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50 베이징 4 공장의 불빛 사라지고 예술의 혼으로 살아나다


12) 이다지 빛나는 유교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원, 명, 청 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궈즈졘(國子監)을 찾아간다.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융허궁(雍和宮) 역 부근에 있다.

청셴제(成賢街) 패방을 지나면 홰나무들이 높이 자라 그늘지고 시원한 거리가 나온다. 공예품가게가 몇 군데 있고 번잡하지도 않다. 궈즈졘과 담을 마주하고 있는 공자 사당인 쿵먀오 벽은 구궁(故宫)에 있는 벽과 색깔이 같다. 검붉지만 퇴색된 채색이 고상한 담을 끼고 투명한 햇살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인다.

궈즈졘은 1961년에 국무원이 공표한 전국 문물보호 문화재이다. 이곳은 1306년 이래 최고학부로서 명성을 지키고 있다.

두 곳의 대문을 지나면 인공으로 만든 수정으로 천연의 채색감을 지닌 류리(琉璃)로 만든 아름다운 패방이 나타난다. 베이징에서 하나뿐인 이 류리패방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에 만든 것이다. 세 칸과 네 기둥, 일곱 누각으로 만들어진 찬란하고 유려한 자태이다. 자주색과 연두색과 군데군데 황금색으로 치장된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건륭제는 한족 융화정책과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존중했다. 궈즈졘에 비융(辟雍)을 건설하고 바로 앞에 휘황찬란한 패방을 세운 것이다. 하얀색 바탕에 친필로 환교교택(圜槁教澤)과 학해절관(學海節觀)을 앞뒤로 나란히 새겼다.

비융 주변은 도랑을 내 호수로 빙 둘렀고 다리를 지나 들어갈 수 있도록 연결돼 있다. 유일한 황가의 학궁인 비융 안은 늠름한 황제의 자태와 잘 어울린다. 청나라 시대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이나 벽돌, 창문, 장식은 유일하게 유교학당이나 공자와 관련된 건축물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비융이 건설되기 전에는 이룬탕(彝倫堂)이 학당 역할을 했다. 비융 뒤편에 붉은 빛이 감도는 이룬탕 앞에 공자의 행교상(行教像)이 서 있다. 당나라 화가인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의 전신 그림이다.

건물 양쪽으로는 길게 복도가 이어져 있고 과거 관련 박물관이 있다. 복도를 따라 가니 천장까지 높다. 복도 끝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최고학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꾸며 놓고 있다. 시대별로 문관과 무관의 복장을 한 모습도 있다. 신라인인 최치원이 18세에 진사에 급제해 장쑤(江蘇)의 한 현(縣)에서 근무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제가 주관하는 뎬스(殿試)의 모습을 진열했으며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붙인 방(榜)도 붙어 있다. 청나라 말기 동치제 때의 방으로 장원한 사람의 출신 지역과 이름도 보인다.

마당을 한 바퀴 도는데 푸쑤화이(復蘇槐)라는 나무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높게 자라 있다. 원나라 시대 처음 심었고 이미 고사된 나무였는데 건륭제 모친의 생일에 때맞춰 푸른 잎이 다시 돋아났다고 한다.

공자사당인 쿵먀오(孔廟)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다청먼(大成門) 앞에는 공자 조각상이 서 있고 관광객 한 무리가 시끄럽게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 재빨리 만세사표 편액이 걸린 다청뎬(大成殿) 안으로 들어갔다.

공자 사당은 대체로 어디나 비슷한 분위기이다. 정면에는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죽자 총통이 된 리위엔훙(黎元洪)이 1917년에 쓴 도흡대동(道洽大同) 편액이 걸려 있다. 아래로는 공자의 신위가 있는데 주변에 전통악기들이 전시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한 일본 방송국 취재진도 열심히 악기들을 담고 있다.


류리패방(왼쪽 위), 과거박물관 방(왼쪽 가운데), 찻집 종(왼쪽 아래), 공자사당 안 전통악기(오른쪽)

현악기인 구정(古箏)이 있고 화려한 용머리를 좌우로 틀고 길조 5마리가 서 있는 모양으로 위 아래 8개의 얇은 쇠 판이 걸려 있는 악기는 편경(編磬)이다. 쇠로 만든 판이 엄청 크고 무거운 것은 특경(特磬)이다.

편경과 비슷한 형태로 종 16개가 달린 편종(編鐘)이 있고 크고 무거운 종을 받치고 있는 박종(鎛鐘)도 있는데 아래 쪽에 강아지처럼 생긴 장식이 이채롭다. 큰북인 건고(建鼓)도 보이고 제례음악이 시작될 때 울리는 축(柷)과 마칠 때 치는 어(敔)를 본 것도 즐거운 수확이었다.

거리로 나와 걷다가 골목 속에 있는 찻집 하나가 보여서 들어갔다. 찻집 이름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날 듯한 이청(一承)이다. 경극 가면 그림이 열매와 함께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햇살에 비친 찻잔 속 찻잎이 사뿐하게 가라앉고 찻잔 받침대의 복(福)자가 선명하다. 창살 밖에서 들어온 그늘이 차의 향기를 더욱 은은하게 해주고 있다. 차 한잔 마시고 일어나니 어딘가에서 고풍스런 악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7줄 현악기인 구친(古琴) 소리이다. 구친은 공자 시대부터 생겨난 악기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궁(宫), 상(商), 각(角), 우(徵), 우(羽)의 다섯 줄이다가 나중에 문(文)과 무(武) 현이 추가됐다. 여주인이 음계를 뜯는데 부드러운 손길 따라 잔잔하게 느린 음률이 퍼져 나간다.

오후 내내 유교의 향기에 흠뻑 젖었다. 게다가 공자도 들었을 악기소리도 듣고 보니 기분이 아주 좋다. 가끔 이렇게 배우고 익히는 느낌이 있는 곳을 들러 보는 것도 좋다.

13) 황제의 뱃길 따라 유람해 황후의 여름 별장에 이르다 

베이징 서쪽 시즈먼(西直門)에서 이허위엔(頤和園)까지 가는 뱃길이 있다. 베이징전람관 뒤쪽에 작은 나루터가 있고 황제선 간판이 보인다. 황자위허여우(皇家禦河游), 즉 황가의 뱃길 따라 유람하는 여행이다.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이 10여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 이런 뱃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하다. 황제가 타던 배 나루터에는 생각보다 꽤 수량이 많은 강물이 있고 주변을 빙 둘러보니 고층 빌딩 숲이다.

쾌속정이 빠르게 지나며 물살을 일으킨다. 강변 식당 위허룽완(禦河龍灣) 앞에 세워둔 작은 배가 함께 찰랑거린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뱃길 여행이다. 강희제의 초상화가 그려진 배로 승객들이 타기 시작한다. 갑판도 없고 앉아서 창문만 겨우 열려 있어서 아쉽다.

원나라 시대에 조성된 하천으로 가오량허(高粱河)라고 했다가 명나라 시대에 위허(玉河)라 불리던 창허(長河)다. 청나라 건륭제에 이르러 황제의 전용 뱃길이 됐다. 배가 출발하자 강물이 출렁인다. 옆으로 쾌속정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지나간다. 배 뒤에 낡은 모습의 강희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뱃길 왼편으로 베이징동물원이 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나무 그늘을 따라 걷고 있으며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물살이 빠르지 않고 고인 상태라 다소 냄새가 나는 것만 빼고는 재미있는 뱃길이다.

안내하는 아가씨는 뱃길의 역사나 주변 명소를 소개하느라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옛 말에 톈탄에서 소나무 보고 창허에서 버드나무 본다(天壇看松, 長河觀柳)’는 말이 있듯이 이 뱃길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 있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이 강물은 아쉽게도 이허위엔까지 곧장 뚫려 있지 않아서 즈주위엔(紫竹院)공원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야 한다. 서태후도 피서를 위해 이허위엔까지 뱃길을 이용했는데 이 나루터에서 증기선을 타고 이동했다. 새로운 배는 더 크고 사람들도 더 많이 탄다.


이허위엔 쿤밍후(왼쪽), 나룻터(오른쪽 위), 황제유람선(오른쪽 가운데), 환선(오른쪽 아래)

다리 아래를 지나가니 반대편에서 운행하는 유람선이 비켜 간다. 어느덧 배가 종점을 향해 달려간다. 점점 뱃길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앞자리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수줍은 듯 바라본다. 창 밖을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본 것이다. 배가 물살을 튕기며 마지막 속도를 내고 있다.

선상에서는 곧장 이허위엔 쿤밍후(昆明湖)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판다. 이허위엔으로 가지 않는 사람은 쿤밍후 바로 앞에서 내려야 한다. 배에서 내려서 보니 일직선으로 쭉 뻗은 뱃길이 잔잔하고도 길게 이어져 있다.

배는 쿤밍후를 향해 아치형 다리 밑으로 떠나가는데 뱃길 뒤로 하천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강물을 수영장 삼아 놀고 있다. 다리 위로 올라가니 멀리 쿤밍후 앞에 배들이 정박해 있다. 뱃길 종점인 난루이먼(南如意門)이다.

저 멀리 쿤밍후 앞을 가리고 버티고 서 있는 다리가 멋지다. 마치 징처럼 생긴 솥이라는 뜻으로 뤄궈챠오(鑼鍋橋)라고도 하는 슈이챠오(繡漪橋)다. 슈이라는 말도 물결을 수 놓는다는 뜻이니 이름도 걸작이다. 황금색 유람선이 정박해 있고 파란 호수 앞을 봉긋하게 가린 다리가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다. 다리 밑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유람선이 지나가고 있다.

이허위엔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 포샹거(佛香閣)를 중심으로 관람하는데 이렇게 서쪽에도 봉긋한 다리가 있는 멋진 앙상블이 있는 줄 모를 것이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답게 멀리서 봐도 운치가 있다. 황제처럼 또는 황후처럼 기분을 내며 뱃길 따라 유람한 보람이 있다.

14) 공장의 불빛 사라지고 예술의 혼으로 살아나다 

다산즈(大山子) 798예술구는 냉전시대에 군수품을 만들던 공장지대가 어엿한 갤러리 촌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곳을 철거하려던 당국에 맞서 젊은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던 곳이다.

798이란 말은 이곳 공장지대 주소였는데 예술구 이름으로 굳어졌다. 온통 공장의 흔적이 자욱하지만 서서히 젊은 예술가들의 정서와 혼이 깃든 작품과 작업실의 땀내가 짙어 가고 있다.

희망공정을 불러일으킨 세하이룽(謝海龍)의 유명한 사진이 걸려 있는 갤러리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위대한 영도자 마오주석 만세 구호가 있던 공장이다.

길가 유리창문에 비정상적으로 신체 사이즈가 긴 아가씨와 옆에서 재롱 피며 엎드려 있는 아이가 보인다. 거울 속에 갇혀 있지만 주변 공장 굴뚝이 담겨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파이프라인과 수평선을 만들어낸 벽 속에 붓 칠한 모습이 섬찟하다. 벽화 앞에 자란 나무들을 따라 낙엽을 쓸고 있는 청소부조차 예술적으로 어울린다. 벽마다 이렇게 뜻 모를 '자기 멋대로'의 그림들이 수도 없이 많다.

공장 담벼락마다 불조심을 알리는 문구가 그려 있다. 예술가들의 재치 있는 붓 칠이 더해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화랑이 하나 있다. 마침 승덕대왕 동종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경극 가면들도 예술 작품으로 승화됐다. 화랑 앞 사자조각상에 덧칠한 모습도 있으니 매우 상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작가의 작품인가 보다.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소재로 만든 조형물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붉은색만으로 만든 기형적으로 긴 사람의 표정이 재미있다.

좁은 골목 안에 진시황 조형물이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도교의 삼청신 중 하나인 듯 보이는 복숭아와 지팡이를 든 조각상이다. 진시황과 병사들이 있고 12지지의 동물도 있다.

한쪽 구석에 처음에는 손바닥이라 생각했던 긴 혓바닥 위에서 춤 추는 댄서가 있어서 놀랐다. 세치 혓바닥 위에서 농락 당하는 모습과 각진 턱과 커다란 얼굴, 반질반질한 머리이니 중국 고위 간부를 떠올리게 된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빚은 작품인 듯하다.

공예품이나 책, 캐릭터 옷 등을 파는 노점이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섞여 혼잡하면서도 활기가 넘친다. '798'이라는 숫자를 멋지게 도안한 티셔츠를 판다.

한 창고로 들어서니 주사위 모양으로 꼭지점이 바닥에 있는 정육면체가 나타난다. 각 면마다 16개의 정사각형 속에 특이한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 있다. 온몸이 묶인 채 연한 파란색의 고뇌하는 인간이 서 있다.

투명 유리와 빨간색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공중전화 박스는 사진을 찍으면 예쁜 배경으로 제격일 듯싶다. 공중전화 옆 커피숍 문이 재미있다. 커피 원두가 쌓여있고 흰색의 잔으로 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군수공장에서 예술거리로 변한 베이징 798예술구 모습

좁은 골목 안으로 조소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사 시리즈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주로 동을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머리에 쓴 금색 덮개가 인상적이다.

한나라 시대의 번마(奔馬) 조각상이 한가운데 놓여 있다. 번마란 '달리는 말'이라는 뜻인데 국가 유물로 지정된 기와의 내림새인 마구리 문양 중에 말에다가 상상력을 발휘해 무사를 함께 만들어 형상화했다.

귀여운 팬더를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어린 소녀의 얼굴도 있다. 둥근 원 속에 들어간 팬더들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 봐도 모르겠다.

한 꼬마 소녀가 약간 수줍은 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머니는 연신 이런저런 주문을 하며 소녀의 사진을 찍는다. 아이도 귀찮지 않은 듯 착한 모습이다. 웃기도 하고 약간 재롱을 피우는데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인상도 좋다.

젊은이들이 해학적이다 못해 약간 흉물스럽기조차 한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조형물 뒤편에 웃기는 캐릭터들이 앉아있는데 발가락과 손가락이 아주 귀엽다. 흰옷을 입고 빨간 머플러로 매듭을 짓고 있는데 그 표정도 다 제 각각이다.

거리 한곳에 위치한 윈난 성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 상형문자인 동바문자 캐릭터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동바문자 상품을 진열하고 그 문자들로 벽도 꾸몄다.

하얀 벽에 중국(中国)이라고 흰색 칠을 하고 그 사이에 세계 각국의 국기들을 그려 넣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중국 속에 세계가 있다'거나 '하나의 꿈(同一個夢想)'을 표시하려고 그려 놓은 듯하다. 거무튀튀한 벽에 도토리(?)같은 녀석이 앙증맞게 그려 있다.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 앞인데 어딘지 중국답지 않은 모습의 인형이 있다. 아프리카 느낌도 나는데 익살스럽고 귀엽다. 중국인민복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의 조각상이 일렬로 서 있다.

젊은 예술인들의 작업현장이면서 동시에 전시공간인 이곳이 자본의 힘에 의해 상업화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된다. 군수공장이던 798예술구가 예술과 문화, 그리고 상업까지 결합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있는 그대로의 공장에서 작업하던 곳에서 공장을 때려부수고 현대식 건물을 짓고 자본이 침투한다면 더 이상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서 남지 못할 것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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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9 베이징 3 전통 가옥 대문 앞에는 신분의 비밀이 있다

9)     전통가옥 대문 앞에는 신분의 비밀이 있다

베이징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거리 중 하나인 난뤄구샹(南鑼鼓巷)을 찾았다. 지금은 술집도 생겼고 공예품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지만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곳이다.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전통가옥인 쓰허위엔(四合院)이 많다.

원나라 시대에 만든 마을인데 지금 거리 형태는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조성됐다. 원래 징이나 북을 팔던 거리인데 개혁 개방 이후 문화 거리로 변모했고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비교적 평범한 거리이고 한산하다. 경극 주인공을 그린 포스터가 문화 거리임을 말하는 듯 반긴다. 거리 양 옆은 골목길인 후퉁(胡同)인데 집집마다 홍등이 걸려 있다.

술집과 공예품가게가 늘어선 거리를 지나는데 유리창으로 공예품들 모습이 예쁘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집 나무 대문에는 글자가 새겨 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거리를 가릴 듯 솟아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떼지어 가는 여행객들도 보인다. 골목 안에 여관이 있다는 광고판이 보이고 거리 이름에 걸맞게 징과 북이 걸려 있다. 벽에는 단순하게 그린 말 그림이 보인다. 솜씨는 없어 보이지만 색감이 거리와 잘 어울린다.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걸었더니 땀이 샘 솟는다. 차길 옆에 걸터앉아 물 한잔 마시고 있는데 옆에 올림픽지원자 옷을 입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부채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곳 역사와 문화에 대해 듣고 싶어서 어렵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허우진시(侯金喜, 48세)와 말 트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묻기 전에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본 후 다시 오라는 것이다. 이미 보고 왔으며 베이징에서 중국어 공부했고 6개월 동안 중국여행을 했으며 중국문화가 좋아서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그때서야 겨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갑자기 대뜸 먼당후두이(門當戶對)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모른다고 했더니 약간 실망한 듯 하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정말 까칠한 사람이다.

골목 안쪽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더니 집 앞의 문을 찍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먼당후두이라고 하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문 위 아래에 있는 표시를 뜻하는 것이다. 문 앞에 집의 지위와 수준을 드러낸 것으로 집집마다 위에는 나무로, 아래에는 무늬를 새긴 돌을 둔다.

원나라 시대 쓰여진 <서상기(西廂記)>에 나오는 말로 소설 <홍루몽(紅樓夢)>에도 등장한다. 남녀가 결혼을 할 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이 서로 엇비슷한 상대와 만난다는 뜻의 고사 성어.


난뤄구샹(왼쪽 위, 가운데), 허우진시(왼쪽 아래), 먼당후두이(오른쪽)

또 다른 먼당후두이를 보여 주겠다고 한다. 따라 간 곳은 바로 허우씨의 집이었다. 먼당은 아래에 있는 돌로서 마치 북처럼 생긴 석고(石鼓)이고 후두이는 문틀에 대는 나무다. 특히 후두이는 원형이면 문관을 나타내고 방형이면 무관을 나타내며 크기와 개수에 따라 품계를 나타낸다. 1품에서 5품 벼슬은 6개, 6품과 7품 벼슬은 4개이며 나머지는 2개다.

허우씨 집 문은 아까 본 문과 먼당후두이의 문양이 달랐다. 바로 무관과 문관 벼슬을 한 사람의 차이라고 하는데 허우씨 집은 문관이 살던 집이며 8품 이하 벼슬을 하던 사람이 살던 집인 것이다.

이번에는 전통가옥인 쓰허위엔이 어떤 구조로 된 것인지 또 묻는다. 대문으로 들어가 3면 모두가 방이고 사각형 구조가 아니냐고 했더니 힐끗 쳐다보며 웃는다. 아니라는 뜻인데 중국문화 좀 안다고 우쭐한 것이 창피했다. 그러고 보니 말로만 하고 쓰허위엔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오른쪽 왼쪽 왔다 갔다 하며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갔다.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독립적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한옥처럼 삼면이 방이고 장방형으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한가운데에도 집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방을 러우팡(樓房)이라 하고 각 방위 별로 둥팡(東房), 시팡(西房), 난팡(南房), 베이팡(北房)으로 부릅니다. 방향마다 집값도 다르다.

허우씨 집은 서쪽 방향을 보고 있는 시팡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공간에 2칸 방과 거실, 부엌이 있다. 강아지가 마구 짖는데 귀염둥이란 뜻으로 과이과이(乖乖)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아들은 집에 없었는데 아들 친구, 여자 친구가 있다. 아마도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며느리일 듯싶다.

허우씨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의 발전이 이뤄졌지만 이곳에는 아직 일반 서민들의 '펑마오(風貌)'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갈수록 이런 서민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으니 허우씨 집에 초대된 것이 자주 생길 일은 아니다.

허우씨는 비둘기 날리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옥상에 비둘기를 키운다. 베이징 사람 특유의 얼화를 섞어 '허핑더걸(和平的鴿兒)' 보러 가자며 방긋 웃는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쓰허위엔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명청 시대에는 부자 마을로 고관대작들이 살았으며 청나라 말기에는 북양군벌의 터전이었으며 국민당 총재이던 장제스도 살았던 곳이다. 허우씨 말처럼 베이징이 발달하면서 신흥부자들은 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아파트나 별장에서 살고 이제는 일반 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전통의 향기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10) 무료사우나 호수에 노을이 지다 

베이징 구궁(故宮) 서쪽 편에는 호수가 있다. 아래쪽부터 난하이(南海), 중하이(中海), 베이하이(北海)가 있고 도로를 건너 쳰하이(前海)와 허우하이(後海), 그리고 가장 북쪽에 시하이(西海)가 있다.

허우하이로 가는 길에 옌다이세제(煙袋斜街)가 있다. 세제는 경사진 길이고 옌다이는 담뱃대이니 원래 무슨 동네였던지 짐작이 간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유럽풍 음식점도 많고 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많다.

이 길거리에는 시장바닥처럼 토속적인 먹거리와 민속 공연 등 볼거리가 많다. 하늘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종이우산으로 살포시 햇살을 가린 아가씨들이 거리에 나타났다.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것뿐이라는데 놀러 나온 모습치고는 꽤 꽃 단장이다. 더운 날씨에 기나긴 옷을 걸쳤는데도 얇디 얇아 바람은 잘 통하지 싶다.

옌다이세제를 빠져 나와서 조금 가면 인딩챠오(銀錠橋)가 나온다. 이 다리 아래 물 위로 배가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하천 다리와 비슷하다. 쳰하이와 허우하이를 가르는 다리다.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니 끊어진 것은 아니고 두 호수는 하나인 셈이다.

첸하이 호반 길에는 고급식당이 줄지어 있고 야외 탁자가 놓여 있다. 자리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니 맑고 평화롭다. 연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배를 타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간혹 헤엄 치는 사람도 보인다.

거리를 마냥 여유롭게 걷기에도 좋다. 이곳은 밤이 되면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다. 호수를 바라보며 연인들이나 회사동료들과 회식도 하는데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밤거리로 유명하다.

다시 쳰하이를 거쳐 허우하이 호반을 따라 산책을 했다. 호수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배가 쏜 살처럼 지나가고 버드나무 흐드러지고 바람까지 물 향기를 담아오는 듯 호반의 낭만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도 있고 삼륜차가 유혹도 한다.

호반 놀이터에서 농구도 하고 탁구도 치는 모습이 정겹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웃통을 벗었다. 아예 호수 속으로 들어가 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 푹푹 찌는 베이징 여름에 웃통 입고 있는 게 미덕이라고 아무리 소리쳐 본들 소용없다.


허우하이 야경(왼쪽), 옌다이세제(오른쪽 위), '무료 사우나'(오른쪽 가운데), 시하이(오른쪽 아래)

언젠가 물 한 병을 사면서 ‘정말 덥다’고 했더니 가게 주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몐페이더쌍나(免費的桑那)’라는 말 듣고 한참 웃었다. ‘공짜 사우나’라는 말이니 정말 베이징 여름을 이처럼 더 멋지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경찰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또 어쩌면 중국이라 할 수 있다.

허우하이 호반을 돌아 건너편으로 갔다. 어느덧 서편 하늘로 불그스레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호수에 떠 다니는 놀잇배에도 어스름이 일기 시작한다.

호수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데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에 물오리들이 바글바글하다. 길에서 던져주는 모이를 먹으려고 바삐 날개 짓을 하고 물밑에서 다리를 총총거리며 다가오는 오리들이 귀엽다. 긴 목과 동그란 머리, 주둥이가 모두 수면에 비친 모습이 마치 문고리와 비슷하다.

물풀이 자란 곳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물풀들이 물결 따라 조금씩 살짝 움직이고 있다. 호수 속을 보고 있는데 작고 둥근 원 하나가 비쳐서 하늘을 쳐다보니 둥근 달이 떠올랐다. 달의 자태가 물줄기를 따라 하얗게 호수를 달구고 있다.

밤이 되자 거리는 조명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허우하이 서쪽 길을 들어서니 육각 가로등이 호수를 따라 밝게 빛나고 있다. 가로등 밑으로 낭만적인 가로수 길을 따라 사람들 모두 하늘 높이 솟은 둥근 달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

길을 따라 술집들이 조명을 밝히고 바깥으로 테이블을 내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집 홍디(紅邸)는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조명 간판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하철을 타려고 시하이로 가는데 길 한복판에 특이한 조명이 반사되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고 있으며 자전거와 차량도 지나친다. 맞은 편 술집에서 빛을 쏘아 만든 가게 이름이었다. 호객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이겠지만 아주 독특한 발상이다.

시하이는 다른 호수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고 한적하다. 사람들이 호반에 일렬로 늘어앉아 낚시를 하고 있다. 한밤에 즐기는 오락이고 소일거리일 듯싶습니다. 건너편 구러우(鼓樓)에서 비친 조명이 호수에 잠겨 있다.

올림픽 노래인 베이징환잉닌(北京歡迎您) 뮤직비디오를 보면 베이징에 있는 명소가 총 출동하고 가수들도 대거 참여했다. 우리나라 가수 장나라도 참여했는데 바로 구러우에 올라서 노래를 부른다.

베이징에 가면 가끔 허우하이를 둘러보는데 갈 때마다 새롭다. 호수가 있기도 하고 관광객들도 많지만 서민들의 놀이터이자 쉼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종일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아프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11) 매미 원숭이와 뽀뽀하는 조롱박, 춤 추는 마스코트 

베이징 톈탄 공원 부근 광밍루(光明路)에 징청바이궁팡(京城百工坊)이라는 민속공예백화점이 있다. 민간예술가나 공예가들이 가게를 열어 작품들을 파는 곳dl다. 공예품을 직접 제작하는 곳이 있어서 재미가 쏠쏠하다.

빨간 문 위에 조롱박 하나가 대롱대롱 걸려 있다. 조롱박을 이용한 공예인데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넣는 뤄화(烙畫)인 탕후루(燙葫蘆)입니다. 쉬칭(續清) 아주머니는 조롱박에 뜨거운 인두질을 보여주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한국 사람들에게 공예기술을 보여주려는 마음이 정다운 이웃집 아주머니 같다.

작은 공간의 가게에 뽀뽀하는 모습, 담배 피는 모습, 꽃병처럼 오목하고 볼록한 모양새를 절묘하게 이용한 모습, 마오쩌둥 등 유명 인물들 얼굴까지 즐비하다.

종이오리기 공예인 졘즈(剪紙)도 있고 병 안쪽에 그림을 그리는 비옌후(鼻煙壺)도 있다. 매듭인 중궈제(中國結), 얼굴만 만들어 작대기에 꽂는 점토공예인 샤오몐런(小面人), 작대기 없이 만드는 토우인 니런(泥人), 동물 털로 뜬 자수인 마오슈(毛繡) 등 다양한 공예와 만날 수 있다.

두루 둘러보다가 아주 독특한 공예와 만났다. 매미의 허물로 만든 마오허우(毛猴)는 청나라 말기 남경인당(南慶仁堂)이라는 약방에서 처음 만들었다. 중의(中醫)의 약재로 쓰던 것으로 동물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털 난 원숭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팔다리와 머리는 주로 허물을 벗은 매미(蟬蛻)를 이용하고 몸체는 가을에 피는 자목련(辛夷) 꽃 봉우리, 표면은 동물이나 식물의 솜털(絨毛)을 사용해 만든다. 아주머니 두 분이 껍질을 벗고 변태를 한 매미를 꺼내 보여 준다.

유리병 속에 들어선 매미 공예품들을 하나하나 보니 참 신기한 것이 많다. 전통생활을 표현하는 것이 많은데 혼례 장면도 있고 생일잔치 장면이나 가마 끄는 장면, 길거리 먹거리를 먹는 장면, 가무를 즐기는 장면도 흥미롭다. 탁구, 철봉, 역도하는 장면도 신기하다. 원숭이가 된 매미가 볼수록 정겨운 캐릭터로 살아 있는 듯하다.

바이궁팡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면 전통공예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 탕후루와 마오허우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재미난 공예인 쭝런(鬃人)를 알게 됐다. 인터넷을 뒤져서 쭝런 보유자의 주소를 찾았다. 스차하이(什刹海) 근처 둥관팡(東官坊) 후퉁으로 달려갔다. 무턱대고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공예대사 칭호에 어울리는 바이다청(白大成)선생은 물 한 잔을 내어 주며 반갑게 맞아 준다.


탕후루(왼쪽 위), 마오허우(왼쪽 가운데), 쭝런 올림픽마스코트(왼쪽 아래), 바이다청 선생(오른쪽)

쭝런의 복장은 대부분 경극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먼저 말문을 연다. 쭝런은 점토로 머리와 받침대를 만들고 수숫대나 참깨대로 몸통을 만든 후 종이나 비단으로 옷을 입혀 만드는 것이다.

거실이자 작업실에는 경극박물관을 방불하듯 사방에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백사전의 주인공들이 전시돼 있다. 유비, 관우, 장비는 금방 알아봤는데 그 사이에 연한 분홍색 옷을 입고 선 장수가 낯설어 보인다. 할아버지가 ‘뤼부’라고 하는데 한참 생각해 보니 여포였다. 조조도 있는지 물으니 위쪽 구석에 있다고 한다.

서유기의 손오공을 쟁반 위에 올리고 나무작대기로 쟁반을 두드리니 빙빙 돌기 시작한다. 두드리는 소리는 경극에서 전통 악기 반주 소리와 비슷하다. 나무 작대기를 들고 두드려 봤다. 정말 신기하게도 손오공이 몸을 곧추세운 채 돌아가는 것이 참 말을 잘 듣는다. 쟁반에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쓴 반중희(盤中戱) 붓글씨가 벽에 걸려 있다.

