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가을엔 여행을 떠나요

 

인천에서 직항으로 3시간 20, 장사(长沙)에 도착 후 약 5시간을 달리면 장가계(张家界). 이동이 멀어도 수없이 많이 찾는다. 중국에서도 최고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최초의 국가삼림공원이 된 장가계 외에도 보봉호와 황룡동, 천문산 등이 모두 절경이다. ‘역대 최고 흥행이라는 찬사에 빛나는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장가계. 전 세계 관광객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단풍으로 물든 가을이 오면 느닷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이미 장가계로 푹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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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 지방 무대극 변검


사실 변검은 쓰촨(四川, 사천) 지방 무대극이다. 비옥한 땅 천부지국天府之이 바로 쓰촨이다. 정통 변검과 천극川을 보려고 촉나라 수도 청두成都로 간다. 4시간이나 걸리긴 해도 직항이 있다. 유비 사당과 가까운 3km북쪽에 천극 전문무대인 촉풍아운蜀을 찾는다. 쓰촨의 개성 강한 무대가 매일 열린다. 흥미진진한 변검은 언제나 마지막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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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古城), 말만 들어도 흥분된다. 중국문화를 즐겨 찾아 애지중지취재해 알리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지 13년이다. 고성에는 역사와 문화, 서민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공존하는 그리운고향 같다. 중국에 갈 때마다 고성이 부근에 있으면 반드시 찾는다. 꼭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번 다시 찾기도 한다. ‘엄마의 품인 양 기분 좋은 공간이다.

 

중국의 고성은 셀 수 없이 많다. 발을 밟아본 곳만도 30여 군데가 되고 가보고 싶은 데도 아직 그만큼 더 많다. 일일이 다 보여주고 싶지만 4대 고성만으로도 중국여행의 묘미를 맛볼 만 하다. 기나긴 역사와 풍부한 전통의 중국에서 ‘4대 고성의 위상이라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끈끈한 비교우위가 있다.

 

핑야오(), 후이저우(徽州), 리장(), 랑중(阆中)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설명해야 좋겠지만 서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산시(山西), 안후이(安徽), 윈난(云南), 쓰촨(四川)으로 흩어진다. 중국여행에 낯선 사람에게는 오리무중이다. 지도를 찾아 성까지만 찾아보라. 굳이 지도를 샅샅이 훑지 않아도 된다.


산시의 낭만 핑야오고성



핑야오는 2006년 처음 간 이후에도 3번 더 찾았다. 2,700년의 역사를 품은 고성이다. 무엇보다 중국 최초의 은행일승창(日升昌)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염직으로 돈을 벌어 전국적으로 30여 곳에 은행지점을 갖춘 대부로 성장한 진상(晋商) 이대전(李大全)이 주인이다. 입구는 은행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저택이다.

 

청나라 시대 전국을 주름잡던 상인집단을 진상이라 한다. 은행은 표호()라 부른다. 전국 유통을 하게 되면서 호위무사이자 운송집단으로 표국()이 함께 성장하는데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고성 곳곳에 있는 표호와 표국은 사무공간이자 주거공간, 훈련장이기도 하다. 고성 안을 모두 둘러보는 표를 사서 이틀을 봐도 다 보기 힘들 정도다.

 

고성은 대체로 군대와 행정기관이 위치했으며 서민이 살았고 지금도 거주한다. 현아(县衙)와 함께 사당이 함께 자리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교사당인 성황묘(城隍)와 공자사당인 문묘()를 함께 볼 수 있다. 종횡으로 뻗은 거리와 72개나 되는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한가로이 두루 돌아다녀도 좋다.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조명과 함께 드러나는 누각이 인상적이다. 표호를 개조한 객잔에서 하루 묵어도 좋다.

 

휘주문화의 보고 후이저우고성



진상과 함께 양대 상방인 휘상(徽商중심지는 후이저우고성이다. 2011년과 2016년 두 번 다녀왔는데 후이저우 문화답사와 황산을 보기 위해 자주 다닐 예정이다지명을 따서 서센()고성이라고도 부른다. 5년 만에 찾았더니 새롭게 단장한 부아(府衙)가 너무 깔끔해 오히려 아쉽다시간이 흐르면 옛날 분위기에 맞게 다시 어울릴 것이다.


고성의 상징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허국석방(许国石坊)이다. 명나라 시대인 16세기 국자감 제주(祭酒)와 예부상서, 대학사(学士)를 역임한 허국의 금의환향을 기념해 세웠다. 보기 드문 팔각패루(八脚牌)의 형태로 건축됐으니 343(间四柱三楼)가 앞뒤로 쌍을 이룬 모습이다. 문인의 품격과 자부심을 잘 담은 외형도 웅장하지만, 목조인지 착각할 정도로 문양이나 제자의 구현은 8등신 미녀처럼 유연하다. 용과 봉황, 물고기와 기린, 구슬과 모란, 학과 구름의 조화와 상징은 부드러움을 넘어 신묘하다. 세밀한 조소가 드러낸 은유의 미학을 보노라면 심호흡에 이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서민들이 함께 호흡하며 사는 고성이다. 휘상의 고택이 남아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 여행이 가져다 주는 공감과 만나게 된다. 두산가(斗山街)를 들어서면 집집마다 석조예술을 자랑하고 있어 눈 돌릴 찰나도 없다. 공동체의 상징인 우물과 패방도 인상적인 거리다. 그 옛날 휘상이 바쁘게 지나다니던 시절의 추억이 파노라마를 그린 듯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빛이 바랜 대문 위에는 귀신을 쫓는 거울이 걸렸고 건물 벽에는 문화대혁명 시대의 붉은 페인트가 여전하다.


옥룡설산의 나시족 리장고성



이제 리장고성으로 가보자. 처음 찾은 2007년 이후 다섯 번이나 다녀왔으니 인연이 꽤 깊다. 최근에는 문화여행 인솔로 1년에 한 번은 간다. 해발 5,596m의 옥룡설산(龙雪山) 정기를 이어받은 나시족(纳西族) 문화의 보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판타지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하는 야경 앞에 서면 누구나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뇌리를 잡는다. 날이 저물면 서서히 산자락부터 온 동네를 밝히는 조명은 낭만적인 연출이자 추억의 꽃이다. 그래서 혼자 왔다가 둘이 손잡고 나간다.’고 했던가?

 

사자산(狮子山) 중턱의 만고루(万古) 주변의 찻집에 앉아 고성을 내려다보면 만사를 잊는다. 상형처럼 직관적이면서도 친근한 동파문화(东巴文化)는 캐릭터이자 징표이고 예술이다. 벽화, 불경, 무용, 음악, 글자, 회화에 골고루 새긴 나시족 문자는 리장 최고의 자랑이다.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사통팔달이지만 골목과 도랑을 따라 마냥 걸어도 좋다. 마을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 만에 어림도 없다.

 

리장에 가면 꼭 봐야 하는 공연인 인상리장(印象丽江)”이 있다. 설산을 배경으로 세계 최고의 높이 해발 3,100m에서 열리는 무대극이다. 붉은 토양과도 같은 무대와 구름과 하늘 그리고 설산은 소수민족 현지인의 헌신적인 연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천지를 진동시키고 심금을 울린다. 장이머우(张艺谋) 사단의 인상시리즈연출은 계림산수’, ‘항주서호를 비롯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핑야오의 인상무대극은 그들의 8번째 작품이다.


삼국지 장비의 영혼 랑중고성


 

랑중고성은 2016 5월에서야 인연을 맺었다. 2010중국 춘절의 고향이라고 발표했는데 삼국지의 영웅 장비(张飞)가 우리에게는 더 유명하지 않을까? 조조의 부하 장합이 군대를 이끌고 오자 랑중을 지키게 됐지만 결국 애주가 장비는 부하에게 살해된다. 민간에서는 장비를 도살의 창시자로 숭상하는데 랑중에는 장페이뉴러우(张飞牛肉)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장비의 소고기와 함께 만든 국수 한 그릇 먹지 않으면 후회한다.

