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야기> 4편에는 신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다. 김일성, 그의 할아버지 김보현, 협상 달인 강신태, 작곡가 정율성을 비롯 조선인과 동북왕 가오강 등 중국인들의 동북에서의 항전은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마오쩌둥이 장제스와 동북을 놓고 벌인 내전에서 북한의 지원은 탁월했다. 혼란기에 펼치는 전략가들의 시야는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타고날지도 모른다.


북한을 갈 수 없으니 백두산을 중심으로 두만강과 압록강 강변에 있는 중국 도시들을 가노라면 중국과 북한의 어제와 오늘, 미래 관계가 끊임없이 안개 속에 갇힌 듯한데 이 책에는 숨겨진 많은 해답이 있는 듯하다.


2007년 연길에서 새벽에 떠나 두만강 너머 함경북도 무산 시를 내려다 보며 지났고 백두산에서는 천지 너머를 보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단동에서는 유람선 타고 북녘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눈빛을 교환하기도 했으며 집안에서는 강 너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소리쳐 보기도 했고 60년대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담판으로 북한 영토가 된 강 중간의 조그마한 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저 다 중국 땅에서 바라본 북한일 뿐이었기에 ‘갈 수 없는 나라’의 그리움이었으리라.


연길에서 동북 만주를 달리며 끝없이 펼쳐진 벌판은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 옛날 말 달리던 북방민족의 얼이 숨쉬고 있고 항일전쟁용사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조국을 생각했던 곳이 아니던가? 발해 상경부 성터에서부터 신중국 이후 최초의 집단농장을 조선족이 일궜다는 화천에서는 민족향에서 만난 동포들과의 하룻밤도 너무 좋았던 시절이 그립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중국에서 바라본 무산


조중경계비 앞에서


백두산 입구


백두산 6월의 천지


만주벌판, 자무스 부근


압록강변 단둥


단둥 유람선 타고 바라본 북한 땅


여기서 중국인이야기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성루에 올라 투박하고 알아듣기 힘든 호남사투리로 신중국을 선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도를 수도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마오쩌둥이 일본 패망 후 국민당과의 내전을 치를 때 승리를 확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구상하면서 당연히 수도를 고민했을 것인데 그 최초의 구상은 북경이 수도가 아니었다.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하게 된 뒷배경 하나~


1948년 3월 당 중앙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동진해 산서 성을 해방한 후 건국 후 수도를 정하는 문제가 처음 거론됐으며 여러 번의 토의를 거친 후 수도 예정지로 고도 북경, 남경, 서안도 아닌 당시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하얼빈이 선정됐다. 린뱌오가 세계지도를 보는 것을 취미처럼 즐겼다지만 마오쩌둥도 중국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중국지도 보는 거 좋아한다. 벽에 늘 걸어놓고 산다. 왜? 어딜 갈까 늘 발걸음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한 마리 수탉으로 비유하길 좋아했고 흑룡강 성은 한 마리 하늘을 선회하는 고니를 닮았으며 하얼빈은 새의 목구멍 위치에 해당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하얼빈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방된 도시이기도 하고 소련의 지원을 얻어 안정적인 수도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 중앙은 ‘특별시’ 수도로 하얼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당사에 기록돼 있다. 신중국 성립 후 무주공산에 가까운 동북의 자원 활용과 외교적인 측면을 고려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뜻밖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민당이 미친 듯 동북으로 병력을 증파하고 교통로를 점령하자 상황이 급변했으며 다시는 당 중앙은 동북 거점 수도 구상을 논하지 않았다. 이후 낙양, 개봉 등을 포함해 수도를 고려하다가 최후에 북경(당시 북평)을 지목했다. 재미있는 것은 수도를 정하기 전 1949년 1월 동북국정치위원이던 왕자샹王稼祥과 나눈 이야기다.


마오의 “우린 곧 승리할 것인데 우리 정부는 수도를 어디로 하면 좋겠소? 당신 의견은 어떠오?”에 대한 왕의 긴 대답은 당시 그들의 고민과 함께 중국지도를 펼쳐놓고 생각해보게 한다. (지도를 펼쳐 보시라)


(이하 왕자샹의 말)


아주 중요한 문제네요. (엄숙한 말투로) 현재 국민당 수도 남경은 범과 호랑이의 자태를 지닌 호거용반虎踞龙盘의 요충지이지만, 역사적으로 역대 금릉(지금 남경) 왕조와 국민당 정부 모두 단명했습니다. 이런 숙명론적 역사인식을 믿지 않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남경은 동남부 해안과 너무 가깝고 향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아주 큰 단점입니다. 남경으로 정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게 아닌 듯합니다.


서안의 단점은 너무 서쪽에 편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중국의 강역은 진한시대나 수당시대가 아닙니다. 그때의 만리장성은 변경이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중심지에 가로로 퍼져있습니다. 서안은 지리적으로 중심지로서의 장점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서안도 부적합합니다.


황하 연안의 개봉이나 낙양 등도 고도였지만 중원지방의 경제가 낙후돼 있고 이런 문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일 뿐 아니라 교통문제나 황하의 범람 등 문제로 인해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은 북평입니다. 북평은 해안지구에 위치하면서도 경제가 발달한 영역에 속하는데다 동북과 관내(산해관 안쪽)로 통하는 핵심적인 요로이기에 전략적으로 십분 중요하며 현재 중국의 혈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깝게는 소련과 몽골이 위치해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록 바다와 가깝지만 발해는 중국의 내해에 해당하고 요녕과 산동 두 반도가 둘러싸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봐도 비교적 안전합니다. 국제적으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수도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북평은 명청 제국의 수도이었기에 인민들도 마음 속으로 흔쾌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런 유리한 조건들을 생각해볼 때 수도는 당연히 북평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오쩌둥은 거침 없는 양자샹의 의견을 듣고 난 후 몹시 기뻐하며 ‘일리 있어, 일리 있어. (有道理, 有道理)를 연발하며 한편으로 웃으며 한편으로 말했다.


“당신 분석이 내 생각과 딱 들어맞네, 우리 수도는 북평으로 정해야 할 것 같네. 장제스가 수도가 남경에 있는 까닭은 그의 기반이 절강의 자본가였기 때문이었다면 우리는 수도를 북평에 정하고 우리도 그 기반을 찾을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광범위한 노동인민대중일 될 것이다.”


1949년 3월 중순 마오쩌둥과 당 중앙은 북평으로 들어섰고 9월 21일부터 거행된 신중국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회 전체회의에서 ‘신중국의 수도를 북평에 설치한다.’는 안건을 토의한 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당일 정식으로 북평을 북경으로 개명했다.


<중국인이야기> 4편의 뒷부분 북한 이야기를 읽고 동북 지방을 다닐 때 기억을 하다가, 마오쩌둥과 김일성을 생각하다가 공연히 ‘수도’ 이야기만 잔뜩 푼 듯하다.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하얼빈의 성소피아 성당 광장의 야경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난징의 부자묘 앞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카이펑의 청명상하원 모습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뤄양의 최초의 불교사원 백마사 앞


중국의 수도로 거론된 시안의 당장안성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마오쩌둥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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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만큼이나 4권 <중국인이야기>를 읽으면 중국 방방곡곡을 땀내 닦으며 걷던 기억들로 설렌다. 장쉐량张学良의 고향 션양沈阳의 장솨이푸张帅府와 ‘시안西安사변’의 총탄 자국, 그의 첫 연금 현장이자 장제스蒋介石의 고향 시커우溪口의 미륵보살 성지, 대장정의 종착지 옌안延安의 동굴 집 야오둥窑洞, 베이징 마올후퉁帽儿胡同에 있는 마지막 황후 완룽婉容의 고거, 마지막 황제 푸이溥仪의 창춘长春 위만황궁伪满皇宫 박물관, 동북항일연군의 만주벌판까지. 옴니버스로 엮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책 속에 담긴 ‘중국인’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넘어갈수록 그들이 밟고 있던 ‘역사’ 속으로 물밀 듯이 나가고 싶어진다. 나의 중국문화답사기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 장쉐량과 푸이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이니 어찌 흥분하지 않겠는가?


쑹메이링宋美龄과 장쉐량의 인연은 1부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묘사돼 있다. 그들의 정분이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깊었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시안사변 이후 53년 동안의 연금생활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시안사변 1937년 한 달 후 황푸군관학교 출신 국민당 특무 다이리戴笠의 호송을 따라 ‘제일유금지第一幽禁地’ 쉐더우산雪窦山에 온 장쉐량은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낙차 171m의 천장암千丈岩 폭포를 즐겨 찾았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장쉐량과 감정이입을 하노라면 당대 최고의 미남이자 권력핵심의 정치인이 토해냈을 사자후獅子吼가 들리는 듯도 하다.


쉐더우산에는 늠름한 청년 장군 장쉐량 조각상과 함께 연금생활 도중 단 3일도 곁을 떠난 일 없던 자오이디赵一荻 여사의 백옥 같은 조각상도 자리를 잡고 있다. 1960년대 쑹메이링은 해금을 도울 목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한다. 처와 첩을 둔 장쉐량은 일부일처 제도와 해금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미국에 있는 본처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본처 위펑즈于凤至는 장쉐량과 자오이디의 ‘순수한 사랑을 믿으며 백년해로하길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이혼에 동의한다. 장쉐량은 기독교에 귀의했지만, 장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아들이자 총통이 된 장징궈蒋经国에게 ‘절대 불가’를 유언하기도 했다. 72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았던 자오이디는 2000년, 장쉐량은 103세의 나이로 2001년 나란히 숨을 거두고 합장 됐다. 장쉐량을 평생 살펴준 쑹메이링도 2003년 천수를 누리고 그들 곁으로 떠났다.


그림1 쉐더우산 연금 장소에 있는 장쉐량과 자오이디 조각상


장쉐량만큼 삶의 우여곡절이 깊던 인물은 마지막 황제 푸이다. 3부 ‘무너지는 제국’에서 비록 수감 중이긴 했지만, 자신의 네 번째 부인 리위친李玉琴에 의해 이혼당하는 황제라는 오명을 얻는다. 진시황 이래 어느 황제도 이혼이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여전히 황제 대우를 받던 시기에도 푸이는 이혼당한 전례가 있다. 황후와 황비를 동시에 얻어 결혼한 푸이는 퇴위 후 1931년 8월 ‘마지막 황비’ 원슈文绣로부터 이혼선언을 당한다. 이를 역사에서 ‘도비혁명刀妃革命’이라 부르는데 황제 푸이의 엄청난 충격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혼에 이르게 된 까닭을 황후 완룽의 시기와 질투 때문으로 여긴 푸이는 크게 상심했다. 완룽은 허울뿐인 황후로 전락했고 우울증에 시달려 아편에 집착했으며 시위와의 불륜으로 임신까지 했으니 황실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아닐 수 없다. 1937년 푸이는 만주족 출신의 탄위링谭玉龄과 결혼해 그녀의 사진 뒷면에 ‘내가 가장 사랑한 위링’이라 손수 쓸 정도로 다정했지만 5년 만에 의문의 병사를 했다. 그리고 책에서 자세히 언급한 리위친과 결혼하게 되지만 1957년에 다시 이혼 소송으로 둘 사이의 관계도 끝나고 만다.