쭝런이 언제부터 민간에서 생겼는지 물었다. 청나라 말기에 와서 지금의 민간예술이 대부분 시작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경극이 건륭제 시대 생겼는데 왜 청나라 말기에 생겼냐고 묻자 경극도 건륭제 때에 역사에 나타나긴 했지만 도광제 시대에 이르러 비로서 본격적인 경극이 나타났다고 한다.

바이선생은 1939년 생으로 만주족이다. 민간예술은 대체로 가전되는데 젊은 시절 병을 앓게 되면서 자신의 취미인 그림과 서예를 즐기다가 우연히 배우게 된 것이다. 쭝런은 2007년 6월, 베이징 시의 무형(非物質) 문화 유산으로 지정됐고 바이 선생만이 유일한 쭝런 보유자다.

쭝런은 다른 민간예술가와 달리 외부에 작업실이나 예술품을 파는 가게가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계를 위해 문화거리마다 가게를 두는데 비해 특별한 주문이 있을 경우를 빼고는 상품처럼 만들지 않는다.

경극 인물들 사이로 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福娃)가 있다. 중국 매체가 기획해 만들었는데 2마리는 언론매체가 빌려갔고 3마리가 나란히 서 있다. 베이베이, 잉잉, 니니가 뱅그르르 돌고 고개도 살랑살랑 흔들며 펼치는 공연은 앙증맞고 단조롭다. 그렇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율동이야말로 치열하게 예술혼을 담은 선생의 보물일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중국 민간예술을 맛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1시간 30여분 동안 칠순의 예술가와 독대를 하면서 우리네 할아버지로부터 옛 이야기를 듣는 듯 포근했다. 문밖까지 배웅하며 그윽한 눈매로 손을 잡아 주는 마음도 잊어지지 않는다.

어디에 묵느냐 묻고 골목을 빠져 나가는 길까지 알려 주는 배려에 너무나 감사했다. 무턱대고 연락 없이 찾아가느라 선물도 마련하지 못했는지라 다음에 꼭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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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8 베이징 2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장성이 많다

5)   베이징 외곽에 아직 미개발 창청이 많다

베이징 외곽은 해발 2천 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아직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창청(長城)의 흔적이 많다. 잘 찾으면 미개발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창청과 만날 수 있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려 미윈(密雲)현 신청즈(新城子) 진에 있는 창청을 찾았다. 서서히 산 정상으로 창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나무에 열매가 열렸고 이방인의 방문에 산새가 놀라 날아가고 꽃도 피어 있다.

수풀을 헤치고 점점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돌들이 무너진 내린 길을 따라 길게 뻗은 창청에 올랐다. 가파른 창청 돌을 딛고 올랐는데 다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창청 벽에 기대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멀리 능선을 이어가며 창청은 끝도 없이 펼쳐 있다. 망루는 우뚝 솟았으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파란 하늘을 가리기도 한다.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자연상태로 방치된 창청을 바라보니 길도 없고 이름도 없지만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다시 오던 길을 내려갔다. 산을 내려와 멀리 조금 전에 올랐던 제일 꼭대기 망루를 보니 정말 멀게만 느껴진다. 나뭇가지들에 가린 듯 아스라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창청의 위용이 느껴진다.

산길을 내려오는데 색다른 빛깔의 과일이 있어서 하나 땄다. 사과처럼 보이기도 하고 배처럼 보이기도 하는 핑궈리(蘋果梨)라 부르는 과일이다. 해발 2천 미터 가량 되는 산골 마을에 이 사과배가 있다니 신기했다. 살짝 옷에 문지르고 맛을 보니 사과 맛보다는 더 시원하고 배 맛보다는 달콤하다.

길가에는 창청 돌을 가져다 만든 창고가 보인다. 다 쓰러져 넘어가는 나무와 멀리 창청의 모습을 뒤로 하고 마치 보물 창고인 양 버티고 섰다. 창고 너머로 나무가 수놓은 파란 하늘이 정말 멋진 곳이다. 다른 곳은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데 비해 이 산골자락은 창청이 있지만 여느 다른 지역처럼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는 동네다.

하늘이 새파랗게 그림을 그리면 늘 창청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시내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시자즈(西柵子)를 찾았다.

농가식당이 있어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마당에는 말린 옥수수를 대롱대롱 걸렸고 호박도 넝쿨째 매달린 산골 농가가 토속적인 분위기다. 마당에서 바라보니 능선마다 창청이 이어져 있고 봉우리마다 망루가 봉긋하게 솟아 있는 명당 자리다.

‘나로부터 창청 보호’라는 말과 함께 ‘미개발창청 등산금지’라고 써 있다. 옥수수 밭을 지나 계곡 물이 졸졸 흐르는 길을 따라 가니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등산로가 있다. 길게 자란 풀들이 계속 팔과 다리를 긁는다.

갑자기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독거미가 나타났다. 새까맣고 흉물스럽게 생긴 거미가 길을 막아 섰으니 등골이 오싹하다. 연한 하늘색 빛깔이 살짝 감도는 엉겅퀴처럼 생긴 꽃에는 벌이 대롱 매달려 꿀을 빨고 있다.

1시간이나 오르막 길을 걸어 올랐다. 나무에 가려 어두침침했는데 햇살이 보이기 시작하니 정상에 다 왔나 보다. 창청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잠시 땀을 닦고 주위를 살피니 그야말로 감동적인 모습이 펼쳐 있다.

길을 따라 가파른 능선으로 옮겨 갔다. 절벽을 따라 벽돌이 그대로 잘 보존된 상태이고 풀과 나무들이 키만큼이나 높이 자라 있다.

창청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산하이관에서 시작된 창청이 베이징 외곽으로 오면서 서북방향과 서남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창청도 보인다. 이곳은 ‘매도 날아오르다 나자빠진다(鷹飛倒仰)’는 졘커우(箭扣) 창청의 북쪽 자락이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창청 사잇길을 따라 갔다. 산 능선을 내려갔다가 가파르게 오르기를 반복한다. 길이 제 멋대로라 망루 가운데를 통과하기도 하고 옆길로 우회하기도 했다.

망루에는 벽돌들이 부서져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지만 서로 잘 엮여 있어 탄탄해 보인다. 군데군데 보이는 낙서는 눈엣가시인데 미개발창청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멀리 산 아래를 굽어보면 망루와 망루를 연결해주는 성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살아난다. 다른 곳과 달리 사람의 손이 타지 않고 자라난 나무들과 벽돌, 화강암을 뚫고 자라는 거센 풀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생명의 신비를 보여 주고 있다. 내려가는 길은 꽤 위험하다. 각도가 높으니 벽돌이 무너져 귀퉁이에 있는 나무를 잡고 내려와야 한다.


사과배(왼쪽 위), 젠커우 장성(왼쪽 가운데), 사향하늘소(왼쪽 아래), 신청즈 장성(오른쪽)

배낭을 메고 내려가려고 할 즈음 성벽을 타고 오르는 징그러운 벌레 하나가 보인다. 수십 개의 가는 발을 움직이며 살살 벽돌을 타더니 성벽 너머로 쏙 사라진다.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양이 징그럽기도 하지만 이런 높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소름이 돋을 정도다.

와르르 무너진 성벽이 보인다. 무너진 채로 방치됐으니 대포를 맞은 듯 잔해가 나뒹굴고 있다. 언제 이렇듯 폐허가 된지 모르나 일일이 다 보수하지는 않는 듯하다.

등산로를 사뿐사뿐 내려가는데 선배가 장수하늘소가 있다고 소리친다. 장수하늘소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인데 실물로 본 적이 없으니 신기했다. 크고 작은 발이 8개이고 다른 곤충에 비해 날씬한 편으로 머리 쪽으로 빨갛게 왕관을 쓴 모습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장수하늘소가 아니라 벚나무사향하늘소였다.

생전 처음 보는 거미가 1미터는 넘는 거미줄을 쳐 놓고 있다. 수백 개의 다각형이 서로 얼키설키 엮여 있다. 거미줄 한가운데 딱 자리를 잡고 바람에 날리는 먹이들을 기다리는 거미도 한적한 창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별 사탕처럼 앙증맞은 흰 꽃잎이 움큼 채 피었다. 열 움큼이 한꺼번에 자라 반짝이는 별빛처럼 빛나고 있고 숨은 듯 벌 하나가 붕붕 휘젓고 다니고 있다. 성벽 아래 나무 그늘과 함께 살아가는 벌레와 꽃을 따라 서서히 내려온다. 파란 하늘이 있는 가을이 오면 미개발창청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다.

6)   베이징의 별미 당나귀, 민물 가재 그리고 비둘기

베이징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별미와 만난다. 혐오스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소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요리를 먹을 때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다오(蟹島)라는 공원이 있다. 세(蟹)는 게이니 게섬이라는 곳이다. 세다오에서 가장 큰 식당 2층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중국 역사를 전공한 친구가 '하늘에는 용 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天上龍肉, 地上驢肉)'가 제격이니 당나귀 고기를 먹어 보라고 한다. 하늘에 용이 살 리 없지만 용 고기에 비교하니 엄청난 찬양이다. '당나귀를 끌고는 못 가지만 배에 넣고는 간다'는 속어도 있다는데 맛이 좋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오향장육과 비슷한 형태로 썰어 나온 당나귀고기는 씁쓸한 맛이 감돌긴 하지만 나름대로 향긋했다. 육질이 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뒷맛도 살아나니 먹을 만하다. 고단백 저지방으로 음허를 보양하고 양기를 북돋우는 음식으로 중의에서도 손꼽는다.

홍등이 붉게 빛나고 있는 구이제에 마라롱샤(麻辣龍蝦)를 먹으러 간다. 이곳 민물가재요리는 시민들의 야식으로 손색 없고 인기도 최고다. 원래 명칭은 ‘제사 지낼 때 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구이제(簋街)인데, 쓰기도 복잡해 발음과 성조가 같은 귀신 귀(鬼)를 쓰니 사람들이 귀신 나오는 거리라고도 한다.

양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물가재는 청결에 문제가 있다고도 하는데 여전히 즐겨먹는 야참이다. ‘마라’라는 말이 너무 매워 입이 다 얼얼하다는 뜻인데 쓰촨 요리에 많이 쓰는 말이다. 똑 쏘고 매운 맛이 강렬하니 맥주와 함께 먹으면 맛 있다.

한 마리에 2위엔에서 5위엔까지 하는데 주문하기 전에 미리 살펴보고 크기를 알아두면 좋다.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싱싱한 지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갈수록 비싸고 크기도 작아지는 것이 안타깝지만 마라룽샤의 맛은 때때로 생각나는 별미다.

구이제 한 모퉁이에 개구리 요리를 파는 곳이 있다. 식용개구리를 뜨거운 기름에 넣고 맵고 쏘는 듯한 향료와 재료를 넣어 만든 찬쭈이와즈(饞嘴蛙仔)다. 찬쭈이라는 말은 식탐을 뜻하고 와즈는 개구리이니 이름조차 요상하다.

진구이샤오산청(金簋小山城) 식당이 찬쭈이와즈 요리를 처음 개발한 본점이다. 점심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고추와 야채도 맛 있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구리다리는 마치 닭고기처럼 쫄깃하고 씹는 맛이 좋다. 그래서 밭에서 나는 닭고기라는 톈지(田雞)는 개구리를 뜻하는 말이다.


비둘기요리(왼쪽), 당나귀고기(오른쪽 위), 민물가재(오른쪽 아래)

이번에는 창핑구(昌平區) 양팡진(陽坊鎮)으로 비둘기요리를 먹으러 간다. 바로 장거즈(醬鴿子)를 파는 식당이다. 된장 맛이 약간 나면서 바삭 구운 비둘기 요리가 아주 고소하다.

통째로 비둘기 형체가 그대로 다 드러나는 것은 처음 본다. 상추 위에 담겨 적나라하게 나오니 약간 놀랐다. 한 마리 가격이 26위엔이니 가격도 싼데다가 맛도 정말 바삭바삭하고 살 맛도 고소한 것이 아주 훌륭하다.

베이징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독특한 별미를 맛 보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언제나 스스럼 없이 맛 보면서 중국 문화에 대한 체험을 늘려 가려고 한다.

7)   천년 고찰 안에 들어선 가장 예쁜 찻집에 가다

서점에서 우연히 베이징에서 가장 예쁜 찻집인 밍후이차위엔(明慧茶院)을 알게 됐다. 책 제목도 저자도 잊었지만 찻집 이름만은 또렷이 노트에 적었던 것이다. 베이징 서북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양타이산(陽臺山) 남쪽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다쥐에쓰(大覺寺)에 있는 찻집을 찾았다.

이 사원은 요 나라 시대인 1068년에 거란족이 처음 세운 사원이다. 다쥐에쓰에 들어서니 고목들이 하늘까지 치솟아 햇살을 가리고 있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있는 연못 위 다리를 지나면 중러우(鐘樓)와 구러우(鼓樓)가 자리를 잡고 있다.

톈왕뎬(天王殿) 마당에는 서까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미륵불이 자리잡고 있다. 좌우에는 수호신인 사대천왕이 각각 자리를 잡고 있는데 손바닥에 탑을 들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처마 밑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풍경이 고즈넉하게 걸려 있다.

다슝바오뎬(大雄寶殿)과 우량셔우포뎬(無量壽佛殿)에 걸린 황제 친필 편액은 그 필체가 묵직하기도 했지만 휘감고 있는 용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벗겨지고 너덜너덜한 청색의 편액 바탕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탓에 은근한 색채를 띠고 있다. 비늘 사이로 살아있는 듯 반짝거리는 빛깔에는 연한 붉은색이 여전히 묻어 있다.

무거래처(無去來處)는 이름처럼 300년을 한 자리에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석가모니 불상을 비롯 삼존불이 나란히 앉아 있다. 마당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량셔우포뎬 편액 동정등관(動靜等觀)은 비슷한 나이일 터이지만 용의 연붉은 빛깔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군데군데 약간 파란 색조가 드러나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청룡을 표현한 듯 보인다. 문과 창살 무늬도 매우 아름답다. 수많은 원이 서로 고리를 엮어 이뤄진 문양도 기하학적으로 절묘하고 유리창에 비친 나무를 보는 재미도 있다.

천년 고찰 한구석에 열린 조그만 문을 지나 골목을 따라 간다. 밍후이차위엔 간판이 단정한 필체로 걸려 있다. 문을 따라 조용히 들어가니 마당 곳곳에 차 탁자들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투명한 유리 탁자에 홍등과 나무가 비친 모습이 이 찻집 분위기를 더욱 산뜻하게 만들고 있다.

문에는 노란색 등 초롱이 걸려있고 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며 연꽃이 화분 안에 넓은 잎사귀를 드러내고 있다. 사각형 홈을 따라 물길을 만들었으니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새소리와 매미소리도 지저귀니 자연 그대로 어우러진 찻집이라 할만하다.

화장실조차 고급 레스토랑보다 더 깔끔한 모습이다. 둥글고 흰 항아리에 꽃무늬를 넣어 화사해 보이며 거울도 맑은 차처럼 투명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정말 ‘가장 예쁜 찻집’의 이름값을 한다.

아가씨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방마다 지키고 있다. 고양이가 의자 위에서 졸음에 겨운 듯 앉았다. 정면 큰 방인 쓰이탕(四宜堂)에는 전통악기인 구정(古箏)소리가 흘러나오고 벽이나 탁자마다 예쁜 다구(茶具)들이 진열돼 있다.


용 문양 편액(왼쪽 위), 사원 찻집(왼쪽 가운데), 샤오싱 술 항아리(왼쪽 아래), 찻집 마당(오른쪽)

선(禪)과 어우러진 차(茶)를 표방하는 멋진 찻집으로 항저우의 룽징(龍井)차로 유명하다. 차 잎이 주는 색(色), 향(香), 미(味)를 이르러 이넌싼센(一嫩三鮮)이라 합니다. 어리고 부드러운 찻잎으로 세가지 맛을 낸다는 의미인데 아마도 멋진 환경,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분위기이니 풍(風) 하나는 더 보태야 할 것입니다.

한 아가씨에게 언제 생긴 찻집이냐 물으니 199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된 찻집은 아니다.

맞은편 샤오싱차이관(紹興菜館)은 저장(浙江)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샤오싱의 유명한 황쥬(黄酒)인 뉘얼홍(女兒紅) 항아리가 처마 밑에 줄줄이 놓여 있다. 뉘얼홍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 중 하나로 루쉰(魯迅)의 고향 샤오싱 특산이다.

서산을 넘어가는 강한 햇살은 대문과 처마, 항아리와 창살의 붉은 빛 감도는 색깔에 진하게 녹아 있다. 나뭇가지 그림자로 흑백의 조화를 이루니 천년 고찰 안에 자리잡은 찻집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부처의 열반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다고 해서 찾았다. 부처는 무우수(無憂樹)에서 태어났으며 보리수(菩提樹)에서 득도했고 두 그루의 사라수(娑羅樹) 사이에서 열반했다.

다쥐에쓰의 사라수는 수령이 오백 살이 넘는다. 잎이 7개라 칠엽수라고도 불리는데 밝은 빛을 받아 잎사귀 모양이 잘 드러난다. 잎새 사이에 귀여운 알맹이 같은 열매가 한 줄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이다.

베이징 서편에 있는 천년 고찰의 은근한 분위기를 보니 아침나절에 와 보고 싶다. 저녁을 먹고 한밤에 다시 와도 좋겠다. 햇살과 그림자도 멋지지만 등불에 도취하고 전통 악기에 심취하며 맛깔스런 차를 마시면 시와 노래를 읊을 지도 모른다.

8)   라오서 차관의 전통문화 버라이어티 공연 

베이징 첸먼(前門) 시다제(西大街)에 있는 라오서(老舍) 차관에서는 매일 저녁 7시 40분부터 변검을 비롯해 잡기, 마술, 경극, 샹셩(相聲) 등 버라이어티 공연이 벌어진다. 차를 마시며 중국의 전통공연과 민간기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청나라 말기와 민국 시대를 거치며 이곳 차관에서는 길거리에서 토론도 하고 강연도 하는 찻집이다. 거리에서 라오얼펀(老二分)의 가치로 큰 사발에 차를 팔던 곳이다. 그 옛날 향수, 즉 서민들의 한잔 차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당시 금액 그대로 맛 있는 뜨거운 차를 팔고 있는데 거의 무료 서비스에 가깝다. 얼펀이면 2위엔의 10/1 가격이니 굳이 우리 돈으로 따지면 40원 정도다.

라오서는 중국 현대 문학계에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극작가다. 본명은 서경춘(舒慶春)이며 만주족인데 베이징 태생으로 1888년에 태어나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6년까지 살았다. 지금의 차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988년에 문을 열었는데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공연은 1시간 30분 가량 쉼 없이 진행된다. 입장료는 100위엔을 기준으로 더 비싼 자리도 있고 싼 자리도 있다. 중국의 전통악기들이 모두 나와 분위기를 돋우는 합주 연주로 시작한다.

이어 고음을 내뿜는 악기로 날라리라고 하는 쒀나(嗩呐) 독주를 한다. 높은 소리를 내다보니 새소리를 자연스럽게 흉내 내기도 하는데 입 속에서 조그만 피리를 혀를 이용해 자유롭게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나팔 악기를 불며 연주하는 카씨(卡戲)라고 부른다.

차관의 숟가락에도 경극 가면이 새겨 있다. 이곳에서 경극을 관람할 수 있는데 깃발을 꼽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 영화 <패왕별희>를 떠올릴 수 있다. 경극은 삼국지, 백사전, 수호지, 손오공, 양문여장 등 옛날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는 긴 무대극인데 그 중 일부를 토막극으로 만든 것을 저즈씨(折子戲)라고 한다.

청나라 건륭제 및 가칭제 시대에 만주족 아이들에게서 유행하던 팔각고(八角鼓)와 현악기를 반주로 노래한 것이 유래하는 단셴(單弦)이다. 촛불을 입에 물고 노래하니 더욱 색다르다. 

서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랫가락과 리듬에 맞춰 민속무용을 추는 무희 3명이 나온다. 무희들의 춤사위는 궁중 무용 같기도 한데 긴 옷을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귀여운 춤이다.


라오서 차관 입구(오른쪽), 다완차(왼쪽 위), 소림무공 공연(왼쪽 가운데), 변검 공연(왼쪽 아래)

손으로 하는 그림자 놀이 셔우잉시(手影戲)로 중국에서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그림자 놀이를 하는 것에 묘미가 있다. 귀에 익은 팝송에 맞춰 코믹한 그림자 손길이 정말 신이 난다. 새가 부화하는 장면이나 오리와 강아지가 서로 싸우는 그림자도 재미있다.

아주머니 마술사의 마술 공연도 열린다. 헝겊을 이용한 마술인데 현란하지는 않아도 차관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린다. 외국인 손님을 무대로 올려 함께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대머리 아저씨의 항아리 돌리기다. 커다란 항아리를 자유자재로 이리저리 머리카락 하나 없는 머리 위에 올렸다가 몸을 움직여 돌리는 모습은 영 코믹하다. 박수 쳐 달라고 외치니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소림무공을 볼 수 있는 곳은 아주 많지만 이곳 라오서 차관에도 볼만한 소림 무공 시연을 만날 수 있다. 칼과 창으로 하는 무공도 있으며 이마로 쇠를 토막 내는 내공도 선보인다. 차관을 떠나갈 정도로 기합 소리가 우렁차다.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만담인 샹셩도 제법 인기가 있다. 말로 먹고 사니 사람들을 웃기는 것은 아주 쉽다. 다만, 까다로운 베이징 말로 하니 외국인들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 익숙한 노래에 맞춰 코믹한 연기가 분위기만으로도 재미있다. 마지막에 웃기는 한 대목은 파이피구(拍屁股)라고 하는데 피구는 축구선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엉덩이를 말합니다.

순식간에 얼굴, 즉 표정이 바뀌는 변검(變臉)이야말로 이곳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공연이다. 표정 변화의 무기는 역시 열 가지가 넘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흥미진진하고 폭소도 자아내는 공연에 목이 타면 차를 마시게 되는데 열 잔 이상은 마셔야 할 것이다. 베이징의 다양한 문화공연을 한군데 다 모아놓았으니 관람료가 아깝지 않는 좋은 공연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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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7 베이징 1 백 년 넘는 가게와 서민들의 먹거리가 수두룩하다

7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베이징원인(北京猿人)이 발견된 곳이며 춘추전국 시대 이전 서주(西周)의 봉국이던 계(蓟)나라가 베이징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며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영토였다.

계성(蓟城)이라 불리다가 서기 938년 거란(契丹) 요(辽)나라가 처음 도읍을 정한 후 금(金), 원(元), 청(请) 등 북방민족이 중원을 통일하고 수도로 삼았다. 한족의 명(明)나라도 초기 도읍인 난징(南京)을 떠나 베이징으로 천도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의 신중국 역시 수도로 정했으니 천년 이상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1)   세계 최대의 천안문광장과 궁궐 속으로  

수도 베이징 한복판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늘 혼잡하고 산만하다.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복잡한데다가 정치 행사라도 있으면 긴장감이 감돌고 검문과 검색이 강화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중국의 중심지에 온 감회를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구궁(故宫) 방향을 따라 바라보면 마오쩌둥 주석의 얼굴이 1년 사시사철 변함 없이 걸려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오성홍기가 우뚝 걸려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국기를 게양하고 하강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적인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광장을 지나 구궁(故宫)으로 향했다. 학생들이 여행을 왔는지 떼를 지어 지나갑니다. 정문인 뉴먼(午門) 앞에는 황제나 황후의 복장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 10분이면 현상된 사진을 받을 수 있다.

구궁이 건립된 명나라 시대인 1420년에 이 문도 처음 세워졌으니 높이 12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자태가 육백 년을 이어 왔다. 이 앞에서 입장권을 사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복잡한 곳이다.

문을 들어서면 구궁에서 가장 큰 문인 타이허먼(太和門)이 보이고 그 앞에 돌다리인 진쉐이챠오(金水橋)가 보인다. 다섯 개로 갈라진 이 돌다리 아래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도록 조성된 궁(弓)형의 인공 하천이 흐른다.

양쪽으로 두 곳의 문이 있는데 그 중 전두먼(貞度門)으로 들어섰다. 문을 지나니 고궁에서 가장 큰 타이허뎬(太和殿)은 공사 중이었다. 중국 최대의 목조건축물로 황제가 등극하는 즉위식이나 결혼, 황후의 책봉, 전쟁 출정과 같은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중허뎬(中和殿) 앞에 앞다투어 내부를 보려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안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 편액이 걸려 있다. 불편부당 없이 정도를 걷는다는 의미다. 황제가 타이허뎬 행사 전후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내각을 접견하며 신하들을 알현하던 곳이다.

바오허뎬(保和殿)에도 황건유극(皇建有極) 편액이 걸려 있는데 황제가 불편부당 없이 중용을 지킨다는 의미이니 중허뎬 편액과 비슷한 뜻이다. 바오허뎬 앞에는 맹수의 얼굴문양이 손잡이인 항아리가 있다.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라 화재를 대비해 빗물을 담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반들반들하다.

바오허뎬 뒤쪽에는 거대한 암석이 하나 등장한다. 길이가 16.57미터, 너비가 3.07미터, 두께가 1.7미터로 200톤이 넘는 암석에는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용의 형상이 새겨 있다. 이름하여 윈룽석조(雲龍石雕)인데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옮겨 가져온 것이다.

황제 침궁(왼쪽), 텐안먼광장(오른쪽 위), 물항아리(오른쪽 가운데), 인공수로(오른쪽 아래)

황제의 대전을 지나면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던 곳으로 이어진다. 쳰칭먼(乾清門) 앞에는 동과 금으로 제작된 사자 한 쌍이 지키고 있다. 왼손으로 새끼사자를 누르고 있는 쪽이 암컷 사자이고 둥근 공을 오른손으로 누르고 있는 쪽은 수컷 사자라고 한다.

쳰칭궁(乾清宫)은 침궁(寝宫)으로 외국사신을 접견하기도 했다. 가로 9칸, 세로 5칸 크기인데 처마 아래 화려한 지붕받침에는 황제의 상징인 용 무늬 채색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과 금빛 용이 휘감고 있다.

황제와 황후의 침실을 지나면 황궁 후원에 이른다. 1만2천 평방미터 규모의 땅에는 많은 정자와 나무와 풀, 연못 그리고 인공 산으로 이뤄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입구인 톈이먼(天一門)은 세상의 만물은 물로 이뤄져 있다는 역경(易經)의 천일생수(天一生水)에서 따온 듯 하다. 파란 하늘이 모두 비치는 연못 속에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아주 예쁘다.  

고궁 북문을 나서면 붉은 성벽이 길게 뻗어 있다. 인공 하천이 흐르니 난공불락의 성벽이다. 명나라 이래 이 황궁은 전쟁으로 함락된 적이 한번도 없다. 세계 최대의 황궁답게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   백 년 넘는 가게와 서민들의 먹거리 

베이징의 첸먼다제(前門大街)는 5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리로 최근에 공사를 끝내고 새롭게 단장했다. 쳰먼이라 불리는 정양먼(正陽門)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패방이 높다랗게 서 있는데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패방을 지나면 차 없는 거리가 펼쳐진다. 카오야(烤鴨) 식당인 췐쥐더(全聚德)도 완전 탈바꿈했다. 유명인사를 비롯 많은 관광객들에게 오리 고기를 먹으려고 이곳을 찾는다. 1864년에 개업했으니 백 년이 훌쩍 넘는다.

바로 옆에는 두이추(都一處)라는 식당이 있다. 만두인 바오즈(包子)의 일종인 샤오마이(燒麥)를 파는데 1738년에 개업했다니 정말 오래된 곳이다. 청나라 건륭제가 식당 앞을 지나다가 백성들과 줄을 서서 맛을 보고는 입이 닳도록 칭찬한 후 친필 편액을 하사했다.

북으로 장식하고 곳곳에 벽화를 그려 옛 풍취를 한껏 살렸지만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 있다. 두이추 맞은 편 다스랄(大柵欄) 거리만 열려 있다.

다스랄은 원래 다자란이라 해야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다스랄(大石爛兒)로 발음하고 있다.

한 사람은 모자를 들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신발 수선을 하는 조각상이 있다. 모자를 든 조각상은 1817년 개업한 모자가게 마쥐위엔(馬聚源)이고 앉아 있는 조각상은 1858년 개업한 신발 가게 부잉자이(步瀛齋)다.

네이롄셩(內聯升)은 1853년에 개업했는데 가게이름의 내(内)는 궁궐 안을 뜻하며 연승(聯升)은 ‘조정의 신발’이라는 뜻이다. 현판글자는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이며 공산주의자였던 궈모뤄(郭沫若)가 직접 쓴 것이다.

맹자 후손인 맹락천(孟洛川)은 고서에서 파랑강충이(青蚨)의 피를 돈에 묻히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뜻의 청부환전(青蚨還錢)을 상호에 써서 1893년 루이푸샹(瑞蚨祥)을 열었다. 1층 현관을 지나 비단 파는 곳으로 가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다. 알록달록한 옷을 보고 있자니 비단이 이렇게 예쁜 줄 미처 몰랐다.

다스랄에는 1669년에 문 연 약국인 퉁런탕(同仁堂)과 1908년에 만든 찻집인 장이위엔(張一元)도 있다. 1858년 톈진에서 문을 연 만두 브랜드인 거우부리(狗不理)도 있다.

위안스카이(袁世凱)는 만두를 서태후에게 바쳤는데 너무 맛이 좋아 ‘그 어떤 음식도 거우부리의 맛에 미치지 않는다’고 극찬했다고 전한다. 서태후 옆에서 만두를 들고 콧수염을 기른 위안스카이 표정이 코믹해 보인다.