 

다른 고성처럼 관청이나 유불선의 사당도 있지만 장비묘 한환후사(汉桓侯祠)가 핵심이다. 환후는 사후 받은 시호다. 장비는 부하들이 목을 베 강물에 버렸기에 몸만 남았다. 장비 사당은 모두 세 곳인데 랑중에는 몸이, 장강 도시 윈양()에는 목이, 고향 줘루(涿鹿)에는 영혼이 봉공되고 있다사당에는 장비를 죽인 장달(张达)과 범강(范疆)이 무릎 꿇고 있는 처량한 모습은 교훈적이다. 배신은 이렇게 영원히 사죄의 엄벌을 받게 된다.

 

고성 남쪽을 흐르는 강 건너편 난진관고진(南津关古镇)에는 매일 밤랑원선경(阆苑仙境)”이라는 공연이 열린다. 랑원은 신선이 거처하는 곳, 정말 선녀처럼 예쁜 아가씨들과 듬직한 총각들이 많이 출연한다. 공연의 특징은 무대와 관객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삼국지, 풍수사상, 과거문화, 먹거리, 비단 직조, 부두 생활 등이 장소가 바뀌면서 계속 이어진다. 관객도 언덕을 내려가면서 시작부터 잠시도 시선을 놓치지 말고 순식간에 바뀌는 무대에 집중해야 한다.

 

4대 고성을 차례로 소개하고 나니 다시 배낭을 꾸리고 싶어진다. 고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비행기를 타고 싶다. 아쉽게도 4곳은 모두 수천km 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도 시공을 완전히 달리한다. 직항 기준으로 핑야오는 베이징, 후이저우는 상하이, 리장은 쿤밍, 랑중은 충칭으로 가면 된다.

 

벌써 7년 가까이 78일 기준의 중국문화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어디 지방을 가도 고성은 근처에 있기에 반드시 하룻밤 묵는다. 온종일 설명하고 나면 입이 부르트고 다리도 아프지만, 그날 밤이 가장 보람 있다. 고성에 담긴 역사와 문화에는 낭만과 추억이 봄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살포시 스며들기 때문이다.

 

최종명, 작가 및 중국문화여행 동행 www.youyue.co.kr

「꿈꾸는 여행, 차이나」 「13억 인과의 대화」 「민,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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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7) – 궁부장다 지나 민가 체험 그리고 라싸 도착

 

바야흐로 티베트 수도 라싸()가 코 앞이다. 400km, 이제 오체투지로 가도 금방일 것 같다. 다시 아침부터 달린다. 차창 밖 니양허(尼洋河)도 유유히 흐른다. 하늘이 좀 묘하다. 구름은 운무로 변해 산 아래를 휘감고 자리를 비운 하늘은 새파랗다. 8월 한여름 아침에도 긴 팔을 둘러야 하니 고도가 높긴 하다. 이제 티베트 차마고도를 달리는 일은 일상처럼 편안하다. 길도 더는 공사 중이 아니다.

 

Mp-07-01 니양허와 하늘, 구름

 

휴게소 표지를 슬쩍 보이더니 차가 멈춘다. 그런데 웅성웅성 시끄러운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궁부장다(工布江) 휴게소로 들어가는 길옆으로 10여 대의 차가 줄줄이 섰다. 경찰이 모두 세운 것이다. ‘통로 공사 중 진입금지 벌금 100위안인데 들어선 것이다. 팻말을 모든 차량이 통로로 들어선 후에 세운 것이 문제였다. 함정수사인지 모른다는 의심은 아무리 티베트이라도 그냥 넘어가긴 힘들다. 우리보다 경찰에게 고분고분한 중국사람들도 실랑이를 벌이니 도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Mp-07-02 공사 중인 휴게소 진입로에서 벌어진 사건

 

30분여 분만에 상황은 종결됐다. 모든 차량이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항복했으니 예상보다 빨랐다. CCTV, 블랙박스 다 동원해 증거 들이밀면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귀찮다. 벌금 100위안도 현지 경찰서에 가서 직접 내야 한다. 대부분 외지인이었는데, ‘억울을 빌어 항의한 이유는 시간때문이다. 아름다운 티베트 하늘을 달리고 있으니 정말 재수 옴 붙은 날’. 벌금 내고 오는데 다시 1시간, 라싸로 가는 길이 지체됐다.

 

Mp-07-03 라싸 가는 길에 본 태소고성 표지

 

도로 옆에 태소고성(太昭古城) 표지가 보인다. 청나라 말기 번성했던 상업과 교통의 요지였다. 티베트와 교역을 하기 위한 점포가 빽빽이 늘어서 차마고도를 따라온 푸얼차(洱茶)도 진열됐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거리도 생기고 등촉 타는 향기 가득한 사원도 세우게 된다. 벌금만 내지 않았더라면 다리를 건너 구경하자고 우기고 싶다. 구름이 사라지고 다시 하늘은 본디 모습으로 돌아온다. 구름 반, 하늘 반이 딱 좋다.

 

점심시간이다. 정확하게 1 30. 벌금이 날려버린 시간만큼 에누리 없다. 국도 옆 자그마한 동네 이름이 쑹둬일촌(松多一村)이다. 소나무와 아무 상관 없다. 티베트 말로 무슨 뜻인지도 궁금하지 않으니 식후경이나 해야겠다. 메뉴에 눈에 쏙 들어오는 게 나타난다. 바로 페이창펀(肠粉)이다. ‘페이창대단히강조나 비하할 때 쓰는 페이창(非常)’과 성조만 다르다. 보통 은 가루를 원료로 만든 국수다. 고구마 분말로 만든 국수에 돼지 내장으로 우려낸 육수가 합쳐져 맛이 페이창하오(非常好)’.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얼큰하고 시원하다.

 

Mp-07-04 ‘페이창하오인 페이창펀

 

1시간을 달려 미라산(米拉山) 고개에 이른다. 가파르게 오른다 싶더니 해발 5,013m. 여전히 숨이 가쁘다. 잊었던 심장도 박동을 시작하고 머리도 아프다. 블랙야크 조각상 옆에는 야크 뿔을 판다. 야크 목에 걸린 카딱()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려도 마냥 즐거운 인증이다. 고원을 바라보며 앉은 개는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가? 벌판으로 뛰어내려 달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차마고도 마방처럼 숨 가쁘게 달리지 않고 고원을 바라보며 늘 파란 하늘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고 싶어진다.

 

Mp-07-05 미라산 고개의 블랙야크


Mp-07-06 미라산 고개에서 초원을 바라보는 개

 

해발 4,000m에 자리잡 은 르둬샹(日多) 마을에 온천지질공원이 있다. 일찍이 8세기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로 숭상되는 연화생대사(莲花生大师)가 르둬온천을 찾아 죄얼(罪孽)을 씻어내고 영혼(灵魂)을 정화해 자선과 관용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니 공덕을 쌓게 된다.’고 불경에 기록했다. ‘백병(百病)’을 치유한다고 예언처럼 노래하기도 했다. 1,300여 년 전 조사()의 말씀 덕분인지 보물로 여긴다.

 

산천초목이 온통 약초인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이 어찌 보배가 아닐런가? 설산에서 흘러 깊게 가라앉았다가 끓어오른 물의 온도가 최고 83도나 된다. 겨울이면 더더욱 추운 고원에서 온천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천길 낭떠러지를 넘어온 마방에게도 신의 가호가 아니었을까? 수질도 청량하지만, 성분도 의료온천으로서 가치가 있다. 2002년 국토자원부에서 국제의료온천표준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말 온천호텔에서 하루 푹 몸 담그고 싶다.

