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작가의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제6장 '대의를 위하여'에서 인터뷰한 내용...


"송나라 초기에는 (중원 땅에) 1억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는데 몽골족인 원나라가 집권한 지 30년도 채 안 되어 5천 9백만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강지변으로 금나라에 멸망하기 직전 1120년 경 송휘종宋徽宗 당시 인구는 1억 2천만 명에 육박합니다. 강남으로 남하한 남송 정권의 개국황제인 송고종宋高宗 시기에 이르러 영토가 줄어서 2천5백 명으로 인구가 급감합니다. 남송 막바지에는 거의 1천만 명 조금 넘을 정도로 왜소해집니다.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했지만 원나라는 전체 인구가 5~6천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쟁 와중에 엄청난 살육이 벌어졌기 때문이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의 삶이 피폐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원나라는 북방에서 내려온 몽골족의 왕조입니다. 한족 입장에서는 북쪽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이 있었던 거죠. 원나라는 한족의 불만이 무림과 연결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였던 겁니다."


중국 역사에서 민란이 발생하거나 왕조의 교체기에 엄청난 도륙이 벌어지고 인구는 절반 이상으로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진승과 오광의 민란, 한 무제의 흉노 정벌, 서한 말기의 혼란과 삼국 쟁패, 서진 팔왕의 반란과 남북조 할거, 수나라의 강제 노역, 안사의 난, 황소의 민란, 거란족과 몽골족의 송나라 멸망, 원나라 말기 민란, 명나라 말기 민란, 청나라 백련교의 민란, 태평천국의 민란 등이 대표적인 인구 감소의 대사건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의 기록은 원나라 누루하치입니다. 1,800만 명을 학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아마도 세계 최대일 것입니다.  


"중국 민중의 항쟁 기록 - 민,란" 저자로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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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작가의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에서 '광명정光明顶'은 곤륜산에 위치한다고 했다. 소설의 허구적 공간이니 우리는 마냥 '서역'에 있는 곤륜산昆仑山을 떠올린다. 어쩌면 지금의 티베트 청장고원과 위구르자치구의 타림분지를 가르는 고산을 생각하게 된다. 소림사에서 거의 2~3천km나 떨어진 지역일 거라 믿는 건 정말 '소설'이다. 중국 신화의 명산 곤륜산은 도교가 발흥한 동한 시대 이후 서왕모西王母가 거처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다 신화이자 허구인 곤륜산. 


김용은 광명정 전투를 통해 장무기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정파 및 사파의 통합을 통해 북방민족 몽골족과의 대결구도로 무림을 이끌어간다. 허구이겠지만 광명정은 황산의 주봉 중 하나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황산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멋지다. 


신화도 소설도 사실은 어느 정도 현실 공간을 '그럴 듯 하게' 반영한다면 곤륜산은 중국 산서 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림사와도 불과 200km 정도 북쪽에 위치한 석성산析城山, 중화문명의 인문시조인 복희伏羲의 출생지이자 서왕모까지 등장하니 그럴 듯 해보인다. 그저 소설은 소설로 읽고 봐야 하지만 그렇다고 수천km 떨어진 '현재적 지리'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황산 광명정에서 하산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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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세계 최강이던 당나라 태종 이세민과 명나라 영락제 주체가 통치하던 시대로 '르네상스'하고 싶은 것이 중국의 꿈입니다. 그만큼 당나라 멸망 이후 명나라 건국까지의 시대 중원의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적어도 한족에게는 그렇습니다. 김용 작가의 무림세상은 혼돈의 시대, 북방민족의 중원 통치라는 '쓰라린' 배경을 담은 '한스런' 한족의 자서전입니다. 무협이라는 이름을 담아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소설적 구성이 탄생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제4장 '복수의 소용돌이'처럼 역사에서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용 작가의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는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과 신조협려神雕侠侣와 더불어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는 세 소설이 시대적으로나 등장인물 면에서 연결구조를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소설 속 인물은 역사 속 인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정사의 기록을 뛰어넘는 화려한 캐릭터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12세기 초부터 14세기까지 중국 중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한족의 나라인 송나라의 멸망과 북방민족의 중원 장악, 명나라의 건국에 이르는 과정이 김용 작가의 삼부곡의 시대배경입니다. 1127년 '정강의 치욕'靖康之耻으로 북송이 멸망하고 거란족 금나라의 건국, 몽골족의 성장과 원나라의 건국, 1273년 양양襄阳의 함락 후 1279년 남송의 멸망, 원나라 말기의 민란과 1368년 명나라 건국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에서 한족이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은 시대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일대일로의 르네상스, 당나라 시대의 장안성 모형