1905년에 중국 최초의 영화인 정군산(定軍山)을 상영한 다관러우(大觀樓)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현대식 영화관으로 변했는데 영화제작자 임경태(任慶泰)의 조각상이 있다.

다스랄 거리 중간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토속 음식들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휘황찬란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맛깔 나는 동네가 있다.

졘빙(煎餅)도 부치고 옥수수도 찌고 감자도 볶고 러우빙(肉餅)도 튀겨 판다. 동그랗게 생긴 마퇄(麻團兒)이 있다. 찹쌀을 반죽해 깨를 입혀 기름에 튀긴 것이다.

골목 구석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민적 음식점인 바오두펑(爆肚馮)이 있다. 바오두는 소와 양의 내장을 재료로 만든 요리로 청나라 말기부터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양고기는 주로 서역에서 온 회교 무슬림의 전통 음식이다. 펑씨가 만든 바오두 가게도 회교의 상징인 칭전(清真) 두 글자와 함께 바이녠라오뎬(百年老店), 중화밍샤오츠(中華名小吃)라고 선명하게 써 있다.

바오두펑(왼쪽), 정양문(오른쪽 위), 서태후와 위안스카이(오른쪽 가운데), 왕푸징 야경(오른쪽 아래)

다하이(大海)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베이징자장면도 팔지만 주 종목은 루주훠샤오(鹵煮火燒)다. 토속 음식인데 청나라 말기 광서제 때 궁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큰 통 속에 갖가지 내용물을 하나씩 끄집어내더니 묵직하고 둔탁해 보이는 주방 칼로 잘게 썰고 있다. 두부도 있고 창자와 허파, 비계나 속살도 있다. 훠샤오라는 말이 불에 굽는다는 말이니 두부나 고기를 구운 후 국물에 푹 담근 듯하다. 약간 연갈색 빛깔이 도는 국물이 토속적인 냄새가 풍긴다.

두부나 고기를 끄집어내더니 빠르게 자르는 솜씨가 예술이다. 그릇 속에 같은 양과 개수로 정확하게 재빨리 배분한다. 혹시 양고기냐고 했다가 주인에게 혼 났다. 어떻게 양을 돼지와 비교하냐는 것이다. 고기를 다 썰어 넣자 그릇에 국물을 붓는다. 한 그릇에 12위엔 하는 요리를 먹으려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서로 받으려고 한다.

베이징에는 진귀한 먹거리가 많은데 왕푸징(王府井) 포장마차 거리가 대표적이다. 전국 각지의 다양하고 독특한 먹거리가 집합해 있는데 딱 보면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전혀 낯선 것도 많다.

너무 맛 있어 스님도 담을 넘어간다는 포탸오챵(佛跳牆)이 있으며 과일로 만든 사탕과자인 탕후루(糖葫蘆)도 있다. 얼음처럼 차게 해서 먹는 젤리인 빙라오(冰酪)에도 군침이 돌고 구운 옥수수인 카오위미(烤玉米)도 먹음직스럽다.

소나 양의 내장을 섞어 탕으로 만든 자쑤이탕(雜碎湯)이나 발효시킨 두부인 처우더우푸(臭豆腐)는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전갈, 번데기, 잠자리까지 꼬치에 꼽아서 만들어 파는데 역시 만만하지 않다.

궁중 간식인 검은 쌀로 만든 죽인 구이화즈미저우(桂花紫米粥)나 팥으로 만든 홍더우샤(紅豆沙)는 한 그릇 맛 봐도 무난하다. 신선한 우유를 뜨거운 불에 익혀 응고시킨 후 설탕을 넣어 만든 자셴나이(炸鮮奶)는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양고기나 소고기, 오징어를 불에 데친 꼬치도 입맛을 당긴다. 구운 빵 속에 고기를 햄버거처럼 넣어서 만든 샤오빙자러우(燒餅夾肉), 문어를 넣고 익혀낸 장위샤오완즈(章魚小丸子), 녹두를 묵으로 만든 챠오먼즈(炒燜子), 구운 만두인 졘자오(煎餃), 하얗게 생긴 중국식 소시지인 관창(灌腸)은 부담 없어 보인다. 후식으로 먹기 좋은 쌀국수인 궈챠오미셴(過橋米線)이나 거품 차라고 부르는 파오파오차(泡泡茶)는 입가심으로도 좋다.

생굴을 구워 파는 카오셩하오(烤生蠔)이나 오줌싸개라는 이름이 붙은 소고기 완자인 싸뉴뉴완(撒尿牛丸)에 이르니 한자도 어렵고 맛도 분간하기 어렵다. 마라탕(麻辣燙)은 매운 양념국물에 완자, 야채, 버섯, 두부 등을 넣어 만든다.

파인애플 속에 쌀밥을 넣고 쪄서 만든 보뤄판(鳳梨飯)은 색깔이 예뻐서 탐이 난다. 오리 피로 만들었다는 야쉐탕(鴨血湯)은 쳐다보기도 싫다.

왕푸징 둥화먼(東華門) 음식거리가 갈수록 깔끔하다. 가게마다 홍등이 걸려서 분위기도 돋우고 있고 요리사들도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다. 밤이 되면 이곳은 신기한 먹거리를 눈요기하고 가끔은 용기를 내 맛도 보는 낭만적인 관광지로 점점 변할 것이다.

3)   길고 좁고 짧고 넓고, 별의별 후퉁 다 있네 

베이징에는 무수히 많은 옛 골목길인 후퉁이 있다. 골목길의 정서가 많이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수천 개의 후퉁이 있다. 원나라 시대 도읍이 되면서 마을이 조성되면서 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몇 군데 재미난 후퉁을 찾아 가보자.

톈안먼 광장 남쪽에는 마오주석기념당(毛主席紀念堂)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 옆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후퉁이 있으니 쟈오민샹(交民巷)이다. 신중국 후 광장 한가운데 기념당이 들어섰지만 원래는 총 길이가 3킬로미터가 넘는 가장 긴 후퉁이다.

둥(東)쟈오민샹은 청나라 시대 외국 귀빈을 위한 영빈관이 있었고 서양 열강이 진출한 후에는 대사관저와 은행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몸통이 검고 줄기는 푸른 가로수 나무들이 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하다.

둥쟈오민샹이 끝나는 곳에서 계단을 내려서면 톈안먼 광장이다. 광장으로 나서서 마오주석기념당을 가로질러 다시 서쪽으로 가면 시(西)쟈오민샹이다.

청나라 때에는 행정부서가 있었고 민국 초기에는 중국은행들이 있던 곳이다. 비교적 서민적인 주거지역으로 변했으며 골목 사이사이로 조그만 골목들마다 별의별 이름의 골목이 연결돼 있다.

돌아가는 길 골목에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와 자동차가 나란히 세워 있다. 집집마다 오성홍기가 나부끼니 사람은 없지만 복잡해 보인다.

이번에는 가장 거리가 짧은 후퉁을 찾아간다. 쳰먼을 마주 보고 옛 상가거리인 다스랄을 지나 양메이주세제(楊梅竹斜街) 골목을 지나간다. 너무 짧아 결국 양메이주세제에 편입됐다는 이츠다제(一尺大街)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류리창(琉璃廠) 동쪽 끝과 연결돼 있다는데 도무지 이츠다제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세 갈래 길에 있는 골동품 가게 화루이자이(華瑞齋) 앞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단 한번에 찾게 됐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유명한 후퉁이었지만 지금은 바뀐 지 오래됐다고 하면서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스싼부쥬다오러(十三步就到了), 어른 걸음걸이로 13보만 걸으면 된다고 한다. 전봇대까지가 가장 거리가 짧은 후통, 이츠다제인 것이다.

단 한 자 정도로 짧은 후퉁 이름인데도 큰길이라는 다제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해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의 구조를 보니 13보만의 거리만큼 절묘하게 세갈래 길 사이에 남겨졌으니 사람들은 기발한 이름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샤오라바(왼쪽), 쟈오민샹(오른쪽 위), 이츠다제(오른쪽 가운데), 거리에서 본 샤오라바(오른쪽 아래)

골목길이 가장 좁다는 샤오라바(小喇叭)로 찾아간다. 첸먼다제를 지나 융안루(永安路)에 있다는 정보만 알고 갔는데 금방 찾았다.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로 다라바(大喇叭) 간판이 보인다. 라바는 나팔이라 뜻으로 한쪽은 넓고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큰 나팔이 있으니 작은 나팔도 있을 것이다.

오밀조밀한 골목을 들어서니 복잡한 미로 같은데 조그만 골목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어서 물었더니 한 발자국만 더 가라고 한다. 과장이 약간 심한 듯 했는데 몇 발자국 들어서니 전봇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바로 사람 한 명 간신히 통과할 좁은 길이 보인다.

전봇대 굵기의 두 배 정도인 약 60센티미터 너비이니 한 사람 겨우 갈 정도다. 전봇대가 바로 나팔 부는 작은 구멍쯤 되나 보다. 입김 따라 나팔 속으로 빨려들 듯 조심스레 걸어간다. 이 좁은 곳에 집 한 채가 있다.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먼당후두이(門當戶對)가 있고 복과 이익이 백년(福益百年) 지속되라는 부적이 붙어 있다.

큰길로 나와 되돌아보니 오성홍기가 좁은 골목을 가리고 펄럭인다. 서민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후퉁 중에서도 이다지도 좁은 샤오라바 후퉁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후퉁이란 말은 몽골어가 기원이고 원나라가 도읍을 정한 후 도시 계획을 하면서 조성됐다. 비록 몇 군데만 둘러봤지만 후퉁 속에 담긴 서민들의 향기를 맛 본 시간이었다.

4)   경극 전문극장 후광회관의 오리지널 경극 

베이징 후팡루(虎坊路)에는 경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장인 후광회관'(湖廣會館)이 있다. 청나라 가경제 때인 1807년경에 만들어진 이 회관은 근대화의 선구자인 쑨원이 수 차례에 걸쳐 정치 강연을 했던 곳이다.

경극 공연 관람료는 조금 비싼 편이다. 좌석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3~4만원부터 10만원이 넘기도 한다. 좀 일찍 갔더니 배우들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차와 과자를 먹으며 잠시 기다리니 악기 소리와 함께 경극이 시작된다.

첫 번째 공연 제목은 스위줘(拾玉鐲)인데, 번역하면 ‘옥 팔찌를 줍는다’는 뜻이다. 소년 푸밍(傅明)이 소녀 쑨위쟈오(孫玉姣)를 사모한다. 일부러 소녀의 문 앞에 옥 팔찌를 떨어뜨린다. 이를 본 류매파(劉媒婆)는 소녀에게 온 증표라 여겨 중매를 한다는 내용이다.

전통 악기 소리에 맞춰 코믹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화장이나 복장, 동작들을 자세하게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30분 정도 이어진 공연인데 지루하면 차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여유 있게 보면 금방 시간이 흘러간다.

한편이 끝나자 10분 정도 휴식인데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대나무를 소재로 동물들을 만든 공예품이라 관심이 갔다. 몇 번씩이나 깎아서 50위엔 하는 매미 한 마리를 10위엔 주고 겨우 샀다.

후광회관(왼쪽 위), 경극 공연장(왼쪽 아래), 대나무 공예품(오른쪽)

두 번째 공연 제목은 다오션차오(盜仙草). 신성한 풀을 훔치다 정도로 번역하면 될 듯하다. 허선(許仙)이 부인 백소정(白素貞)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 뱀의 정체를 드러내 허선이 깜짝 놀란다. 인간으로 변한 백소정은 남편 허선에게 도움을 청하니 산으로 들어가 신성한 풀을 훔쳐 온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4대 민간 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을 배경으로 만든 경극이다.

배우들의 동작이 코믹하기도 하고 칼 싸움이나 창 던지기도 표현하니 흥미진진하다. 서커스 묘기도 곁들이고 노래도 잘 한다.

이렇듯 전설이나 소설에서 경극의 소재가 나온다. 경극은 원래 안후이(安徽) 성에서 발생한 것인데 청나라 건륭제 생일 잔치에 초대돼 공연한 후 베이징에 머물게 돼 점차 베이징을 대표하는 무대극으로 발전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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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6 상하이 작은 어촌이 중국과 세계를 움직이다

 


상하이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봉토였다. 동진(东晋) 시대에는 후두(扈瀆)라고 했는데 후(沪).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상하이 진이 된다.


명나라 학자이자 과학자로 기독교선교사와 교류한 서광계(徐光啟)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과 함께 개항한다.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 일약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금융과 3차 산업, 운송의 중심지이자 경제 수도로 발전한다.


해외지향적이며 애향심이 강해 지극히 배타적인 상하이 사람들은 실용과 실리추구가 강한 대단히 이성적인 성향을 지녔다.


천안문사건 이후 장쩌민(江澤民)이 중앙무대에 진출하면서 공산당 내 비공식그룹인 상하이방 출신들이 정치세력화 했으며 시진핑(習近平)이 당내 최고 권력을 노리고 있다.


1) 상하이 上海 세계인이 다 모이는 상업거리 복잡하다


상하이의 가장 번화가인 난징루(南京路)를 찾았다. 19세기 중엽 외국 열강이 상하이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래 가장 번성한 상업거리로 큰길이라는 뜻으로 다마루(大馬路)라 불리기도 했다.


애드벌룬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난징루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 지하도에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까지 계속 물 밀 듯 발길이 늘어난다. 입구에 아빠 등에 업힌 아이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이 모두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조각상 뒤로 난징루 부싱제(步行街)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 거리이다.


마침 파란 하늘이 거리를 더욱 활기찬 분위기를 만든다. 거리를 왕복하는 유람 버스가 지나다닌다. 종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니는 버스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버스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복잡한 가운데 나름대로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난징루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이 거리는 1930년대 셴스(先施), 융안(永安), 신신(新新), 다신(大新) 4곳의 현대적인 백화점이 상업을 주도했다. 유럽식 건축양식을 띠고 있는 건물들이 몇 곳 남아있기는 해도 유행이 앞서가는 복잡한 거리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길거리에 학생들이 잔뜩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니 팬클럽 회원들인 듯하다. 오늘 저녁에 열리는 여행축제 개막식에 참여하는 가수인 장뎬페이(張殿菲)를 응원하러 나왔다. 담 너머로는 개막식 리허설이 진행 중인데 행사까지 이렇게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상하이 유력방송국인 둥팡위성(東方衛視)의 남자가수 등용문을 통해 알려진 신인가수인데 팬들이 외치는 성화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대단하다. '왕자전하가 상하이에서 가장 사랑스럽다(王子殿下上海最愛)'는 팻말이 특이해 물어 보니 별명이라 한다.


세계인들이 활보하는 거리답게 외국인들이 참 많다. 한 외국인이 발 돋음을 난징루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몇 명이 몰려다니며 난징루의 활기를 느끼며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하고 있다. 노상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상하이가 이렇게 파란 하늘을 선보이는 일이 드문데 정말 멋진 하늘이다. 애드벌룬만큼 높은 빌딩도 하늘로 솟구친 듯 뽐내고 있다. 유리창에 비친 건물들도 세계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상하이를 보여 주고 있다.

 


난징루(왼쪽), 난징루 입구(오른쪽 위), 가수 피켓(오른쪽 가운데), 펑징 마을(오른쪽 아래)


다시 난징루 입구에 오니 예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상하이 서남부에 있는 문화고을인 펑징진(楓涇鎮)을 소개하는 곳이다. 농민화를 전시하고 있고 단청인가(丹青人家)라는 멋진 이름도 있다. 상하이 주변에도 옛 고을이 많다. 지금은 중국 경제수도로 일컫고 있지만 그 옛날 그저 창장 하류의 어촌 마을이었다.


상하이 시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옌안고가도로(延安高架路)는 15킬로미터에 이른다. 동쪽 끝 와이탄(外灘)에서 서쪽 끝 홍챠오공항(虹橋機場)에 이르는 도로를 달린다. 택시를 타고 고가도로를 달리면 곳곳에 높이 솟은 빌딩들을 감상하기 좋다.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의 면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상하이에서 중국포럼의 상해탄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학생들과 주재원들이 모여 1달에 한번씩 모임을 하는데 마침 참여할 수 있었다. 푸단대학 부근 오월인가(吳越人家)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춘추시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오 나라와 월 나라가 차례로 상하이를 지배했으니 그 이름만으로도 상해요리인 것을 알 수 있다.


담백하고 약간 단맛이 도는 싱싱한 요리가 나올 때마다 뜻밖에 맛 있는 식당 하나를 찾았다는 감탄이 이어진다. 비싸지도 않고 채소와 생선, 고기에 상하이식 소스에 듬뿍 담긴 맛이 한결 입안도 개운하다. 가는 국수에 야채가 섞인 재미난 이름의 뤄한징쑤몐(羅漢淨素面)과 상하이 싼더리(三得利) 맥주가 인상에 남는다.


푸단대학 앞에서 학생들과 2차로 술을 마시고 헤어지고 직장인 회원만 따로 술 한잔을 더 했다. 부글부글 양고기가 익는 가운데 직장 생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중국, 그것도 가장 부유한 동네 상하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참 버거우면서도 부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상하이 上海 황푸 강에서 바라본 우뚝 솟은 중국경제의 상징


상하이 둥팡밍주(東方明珠)가 바라다보이는 와이탄을 찾았다. 중국어에서 와이(外)는 강의 하류를 뜻하니 이 강과 창장이 서로 만나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는 것. 강변을 따라 영국을 비롯 서양 열강이 조계를 조성한 곳이었다.


황푸(黃浦) 강을 따라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동영상 광고판을 배에 싣고 떠다니기도 한다. 배가 지나가니 중국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의 이정표처럼 우뚝 선 둥팡밍주 탑이 늠름하게 서 나타난다. 강 건너 푸둥 지역의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468미터에 이르는 뾰족한 탑의 꼭대기로 시선을 두니 파란 하늘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모처럼 맑은 날씨이니 멀리서도 상하이의 상징 탑이 선명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 화물선이 줄을 이어 강 상류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춘신군의 봉읍지이었으며 가난한 어촌 마을에 저렇듯 높다란 동팡밍주가 자리잡았다니 놀랄 일이다. 상하이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서구열강이 열어 놓은 어촌 동네가 불과 1세기 만에 세계적인 도시, 중국을 대표하고 중앙정치를 좌우하는 도시로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변 길인 와이마루(外馬路)에 모인 사람들은 강 너머 푸둥을 보면서 상하이의 발전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이 바야흐로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발 돋음하고 있는 활기찬 미소가 넘치고 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광장 한편에 동상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신중국 성립 후 최초의 상하이 시장이며 외교부장을 역임한 천이(陳毅)를 기념하는 조각상이다. 상하이의 발전은 곧 중국의 성장을 상징하니 상하이 시장은 곧 중앙 무대에서도 인정 받는 셈이다.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마오쩌둥 이후 공산당 중앙을 장악하면서 상하이방이라는 그룹이 등장한다. 보통 상방(商幫)은 상인들의 지역 연합을 뜻한다. 청나라 말기에는 관상(官商)이 등장하는데 정치와 경제가 유착하기 시작한다. 특히, 상업적으로 성공한 호설암(胡雪岩)과 성선회(盛宣懷)는 각각 관료인 좌종당(左宗棠)과 이홍장(李鴻章)의 비호를 받게 된다.


상하이방은 천안문사태 진압을 적극 지지한 당시 장쩌민 상하이 시 서기가 국가 주석이 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상하이방 견제를 위해 안후이(安徽) 출신이며 공산주의청년단(共青團)을 세력기반으로 하는 후진타오(胡錦濤)가 주석이 됐지만 향후 차기 실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긴박한 당 내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향후 당분간은 당내 궁칭퇀 그룹과 혁명원로의 2세 그룹인 타이즈당(太子党)과 상하이방의 연합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둥팡밍주가 보이는 와이탄(왼쪽), 와이탄 건물(오른쪽 위), 허핑호텔(오른쪽 아래)


와이탄은 강 너머 빌딩 숲,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과 화물선, 강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활력도 보기 좋지만 강변도로를 따라 늘어선 옛 건물들도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거리는 1885년부터 영국황실건축사협회 주도로 모리슨양행(瑪禮遜洋行)이라는 건축설계사무소까지 설립해 서양식 건축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중국은행과 공상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893년 지어진 일본 요코하마 은행이었고 허핑판뎬(和平飯店)이 있는 샤쉰빌딩(沙遜大廈)은 1872년 영국 자본이 건축했다.


지금도 와이탄은 외국계 회사들의 업무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상하이푸둥발전은행(上海浦東發展銀行)이 있는 와이탄 12호 건물을 보니 세계 각국의 유명 회사들이 입주해 있다. 영국계 펀드 회사와 독일계 우유회사를 비롯 스페인과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상하이 영사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1세기 전에 서구열강은 전쟁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킨 후 이곳에 진입했다. 이제는 자본의 힘으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곳에 입주해 있다. 20세기 중국 최고의 성장 모델은 바로 상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자본과 상품의 힘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려고 한다.


와이탄에 서면 높이 치솟는 둥팡밍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경제성장만이 꼭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없다. 성장에는 합리적인 분배라는 동전의 양 면 같은 경제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는 중국의 일반 서민들은 상하이 번화가의 호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와이탄에서 난징루와 연결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혼잡한 거리를 깨끗하게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청소부가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거리에서 빨간 부채를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할아버지는 외국인들에게 멋진 모습을 선보이고 싶은가 보다. 마치 중국과 세계의 중심인 상하이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하다. 마치 자유롭고 풍요로운 상하이를 보여주려는 듯 보인다.


3) 톈진 天津 천진난만한 아이들 동상이 있는 거리


베이징에서 톈진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D열차 편인데 고속열차를 뜻하는 둥처주(動車組)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중국 기차 편은 대개 이니셜로 표시하는데 아주 빠르다는 터콰이(特快)를 뜻하는 T열차가 있고 Z가 붙은 것은 도시와 도시를 직통으로 연결해 빠르게 이동하는 즈다터콰이(直達特快)이다.


터콰이보다 정차하는 곳이 많아서 대도시가 아닌 지방을 가려면 K가 붙은 터수(特速)기차를 타야 한다. 영문이니셜이 없이 숫자로만 표시된 것은 푸콰이(普快) 기차이다. 에어콘이 있는 것도 있지만 없는 것도 있는데 아주 시골로 가려면 타야 한다. 가끔 L이 붙은 기차가 있는데 이는 린스(臨時), 즉 임시 열차이다.


이 고속철도는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린다.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타고 온 적이 있는데 약 10시간이 걸린다. 두 도시의 철로거리가 1,500킬로미터에 미치지 못하니 아직 그 정도 속도를 내면서 달리지는 않는 듯하다.


천진으로 가는 D열차는 69분만에 도착했다. 이전에 비해 약 10분 정도 빨라진 듯하다. 중국 고속철도 이름은 조화라는 뜻의 허세하오(和諧號)이다. 깨끗할 뿐 아니라 에어컨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도 완벽하게 금연이라 공기도 상쾌하다. 우리나라 KTX처럼 기차를 타는 순간 담배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맑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다소 난감하기는 했지만 상쾌한 기차 여행이었다. 앞으로 중국 기차가 더 빠르고 쾌적하게 변할 것이니 중국 기차 여행 하기가 한결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와 함께 중국 직할시인 톈진도 서구 열강이 조차한 곳이었다. 1860년 영국과 독일연합군의 침공으로 조계가 형성됐고 1900년에는 8개국 연합군이 침공하기도 했다. 톈진에 도착한 후 100년 전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리를 찾아 봤다.


허핑취(和平區)의 다리다오(大理道) 거리를 걷노라니 100 년 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섞여 있는 모습이다. 옛 건물들도 유치원이나 관공서, 회사로 사용하고 있어서 옛날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길 양 옆으로 큰 가로수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한적한 거리에는 그저 자전거만이 빠르게 지나다닌다.


서양식 2층 건물구조의 가옥에는 붉은 색 나무 문이 있고 벽면으로 어린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의 벽화가 새겨 있다. 이 가옥은 중화민국 시대 목기(木器) 상인이던 즈위푸(訾玉甫)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시의 역사풍모건축(歷史風貌建築)으로 보호하고 있다.

 


손에 손 잡고(왼쪽 위), 무슬림 식당(왼쪽 아래), 피리 부는 아이(오른쪽)


사거리 옆 조그만 광장에 재미있는 돌 조각 상들이 있다. 서양 아이들에 탁자에 앉거나 서서 놀고 있는 모습인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발가락을 간지럽게 하려는 동작이 아주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이 조각상에 이름이 적혀 있는데 바로 장난치면 논다는 뜻, 완솨(玩耍)이다.


부근에는 또 서양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해맑고 귀엽다. 가운데 아이는 양쪽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며 앞 뒤 2명의 아이는 앞 뒤로 누군가의 손을 내밀어 잡으려는 시선이며 동작이다. 꽃밭에서 노는 아이들이니 더욱 밝아 보이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 이름은 손에 손 잡고 라는 뜻으로 셔우라셔우(手拉手)이다.


조금 더 지나니 루난화위엔(睦南花園) 건너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조각 상이 다정하게 앉아 있다. 돌로 만든 조각인데 할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할머니는 그 옆에 강아지를 안고 조용히 앉아 있다. 이 조각상에도 이름이 있는데 저녁 노을이라는 뜻의 완샤(晚霞)이다. 늦은 오후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옆에서 사람들이 장기를 두는 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다리다오 74호에는 신장(新疆)요리와 칭전(清真)요리를 파는 무쓰린(穆斯林) 식당인 후이팡러우판좡(會芳樓飯莊)이 있다. 밥을 뜻하는 판(飯)과 마을이나 산장이라고 할 때 쓰는 좡(莊)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서 판좡이라고 하면 고급식당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오히려 밥을 파는 집이라는 뜻으로 식당을 뜻할 것 같은 판뎬(飯店)은 호텔을 말한다. 가지런하게 꽃으로 단장한 입구와 시원하게 물소리가 들리는 정원이 있다.


거리에 아이들 동상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또 돌 조각상이 보인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코끼리를 올라타고 놀고 있다.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잡아주려고 손을 꼭 잡고 두 명의 아이가 타고 있으며 한 아이는 코끼리 머리 위에 타고서는 신이 난 표정이다. 이 조각상 이름은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의 콰이러(快樂)이다.


바로 옆에는 왼발을 들고 손으로 피리를 부는 아이 조각상이 있다. 바람소리를 반주 삼아 흥겨운 노랫가락을 하늘로 날려보내려는 듯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선율가락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멋지게 분다는 뜻으로 여우양(悠揚)이라고 새겨 있다. 참으로 아이의 발랄한 모습답게 적절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톈진에서 옛날 분위기가 살아있는 거리를 찾아 다녔는데 다채로운 표정으로 생기발랄한 아이들 모습과 만난 듯하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저녁노을도 아이들의 눈빛을 더욱 밝게 비추고 있고 어스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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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5 장쑤 3 베고니아 향기 먹고 설탕으로 그림 그리다



 

9)   쑤저우 蘇州 세계문화유산 정원의 연꽃들이 아름답다


쑤저우는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수향이며 예로부터 항저우와 함께 '쑤항저우메이런(蘇杭州美人)'이라 했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자 상하이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 받은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항’이라고도 한다.


깔끔하고 청결한 거리를 지나 가장 대표적인 정원인 줘정위엔(拙政園)을 찾았다. 명나라 시대인 어사 왕헌신(王獻臣)이 낙향해 만든 정원이다. 중앙무대에서 못다 이룬 정치에 대한 꿈을 접고 여생을 보내는 마음으로, 겸허한 사람의 일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연꽃이 핀 연못 옆에 푸룽세(芙蓉榭) 정자가 반겨 준다. 정자와 호수 그리고 수련과 나무의 조화가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꽃 화분이 매달린 길이 아주 예쁘다. 등이 밝게 켜져 있는 슈샹관(秫香館) 앞에서 꼬마아이 둘이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 키만큼 커 보이는 수련이 연못에 비치니 물빛이 더욱 영롱해 보인다. 연못 주변에는 사방이 둥근 원으로 확 트인 정자가 있으니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키 큰 나무들도 길게 제 가지를 아래로 늘어놓았으니 연 잎에 닿을 듯하다.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말로 별천지와의 경계를 나누는 비에여우둥텐(別有洞天)은 나무판자에 선명한 연두색으로 새겨 있어 더욱 감칠맛 나는 느낌이다. 둥근 문을 경계로 서로 다른 세상이 열리는지 모르겠다.


별다른 것은 없는데 건물 옆으로 뻗은 나무 잔가지들이 하늘을 다 가릴 듯 서 있다. 그 많던 수련들이 다 사라진 연못 주변으로 정자가 몇 채 있다. 연꽃들이 사라진 연못에는 원앙들이 활개를 치며 노닐고 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원앙들은 정자 아래에 숨어서 넓은 곳으로 나오지 않고 마냥 숨어 있다.


이 정자는 1877년 당시 염상(鹽商)이던 장이겸(張履謙)이 건축한 싸류위엔양관(卅六鴛鴦館)이다. ‘싸’는 30을 뜻하는 말로 원앙 서른 여섯 마리를 길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 이곳에 앉아 연못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원앙들을 보며 여유를 즐기면 좋겠다. 유리에는 파랗고 연한 보랏빛이 감도는 문양이 있어서 더욱 고급스럽고 화사하게 보인다.


그 옆에는 스바만퉈뤄화관(十八曼陀羅花館)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붙어 있다. 만퉈뤄는 독말풀이라고 불리며 열대아시아의 한해살이 풀로 약용으로 쓰고 차로도 마신다. 열여덟 포기를 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다리를 건너기가 아주 복잡하다. 제 나름의 모양새를 갖고 자라난 나무들 운치는 고스란히 연못 속으로 들어간 듯 수면이 아주 예쁘다. 늘어진 나뭇가지와 호흡하려는 듯 바위에 걸터앉은 사람들도 있다.