 

Mp-07-07 보물 같은 르둬온천

 

르둬샹을 조금 지나 국도 옆 티베트 민가로 들어간다. 사람 사는 일이 모두 비슷하겠지만 티베트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 이목구비가 반듯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손님에게 우선 쑤여우차(酥油茶)를 따라준다. 청보리인 칭커 가루로 수분을 묻힌 참파(糌粑)와 함께 주식으로 마시는 음료다. 야크로부터 얻은 버터인 쑤여우는 지방질만 풍부해 비타민이 많은 푸얼차와 소금을 넣고 흔들어 섞어주면 맛있는 차가 되는 것이다. 대나무 통에 골고루 넣고 긴 작대기로 휘휘 젖는다. 고원지대에서 얻기 힘든 차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렸던 보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5배 이상의 이문이 남는 장사이긴 했다.

 

Mp-07-08 티베트 민가에서 마신 쑤여우차


Mp-07-09 쑤여우차 마시는 티베트 민가의 어머니

 

티베트 사람에게는 차와 소금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쑤여우차에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온다. 옛날 옛적에 A촌락의 토사(土司) 아들 원둔바(顿巴)B촌락의 토사 딸 메이메이춰(美梅措)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두 마을은 오랫동안 원수 집안이었으니 문제였다. 결국, 딸의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원둔바를 살해했다. 원둔바의 장례가 화장으로 치러지는 때 메이메이춰는 불길로 뛰어들어 순정(殉情)하고 말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둘이 죽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중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사랑의 힘이 놀랍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결말이 좀 신비하다. 중국 4대 전설인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는 결국 한 쌍의 나비로 승화한다. 티베트는 훨씬 강렬한 감동이 있다. 산화한 처녀는 차나무의 찻잎이 된다. 먼저 죽은 총각은 염호의 소금으로 환생한다. 티베트 사람들이 매일 쑤여우차를 만들 때마다 서로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나비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 아닌가? 천추에 길이 빛날 영수불후(永垂不朽)라 할만하다.

 

Mp-07-09 티베트 민가의 어머니와 아들의 목완


Mp-07-10 티베트 민가체험 중 만난 소녀의 미소

 

쑤여우차는 버터 향 짙은 미숫가루 같다. 하루에도 50잔 이상 마시는 게 보통이다. 티베트 사람은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틈만 나면 마시기에 잔도 늘 들고 다닌다. 두루마기에 모시고 다니며 한평생 사용하는데 대부분 목완(木碗)을 사용한다. 나무 사발은 신랑을 만나 종신계약에 사인하는 신부와도 같다. 그래서 재미난 민가도 있다.

 

연인과 함께 하니 부끄럽고             带着情人吧害羞,

연인과 헤어지려니 애타네              丢下情人吧心焦.

연인이 목완과도 같다면                  情人如若是木碗,

가슴에 품어야 더 좋으리라             藏在怀里该多好.

 

Mp-07-11 티베트 민가체험 중 찾아온 친척과 동네사람

 

어머니와 아들은 평생 친구인 목완을 꺼내 쑤여우차를 마신다. 손님이 오면 함께 마시는 게 예의이자 풍습이다. 바깥에는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찻잎이 된 처녀와 소금이 된 총각을 떠올리며 모두 차를 마신다. 수 천km를 달려온 푸얼차와 소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사람들이다. 전설로라도 오래 잊지 말자는 인지상정이다. 사람 냄새 나는 시간을 보내고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행정구역으로 라싸 시에 속한 모주궁카(墨竹工卡)를 지난다. ‘먹으로 그린 대나무용왕 거주지라는 복합적인 뜻인데 연상도 어렵고 이해도 불가! 국도에서 5km 남쪽에 자마샹(玛乡)이 있다. 서기 617년 티베트 왕 쑹첸캄포(赞干布)가 태어난 곳으로 자그마한 왕궁(王宫)도 있다.

 

Mp-07-12 라싸로 가는 길의 모주궁카 부근 들판

 

외아들인 쑹첸캄포는 부유한 환경에서 후계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을 드러냈으며 도덕적으로도 완벽했다. 12세에 아버지 남리쑹첸(朗日松赞)이 살해당하고 귀족과 결탁한 주변 왕국의 협공으로 위기를 맞지만 왕위에 오른 후 타고난 지혜와 통솔력으로 사태를 진정시킨다. 곧바로 군사력을 결집해 인근 왕국을 평정하고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다. 알룽창포(鲁藏布) 강을 건너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져 있고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춘 라싸로 천도한다.

 

Mp-07-13 라싸로 가는 길의 라싸허

 

티베트 고원의 왕국 숨파(苏毗)와 샹숭(象雄)을 복속해 청장고원(青藏高原)을 통일한다. 네팔의 앞선 문명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와도 화친 결혼을 통한 외교정책을 펼친다. 청해성과 감숙성 일대의 선비족 토욕혼(吐谷)과 강족 일파인 탕구트()까지 복속해 굳건한 제국을 건설하지만 안타깝게도 서기 650, 33대 티베트 왕이자 최초의 제왕은 34살로 요절한다.

 

Mp-07-14 라싸로 가는 길의 다체 부근


Mp-07-15 라싸로 가는 길의 다체2호터널

 

이제 봉건시대 티베트 최고의 제왕을 따라 라싸로 들어간다. 미라산을 넘어서부터 라싸까지는 라싸허(拉萨河)가 계속 따라온다. 하늘은 강물에 투영돼 밝게 빛나고 있다. 라싸의 동대문인 다체(达孜)를 지나니 터널 3개가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산 너머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구름도 숨을 곳을 찾는다 싶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조금 지나니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햇볕이 보기에도 따갑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풍광이 새롭다. 여전히 터널 속인가 싶을 정도로 하늘이 까맣게 변한다. 하늘의 조화인가 환영 인사인가?

 

Mp-07-16 라싸로 가는 길의 변화무쌍한 하늘

 

마지막 터널을 나오니 햇살도 보이고 먹구름도 보인다. 멀리서 봐도 비다. 라싸대교(萨大桥)를 건널 때는 날도 갠 상태다. 도무지 한눈을 팔기 어려운 변화무쌍이다. 갑자기 창밖에 펼쳐진 엄청난 환영(幻影)’에 차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무지개다! 쌍무지개!!”

 

누군가 외쳤다. 이 화려한 환영(欢迎)’을 위해 그다지도 오랫동안 오락가락 천변만화(千变万化)했단 말인가? 대기 중의 자연현상 무지개, ‘물이 펼쳐진 문이어서 무지개라 하던가? 중국어로 차이훙(彩虹)이라 한다. 쌍무지개는 그냥 솽훙(双虹). ‘주노초파남보, 빨주노초파남보떠올리다가 다채롭고 찬란한 색채빈분(色彩缤纷)을 연상한다. ‘빈분손님과의 연분(宾分)’()’로 묶여있는 꼴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손님과의 인연, 어찌 오색찬란하지 않을 소냐? 드디어 도착한 티베트 수도 라싸다. 쑤여우차에 들어온 찻잎과 소금이 된 듯 흥분된다.

 

Mp-07-17 라싸대교에서 만난 쌍무지개


관련 동영상 보시려면 http://youyue.co.kr/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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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6) – 고향, 루랑진, 거백림 지나 바이까지

 

며칠 내내 화창하더니 보미(波密)의 아침은 운무를 몰고 온다. 구름과 안개가 경쟁하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백조처럼 팔룽짱보(帕隆藏布) 강변으로 내려온 하얀 색감은 우아한 비상과 착지로 은근하게 날아다닌다. 도술을 부리듯 설산을 휘감고 돌기도 한다. 땅과 산을 직선으로 가르며 계속 따라오고 있다. 번뇌조차 조용히 침잠하는 아침, 새조차 소리를 잊은 듯 고요하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된 덕분에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다.

