을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할 것과 1성 1대리상 협력모델, 특별시 중심의 직영체제 등 향후 중국의 디지털 임플란트 시장을 확대하는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며 시장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디오 제품이 세계 70여 국에 수출되는 것과 별개로 중국 시장은 완전 다르다"고 전제하고 "격조 있고 신뢰 있는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중국 시장을 더욱 열어 가겠다"고 밝혔다.

'반나절은 자기를 위해 생각하고 반나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는 절강지방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당나라 시인 이백의 '행로난(行路难)'의 첫 연, 마지막 구절인 '갈 길이 험난해도 푸른 돛을 달고 파도를 헤쳐나가리'라는 의지로 중국문화를 좋아하는 리더로 자리잡겠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설명회가 끝난 뒤 중국 문화와 철학, 역사를 이해하는 '상인'의 마음으로 중국에 접근하려는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협력 대리상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설명: 전국 12개 대리상 총경리 및 실무진들이 참석해 한국기업의 중국 시장 개척의 동반자가 되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취재 前북경 특파원 최종명/ 편집 김기홍 기자 Global News Network 'AVING'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백리산수화랑에는 약 20억년 전 바다가 융기한 지형들이 많습니다. 

그중 한쪽 면이 깎인 단사지형 앞에서 바다를 걷듯 걸었습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