천둥소리를 듣는다는 레이팅거(雷聽閣) 뒤편 휴게소에는 그림을 팔고 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거북이와 대화하고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며 음료수를 마시기도 한다. 정말 커다란 정원이라 피곤할 만도 하다.


한 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줄줄이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이 연못 속에 비친 환상적인 모습에 하염없이 쉬고 싶다. 연못 속에 담긴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연인들이 다소곳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보인다.


줘정위엔 입구(왼쪽 위), 정원 모습(왼쪽 가운데), 쑤저우 하천 야경(왼쪽 아래), 연못 연꽃(오른쪽)


정원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연못 위에 활짝 펼쳐진 커다란 수련 하나가 시선을 끈다. 다들 어디 가고 홀로 자리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고독하지 않다는 듯 당당해 보인다.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줄줄이 들어오니 점점 밀도가 높아진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지극히 동양적인 정원을 보러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커다란 수련 위에 놓인 동전이 보인다. 사람들의 적선이거나 장난이겠지만 동전이 연못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끄트머리를 접은 수련이 안타까워 보인다. 이미 생명이 다 한 수련이건만 동전에 얻어맞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계속 동전을 얻어맞았는지 중간 중간 구멍도 뚫렸다.


수련 사이로 빨간 새끼 잉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수면 위에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갈 곳을 찾으며 앉아 있다. 계속 매미 소리가 짖어대고 햇살은 서쪽하늘로 넘어가려는 지 나무 사이로 강한 햇빛을 비추고 있다.


정원 앞쪽에 자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유람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천 옆을 따라 흰색 집 벽들이 있으며 멀리 작은 돌다리 너머에 유람선이 휘저어 오고 있다.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살짝 수면 위로 노을이 지려 한다.


삼륜차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나뭇가지 앙상한 가로수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됐다. 가로등 불빛이 휘영청 밝은 줘정위엔 앞 거리를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가고 사람들 발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밤이 되니 '창장 남쪽의 수향(水鄉)의 정서'를 담고 있는 쑤저우가 점점 정이 들기 시작한다.


10) 쑤저우 蘇州 베고니아 향기 먹고 설탕으로 동물 그리고 


쑤저우는 10월 초인데도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다. 국경절 연휴라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더욱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다. 좀 시원한 곳을 찾아가보려고 수향 정취가 가득한 산탕제(山塘街)를 찾았다. 당나라 시대부터 쑤저우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이며 문인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산탕제 거리로 접어든다. 멀리서 하천을 따라 배 한 척이 빠르게 질주해 오고 있다. 강남 수향에는 대체로 하천이나 인공수로가 흐르고 양 옆으로 가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물살을 퍼트리며 빠르게 지나간다.


골목길은 대부분 문화거리로 공예품 가게나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먹거리 마차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요기가 되기도 한다. 하천에는 독특한 형태의 배들이 떠다니고 있다.


중국 옛 거리에 오면 빨리 동화되고 신기한 공예품이나 먹거리가 있다면 이름이 무엇이고 용도가 어떤 것인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지방에는 없는 것이라면 금상첨화다.


특산품과 가게 이름이 적힌 깃발이 휘날리니 걷는 발걸음이 신 난 듯 가볍다. 구름이 조금 오락가락하지만 파란 하늘이라면 미치도록 기분이 좋다. 홍등이 펄럭이면 정말 중국이구나 생각이 들지만 이런 날에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빵처럼 생긴 것을 먹고 있다. 메이탕가오(海棠糕)라고 하는데 가오는 떡이고 메이탕은 재료 이름인 듯하다. 알고 봤더니 생긴 모양이 메이탕, 즉 베고니아 꽃처럼 생겨서 생긴 이름이다. 원래 쑤저우에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우시(無錫)에서 청나라 시대부터 만들어 먹던 간식이라 한다.


호두, 쌀 떡, 해바라기 씨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붉은색, 녹색, 검은색 빛깔이 감도는 씨가 재료다. 깨와 잣도 팥소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작은 홈에 넣고 5분 정도 익힌다. 젓가락으로 걷은 후 하나씩 종이에 싸서 팔고 있다. 5위엔을 주고 두 개 사 먹었는데 아주 달콤하고 쫄깃한 것이 간식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향긋한 꽃 내음이 풍겨 날 듯한 베고니아 모양새가 침부터 돌게 만든다.


바로 옆에는 마이야탕(麥芽糖)을 팔고 있다. 밀과 찹쌀을 재료로 만든 엿인데 둥근 원판을 탁탁 치더니 반으로 나눠 비닐 종이에 담아 판다.


차량통행금지 구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앞에 경비원인 바오안(保安)이 지키고 섰다. 다리 밑에는 산탕제의 옛날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는데 옛날 모습과 형체는 비슷해도 분위기는 아주 달라 보인다.


산탕제(왼쪽), 메이탕가오(오른쪽 위), 산탕제 하천(오른쪽 아래)


산탕제는 역시 하천 풍경이 최고다. 봉긋한 다리 위로 올라가니 길게 뻗은 수로를 달리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객들을 기다리며 배들이 정박해 있고 길가에는 차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물 빛깔이 약간 황토 빛이라 아쉽다.


한 줄로 연결된 홍등이 서너 개씩 줄줄이 발처럼 내려 있다. 흰색 벽에 검은색 지붕 그리고 나무로 만든 창문과 함께 어울린 모습이 서민들이 살아가는 물의 고향답다.


하천 한 쪽에는 사람이 오가는 길이 있고 한 쪽은 집 담과 이어져 있다. 담에는 문도 있고 몇 개의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하천에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붙어 있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주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반대쪽 하천 길을 따라 걸어간다. 배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아주 평화롭다. 살짝 파도를 출렁이며 직선으로 뻗은 수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떠나는 배를 보니 그늘에 앉아 차라도 한 잔 하고 싶다.


또 하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났다. 녹인 설탕 물을 국자로 퍼서 판자 위에 흘려가면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는 탕화(糖画)다.


먼저 새의 몸통을 만들고 머리 부분을 예쁘게 그리더니 동그랗게 설탕 물을 흘리면서 날개를 만든다. 작대기를 붙이고 난 후 얇은 칼로 바닥부터 긁으니 완성이다. 귀여운 아가씨가 하나 사서 만족스러운 듯 가지고 간다. 원래 쓰촨(四川)지방 민간예술로 이어온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감상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먹을 수도 있다. 용, 봉황, 물고기, 사자,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순식간에 생겨난다. 한 꼬마아이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는 매정하게 돌아선다.


둥근 판을 돌려 지정된 동물에 당첨되면 그 동물을 주기도 한다. 한가운데 못으로 박은 나무조각을 돌리면 빨갛고 노랗고 파란 그림 중에 하나에 가서 당첨된다.


철사공예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철사를 구부리는 펜치만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데 다른 한 손으로는 철사를 돌려 감는다. 동물도 있고 사람 얼굴도 있으며 한자나 자연 경관도 만들고 총이나 악기도 연출한다. 흰색 철사도 있지만 구리 빛 철사도 있다.


철사를 구부리더니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어느새 모양을 잡더니 끄트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자투리 철사를 이어 붙이고 긴 철사를 덧붙여 걸으니 드디어 완성이다. 옆에서 아이가 뭐냐고 물으니 워뉴(蝸牛)라고 하는데 바로 달팽이다.


천 년 역사를 넘어 머리 속에서 혼자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기행을 하는 묘미가 베고니아 향기처럼 달콤하다.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려면 역사와 문화를 몸소 느끼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홀로 문화체험 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산탕제를 나오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연휴라 사람들도 많고 날씨도 여전히 덥다. 거리를 정처 없이 걷다가 번화가에 이르렀다. 옛 문화거리와 현대식 거리가 얼마나 다른 지 금새 판가름이 날 듯하다.


게다가 국경절이라 백화점마다 할인 행사로 떠들썩하다. 큰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공연을 하고 있다.


백화점 건물에 수십 개가 넘는 빨간 현수막이 길게 걸려 있다. 황금연휴가 되면 백화점들은 바야흐로 갖가지 세일을 진행한다. 가격할인을 다저(打折)라고 하는데 우저(五折)라 하면 50%로 잘라 판다는 뜻이다. 치저(七折)라고 하면 70%로 파는 것으로 30%를 할인해 주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가격 할인 대신 얼마 이상 구매하면 상품 쿠폰을 주기도 한다.


북과 꽹과리, 징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쉼 없이 악기를 두드리고 있는데 힘들지도 않나 보다. 길 가던 한 아가씨가 신기한 듯 바로 앞에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다.


거리 한가운데 인공으로 만든 하천이 흐르고 있다. 비록 배가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닐 정도는 된다. 커다란 풍차도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가 상쾌하다. 하천을 건너가는 구름다리도 있고 육교도 있다. 쇼핑을 하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약속 장소로도 딱 좋아 보인다.


거리 복판을 막고 간이 연못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배를 타고 노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장사를 하다니 대단하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것이 즐거워 보인다.


요즘 도시 곳곳에 유행하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결혼 사진 촬영이다. 직원들이 나와서 길거리를 점령하고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춥고 있다. 사진 촬영을 하면 신부에게 공짜로 무려 18가지 선물을 준다고 한다. 한국 노래를 시끄럽게 틀어 놓고 있는데 브랜드도 아예 ‘서울의 사랑(漢城之戀)’이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다. 역시 도로 한복판을 만국기로 막아놓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영업을 해도 되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헬멧과 보호대까지 완전무장하고 10여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노래자랑 대회를 하고 있다. 한 아이가 노래하러 나왔다가 가사를 까먹었다. 그래도 선물을 받으려면 끝까지 노래를 불러야 한다. 아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유행가인 라오슈아이다미(老鼠愛大米)라는 노래를 부른다. '쥐가 쌀을 좋아하듯 사랑해' 뭐 그런 노래인데 아이들이 끝까지 따라 부른다. 경품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10월 초 국경절 연휴의 날씨가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다. 하루 종일 문화거리와 번화가를 두루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그래도 베고니아 향기와 동물로 되살아나는 설탕을 생각하니 입맛이 돈다. 달콤하게 잠을 잘 수 있을 듯하다.


11) 쑤저우 蘇州 소림 무공 4대 절기를 연마한 스님의 사리탑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인 쑤저우의 타이후(太湖)를 찾아가려 한다. 시내버스는 거의 1시간 30분을 달려서야 조금씩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타이후는 면적이 거의 2,250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타이후 다챠오(大橋)를 건너가니 마치 바다라는 착각이 든다. 4.3킬로미터가 넘는 긴 다리 창사다오(長沙島)를 지난다. 다시 예산다오(葉山島)를 지나는 창사루(長沙路)를 건너 섬 끝자락인 시산진(西山鎮) 스공춘(石公村) 종점에 도착했다.


스궁산(石公山) 앞 호반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돌아도 좋은 산책길이다. 산길을 따라 가니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구름이 머문다는 운치 있는 이름의 구이윈둥(歸雲洞)이라는 조그만 동굴이 나타난다. 3억년 전에 생겨난 석탄암 동굴로 아기불상을 안고 있는 불상이 있는데 민간신앙 냄새가 많이 난다.


동굴 옆으로 난 둥근 문이 운치가 있어 보인다. 빨간 꽃과 리본을 매단 나무들이 문과 어울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문을 지나 가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호수에는 쾌속정들이 쏜살같이 떠다니고 있다.


산자락에 라이허팅(來鶴亭)과 돤산팅(斷山亭) 정자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정자를 세운 명나라 시대 학자 왕오(王鏊)가 지은 시가 적혀 있다. '산과 사람이 만나니(山與人相見),하늘은 물과 함께 떠오르네(天將水共浮)'라는 문구가 정말 적절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산 정상에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선 두 개의 괴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 돌들은 부부 석으로 하나는 꼽추와 닮은 할아버지처럼 생겨 스공(石公)이라 했고 하나는 할머니 돌 스포(石婆)라 한데서 유래했다.


산모퉁이를 넘어 가니 크고 길고 높은 암석 위에 윈티(雲梯)라 적혀 있다. 구름 사다리라니 정말 낭만적인 이름이다. 한칼에 깎인 모양의 바위 위로 올라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조금 불안해 보인다.


바위 하나로 만들어진 밍위에포(明月坡)라 불리는 돌 비탈에 정자가 있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긴 복도가 있다. 그 옛날 오 나라 왕 부차와 4대 미인 서시가 물놀이 하면서 호수를 감상하던 곳이라 한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니 무공을 수련한 해등법사(海燈法師)가 창건한 사원인 스궁쓰(石公寺)가 나타난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불(佛)’자가 새겨진 벽 뒤로 사람들이 향을 피워놓고 예를 올리고 있다.


해등법사는 본명이 판우빙(范無病)으로 스촨 서북부 사람인데 어린 시절 지역 악질 토호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출가해 무공 수련을 했다. 고승을 찾아 다니며 무공을 연마하던 중 1930년대 두 명의 소림사 고수를 만나 악전고투 끝에 소림사 4대 절기를 완성했다.


달마조사(達摩祖師)가 면벽했던 동굴에서 7일 낮과 밤을 정좌한 채 수련해 면벽좌선(面壁坐禪)을 익혔으며 두 손가락으로 땅을 딛고 2분 동안 서 있는 이지선공(二指禪功)과 머리를 허리 아래로 집어넣는 등 온몸이 면화처럼 유연한 동자유공(童子柔功), 나무 위에서도 마치 평지에 있는 듯 가벼운 몸놀림과 균형감각을 지닌 매화춘권(梅花椿拳)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전한다. 그의 4대 절기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소설로 발표되기도 했다.


10년 동안 수련했던 곳으로 골귀석공(骨歸石公)의 유언에 따라 7층 사리탑이 조성돼 있다. 사리탑을 둘러싸고 무술 동작들이 새겨져 있어 무림 고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탑 중간에는 수많은 작은 불상들이 새겨져 있어 뛰어난 무공을 지녔던 승려에 대한 격식을 잘 갖췄다.


타이후 윈디(왼쪽), 스궁산(오른쪽 위), 스궁쓰(오른쪽 가운데), 타이후 연꽃과 배(오른쪽 아래)


사원을 나와 호수 쪽으로 걸어가니 낡은 배 한 척이 조용히 호수에 걸쳐 있다. 수련들이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어 배가 떠나가지 못하는 듯하다.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왠지 스산한 느낌이다. 바람에 쉼 없이 나무들이 스르르 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적한 분위기를 깨고 쾌속정이 달려간다. 호수 바람이 세차게 부니 물 속에서 자라는 나뭇가지들이 마구 흔들린다.


한가로이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승마장이 나타난다. 엄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백마를 다독거리며 걷고 있다. 아빠랑 말을 탄 아이도 즐거운가 보다. 혼자 떨어져 있는 말 한 마리가 오줌을 싸고 있는데 약간 보기가 민망하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산책 길을 걸으며 호수 위를 질주하는 쾌속정들을 바라본다. 여기저기서 난데 없이 계속 배들이 나타난다.


출구로 나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여러 개 노선 버스 중에서 69번 버스를 타야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를 타고 마을도 지나고 다리도 지나갑니다. 사람들도 모두 호수를 담으려고 합니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호수 위로 햇살이 마지막 남은 강렬한 빛을 뿌리고 있다.


다리 셋으로 이어진 세 개의 섬(三橋三島)을 지나며 타이후를 쉼 없이 쳐다봤다. 끝도 없이 넓은 호수다. 백거이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들이 다녀갔다고 하는 시산, 그 옛날에는 배를 타고 왔을 것이지만 다리도 있고 버스도 다니니 편하게 다녀온 셈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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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4 장쑤 2 4대 미인의 허리로 머리 빗을 만들다


 


 5) 양저우 州 대나무가 많은 중국 4대 정원에 있는 인공 돌산 


난징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양저우를 찾아갔다. 양저우는 서양 사람들이 창장(長江) 하류를 '양저우에 있는 강'이라는 뜻으로 양즈강(揚子江)이라 부르게 된 곳이기도 하다. 볶음밥의 대명사인 '양저우 차오판(炒飯)'으로도 유명하다. 


대나무와 돌산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정원인 거위엔(個園)으로 들어선다. 정말 정원 입구부터 각종 대나무들이 많이 심어 있다. 죽간이 곧게 뻗어 있는 대나무는 대체로 비슷해 보였는데 대나무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야말로 대나무 식물원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넓은 광장과 대나무로 그늘이 진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청나라 시대 염상(鹽商)이던 황지균(黃至筠)이 중건한 정원이자 사택이다. 이 정원의 이름은 죽엽의 모양을 딴 것이며 주인의 이름 중 균(筠) 역시 대나무 껍질이란 뜻이다. 


중국 옛말에 '고기를 먹지 못할지언정, 대나무 없는 집에서 살 수 없다'고 했고 '고기를 먹지 못하면 수척해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저속하다'고 했다. 그러니 거위엔은 운치와 격조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현판 글씨가 깔끔한 도서관인 총슈러우(叢書樓) 2층 창문을 온통 나무넝쿨이 감싸고 있다. 넝쿨이 창틀 사이를 헤집고 다니니 아담하면서 예쁜 건물이다. 책을 모아둔 곳에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기까지 넝쿨들은 힘찬 성장을 했을 듯하다. 


돌 벽돌로 쌓은 높은 담벼락을 따라 들어간다. 양쪽으로 열린 문을 따라 들어서면 두루 주거공간이다. 처마 밑에 걸린 와당(瓦當)에 녹(祿)자와 꽃 사슴 문양이 새겨 있다. 특히 녹자는 관리가 돼 돈을 벌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손님을 접대하기도 하고 집안 대소사를 논의하는 방인 칭메이탕(清美堂)을 지나 집안의 아이들이 공부하던 한쉬에탕(漢學堂)에 이른다. 이곳 와당에는 박쥐(蝙蝠)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아이들을 위해 복(福)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높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좁은 골목길이 보인다. 


이렇게 가옥을 사이에 두고 공간을 나눈 것을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훠샹(火巷)이라 한다. 골목에는 우물이 있고 앞 담은 벽돌을 반원형으로 쌓았다. 오랫동안 물을 긷게 되면 지반이 내려갈 위험이 있는데 아치형 반원으로 쌓으면 힘을 분산해 안전하다. 


칭쑹탕(清頌堂)은 집안 사람들이 다 모여 연회를 하거나 제례를 올리던 곳이다. 이곳 와당에는 복숭아가 새겨져 있는데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다. 거위엔의 각 건물 와당은 모두 썩지 않는 녹나무(楠木)로 만든 것이다. 


좁은 복도를 지나 가니 대나무가 푸릇푸릇 자란 정원이 나오고 빙 둘러 담벼락이 둘러 있는데 그 사이로 둥근 문이 하나 있다. 문 위에는 연한 초록색으로 ‘거위엔(个園)’이라고 써 있다. 바야흐로 멋진 정원에 다다른 것이다. 


정원 입구에 있는 이위쉬엔(宜雨軒)은 손님들의 숙소이기도 하고 민속 악기 연주를 하던 곳이다. 옆에는 인공으로 만든 작은 돌산과 연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연못이 있으니 연주를 들으며 풍류를 즐기던 곳인가 보다. 



화재 방지 훠샹(왼쪽), 총슈러우(오른쪽 위), 거위엔 홍등(오른쪽 가운데), 가짜 산(오른쪽 아래)


중국 정원에는 대체로 인공으로 만든 자산(假山)이 있다. 꽃과 나무를 보면서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는 곳이다. 돌들을 쌓아서 만들어 비록 높지는 않더라도 구불구불 미로처럼 곡선으로 연결해 놓아 걸어서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 매일 집안에만 갇혀 살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다이어트 방법인 셈이다. 


바오산러우(抱山樓) 누각에는 병천자춘(壺天自春)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병천을 직역하자면 '술 단지 속의 하늘'이니 연못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며 술 한잔 하기 좋은 정원으로 제격이다. 연못 가운데 맑은 물놀이라는 뜻의 칭이팅(清漪亭)이 있는데 물놀이가 곧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도로 길게 연결된 누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과 연못, 나무와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정원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철마다 그 풍광이 다 다르다고 해 쓰지자산(四季假山)이라 부른다. 


높지 않은 작은 인공 산을 내려온다. 이 아담한 정원은 계절이 바뀌면 모습도 바뀐다니 적어도 계절마다 한번을 와 봐야 진면목을 알 듯하다. 봄여름가을겨울 다 풍광이 다르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6) 양저우 州 처녀 뱃사공 노랫가락 들으며 5개의 정자로 만든 다리를 지나 


양저우 셔우시후(瘦西湖)를 찾았다. 약간 덥지만 쾌청한 날씨라 호수 공원으로 들어서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 호수는 수당 시대부터 커다란 정원이었는데 청나라 초기 강희, 건륭 두 황제의 순행 당시 다녀간 것으로 유명하다. 


다섯 개의 정자가 동그랗게 모여 있는 다리인 우팅챠오(五亭橋)로 올라간다. 호수는 그리 커 보이지는 않고 멀리 보이는 정자와 유람선이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정에는 학 두 마리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누각 처마마다 풍경이 매달려 있다. 다섯 개의 정자가 서로 엉켜 붙어 이루어진 이 다리는 건륭제가 방문했을 때 이 지방 소금 운송업자가 지었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ㄴ' 자와 'ㄱ' 자가 서로 연결된 형태로 길게 뻗은 호수로 4.3킬로미터에 이르는 호수 한 가운데 있다고 해서 호수의 허리띠(腰帶)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수 건너에서 본 우팅챠오는 멀리서 볼수록 그 멋이 더욱 빛나 보인다. 


멀리 얼스쓰챠오(二十四橋)가 수면 위에 떠오른 듯 보인다. 다리 길이가 24미터, 너비는 2.4미터, 난간 무게는 24근, 위 아래로 24개의 계단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치 형으로 난간은 모두 백옥처럼 하얗다. 


지그재그로 난 호수 위 산책로를 따라 걸어간다. 배들이 호수를 오고 가는 모습이 사뭇 서정적인 풍광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무료로 탈 수 있는 배를 탔다. 배 바닥은 오렌지 색이라 화사했으며 기분도 좋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서 서로 균형을 잡느라 분산해서 자리를 잡았다. 노 젓는 여자 뱃사공은 20대 중반의 용모가 순박한 시골 아가씨 모습이다. 


예부터 셔우시후를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인 조비연(趙飛燕)에 비유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날렵한 손놀림으로 노를 젓고 있다. 건륭제의 축수를 올렸다는 시춘타이(熙春台)를 지나간다. 시춘이라는 말은 노자가 한 말로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이 모인다는 뜻이다. 


아가씨는 열심히 노를 젓더니 손님들에게도 저어 보라고 한다. 우팅챠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점점 우팅챠오 밑 아치형 문을 배가 지나간다. 다시 뒤돌아보니 정말 멋지고 독특한 모양이 중국 온 동네 돌아다녔어도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보기 힘들다. 


노를 젓던 아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이 ‘처녀 뱃사공’이 부르는 지역 민가는 지역방언을 섞어서 도저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흥겨우면서도 재미있는 멜로디다. 노래를 듣자 신이 났던지 함께 탄 사람들이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얼스쓰챠오(왼쪽), 우팅챠오(오른쪽 위), 뱃사공(오른쪽 가운데), 호수 위 배(오른쪽 아래)


호수 속 작은 섬에 향긋한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귀엽게 생긴 댜오위타이(釣魚臺)가 반듯하게 떠 있다. 개나리꽃 색깔로 칠을 한 벽면이 둥글게 뚫려 있는 정자다. 연인 한 쌍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다시 뱃사공 아가씨가 노 젓는 박자에 맞춰 노래 한 곡을 더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어느덧 배가 멈춰 섰다. 한 20여분 정도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했는데 아주 정겨운 분위기였다. 모두들 차례로 조심스레 배에서 내렸고 뱃사공 아가씨는 서둘러 배를 돌려 되돌아간다. 


배에서 내리니 당나라 시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이 고목은 봄이 되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고목봉춘(枯木逢春)의 전설처럼 푸른 줄기를 뻗고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나무줄기가 온 사방을 수놓고 있는 굴피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조그만 위반챠오(玉版橋)를 건너 가니 이번에는 수양버들이 보인다. 옆에는 빨갛게 핀 꽃이 다리와 예쁘게 어울리고 있다. 호수를 따라 걸어가는데 비둘기 떼가 광장에서 열심히 모이를 찾아 다니고 있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수양버들 사이로 드러난 댜오위타이의 둥근 원이 호수에 비쳐 또 하나의 원을 만들어내고 있다. 호수를 따라 멀리 우팅챠오로 향해 가는 배는 볼수록 멋진 셔우시후 최고의 앙상블이다. 다섯 개 정자가 똑바로 서서 만든 웅장한 다리로 배는 느리게 떠가지만 이 한 폭의 멋진 인상은 아련하게 오래 남을 듯하다. 


7) 창저우 常州 4대 미인의 허리로 머리 빗을 만들다니 


난징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창저우에 도착했다. 시내 숙소에서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는 명나라 시대인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운하가 있다. 운하를 따라 형성된 조그마한 골목길 비지샹(篦箕巷)을 찾았다. 


운하 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솟아 있고 그 앞에 조그만 황화팅(皇華亭)이 보인다. 정자 이름에 황제가 들어간 것이 심상치 않다. 청나라 건륭제가 창저우에 왔을 때 이곳에서 내려 성으로 들어갔다. 역참 이름인 피링이(毗陵驛) 비석이 세워 있다. 언덕에 인접해 있다는 뜻의 피링은 한나라 시대부터 창저우의 이름이었다. 


운하 위로 고가도로가 연결돼 있고 증기선이 다닌다는 룬촨(輪船) 표지판이 붙어 있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폭이 30미터는 돼 보이는 운하를 따라 짐을 싣고 긴 화물선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나 길던지 물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다. 


부두가 있던 자리인지 붉은 글씨로 다마터우(大碼頭)라고 써 있으며 밤에는 야시장이 열린다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운하를 끼고 있는 비지샹 골목은 머리 빗을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담벼락에 옌링슈비(延陵梳篦)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옌링은 창저우의 옛 지명으로 오나라의 영토이기도 했으며 중국의 10대 성 중 하나인 오(吴)씨의 군망(郡望)이다. 군은 군현제 행정구역이고 망은 명문 귀족이라는 뜻이다. 전주 이씨, 경주 최씨와 같은 의미다. 


‘소(梳)’는 얼레빗이고 ‘비(篦)’는 참빗이다. 이미 1,6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빗들이 운하를 타고 여러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민간 전통공예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생활필수품일 뿐 아니라 여인들이 마음을 달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얼레빗은 우각(牛角)과 양각(羊角)이나 대추나무, 배나무 등도 있지만 주로 황양목(黃楊)을 재료로 쓰고 참빗은 대나무 죽순으로 만든다. 


중국 4대 미인의 자태 그대로 허리 동선에 맞춰 만든 빗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다. 왕소군과 서시, 초선과 양옥환을 그려놓고 허리춤으로 머리 빗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예전에는 번성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골목길이다. 밤이 되면 술집으로 변할 것 같은 배로 만든 룽청(龍城) 수상식당만이 보란 듯이 서 있을 뿐이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저 이방인이나 옛 향수를 더듬으려고 오는 정도다. 


창저우 부두(왼쪽), 4대 미인 빗(오른쪽 위), 운하(오른쪽 가운데), 시잉먼(오른쪽 아래)


운하를 따라 배들이 아주 빈번하게 다닌다. 거대한 화물선 뱃머리에 아주머니가 보란 듯이 서 있다.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배 갑판 위에도 아주머니가 깃발을 든 채 서 있다. 아마도 앞에서 다른 배와 부딪힐 상황이 되면 신호를 보내려는 것인가 보다. 


30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데 시내를 흐르는 운하를 따라 낡은 화물선들이 생업의 수단으로 움직이고 있다니 낯설어 보인다. 한참 동안 배들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빌딩들이 생경해 보인다. 


운하를 따라 성벽이 이어져 있고 중간에 시잉먼(西瀛門)도 보인다. 이 성벽은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600년이 훨씬 지난 것이다. 나중에 계속 성벽의 돌들을 새로 쌓아서 보완했겠지만 여전히 아주 튼튼해 보인다. 


큰 배가 다니는 길과 작은 배가 다니는 길로 물줄기가 갈라졌다. 조그만 통통배가 얕은 다리를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하천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고 있다. 다리를 따라가니 하천 옆으로 공원이 있고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운동회를 보게 됐다. 신호탄과 함께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고 다른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자여우(加油)를 외치며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름 없이 신나게 달리며 흥겨운 경주를 하는 모습이다. 계주봉을 들고 친구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도 아주 익숙하고 진지하다.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들 해맑은 응원 소리가 아직도 귀가에 생생하다. 운하 위를 오가는 화물선의 뱃고동 소리도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중국미인들이 그려진 참빗을 사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중국을 다니면서 짐이 될까 봐 물건을 사지 않는 습관 때문에 미처 사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창저우에 가게 되면 꼭 예쁜 빗을 사야겠다. 


8) 창저우 常州 기원전 춘추시대의 동상으로 고사성어를 배운다  


장쑤 성 창저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가면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인 기원전 춘추시대의 흔적이라는 옌청(淹城)이 있다. ‘명청 시대는 베이징을 봐야 하고 수당 시대는 시안을 봐야 하며, 남송 시대는 항저우를 봐야 하고 춘추시대를 알려면 옌청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춘추옌청(中国春秋淹城)’ 현판이 걸린 회색 성곽이 보이고 양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따라 멋진 다리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다리 이름을 보니 옌쥔챠오(淹君橋)다. 