 

1시간 채 지나지 않아 고향() 마을에 도착한다. 보미 현의 직할 향이다. 우체국과 위생병원이 있는 건물 앞에 을 새긴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대도(国最美景观大道)’는 국도318번 도로다. 며칠 동안 지난 온 길이라 익숙하다. 보미를 티베트 말로는 보워()’라고 읽으라고 친절하게 적었다. 아름다운 길 위의 고향의 별명도 두루 적혀 있다. ‘빙하의 마을, 티베트 왕의 고향, 티베트의 스위스, 설원의 강남’.

 

Mp-06-01 운무 낀 보미의 아침


Mp-06-02 운무와 설산

 

수많은 빙하가 설산마다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곳이다.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빙하 마을이며 티베트 젖줄 얄룽짱보(鲁藏)의 남쪽이기도 하다. ‘고향의 강렬한 인상은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聂赤赞普)의 출생지가 풍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신(天神)의 아들로 하늘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온 네치찬보를 12명의 무사(巫師)는 수령으로 영접했다. 기원전 360년 전후에 발생한 역사는 곧 건국신화다. 씨족 중심의 부락을 연맹체를 발전시킨 고대국가 토번(吐蕃) 왕의 출현이다.

 

찬보는 용감무쌍한 사내라는 말로 정교합일의 법왕(法王)을 뜻한다. 원나라 말기에 편찬된 <왕통세계명감(统世系明鉴)>에 따르면 토번 왕조는 네치찬보 이후 26대를 이어왔다. 왕은 언제나 본교()를 통해 국정을 유지했다고도 전한다. 티베트의 원시 불교인 본교는 하늘과 땅, 지하 세계로 나누고 해와 달, 별이나 호수, 바람, 설산 등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법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신화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천장(天葬) 의식이야말로 지극히 티베트다운 일이 아닐는지.

 

Mp-06-03 최초의 티베트 왕 네치찬보의 고향

 

티베트 역사에서 토번은 흔히 서기 618년부터 약 220여 년을 통치한 왕국으로 알려졌다. 당나라 시대 티베트를 통일한 강력한 통치자 송첸캄보(赞干布)는 토번의 33대 왕이다. 당나라와 인도의 공주와의 결혼 후 선진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여 정교 합일의 토번을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티베트 불교는 혼돈의 시대를 겪지만 종교개혁가 쭝카파(宗喀巴)가 등장해 겔룩파(鲁派)를 창립하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达赖喇嘛)는 겔룩파의 최고지도자로 16세기에 이르러 더욱 세련된 종교 체계를 세우고 통치 기반을 수립하게 된다. 티베트 역사를 생각할 때 고향이 배출한 법왕의 근원을 따져 보는 것도 재미있다. 여기는 네치찬보의 고향이다. 이제 곧 수도 라싸에 들어가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된다.

 

Mp-06-04 비포장도로 공사 중


Mp-06-05 차마고도를 운전 중인 티베트 운전사

 

고향표지판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주민에게 혼났다. 신성한 법왕을 멸시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례는 맞다. 서둘러 운무 가득한 길을 떠난다. 질퍽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굴착기 공사로 외길에서 잠시 멈춘다. 대형 트럭이 좁은 길을 비집고 지나가려니 한참 걸린다. 도로가 반듯해지면 덜컹거릴 일이 없겠지만, 오지로의 여행이 주는 질펀한 체험은 사라지지 않을까?

 

통맥대교(麦大桥) 앞에 잠시 멈춘다. 며칠을 달려온 운전사도, 흙탕물을 지나온 4륜 구동 지프도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찌푸린 날씨 때문인가? 운무에 휩싸인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고 우아해 보이는 뿌연 하늘이 운전대를 잡은 그에게는 유쾌할 리가 없을 터. 여전히 비포장과 공사 중 도로를 어렵사리 질주한다. 2시간을 달려 루랑(鲁朗)에 접어들어서야 순조롭게 쌩쌩 달린다.

 

Mp-06-06 두 강이 만나는 통맥대교


Mp-06-07 석과계 요리의 고향 루랑

 

루랑은 용왕이 사는 골짜기(龙王谷)’라는데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3km 거리에 있다는 화해목장(花海牧)에서 말을 타고 놀아도 좋을 듯하다. 강을 끼고 있는 촌락, 계곡이 흐르는 목장이자 바다와도 같이 수많은 꽃이 만발한 스위스 같은 풍광이다. 덥수룩한 마부 사이에 소박하면서도 예쁘장한 아가씨 마부의 미소를 따라 준마에 올라타고 싶다. 예정에는 없지만 마방이 수없이 지나던 길을 따라 달리고 싶었다. 순간 허기를 느낀다.

 

Mp-06-08 루랑 목장의 마부 아가씨


Mp-06-09 석과계 요리

 

루랑에 오면 먹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요리가 있다. 석과계(锅鸡). 농민들이 영계에 삼과 천마 등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먹던 음식이다. 1999년 루랑에서 27년을 생활한 충칭 사람, 허다이윈(何代云)이 상품화했다. 충징에서 개업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루랑 사람들이 즐겨 먹던 그대로의 맛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정통입맛을 무기로 루랑 마을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닭고기를 먼저 먹고 국물에 야채와 버섯 등을 넣어 샤부샤부처럼 먹는데 꿀맛이다. 역시 닭은 담백한 국물 맛을 내기 좋은 재료다.

 

Mp-06-10 루랑 목장의 말


Mp-06-11 도로 변의 야크

 

운무도 사라지고 조금씩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도 훨씬 좋아져서 평탄하게 질주로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바람에도 여유를 가지고 손짓을 할 수 있게 된다. 빠르게 달리다가 반대편에서 대형차량이 오면 잠시 서행을 한다. 갑자기 창 밖으로 검은 물체가 나타나 잠시 놀랐다. 도로 옆 언덕 위를 어슬렁거리는 야크였다. 역광이라 실루엣으로 드러나지만, 뿔과 머리도 선명한 야크다. 다리도 튼튼해 보인다.

 

다시 2시간을 달려 바지촌(巴吉村)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다. 어른, 아이 모두 20여 명이 넘는다. 환영 인사는 아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자에게 공예품이나 약재 등을 팔기 위해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수령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거백림(巨柏林)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树王园林)이다. 20m2 너비의 산에 평균 높이 30m가 넘는 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Mp-06-12 거백림의 세계백수왕

 

숲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세계백수왕(世界柏树王)’이 우뚝 나타난다. 50m 높이의 꼭대기가 보일락말락 하고 둘레는 14.8m, 어른 10여 명이 껴안기에도 벅차다. 무엇보다 수령이 무려 3,234년이다. 모세의 출애굽, 중국 주()나라 건국보다 더 연세가 드신나무다. 화석이 되고도 남을 나이에 울창한 가지와 탱탱한 뿌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니 장수로세라는 말이 저절로 터진다. 이건 기적이기도 하다. 신화인가?

 

신수()라 부른다. 당연히 성지(圣地). 기원전 1,200여 년으로 거슬러 오른다면 아마도 티베트 전통신앙이자 원시 불교인 본교와의 긴밀한 교감이 보일 듯하다. 석가모니 전생에서 사부로 등장하는 본교 창시자 센랍미우체(饶米保, Senrab Miwoche)의 생명과 영혼이 깃든 나무로 불린다. 오색찬란한 다르초를 휘감아 걸었으며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얀 스카프인 카딱()으로 치장을 했다. 숲 전체가 티베트 불향이 나부끼고 있다. 나무 사이로 흔들리는 다르초는 언제까지 제자리를 지킬 것인가? 본교의 생명이 티베트 불교에 고스란히 전달되듯 나무는 굳건하게 버틸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광채를 발산하는 듯하다. 나무의 왕 앞에서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된다.