일대일로의 르네상스, 명나라 주원장의 능원인 효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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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림기행>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세 번째가 열렸습니다. 이번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에서도 제 인터뷰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김용(金庸) 작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정말 예전부터 그에 대해 기사를 쓰고 싶었으나 한가지 이유때문에 망설였습니다. 그건 마지막에 설명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김용은 천재적인 작가이자 정치평론가입니다. 청나라 강희제 때 진사에 급제한 사승(查升)의 후손입니다. 본명은 사량용(查良镛)이지요. 끝 자 '용'을 나누어 '김용'이라 필명을 씁니다.  항주 인근에서 태어난 김용은 항주와 상해 등에서 신문사 근무를 하다가 홍콩으로 건너갑니다. 50년대 중반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등 4편의 무협소설을 발표합니다. 59년에 정치사회평론 잡지 <명보(明报)>를 창간합니다. 이후 자신의 잡지에 <신조협려(神雕侠侣)> 등을 전재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1편이 발표돼 김용의 시리즈는 모두 15편입니다. 


초기 창간된 잡지의 판매부수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낮에는 평론을 쓰고 밤에는 무협소설을 쓰는 생활을 이어간 것입니다. 이때 지금의 김용 작가를 탄생시킨 엄청난 분량의 무협소설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주원장이 나라 이름을 '명'이라 한 것과 김용이 잡지 이름을 '명'이라 한 것에 유사성이 있을까요? '명교'와 관련도 있는 것인가요? 무협에 빠진 사람이면 모를까 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여간 중국무협을 완벽하게 총정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 김용은 1972년 즈음 자신의 무협시리즈를 종결합니다. 1948년에 처음 결혼 후 곧 이혼하고 1953년 주매(朱玫)와 두번째 결혼을 합니다. 2남2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1976년 가정이 파탄이 나고 이혼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때 김용에게는 평생 원통스럽게 여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장남 사전협(査传侠)이 여자친구와 감정싸움 끝에 자살해버린 것입니다. 타고난 감성과 문장력으로 어릴 때부터 작문에 소질을 보이던 아들이 자살하자 김용은 엄청난 상념과 고통에 빠집니다. 이때 홍콩의 술집에서 자신을 위로해주던, 거의 서른 살이나 어린 임락이(林乐怡)와 만납니다. 임락이와 결혼한 김용은 93살에 이른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중국을 다니다보면 김용 무협소설의 흔적이 많습니다. 무당산은 물론이고 화산파의 화산에도 그의 필체가 있고 대리에 가면 아예 천룡팔부영화성이 있습니다.  김용은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소호강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녹정기'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무협영화들의 원작자로 중국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이고 드라마나 영화화 되어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천룡팔부'는 중국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화산 <화산논검> 앞에서 2006. 5


화산 2006.5


화산 정상에서 2006.5


화산 2006.5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대리 천룡팔부성에서 2007.8

천룡팔부성 2016.1


천룡팔부성 2016.1


천룡팔부성 2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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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대종 2017.02.20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핑요고성에 가서 전진칠자의 흔적을 봤을때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천하무림기행>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두 번째가 열렸습니다. 이번 "피를 부르는 도룡도"에서는 제 인터뷰 내용이 없습니다. 모두 8편인데 인터뷰 꼭지는 6개였으니 빠지기도 할 겁니다. 