엄군(淹君)은 산둥 취푸(曲阜)의 엄(奄)나라 군주였는데 주(周)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이주한다. 오(吴)나라와 월(越)나라가 쟁패를 겨루던 시절이라 이곳에 온 후 침략에 대비해 난공불락의 수성을 쌓았으며 연못을 만들어 수호신인 백옥귀(白玉龜)를 키웠다. 


아리따운 공주가 있었는데 서예와 무용도 잘하고 용모도 예뻤다고 한다. 어느 날 공주는 성밖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데 그는 은밀히 잠입을 시도한 이웃 국가의 왕자였다. 엄군은 미사여구가 뛰어난 그를 신임해 공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엄군이 외출하자 왕자는 공주의 명의를 도용해 백옥귀를 훔친다. 엄군은 백옥귀가 사라진 것을 알고 흥분해 공주를 죽이게 된다. 왕자는 백옥귀를 오나라 왕에게 보내고 군대를 빌어 화공으로 옌청을 점령한다. 엄군을 죽이고 엄족을 멸망시킨다. 이 큰 대(大)와 거북 귀(龜)에 물 수를 더한 한자를 쓰는 엄족은 비참하게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성 안으로 들어서니 길 옆으로 문화 거리가 조성돼 있다. 두 마리 사자가 비단방울을 가지고 노는 석조 원판과 명나라 시대의 수호신 석상이 보인다. 진품이어서 많이 낡았지만 긴 칼을 앞에 차고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다. 


돌로 만들어진 예사롭지 않은 패방이 있다. 맨 앞에 있는 충의방(忠義坊)은 청나라 건륭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현란한 조각으로 동물과 사람, 강산과 나무를 새겨놓았다. ‘아래로는 강과 산을 위하고 위로는 해와 별을 위한다(下則為河岳上則為日星)’는 말에서 따온 하악일성(河岳日星)이 새겨 있다. 높이는 7미터이고 너비는 6.1미터이며 3층 4기둥으로 만들어졌으며 죽림칠현과 사자, 봉황이 음각돼 있다. 


바로 뒤로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절효방(節孝坊)은 청나라 광서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일편빙심(一片冰心)이 새겨 있다. 당나라 시대 시인인 왕창령(王昌齡)의 7언 절구 중에 나오는 ‘일편빙심재옥병(一片冰心在玉壺)’에서 따온 말로 옥으로 만든 술병에 담긴 변하지 않는 순결하고 청렴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맨 뒤에 있는 공덕방(功德坊)은 청나라 함풍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황제의 은덕을 찬양한다는 뜻의 용덕포가(龍德褒嘉)가 새겨 있다. 그래서인지 돌 사자가 지키고 있으며 황제를 상징하는 용 문양이 아주 많다. 


다리를 건너가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카이청(開城) 의식이 오전에 열렸다고 한다. 꽃가루가 행사장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전체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그런지 어수선하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배 한 척이 보인다. 이 옌청에서 2,900년 전에 만들어진 통나무 배가 출토됐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배라고 해서 천하제일주(天下第一舟)를 상징하는 배 한 척이 서 있다. 


‘옌청(淹城)’ 글자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무대를 지나니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관심은 ‘서시가 옷을 빤다’는 서시완사(西施浣紗)다. 강가에 나와 빨래하는데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도 잊고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고사다. 


서시뿐 아니라 춘추시대의 고사와 관련된 동상들이 서 있다. 역사 공부를 하기에 좋은 것들인데 어렵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다. 모두 사자성어이고 고사이니 한번쯤 공부해 볼 만하다. 


춘추시대에 좋고 나쁜 말을 잘 알고 그림만으로 천리마를 찾아낸 것으로 유명한 손양(孫陽)을 소재로 한 안도색기(按圖索驥)는 실마리를 따라서 잘 찾는다는 말이다. 피리를 불 줄 모르면서도 연주하는데 끼었다는 남곽(南郭)의 고사에서 유래하는 남우충수(濫竽充數)는 쥐뿔도 모르면서 능력 있는 체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에 초나라 대신인 장신(莊辛)이 양을 잃어버린 후에 우리를 고쳤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는 말과 같다. 춘추시대 오나라 공자 계예(季禮)가 사신으로 가는 길에 서(徐)나라 임금에게 마음 속으로 스스로 주기로 다짐한 보검을 돌아오는 길에 죽은 임금의 무덤에 걸었다는 계례괘검(季禮掛劍)은 약속을 귀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담겼다. 


옌청 패방(왼쪽 위), 카이청식(왼쪽 가운데), 공사중 엄군전(왼쪽 아래), 서시 조각상(오른쪽)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로 방울을 훔치기 위해 자기의 귀를 막으면 방울소리가 남들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엄이도령(掩耳盜鈴)은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뜻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의 자화자찬인 자상모순(自相矛盾)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을 말한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염파가 자신의 옹졸함을 뉘우치고 형장(荊杖)을 짊어지고 인상여 집을 찾아와 죄를 청했다는 부형청죄(負荊請罪)는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한다는 뜻이다. 


광장을 지나니 진한 갈색 빛이 도는 나무로 축조한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외청(外城)을 둘러싼 하천을 지나 다시 수풀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니 내청(内城)을 둘러싼 하천이 또 나온다. 


좁은 다리를 건너 가니 가장 안쪽에 자성(子城)을 둘러싸고 있는 하천에는 곳곳에 수련이 뿌리박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사 중인 다리를 건넜는데 자성 안에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마당을 가꾸고 있다. 앞에 있는 건물이 엄군전(淹君殿)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옌청의 핵심에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후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안내판에 2003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고 적혀 있다.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독특한 구조의 성곽이 오랜 세월 자취를 유지하고 있다니 놀랍다. 3천 년이나 지난 춘추시대의 성곽이니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더욱 빛나길 바란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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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염성 2014.05.27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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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3 장쑤 1 곰보에 절름발이 수재가 문장의 신이 된 까닭은



장쑤 성은 청나라 초기 난징의 한 구인 장닝(江甯)과 쑤저우(蘇州)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성이다. 창장과 화이허 하류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바다를 끼고 있다.


춘추시대 오나라와 전국시대 초나라의 근거지였으며 성 북부 쉬저우는 초한 쟁패 당시 초패왕 항우의 근거지이었으며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이기도 하다. 진시황이 반란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던 성의 수도인 난징은 동진과 송나라의 도읍이자 태평천국과 장제스의 중화민국 수도이기도 했다.


양저우, 창저우, 쑤저우를 잇는 성의 중심 도시들은 강남의 수향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역사문화도시다. 지금부터 장쑤 성 문화 체험을 떠나 보자.


1)   쉬저우 徐州 초나라 왕릉에 묻혀 2천 년 동안 잠을 자다


쉬저우는 산둥(山東) 성과 허난(河南) 성 사이에 쏙 들어와 있는 쟝쑤(江蘇)성 서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쉬저우 시내 아담한 언덕 같은 사자산에는 초나라 왕릉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말과 함께 웅장하고 날아오를 듯 서 있는 동상이 멋지다. 초패왕 항우가 이곳을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으니 혹시 그의 동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자산초왕릉은 유방이 세운 통일국가인 한나라 시대의 분봉 왕인 초왕 유무(劉戊)의 왕릉이다. 약 2100년 전 무덤인 셈.


말을 타고 있는 초왕은 오른손으로 긴 칼을 높이 쳐들고 있다. 한나라 시대 초왕의 동상이라는 글자가 써 있고 주변에는 빨간 테두리에 노란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동상의 뒷모습조차 반듯하고 날렵해 보여 지금이라도 당장 전쟁터로 달려나갈 기세다.


이 왕릉은 1994년에 처음 발굴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규모도 클 뿐 아니라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무덤에서 나온 출토물에는 금(金), 은(銀), 동(銅), 철(鐵), 옥(玉), 돌(石) 등으로 된 2천여 점의 유물과 함께 왕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왕릉에 있는 각 석실들은 모두 산을 직접 뚫어서 만든 착묘(鑿墓)다. 깊고 좁은 무덤 중앙 길 양 옆으로는 장방형의 석실마다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물론 진품을 아닌 듯하지만 충분히 당시 무덤 속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붉고 약한 조명 때문에 자세히 보기가 어려운 것이 다소 아쉽다.


빨간 벽 앞에 유리로 막아둔 미라가 누워있는데 그 모습이 사뭇 야릇해 보인다. 조각조각 이어 붙인 것을 입고 있는데 바로 금루옥의(金縷玉衣)라고 하는 한나라 시대 귀족들의 수의(壽衣)다.


왕릉 가장 안쪽에는 유골을 토대로 복원한 초왕의 동상이 있다. 신장이 1.72미터에 나이는 35~37세로 추정한다. 동상 옆에는 당시 사용하던 편종이 놓여있는데 아마도 진품은 아닐 것이다.


초패왕릉(왼쪽), 조각상(오른쪽 위), 초패왕 미라(오른쪽 가운데), 표범 조각상(오른쪽 아래)


왕릉은 그 깊이가 11미터나 된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산을 뚫어 만든 왕릉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무덤 벽이 매우 높아 보이는데 양쪽 벽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왕릉을 지키기 위해 곧게 서 있는 모습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두 마리의 표범 동상이 보인다. 사자산초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흥미로운 위바오(玉豹)다. 보통 무덤에는 생전에 주인이 애지중지하던 보물이나 좋아하던 동물의 형상 또는 사용하던 그릇 등을 함께 매장하는데 표범 동상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당시 왕이나 귀족이 아무런 연고와 이유 없이 묘지에 동물 형상을 매장했을 리가 없는데 왜 표범 동상이 있는지 그 이유가 지금껏 알지 못해 미스터리라고 한다.


벽마다 출토된 유물들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한쪽에 공예품을 파는 가게를 지나 무덤을 나왔다.


유방에 패해 초패왕의 이름만 역사에 남기고 사라진 항우를 대신해 유방 후손의 분봉 영토가 돼 이렇게 멋진 왕릉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역사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초왕의 동상과 휘날리는 진군 깃발을 보고 있으니 초한 쟁패의 전쟁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2)   난징 南京 곰보에 절름발이 수재가 문장의 신이 된 까닭은 


장쑤 성의 수도 난징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내렸다. 난징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보려면 공자 사당 푸즈먀오(夫子廟)가 있는 거리로 가야 한다. 난징 시내를 흐르는 작은 강 이름을 딴 고진회(古秦淮) 패방이 있다.


조명이 빛나는 거리를 지나 옛날 과거시험장이던 장난궁위엔(江南貢院)을 찾았다. 홍등이 2개 켜진 웅장한 패방을 지나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다. 명나라 시대 문학가로 자가 백호(伯虎)인 당인(唐寅)과 <서유기>를 쓴 소설가인 오승은(吳承恩)이 나온다. 이어 시(詩), 서(書), 화(畫)에 모두 뛰어났다는 청나라 초기 문학가인 정섭(鄭燮)과 청나리 말기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임칙서(林則徐)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이곳 과거시험장에서 급제를 했던 사람들이다.


조각상 뒤로 멋진 궁위엔의 모습이 드러난다. 조명이 반짝이고 홍등도 걸려 있으며 몸체에는 옅은 녹색 조명이 은은한 밍다러우(明達樓)가 화려한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정원이 나타나고 양 옆으로 펄럭이는 깃발이 보이는 즈공탕(至公堂)이 나타난다. 양 끝으로 용머리가 있고 가운데는 잉어비늘이 조각된 리위탸오룽먼(鯉魚跳龍門)이 있는데 과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넘어가야 한다.


즈공탕 안에는 물고기 등에 오른발을 딛고 왼발은 뒤로 젖힌 채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왼손에는 연적을 든 쿠이싱(魁星) 조각상이 서 있다. 우두머리 별이라고 하며 북두칠성의 장방형 모양의 첫 번째 별을 말하는데 중국 신화에서 문장의 신이라 불린다.


옛날에 한 수재가 있었는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해 문장을 짓는데 탁월했다. 하지만 생김새는 아주 못생긴 곰보였고 게다가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였다. 그는 성장해 향시를 거쳐 드디어 황제 앞에서 최종 면접 시험을 보게 된다.


그의 용모를 보고 심기가 불편했던 황제는 건성으로 물었다. '그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하니 '곰보 같은 얼굴은 하늘 모양을 뜻하니 별을 따 바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황제가 흥미를 느껴 절뚝거리는 다리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다리 하나로도 용문을 넘었으니 장원급제입니다'라고 하자 황제는 기뻐했다.


이후 뛰어난 문장을 쓴 그는 황제로부터 '천하제일이라 하기에 아깝지 않다'는 칭찬을 듣고 장원급제의 칙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못생긴 수재는 승천해 북두칠성의 별이 돼 녹봉과 작위를 주관하게 됐다고 한다. '괴(魁)'자를 나눠보면 생김이 추하다는 의미를 지닌 '귀(鬼)'자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인 재고팔두(才高八斗)에서 딴 '두(斗)'자의 결합이다.


임칙서와 과거장(왼쪽 위), 급제 행렬(왼쪽 가운데), 과거장(왼쪽 아래), 문장 신 쿠이싱(오른쪽)


건물 안에는 과거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급제한 사람이 말을 타고 있으며 긴 축하 행렬까지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각 시대마다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도 있으며 급제자의 옷이나 벨트도 있고 책도 있다. 명나라 시대 이후 청나라 말기까지 과거를 거쳐 간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와 그들이 쓴 서예나 책도 있다. 각 방마다 인물들의 밀랍 인형도 있다.


즈공탕 편액 양 옆으로 잉어 두 마리가 나란히 걸려 있다. 중국에서 잉어는 사업의 성공이나 꿈의 실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베이베이(貝貝)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길상의 뜻을 지닌 롄녠여우위(連年有餘)에도 잉어가 등장한다. 매해 설날이 되면 살아있는 잉어에게 예를 올리기도 하고 물고기 머리를 먹기도 한다. 쿠이싱 조각상 뒤로 조명에 비친 붉은 잉어 비늘과 노란 머리가 인상적인 모습이다.


난징은 원래 진시황 이래 진링(金陵)이라 불렸다. 진시황이 난징에 와서 보니 배반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진시황 측근이 산의 형세가 금(金)의 기운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며 산 곳곳에 구멍을 뚫어 그 맥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오나라 손권도 이곳에 도읍을 정했으나 멸망했고 태평천국의 홍수전이나 신해혁명으로 탄생한 공화정을 수립한 쑨원과 장제스 모두 실패한 혁명가가 되고 말았다. 명나라는 주원장이 난징에 도읍을 정했지만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276년을 지속했다.


과거 제도는 황제의 관료를 뽑는 방법이며 사대부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일 것이다. 수많은 선비들이 장난궁위엔의 잉어와 용이 새겨진 문을 넘어 역사의 인물로 거듭났다. 문장 실력을 겨루고 1등이 되려는 경쟁의 공간이니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눈물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3)   난징 南京 연꽃 촛불이 도는 물 항아리에 비친 공자


난징 푸즈먀오(夫子廟)는 송나라 시대인 1034년에 건립된 공자 사당이다. 공자를 가리켜 공부자(孔夫子)라 한데서 유래했다. 밤이 되자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많다.


사당 앞에는 친화이허(秦淮河)가 흐르는데 강변에는 명나라 시대에 세운 커다란 천하문추(天下文樞) 패방이 있다. 패방에서 정문을 바라보면 흰색 돌로 만들어진 반듯한 링싱먼(欞星門)이 보이고 그 사이로 정문인 다청먼(大成門)이 연이어 보인다.


엄숙한 분위기 속으로 조용히 안으로 들어서니 높이가 4미터 18센티미터, 무게가 2.5톤에 이르고 청동 조각상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공자 상이 있다.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지만 아주 장중한 분위기가 풍기는 다청뎬(大成殿)이 보이고 양쪽으로는 이름난 유학자들의 조각 상들이 배열돼 있다.


조각 상 앞 항아리에는 향을 태우고 있다. 화재를 대비한 물 항아리 안에 연꽃을 띄워 놓았다. 연꽃 모양의 촛불이 타오르면서 빙빙 돌아가니 환상적인 장면이다. 공자 조각상이 물 항아리 속으로 반사돼 있으니 더욱 흥미롭다.


잠시 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을 보고 있는데 사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더 가져오더니 항아리를 아예 잔뜩 채운다. 손으로 한번 휘저으니 연꽃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건물에서 비치는 홍등이 수면에도 반사되니 오색찬란함 그 자체다.


다청뎬 안으로 들어가니 공자의 화상(畫像)이 걸려 있다. 이것 역시 높이가 4.18미터이고 폭이 3.15미터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공자 그림이라고 한다. 사방 벽에는 옥으로 만든 공자의 행적이 새겨 있다.


동남제일학(東南第一學) 편액이 걸린 문을 지나면 밍더탕(明德堂)이 나온다. 정원에는 시리팅(習禮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높이가 2.55미터, 무게가 4톤에 이르는 청동 종인 리윈다중(禮運大鐘)이 자리잡고 있다. 2.55미터인 것은 공자 탄신 2,550년을 기념해 만든 것. 역시 숫자에 의미 부여를 잘 하는 중국 사람들이다.


밍더탕의 원래 이름은 밍룬탕(明倫堂)이었는데 원나라가 침공해 왔을 때 남송의 명재상인 문천상(文天祥)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개명했다. 대부분 공자의 사원 내 학당이름이 밍룬탕인데 이곳은 유일하게 밍더탕인 이유다. 처마 아래의 풍경과 홍등이 나란히 예쁘게 흔들리고 있다. 홍등을 한참 보고 있으니 연하면서도 붉은 듯 선명한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다.


밍더탕 안에는 저녁마다 작은 전통악기 연주회가 열린다. 피파(琵琶), 디즈(笛子)와 다셩(大生), 구정(古箏)과 더불어 편종(編鐘) 소리가 한밤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감미롭게 바꿔 주고 있다. 각 악기마다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한데 어우러지는 멋진 합주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는데 편종과 함께 편경(編磬)을 함께 연주한다. 물론 세 종류의 종을 치는 편종소리에 약간 묻히긴 해도 자주 볼 수 없는 편경이다. 맑은 소리가 아주 듣기 좋다. 편종과 편경의 합주를 처음 듣게 됐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은은한 밤의 황홀경으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21줄 현으로 튕기는 구정 독주로 달콤한 소리를 퍼뜨리고 있다. 한 꼬마가 신기한 듯 앞으로 나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현을 소리로 창조하는 아가씨의 두 손, 그리고 현에 집중하고 있는 시선을 바라보며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주가 조용히 끝났다.


공자상과 연꽃(왼쪽), 푸즈먀오 공연(오른쪽 위), 덩차이(오른쪽 가운데), 친화이허 야경(오른쪽 아래)


푸즈먀오 안에 재미있는 민간예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목직기(木織機)로 직조해 옷을 만드는 것을 윈진(雲錦)이라 한다. 1,500년 전에 도입된 직조 기술로 꽃무늬가 도드라진 귀족이나 왕족 계층이 입던 옷을 수공으로 만든다.


종이와 금빛 철사를 엮어 만든 초롱인 덩차이(燈彩)가 보인다. 용을 비롯 어린 사자, 수박 먹는 저팔계, 병아리 같은 토끼, 금빛 찬란한 연꽃, 등에 꽃 실은 코끼리, 연못에서 노는 새우, 하늘 나는 비행기 등 제목만 봐도 귀엽기 그지 없다.


푸즈먀오 정문 앞에는 친화이허 강물이 흘러가는 아담한 연못이 있다. 송나라 시대인 1029년 하천에 연못을 만들었는데 공자 사당 앞에 있다고 해서 학교 연못이라는 뜻으로 판츠(泮池)라고 불린다. 전체 길이가 110미터에 이르고 용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홍장조벽(紅牆照壁)이다.


홍등을 단 나룻배들이 하천을 오고 간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밤배 놀이를 할 수도 있다. 하천 옆 누각 하나가 밤이 되니 더욱 빛나고 있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붉은 벽에서 내뿜은 조명이 연못 위에 번져 검붉은 물결을 출렁이고 있는 모습이다.


배 한 척이 다가오더니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총천연색 조명이 마치 꿈 속의 동화 속 모습처럼 몽환적이다. 다리 옆에는 난징 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많은 식당들이 줄줄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밝은 조명이 빛나는 바이루챠오(白鷺橋)까지 한 바퀴 돌았다. 다리 아래는 하늘색 조명으로 다리 아래를 감싸고 있고 주변의 연두색 조명과 어울려 빛을 내고 있다.


푸즈먀오 거리는 난징 최고의 문화거리이자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수도였던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 역사적 전통을 지닌 다채로운 문화 도시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4)   난징 南京 392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치열한 혁명가의 일생을 회고하다


난징에 가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곳이 바로 중산링(中山陵)이다. 2006년 8월 한여름에 왔었지만 쑨원(孫文)의 묘지에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주창한 그는 1925년 베이징에서 병사한 후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에 묻혔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쑨원의 무덤에 오르려면 박애(博愛) 패방을 지나야 한다. 이 글자는 쑨원이 쓴 책에서 따 온 것이다. 마침 무슨 행사가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시끄럽다. 하늘로 높이 솟아있는 3개의 문은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는데 문으로 들어서면 멀리 어슴푸레 묘역이 보인다. 날씨가 다소 흐려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천천히 걸어올라 가면서 쑨원을 떠올려 본다.


1866년생인 쑨원은 광둥(廣東)성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보낸 그는 서구식 교육을 받았으며 청나라의 부패를 보면서 반청 사상을 지니게 된다. 서양 열강의 침탈을 보면서 반외세 민족주의와 애국 사상을 체득한다. 1894년 자신의 조직기반이 된 '흥중회(興中會)'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으로 혁명 운동에 뛰어든다.


'만주족 축출과 중화의 회복', '민주공화국 지향', '균등한 토지 소유'로 요약되는 삼민주의로 큰 호응을 얻게 된다. 1911년 봉기가 터지자 중국으로 돌아와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 대총통에 취임한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퇴위시킨 신해혁명으로 공화정을 이룬 것이다.


푸른 하늘을 상징하듯 청색 류리(琉璃) 기와가 덮인 링먼(靈門) 앞에 울긋불긋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링먼에는 쑨원이 쓴 필체로 ‘세상은 국민의 것’이라는 천하위공(天下為公) 편액이 걸려 있다.


한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반혁명 음모로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해 1914년 6월 국민당의 전신인 중화혁명당(中華革命党)을 조직한다. 1915년 쑹칭링과 결혼하고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성공하자 소련과 접촉하기도 한다. 1919년 5·4운동 이후 당 이름을 중국국민당으로 개편하고 광동 성 광저우를 중심으로 혁명 운동을 전개한다.


높이 17미터에 이르는 베이팅(碑亭)이 나타난다. 정자 안에는 높이 9미터의 비석에 1928년 당시 국민당 정부 주석이던 탄옌카이(譚延闓)가 쓴 비문이 있다. 당시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 자리를 양보했기에 총리(總理) 직위를 써 놓았다. 베이팅을 지나면 멀리 수많은 계단과 함께 지탕(祭堂)의 모습이 드러난다.


중산링 입구(왼쪽 위), 쑨원 묘역(왼쪽 가운데), 찻집(왼쪽 아래), 중산링 전경(오른쪽)


쑨원은 당시 전국을 장악하고 있던 봉건군벌을 타도하기 위해 소련의 코민테른과 중국공산당과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 1924년 광저우에서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자회의를 소집해 '러시아와 연합' '공산당과의 연합' '노동자 농민에 대한 원조'라는 3대 정책을 확정하고 공산당이 참여하는 중앙통치기구를 구성한다. 또한 중국공산당과 함께 군관학교를 창설하고 혁명군대의 설립을 위한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민족주의를 강화해 외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위해 군벌들과 전쟁을 치르기도 하는 한편 군벌들과 협력을 하기도 한다. 당시 베이징은 직계(直系)군벌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동북의 봉계(奉系)군벌이 직계군벌을 전복시킨 후 쑨원에게 국정논의를 위해 상경할 것을 요청한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1925년 3월 12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쑨원의 일생을 생각하며 천천히 계단을 걸어올라 묘가 있는 지탕으로 오른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모두 392개나 되는 화강암 계단을 오르려면 꽤 숨차다. 베이징올림픽을 자랑하는 꽃밭이 강렬하다.


지탕에는 민족, 민주, 민권이 나란히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세상의 바른 기풍’을 뜻하는 천지정기(天地正氣) 편액이 있다. 지탕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지탕 안에는 원형의 대리석으로 만든 묘혈이 있다. 입구에는 쑨원의 석상이 반듯하게 서 있다. 안에 들어가면 중앙에도 누워 있는 석상이 있다. 석상 밑에 고이 잠들어 있는 쑨원, 하지만 내부는 촬영이 금지돼 아쉽다.


쑨원은 사망하기 전날 3개의 유서(遺囑)에 서명했다. 국사(國事)와 관련해 자신의 혁명이념이 성공할 수 있기를 희망했으며 가사(家事)와 관련해서는 자신의 유품을 모두 20살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 쑹칭링에게 물려주며 혁명유지를 계승해줄 것을 당부했다. 소련에 보내는 유서도 있는데 양국이 협력하여 승리를 거두자는 염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지탕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계단을 올라오고 또 내려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외국인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며 아이들은 쑨원에 대해 어떻게 배우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씩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한여름에도 가끔씩 세찬 비를 뿌리는 곳이라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마침 박애의 집(博愛之家)라는 찻집이자 식당이 보여 잠시 비를 피했다.


찻집 조명이 유리창 밖으로 내비치고 나뭇가지가 흩날린다. 차분하게 앉아 차 한잔 하면서 쑨원이 살았던 삶을 되새겨 본다. 비바람에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나뭇가지들만 한없이 바라보면서.


그의 치열했던 혁명정신에 비하면 너무나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공산당과도 흔쾌히 손을 잡은 쑨원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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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2 안후이 2 오악을 다 합쳐도 황산만 하랴



4) 황산 黃山 오악을 다 합쳐도 황산보다 더 멋질 순 없다 


황산 아래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겼다. 큰 배낭에 모든 짐을 넣고 작은 배낭에는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두꺼운 옷 하나만 넣었다. 그리고 탕커우(湯口)터미널 앞 식당에서 다음 행선지 버스표를 예매하고 짐을 맡겼다.


황산 지도를 폈다. 너무 볼 곳이 많아서 1박 2일로 다 볼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오는 코스만 정하고 터미널에서 윈구쓰(雲谷寺) 가는 버스를 탔다. 황산 아래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아 사람들을 잔뜩 태우더니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간다. 입장료 200위엔, 케이블카 65위엔. 참 비싸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파르게 날아올라 간다. 한국 관광객들이 케이블카 안에 많아서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산에 온 듯하다. 산 아래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온통 하얀 세상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 좋기는 한데 점점 날씨가 춥게 느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바이어링(白鵝嶺)이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세차서 마치 초겨울 같은 날씨다. 긴 옷으로 갈아 입고 본격적으로 황산을 유람하러 떠난다. 낯선 산에 오르면 처음에는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데 평면지도를 보고 이 광활한 산봉우리의 입체감을 상상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황산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구름이 만들어놓은 공간을 바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둥하이(東海), 시하이(西海), 베이하이(北海)가 있고 톈하이(天海)도 있다. 검은 호랑이가 나무 꼭대기에 앉았다는 전설이 있는 헤이후송(黑虎松)을 지나 스신펑(始信峰)으로 올랐다. 삼면이 바다처럼 훤하게 뚫렸다. 맞은 편은 십팔나한이 남쪽 바다를 향해 있는 모습이라는 바위가 보일 듯 말 듯하다.


황산 둥하이를 바라보고 서 있는 곳에는 소나무가 참 많다. 봉우리 끄트머리에 불쑥 자라기도 하고 길가에 그저 서 있기도 하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이름의 뜻을 새기면 볼수록 참 그럴 듯하다. 용이 누운 듯한 소나무는 워룽쑹(臥龍松)이라 하며, 바다를 찾고 있는 소나무는 탄하이쑹(探海松), 접견하는 모습의 소나무는 제인쑹(接引松)이라고 부른다.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계단 길을 따라 베이하이를 향해 이동한다. 등산로마다 소나무 그늘 속에 빨간 열매가 예쁘게 폈다. 한 알 따서 먹어보니 시큼합니다. 이 열매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마가목 나무 열매다. 얼핏 앵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열매 끝이 십자로 그어져 있는 것이 앵두와는 다르다. 스신펑이 해발 1,668미터이니 높기도 하지만 9월 말의 황산은 꽤 춥다. 그런데도 상쾌한 숲 내음을 마시며 오르내리며 걸어가니 어느새 땀도 난다.


산길을 타고 넘으니 베이하이 호텔이 있는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해가 남아 있을 때 빨리 여러 곳을 둘러봐야 한다. 황산에서 구름의 향연이 가장 멋지다는 베이하이를 보러 오른다.


계속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허우즈관하이(猴子觀海)라는 팻말이 붙은 칭량타이(清涼臺)를 발견했다. 스즈펑(獅子峰) 가는 방향에 있는 능선으로 '원숭이가 바다를 바라보는’ 형태의 기묘한 암석이 보인다는 곳이다.


한두 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뿌옇게 구름이 사방을 가리고 있어서 도대체 무얼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함께 5분 정도 기다리자 한 사람이 "나타났다(出來了)"고 소리친다.