 

Mp-06-13 50m 높이의 세계백수왕


Mp-06-14 세계백수왕 앞에서 노는 티베트 아이들

 

바닥에 앉아 나무를 올려다본다. 햇살도 따뜻한 포근한 자리에 여전히 사람들이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랑 말을 건네고 장난을 친다. 티베트 말을 배워본다. 우선 숫자부터 물어본다. ‘, , , , , , , , , ’, 1부터 10까지 대충 배웠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수줍게, 빠르게 말하니 여러 번 물었건만 아리송하다.

 

두 아이가 다소곳하게 일어나 환영 인사를 알려주기도 했다. ‘자시델레(扎西德勒, tashi delek)’, 외치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모습이 할아버지 앞 재롱과 닮았다. ‘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에 더해 축복의 말까지 두루 담긴 인정미 넘치는 인사말이다.

 

Mp-06-15 환영 인사말을 가르쳐주는 티베트 아이들

 

아이들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아이들도 순박하고 물건 값도 적당하다. 공예품과 특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 대신에 장사를 하러 따라다닌 것인지, 함께 논 것인지 모르지만.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설국(雪菊) 차 한 통을 샀다. 100g 50위안이다. 일행들도 너도나도 한두 개씩 샀으니 미소전략이 꽤 먹힌 것이다. 거백림을 떠날 때까지 줄기차게 따라오는 귀여운 상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고맙다. 해맑은 미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하다.

 

거백림에서 5km 정도 떨어진 린즈지구(林芝地区) 중심지 바이(八一)로 들어간다. 해발 2,900m에 위치하며 인구 3 5천명이 사는 번화한 마을이다. 군대가 주둔하는 도시로 라싸까지 불과 400km. 티베트 남부의 물류와 유통 중심지다. 온갖 특산품이 모이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신기한 약재나 차도 많다.

 

Mp-06-16 티베트 남부 린즈지구의 중심지 바이


Mp-06-17 티베트 샤프란 장홍화

 

천지조화이자 생명의 근원이라는 동충하초(冬虫夏草), 장어마(藏御麻)로 격상된 천마(天麻), 장수의 원천 정화진용연수원(华尽溶延寿元)이라는 영지(灵芝) 등 건강식품이 수두룩하다. ‘체내 쓰레기 청소에 탁월한 티베트 샤프란 장홍화(红花)도 새빨간 꽃술을 드러내고 있다. 장홍화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1g 단위로 판다. 손으로 조심스레 딴 꽃술이니 비싸도 할말이 없다. 얼핏 보면 말린 고추를 가늘게 썰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꽃술 몇 개를 우려내면 투명한 핏빛처럼 맑다.

 

운무를 헤치고 티베트의 근원을 생각해본 하루였다. 장홍화 한 잔 마시며 차마고도 질주로 쌓인 피로를 풀어본다. 티베트 인사말이 자꾸 입안에 맴돈다. 맑은 눈망울을 지닌 티베트 아이들의 애틋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시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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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5) – 예라산 고개와 란우호, 미퇴빙천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골,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야커우(垭口)라 한다. 해발 4,658m의 예라산(业拉山) 고개에는 다르초가 무수히 휘날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티베트 글자는 까막눈일 텐데 왠지 낯설지 않다. 순결한 영혼을 담은 암호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고원 초원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해발을 점점 낮출 것 같은 세찬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영원히 떠나갈 것처럼 다르초에 새긴 부처의 바람은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Mp-05-01 예라산 고개의 다르초

 

고개를 넘자, 펼쳐놓은 시야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새파란 하늘로 햇살이 비친 산에는 이리저리 금을 그은 듯 길이 나부끼고 있다. 가로와 세로로 오가며 오르내리는 길이 통째로 산을 다 삼킨 듯하다. 도대체 이 길은 누가 만들었으며, 만든 사람은 이 길을 뭐라 부르는 것인가? 뒤로 돌아보니 ★ 72 라고 별까지 붙여서 매달아 놓은 글씨가 보인다. 어림잡아 3m 정도인 쇠기둥을 다섯 개나 세웠다. 하늘로 오르는 길, 과이(, bend)는 회전이니 72번이나 돌고 돌아야 도달하는 길. 그런데 굳이 별은 왜?

 

대명정정(大名鼎鼎)한 천로는 이름도 가지가지다. 산 너머 강을 빌려 노강(怒江) 72과이()’라고도 한다. 99 108을 붙이기도 한다. 정확하게 72번 급커브 하는지는 몰라도 숫자가 주는 의미에는 약간씩 차이가 느껴진다. 99구구(久久)와 발음이 같아 한없이 가야 하며 108은 중생의 번뇌처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일 터, 제목인지 가사인지 모를 돌고 도는 인생이 시나브로 떠오르는 곳이다. 하늘에 이르면 별이 되는 차마고도일까? 하루의 밤이건 기나긴 인생이건 이 순간만큼은 별이 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Mp-05-02 천로 72구비


Mp-05-03 천로 72구비 표지판

 

길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바닥에 걸터앉아 도화지와 천로를 나눠 보며 색감을 덧칠하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에 선 사람 모두 어쩌면 한가지 생각일지 모른다. 인생의 길을 떠올리며 천년 세월을 공들여 성공적으로만들어 놓은 마방을 생각할 것이다. 가파른 길을 오르려면 도대체 얼마가 고통스러웠을까? 거꾸로 오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길을 따라 그저 내려가면 되니 다행이다.

 

Mp-05-04 천로 72구비를 그리는 사람


Mp-05-05 천로 72구비를 달리는 사람

 

자동차도 가고 오토바이도 가고 화물차도 간다. 자전거도 가고 트랙터도 간다. 길은 뜻밖에 평탄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순조롭게 흐르는 시간처럼. 그러다 보면 급하게 돌아가야 할 때를 만난다. 인생 공부를 떠올리며 구비구비 약 12km를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딱 30. 4,600m에서 3,100m로 내려오는데 반 시간이라니 다소 허무하다. 2010년에 아스팔트 길이 완성됐다. 문명은 허탈일까 감사일까? 길을 다 내려온 후 후회막급,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길을 걸어 내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1km만이라도 걸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생에서 후회는 늘 인간의 간사한 이기심이기도 하다.

 

협곡 사이로 노강이 유유히 흐른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은 황토만이 흘러내린다. 강물은 누런빛으로 흐르고 있다. 청장고원에서 발원한 3개의 강은 각각 머나먼 길을 항해한다. 가장 동쪽의 금사강은 중국을 가로지르는 장강이 되고 가운데 란창강은 메콩강으로 변한다. 그리고 가정 서쪽의 노강은 장장 3240km를 흐르는데 티베트와 윈난을 지나 미얀마로 진입해 살윈(Salween) 강이 된다.

 

Mp-05-06 노강대협곡 앞에서


Mp-05-07 노강협곡을 잇는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

 

원주민인 노족(怒族)아누르메이(阿怒日美)이라 부르는데 스스로를 아누라 부르고 르메이()’을 뜻한다. 인구 7만 명 가량의 소수민족 중의 소수인 노족에게 피붙이이자 생명수다.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니 서쪽을 향해 가려면 노강교를 건너야 한다. 협곡을 잇고 있는 오래된 다리를 사람들이 건너고 있다. 꽤 위험해 보이건만 사람들은 걱정은 난간에나 묶어 두라는 듯 여유롭다. 협곡 위에 걸쳐 있는 아스팔트 대교를 따라 터널로 진입한다.