창춘의 위만황궁박물관에는 <황제에서 평민까지>라는 푸이의 일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있다. 그의 일생을 화려했지만 불우했고, 처량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말년을 보낸다. 체포 후 곧 죽을 목숨이라 생각했지만 15년의 수감 생활 후 수많은 반성과 신중국 지지 선언을 거쳐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후 마지막 부인 리수센李淑贤과 결혼한다. 


둘 사이는 아주 금슬이 좋았지만, 푸이는 문화혁명 초기 홍위병들에게 고초를 겪기도 한다. 1967년에 결국 신장암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사망 후 유해는 베이징 인근 팔보산 혁명공동묘지에 안치됐다가 1995년 청나라 서쪽 황릉 부근 사설 묘원인 화룽华龙능원에 이장된다. 3살에 황제가 되었지만, 자금성에서 쫓겨난 황제라는 숙명 때문이었으니 청나라 황실 능원인 동릉과 서릉 어디에도 안치되지 못했다. 


그림2 위만황궁박물관에서 본 황제 즉위 시절과 수감 후 재판 장면


마지막 황릉은 선통제 푸이가 아닌 광서제의 몫이다. 청나라는 재정문제로 갈수록 황릉의 규모가 축소됐는데도 광서제의 숭릉은 화려하고 거대하다. 숭릉에 서면 푸이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숭릉 뒤쪽 200m 지점에 잠들어 있는 푸이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20세기 <중국인이야기>의 한 장면이니 말이다.


김명호 저자의 <중국인이야기>를 4편까지 읽으면서 늘 ‘중국문화여행’의 발품을 떠나고 싶었다. 중국판 ‘아라비안나이트’는 밤을 새워 읽어야 하듯 우리는 ‘중국’도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살피듯 정치와 경제도 제대로 파악하는 길만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나라와 선의의 경쟁과 우호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신드바드’가 모험을 떠났음직한 항구 과다르Gwadar는 중국이 40년 운영권을 보유했다. 국제정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일대일로一帶一路, 신실크로드로 질주하는 중국을 이해하는 코드로 <중국인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중국’ 붐을 일으켜서 바르게 ‘중국인’을 읽어야 한다. 천일야화보다 더 기나긴 ‘차이니즈 나이트’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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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Watch 2011.10.18 in Beijing]

 

허난성 시촨(淅川) 16만여 명의 주민이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2년 여 동안 이주민들 생활상을 취재한 기자는 "당신들 왜 옮겨야 하는 지 아나요?"라고 묻자, "알아요. 베이징이 목말라서(北京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타지로 옮겨야 하는 가난한 농민들의 모습이 최근, 방송과 신문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대형국책사업이 많습니다. 싼샤댐, 칭짱열차, 징후고속도로 등 거대 공사 외에도 천연가스, 전기, 전력, 석유, 석탄 등 자원을 이동하는 시치둥수(西气东输), 시뎬둥쑹(西电东送)이 그렇습니다. 사회간접자본 구축이나 자원관리가 국책사업인 것은 이해가 쉽습니다. 남쪽의 수자원을 북...쪽으로 뽑아 올리는 난쉐이베이댜오(南水北) 역시 아주 중요한 국책사업입니다. 베이징이나 텐진, 화베이 지방은 물이 부족해 창장(长江) 등의 남쪽 수자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 운하를 팠던 역사처럼이나 우리에게는 생소합니다.

 

이 난쉐이베이댜오 프로젝트는 수많은 이주민을 양산할 뿐 아니라 환경문제 등을 야기시킵니다. 정부도 국무원난쉐이베이댜오공정건설위원회(国务院南水北调工程建设委员会)를 두고 부총리급인 리커창이 주관할 정도로 중시합니다.

 

물길은 크게 3방향에서 끌어올립니다. 동쪽라인, 중앙라인, 서쪽라인에서 각각 수천 킬로미터를 연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알려진 시촨 주민들의 애환은 바로 중앙라인입니다. 친링(秦岭)산맥을 수원으로 하는 단장(丹江) 댐을 화베이 지방과 베이징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중국 최대규모의 물길 이동"이라 선전하고 있는데 이주가 시작된 지 2년 만에 이주민들의 아픈 사연들이 공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갑자기 <낙엽귀근>이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중국6세대 젊은 감독 장양의 영화로 도시에서 막노동으로 일하다 죽은 친구의 시체를 메고 길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로드 무비. 우여곡절 끝에 시체를 가족에게 인계하러 갔더니 싼샤 댐으로 인해 고향은 물에 잠겼고 옛 집터에는 "아빠, 우리 이주하니 어디어디로 찾아오세요"라는 글자만 적혀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산업화로 인한 아픈 상처입니다.

 

신중국은 주민들의 강제이주를 정책적으로 장려한 역사가 많습니다. 남방 사람들의 동북방면 이주, 한족들의 소수민족 변경으로의 이주, 강 범람을 막기 위한 댐 공사로 인한 이주, 그리고 베이징 사람들을 위해 수향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주까지 숱한 에피소드가 숨어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주의 정책, 당 중앙의 정책에 반발하기 보다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주보상금만으로 달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인'으로 살기도 하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100살 노인까지 정해진 시일 내에 이주해야 합니다. 어느 할머니는 '죽어도 떠나지 않겠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조상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서 다신 오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주세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국의 물길사업은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추진해오던 일입니다. 지금에 이르러 이주민들의 상처가 공유되는 것은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곪은 상처가 더 곪아 썩을지, 아니면 터져서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연 앞에서 일시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공감할지 지속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될지 역시 오리무중입니다.

 

난쉐이베이댜오 물길과 기념우표

 

 

[China watch 2011.10.17 in Beijing]

 

중국공산당 17 6중 전국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5일부터 18일까지 당 중앙정치국 중심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베이징 후진타오 총서기의 주재로 열립니다. 지난 1년 정치국의 업무에 대해 보고하고 토론합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최근 중국공산당의 최대화두인 "문화체제 개혁의 심화, 사회주의 문화대발전과 대 번영 추진"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17차 대회의 마지막 해를 맞아 "문화"대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 내외 전문가들은 "문화체제 개혁", "공공문화서비스", "문화경제정책", "문화산업", "경제문화화", "문화경제화", "국가문화", "문화 각성" 등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총알을... 봐야 피할 수 있듯이, 제대로 봐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 치융펑(齐勇锋) 전 국가발전개혁위문화산업연구센터(国家发改委文化产业研究中心) 주임의 관련 글을 읽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신문을 장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정돈된 논리를 지닌 것으로 요해됩니다. 읽고 난 후 우리말로 정리할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1년 후에는 18차 전국대회가 열리고 당의 총서기가 바뀝니다. (총서기는 자동으로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되며 다음해 3월 전국인민대표자회의의 추인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됨)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중 7명이 퇴임하고 새로 임명됩니다. 중앙정치권의 치열한 암투와 경쟁, 타협과 양보를 거치게 됩니다. 현재 25명의 중앙정치국 위원과 204명의 중앙위원회 위원, 167명의 후보위원도 바야흐로 긴장의 끈을 더욱 조여야 할 때인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봐서는 잘 짜인 조직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속에는 각 파벌 사이의 경쟁 산물이 숨어져 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처음에는 찾기 힘들지만 한번 찾으면 기억만 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중국정치지도자들의 인물DB와 매카니즘을 정리하고 공유하겠습니다. 저도 더 배우고 찾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조직도

 

[China Watch 2011. 10.14 in Beijing]

 

"20여 년 전에는 아이들에게 물질적 영양분을 제공했다면 지금은 정신적 영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보다 훨씬 많은 800억 위엔(14조원)의 재산을 보유한 충칭허우(庆后) 와하하(哇哈哈) 회장의 말입니다. 와하하는 중국 최고이자 세계 4위의 음료회사로 항저우에 본사를 둔 기업입니다. 2010년 최고 갑부로 등극하며 '부동산거물(房地产大亨), 가전두령(电器大佬)과 함께 최고갑부의 3각 편대로 새롭게 '음료대왕(饮料大王)이란 칭호를 얻게 됩니다.

...

그런 와하하가 2011년 올해 소매업 진출에 이어 출판사 등과 합작해 문화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와하하의 전략적 양대 기조인 글로벌화와 함께 아이템 다양화의 신호탄이란 분석입니다. 이제 '정신적 영양분'을 위한 야심 찬 계획이 음료를 공급하듯 최고가 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입니다.

 

특히, 소매업 등 새로운 사업영역 진출에는 경영과 업무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외동딸 쭝푸리(宗馥莉)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29세에 불과하지만 미국 유학 후 말단 직부터 시작해 그룹 내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재원이자 후계자입니다. '최고 갑부의 딸', '그룹 후계자의 강한 개성' 등 그녀를 두고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생김새는 바링허우(80)처럼 곱게 자란 부자 집 말썽꾸러기처럼 보이지만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고 근면 성실한 노력파이자 경영관리 전문가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민간기업들이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순조롭게 성장했지만 2세들의 경영능력은 수많은 시험대 위에 올라설 것이 분명합니다. 2세 경영 시대가 열린 중국에서 최고의 브랜드 와하하가 전략적 진군이 성공할 지 두고 볼 일입니다.

 

와하하 회장 외동딸 쭝푸리

 

 

[China Watch 2011.10.13 in Beijing]

 

중국최대 쇼핑몰 타오바오()의 소규모벤더 수만 명이 시위를 했습니다. 벤더들이 지급해야 하는 기술서비스 연회비(6000위안->3, 6) 및 위약 보증금(1만 위안->5, 10, 15) 5~15배까지 급작스레 인상한 것에 대한 항의입니다.

 

이는 타오바오에 홍주(红酒)를 판매하는 이빙(가명)이란 벤더가 자신의 심경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에 동조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각 포털의 커뮤니티가 조성돼 급속도로 확산된 것입니다. 급기야 '5만 명을 채워서 대규모 행동에 나서자'는 지령(?)이 전파되면서 10 12일 타오바오의 항저우 총본부 앞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

타오바오는 나스닥 상장기업 알리바바의 자회사입니다. 알리바바 대표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CEO 중 한 명인 마윈(马云)입니다. 마윈의 경영철학과 전략은 전 중국을 휩쓸었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윈은 자신의 웨이보(微薄)를 통해 가격인상의 정당성을 토로하면서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가장 큰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은 우리"라며 심정적 논리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샤먼() 사람인 이빙은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타오바오의 급작스런 가격인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에 벤더들이 동병상련으로 동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반 네티즌들도 가세하고 있습니다. 이는 뉴스가 됐고 점차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타오바오의 경쟁자인 QQ쇼핑몰은 벤더들의 행동에 동조하는 차원에서 내년 3월까지 관련 비용을 면제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반타오바오연맹(反淘宝联盟)'이 결성되는 등 파급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의 해결방안이나 법률문제 등이 나오기도 합니다.