깜짝 놀라서 보니 정말로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왼쪽에 온통 바위 덩어리인 산봉우리에 원숭이처럼 생긴 바위가 달랑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멋진 발상의 이름이라는 생각이다. 오른쪽으로는 구름에 살짝 가린 듯 낙타 등처럼 생긴 퉈베이펑(駝背峰)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순간에 베이하이의 멋진 경관이 거짓말처럼 펼쳐 나온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사진 작가들이었다. 연신 셔터를 눌러 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10여 분 동안 벌어진 깜짝 공연이다. 구름이 끼었다가 어느 순간 잠시 잠깐 동안 사라지는 모습도 장관이지만 구름이 다 사라지고 나면 황산의 온갖 절묘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황산의 구름바다는 이곳에서 보는 것이 제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진작가들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과 함께 카메라와 캠코더를 번갈아 가며 환상적인 황산의 바다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았다.


구름은 바람 속도만큼 사라졌다가 또 채우길 반복하고 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구름이 생겨났는지 궁금할 정도다. 눈높이와 거의 비슷한 구름들 속으로 날아가 뛰어들고 싶다. 손오공처럼 날아서 저 하얀 바다에 푹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서해대협곡 하늘(왼쪽), 황산의 사진작가(오른쪽 위), 황산의 구름(오른쪽 아래)


아직 해가 지려면 한두 시간 남은 듯하다. 천천히 다시 길을 따라 내려와서 시하이 호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0여 분 내려가니 계곡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호텔이 나타났다. 그 건물을 끼고 서쪽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파이윈팅(排雲亭)에서는 시하이를 볼 수 있다. 베이하이의 변화무쌍한 구름 바다와 조금 다른 느낌이다. 구름들이 산봉우리에 힘껏 솟아난 소나무 옆에서 뭉게뭉게 묻어있는 듯 조용하다. 파도가 세지 않고 물살도 고요한 바다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 전망대는 넓은 편이라 사람들도 아주 많다.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사진 찍느라 산만하기도 하다.


날카롭게 뻗어 오른 길쭉한 바위들이 눈 아래에 펼쳐 있다. 하늘을 날아가다가 그저 계곡에 머문 듯한 구름의 형상이다. 구름을 뚫고 올라온 바위들 모양도 다 기기묘묘하다.


서쪽 능선을 따라 걸어갔다. 걷다가 멈춰서 보면 어느새 바위들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5분 정도 걸었는데 바위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다른 풍경이 드러나니 역시 황산의 오묘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옆으로 나란히 가지를 펼친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처음부터 지금 이대로의 자태일 것이니 수 많은 사람들마다 비슷하게 공감했을 듯하다.


서쪽으로 아직 해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땀이 난다. 갑자기 바로 앞에 절벽 속을 뚫고 지나가야 할 듯한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동굴 속을 지나는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바위 하나를 지나면 햇빛이 나오고 또다시 바위 속으로 들어서니 또 계단이 나온다. 바로 협곡인 시하이다샤구(西海大峽谷)로 가는 길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계곡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갑자기 하늘이 파란 빛깔을 띠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구름이 새털처럼 흩날리고 있다. 오른쪽 봉우리 위에 한 그루 소나무가 쓸쓸하면서도 의연한 자태로 홀로 서 있다. 직선으로 뻗은 절벽에는 나무들이 실루엣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이 협곡 등산로 따라가면 하산 길이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데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바로 옆 봉우리 이름이 붉은 노을이라는 단샤펑(丹霞峰)이다. 봉우리가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만 드러내고 있고 봉우리 사이로는 구름바다가 출렁이고 있는데 등 뒤로는 붉은빛 광채를 띠기 시작한다. 노을 위로 구름이 쏘다니니 노을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듯하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으니 완전 깜깜한 밤이다. 시하이 호텔로 되돌아왔다. 호텔에는 패키지 여행을 온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다. 방값도 꽤 비싸지만 빈 방도 없다. 이 호텔 슈퍼마켓 옆에 도미토리가 있다. 하룻밤 침대 하나에 100위엔이다.


8인실로 들어가 침상에 짐을 놓자마자 다른 일행이 들어왔다. 끼니와 취침을 위해 가게에서 먹거리를 사서 돌아왔더니 중국 사람들이 이미 판을 벌여 놓고 있다. 산둥에서 온 사람들인데 호탕하고 인간적이다. 자기네 동네에서 사 온 훈제 닭고기를 꺼내더니 함께 먹자고 한다. 유명한 더저우(德州) 지방의 파지(扒雞)다.


밖으로 나와 보름달 아래에서 고향 생각에 젖어본다. 황산의 멋진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번져 간다. 빨리 잠을 자야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볼 터인데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5) 황산 黃山 봉우리를 헤아리며 내려오니 인사하는 소나무가 있네 


황산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친해진 산둥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하는데 어제 보고 왔던 칭량타이로 간다고 해서 아쉽게 헤어졌다.


어둠 속에서 앞사람이 가는 발자국을 따라 엉금엉금 기어서 산자락을 오른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거의 1시간 만에 광밍팅(光明亭)에 도착했다. 해발 1860미터이니 황산 최고봉인 롄화펑(蓮花峰)보다 불과 4미터 아래다. 롄화펑은 입산 금지라고 하니 황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모여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하늘은 온통 구름인지 안개인지 희뿌연 모습이라 과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일 지 걱정이다. 빨간 글자로 황산의 날씨 정보를 제공해주는 전광판을 계속 주시했지만 갑자기 날씨가 바뀔 리가 없다.


한참을 애닯게 기다렸건만 안타깝게도 황산 일출을 볼 수 없었다. 타이산(泰山)에서 봤던 일출이 새삼 그리워진다. 사람들도 모두 아쉬운 듯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등산복을 입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아가씨 두 명도 끝까지 남아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 황산을 내려가야 한다. 사방이 안개로 덮여 있는 등산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아가씨들의 등산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산에 오를 때는 등산복을 입고 오는 것이 멋있다. 중국사람들은 대부분 평상복으로 산을 올라오니 이렇게 제대로 차려 입고 온 아가씨들이 흔하지 않다.


톈하이를 가로질러 위핑펑(玉屏峰)까지 가는 길은 황산이 보여주는 또 다른 멋진 그림 같은 풍광이다. 이셴톈(一線天)은 가파르면서도 온 사방을 다 조망할 수 있게 탁 트였다. 하늘은 어느새 새파란 천연의 빛깔로 변해 있다.


군데군데 흰구름이 양념처럼 떠다니는 것도 보기 좋지만 바위를 뚫고 나온 소나무 가지들이 휘날리는 율동 역시 정겨운 장면이다. 거대한 바위가 통째로 하나의 봉우리인 모습이 보이는데 꿋꿋하게 비바람을 맞으며 오랜 세월 버틴 의연함까지 엿보인다.


이제 해가 하늘 높이 솟아 올라 눈이 부시다. 점점 색다른 절경이 나타나니 빨리 걸음을 옮겨 가기가 아쉽다.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이나 다 절경이니 한번 만에 다 보기도 힘들고, 보면 볼수록 이 장관을 한꺼번에 시야에 넣어 보려고 애를 써 본다.


황산을 오악에 넣지 않고 오악을 다 합친 모습이라 칭찬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두루 퍼져 있는 사해와 황산 72봉 모두 한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고 뜻을 품은 생김새로 서 있는 소나무의 잔치가 바로 황산의 제멋이 아닐까 싶다.


황산 72봉 중에 36봉은 샤오펑(小峰)이고 36봉은 다펑(大峰)이라 한다. 어느 것이라도 봉우리답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크고 작다는 크기의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황산 관광지도를 펴고 봉우리를 세어보니 60개가 조금 안 된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봉우리 작명은 왜 이럴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중국 어느 작가가 관광지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이름이 너무 거창해서 문제라고 했던 것을 본 기억이 났다. 봉우리 이름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가장 멋진 이름이 무얼까 한번 골라 보기로 했다.


부처님 손바닥 포장펑(佛掌峰), 최고의 명품 이핀펑(一品峰), 비취색 은은한 추이웨이펑(翠微峰), 겹겹이 겹쳐진 뎨장펑(疊嶂峰) 등 참 멋지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소박하면서도 가장 황산다운 이름인 윈와이펑(雲外峰)이 가장 마음에 든다. 황산 서쪽 끝자락에 구름을 벗어나 있으니 그렇게 이름을 지은 듯 하다. 멋진 봉우리들을 다 둘러보지 못했지만 일일이 이름과 맞춰보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그저 환상적이다.


일출 기다림(왼쪽 위), 황산 하산 길에서(왼쪽 가운데), 황산 광장(왼쪽 아래), 핸드폰 돌(오른쪽)


바위 속을 뚫고 가는 듯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높은 산의 벼랑처럼 생긴 이 길 이름은 바이부윈티(百步雲梯)다. 아마도 황산에서 가장 멋지고 인상적인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단을 살피면서도 시선은 자꾸 산봉우리로 향한다. 저 멀리 산 능선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길고도 멋진 모습이다. 사람들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한다. 가마를 타고 오르내리는 노인들도 있고 아이들도 있다.


신기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모양이 흡사 핸드폰과 꼭 닮은 셔우지스(手機石)이다. 바위 위에 누가 날라다 놓은 듯 살포시 기대어 서 있는 이 바위는 핸드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원래 이름이 없던 바위인데 최근에 등산로를 새로 만들면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황산의 쾌청한 파란 하늘이 아주 보기 좋다. 구름도 너무나도 파란 빛깔의 하늘을 보느라 멈춘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마치 남성의 상징처럼 생긴 바위도 보였다. 너무나도 리얼한 모습이라 사람들의 얼굴빛이 붉어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위핑펑으로 방향을 잡았다. 약간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이 길에는 2개의 소나무가 있는데 800년 이상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는 잉커쑹(迎客松)과 길옆에 외롭게 서 있는 쑹커쑹(送客松)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소나무와 보내는 소나무 이름이다.


특히 바위가 중첩돼 겹겹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위핑러우 옆에 있는 잉커송은 황산의 상징과도 같다. 커다란 바위에는 별의별 글자들이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등 다양한 빛깔로 새겨져 있다.


넓은 광장에는 등산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쉬어 가고 있다. 모자 쓰고 배낭 메고 산을 올라온 사람들이 환한 미소를 띠며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황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끽한 사람들의 감동과 여유가 전해 온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내려간다. 구름을 뚫고 가는 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케이블카 쇠줄만이 보일 뿐이다.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마치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느낌이다. 가끔 아래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바위에 걸쳐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황산 4절(絕) 중 비록 온천(溫泉)에 몸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를 실컷 봤다. 황산의 진면목을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릴 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오악을 다 합친 것만큼 아름답다는 황산이란 말이 실감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다시 황산을 바라보니 산 정상 부근은 온통 구름에 가려져 있다. 산 아래에서는 황산의 멋진 모습을 도저히 보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6) 허페이 合肥 조조의 부하 장수 장료의 돌진에 황급히 도망가는 손권 


안후이 성 수도인 허페이의 아침을 맞았다. 북송 시대 청백리로 유명한 포청천 포증(包拯)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청나라 말기 양무운동을 주도한 이홍장(李鴻章)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훨씬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의 용맹스런 장수이던 장료(張遼)는 단 8백 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온 손권에게 돌진해 혼을 빼놓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샤오야오진(逍遙津) 전투가 바로 허페이다. 지금은 공원이 됐으니 삼국지의 현장을 만나러 간다.


공원 입구인 남문에는 구샤오야오진(古逍遙津)이라는 현판이 멋지게 걸려 있다. 이 편액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宣統)제의 스승 육윤양(陸潤癢)이 쓴 책에서 따온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양 옆으로 수없이 많은 등이 걸려 있으며 빨간 색 천이 마치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정면에 장료가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위세를 떨치는 자세로 서 있다.


조각상 아래에는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장료가 ‘샤오야오진을 진동시키다(威震逍遙津)’는 이야기를 인용한 글자가 새겨 있다. 말에 올라 타고 돌진하는 꼿꼿한 모습이 정말 삼국지의 한 장면 같다.


버드나무가 축 늘어서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넓은 샤오야오후(逍遙湖)가 보인다. 호반 벤치에는 다정한 연인 한 쌍이 앉아서 밀어를 나누고 있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어 간다.


호수 건너편에는 평탄해 보이는 아치형 다리가 보이고 그 옆에는 커다란 누각과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있다. 호수를 따라 가면서 보니 예쁜 꽃으로 장식한 하트 문양이 보인다. 연인들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장료에게 쫓겨 손권이 혼비백산 달아났다는 두진챠오(渡津橋)가 나타났다. 삼국시대 역사 상 가장 적은 수로 큰 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以少勝多) 가장 전형적인 전투이니 이 다리를 건너 달아나는 손권의 절박한 심정이 전해 오는 듯하다.


다리 옆에는 높이가 22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샤오야오거(逍遙閣)이 서 있다. 이 누각은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실제로 안에서 보면 5층인 명삼암오(明三暗五)의 양식으로 건축된 것이다.


한낮의 더위를 참지 못하고 호수 옆 정자 안에서 한 사람이 잠을 자고 있다. 정자의 모습을 갖췄지만 별장이라는 뜻의 샤오야오슈(逍遙墅)다. 홍등이 줄줄이 매달려 있고 사진 한 장이 흔들리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 술 광고사진이다. 푸른 버드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호수의 경관과 잘 어울리는데 붉은 등이 있으니 생뚱 맞아 보인다.


샤오야오거와 다리(왼쪽), 장료 조각상(오른쪽 위), 샤오야오진 공원(오른쪽 아래)


다시 다리를 지나 공원 서쪽으로 갔다. 안내판을 보니 장료의 묘가 있다. 어린이 놀이시설을 지나 한적한 공원 길을 따라간다. 묘를 수호하는 동물 조각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작은 정자 하나가 나온다. 다시 정자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장료의 의관총(衣冠塚)이 나온다. 무덤을 한 바퀴 빙 둘러보는데 무덤 속에서부터 자라난 나무가 놀랍다. 10만 대군을 위협한 장수의 무덤치고는 한산하고 평범하다.


무덤 옆으로 난 오솔길에는 있는 작은 하천에는 초록빛깔의 풀잎이 떨어져서 마치 푸른 잔디밭처럼 보인다. 나무 한 그루가 휘어져서 하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마치 옆으로 자라는 나무 같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은 아늑한 분위기에 새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멋진 산책로다. 잔디밭에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던 새 한 마리가 풀쩍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새 두 마리가 바위 위에 앉았다가 나란히 날아오른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한참 앉아 있는데 평범하면서도 아늑한 시민 공원이지만 역사를 담은 곳답게 나름대로 격조가 있다. 공원 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나무와 풀, 새와 바위 모두 역사의 기억을 담고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시끄러운 중국의 공원에서 한 시간만 있어도 머리가 아파오는데 이렇게 조용하면서 자연과 잘 어울리는 공원이라면 아주 오래 머물러도 좋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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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1 안후이1 와호장룡처럼 등장하는 낭만적인 옛 촌락 속으로



안후이 성은 춘추전국시대 오월초(吳越楚) 세 나라의 부용(附庸), 즉 속국이었는데 원래 상(商)나라 후예들이 세운 환(皖)나라의 근거지였다. 그래서 안후이의 약칭은 완(皖)이다.


청나라 강희에 이르러 강남성(江南省)이 장쑤(江蘇)와 안후이(安徽)로 분리된다. 이때 창장 북쪽의 안칭(安慶)과 후이저우(徽州)의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당송 시대를 거쳐 명나라에 이르러 휘상(徽商)은 중국 3대 상방으로 성장한다. 청나라 말기에는 호설암과 성선회를 비롯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등장하는 화폐이론가이자 상인인 왕무음(王茂蔭), 중앙 정치권력을 장악한 좌종당, 이홍장 등 안후이 출신들이 득세한다.


안후이의 수도는 창장 북쪽의 허페이(合肥)이고 오악을 합친 듯 멋진 황산은 세계적 관광지로 손색이 없으며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안후이 고촌락인 훙춘(宏村)과 시디(西遞)는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1)  툰시屯溪 게 껍데기처럼 생긴 황산의 명물과자가 있는 거리


황산 시 툰시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은 황산을 여행하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춘추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됐으며 서기 208년 삼국시대 손권이 당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군대가 주둔한 이래 각 왕조를 거치면서 수운과 상업이 발달한 안후이 남부 중심지였다.


신안장(新安江), 헝장(橫江), 솨이쉐이(率水)가 서로 만나는 곳으로 20세기에 들어서도 활발한 상업 활동으로 상인들이 몰려들고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샤오상하이(小上海)라 불리기도 했다. 1987년에 주변 4개 현 및 툰시 구, 후이저우 구, 황산 구를 통합해 황산 시가 됐으며 시 정부는 툰시에 있다.


신안장 강변 북쪽 빈장시루(濱江西路) 바로 뒷골목은 라오제(老街)라 부르는 문화풍물거리이다. 툰시 라오제는 핑야고성(平遙古城), 양숴시제(陽朔西街), 샹츄(商丘), 다리(大理)와 리장(麗江) 고성거리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근거리에 있는 샤오싱, 항저우, 쑤저우와 같은 강남 풍경과도 달리 평범해 보이는 거리이지만 세계적 명산인 황산이 바로 옆이라 옛 골목이 외국인들을 위한 갖가지 가게들로 넘쳐 나고 있다.


라오제 가옥들은 대체로 2층 구조로 돼 있으며 회백색 담장과 검은색 기와가 어우러진 모습이다. 나무로 된 문들은 붉은 단청 색감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거리의 찻집이나 공예품가게, 약방들은 2층 누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새로 단장한 모습으로 고급스런 나무로 창살에는 문양들을 새긴 모습이다.


멋진 분위기가 풍기는 커잔(客棧)이 있고 고풍스런 건축물이 볼수록 정이 가는 거리다. 더양러우(德陽樓) 앞 사거리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모두 줄을 서서 길거리 음식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바로 훈툰(餛飩)으로 아주 흔한 음식인데도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 궁금했다. 그 해답은 재미있는 주인 때문. 왕이탸오(汪一挑)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유명해진 사람으로 방송에도 출연했고 신문에도 났다고 자랑한다.


게다가 자기 블로그까지 있다고 한다.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훈툰인데 그 자리에서 반죽해 아주 빠르게 고기를 집어넣더니 직접 나무통에 넣고 익힌다. 5분 정도 기다리면 요리가 완성되고 예쁘게 디자인된 종이그릇에 담아준다. 작은 그릇 하나에 5위엔이니 싸고 맛있다. ‘이 왕이탸오를 먹지 않으면, 라오제를 헛걸음하는 것(不吃汪一挑,白走老街這一遭)’이라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한 아가씨가 직접 손으로 대나무로 동물들을 엮어 만든 공예품을 팔고 있다. 토산품, 먹거리가 즐비하고 문방사보도 파는데 커다란 부채가 있는 곳에서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한다.


라오제에서 가장 크다는 통더런(同德仁) 약방에는 진맥도 해주고 약도 조제해 주겠지만 살짝 들어가 보니 커다랗고 때 묻은 약장이 오랜 세월 이곳에서 성업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올림픽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자리잡고 있는데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골목길에 있는 세커황(蟹殼黃)이라는 별명을 가진 황산 샤오빙(燒餅)을 파는 곳이 보인다. 한 아주머니가 화로 벽에 밀가루반죽을 하나씩 다닥다닥 붙여서 굽고 있다. 10위엔에 한 열 개 정도 준다. 게 껍데기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이 붙은 이 전통 과자는 아쉽게도 아무런 맛도 없이 밋밋하다. 화로 속에서 골고루 잘 익혀 태운 것이 정말 누렇고 붉은 게를 먹는 듯하다.



라오제 차 시장(왼쪽), 라오제 거리(오른쪽 위), 샤오빙(오른쪽 가운데), 이핀거 식당(오른쪽 아래)


샤오싱에서도 사 먹었던 룽쉬탕(龍鬚糖)이 보인다. 황제가 먹던 간식으로 수염처럼 가늘고 백발처럼 생겨서 민간에서는 인쓰탕(銀絲糖)이라고 부르는 룽수이탕을 직접 만드는 모습이다.


이곳은 뭐니뭐니해도 안후이 남부의 유명한 차 시장이다. 황산 부근에는 이름난 차가 아주 많다. 맑고 붉은 빛깔에 소름이 돋는 10대 명차 치먼홍차(祁門紅茶)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예쁜 찻집들이 많으니 홍차를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라오제 동쪽 끝자락에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가운데 라오제 패방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패방이 라오제의 밤 분위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핀거(一品閣) 건물에 빨간색 바탕에 쓴 차러우(茶樓)라고 쓴 등이 아주 예쁘다. 옆에는 라오제디이러우(老街第一楼)가 있는데 전형적인 안후이 요리를 파는 식당이다. 유리 창문으로 돼 있어 식당 안에서 맛있게 요리를 먹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훤히 다 보인다.


라오제를 벗어나는 곳에서 꼬마아이 둘이 제기차기를 하고 있다. 밤이 깊어가는데 가게를 보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 중인가 보다. 거리를 벗어나 강변 조명을 바라보며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강변 산책로는 아주 조용하다. 강을 따라 호텔마다 화려한 조명이 빛나고 있다. 오후부터 밤 늦도록 이리저리 라오제를 돌아다녔더니 피곤한다. 라오제에 가면 좋은 차를 골라 사면 좋을 듯하다. 황산공항에 내려 바로 산으로 가지 말고 하루 정도 라오제에서 싸고 맛 좋은 차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2)  훙춘 宏村 와호장룡처럼 등장하는 낭만적인 옛 촌락 속으로 


황산을 가는 길에 굳이 툰시에 머문 것은 황산보다도 더 가고 싶었던 완난(皖南) 고촌락 때문이다. '완'은 안후이의 별칭이니 안후이 성 남부에 형성된 옛 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별스러울 것은 없지만 정말 꼭 보고 싶던 곳으로의 여행이니 아침부터 즐겁다. 오늘 가는 곳 중 먼저 도착한 곳은 이현(黟縣)에서 1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훙춘이다. 이현은 기원전에 형성된 마을인데 중국에서 외자로 된 현 이름은 대체로 2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고 보면 된다.


매표소 입구를 지나 10여 분 걸어가면 자그마한 호수인 난후(南湖)가 나온다. 맑고 잔잔한 호수를 따라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정겹다. 호수에 비친 건물들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니 학생들이 캔버스를 놓고 연필로 열심히 데생을 하고 있다.


난후 옆으로 호수 위에 멋진 아치형 다리가 나타났다. 리안(李安) 감독의 <와호장룡(臥虎藏龍)> 첫 장면에 스틸 컷처럼 나오는 촬영지다. 다리를 보는 순간 도저히 쉽게 연출할 수 없는 멋진 모습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봉긋한 돌다리와 수련이 어우러지고 있으며 천 년의 역사를 담은 집들과 먼산 구름과 하늘까지 차례로 드러나는 환상적인 장면. 잠시 숨을 멈추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천천히 돌다리를 넘어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옷 색깔조차 그야말로 그림이 된다. ‘중국 그림의 고향’이라는 이름답게 훙춘의 첫인상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역시 화폭에 담으려는 학생들이 곳곳에 많다. 다리를 넘어가는 나 역시 학생들의 붓 칠로 화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수를 건너가면 바로 붙어 있는 난후서원이 나온다. 1814년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서원으로 모두 여섯 채의 사숙이 호수에 접해 있다고 해서 의호육원(依湖六院)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의 커다란 서원으로 통합해 이문가숙(以文家塾)이라 부르기도 한다.


목조 건물로 건축된 회벽 색 담장에 홍등이 걸려 있다. 사람들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려는 입구는 쇠창살을 설치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다 보니 복잡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힌다.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도 있고 공자에게 예를 올리는 곳도 있다.


다시 호수 쪽으로 빠져 나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이 마을은 원래 왕(汪)씨 집성 촌이다. 마을 전체가 소 우(牛)자형으로 된 골목길을 따라 인공 하천이 흐르는 수리 시설을 갖춘 독특한 곳이다. 골목길을 따라 졸졸 흐르는 하천이 있는데 아주 작아서 물 도랑이라는 뜻으로 수천(水圳)이라고 한다.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돌 4개가 사람들의 통로이고 한쪽 끝에 있는 수천은 겨우 1개 반 정도다.


길 양 옆은 단층이지만 꽤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청나라 말기 주영공사와 국무총리를 역임한 왕다시에(汪大燮)의 옛집을 관람하는 사람들로 복잡한다. 붓글씨가 가지런한 징더탕(敬德堂)을 지나 다시 거리로 나왔다.


천천히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아마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동감할만한 작은 연못 위에자오(月沼)이 보입니다. 연못을 빙 둘러 역사의 빛깔로 연하게 퇴색된 고풍스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 역시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와호장룡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장쯔이가 호수 위 물살을 밟으며 사뿐히 날아오르고 뒤이어 저우룬파가 뒤따르는 장면. 둘은 이 연못을 벗어나 대나무 숲에서의 멋진 칼 싸움을 벌인다.


이 연못은 명나라 영락제 시대에 주민들의 요청으로 한 지리학자가 오랫동안 탐사한 끝에 마을 한가운데 있는 샘을 넓혀서 만들었다.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연못에 모였다가 수로를 따라 마을을 돌아 나가도록 한 구조다. 완벽한 수리 계산을 한 것도 그렇지만 골고루 물을 나눠 쓰는 공동체 마음씨도 담았다. 생각해 보면 정말 역사의 흔적은 살필수록 감동의 물결이라 할만하다.


처음에 달의 모양을 연상하면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꽃이 피면 곧 지고, 달이 차면 곧 기운다(花開則落, 月滿則虧)’는 말뜻에 따라 작업을 했다는데 다 만들고 나니 그 모양이 반달을 닮게 됐다. 그래서, ‘꽃은 꽃이나 피지 않고, 달은 달이나 차지 않는다(花未開, 月未圓)’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소 우 자의 형태로 마을이 꾸며 졌는데 이 연못은 소의 위장에 해당한다. 마치 엄마의 뱃속 모태마냥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연못을 보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반원형 모양의 연못 테두리를 따라 다 둘러 빙 돌아봐도 보는 곳마다 풍경은 모두 탄성을 자아낸다. 오래 있으면 지루할 만도 한데 보면 볼수록 떠나고 싶지 않다.


거리에는 샤오빙을 팔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주전자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여러 가지 곡식을 넣고 둥글게 돌려가며 만드는 위산빙(禦膳餅)이 신기하다. 골목을 따라 가며 훙춘의 이름 난 집들을 차례로 들어가 본다. 타오위엔쥐(桃源居)과 슈런탕(樹人堂)도 있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니 청나라 말기 염상(鹽商)인 왕딩구이(汪定貴)의 저택인 청즈탕(承志堂)이 나온다. 문을 들어서니 좁은 마당 한가운데 가로 세로 3미터 정도의 우물이 있고 그 속에 물고기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위를 쳐다보니 뻥 뚫린 곳으로 하늘이 드러나는데 이렇게 집 마당 안에 우물이 있는 것을 톈징(天井)이라 한다.


뒤를 돌아보면 입구 문으로 마름모 꼴로 파란 바탕색에 ‘복(福)’자가 걸려 있는데 참 중국답지 않은 색감이어서 오히려 참신하다. 이곳에는 1미터가 채 안 되는 높이의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놓여 있다. 대부분 나무로 만든 건물이어서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문과 처마, 대들보마다 조각된 그림들이 아주 화려하다. 연회를 하는 관리의 모습, 낚시를 하는 모습도 있다. 목조 건물이라 그런지 오밀조밀하게 집 구석구석 문양들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와호장룡 촬영지(왼쪽 위), 훙춘 고가 조각(왼쪽 가운데), 캔버스(왼쪽 아래), 고추와 연못(오른쪽)


마을 중심부에 시장이 있다. 간단한 먹거리로 요기도 할 수 있고 공예품과 토산품을 흥정해 살 수도 있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방이라 죽간(竹簡)으로 만든 물건들이 많다.


대나무를 몇 십 개씩 연결해 ‘매난국죽’ 글씨와 그림이 함께 들어간 것, 호랑이가 달을 등지고 울부짖는 모습, 말 8필이 힘차게 뛰어가는 것이 탐이 난다. 들고 다닐 수만 있다면 하나 사서 집에 걸어 놓고 싶다는 생각이다.


좁은 골목을 응시하며 그림을 그리는 여학생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말을 걸었다. 언제부터 그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어제부터’라고 한다. 홍등 3개가 걸려 있는 골목을 그리고 있다. 연필로 데생을 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골목을 걸어간다.


다시 위에자오로 돌아왔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보니 길을 따라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수많은 미술학도들이 하루 종일 앉아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화폭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스케치만 보일 뿐이다. 아마도 볼수록 그림에 욕심이 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 두 마리가 꽥꽥거리며 연못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한 남학생은 우산을 쓰고 있다. 햇살이 내려 쬐는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고생이다. 하지만 굳이 햇살을 맞으면서도 그려내고 싶은 장면이 있을 듯하다.


바구니 가득 빨간 고추가 담겨있다. 조금 전에는 황홀한 연못 풍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이렇게 햇볕에 노출된 고추의 붉디붉은 색깔을 보지 못했다. 고추를 말리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처럼 통째가 아니라 고추를 토막토막 낸 채로 말리는 것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골목을 벗어나니 집 담장도 조금 낮아지고 밭도 보이고 꽃도 피었고 담장도 쓰러져가며 벽으로 넝쿨도 넘어가고 있다. 집 마당에서 넘어온 감나무에는 노란 감이 열렸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호박도 달렸으며 샛노란 호박꽃도 피었다. 우리나라 시골 풍경과도 비슷해 보인다.


공터 밭 옆 커다란 바위 옆에 파랗고 하얀 꽃 한 잎이 살짝 피었다. 이건 후디에화(蝴蝶花)라고 하는 나비꽃으로 우리나라 봄철에 피는 개나리만큼 온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고 진다.