 

Mp-05-08 노강을 끼고 사는 와다촌


Mp-05-09 붉은 토양으로 만든 다라신산

 

강을 끼고 살아가는 자그마한 마을 와다촌(达村)을 지나니 서서히 산세가 완만해진다. 그리고 갑자기 산과 강이 붉은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름하여 홍산하(红山河). 황토와 홍토가 산을 구분하고 산과 평지는 초록의 나무가 접선을 이룬다. 여전히 구름과 하늘은 햇살을 다투고 있다. 이 신비로운 산은 다라신산(多拉神山)이라 불린다. 동과 철, 아연이 많이 매장돼 있다는데 그래서일까? 오후 1시를 달리고 있지만, 아침이나 저녁이면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환생할지도 모른다.

 

바쑤(八宿) 현 바이마() 진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고원지대이자 온대성 스텝(steppe) 기후인데 온천이 많은 동네다. 온천 호텔에서 하루 묵어도 좋을 듯하다. 호텔에는 실내 풀장도 있다고 한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글 수 있다면 해발 5m를 넘나드는 사람에게 재충전을 위한 쉼터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방향을 남쪽으로 살짝 틀어 두 시간을 더 달려 란우호(然乌湖)에 도착한다. 해발 3,750m 지점에 있으며 길이는 29km, 면적은 22평방km에 이르며 최고 수심이 50m이다. 황산염이 함유된 담수호로 11월부터 5월까지 결빙한다. 반년 이상 얼음이 어는 까닭은 추워서이기도 하지만 산 붕괴로 형성된 언색호(堰塞湖)이기 때문이다.

 

Mp-05-10 란우호


Mp-05-11 란우호주변에서 쉬는 티베트 사람들

 

소 몇 마리만 어슬렁거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호반 위에 반영이라도 되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각도를 맞춰본다. 한여름이라 만년설도 귀향했는지 눈()과 눈 맞추기 참 어렵다. 그늘에 누워 낮잠 자는 사람만 찾았다. 다른 곳보다 호수 주변에 야생초가 많이 자라니 소를 풀어놓고 늘어지게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정지된 듯마냥 평화로운 티베트 사람에게 땅은 그저 누울 곳인가 보다.

 

다시 30여 분 달리면 국도 옆에 미퇴빙천(米堆冰川) 매표소가 나타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라는 말이 선명하다. ‘가장 아름답다(最美)’는 말은 중국 곳곳에서 워낙 많이 봐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매표소 문 안쪽에서 살짝 드러난 설산으로 눈이 갔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풍겨 나온다. 4km에 이르는 미퇴촌으로 갈수록 설렘을 더욱 짙어진다. 분명 고산반응 때문이 아니다.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다.

 

Mp-05-12 미퇴빙천 통나무 다리


Mp-05-13 미퇴빙천의 돌무더기

 

차에서 내려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른다. 해발 1,000m 정도라면 그냥 평지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도 있다. 빙하가 흐르는 도랑은 통나무 다리로 건넌다. 서낭당 앞에 돌무더기를 쌓듯 빙하가 마주 보이는 공터에는 크고 작은 돌이 쌓였다. 관음보살, 재신(财神)에게 봉공하듯 지폐로 끼워 넣었다. 주봉은 해발 6,800m에 이른다. 얼음으로 둘러싸인 빙하의 높이는 800m나 된다. 온통 새하얀 빛을 멀리까지 분출하고 있는 이유였다.

 

미퇴빙천은 세계에서 아주 드문 빙하다. 1988 7 15일 밤에 갑자기 빙하가 갈라져 호수로 쓸려 내려오는 현상이 발생했다. 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빙하도 약동(跃动)’한다니 신기하다. ‘활빙하라 해도 좋지 않은가? 중국에는 46천여 개의 빙하가 있는데 단 두 개만이 살아있는빙하다. 또 하나는 200km 떨어진 난자바와(南迦巴瓦) 산 줄기에 있다.

 

Mp-05-14 미퇴빙천의 말과 빙하


Mp-05-15 미퇴빙천이 반영된 호수

 

호수 위에 쏙 들어온 설산이 참 예쁘다. 데칼코마니를 이룬 모습, 그 반영은 본디 모습보다 더 경이롭다. 잔잔한 흐름을 따라 오는 바람도 어느덧 숨을 멈춘다. 다시 긴 호흡을 내쉬면 호수는 몸서리를 치고 설산은 대칭이면서도 자기 모습을 감추듯 살짝 비튼다. 주름 같은 흐느낌은 짜릿한 오르가슴 같다. 빙하와 호수는 그렇게 한 쌍의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것 같다.

 

눈은 호수를 정화하고 도랑으로 흐르다가 개울이 돼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미퇴하(米堆河)는 논밭과 삼림을 적시고 란우호에서 내려온 팔룽짱보(帕隆藏布) 강에 합류한다. 대부분의 티베트 물줄기처럼 티베트를 남북으로 가르는 젖줄인 얄룽짱보(鲁藏布) 강으로 들어선다. 근원을 알아야 하는 법, 사람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다. 설산의 DNA는 어느 바다에 머물지 몰라도 그냥 H2O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Mp-05-15 빙하 마을 미퇴촌


Mp-05-16 미퇴촌에서 만난 설연화

 

시리도록 눈부신 설산을 뒤로하고 도랑을 따라 내려온다. 연기가 모락모락 솟는 지붕, 관광지로 변한 마을에도 저녁이 온다. 공예품을 파는 가게 몇 집 보이고 좌판에는 티베트 특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눈꽃이 피기라도 한 듯 아담한 설연화(莲花)에 눈길이 간다. 해발 3~4m 바위에서 자생하는 국화이다.

 

<본초강목습유(本草纲目拾遗)>에도 기재됐으며 부인병에 탁월한 약재로 쓰인다. 차로 마셔도 좋고 분말로 사용하면 미용효과도 뛰어나다. 식용으로도 쓰이며 담근 술로도 먹을 수 있다. 눈 속에서 폈을 때가 정말 예쁘다는 설연화는 꽃말이 순결한 사랑이다. 그 어떤 말로 설연화를 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순수가 공존하고 있는 빙하 마을에서 하룻밤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보미(波密) 현에는 아직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어두운 산 너머 여전히 햇살이 발버둥 치는 하늘을 응시한다. 흔들리는 차량에 나른한 몸을 맡긴다. 소르르 졸음에 빠지다가 언뜻언뜻 설산 그림자를 따라 눈을 떠보기도 한다. 빙하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차마고도를 잠시 잊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지는 듯하다. 꿈에라도 마주하고 싶은 마방 행렬인데…. 하늘에 이르는 길, 별처럼 높디높은 고개를 지나 호수와 빙하를 만난 날이다. 오늘 밤 꿈에는 별이 오려나 보다.

 

Mp-05-17 보미 가는 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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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4) – 둥다라산과 란창강대협곡, 쥐에바산과 방다대초원

 

, ‘길다라는 말? 사전으로 들어가 보니 뜻도 참 다양하다. 적어도 여행가에게는 길어서 생긴 말이라고 해도 좋다. 그 길이 긴 만큼 보고 듣고 느낄 일도 많은 것이니 말이다. 꼬불꼬불 끝없이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차마고도는 이다. 푸얼차가 아니라면 어찌 그 긴 노정을 생각하기나 했을까? 발효차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니 지혜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데도 숨이 가쁜데 말은 어떻게 생명이자 노동을 승화시킨 것인가? 생명을 이어주려는 노동, 이것이 차마고도의 정신이다.