 

메이저쇼핑몰과 소상공인연합이 벌이는 이번 다툼은 해결방안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점차 조직화되고 있어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불법적인 행동으로 가지 않는다면 공안경찰이 개입할 여지도 없어 보입니다. 결국 마윈과 네티즌의 대결입니다. 이 과정에서 마윈과 타오바오는 어떻게 대처할 지, 슬기로운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China Watch 2011.10.12 in Bejing]

 

백성들의 식량은 왜 늘 부자들의 간식거리가 되는가?(百姓口粮怎总成富人点心). 인민일보(2011.10.11) 기사제목입니다. 서민들에게는 생계,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을 부자들의 추가 부 축적을 목적으로 강탈한다는 뜻이니, 사회주의경제체제에서 보면 뜨끔할 일입니다.

 

'식량'은 바로 보장방입니다. 중국정부는 일본과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을 모델로 저소득층을 위한 서민아파트 공급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보장성주택, 즉 보장방입니다. 중국정부가 보장방의 점유율을 5년내 전체 주택의 20%( 3,600만 호)까지 공급하려고 합니다. 심각해지는 부동산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입니다.

 

자본주의적 민간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주거조건이 일정한 보장방은 해당 지역에서 일정수준 이하의 평균소득인 가정이나 미혼인 자가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존 민간아파트에 비해 아직 완전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많은 혼란이 예상되며 잘못 흘러갈 경우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입니다.

 

인민일보는 전매, 공동구매, 사기 등으로 혼탁해지고 있는 보장방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주택과 서민주택의 균형을 이뤄가려는 노력을 통해 부동산문제를 잡아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작년 베이징에 공급된 보장방이 약 13만호입니다. 평방미터 당 최고 8천 위안 이하(참고 베이징 왕징은 3~5만 위안)로 책정됐기에 주변 지역의 아파트 값 상승세를 잡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불법, 편법으로 보장방 시행이 이뤄질 경우, 부자들의 '간식거리'로 전락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은 가중될 수 있습니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혼탁 양상을 사전에 뿌리뽑기 위해 보다 강력한 관리시스템이 동원되지 않을까 보여집니다. 부동산문제는 실업문제, 교육문제 등과 더불어 중국정부의 민생 기조 중 하나입니다. 과연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될 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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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9일 오후 9시 16분 정시. 중국 간쑤성 쥬촨(酒泉)위성발사센터에서 벌어진 천궁(天宫)1호 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TV로 생중계된 위성 발사 현장에는 중국공산당 중앙 상무위원 9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CCTV화면

동진하면서 위성은 1,2,3단계 분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한반도 남단 위에서 기존 위성과 송수신하는 모습까지 시속 약 5천킬로미터로 날아가는 모습이 생중계된 것이다.  

CCTV화면

위성너머로 한반도와 셔우얼(首儿) 지명까지 화면에 드러났다. 우리의 나로호 실패가 연상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한편으로는 멋진 발사 성공 장면이 부러우면서도 말이다. 하여간 마음 속으로나마 성공을 축하하는 바이다. 중국의 기초과학, 우주과학의 기술력은 이미 부러울 정도이다. 러시아보다는 중국의 성공경험과 기술을 검토해보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

CCTV화면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비롯 후진타오,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이창춘, 리커창, 허궈창, 주융캉 등 중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국가영도자 9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9명 상무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흔하지 않다. 그것도 생중계 화면을 통해 전국민들에게 얼굴을 내비치는 것도 드물다. 어쩌면 위성발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묻어있다고 느껴진다.

모든 부분에서 우리와 잇닿아 있는 중국. 그들의 성장이 부럽기도 두렵기도 하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붙들고 가야하는 우리는 좀더 진지하게 중국과 상생하는 매카니즘을 찾아야하리라 본다. 하늘의 궁전을 향해 가고 있는 중국의 천궁1호 발사를 보면서 베이징에서 상념에 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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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 특파기자 리비아 종군취재

리비아 전선이 시시각각 돌변하고 있다. 카다피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 서방연합군의 군사개입으로 예측불허의 전선이 다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중국 외무부가 '다국적군(多国部队)'의 군사개입에 대해 '유감(遗憾)'이자 '찬성하지 않는다(不赞成)'는 의사 표시를 한 가운데, 중국의 종군기자가 리비아 전선에서 보내오는 실시간 현장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국제뉴스 전문매체인 환구시보(环球时报)의 츄융정(邱永峥)과 하오저우(郝洲) 2명의 기자가 주인공. 지난 3월 12일 뱅가지에 특파돼 반군 거점에서 종군취재 중이다. 정부군이 반군거점을 공격하는 시점, 서방 기자들이 리비아를 떠나고 있었지만 중국 기자들은 오히려 반군기지로 들어갔다. 반군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시민들의 참상부터 취재하기 시작했다. 

▲ 환구시보 인터넷판(환구망)의 리비아 종군취재 특별면 (환구망 캡처)

환구시보의 인터넷판인 환구망은 서방연합군의 침공이 임박해지자 특집페이지를 제작했다. <행동의 상징(行动代号): 오디세이의 여명(奥德赛黎明)>은 두 종군기자의 핸드폰과 위성전화를 이용 취재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보도하고 있다. 이 특집기사를 인용해, 중국의 각 포털과 매체들도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 중국 CCTV 뉴스채널 전화 인터뷰 보도 장면(CCTV보도 캡처)

▲ 중국 CCTV 뉴스채널 전화 인터뷰 보도 장면(CCTV보도 캡처)

리비아에 중국기자가 종군 취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전투기 추락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되자 중국 CCTV방송국의 뉴스채널도 전화인터뷰를 연결했다. CCTV는 지난 17일 현장 자료화면과 함께 '정부군의 전투기가 폭격 당했다'는 소식을 1분 가량 연결하더니 19일에는 5분 가량 비교적 상세하게 기자의 육성으로 현장 소식을 보도했다. 20일 아침에도 서방연합군의 참전 이후 '서민들에 대한 영향'에 관한 보도를 했다. 앞으로도 CCTV는 전쟁 현장의 유일한 중국기자들과 끊임없이 전화연결을 할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에 도착한 이후 츄융정 기자는 자신의 웨이보(微博, 미니블로그)를 통해 인터넷 소통을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장 취재와 관련된 뉴스는 물론이고 취재 과정에서 생기는 종군기자의 고충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5분 전 '뱅가지 발, 수백 명의 영국군 특수부대가 리비아에 진입한다(发自班加西:数百名英军特种部队进入利比亚)'고 전하고 있다. '해가 뜨면 우리는 반군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天亮后我们会跟着反政府武装往西行动,但谁也不知道会打到哪里)'는 글에는 종군기자의 '호흡'이 느껴지기도 한다.

▲ 환구시보 츄융정 기자의 웨이보(미니블로그) (시나닷컴 캡처)

츄 기자의 블로그를 팬(粉丝)으로 등록하는 사람들 역시 시시각각으로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 수천 명이던 숫자가 6만 명 이상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새로 클릭할수록 몇 백 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서방연합군의 군사개입 이후 종군취재가 다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두 기자는 중국 내에서 점점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츄융정과 하오저우 기자는 종군기자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아프카니스탄 내전을 취재해 일반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중국은 CNN, AP 등의 영향력에 주목해 CCTV와 환구시보를 중심으로 해외 뉴스매체를 집중 강화하고 있다. 아직 글로벌 역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CCTV의 중문뉴스 및 영문뉴스채널, 환구시보의 영국판 등을 만드는 등 영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종군기자 중 하오저우의 담당업무가 환구시보 영국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종전 후에도 연합군의 리비아 장악과 중국 및 러시아의 대응으로 이어지는 점입가경이 예측된다. 아프리카 및 중동으로 이어진 '재스민혁명'의 분위기와 리비아 문제를 중국 정부는 아주 다르게 접근하는 듯하다. 중국 언론은 민주화 열기에 대한 부분은 배제하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향후 리비아 전략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서방연합군의 리비아 진군을 두고 중국 종군기자의 활약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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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1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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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회를 뜨겁게 달군 말!말!말

 

중국 양회(两会)가 끝났다. 3 3일 전국정치협상회의(이하 정협) 개막, 3 14일 전국인민대표회의(이하 전인대)의 폐막. 이 기간 중국은 온통 ! ! !’로 시끄러웠다. ‘재스민 폭풍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민생민주만이 회자됐다. 우방궈(吴邦国) 전인대 의장의 폐막식 마지막 멘트,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해 분투 노력하자!(开创中国特色社会主义新局面而努力奋)”는 말이 오히려 낯설어 보였다. 정협위원과 전인대 대표들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문제에 대해 직설화법이었다. 언론과 인터넷은 양회의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 양회 중 하나인 정협 회의가 열리고 있는 인민대회당 ⓒ 소후닷컴

 

뭐니뭐니해도 3 7일 정협위원 왕핑(王平)의 발언이 일파만파였다. 베이징중화민족박물관 관장 왕핑은 도시화 문제 회의에서 농촌 아이들이 대학 진학하는 것을 장려하고 싶지 않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은 비극”(农村孩子上大学)이라고 언급했다.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취업도 어렵고 부동산 폭등과 물가 상승 등으로 도저히 도시에 거주하기 힘든 지경인데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농촌의 도시화 정책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 발언은 그대로 인터넷과 언론에 소개됐다. 순식간에 수십만 건의 댓글이 달렸다. 네티즌들은농촌학생들을 경시하는 것이며 농촌 아이들은 영원히 토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가?’ 라며 흥분했다. ‘독거노인문제의 원인으로 치부할 수 없다거나 도시 인구 증가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느냐?’ 등 반발이 컸다.

 

▲ 정협위원, 베이징중화민족박물관 관장 왕핑 ⓒ 신화사

 

사람들의 주목을 받자 그녀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대학 교육도 문제가 있으며 취업과 생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고물가와 부동산 문제 등으로 인해 농촌가정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것은 오히려 빈곤의 악순환만 가져올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지방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창업지원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도록 하는 개혁을 발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양회를 통해 관심인물이 된다는 것은 민감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연결고리가 단순하지 않아 도시화에 대한 소신이 복합적인 사회적 연쇄고리를 끌어낸 계기로 발전한 것이다. 이렇듯 스쳐 지나갈 듯한 !’이 관심의 초점이 된 사안은 많다.