또다시 난후로 왔다. 뒤돌아보니 홍춘 위에자오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인다. 저 좁은 입구 속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옛스럽고 인상적인 촌락이 숨어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다리를 다 건너가면 다시 문이 닫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천천히 돌다리를 건너는데 호수에 떠 있는 수련이 발목을 잡는 듯하다.


3)  시디 西遞 당나라 세자가 성까지 바꾸고 이주한 촌락 속으로


홍춘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시디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면 교주자사(膠州刺史)라는 글씨가 연하게 새겨진 돌 패방이 우뚝 서 있다. 12미터가 넘는 이 패방은 명나라 시대 호문광(胡文光)의 업적을 기려 직위를 그대로 써서 만든 공덕 탑이다. 이곳 시디는 후씨 집성 촌으로 당나라 황제의 후손이 성을 바꾼 후 이곳에 정착했다.


패방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골목길이 홍춘과는 조금 다르다. 조금 더 넓은 편이고 졸졸 흐르는 개천은 보이지 않는다. 담장이 훨씬 높고 저택도 더 웅장해 보인다. 홍춘은 상인을 중심으로 하는 서민들이 많이 살았고, 이곳 시디는 관료들이 많이 살던 마을이다.


2층 건물인 쾅구자이(礦古齋) 안에 있는 물 항아리에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다. 깊고 큰 항아리라 뚫린 천정에서 햇빛이 비치지 않으면 동전들을 보기 힘들다. 간판에 한글로 써놓은 것은 고마운데 ‘광고제’라 잘못 써 놓았다. (광고재가 맞음)


꽃무늬가 조각된 문이 정교한 루이위팅(瑞玉庭)을 지나 골목을 돌아서 탸오리위엔(桃李園)으로 들어갔다. 후이상인 호원희(胡元熙)의 저택으로 ‘수(壽)’자가 도안으로 새겨진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자세히 보니 그림 안에는 ‘복(福)’자가 새겨져 있으며 구름과 신선, 동자, 꽃과 나무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매우 공을 들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책방도 있는데 유교적인 선비이면서도 상업에 종사한 이루이상(一儒一商)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좁은 골목 안에 시위엔(西園)과 둥위엔(東園) 저택이 서로 대칭으로 자리잡고 있다. 길을 빠져나오니 약간 넓은 공간이 나왔다. 개천 하나가 흐르고 있고 백가(百家)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저택들이 높은 담벼락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다. 한쪽 귀퉁이에 학생들이 마음에 드는 동선을 찾아 이리저리 붓 칠을 하고 있다.


시디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은 징아이탕(敬愛堂)이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정착한 호씨의 조상을 모시는 종사(宗祠)다. 성조영준(盛朝英俊)과 사세승은(四世承恩) 편액 아래 각각 ‘효(孝)’와 ‘절(節)’, ‘충(忠)’과 ‘렴(廉)’이 호방한 필체로 적혀 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예를 올리던 곳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백대증상(百代蒸嘗)’ 편액 아래 조종(祖宗)의 신위(神位)가 있다. 정교하고 담백하게 그려진 초상화인데 빨간 옷을 걸친 할머니가 인상적이다.



조종 초상화(왼쪽), 물항아리(오른쪽 위), 시디 거리(오른쪽 가운데), 당 태종과 재상(오른쪽 아래)


다시 2미터가 채 안 되는 골목길을 따라 가면 다시 넓은 공간이 나오고 주이무탕(追慕堂)이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의 13대손인 당 소종(昭宗) 이엽(李曄)이 후량(後梁)을 건국한 주온(朱溫)에게 살해 당하게 되자 갓 태어난 세자는 유모를 따라 궁을 빠져나가 시랑이던 장시 사람인 호청(胡清)의 보호 아래 성장한다. 세자는 성까지 바꿔 호창익(胡昌翼)이라 했으며 일가를 이뤄 지금 후씨의 시조가 됐다. 그의 5대손 호사량(胡士良)이 처음 이곳 시디에 자리를 잡았다고 전한다.


본당 앞에 호창익, 호사량과 함께 호청의 신위까지 모셔져 있으며 뒤쪽에는 용 벽화와 용 무늬 의자에 앉은 이세민과 함께 두 재상인 위징(魏徵)과 이정(李靖) 모형도 있다.


목조건물 벽에는 수많은 장수들과 문관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마치 당나라 사당과도 같은 분위기다. 용 무늬 의자가 하나 놓여 있는데 1998년에 기증한 사람 이름이 적혀 있다. 한 명은 이씨, 또 한 명은 호씨다.


‘명청 시대 민가인 시디 촌에 당나라 조상의 후예들이 대를 이어 살았으니 이 용의(龍椅)를 기증한다’며 ‘이씨와 호씨는 오래오래 한 가족(李胡千秋一家人)’이라고 적은 팻말이 있다.


학생들은 가는 곳마다 고독한 모습으로 화폭과 씨름하고 있다. 흰색 벽에 창문을 열어젖힌 가게도 보인다. 한가롭게 이리저리 골목을 거닐기 참 좋은 동네다. 온전하게 마을이 잘 보존된 것도 좋지만 민가와 저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서로 아름다운 동선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두고두고 가슴 깊이 새기고 싶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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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7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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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40 저장2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5)   항저우 杭州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많은 아름다운 호수


저장 성 수도 항저우에는 낭만적인 호수인 시후(西湖)가 있다. 시후는 치엔탕장(錢塘江) 하류에 있다고 해서 치엔탕후라 부르기도 한다.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 1037~1101)은 은은한 화장과 짙은 화장 모두 어울리는 서시(西施)와 같은 호수라고 했는데, 그래서 시즈후(西子湖)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시후가 아름답다는 비유다.


시후는 하나의 동그란 원과 같다. 호수로 시선을 두면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간다. 바람이 부니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노 젖는 뱃놀이 모습이 보인다. 두둥실 떠다니는 조각배도 있고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유람선도 있다. 어디에서 보더라도 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들이 한가롭게 움직이고 있다.


저 멀리 벽돌로 쌓은 얕은 다리가 보인다. 단교잔설(斷橋殘雪)이라는 칭호가 붙은 돤챠오(斷橋)다. ‘맑은 호수나 비 내리는 호수, 달에 비친 호수는 눈 내린 호수만 못하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다리 위에서 눈이 덜 녹은 모습이 마치 다리가 끊어진 듯 보인다는 감탄사인데 그만큼 풍경이 멋지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이 아니다.


봉긋한 다리 위로 가니 할아버지가 연을 날리고 있다. 한 마리 제비처럼 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하늘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얼레를 쉼 없이 빠르게 풀자 무한정 하늘로 날아갈 듯 보인다. 눈 내리는 호수는 몰라도 푸른 바다 같은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제비 연의 까부는 모습만으로도 벌써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듯하다.


이 다리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하나 있다. 중국의 4대 민간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의 주인공인 허선(許仙)과 백소정(白素貞)이 바로 이곳에서 만난다. 인간이 된 백사인 백소정은 전생에서 생명의 은인인 허선을 만나게 되고 배필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돤챠오를 지나면 길게 뻗은 길이 나오는데 바로 바이디(白堤)다. 사실은 호수와 호수를 막은 제방이다. 약 800미터 거리의 바이디는 항저우 자사(刺史)로 부임한 백거이(白居易)가 관개를 위해 중건했다.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여유롭게 걸어간다. 호수만 바라보고 오느라 다소 지겨울 즈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에 시선이 간다. 사람 키보다 약간 커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커다란 호수를 배경으로 쓸쓸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백성들을 위해 둑을 만드느라 고심하는 백거이의 모습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바이디 끝에는 호수 안으로 조금 몸을 밀어 들어가서 수면과 거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가을 달밤의 보름달을 평호추월(平湖秋月)이라 한다. 바로 해발이 겨우 35미터인 낮고 자그마한 구산(孤山)과 잇닿아 있다.


아담하고 예쁜 식당과 찻집도 있고 고풍스런 민가도 있는 아름다운 거리다. 육지로 연결된 시링챠오(西泠橋)에서 본 산과 호수, 물 위에 가득한 수련도 참 예쁘다.


시후 단교(왼쪽 위), 인상시후(왼쪽 가운데), 시후 야경(왼쪽 아래), 황빈홍 조각상(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중국 최고의 명기라 일컫는 소소소(蘇小小)의 자그맣고 동그란 무덤이 있다. 일찍 부모를 잃었지만 총명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녀는 뭇사람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기생이 된다. 19세의 나이로 요절했으나 파란만장한 사연을 담고 있는데 마치 황진이와 춘향을 섞어놓은 듯하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재상의 아들 완욱(阮郁)과 못다 이룬 사랑의 주인공이다. 산자락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서생 포인(鮑仁)의 인물 됨됨이를 한 눈에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성품도 지녔으며 관찰사 맹랑(孟浪)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멋진 시를 지어서 위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는 시후를 거쳐간 백거이와 소식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의 좋은 시적 소재이기도 하다.


수호전(水滸傳)의 의사(義士)로 칭송 받는 무송(武松)의 무덤 역시 시후 호반을 바라보고 있으며 펑위팅(風雨亭) 앞에는 중국 현대미술의 대가인 황빈홍(黃賓虹)의 동상이 있다. 그는 서호서하(西湖棲霞)와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말년에 시후에 머물며 여생을 마쳤다. 손을 위로 뻗어도 할아버지 동상의 손에도 미치지 않는 꼬마아이의 몸짓이 귀엽다.


시후 북쪽 도로를 따라 가면 또 하나의 제방 길인 쑤디(蘇堤)가 보인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이 둑길은 호수를 3개로 나눴다. 그 중 송나라 시대 민족영웅으로 칭송 받는 위에페이(岳飛) 사당 바로 앞을 위에후(岳湖)라 한다.


이 위에후에는 장이머우(張藝謀)의 환상적인 공연인 인상시후(印象西湖)가 매일 밤 펼쳐진다. 마침 호수 위에서 리허설이 한창인데 장막으로 막아서 볼 수 없다. 찻집인 밍스위엔(明石苑) 표지판을 따라 가면 꼬불꼬불한 길이 나오고 개울도 흐르고 있으며 연못도 나온다. 이 곳은 위에후 뒤쪽이라 연습 중인 배우들 모습도 보이고 고함 치는 현장 감독의 마이크 소리도 시끄럽게 들린다.


작은 연못들마다 수련이 떼지어 피어있으니 정말 절경이다. 스스로도 예쁘지만 물 속에 비친 빛깔도 그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닌 듯하다. 나무들도 곧게 솟았고 나뭇잎은 옷을 갈아입은 듯 수면 위로 몸을 숙이고 있다. 호수만큼 거대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다정한 산책로다.


어스름도 내리고 호수도 점점 암흑으로 변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갈까 하다가 시후는 사시사철은 물론이고 낮과 밤이 다른 절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왔던 길로 돌아간다. 호반의 밤 풍경을 놓칠 수 없다.


바이디 둑 길도 이미 어둠 속에 묻혔지만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불빛이다. 몇 미터 간격으로 자리잡은 가로등이 내뿜는 불빛 사이로 배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배에는 하나같이 호롱불을 하나씩 대롱대롱 달고 있다.


호수 반대편으로 멀리 보이는 레이펑(雷峰)탑에서 조명이 환하게 밝았다. 호롱불 돛단배가 시야를 가로질러 지나가기도 한다. 호롱불과 레이펑탑 조명이 서로 엇갈려 보이는데 그 넓은 호수가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 때문일 것이다. 백사전의 주인공 백소정을 승려인 법해(法海)가 이 레이펑탑에 가뒀다.


고개를 돌려 시내 번화가 쪽을 바라보니 불야성이 따로 없다. 빌딩들마다 휘황찬란한 조명을 쏟아내고 있다.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그 빛이 강렬해지는 것이 눈이 아프다. 그렇지만 시원한 바람도 불고 호수 위로 떨어지는 조명도 볼 만하다.


밤이 되자 공예품 가게들이 오색찬란한 빛깔로 유혹하기 시작한다. 술집들도 호수 옆에 있는 것만으로 은은해 보인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도 있지만 한적한 곳도 많다. 거의 호수의 반을 걸어서 둘러봤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후 내내 푸른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닌 듯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경이니 매 순간 가슴에 담은 감동이 호수만큼 커 보인다. 하나씩 차곡차곡 쌓으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듯하다.


6)   항저우 杭州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항저우 시후의 둘째 날이다. 버스표를 예매하는 곳을 물어보니 우체국에 가면 된다고 한다. 마침 추석 연휴 직전이라 사람들이 많은데 아주머니 직원이 5분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금방 업무를 마치고 행선지를 묻더니 친절하게 표를 끊어준다. 중국을 다니면서 이렇게 손님을 손님답게 예우한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세세닌(謝謝您)’이라고 존칭까지 써가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시후로 향했다. 어제보다 훨씬 맑은 날씨다. 시후텐디(西湖天地) 팻말이 적힌 라오녠공원(老年公園)으로 들어서니 바이셔우투(百壽圖) 벽이 나타난다. 벽에는 목숨 수(壽)자가 백 가지 글자체로 새겨져 있다. 고어체들을 엮어 만든 것으로 장수를 기원하거나 축복하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데 지방마다 다소 다르다. 이것은 청나라 시대 유명한 상인 집안인 산시(山西) 성 챠오자다위엔(喬家大院) 벽에서 따온 것이다.


호수 안에까지 놓인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한가운데가 봉긋한 다리인 융진챠오(湧金橋)가 나온다. 시후 위를 걸어가는 듯 수면과 아주 낮게 설치된 돌다리를 걷는 재미가 시원하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건너니 이차이셩(一茶一生)이란 낭만적이고 품격이 느껴지는 찻집이 나온다.


찻집 앞을 지나 칭보먼(清波門)까지 약 1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은 버드나무가 흐드러져 있고 새들이 모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바람 따라 날리는 버드나무는 마치 새들이 앉았다가 막 떠난 듯한 여운이 담겨 있다. 호수를 따라 나무들이 거리를 두고 앙상하게 서 있으니 외롭게 보이기도 한다. 멀리 산과 호수 앞에서 조용히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호수 옆 푸르른 녹음을 따라 걷는데 중국사람 한 명이 친해보려는 듯 말을 걸어온다. 따라오면 따라가고, 따라오지 않고 딴짓 하면 그냥 두고 가고 그러는데 간섭이 좀 심하다.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길래 길을 재촉해 갔다.


호반 길에는 술집이나 찻집이 연이어 있으며 사당과 정자도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차를 마셔도 좋고 밤이라면 술 한잔 해도 좋을 듯하다. 잘 정돈된 길인데다가 드넓은 호수와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갈수록 친근해진다.


수면 위를 걷는 듯한 돌다리 창챠오(長橋)에 도착했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이 돌다리에는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백사전과 더불어 4대 민간전설이자 영화와 드라마, 노래말로도 자주 소개되는 양축(梁祝)이다. 축영대(祝英台)와 양산백(梁山伯)이 수없이 작별하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무덤에서 솟아나와 나비가 돼 훨훨 날아올랐다고 한다.


애간장을 녹이는 전설 때문인지 젊은 남녀가 다리에 다정하게 앉아있다. 찰랑이는 물살이 다리를 넘나들고 바람조차 상쾌하게 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까지 다 헤아려주지는 않을 듯하다.


소동파 조각상(왼쪽), 전설의 다리(오른쪽 위), 쑤디(오른쪽 가운데), 레이펑탑(오른쪽 아래)


창챠오를 지나 쑤디로 가는 길에서 신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곳은 시후에 있는 삼담인월(三潭印月)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중국 인민폐 1위엔 종이돈 뒷면의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다. 시후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샤오잉저우(小瀛洲)는 밭 전(田)자 형태인데 바로 '호수 속의 호수'가 있다. 그 앞에는 2미터 높이의 석탑이 3개 물 속에 잠긴 채 놓여 있다. 추석 보름달이 뜨면 하늘의 달, 물 속의 달 그리고 탑 속에도 달이 비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쑤디로 가는 길에 큰 식당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름도 멋진 화중청(花中城)인데 항저우의 유명한 요리인 둥포러우(東坡肉)와 쟈오화지(叫花雞)를 판다. 혼자 들어가서 먹기가 어려워 들어가지 못한 게 한없이 아쉽다.


둥포러우는 두터운 돼지갈비 또는 삼겹살의 푸짐한 탄생이라 할 만큼 먹음직스럽고 소동파가 즐겨먹었다. 쟈오화지는 원래 궁핍한 난민들이 훔친 닭을 진흙에 넣고 구워 먹었다는데 '쟈오화'라는 말은 구걸하다는 뜻이라 거지닭이라고 하는데 별로 좋은 입맛의 번역은 아닌 듯하다.


식당 앞 연못에는 우산을 쓰고 배를 타고 온 손님을 맞이하는 여인들 조각상이 아주 인상적이다. 연못 위로 놓여 있는 다리를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말 언젠가는 꼭 친구들이랑 들러보고 싶은 멋진 식당이다.


쑤디는 시후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둑길이다. 3킬로미터나 되는 둑을 막아 치수 농경을 한 동파거사 소식이 만들었다. 시인이며 화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항저우에서 3년 동안 머물며 둑을 쌓았다. 당시 직위가 통판(通判)이라고 하는데 주요업무 중 하나가 바로 수리(水利)였다. 이 둑을 쌓아 관개도 이뤘으며 호수가 셋으로 갈라졌고 6개의 아치형 다리가 새로 생기게 된 것이다.


다리 이름들도 참 운치가 넘친다. '물결이 비치는' 잉보(映波), '물살을 가두는' 쒀란(鎖瀾), '산을 바라보는' 왕산(望山), '둑을 눌러 한가운데 중심을 잡은’ 야디(压堤), '동편의 강어귀'라는 둥푸(東浦), '무지개처럼 걸쳐있는' 콰홍(跨虹)이다. 버드나무가 안개처럼 일렁인다는 뜻으로 육교연류(六橋煙柳)라고 칭송한다.


가장 남쪽에 있는 다리인 잉보챠오 맨 위에 서니 내리막길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둑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어진다. 버드나무 축 늘어선 벤치에 사람들이 편한 휴식을 즐기고 있고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기도 한다. 언덕길을 내려가기도 하고 오르기도 한다.


잉보챠오 옆에는 시후 남쪽 끝자락에 꽃과 물고기의 조화가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보인다. 화항관어(花港觀魚)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버드나무 휘날리고 연꽃이 수북한 곳을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저 연꽃이 더 많이 핀다면 잉어들이 보이지 않을지언정 명성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쑤디에서 다시 큰길로 접어드니 서예의 대가라는 샤멍하이(沙孟海)가 쓴 쑤띠(蘇堤) 비석이 나온다. 옆에는 소동파의 멋진 석상이 서 있다. 안쪽으로 소동파기념관이 있는데 입장료는 무료인데 오후 4시 30분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 아쉽게도 기념관 안을 보지 못했지만 삼면이 호수인 정원에 있는 벽마다 소동파의 시문이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글자체를 빛내고 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정류장에 서 있는데 레이펑탑이 보인다. 거리 가로등 사이로 불 타는 듯 탑이 빛나고 있다.


하루 종일 시후의 남쪽을 유람했다. 느릿느릿 걷다가 경치가 마음에 들면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했다. 잔잔한 호수이건만 재미있는 이야기와 역사가 온 동네 곳곳에 숨어있으니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흥미진진한 하루였다.


7)   항저우 杭州 추석맞이 특집 방송의 하이라이트 이정현의 바꿔


항저우 시후 공원에서 방송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다. 저장TV 교육과학 채널의 <메이리A지화>(美麗A計畫)로 ‘아름다운 A급 프로젝트> 정도로 해석하면 될 프로그램이다. 중추절 특집 녹화다.


추석 특집으로 진행된 이날 방송녹화는 열광적인 팬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주변 관광객들이 뒷자리를 꽉 메운 채 시작됐다.


워낙 방송 진행자들인 주츠런(主持人)들이 우리나라보다 연예인 성향이 강해 시작부터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여성 주츠런 4명이 백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며 나타나고 이어서 방송국의 다른 프로그램 주츠런까지 합세한다. 모든 주츠런들이 다 모여 노래를 합창한다. 위에량커이다이뱌오워더신(月亮可以代表我的心)이란 노래를 부른다고 소개하는 난난(楠楠)이 메인 진행을 맡고 있으며 가장 인기가 많다. 연한 주홍 색과 흰색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옷 색깔이나 세트도 나름대로 추석 특집에 맞게 꾸민 모습이다. 립싱크로 하는 노래에다가 전문가수가 아니니 약간 어색해 보인다.


어린 꼬마 아이가 등장해서 애교 넘치는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 맷돌을 돌리고 방아 찧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서 귀엽고 재미있었는데 갑자기 노동자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나와서 역시 사회주의 국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장방송국의 남자 주츠런인 샤오챵(小強)이 나와서 퇀위엔(團圓)이란 노래를 부른다. 온 가족이 빙 둘러 앉아 명절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도 괜찮은 편이지만 빨간 옷을 입은 백댄서들의 춤이 잘 어울린다. ‘오늘 저녁 우리 모두는 한 가족입니다’ 라고 하자 관중들이 열광하면서 마무리한다.


또 한 명의 남자 주츠런이 나와 샤오챵과 함께 펑여우(朋友)를 열창한다. 우리나라에서 안재욱이 <친구>라고 번안해 불러서 유명한 곡이다. ‘친구여 평생토록 함께 가자’ 라는 가사도 좋지만 단순하면서도 친근한 멜로디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중국노래다.


무대 위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무용수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처녀 총각이 서로 사랑하는 동작을 표현하거나 부채를 소품으로 연기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초록색 옷을 입고 형형색색의 꽃무늬 우산을 들고 수건으로 손짓하는 율동들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보다 계속 춤 추는 무용수들에게로 시선이 간다.


갑자기 열렬한 박수소리를 받고 6명의 아가씨들이 등장한다. 모두 똑같이 붉은 색 옷을 하늘하늘거리며 나타났는데 민속악기의 가락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아주 익숙한 멜로디라고 생각해 가만 듣고 보니 이정현의 히트곡인 '바꿔'다.


먼저 디즈(笛子)를 불며 강렬한 인상을 주더니 이어서 얼후(二胡)가 등장해 혼을 빼더니 구정(古箏), 피파(琵琶), 양친(揚琴)으로 합주를 하고 있다. 늘씬한 외모와 빼어난 몸짓은 물론이고 연주 실력까지 갖췄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노래가 항저우 시후 호반에 울려 퍼지고 있고 그것도 전통악기로 연주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중국전통악기를 대중음악과 접목한 뉘즈스얼위에팡(女子十二樂坊)이라는 그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를 모방한 팀들이 꽤 많이 생겼다. 그들과 비해 결코 뒤떨어진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6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연이어 이탈리아 민요인 '라 스파뇨라'까지 연주한다. 흥겨운 가락에 맞춘 조화로운 선율이 고풍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럽다.


6명의 여자 꼬마아이들이 예쁜 공주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유치원 솜씨자랑에 나온 듯한 모습인데 어려운 서커스를 보여준다. 방송 녹화이니 무대도 불안하고 조명도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 멋진 묘기를 선보이니 크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방송 진행자(왼쪽 위), 인기가수 리나(왼쪽 아래), 추석특집 녹화 중(오른쪽)


유명 인기가수들이 출연하기도 한다. 이번 추석 특집에는 노래 잘하고 귀여운 리나다. 2006년 후난TV가 주최한 노래경연대회인 차오지뉘셩(超級女聲)을 통해 데뷔한 실력 있는 여가수다.


그녀의 대표 곡인 <광주사랑이야기(廣州愛情故事)>를 비롯해 4곡을 불렀다. 여린 듯한 목소리로 감수성이 짙은 노래를 부르지만 간혹 춤을 추기도 하고 템포 빠른 곡도 선보인다. 역시 인기가수의 노래라 듣기에도 보기에도 아주 좋다.


오락프로그램 현장 녹화의 피날레다. 중국 유명가수들 17명이 함께 불렀던 노래 '샹친샹아이이자런(相親相愛一家人)'라는 노래를 출연한 주츠런들이 모두 나와 함께 부른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는 한 가족’이란 뜻인데 들을수록 포근함이 묻어나는 노래다.


한밤의 멋진 공연이었다. 항저우 시후의 물결소리도 바람소리도 다 잊고 시끄럽지만 달콤하고 특집 프로그램에 걸맞게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중국에서는 이렇게 방송으로 담아내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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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39 저장1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서관에 잠입한 책 도둑



저장 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영토 분쟁을 하던 곳이며 삼국시대 손권 정권의 기반이었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지금처럼 성의 경계가 만들어졌으며 청나라 강희제에 이르러 저장 성이 됐다.


저장은 신안장(新安江)과 쳰탕장(錢塘江)을 비롯 많은 강들이 구비구비 흘러가는 지리적 특성에 빗대어 지어진 이름으로 약칭으로 저(浙)라고 한다.


수나라 때 지명인 위항(余杭)의 이름을 딴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이었으며 중국 어느 곳보다 애향심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호수인 시후(西湖)가 있으며 샤오싱은 중국 20세기 초 민족주의자이며 문학가인 루쉰이 태어난 고향이다.


저장상인들은 수완이 뛰어난데 특히 ‘돈이 있는 곳에 반드시 있다’는 원저우 상인과 ‘사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간다’는 닝보 상인이 유명하다.


저장 성의 이름난 도시들인 항저우, 샤오싱, 원저우, 닝보로 떠나보자.


1) 닝보 寧波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된 도서관에 잠입한 책 도둑


저장 성 동쪽 도시 닝보에 있는 톈이거(天一閣)를 찾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설도서관이라니 궁금했다. 마침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위에후(月湖) 위로 작은 점처럼 빗물이 쏟아지고 있다.


호반 길을 따라 골목을 들어서니 3층 높이는 돼 보이는 담벼락이 나타났다. 담까지 닿을 정도로 키 큰 나무들이 많다. 몇 집 건너 하나씩 마름모꼴 2개가 서로 붙은 모습, 마치 중위 계급장처럼 생긴 현판에 각각 천(天)과 일(一)이라고 써 있는 것이 재미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사설도서관이라는 남국서청(南國書城) 톈이거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로세로 5미터의 장방형 마당에 명나라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을 역임한 범흠(范欽, 1506-1585)의 동상이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고 책을 수집하는 것을 즐겨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 않고 두루 찾아 다녔다.


책 모양의 돌에 그의 생애가 기록돼 있으며 푸른 나무들이 동상을 보필하듯 안으로 기울어져 있다. 벽에는 말 8마리가 계곡과 산에서 뛰어 노는 <계산일마도(溪山逸馬圖)>가 새겨져 있어 분위기 있는 앙상블이다. 물이 고여 있고 붉은 낙엽이 소복하게 떨어져 있으니 아주 멋지다.


1566년 6년의 공사 끝에 도서관을 건축했다. 범흠이 책을 읽던 동명초당(東明草堂) 안에는 책장마다 책들이 꽂혀 있고 걸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맞은 쪽 벽에는 전설 속의 영물인 용과 기린(麒麟)을 섞은 듯한 동물이 각인돼 있는데 용이라 하기에는 묵직하고 기린이라 하기에는 날렵해 보인다.


초당 옆에는 범흠 후예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고거가 있다. 장서 도서관과 떨어져 공간을 분리한 것은 그만큼 책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범흠 집안은 대대로 장서를 잘 관리하라는 유언에 따라 진정으로 책에 애정을 가진 후손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텐이거 바오슈러우(왼쪽), '남국서성' 입구(오른쪽 위), 범흠(오른쪽 가운데), 도서관 자리(오른쪽 아래)


장서를 보관하던 바오슈러우(寶書樓)에도 책장이 놓여 있는데 금빛으로 쓴 글자 아래에 있는 책장은 자물쇠가 잠겨 있고 두 마리의 금빛 용이 불타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범흠의 저택이 쓰마디(司馬第)인 것은 병부우시랑보다 더 높은 사마 벼슬인 병부상서(兵部尚書)로 추증(追贈)됐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만들어진 후 외부에 일체 공개하지 않던 범씨 후손들은 청나라 초기에 사상가이자 학자인 황종희(黃宗羲)에게 장서를 개방한다. 이를 계기로 유명해지자 건륭제는 중국 문헌 총서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한 후 톈이거의 구조를 따라서 국가도서관을 만들어 보관했다.


뒷마당 정원에는 연못이 있다. 비가 내려 진흙탕처럼 혼탁해 보이지만 주위로 물푸레나무가 생생하게 뿌리박고 있다. 장서각을 지하에 만들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의지가 엿보인다.


톈이거의 ‘천일(天一)’은 <역경(易經)>에 나오는 “천일생수(天一生水)”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주는 물로부터 생겨났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범흠에게는 화재로부터 책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리라. 불에 타는 것만 아니라면 누가 가지고 있던 지 남아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톈이거는 건륭제의 인정을 받아 가문의 영광이 됐지만 신해혁명 이후 상인과 결탁한 한 도둑에 의해 불명예를 안게 된다. 상하이의 책방 주인들이 대도 쉬에지웨이(薛繼渭)에게 도서목록을 적어주고 책을 훔쳐오라고 했다. 몰래 잠입해 낮에는 죽은 듯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촛불을 켜고 목록에 있는 책을 수색했으며 배가 고프면 대추로 허기를 채우며 거의 반달이나 시간을 보냈다.


여러 차례에 걸쳐 훔친 책이 무려 6만권이나 된다고 한다. 책 도둑은 결국 9년 형을 선고 받고 옥사한다. 돈에 광분한 상인과 단순 무식한 도둑이 연상된다. 중국정부가 거액을 들여 회수한 후 상하이의 동방도서관(東方圖書館)에 보관했으나 일본군이 침입해 잿더미로 변했다.