오늘은 의천도룡기 6대문파를 간략히 정리합니다. 


무당파武当派는 원말명초의 도사이자 무술가인 장삼풍张三丰이 창립했다고 전해집니다. 무당산은 호북성 십언十堰 단강구丹江口에 위치합니다.  


소림파少林派는 중국 오악 중 중악中岳인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가 본산입니다. 소림사는 6세기 경 북위 시대에 인도 고승인 달마达摩가 면벽한 후 중국 선종불교의 온상이 됐습니다. 소림사가 있는 숭산은 하남성 등봉登封에 위치합니다.


곤륜파昆仑派는 오대십국시대 후주后周의 곤륜대사가 옛 산동의 임청临清의 용담사龙潭寺에서 창건했습니다. 임청은 지금의 하북성 남쪽 임서현临西县입니다. 


아미파峨嵋派는 기원전 전국시기 사도현공司徒玄空이라 불리는 백사구白士口를 종사宗师로 모십니다. 사천성 낙산乐山에 위치한 아미산은 보현보살普贤菩萨의 도장道场으로 중국불교 4대 성지입니다. 


화산파华山派는 12세기 산동 사람인 도사 학대통郝大通이 창시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도교의 전진교全真教에 귀의합니다. 화산파 제자는 이후 무당파와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오악 중 서악西岳으로 불리는 화산华山을 거점으로 합니다. 섬서성 위남渭南에 위치하며 서안에서 동북 방향으로 120km 떨어져 있습니다.  


공동파崆峒派는 김용 작가에 의해 재창조된 무림 계파입니다. 당나라 이후 성행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무술로 공동산에는 '공동무술, 위치서수( 崆峒武术,威峙西陲)'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감숙성 평량平凉에 위치하며 서안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져 있습니다.


자소전 전경, 무당산에 많은 전각이 있는데 아마 가장 웅장하고 멋있습니다. 그래서 촬영팀이 이 자리를 잡은 듯~



이번 편에는 '의천도룡기'의 도입부를 설명하는데 무당파의 본산인 무당산에서 촬영했군요. 저도 2014년 봄에 무당산에 오른 적이 있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프리젠터가 서서 멘트를 하는 곳은 도교 명산 무당산 동남쪽에 있는 자소전紫霄殿입니다. 3층 높이의 석대 위에서 건축된 목조건물 자소전은 북송 때 처음 생겼다가 명나라 때 중건했습니다. '자소'는 북극오성 중 천상에 있는 제성帝星인 자미성紫微星 자리를 상징합니다. 무당산에 유일하게 이중처마로 건축돼 가장 웅장합니다. 도교의 진무대제真武大帝를 봉공하고 있습니다. 


도교의 진무사상은 명나라시대 확산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명나라 영락제는 황제인 조카를 죽이고 황제로 등극 후 북경으로 천도합니다. 자금성을 건축해 위엄을 보임과 동시에 북방민족의 남하를 방비하기 위해 대규모 만리장성을 축조합니다. 게다가 황제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도교의 명산 무당산에 북경 자금성紫禁城을 옮겨 자금성紫金城과 태화궁太和宫을 짓게 됩니다. '금'자의 한자가 서로 다른 것에 주목합니다. '북쪽에는 자금성이 있고 남쪽에는 자금성이 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자소궁紫霄宫으로 들어가면 용호전龙虎殿, 십만당十方堂, 자소전紫霄殿, 부모전父母殿 등이 있습니다.


자소전 3층 높이 계단을 오르는 무당산 도사


자소전은 옆에서 봐도 멋집니다.


수염을 휘날리는 도사가 보입니다.


조천궁으로 가는 길에 고기를 말리는 모습이 유리창에 비친 나무와 잘 어울립니다.


2시간 정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 부근 삼천문에 이릅니다.