 

전 위생부장 장원캉(张文, 정협위원)의 발언도 파격이었다. 아이들이 탐관오리가 될 생각(当贪)’을 하게 될까 정말 두렵다고 했다. ‘학문은 거짓이고 공무원은 부패하며 사치스런 풍토가 횡행하는 사회풍토를 개탄하며 탐관을 거론했다. 매년 회의마다 반부패청렴(反腐倡廉)’을 거론하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발전과 사상도덕의 불균형을 빗대어 다리 하나는 길고, 또 하나는 짧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회의에 참여했던 다른 정협위원 역시 드라마 <워쥐(>(절찬리 상영 중 갑자기 TV상영불가 판정을 받은 드라마로 한 도시의 시장 비서가 가난하지만 예쁜 젊은 아가씨와 비정상적인 불륜에 빠진다는 내용)를 예로 들었다. ‘많은 아가씨들이 첩이라도 좋으니 이런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하는데 정말 가치이념이 실종됐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 전 위생부장이며 정협위원인 장원캉(왼쪽), 전인대 대표인 산시 성 서기 위엔춘칭(오른쪽) ⓒ 인민망

 

한편, 전인대 대표인 산시성 서기 위엔춘칭(袁纯清)은 공무원의 부패추방 조치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윤락(嫖娼) 행위 발견 때 우선 당적부터 박탈하겠다는 발언도 주목을 끌었다. 네티즌들이 그의 발언에 지지를 표명했지만 공무원의 윤락이 그렇게 쉽게 드러나겠는가?’ 또는 당적 박탈 운운 말고 윤락의 길목이나 차단하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공산당기율처 조례>윤락 등의 경우 출당시킨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지방 성의 내부규정을 중앙정치 무대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번 양회는 재스민혁명의 영향을 받아 시위가 있었고 평소보다 검문검색이 강화됐고 인터넷으로 검색어를 차단하는 등 관리가 엄격했다. 125개년경제개발계획(12.5구이화) 첫해로 민생문제가 집중 조명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일파만파의 발언과 민생문제 등의 현안 외에도 양회는 모름지기 정치행사로서 정치인들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2012시리체제’(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로의 권력이양을 앞두고 있다. 정원이 9명인 중앙정치국상무위원 중 2명을 제외한 7명의 물러날 자리를 누가, 어느 서열로 차지할 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이다. 후보군인 중앙정치국위원들은 중앙무대에서 자신의 대중적 지지와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언론의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관영 인민일보와 검색포털 바이두(白度)가 함께 선정하는 당일 인물에도 차례로 얼굴을 드러냈다.

 

▲ 국무원 부총리 왕치산(왼쪽), 충칭 시 서기 보시라이(오른쪽) ⓒ 인민망

 

국무원 부총리 왕치산(王岐山)은 은행장 출신으로 베이징 시장을 역임했다. 3 5일 산둥 대표단 심의에 참가한 자리가 마침 식품안전문제가 주제였다. 그는 정말 송구스럽다. 막 식사를 마치고 왔는데 식품안전문제가 나왔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부총리의 죄송하다는 표현이 기존 공무원들의 스타일에 비해 신뢰성이 높다는 반향을 일으키게 됐다.

 

충칭 시 서기 보시라이(薄熙)는 랴오닝 성장과 상무부장을 역임한 공산당 원로 보이보의 아들로 태자당(혁명원로 2세 정치인)의 상징적 인물. 2007년 지방정부 충칭에서 소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조직폭력배 소탕을 벌이고 시민들에게 혁명가요를 부르도록 권장하는 운동 등 창홍다헤이(唱红打黑)’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3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뭐라 해도 이 정책 덕분에 바른 기운이 살아나고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정면 돌파하는 발언으로 주목 받았다.

 

▲ 상하이 시 서기 위정성(왼쪽), 광둥 성 서기 왕양(오른쪽) ⓒ 신화망&남방도시보

 

상하이 시 서기 위정성(俞正声)은 칭다오 시장과 건설부장을 역임했다. 3 6, 작년 상하이의 11 15일 대형 화재와 관련해 준엄하고 청렴한 당풍의 부족을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발언했다. 정치적 부담을 돌파하려는 발언으로 평가됐다. 또한, ‘인터넷에서 나온 의견은 가장 직접적이고 신속하며 대부분 정확한 것이어서 정부 운영과 개선에 아주 좋은 도구라고 발언해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광둥 성 서기 왕양(汪洋)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준말) 출신으로 안후이성 부성장 및 부서기 및 국무원, 충칭 당서기를 역임했다. 1976년 공장노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행복광둥을 추진하고 있다. 3 8, 광둥 대표단 회의에서 행복한 꽃은 개방을 원한다고 발언하며 일반 백성들에게는 바로 꽃과 같아서 빛과 공기, 토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행복의 개념을 설명해 주목을 받았다.

 

▲ 신장위구르자치구 서기 장춘센 ⓒ 천산망

 

중앙정치국위원은 아니지만 가장 화제 인물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서기 장춘센()이었다. 교통부 장관과 후난 성 서기를 거쳐 소수민족 자치구의 서기 부임 후 개혁과 개방정책을 펼쳐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중앙무대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는데 미니블로그(웨이보微薄, 트위터와 비슷)를 개설해 일일이 소통하는 등 "가장 개방적인 서기" 칭호를 받고 있다. 신장위구르 지역을 (), 메이() 하오()’한 곳이며 실업을 줄이고 개혁의 열매를 인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거침 없는 발언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음료기업 와하하 회장 쭝칭허우(왼쪽), IT기업 롄상 회장 류촨즈(오른쪽) ⓒ 인민망

 

정치인 외에도 경제인이 주목을 받았다. 중국 최대 음료기업 와하하 회장 쭝칭허우() 사회보장 정책 확대와 재정수입 배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으며 땅값 통제, 부동산세 인하, 개발상 이윤 통제 등 부동산정책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요구해 주목 받았다. 중국 최대 IT기업 롄상 회장 류촨즈(传志)은 정부가 부과하는 기업세금을 줄이는 대신 이를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되돌려주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을 건의해 주목 받았다.

 

을 다 글로 기록하기 어렵듯 중국 양회의 을 다 살펴보기도 쉽지 않다. 몇몇 언급만으로 중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년 봄 열리는 정치행사 양회가 관심 밖이 돼도 안될 것이다. 양회의 이 중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 3월 14일, 전인대 폐막식 ⓒ 인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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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남자로 기록될 사람이 나타났다. 프로농구선수 야오밍(姚明)보다 20센티미터나 더 크고 기네스북 기록인 2.36미터보다도 10센티미터나 더 크다. 그 주인공은 허난(河南) 성 푸양(濮阳)출신으로 27세의 자오량(赵亮)이다.

어제(4월 14일) 인민망(人民网) 톈진창(天津视窗)이 지병 치료를 위해 톈진의 한 병원을 찾은 자오량을 보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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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망톈진창 보도, 2.46m의 자오량(인민망)



보도에 따르면 자오량은 2남1녀의 장남으로 아버지와 동생의 신장은 180센티미터 정도이며 어머니는 168센티미터, 여동생은 173센티미터라고 한다. 가족 모두 중국인 평균보다는 크긴 해도 너무 차이가 난다.

자오량과 함께 병원에 온 어머니 말을 빌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애들에 비해 컸고, 어릴 때부터 아주 많이 먹었는데 12살 이후 매끼를 거의
2진(斤)인 1킬로그램씩 먹었으며 지금도 매번 만터우(馒头,맨 찐빵) 8개는 먹어야 양에 차며 반찬도 세 그릇이나 먹는다"고 한다.

그는 16세가 되자 빠르게 성장해 1.9미터가 됐고 17세에 고향 농구팀에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 도중 덩크슛을 하다가 발을 다쳤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농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발 부상에다가 키도 커 취직도 못한 채 지냈는데 2006년 지린(吉林)성의 한 예술단에 발탁돼 색소폰(萨克斯), 마술(魔术), 후루쓰(葫芦丝) 등을 배워 무대에 서게 됐다고 한다. 여전히 발 부상이 불편해 공연활동에 영향을 미치기에 병원을 찾아다는 것이다.

발사이즈는 어떻게 될까? 보통 사람의 경우 265밀리미터가 42호 사이즈인데 그는 무려 55호반(55号半)이라고 한다. 대충 환산하면 370밀리미터에 육박한다. 중국에서는 구할 수 없어 일본이나 미국에 주문해 구한다는 것이다.

키가 크다 보니 발 치료에도 난감한 부분이 있다. 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주치 의사 자오위칭(赵玉庆)의 말을 빌면 "이런 발 치료 수술의 경우 허리 하반신 마취가 적합한데 워낙 신장이 크다 보니 마취효과를 예측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한다.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해야 하는데 효과를 장담할 수 없어 난감하기도 하고 또 수술 후 병상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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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치료 받는 모습과 후루쓰 악기를 부는 모습. 출처:인민망


그래서 "정강이와 종아리, 발가락 쪽에 있는 신경을 차단(神经阻滞)하는 3차례에 걸친 마취를 실시해 환자의 정신이 살아있지만 무통 상태에서 수술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수술 후에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참 대단하다. 이번에 자오량이 알려진 것이 스스로 병원을 찾게 돼 언론에 공개됐지만 자오량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전역에서 조용히 묻혀 살며 알려지지 않은 '거인'이 얼마나 있을 지 아무도 알 길이 없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기네스북 세계기록에 등재돼 있는 2.36미터의 주인공 역시 중국인이다. 내몽골 초원에 사는 평범한 유목민인 바오시순(鲍喜顺)이 그 주인공이라 한다. 그는 2005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기네스기록증명수여식'에서 영국 기네스협회로부터 2.36미터의 기록을 인증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자오량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 기록이 바뀔 것이라고 이 언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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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m의 야오밍, 2.36m로 기네스 세계최고기록의 바오시순. 시나닷컴,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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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09.10.13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다 ㅠㅠ




중국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래가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샤오이베이(邵夷)이다. 그녀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여우쿠왕(, 중국 최대 인터넷동영상 서비스 중 하나)에서 지난 2월부터 플레이수가 벌써 30만 건 이상이라고 한다.


우연하게 인터넷에 올린 영상이 대박이 된 것이다. 지난 25일 중국의 권위 있는 언론매체인 난팡도시보(南方都市报)는 독특한 사회현상으로 판단하고 독점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때부터 그녀가 유명해지게 된 사연은 물론 로큰롤을 좋아하는 매니아이며 시골 벽지에서 베이징대학에 입학한 수재라는 배경 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인터뷰 기사 [난팡도시보 3.25]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부른의 <늙은 예술소녀의 노래(大龄文艺女青年之歌)>의 노랫말과 가락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빗대 나이 서른 한살의 노처녀이면서 여전히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며 예술소녀로 살고 있으면서 시집 가야할 나이라는 이야기를 통기타 선율에 담아낸 장면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중국 넘버원 동영상 서비스’라는 여우쿠왕을 비롯 주요 동영상서비스들이 최근 해외 IP의 접근을 차단하는 관계로 난팡도시보의 특집기사와 함께 담긴 그녀의 노래 장면을 보고 들었다. 동영상 파일은 널리 공유되고 있어, 중국 친구를 통해 파일 자료도 받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 난팡도시보에 소개된 샤오이베이


중국언론사 중에서 처음으로 <늙은 예술소녀의 노래>를 부른 샤오이베이를 인터뷰한 난팡도시보(南方都市报) 기사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그녀가 친구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기타를 들고 노래한 것을 친구가 핸드폰으로 촬영해 올린 것이라 한다. 이 동영상을 올린 것을 알게 된 그녀는 화를 내 곧바로 내렸지만 이미 하루만에 인터넷을 타고 널리 퍼져나간 후였다.