세상 만물이 물로부터 태어났으니 책 역시 그럴 것이다. 도서관 이름으로 정말 제 격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도둑과 제국주의자들에게 잃어버렸지만 책이 간직한 정신까지 훔쳐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톈이거를 찾아 비 속에서 책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2) 닝보 寧波 중국 일본 영국 대표와 함께 마작 대결이나 할까


닝보 톈이거 안에 진씨(秦氏) 집안의 사당이 한 채 있다. 1925년 닝보의 금융거부이던 친지한(秦際瀚)이 세운 것이다. 거부의 집에 걸맞게 벽과 대청, 무대, 누각, 그리고 곁채로 구성된 우아한 목조건물이다.


무대 난간과 처마에는 금빛으로 된 조각과 그림이 아로새겨져 있으니 무대공연을 보면서 여유 자작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집 내부는 문턱을 넘을 때마다 둥근 원형의 칸막이가 동선을 열어주고 있으며 화분과 책장이 가지런하다. 기하학적인 무늬를 지닌 창살이 햇살을 가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책과 돈의 연결이 조금 낯설었는데 또 하나 재미난 곳이 나타났다. 바로 마작(麻將)박물관이다. 마작의 표준을 정하고 널리 보급했던 진정약(陳政鑰)을 모시는 사당이기도 하다. 그가 마작을 발명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수 천년 전부터 있어 왔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나오니 과장이며 지방마다 서로 다른 복잡한 규칙을 하나로 통일해 전국적으로 보급한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닝보 사람으로 청나라 말기 영국 외교관들에게 마작을 알려주고 함께 즐기기도 했다. 닝보는 영국과의 아편전쟁 후 맺은 난징조약(1842년)으로 서구열강에 문호를 개방한 다섯 도시 중 하나다.


마작은 놀이할 때 쓰는 말이나 방법이 새를 잡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성패(成牌)가 되는 것을 ‘후(糊)’라고 하는데 새를 잡아서 기른 매인 ‘후(鶻)’와 발음이 같다. 부딪친다는 ‘펑(碰)’, 먹는다는 ‘츠(吃)’도 다 그렇다. 그는 동서남북의 풍패(風牌)와 춘하추동 및 매난국죽의 화패(花牌) 등을 정리해 현대 마작의 136개 패로 정착시켰다.


어느 날 골패로 놀이를 하던 중 생겨난 패의 모습을 마작(麻雀)이라 썼는데 이 글자의 닝보 방언이 ‘마장(麻將)’이다. 중국에서는 마작을 마장이라 하는 이유다. 일본으로 건너간 ‘마작’이 다시 우리나라로 옮겨와 우리는 마작이라고 부른다.


대낮에 내리는 빗물 사이로 홍등이 무심하게 걸려 있다. 핑허탕(平和堂)에는 매란국죽 패가 걸려 있고 중국, 일본 사람과 아마도 영국 사람으로 보이는 서양인이 마작을 하는 모형이 있다.


금융거부의 무대(왼쪽 위), 마작 판(왼쪽 아래), 마작 박물관의 핑허탕(오른쪽)


이 조각상을 싼취에이(三缺一)라고 부른다. 원래는 4명이 함께 마작 하던 일을 3명만 있고 1명이 모자란다(缺)는 뜻. 마작은 4명이 되어야 성원이 되는데 3명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자만 있는 빈자리가 있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누구라도 빈 곳에 앉아 마작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마당에는 대리석으로 위에 마작 패가 새겨져 있다. 젠파이(箭牌)라는 중(中), 파(發), 바이(白)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옛날에 어부는 동서남북 방향이 중요하고 상인은 춘하추동이 중요할 뿐 아니라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해 ‘돈을 번다’는 파차이(發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더허탕(德和堂)은 세계 각국의 마작 패 전시관이다. 대나무, 뼈, 돌, 흙으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패들이 진열돼 있다. 유리 속에 나라별 패의 형태를 볼 수 있으며 소재에 서로 따른 패들도 보이는데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설명돼 있다.


마작을 더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를 가지고 하는 훌라라는 게임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길거리마다 중국 사람들이 마작을 하고 있을 때 다가가서 몇 번 봤지만 초보 수준인데다가 볼수록 어렵다. 중국 친구들이랑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고 마작 노는 방법을 안다면 비 맞지 않고 차라리 저 3사람과 함께 빈 자리에 앉아 마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 샤오싱 紹興 루쉰의 책갈피를 보니 고개가 숙연해진다


저장성 샤오싱은 민족주의자이자 문학가인 루쉰(魯迅)의 고향이다. 담벼락에 왼손에 들고 있는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의 루쉰(1881~1936)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여느 다른 곳의 휘황찬란한 모습과 달리 흑백 판화 같은 분위기가 대문호의 고향답다.


원래 루쉰의 이름은 저우장셔우(周樟壽)이고 나중에 다시 저우슈런(周樹人)으로 개명했다. 1919년 5·4운동 이후 작품활동을 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따서 루쉰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초입에 있는 조거(祖居)를 찾았다. 한림원에서 공직 생활을 한 할아버지 주복청(周福清)이 살던 집으로 한림(翰林)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대문을 지나면 더셔우탕(德壽堂)이 나온다. 손님을 접객하는 대청으로 나란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원래는 닝셔우탕(甯壽堂)이었는데 청나라 도광제가 연호를 민닝(旻甯)이라 하자 곧바로 바꾼 것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샹훠탕(香火堂)이 나온다. 청색 기와와 흰색 담장 색깔이 고풍스러운데 보슬비가 내리니 운치가 그윽하다. 예법을 중시하는 곳인지 모르는 한 꼬마아이가 우산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다.


가운데에 할아버지 초상화가 있고 양 옆에는 두 명의 할머니인 손(孫)씨와 장(蔣)씨가 앉아있다. 덕행과 행운이 오래가라는 뜻의 덕지영형(德祉永馨) 편액이 있고 가훈인 항훈(恒訓)도 보인다. 배움을 통해 관인의 길을 걷거나 삶 속에서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니 학자 집안답게 적절하고도 간명하다.


긴 복도를 따라 침실과 서화실도 있고 규방도 있습니다. 침실 외에도 수를 놓는 수방과 악기를 연주하는 금실도 있다. 실제 모형의 아가씨가 전통 옷을 입고 연주하고 있다. 넓은 주방에는 갖가지 도구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큼직한 아궁이와 항아리로 봐서 식구가 꽤 많았던가 보다.


밖으로 나와 루쉰이 살던 집(魯迅故居)으로 갔다. 할아버지 집 서쪽에 있는 집을 사서 건축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두 집은 구조가 엇비슷하다.


여섯 친족들이 함께 모여 살았는데 루쉰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입구에 들어서니 4미터 정도 너비로 미로 같은 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당시 사용하던 우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그 모습이 구멍이 뚫린 주사위 모양 같다.


복도를 따라 나오니 '한여소게(閑余小憩)'라고 새겨진 연못이 나타났다. 산뜻한 예서체로 조그맣게 적혀 있는데 앞에는 연못이고 주위는 나무들로 무성하다. 사각형으로 된 연못에 나무들과 햇살이 반사돼 비치며 그 위로 떨어진 낙엽들이 빗물에 젖는다.


넝쿨이 엉켜 붙은 담벼락이 멋진 정원이 펼쳐졌다. 루쉰이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정원인 바이차오위엔(百草園)이다. 장자였던 아버지 주백의(周伯宜)와 어머니 노서(魯瑞) 사이에서 태어난 루쉰은 할아버지의 후광을 받아 부유했다. 수재였던 아버지가 번번이 시험에 낙방하자 관원에게 손을 쓰다가 들통 나 할아버지는 투옥되고 아버지는 병으로 사망하니 급기야 가세가 기울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루쉰은 여름에는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피했고 겨울이면 눈밭에서 새를 잡기도 했다. 귀뚜라미도 잡고 뽕나무오디를 캐고 복분자를 따고 하수오(何首烏)를 뽑고 놀았다고 회고한다.


루쉰은 회고에서 바이차오위엔에서 놀다가 삼미서옥(三味書屋)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을 회고하기도 했다. 거리로 나와 길 옆에 졸졸 흐르는 개천에 돌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건너면 검은색이 변색돼 대나무 색깔이 드러나는 문이 나타난다.


돌 위에 쓰는 붓글씨(왼쪽), 루쉰(오른쪽 위), 삼미서옥(오른쪽 가운데), 책갈피(오른쪽 아래)


대문을 지나니 대청인 쓰런탕(思仁堂)이 나오고 복도 앞에 높은 담장 벽이 나타난다. 담장 사이로 난 문을 따라 들어가니 별채가 하나 나오는데 한가운데 삼미서옥 편액이 보인다. 훈장이던 수경오(壽鏡吾, 1849-1930) 선생의 초상화가 놓여 있고 그 아래 책상과 걸상 하나가 놓여있다. 왼쪽 구석에 루쉰이 앉았던 자리가 있다.


서옥 안에 종지와 붓이 있고 평평한 마당벽돌(地坪磚)이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에게 이 장치를 이용해 글 쓰는 서법을 익히도록 훈련시켰다고 한다. 엄하기로 유명했던 이 사숙에서 루쉰은 학문을 익혔다.


루쉰이 책을 읽을 때 스스로 만들었다는 싼다오슈쳰(三到書簽)가 인상적이다. 세 손가락처럼 생긴 이 책갈피는 손가락마다 '책 읽을 때는 마음과 눈과 입이 닿아야 한다(讀書三到心到眼到口到)'는 글씨가 써 있다.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가 <훈학재규(訓學齋規)>라는 책에서 쓴 말이다.


루쉰이 살던 집과 공부하던 사숙을 두루 살펴봤다. 20세기 초 문학을 무기로 민족의 계몽과 혁명을 꿈 꾸던 루쉰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책을 읽고 붓글씨를 쓰는 어린 루쉰을 마음에 담는 시간이었다.


4) 샤오싱 绍兴 딸 때문에 빚은 술이 천지를 진동한다


샤오싱 루쉰 고거 뒤편에 있는 비샤펑징위엔(筆下風情園)으로 갔다. 물 위에 마련된 누각 두 개가 나란히 서서 물 속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하늘이 비친 연못으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니 마치 하늘을 향해 비가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수상무대 뒤편에 야릇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박혀있다. 뒤로는 반듯한 원형 문이 있고 반려(磐廬)라는 글자가 써 있다. '너럭바위'와 '오두막집'이라는 뜻인데 아주 어려운 한자다.


훈슈팅(婚俗廳)에는 결혼풍습 모형이 전시돼 있고 옆 건물로 들어서니 뉘쥬(女酒)와 뉘얼쥬(女兒酒)라는 팻말이 보인다. 꽃을 새긴 화댜오쥬(花雕酒)라고도 부르는 황쥬(黃酒)를 말한다. 샤오싱을 대표하는 술로 딸이라는 뜻의 뉘얼이 붙은 유래가 재미있다.


옛날에 재봉사가 있었는데 아들을 낳으면 지인들과 축하하려고 항아리에 술을 담근다. 공교롭게 딸이 태어나자 실망한 재봉사는 계수나무 밑에 항아리를 묻어버린다. 총명한 딸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재봉기술을 배우는데 기술이 빼어나 날로 번창한다.


드디어 이 신통한 딸이 자신의 제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 그 동안 까맣게 잊었던 항아리가 생각난다. 술을 퍼내 접대하니 술 빛깔이 짙고 향기가 코를 찌르며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래서 이 술을 뉘얼홍(女兒紅) 또는 뉘얼쥬라 불렀다. 이것이 소문이 나 너도나도 딸을 낳으면 술을 담그게 됐는데 바로 황쥬인 것이다.


전시된 화병이 너무 예쁘다. 알록달록한 문양이 정말 중국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색깔도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보기 좋다. 맛 좋은 술이 멋진 술병에 담긴다면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황쥬야말로 샤오싱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보행거리로 나오니 골동품과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비에 약간 젖은 듯한 거리가 상큼해 보인다. 한가로이 루쉰 고향마을을 거닐어 본다. 황쥬를 담은 오색찬란한 항아리가 아주 많다.


황제가 먹던 간식으로 수염처럼 가늘다 해서 이름 붙은 룽쉬탕(龍鬚糖)도 보인다. 마치 백발처럼 생겨서 민간에서는 인쓰탕(銀絲糖)이라고도 한다. 룽쉬탕을 파는 가게마다 맛을 보라고 조금씩 떼어준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으며 달콤하고 부드럽기가 솜사탕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유리 수정으로 만든 노리개나 장식품을 파는 공예품 가게 하나가 눈에 반짝거린다. 보석 같이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고 있는데 한 꼬마아이가 쳐다보고 있다.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하다.


수상무대(왼쪽 위), 수정 가게(왼쪽 가운데), 우펑선(왼쪽 아래), 뉘얼홍 담은 항아리(오른쪽)


루쉰 고향마을을 벗어나 거리를 걷다가 창챠오즈제(倉橋直街)로 갔다. 이곳은 2003년 유네스코의 아시아 지역 ‘문화유산보호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강남 수향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약 1킬로미터 정도의 좁은 길이다. 홍등이 걸려 있고 상호가 적힌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다. 촉촉하게 젖은 거리를 알록달록한 비옷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다닌다. 삼륜차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니 하천이 흐르고 있다. 대쪽을 엮어 흑색을 칠한 덮개가 있는 우펑선(烏篷船)을 타고 노를 저으며 오가고 있다. 물이 많은 샤오싱의 교통수단이자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우산을 하나씩 들고 찰랑거리며 떠다니는 우펑선을 타고 물 위에 떠있는 집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하천 변을 따라 수상가옥이 빽빽하다. 빨래 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베란다에서 노인네들이 하천을 바라보며 마늘을 까고 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며 강아지도 덩달아 비 구경을 한다.


하천 위에는 돌로 만든 구름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서 보니 더욱 풍광이 멋지다. 비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찻집 하나가 보인다. 찻집으로 갔더니 구름다리가 더욱 봉긋한 것이 보름달처럼 둥글다. 옌위(雁雨)라는 이름의 찻집인데 기러기와 비라니 정말 낭만적인 조합이다.


우펑선을 타는 곳에 이르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지 않다. 딸을 위해 만든 술, 황쥬 한 병 들고 배 위에 올라 빗물을 안주 삼아 떠다니고 싶어진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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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38회 푸젠 기네스북에 오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불교사당



푸젠 성은 당나라 시대 푸저우(福州)와 젠저우(建州)를 합쳐 관찰사를 파견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고대에 칠민(七閩) 또는 팔민 부락의 근거지였기에 성의 약칭이 민(閩).


오대십국 시대에는 관찰사의 동생인 왕심지(王審知)가 민나라를 건국하기도 했으며 명나라 말기에는 가뭄과 반청운동에 실패한 정성공(鄭成功)이 타이완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푸젠 남부의 민상(閩商)은 예부터 4대 상방으로 꼽히며 지금도 푸젠의 수도인 푸저우를 비롯해 샤먼, 원저우는 상업과 무역도시로 유명하다,


1) 장저우 漳州 너무 예뻐 징그럽기까지 한 희한한 사당


장저우 시내를 걸어서 쥬룽장(九龍江) 방향으로 갔다. 동서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는 웨이전거(威鎮閣)을 보기 위해서다.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올 때 높이 솟은 누각이 인상적이었다.


웨이전거는 일명 팔괘루(八卦樓)라 불린다. 52미터에 이르는 3층 누각 안에는 장방형의 암석이 8각형으로 자세를 잡고 있는데 음양 8괘가 새겨져 있다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다. 강변 다리를 건너오는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누각 바로 옆에 아주 독특한 사당이 하나 있다. 검붉은 벽에 ‘제천궁마조묘(齊天宮媽祖廟)’라고 적혀 있는데 지붕 위에 조각된 문양들을 보면서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양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두 마리 용, 좌우로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다른 자세로 날아오를 듯 서 있다. 금빛 비늘, 붉은 머리와 꼬리, 초록빛 뿔을 지닌 용이다. 정말 원색적인 색감을 가지고 이다지도 영롱한 상징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한 쌍의 용은 초록색 비늘이다. 그 아래 아홉 명의 노인, 장수, 여인 형상의 사람들이 말, 사자, 호랑이, 코끼리, 산양 등을 타고 있는 모습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다.


사당 지붕이 온통 꿈에서나 만나볼 만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누구의 사당이길래 이런 지붕이 탄생한 것일지 정말 궁금하다.


팔괘루(왼쪽), 마조사당 지붕(오른쪽 위), 본두공(오른쪽 가운데), 마조(오른쪽 아래)


바로 천상성모(天上聖母), 천후(天后)라고 하는 마조(媽祖)를 모시는 사당이다. 중국 곳곳에 있는 수많은 톈허우궁(天后宮)의 주인공이 바로 마조인 것이다. 전설처럼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마조의 이름은 임묵(林默, 960-987)으로 바다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푸젠 지방의 선원이나 어부, 상인들에게 신적인 존재인데 그녀가 승천해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민간신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녀는 송나라 시대 푸젠 성 명문귀족 집안의 1남 6녀의 막내로 태어나 글을 배워 사리에 밝고 능통했다고 합니다. 16세가 되자 신령한 아가씨이자 용왕의 딸로 불리게 되고 28세이던 때 사람들에게 기적과 예언을 남기고 승천했는데 바다의 액운을 관리하며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이 됐다고 한다.


푸젠 성 남부지방에서 유래된 이 민간신앙은 타이완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타이베이 동북쪽 해안도시 지룽(基隆) 시에는 산 위에 11개의 분궁(分宮)이 있는 거대한 신궁이 건립될 정도로 그 신앙이 뿌리깊다. 바다를 끼고 있는 대륙 곳곳에도 마조 사당이 있는데 칭다오, 텐진, 산하이관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마조묘 입구로 가니 정문에 ‘자후장대(慈護漳台)’라는 금도금 편액이 눈길을 끈다. 편액 주위도 단순하지 않은 멋진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편액은 타이완 지룽 시 마조사당이 선물로 보낸 것이다. 지룽 시 사람들의 선조는 다 이곳 장저우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고 하니 신앙의 뿌리가 같다고 하겠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 가운데 천후 마조가 마치 용왕이나 황제처럼 서 있다.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인데다가 해와 달을 주무르고 있는 신의 모습이다. 붉은 빛과 금빛이 휘황찬란해 눈이 다 붉어질 정도다. 기둥마다 용이 휘감고 있고 벽에는 등뒤에 깃발을 꼽은 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바로 옆에 금빛 찬란한 치장을 한 자그마한 조각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본두공(本頭公)을 모시는 곳이다. 그의 이름은 백본두(白本頭)로 명나라 시대 항해사인 정화(鄭和) 부대의 부하였는데 항해 도중 필리핀에서 현지인과 결혼하고 살았던 최초의 필리핀 화교로 알려져 있다. 학 두 마리와 소나무, 붉게 솟은 태양과 높은 산이 그려진 벽화가 인상 깊다.


사당 밖에는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다. 겉에서 보기에는 조그맣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당인데 지붕부터 예사롭지 않은 묘한 곳이다.


바로 옆 5층 쌍탑 옆에 십자가가 있는 예배당이 하나 있어서 놀랐다. 전통 민간신앙 사당 옆에 있으니 굉장히 낯설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팔괘루와 마조묘, 예배당이 시야에 한꺼번에 들어오니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2) 장저우 漳州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작은 사당


푸젠 성 장저우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화루(新華路) 거리에 ‘원창(文昌)’이라는 팻말이 붙은 누각이 서 있다. 누각 아래 성문으로 차들이 오고 가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웅장한 누각과 성문이 자리잡고 있다니 정말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선정된 이유가 있는가 보다.


장저우 옛 역사문화거리를 찾아 나섰다. 한 작은 골목을 꽉 채운 크기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멋진 글씨로 ‘도관고금(道冠古今)’과 ‘덕배천지(德配天地)>라고 적힌 패방이 나타났다. 이 골목에 공자의 사당이 있다.


옛날에는 1만5천 평방미터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컸다. 지금도 작지는 않지만 찾는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청뎬(大成殿) 앞에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공자의 석상이 인상적이다. 돌 하나로 통째로 깎은 듯한데 장신인 공자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턱수염, 양손을 도포자락에 감추고 오므린 모습까지 참으로 반듯해 보인다. 그런데 왠지 여느 다른 곳에 비해 더욱 인자한 인상이다. 취푸의 궁푸에 있는 공자 모습이 호나우딩뇨를 닮아 앞 이빨이 튀어나온 모습과 아주 비교된다.


연분홍 빛깔의 꽃으로 꾸며 놓은 모습이 단아해 보인다. 플라스틱 모형 파인애플, 바나나 등 과일이 놓여있고 매번 녹차 공양을 하는 듯 찻잔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공자상 아래에는 기린(麒麟) 조각상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거북 등에 한 발을 딛고 있는 학 조각상도 있다. 용 문양이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의 석주들만이 옛 위용을 증명하고 있다.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데 돌로 만든 패방들이 아주 많다. 돌로 만든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정교한 문양들이 조각돼 있다. 그 중에도 명나라 시대인 1605년에 만들어진 ‘상서탐화(尚書探花)’ 패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뒤로 각각 상서와 탐화가 각인된 패방이다. 글자 아래 돌 위에는 한자도 써 있지만 고관대작이나 선비인 듯한 사람들의 행렬을 조각한 것이 아주 정밀하다. 탐화 위쪽에는 사영(思榮)이라는 글자가 있고 용으로 둘러싸고 있다. 높이 11미터, 너비 8미터의 이 돌 패방은 꽤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로 마주보고 ‘삼세재이(三世宰貳)’ 패방이 있다. 역사가 흘러 시대에 따라 새로 증축한 것인지 돌 색깔만큼 차이가 나는 게 다소 흠이긴 하다.


원창(왼쪽 위), 공자사당(왼쪽 가운데), 가람묘(왼쪽 아래), 문화거리 패방(오른쪽)


돌 패방 바로 옆에 작은 사당 간판이 보였다. 이 좁은 골목길 민가에 가람묘(伽藍廟)라는 사당이 있다니 신기해서 들어갔다. 장저우의 가옥구조는 ‘죽간착(竹竿厝)’이라 부르는데 집들이 모두 대나무처럼 쭉 뻗은 2층 구조로 이뤄져 있다. 집집마다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문이 잠겨 있다. 인기척을 하니 문을 열리고 사당을 보러 왔다고 하니 들어오라고 한다. 문 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왠 손님이냐는 둥 쳐다본다.


가람묘는 단 3평방미터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다. 언제 누가 세운 것인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백 년은 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 사당은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가 최근 이 지역을 역사거리로 만들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알려지게 된 것이다. 기네스 기록을 조사해봤더니 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당이 6평방미터 규모라고 하니 ‘세계에서도 가장 작은 사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스샹(打石巷) 골목 사당 입구에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팻말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니 왼편으로 사당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아주머니가 혼자 사는 방과 부엌이 보였다. 사당 안은 정말 좁아서 가로로 팔을 펼치면 벽이 닿을 정도이고 세로는 기껏 두 세 걸음이면 될 정도다.


문 입구 벽에 가람의 불상이 앉아있다. 가람은 중국에서 생성된 개념으로 사찰을 수호하는 신이며 관리자다. 당나라 이후 융성한 불교 사찰을 지키는 신으로 가람신이나 가람왕이라 칭했다.


가람 불상은 마치 상감들이나 쓰던 모자를 쓰고 수염이 길고 도포자락이 온몸을 다 덮은 모습이다. 향이 피어 오르고 있으며 칼로 벤 자욱이 오래된 사과 하나가 놓여 있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어두컴컴한데 봉긋한 모양의 조명등 2개만이 불을 밝히고 있다. 유리병에 빨간 장미꽃이 꽂혀 있고 도자기 병 2개에는 행운목이 각각 푸르른 잎사귀를 뽐내고 있다.


벽에는 복을 염원하는 물건들이 걸려있다. 접복(接福)이라 적힌 장신구는 중국 서민들이 사는 집에 걸려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벽걸이 시계도 하나 걸려 있고 입구 문에도 빨간 종이에 ‘풍조우순대사복(風調雨順大賜福)’이라 쓴 글씨가 붙어있다. 바람과 비를 잘 다스려 큰 복을 내려달라는 의미다.


문 밖으로 작은 베란다가 있다. 향불을 지피는 화로가 놓여있고 바닥에는 화분 10여 개가 가지런히 햇살을 받고 있다. 1층 아래에서 봤던 깃발들이 대나무에 매달려 휘날리고 있다.


이 가람묘 안에 있으니 완전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앞뒤로 열린 문으로 환한 햇살이 너무나도 강하다. 사당 모습은 다른 사원들에서 봤던 소도구들에 비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가까이에서 눈과 코로 그 느낌을 밀착하니 아주 다른 경험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람’이 주는 뉘앙스는 신의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느껴진다. 큰 건물의 자금 관리 책임자로부터 출생했으니 그런 듯하다. 그래서 다른 불상들의 지나치게 인자한 과장된 얼굴도 아니면서도 밉지 않은 인상이다.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 있다면 친근한 가람 앞에서 솔직하고도 마음 편하게 복을 빌어도 좋아 보인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열심히 청소를 하는 중이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보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


역사거리를 따라 걸어가니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유명한 상업거리였던 곳이라 그런지 백년노점(百年老店)이라고 붙은 가게가 있다. ‘텐이(天益)’라는 이름의 약방이 있다.


뤄춰샹(羅厝巷) 골목으로 들어서니 다른 곳에 비해 거리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고 집들도 꽤 넓고 단층구조인 것이 일반인들이 살던 곳은 아닌 듯하다. 이 부근은 장저우 관청이 있던 곳이다. 골목 끄트머리에 가니 쥐샹위엔(菊香苑)이라는 팻말이 붙은 집이 보였다. 국화 향기 그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름은 향긋하다.


장저우는 역사문화가 풍부한 도시답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팔괘를 가진 누각, 민간신앙인 마조사당과 예배당도 있고 유교사당과 불교사당을 함께 보게 된 재미있는 도시였다.


3) 푸저우 福州 전통가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푸젠 성 수도 푸저우에 도착해 지도를 폈다. 역사문화 도시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지도를 봐도 별로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그러다가 시내 번화가 근처의 '삼방칠항(三坊七巷)'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대도시치고는 도로 표시가 엉망이라 한참 헤맸다.


가로 세로 몇 번 돌고 나서 보니 번화가 한쪽 귀퉁이에 골목 입구에 타샹(塔巷) 팻말이 조그맣게 보였다. 골목 입구에는 경비원 한 명이 앉아 있다. 푸저우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시내 문화 거리에 3곳의 패방과 7곳의 옛 골목이 명나라 시대부터 조성돼 있는데 그 중 한 골목이 바로 '타샹'이다.


7곳의 골목 중 한 곳을 찾았으니 다 찾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좁은 골목 사이로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전선이 마구 엉켜 있다. 바로 10m 거리에 세계적 패스트푸드점들이 즐비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다. 집집마다 인기척이 거의 없어 보이고 문은 꼭꼭 닫혀 있다. 부서진 집들도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다정다감한 전통적인 골목을 예상한 것과 완전 빗나가고 있다.


100여 미터에 이르는 골목길을 다 지나니 아주 앙증스런 8층 탑이 골목 입구 지붕 위에 살짝 보이고 그 아래 '타샹'이라고 쓴 곳이 나타났다. 가만 보니 탑의 아랫부분 반 정도가 토막 난 상태로 걸려 있다. 언제 탑이 만들어졌는지 또 어느 때 탑이 반 토막 났는지 알 수 없는데 1950년대에 이르러 이곳 입구 지붕에 고정시켜 관리해오고 있다.


여전히 이상한 것은 이곳 입구에도 경비원 한 명이 앉아 있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데 바라보는 눈빛도 영 알쏭달쏭한 생각이 들었다. 째려보는 눈치가 심상치 않아 다시 되돌아 나왔다.


파헤쳐진 삼방칠항(왼쪽 위), 공원 공룡(왼쪽 아래), 타샹과 경비원(오른쪽)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도로가 완전히 다 파헤쳐 있다. 집들은 무너지고 철거 분위기다. 거리의 한 가게 주인을 대상으로 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 분위기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진팡(衣錦坊) 패방이 있는 골목으로 경비원 복장을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묻길래 외국인인데 여행 중이라 했더니 여권을 내놓으라고 한다. 공안(公安) 경찰도 아니고 줄 이유가 없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중하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곳은 촬영금지 구역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그런 표시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면 일이 꼬인다.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니 더 이상 여권 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공사 중인데 외국사람이 다치면 안 된다고 거듭 이야기하기에 눈치를 챘다. 지역 주민의 입장을 무시하고 강제로 철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난공원(南公園)을 찾았다. 작은 호수가 있고 수풀이 우거진 멋이 있긴 하지만 좀 썰렁했다. 공원에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아마도 밤이 되면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듯하다. 술집 옆 작은 방에서 드럼과 기타 소리가 요란한데 한참 연습 중이다.


호수를 빙 둘러보는데 어린이들이 좋아할 조각들이 나타났다. 거북이, 뱀, 코뿔소를 비롯해 각종 공룡들이 호수 주위에 가득 늘어서 있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한 손에 먹이를 들고 입으로 뜯어먹고 있는 흉측한 공룡이 아주 기분 나쁘다. 동물 조각 상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세운 것일 터 굳이 이렇게 흉물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나 싶다.


푸저우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히 힘만 뺐다. 삼방칠향을 어렵게 찾아갔지만 철거중인 현장에서 느닷없이 여권제시까지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부자동네 푸저우이니 자금을 투자하되 제발 다 때려부수는 재개발이 아닌 전통문화를 보존해 옛 것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삼방칠항’은 현 중국 국가부주석 시진핑이 푸젠에 있을 당시 홍콩 갑부 이가성과 함께 추진한 프로젝트이다. 시 부주석의 대표적인 실패한 행정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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