최정상 천주봉天柱峰에는 도교 경전 속 전설인 진무대제를 영락제 자신의 얼굴로 변모한 동상을 세워 금전金殿을 건조합니다. 자소전이 있는 자소궁에서 조천궁朝天宫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일천문, 이천문, 삼천문三天门을 지나 태화궁과 자금성紫金城을 보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금전에 다다릅니다. 내려올 때는 가볍게 케이블카를 탑니다. 하루 등산 코스로 아주 좋은 무당산, 무당파의 본산입니다. 


명나라 지리여행학자 서하객도徐霞客 무당산을 다녀간 후 '연이어 있는 산이 수려하기 그지 없고, 풍경은 그윽하고 신비롭다'(山峦清秀,风景幽奇)는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 북송의 서예가 미불米芾의 서체로 '제일산第一山'이 바위에 새겨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 무협과 현실이 공존하는 무당산입니다.



태화궁 오른쪽에 위치한 황경당皇经堂, 여기서 도사들이 경전을 읽으며 신에게 봉공을 드리는 장소입니다. 세련된 목조가 돋보입니다.


정상 천주봉에 있는 금전을 오르다가 되돌아본 무당산의 모습입니다. 날씨가 흐려 오히려 신비스럽습니다.


무당산 정상의 금전입니다. 너비 4.4m, 깊이 3.15m, 높이 5.54m로 아담하지만 위세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입니다.


태하궁 위에 삼교조사三敎祖师 편액이 걸렸습니다. 중국 도교가 전래된 이해 수많은 종파가 생겼는데, 전진파,상청파,정일파 등으로부터 조사로 인정받는다는 의미, 즉 진무대제인 영락제 자신을 뜻합니다.


대악태화궁大岳太和宫. <주역>에서 음양과 천지만물을 태화太和라고 합니다. 자금성의 가장 큰 건물이 태화전이기도 합니다. 오악보다 더 위대한 무당산이라는 의미에서 '대악'이라 합니다.


서예가 미불의 서체로 새겨진 제일산第一山, 무당산! 무당파의 본산입니다.


2014년 봄 무당산 등산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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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르 2017.02.16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상보고 댓글 보고왔어요 무당산 멋지네요~

  2. 무스비 2017.02.16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상 보러왔다가 댓글보고 들어왔어요~!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대문파 궁금했는데 잘 읽고 갑니다 ^^

  3. 学习中国 2017.02.20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림의 고수가 계셨군요. 중국의 6대문파를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운틴TV의 <천하무림기행> "의천도룡기"가 시작됐습니다. 제1장은 약 9분입니다. 월/목 편성, 1장에는 7분 대에 "양양성 전투" 관련 제 멘트입니다. 그냥 "양양성 전투"라 하니 지리적으로 잘 모를 수 있는데...호북성 양양襄阳입니다. 


4년전엔가 베이징에서 기차 타고 샹양 도착, 삼고초려의 현장 고융중古隆中과 도교 명산 무당산, 관우가 지키던 형주고성荆州古城 등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장강의 지류인 한강汉江을 따라 조성된 양양성은 삼국시대 형주를 지키던 유표刘表에 의해 성곽으로서 입지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몽골족의 남침을 막는 남송의 보루가 됩니다. 약 7년 동안 성을 지켰지만 결국 석포로 무장한 북방민족의 공세에 난공불락으로 믿고 싶었던 양양성이 무너지고 맙니다. 견고한 '철타铁打'의 상징이던 양양이 함락되자, 거의 천km 떨어진 남송의 수도 임안(지금의 항주)은 풍전등화가 됩니다. 남송의 멸망과 북방 몽골족에 대한 지배, 민란에 버금가는 암울한 시대로부터 '의천검'과 '도룡도'로 상징되는 영웅 이야기 <의천도룡기>는 시작됩니다. 


<의천도룡기>가 진행되는 동안 소설내용과 역사, 중국문화, 김용 작가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코멘트 하면서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양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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