사실 그녀는 기타를 배운 지 겨우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는 칭하이(青海)성 수석(문과)으로 베이징대학에 입학한 수재로 대학 재학시절에는 그룹사운드에서 드럼을 치는 등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보다는 음악 등 예술을 좋아해 유명 로큰롤 가수들의 콘서트를 따라다니던 열성 팬이기도 했다.

이제 31살이 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잘 살리면서도 코믹하고 시니컬한 노래가 인터넷을 통해 큰 인기를 끌자 각 언론매체는 물론 음반회사들로부터 러브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와 다름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유명세는 어쩔 수 없는지 베이징대학은 물론 시내 곳곳에서 작은 콘서트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게다가, 이 <늙은 예술소녀의 노래>와 함께 그녀의 <나나에게 바치는 노래(给娜娜的歌)>와 신곡인 <포에버(Forever)까지 연이어 그녀의 노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를 만든 노래가 우연하게 유명해졌는데, 중국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의 하나이다.

그녀의 나이 답지 않게 귀엽고 발랄하면서도 재미있는 노래 <늙은 예술소녀의 노래>를 들어보자!  




동영상에 자막을 달았습니다. 동영상 번역에 오타가 있네요!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다소 의역을 했습니다.)

<大龄文艺女青年之歌>를 "늙은 예술소녀의 노래"라고 번역하면서 '문예여청년'을 어떻게 바꿀 지 아주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문예'라는 말은 그냥 '문예'라 하기 보다는 '예술'이란 말이 더 입에 와닿는 듯했고, '여청년'은 '아가씨', '처녀', '여자청년' 다 이상해, 결국 '예술소녀'라 했습니다. '문학소녀'도 생각해봤지만 영 어색하고...하여간 우리와는 다소 다른 어감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중국 친구(여성)에게 <大龄文艺女青年之歌>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더니 바로 나온 대답이 '
我现在看见“大龄”就眼晕'이었습니다. '늙은(大龄)'이란 글자 보자마자 현기증 난다'고 하더군요. 한참 웃었답니다. 중국애들도 역시 나이 들어 시집 가지 않았다는 게 마음의 부담입니다. 그런 공감이 있는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왕샤오지에는 31살이라네 王小姐三十一岁了
  친구들은 그녀를 만나면 朋友们见到了她
  모두들 물어보곤 하죠 都要问一个问题
  언제 시집 갈 거냐? 你什么时候打算嫁呀?
  하지만 시집이라게 어디 可是嫁人这一个问题
  혼자 결정할 일 아닌 걸요 又不是她一个人可以决定的
  아빠에게도 물어봐도 她问她爸爸
  엄마에게도 물어봐도 她问她妈妈
  서둘러 가라고만 해요 他们都说你赶紧的
  你看 你看 你看人家那那那那那那那那那
  你看 你看 你看看那那那那
  
  늙은 예술소녀는 大龄文艺女青年
  어떤 남자에게 시집가야 하나요 该嫁一个什么样的人呢
  예술청년을 찾아야 하나요 是不是也该找个搞艺术的
  꽤 좋은 일인 듯해요 这样就比较合适呢
  그런데 예술하는 청년? 可是搞艺术的男青年
  지 예술만 좋아하는 녀석들 有一部分只爱他的艺术
  몇몇 예술한다는 애들은 还有极少部分搞艺术的男青年
  예술한다면서 여자나 꼬시고 搞艺术是为了搞姑娘
  여자 꼬시듯 작업일 뿐인데 搞姑娘又不只搞她一个
  어찌 그런 놈에게 시집 가죠? 嫁给他干什么呢
  여자 꼬시듯 작업일 뿐인데 搞姑娘又不只搞她一个
  (웃기려고 하는 후렴구) 奶奶奶奶奶奶的
  
  친구들이 몇 명 소개하더군요 朋友们介绍了好几个
  차 있고 집 있고 애도 있는 有车子房子和孩子的
  돈 있는 놈 잡아야 한다 他们说你该找个有钱的
  돈 있어야 창작도 한다고 让他赞助你搞创作
  그런데 부자가 그녀를 싫어해요 可是大款都不喜欢她
  부자는 밥순이나 원하지요 他们只想娶会做饭的
  밥도 할 줄 모르는 아가씨 不会做饭的女青年
  그저 애첩이나 될 뿐 只能去当第三者
  밥 할 줄 모르는 예술소녀 不会做饭的文艺女青年
  그저 그들의 굴레만 될 뿐 只能被他们潜规则
  (웃기려고 하는 후렴구) 奶奶奶奶奶奶的
  
  이 노래 정말 딱이에요 这一首歌纯属雷同
  만약 완전 지어낸 거면 如有虚构纯属巧合
  여기 앉아있지 말고 请不要自觉对号入座
  나가서 사람들에게 날 욕해요 然后发动群众封杀我
  보세요 보세요 토마토계란요리만 아니 你看 你看 你看她只会做西红柿炒鸡蛋
  보세요 보세요 겨우 라면 뿐인걸요 你看 你看 还要就着方便面
  물론 정말 맛 있어요 那是非常好吃的
  mia mia mia mia mia mia mia
  물론 정말 맛 있어요 那是非常的好吃的
  mia mia mia mia mia mia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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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rmes 2009.04.01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왓 좋은 목소리에 좋은 음악!
    가사도 발군이네요. ㅎㅎ
    좋은 노래 소개 감사합니다. 잘 듣고 갑니다 : )

  2. 통기타 2009.09.12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통기타소리가 너무 좋습니다 아이디어도 좋구요 가사




"이런 기사를 쓴 기자는 상대하기도 싫은 인간입니다"
(제목 변경 13:43)

우리 언론이 중국 관련 보도를 하는 것을 보면 가끔 화가 많이 난다. 하지만, 참고 있다. 매번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러다 한두 번 참다보니 이제 좀 만성이 됐다. 중국 현지에 주재 특파원을 둔 언론사의 경우는 덜한 편이지만 소위 인터넷 언론을 자처하는 매체들의 '무책임한 보도'는 좀 심각해보인다.

사실, 중국은 우리 언론이나 블로거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건 사고가 많다. 그래서 보도하고 싶은 유혹이 그만큼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뉴스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그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보도하는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얼마전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중국관련 포럼 한 회원이 <어처구니없는 중국 PC방 관련 기사>가 있다고 제보했다. 그리고 "기사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냉철한 현장중심의 조사 꼭 필요합니다. 요즘 시대가 그렇습니다..쩝쩝.."하면서 개탄했다. 정말 웃기는 에피소드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언론의 중국 뉴스 보도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경우라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국민일보의 쿠키뉴스는 지난 3월 17일,  <
中 PC방에 ‘여성 도우미’ 등장… ‘뭘 도와줄까’ 궁금>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내용도 아주 선정적이며 나름대로 우리나라 네티즌 멘트까지 담아 염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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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의 중국 PC방 관련 기사


"중국에 ‘여성 도우미’가 동원된 인터넷 카페가 등장해 화제와 함께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들이 치마 길이가 매우 짧은 ‘메이드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마다 남자 손님 옆에 앉아 같이 컴퓨터를 하고 있다."

"이 인터넷 카페에 대한 소식을 접한 국내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다”, “PC방에 여자를 동석시켜서 뭘 하겠다는거냐”, “VIP룸, 럭셔리룸을 만들어놓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등 대부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임쇼 도우미가 상하이 PC방 '타락'한 미녀 도우미로 변신

과연 이 기사는 사실일까? 이 기사는
보쉰왕(博讯网)이라는 중국 (인터넷) 매체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기사였는데, 마치 상하이(上海)에 정말 이런 인터넷 까페가 등장해 성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유언비어로 판명이 났다.

보쉰왕은 중국의 인터넷 신문 중 하나다. 그렇지만 그 본사가 있는 곳은 미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어권 인터넷 신문(영문 서비스도 있음)을 만들어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매체이다. 상당부분 중국 타 매체를 출처로 한 카피기사가 많고(협약돼 있는 지는 확인하지 않았음), 자체 기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쉰왕에서 해당 기사를 검색하거나 일일이 찾아 봤는데, 문제의 기사 출처를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쿠키뉴스가 인용한 보쉰왕은 나름대로 외부 블로거들이 기사를 보내거나 인터넷 기자(?)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체제이므로 어떤 경로로 기사가 보도된 것인지 면밀하게 확인해봐야 하며 인용할 경우에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도에 나온 사진을 보면'이라고 쿠키뉴스는 보도하면서, 물론 사진이 함께 게재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비스 등급에 따라 개인룸 40개, VIP룸 50개, 럭셔리룸 100개 등으로 이뤄진 초대형 인터넷 카페"라고 했으니 우리 네티즌도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을 것이다.

보쉰왕 어디에도 본래 기사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쿠키뉴스가 보쉰왕을 인용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기사를 쓴 것일까.

제보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다. 이미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퍼날라서인지 관련 기사 사진으로 짐작되는 사진이 꽤 많이 검색되고 있는데, 사실은 타이완(台湾)에서 거행됐던 게임쇼 관련 행사 사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사진들이 "상하이 PC방"의 탈을 쓰고 사진들이 여과 없이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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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쉰왕 보도인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 PC방 미녀 도우미'
관련 기사 사진으로 판단됨 (출처 : 汽车之家)

상하이 PC방 미녀 도우미 놀랍다(上海网吧惊现美女作陪)는 제목으로 여전히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도 많이 퍼져있는데 정말 사진만 봐서는 기사 내용 그대로 현장사진으로 믿게 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행사가 이미 2006년에 타이완에서 치뤄진 게임쇼(한국이 주관에 참여했거나 또는 많은 한국 게임업체들도 참관했었던 것을 알려짐)에 등장한 한 게임업체의 부스도우미들이었다는 것이다. 타이완의 행사 도우미가 상하이 '불법 타락'한 PC방 도우미로 바뀐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도 오보를 많이 지적하고 있다. 멍후이톈탕(梦回天堂)이란 회원은 '이건 한국이 주관한 게임전시회의 중국 쪽 홍보현장으로 당시 부스도우미들이 게임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지난 일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뭔 이딴 글을 올리냐!(这是韩国主办商魔兽游戏发布在中国的宣传现场,所以当时找她们来是介绍游戏的,几年前事,自己都没搞清楚,乱发什么帖~!)라고 한다.