 

국도 214번 도로는 여전히 북쪽을 향해 달린다. 쾌청한 날씨라 선명한 빛깔의 하늘과 구름, 연두의 칭커(青稞)까지 펼쳐진 길은 눈이 부셔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다. 2시간 만에 차를 세운다. 차창 밖 칭커를 바로 앞에서 보니 더욱 짙푸른 감촉이 향기처럼 눈을 물들인다. 볏과식물인 칭커는 흔히 쌀보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노랑과 연두를 지나 연초록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수확 후 말리고 갈아서 국수도 만두도 만들어 먹는다. 게다가 술로도 담근다.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술이라면 칭커주라 할 수 있다. 손님을 초대해 접대하는 말을 칭커(请客)라고 한다. 발음이나 뜻도 아주 좋다.

 

Mp-04-01 국도 214번 도로의 칭커 밭


Mp-04-02 생 콩 먹는 티베트 아이들

 

도로 안쪽에 농가가 하나 있다. 대문 앞에 아이 둘이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어서 다가가 본다. 푸른 콩이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는 순박한 아이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콩에 시선이 자꾸 가니 몇 개를 넌지시 손에 담아준다. 콩을 그냥 먹고 있으니 걱정스러워서 물어본 것이었다. 정말 맛있게 훑어내며 야금야금 먹는 게 신기하다. 아이들도 먹는데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껍질을 열고 한 알을 씹었다. 그런데 이 무슨 달콤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란 말인가.

 

기사 쓰면서 콩 검색했다. 도대체 그냥 생으로 먹는 콩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티베트 고원만의 특별한 콩인가? 생김새는 자그마한 작두콩(중국어로는 다오더우刀豆라 함)과 비슷하다. 콧물이 콧잔등에 버젓이 남은 채 콩의 단 맛을 풍기는 아이들과 잠시 눈빛을 나누고 일어선다. 저 나이 때, 배고픈 시절의 동네 꼬마를 기억해내고 아련해지는 마음이랄까? 우연으로 잠시 만난 순간마다 추억은 여행이 주는 고유한 이기도 하다. 다시 길을 떠나지만, 차창 뒤로 달려올 듯하다. 싱그러운 콩의 단내가.

 

망캉(芒康) 현으로 들어선다. 티베트 말로 선묘(善妙)한 땅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지극히 신비로운 곳이라고 하면 될 듯싶다. 동경 98~99, 북위 28~30도에 위치하지만, 평균 해발이 4,317m. 그래서 8월 한여름이어도 몹시 덥지는 않다. 윈난에서 북쪽으로 온 사람과 쓰촨에서 서쪽으로 온 사람이 서로 만나는 도시다. 십자가의 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남북을 가르는 국도 214번과 동서를 가르는 국도 318번이 딱 만난다. 이제부터 라싸로 가려면 318번 국도를 타야 한다.

 

Mp-04-03 완만한 둥다산 고개로 가는 길


Mp-04-04 둥다산 넘어가는 길

 

갈림길 팻말이 조금 전 보였던 거 같은데 갑자기 가파르게 꼬부랑길이 나타난다. 산 능선을 따라 크게 원을 그리며 오르는 걸 보니 앞에 고산이 가로막고 있나 보다. 둥다산(东达山) 길은 더 이상 회똘회똘 하지 않고 완만하다. 이제 바야흐로 천장선(川藏线)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길고도 사무치게 감동적이라는 길이 시작된 것이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해발 5,008m라고 똑똑히 적혀 있다.

 

Mp-04-05 해발 5,008m 둥다산 고개

 

쓰촨에서 라싸로 이르는 천장선에서 두 번째로 해발이 높은 고개다.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금지 구역이라고 하며 천연의 요새, 천참()이라 부른다. 다르초가 휘날리고 바람도 산을 넘어갈 듯 세차게 분다. 표지판에 무경교통(武警交通)이 담당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무장경찰은 일반경찰보다 여러모로 세다. 국무원 교통부와 업무 협조를 하겠지만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다. 특별한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둥다산이 있는 티베트는 평범한 곳이 아니다.

 

산을 넘어가면 내리막이 이어진다. 차도 쉬고 사람도 잠시 쉬어간다. 해가 서쪽으로 많이 넘어가서인지 가는 방향으로 세상이 좀 밝아진 느낌도 난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이 한 시간가량 따라오고 있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윈난을 거쳐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셋이다. 차마고도 여행은 ()자 형태로 흐르는 삼강병류(三江并流)를 만나게 된다. 세 강을 다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진사강(金沙江)은 지났다. 가운데를 흐르는 두 번째 강이 란창강(澜沧江)이다. 강은 협곡을 만들고 유유히 하산한다. 빠른 물살로 달리는 대협곡이 눈 앞에 나타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선다.

 

도로가 끊긴 것이다. 한여름 폭우가 산비탈을 타고 미끄럽게 쓰러지면 바로 산사태다.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렸다고 해서 염려됐는데 이제 곤란이 시작된 것이다. 심하면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빈번하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좁은 길에 차량이 줄을 섰다. 현지 가이드는 반 농담 삼아 돼지라도 한 마리 잡을까요? 라며 너스레를 떤다. 란창강 강변에서 별을 보며 돼지 삼겹살?’ 좋겠다고 딱 3초가량 기뻤다.

 

Mp-04-06 국도 318번 도로에서 산사태로 길이 막혔다!


Mp-04-07 국도 318번 도로에서 본 란창강대협곡 강물

 

하늘이 내린 사고 탓에 란창강대협곡의 물살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강의 총 길이는 4,909km. 아시아에서 가장 긴 창강(长江) 6,300km, 황하(黄河) 5,464km만큼은 아니어도 길긴 긴다. 중국 대륙에서만도 2,139km라고 하는데 약 1,000km인 한반도의 두 배가 넘는 기나긴 강이다. 중국을 벗어나면 메콩강(Mekong River)으로 이름이 바뀌어 라오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지나 바다로 흘러간다.

 

세계지도를 따라, 강물의 부유물을 따라 바다까지 흘러간 망상에 사로잡힌 시간으로 따지면 30분 정도 됐을까?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 싱거운 거 아닌가 싶었지만 큰 사태는 아닌가 보다. S자 도로가 이곳뿐일까마는 위험해 보이는 길이긴 하다. 불도저가 길을 뚫고 있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운전사가 버럭 화를 낸다. 사진 찍으면 안 된다는 무장경찰이 작업 중이었다. 야단맞아서 살짝 서운했지만 또렷이 무장경찰이라고 쓰여 있는 불도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Mp-04-08 란창강 강변의 작은 마을 루메이진

 

자그마한 강변 마을 루메이진(如美)에 도착했다. 참 이름이 예쁘다. 마을 자체가 깨끗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개도 사람도 한가한 동네다. 6시 반이 지났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국수와 볶음밥으로 빨리 저녁을 해결했다. 가게에서 수박도 사서 나눠 먹고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주카촌(竹卡村) 다리를 따라 란창강을 건넜다. 강을 왼쪽을 보냈는가 싶었는데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번에는 해발 3,911m의 쥐에바산(觉巴山) 고개를 넘는다. 지그재그와 꼬불꼬불, 8km에 이르는 고갯길이 정신 차릴 새도 없다. 길옆에는 집 몇 채만 달랑 모인 촌락이 계속 이어진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니 어둠으로 사라져 가는 집을 따라 달리고 달린다.

 

Mp-04-09 쥐에바산 고개 넘어 가는 길

 

차마고도를 새와 쥐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양의 창자로 비유한다. 고산을 넘어야 하고 안전한 발걸음을 만들다 보니 생긴 말이다. 말이 다니던 길보다 곧은 길이지만 창자 같은 국도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여행객들은 산 아래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울타리를 횡단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산 아래로 내려가니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1시간이나 더 달려 오늘의 숙소 쭤궁()에 도착한다. 쭤궁은 티베트 말로 밭 가는 편우(犏牛)의 등이라는 뜻이다. 황소와 야크(牦牛)의 잡종을 편우라 하는데 아주 큰 수소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등처럼 넓다는 말인가? 힘세고 덩치도 큰 소를 상징하듯 가로 408km, 세로 220km에 이르는 면적이다.