쿠키뉴스를 다시 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상하이에 이런 PC방이 등장했다면, (사실 중국 문화부나 상하이 시 정부의 기존 PC방 정책을 봐서 현실적으로 이런 형태의 PC방이 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뉴스 자체도 굉장한 파급력이 있을 것이고 최소한 상하이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됐을 것이다. 즉 사건 뉴스에 가깝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말 이런 PC방이 생겼다면, 상하이 어디에 있는 지 밝혔을 것이다. 보쉰왕을 인용했다는 쿠키뉴스 기사 어디에도 팩트(Fact)란 것이 없다. 팩트 비슷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상하이'란 것밖에는 없다. 중국에 대해, 아니 중국어를 단 1달만 배웠다고 한다면, 아니 뉴스가 무엇인지 기초를 안다면 상식적으로 쓸 수 없는 기사다. 그것을 "갖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쿠키뉴스는 아무런 게이트키핑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은 수준이하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쿠키뉴스는 <쿠키톡톡>, <쿠키지구촌> 등 코너를 통해 중국을 포함한 해외 뉴스를 아주 빠르게 생산하는 듯하다. 포럼 회원이 지적한 것처럼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말이다. 쿠키뉴스는 해당 출처를 재확인하고 오보인 것이 확인되면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제보자의 지인이 쿠키뉴스 기사를 보고 상하이에 정말 미녀 도우미가 나오는 PC방이 있는 지 물어와서 알게 됐다고 한다. 상하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상하이에 미녀 도우미 PC방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제보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런 기사를 쓴 기자는 그야말로..참 상대하기도 싫은 인간입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으면서도 저린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해외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취재하는 기사의 경우 면밀하게 점검해 잘못된 관점을 유포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아무리 구미에 당기는 보도라 하더라도 '책임도 따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결국, 이런 오보는 우리에게 나쁜 선례가 돼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사건사고들이 무분별하게 중국 인터넷 매체에 보도되는 경우도 많다. 서로 오해의 골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데, 적어도 우리는 제대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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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oem23.com BlogIcon 학주니 2009.03.25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뭐랄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위한(트래픽을 가져오기 위한) 시가성 기사였군요.. -.-;

    • Favicon of http://www.youyue.co.kr BlogIcon 여우위에 2009.03.25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독 중국관련 기사에 이런 게 많아요~
      일반 블로거도 아니고 버젓이 언론사 기자가...
      하여간 따지기 시작하면 엄청 많아요!

  2.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26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이버 뉴스캐스트 때문에 요즘 헤드라인들이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는 데스크가 문제가 있네요.. 그것도 국민일보에서 도대체 뭐하자는건지.. ㅜ.ㅜ

    • Favicon of http://www.youyue.co.kr BlogIcon 여우위에 2009.03.26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데스크도 문제지만...
      쿠키톡톡인지 지구촌인지 이전 기사들 보니 대부분 선정적인 이슈찾기가 많네..너무 노골적이야~




축구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지만, 한국 축구에 대해 몇 가지 꿈 또는 망상을 한다고 해도 누가 흉 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 영국 등 유럽 리그를 보면 흥미진진한가. 월드컵 경기에는 흥분하면서도 국내 프로리그만 보면 실망일까. (물론 최근에 K리그도 흥미로운 경기가 몇몇 있기는 하다) 저변 확대, 유소년 축구 양성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몽준 전 협회장 시절부터 사실 해놓은 것이 무엇인가. 회장 자신의 대외적인 브랜드만 키웠지 실제로 장기적이고도 실질적인 진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모든 면에서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아이디어이지만 우리나라 축구 발전을 위해 생각해오던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실현 가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축구 행정 비전문가가 우리나라 축구 발전이 곧 나라의 브랜드 가치이며 글로벌 마케팅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생겨난 노파심과 기대 그리고 망상일 지도 모를 꿈이라고 여겨도 좋다.

한중일 프로리그의 통합, 한국 기업의 유럽 리그 구단 운영이다.

 

한중일 프로리그의 통합

 

사실 8년 전 즈음에 당시 대한축구협회 게시판에 한번 썼던 적이 있다. 지금은 다시 접속해보니 예전 글을 찾을 수 없었지만 당시에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것이긴 했다.

 

우리나라 K리그도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그저 상위에 드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우선, 시장이 작다는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다. 시장이 크지 않으니 서둘러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를 보기 힘들기도 하고 축구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높지 않다.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프로리그를 통합하자는 것이다. 시장의 통합이며 선수 교류의 확대일 뿐만 아니라 삼국의 연관산업까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한국 K리그는 14개 팀, 일본 J리그는 18개 팀, 중국 중차오(中超)는 15개 팀이 1부 리그 개념으로 운영되며 2부 또는 3부까지 운영하고 있다.

 

1부 리그만 놓고 보면 무려 47개 팀이나 된다. 이를 적절한 방안을 가지고 리그를 통합하고 분리하면 될 것이다. 처음에 몇 개 팀을 어떻게 1부 리그의 형태로 셋업하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꼭 하겠다는 전략적 의지와 합의, 공감대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중일 통합리그가 되면 시장도 커지고 중계권이나 스폰서쉽, 프랜차이즈의 확대가 예상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곤란하고도 난감한 문제들이 초기에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수단 이동문제, 중계방송 합의 등등이 있겠지만 거국적 통합기구를 통해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삼국의 전략적 목표의식이다. 각각 세계 10위권에 진입하기 위한 동맹의식이 있고 국내 리그를 삼국 리그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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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J리그는 우리보다 꽤 발전 속도가 빠른데 축구행정가들의 전략적이 접근이 있기도 했지만, 자본과 마케팅을 적절히 결합하고 축구팬들에게 접근하려는 마인드가 훨씬 앞섰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상대적으로 앞선 리그 경험과 시장이 결국 한국, 특히 중국의 리그 시스템 및 수준을 고려해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봐서 중국의 거대시장을 고려할 때 반드시 노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중국의 중차오 리그는 늦게 출범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비합리적인 리그 운영과 협회 등의 마찰이 다소 있는 등 삼국 중 상대적으로 수준이 미약하다. 하지만, 거대한 잠재 시장을 무기로 삼국 통합 리그에 참여하면 결코 손해를 볼 장사는 아니라 판단해 참여할 것으로 본다. 다만, 정책적으로 사회 통제 시스템에 대한 제반 고려사항이 관건이 될 전망이지만, 중국 리그의 수준, 관중 동원 등에서 한계가 많기 때문에 축구 관계자들이나 팬들은 환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K리그도 현재 특별히 비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늘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고 팬들과의 마케팅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들과 함께 하는 수준이 되려면 멀고도 멀었다.

 

축구 수준과 리그 경쟁력을 높이는 유일한 전략적 대안은 삼국 리그 통합이다. 또한, 이를 통해 연관 산업 등의 부가적인 가치 유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서로 계산기를 두드리겠지만, 그리고 각국 내부적으로 반대여론도 일부 있을 터이지만, 삼국 모두 세계 10위권 진입이라는 전략적 명분이 합의된다면 못 이룰 이유도 없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한국 기업의 유럽 리그 구단 운영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면서 일약 우리의 눈높이는 달라졌다.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가운데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럽진출은 정말 우리의 시야를 글로벌하게 바꿔놓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기업, 즉 삼성과 현대기아 등이 프리미어 리그의 스폰서가 돼 선수들의 가슴팍에 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광고주가 된 것이다. 첼시 유니폼 광고스폰서 비용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삼성이 당연히 그 광고효과를 냉정하게 분석됐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또, 가끔은 러시아나 중동재벌이 프리미어 구단을 인수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냉정하게 이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마케팅을 위한 투자를 고려해 봄 직하다. 그런데 석유재벌도 아니니 유럽 각국의 1부 리그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10년 계획을 수립하고 영국 3부 리그 정도라면 어떨까. 3부 리그라면 (매매 인수가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천문학적인 숫자도 아닐 것이니 말이다. 가상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3부 리그에서 1~2년 운영과 노하우를 실험하고 2부 리그에서 2~3년 피 터지는 생존 경쟁을 치르고 3~5년 후 정도에 프리미어로 진입하는 목표를 세운다면 돈 있는 대기업일 경우 해봄 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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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등 해외 리그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 스케쥴이 굳이 꽉 막혀 있는 나라들이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3부 리그가 창피하면 2부 리그, 3부 리그가 버거우면 4부 리그, 중요한 것은 5년 후 성공모델을 구현하는 것이 아닐까.

 

3부 리그 정도라면 우리 나라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유럽리그로 진출하기가 약간 쉽지 않을까. 기성용과 같은 젊은 선수들(물론 국내에 군복무 등 여전히 난제가 있지만)을 키워낼 수도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는 박지성 같은 수준의 선수가 각 포지션 별로 한두 명씩만 있다면 다시 한번 8강, 4강에 도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2014년과 2018년 월드컵 사이에 세계 랭킹이 점점 상승해 (지금 랭킹은 점점 내려가는 추세가 아닌가) 어느덧 10위권을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삼국 통합 리그에서 검증된 젊은 선수들을 상대적으로 쉽게 유럽에 내보내고 세계 탑클래스 수준에서 경쟁하는 것만이 전반적으로 국가대표의 수준까지 향상시킬 것이 아닐까.

 

삼성이나 현대기아, SK(도무지 예측은 안되지만) 등이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 리그의 2~4부 리그의 구단을 주목해 보길 기대한다.

 

올해 초에 축구 십년대계를 한번 써볼 요량이었다가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이거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는 것은 아닌지, 된통 혼이나 나는 것은 아닌지, 밥 먹고 할 일 없는 한가한 소리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뭐 축구 행정가들이 워낙 똑똑하고 경험이 많으니 잘 하리라 본다. 무조건 잘 해야 한다. 정치판과 경제 상황 때문에 심신이 피곤한 요즘 축구라도 미래 지향적이라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후에 축구만이라도 강국이 됐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면에서 선진 강국이 되면 더욱 좋은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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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NRwL 2009.02.17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간중간 읽었는데...공감합니다. 국내서 아무리 잘해봐야 날고기는 유럽리그애덜이랑 한번부딪쳐보면서 또다른 감각을 익혀야 축국선진국이 될수 있을듯하네요. 박지성 EPL서 보통급으로 뛰지만 아시아 다른국대팀으로 뛰는거 보면...거의 갖고 놀잖아요. 골도 잘넣고 ..ㅋㅋ..