 

Mp-04-10 쭤궁 현의 아침 거리


Mp-04-11 방다대초원의 쌀보리 칭커와 운무

 

아침 햇살이 밝았다. 청아한 하늘과 산 능선에 두루 걸쳐져 있는 구름이 햇살을 받아 아주 새하얗다. 밭에는 역시 초록의 칭커가 반듯하게 자라고 있다. 차마고도를 달리는 상쾌한 기분. 차창 밖 산은 하늘과 가깝고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은 친근하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산세라 해도 믿겠다. 완만한 강물은 호수처럼 흐르고 푸른 초원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다대초원(达大草原)이다.

 

란창강과 누강(怒江) 사이에 있는 고원 초원이다. 130km에 이르며 물과 풀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초원이다. 해발 4,200m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몰라도 포근한 느낌이다. 방다 진()으로 들어서니 시골 마을답게 단층의 가게가 다닥다닥 붙었다. 차마고도의 오랜 도시답게 말을 끄는 사람이 조각돼 있다. 처절하게 산을 넘고 협곡을 건너온 그들이 일심동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쉬며 또다시 떠날 준비를 했으리라.

 

Mp-04-12 고요한 방다대초원의 아침 모습


Mp-04-13 방다 진 광장의 차마고도 상징 조형물

 

고등학교 때인가 본 영화 <초원의 빛>이 생각났다. 나탈리 우드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마음을 담아 워즈워스의 시를 읊는 마지막 장면의 강렬한 인상. 그러나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를 떠올리기에는 티베트 초원, 참으로 복잡하다. 화물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길을 뒤따라 오체투지로 걷는 사람이 나타났다. 온몸을 바닥에 붙이고 일어나는 무한한 반복 동작으로 몇천km를 여행하는 사람들.

 

오토바이로도, 자전거로도, 자동차로도 질주하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그들의 영혼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때 그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라고 새겨봐도 찬란한영혼의 빛은 아침 햇살이 아무리 환상적이라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명을 이으려고 횡단과 종단을 반복한 노동을 통해 하나가 된 그들의 고운 영혼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됐다는 감사한 마음만을 알게 됐다.

 

Mp-04-14 방다대초원 옆 도로 위의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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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악녀의 타산지석

 

1900,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했다. 황제 광서제와 서태후(西太后)는 황급히 서안을 향해 서쪽으로 도피한다. 서태후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광서제가 총애하던 진비(珍妃)를 산채로 우물에 빠트려 죽인다. 서양 오랑캐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이지만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광서제에 대한 경고였다. 고궁 자금성에 가면 붉은 황궁 담벼락 옆에 처량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진비정(珍妃井)여성정치인서태후를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권력을 움켜쥐고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여성이 더러 있다. 중국문화여행을 기획 인솔하면서 지루한 버스 이동 중에 ‘4대 미인과 더불어 ‘4대 악녀이야기를 강의하곤 한다. 고대 4대 미인으로 알려진 서시, 양소군, 초선, 양귀비야 자주 회자하지만 악녀는 일부러 꺼내기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진비정과 서태후를 들먹이면 악녀다운 행적이라고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이동 시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기에 무난하다. 사실 봉건시대와 제국시대에 통치자의 악행이 관행이었다 해도 역사책을 펼쳐보는 입장에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고 안주로 올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이다. 서태후와 함께 무측천, 여태후, 달기로 ‘4대 악녀는 이어진다.


진비정


 

올해 5월 취재여행으로 광위안(广元)을 다녀왔다. 이곳에는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인 무측천(则天)의 사당 황택사(泽寺)가 있다. 그녀의 인생은 드라마보다 흥미롭다. 최근 방영된 그녀의 일대기 <무미랑전기(武媚娘传奇)>가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14세 입궁해 두 명의 황제로부터 은총을 받고 총명한 지략을 바탕으로 스스로 황제가 됐다. 긍정적인 통치 사례도 많다.

 

악녀로 등극시킬만한 이야기는 더 많다. 황후와의 권력 다툼에서 정치적 발판을 위해 갓 태어난 친딸을 살해했다는 점은 가히 공포에 가깝다.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에서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사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뜻밖에 딸이 죽었고 그 죄를 황후에게 전가했다는 요절가화(夭折嫁)는 비정하다. ‘친딸 살해 후 암매장사건보다 더 비극적이다. 안정공주(安定公主)로 추서됐다니 공주의 이름도 정말 안쓰럽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하급관리였던 유방(刘邦)이 한나라를 건국했다. 황후 여태후(吕太后)는 실권을 장악하고 외척이 득세하는 선례를 남겼다고 사서마다 흥분했다. 유방이 총애하던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독살한 후 곧바로 척부인을 살해하다. 그 방법이 가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벌하다. 역사에서는 이를 참절인환(惨绝人寰)이라 표현하는데 전대미문의 참상이 바로 이럴 것이다. 손발을 절단한다.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고 말조차 못하게 약을 먹인다. 그리고 돼지우리이자 화장실에 던져버린다.

 

사람돼지인체(人彘)의 고통 속에 죽인다. 가수이자 무희인 척부인은 동진 시대 갈홍(葛洪)이 편찬한 <서경잡기(西京杂记)>에 최초의 여성 바둑기사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선량한 척부인의 죽음은 여태후를 악녀로 삼고도 남는다. 고향 산둥 허저(菏泽)에 자그마한 사당 척희사(戚姬寺) 유적지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비참한 죽음을 동정한 수많은 중국인이 척부인에게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 있으니 사측여신(厕女神)이다. 화장실을 관장하는 신이다. 인간의 은밀한 생리현상을 관장하고 있으니 죄지은 자에게 등골이 오싹한 공간이다. 민중의 지혜와 소망이 그녀를 신격화한 것이다.

 

4대 악녀를 찾아 기원전 1,0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달기(妲己)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여주인공이다. ()나라 마지막 군주인 주왕(纣王) 제신(帝辛)의 애첩이다. 중국사람들은 충신의 상징 비간(比干)을 도교사원의 재물신으로 봉공하고 있다. 충언을 고하다가 심장이 도려내지는 죽임을 당하는데 바로 달기의 교사가 한몫했다. 강태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봉신연의(封神演)>에 등장하는데 비록 소설이지만 그 악행이 섬찟하다.

 

달기는 혹독한 형벌인 포락(炮烙)과 채분(虿盆)을 즐겼다고 한다. 포락은 죄인을 동으로 만든 기둥에 묶고 뜨겁게 달구면 엄청난 고통 속에 타 죽게 한다. 채분은 죄인을 맨발과 알몸으로 독사와 전갈이 우글거리는 구덩이에 던져 죽게 한다. 두 혹형 모두 사람의 고통을 즐긴다는 측면에서 정신병자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 한 고고학자가 달기의 고향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 줄 그녀의 화상이라고 주장하며 얼굴을 복원했다고 한다. 그녀의 용모를 토대로 별의별 삽화도 많다.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비인간적인 면모만이 아닌 아리따운 미모까지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역시 사뭇 악랄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염려된다.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에서 어떤 여성 통치자로 기록될까? 여행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미인과 함께 악녀를 소개한 인물과 점점 비슷해지는 것은 아닌지 요즘 무섭다. 통치 기간 중 불법적 행위부터 세월호 7시간, 촛불 항쟁을 불러일으킨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추측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너무도 서럽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악녀대통령이 되었다고 누군가는 기록할 것이니 말이다.

 

 

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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