  2. Favicon of http://jwchoi.egloos.com BlogIcon 98짱진우 2009.02.18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장에 3개 리그를 통합하기는 많은 제약사항이 있겠죠
    그래도 컵대회 한개 정도는 추진해볼 수 있을텐데요
    오늘 조원희 선수가 위건 입단을 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떴던데
    아무튼, 해외에 있는 모든 한국 선수들 그리고 K리그를 이끄는 선수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3. thothdk 2009.02.18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리그의 수준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면 J리그나 중국리그나 굳이 K리그같이 작은 시장하고 결합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나라 만큼 국대에 목을 매지 않는 이상 자기네들 리그만 열심히 키워도 충분하다고 생각할테니까요. 일단, J리그는 이미 그 자체로 유럽 정도의 탄탄한 운영체계와 팬층이 확보되었고 시장도 커서 굳이 자기네들이 손해볼 장사를 할 필요가 없죠. 유소년 지원도 활발해서 지금보다는 차세대 선수들이 기대되는 부분도 있구요. (미우라가 유학 1세대) 게다가 일본은 국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어서 J리그 시청률과 입장객수가 계속 증가세인 반면에 국대 경기는 관람객도 줄어들고 심지어 최근에는 공중파 중계조차 못했다고 하더군요. 중국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시장 규모나 잠재력을 볼 때 자기네들 중심으로 재편을 하면 했지, 3국 리그에 참여할만한 시장성이나 축구 수준의 매력을 전혀 못 느낄 것 같구요.
    확실히 국내에 축구 저변도 넓어지고 여기저기 인프라도 많아지고 있긴 한데, 한국 축구가 잘 되려면 무엇보다도 K리그의 마인드가, 축협의 마인드가 좀 바뀌어야 될텐데 지금 같아서는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4. Favicon of http://asdasdasd BlogIcon asdasd 2009.08.12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말이 안되죠 ㅋㅋ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도전이라 봅니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필요한건
    이런 시장규모보다는 축구를 사랑하는 서포터즈나 팬들이 받쳐주어야 되지안을까요? 일본을 보세요 따른나라를 보세요 우리나라처럼 특히나 대구fc처럼 5만명이넘는 수용인데 1만명도 안되고 100명도 될까말까한 사람들이 잇는데 비록 서울이나 수원 수도권 지역은 만치만 전체적으로 확대가 되어야 차츰 발전될수잇다 생각됩니다 이런건 나라 정부의 힘보다는 국민들의 힘이 큽니다 예를들어 야구 보세요 저희나라의 야구는 인기가 참만아졋죠? 베이징 올림픽이후 경기장이 꽉찹니다 그런분위기여야지 사람들도 많이오고 흥분하며 도가니를 느끼죠 그러기떄문에 대한민국이 야구2위라는자리를 얻게되엇습니다 ...




5만원 고액권 지폐가 올해 상반기에 유통될 전망이다. 10만원권은 발행이 보류됐다고 한다. 도안이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인데, 혹시라도 좌우의 정치적 편향과 관련된 문제라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이니 잠시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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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한국은행)

지금의 고액권 발행 계획 당시에도 느낀 점이긴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중국 실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20위엔이나 2위엔 지폐처럼 2천원권이나 2만원권을 발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던 것이다.

중국 출장을 갔을 때에도 그랬지만, 2007년 6개월 동안 중국을 취재여행하면서 중국의 인민폐, 그중에서도 우리와 색다르게 2위엔(元), 20위엔 지폐의 씀씀이가 꽤 편리했던 기억이 난다. 왜 우리에게는 2백원, 2천원, 2만원의 '개념'이 없을까.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물론 동전도 있다) 중에는 20위엔, 2위엔, 2쟈오(角)가 있다. 각각 1/10의 가치이다. 이 지폐들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실생활 거래에서 참 요긴하고도 편리했다.
 
1만원과 5만원 사이에 2만원이 있다면(또한, 1천원과 5천원 사이에 2천원이 있다면) 지폐 발행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 지도 모른다. 1만원과 2만원을 각각 사용하려면 지폐 한 장이면 된다. 3만원과 4만원은 모두 두 장이면 될 것이다. 5만원 한 장, 6만원과 7만원은 두 장, 8만원과 9만원도 기껏해야 세 장으로 해결될 수 있다. 2만원권이 없으면 4만원과 9만원은 모두 네 장을 지갑에 넣고 다녀야 한다.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순히 지폐 한두 장이 유통에서 줄어드는 것외에도 '2'의 지폐가 있으면 유리한 점도 많다. 중국사람들은 돈을 유통할 때 2위엔이나 20위엔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하고 있다. 그 사용 실례를 한번 보자.

10위엔 20위엔 1위엔 2위엔이 각각 한 장씩 모두 33위엔이 수중에 있다고 해보자. 이때 시장에 가서 1근에 7위엔 하는 과일을 샀다면 10위엔을 내고 거스름돈으로 1위엔과 2위엔 한 장씩 3위엔을 받게 된다. 그런데, 10위엔과 2위엔 두 장을 한꺼번에 주고 5위엔을 거슬러 받는다. 즉 12위엔을 주고 7위엔을 빼고 5위엔 한 장을 받는 것이다.

이제 20위엔, 1위엔과 5위엔이 남았다. 이번에는 야채를 12위엔 어치 사고 20위엔을 주면 주인이 5위엔, 2위엔, 1위엔 짜리 세 장을 거슬러 주면서 툭 던질 것이다. 중국에서는 돈을 던지는 경우가 많은데 곧바로 1위엔과 5위엔 지폐를 같이 던져주면 바로 주인이 10위엔과 2위엔을 되돌려준다. 이 과정이 거의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행동이고 약속인 듯하다. 그래서, 수중에는 10위엔 한 장과 2위엔 두 장 모두 14위엔이 남았다.

이런 방식의 돈거래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 꼭 2위엔이나 20위엔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사람들은 우리가 10진법으로 빼는데에만 익숙한 데 비해, '2'를 기준으로 더하고 빼는데 모두 아주 능수능란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처음에 중국에 간 한국사람들이 이런 더하기 빼기에 익숙하지 않아 쓸데없이 상인들과 다투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돈을 던져서 주고받는 것에 자존심까지 상해 서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실, 중국사람들에게는 돈을 던지는 행위가 무례(우리가 보기에는 무례하다고 당연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액수가 정확하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속이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또한, 물건을 빠르게 팔아야 하는 중국 상인들 입장에서 손님이 거스름돈을 받으러 오거나 하는 시간도 아까운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앞의 예가 다소 작위적이긴 해도 2위엔이 있고 없고에 따라 돈의 흐름이 아주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사고 파는 회전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아마 이렇듯 더하고 난 후 거슬러 받는 형식이 아니라면 주머니에 온통 1위엔짜리 열네 장이 수두룩 할 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의 셈이 매우 빠르고도 정확한 것에 자주 놀라는데 아마도 그 이유가 이 2위엔짜리에 숨어있는 오랜 습성, 어릴 때부터 '2'를 고려한 셈 계산 비법이 아닐까 하고 상상한 적이 많다.

2위엔 두 장과 1위엔 네 장은 엄연히 다르다. 8위엔이 10위엔에서 1위엔 두 장을 빼는 것과 2위엔 한 장을 뺀다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이며 4위엔이 5위엔에서 1위엔을 뺀다는 것과 6위엔에서 2위엔을 뺀다는 것과도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답은 같지만 푸는 과정이 다른 수학문제처럼 말이다.

장황하게 숫자 이야기를 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만들기 보다는 같은 값이면 2만원권과 2천원권도 만들면 좋겠다. 5만원권의 유통은 소비를 촉진해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과소비를 조장하는 물건이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 음식점을 비롯해 수퍼마켓 등에서 몇천원도 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판국에 사실 2만원권도 그 실제 활용이 어떤 화폐정책의 철학이나 경제운용의 고려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물며 5만원권 지폐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공연한 부담만 줄 지도 모른다.

기왕에 5만원권이 10만원 자기앞수표를 대신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하는데(실제로 그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10만원권 발행계획을 굳이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니 대신에 2만원권과 2천원권 발행을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늘 담배 한갑 달라고 하면서 5천원과 5백원 동전을 줬다. 3천원을 거슬러준다. 낯설어 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가끔 있다. 이렇게 하면 주머니도 가벼워지고 동전도 사라진다.

주머니 속에 5만원 지폐를 수두룩 지니고 다니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은 아닐 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의 '부유한' 정책들에 반감(고액권 발행계획은 이미 오래전 수립된 것으로 현 정부와는 무관)이 드는 요즈음 5만원권 발행 및 유통 예정 소식을 듣고 2만원권이나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액권 지폐가 유통된다고 하니 심통인 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의 빠른 셈놀림이 오랫동안 부러웠던 것인 지도 모른다. '2'의 지폐가 있으면 실 생활에서 아주 편리할 뿐 아니라 더하고 빼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효율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차라리 2만원권(2천원권과 함께)을 발행하자!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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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9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러면 전부터 200원 동전과 지폐 2000원권이 나왔어야 했을것 같음... 화폐체계가 이상해질것 같은데..

    • Favicon of https://youyue.co.kr BlogIcon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9.01.29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중국도 뭐 제가 알기론 20위엔이 먼저 발행되고 나중에 2위엔이 나온 듯합니다. 2만원권을 발행해 사용해보고 그 효과나 기능이 좋으면 본격적으로 2천원권을 발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_^

  2. Favicon of http://hitme.kr BlogIcon 최면 2009.01.29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감합니다 ㅎㅎ 저도 중국에서 살면서 2, 20 짜리 잘 사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중국에 처음가서 한국사람이 더하기 빼기를 잘 못한다는건.. 一의 발음 문제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늦게 온 후배들 보면.. 一块라고 하는데;; 이로 들어서.. 2위엔을 주질 않나.. 그러곤 눈뜨고 사기당하는거죠 뭐 ㅎㅎ 잘 봤습니다~

  3. 김경미 2009.01.30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음...2만원짜리 지폐발행도 좋지만...일본의 2천엔 지폐 꼴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일본도
    우리나라처럼 1천엔, 5천엔, 1만엔 등 3권종 체계인데...덜컥 2천엔짜리 지폐를 발행했더니...
    완전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우리나라도 200원짜리 동전, 2천원짜리 지폐를
    사용하지 않은만큼 만약 2만원 지폐가 나온다면 사용에 불편을 겪을지도...중국은 이미 익숙해
    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뭐...미국의 2달러 지폐처럼 행운을 부르는 지폐라고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youyue.co.kr BlogIcon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2009.02.02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의 경우는 그렇군요.
      하여간, 중국을 잘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유용성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아무래도 사회적으로 합의를 갖기에 그렇게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중국문화전문가로서 중국의 상행위 등에서 유익한 2의 지폐 문화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4. 1 2 5화폐체계 2017.01.01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진국 따라가는거 좋아하는 놈들이
    효율적인 화폐제도 2단위는 왜 안만드노
    선진국 화폐단위봐라 전부 1 2 5체계다
    1 5체계는 우리랑 일본인데
    일본도 2000엔짜리 있으니 우리만 남았다




<2008년 해외뉴스 TOP10> '내가 뽑은 올해 최고의 뉴스'를 뽑고 있는 네이버 온라인조사를 보니 상위권에 '중국'이 많이도 들어가 있다. 그만큼 올해 중국은 세계인들에게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현재 진행중인 조사이긴 하지만, 순위가 바뀌거나 말거나, 내가 생각한 <중국 뉴스 베스트>가 오롯이 다 들어가 있으니 한해가 저무는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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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쓰촨성 대지진 참사 8만여명 사망·실종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해외 전문가들의 지적과 우려처럼 장강(长江)을 막고 거대한 싼샤다바(三峡大坝)를 건조한 여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티베트문제와 올림픽성화봉송으로 전 세계가 중국을 매몰차게 공격하던 시점에 터져나온 참사라는 생각보다 더 우리를 안타깝게 한 것은 지진에 대처한 13억 중국인들의 결집력이었다.

중국사람들은 자주 우리나라가 IMF 시절, 금모으기 운동으로 혼연일체가 된 것, 특히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에 놀란다는 말을 간혹 들었는데, 그들도 쓰촨지진에 한마음으로, 어쩌면 이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중국의 티베트 등 다른 정치 외교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공적이 되는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시에 베이징을 방문한 이명박대통령이 예정에 없던(아마도 사전에 치밀한 사고와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됨) 쓰촨 행은 나름대로 이슈가 됐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그다지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건들이 벌어진 가운데 나타난, 다소 돌발적인 투어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가지 않은 것보다 낫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쓰촨 지진의 참사에는 늘 아픔이 있다. 그것은 일반서민들, 특히 쓰촨의 고원지대의 가난한 농민들이 겪는 이중고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특히 이번 재해는 중국정부의 개혁개방정책 30년 동안 빈부의 격차와 민족, 지역 갈등이 점점 더 격화되는 가운데에 있었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갈등은 전 국민들이 민족주의적인 혼연일체인 듯 보여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쓰촨 피해현장에는 자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본과 상품 경쟁으로 인한 불균등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분명 이런 점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다.

중국산 제품 '멜라민' 검출, 전세계 확산 

'멜라민'도 정말 강타 수준이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중국은 중국공산당과 인민해방군에 의한 중앙집권적 통치 및 통제가 너무 잘 되는 나라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됐다. 그토록 인민의 건강과 관련된 먹거리에 신경을 쓰고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는 나라도 없을 것인데도 '멜라민'은 세계 속에서 중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것도 아이들이 먹는 우유로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최고 사형' 우유회사 책임자는 중국의 왜곡된 정책의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개혁개방으로 만들어놓은 자본경쟁체제, 경쟁으로 알아서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놓고는 이런 엄청난 사태를 이제 어찌하란 말일까.

중국의 한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왜 가짜 담배를 만들지요?'에 대한 대답. '가짜 담배에는 가짜 독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듯이 돈을 버는 데는 그 어떤 명분도 잘 만들어내는 일부 지역 상인들의 모순적 행위가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최고 사형'이라는 법적 제재만으로 사회시스템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들은 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다. 중국의 우유제조 회사 중에 '멜라민' 검출이 안된 제품이 있다. 왜냐? 그것은 바로 그 우유가 중국 고위층들이 사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제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출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검출이 되면 안 되는 것인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베이징올림픽 개막

올림픽이 열렸다. 무사히. 개막 다음날 베이징의 구러우(鼓楼)에서 다행히(?) 미친 시민이 미국인에게 살해를 가해 일촉즉발이긴 했어도 큰 사건사고 없이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베이징 시내 곳곳을 휘돌아 다니면서 본 올림픽 현장은 참으로 안전했고 깨끗했고 친절했다. 그것은 '안전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은' 베이징에 대한, 중국에 관한 이미지, 스테레오타입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同一个世界 同一个梦想)'을 원했던 메시지는 올림픽 참가선수들이 메달을 따내기 위한 동상이몽이듯이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인가. 세계 속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선의의 경쟁인데, 왜 중국만 앞에 두면 꼭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거대한 중국에 대한 컴플렉스인가. 유럽대륙은 봉건시대를 거쳐 산업혁명시대 수십개의 민족국가로 정립됐다가 지금은 경제적 동기에 의한 유럽통합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중국은 기원전 진시황의 중앙집권적 통일과 통치 이후 끊임없이 영토의 외연 확대와 민족의 흡수통합의 원심력이 작용하는 것일까.

'하나의 세계' 속에 담긴 메시지가 단순히 올림픽의 구호만이 아니라, 잠재의식의 발로일지는 몰라도 세계는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배가 불러도 또 불러다 먹듯이, 엄청나게 커져 가는) 이제는 긴장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 : 베이징올림픽아웃사이드

티베트 '독립 시위' 유혈 충돌로 비화  

2008년 3월 중국 시장(西藏)의 라싸에서는 티베트 민족의 '독립' 항거가 발생했는데 베이징올림픽과 맞물려 세계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이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티베트의 천년전에는 칭하이와 간쑤, 쓰촨의 일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후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중국에 귀속됐고 지금까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자치주의 하나로 살아오고 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문화적 자립과 자치를 주장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국가 독립을 강력하게 염원하기도 한다. 더불어,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독립의지가 강한 신장(新疆) 위구르 민족의 비행기 하이제킹 테러 등도 이어지는 등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정부와 일대 전선이 형성되기도 했다.

사실, 중국 대륙은 변방으로 갈수록 엄청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는 등 중국정부 입장에서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것은 동북공정을 포함하는 중국의 변강(边疆)정책과 역사의 왜곡을 담은 신화(神话)공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티베트 문제는 단순히 달라이라마로 상징되는 피압박민족의 영웅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소수민족들의 자주독립에 대한 분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강경과 온건을 반복하겠지만, 언젠가는 이 문제로 인해 일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 이 아름다운 하늘을 두고 달라이 라마는 어디로 갔나
        허가증 없이 티베트의 발원지를 가다


12월 29일 신화사가 발표한 중국 국내 뉴스 베스트 10(발생 시간 순)도 참고하면 좋겠다.

          1. 1~2월에 중국 남부지방 일대에 폭설 등으로 교통과 운송 두절, 전력 마비 등 엄청난 피해
          2. 3월 초 베이징에서 전국 양회(인민대회와 정협대회)에서 국무원 등 새로운 조각
          3. 3월 14일 시장 라싸에서 달라이라마와 장청회(藏青会) 주도의 폭력 사태 발생
          4. 5월 12일 쓰촨 원촨(汶川)에서 8.0규모의 엄청난 특대지진(特大地震) 발생
          5. 8월 8일 제29회 베이징 올림픽(奥运会) 개최
          6. 9월 초 싼뤼(三鹿) 우유제품을 먹은 영아에게서 결석병(结石病) 발생
          7. 9월 25일 중국 최초로 3명으로 구성된 션저우7호(神舟七号) 우주 유영
          8.11월 초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타개책으로 내수진작을 위한 10대 조치(十大措施) 발표
          9.11월 초 중국대륙과 대만 사이에 3통(三通) 실현에 합의 (通商, 通航, 通郵)
        10.12월 18일 공산당 개혁개방 30주년 기념 대회 (1978年12月18日 十一届三中全会)

참고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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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저문다. 새해에는 중국과 관련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한중 관계에서도 부디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와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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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6일, 다음블로그 시절에 쓴 글이 하나 있었다. 독일이 선정한 중국 '최우수 블로그'에 빛나는 '칼라풀한 세상'의 '쥐꼬리풀'을 쓰고 한참이 흘렀다. 이 '쥐꼬리풀' 위엔샤오쥐엔(原晓娟)은 미식가이면서 요리 전문기자이면서 방송에도 출연하는 다재다능한 블로거이기도 했다.

중국 최우수 블로그에 빛나는 <칼라풀한 세상>의 쥐꼬리풀 위엔샤오쥐엔

나는 그녀의 재능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위암에 걸렸음에도 불굴의 의지로 투병하면서 그 생생한 이야기를 병상일기를 통해 많은 네티즌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그녀의 블로그 글들을 밤새 가며 다 읽었고, 이메일을 보내 회신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지난 11월, 베이징에 갔을 때 문득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블로그를 찾았고, 최근 글들부터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최근 생활을 알고 나면 그녀를 만났을 때 편하게 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말투나 내용이 사뭇 이전에 비해 달랐다. 그녀의 약칭인 쥐엔즈(娟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당황했는데 자세히 읽다보니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생활과 아들 캉캉(康康)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건강이 아주 호전됐으며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기 때문에 건강하게 잘 살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설마 설마 했는데 2007년 5월 7일자 글에서 그녀의 비문을 발견하고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짜릿해지는 것이 잠시 아노미 상태가 됐다.



그리고, 5월 4일에 올라온 글에는 '엄마 모시고 집으로 가자(回家,陪妈妈)'는 제목과 함께 아들 캉캉이 엄마의 묘비명을 잡고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정말 더이상 블로그의 글을 읽기가 힘들어졌다.


엄마의 영정을 들고 있는 모습의 아들 캉캉. 차마 더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

그리고, 한참 지나 최근에서야 다시 그녀의 블로그를 열 수 있었다.

"4월 18일 아침 9시반, 쥐엔즈가 우리를 떠났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줄곧 아무런 고통도 없이 잠을 자고 있다. 어제 저녁 진정제를 놓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집에 가고 싶어'라고 했고 나는 '내일 꼭 데리고 집으로 갈게'라고 했다. 병이 난 이래 쥐엔즈는 주(主)를 믿었기에 그녀가 아주 사랑을 받게 됐으리라 생각한다. 주께서 일찌기 그녀를 천당으로 데려갔으니 말이다. 쥐엔즈가 갔다. 그녀는 이미 해탈했다."  

4月18日早晨9点半,娟子离开了我们,昨天晚上到现,她一直在睡,没有痛苦,昨天晚上打镇静剂前,我拉了她的手,她说:“我要回家”,我说,“明天我一定带你回家。”生病以来,娟子信了主,我想她是太让喜爱,主早早地让她回到天堂。
娟子走了,她就解脱了.

그녀의 남편이 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둘이 처음 만나게 된 때부터 시작되는 사랑과 존경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니 왜 이들이 하늘과 땅에서 서로 마음을 잇듯이 계속 블로그를 이어가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 9월 쥐엔즈가 18살일 때, 인민대학 입학식 행사에서 처음 만난 시절부터 '워먼(我们)' 시리즈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까지의 애뜻한 느낌과 사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남편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증을 비롯해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과 함께 모두 16편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보면 짧지만 깊이 사랑했던 쥐엔즈의 삶이 소복하게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 관한 블로그 글을 쓰고 나서 불과 6개월 만에 그녀가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참 인생이란 뜻밖인가. 그녀의 블로그를 소개한 것이 우연한 일이었지만 아마도 그 어떤 인연으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만나게 됐는데, 이것도 엄청난 인연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남편의 소망과 믿음처럼 고통이 없는 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까. 지금 이 시간 이 글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늦게나마 그녀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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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itme.tistory.com BlogIcon 최면 2008.12.16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가버렸군요.. 아휴.. 눈물나네.. 저도 몇 번 들려봤던 블로그였는데 ㅠ.ㅜ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 남은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겠죠?

  2.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12.16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가 이런 인연들도 만들어주는군요..
    예전 같으면 몰랐을 사람들도 이제는 이렇게 가슴 한켠을 하련하게 만드는 사이가 될 수 있다니.
    그저 놀랍고 놀라울 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Favicon of http://www.daum.net BlogIcon old kid 2008.12.16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남은 가족들이라도 이땅에서 최선 다하며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