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32회 광둥 청나라 목판대장경 이름에 龍이 들어간 까닭은?



광둥 성은 춘추전국 시대 이래 남방민족인 월족(越族)의 기반이던 곳이다. 소수민족 중 상당 부분은 이 월족의 후예들이다. 그래서 광둥의 약칭을 위에(越)의 다른 이름인 위에(粵)라고 한다.


진 나라는 남해군(南海郡)을 설치했으며 한나라 시대 조타(趙佗)는 광둥으로 남하한 최초의 간부로 마오쩌둥이 칭찬한 바가 있다.


청나라 말기 홍수전(洪秀全) 주도 태평천국의 난이 기병한 곳이며 임칙서(林則徐)는 광저우에서 영국의 아편무역에 대항했다. 삼민주의자 쑨원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북방에서 남하한 동양의 유태인이라 불리는 커자(客家)인이 광범위하게 기반을 잡은 곳이다.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후이저우(惠州), 포산(佛山), 중산(中山), 동관(東莞) 등 광둥 지방의 주장삼각주(珠江三角洲) 일대 도시는 중국 최대의 산업 및 무역기지다.


1)   광저우 廣州 중국인의 감기몸살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음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중순 광둥 성 수도로 무역도시인 광저우에 도착했다. 정말 세계인들이 모이는 무역 도시답게 고층빌딩도 많고 사람들도 오가는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 구경에 나섰는데 생각보다 깔끔하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비해 훨씬 깨끗해 보인다. 모두 4개 라인이 운영되고 있는데 각 호선 별로 색깔도 빨강, 노랑, 파랑, 초록으로 배치해놓았는데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듯하다.


광저우의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황사(黃沙) 역으로 간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이 빨간색이 한 줄 들어간 노란색인데 매우 단조롭다. 다른 지역 지하철은 오색찬란한 광고판을 달고 다니는 것에 비해 아주 밋밋하다.


지하철 내부는 한낮이라 그런지 승객이 많지 않고 한적하다. 폭이 다소 좁아 보이 군데군데 빈자리가 많다.


황사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티켓은 동전만한 크기의 쿠폰이다. 물론 자기가 센서 역할을 한다. 가볍고 동전 같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좋고 간편하다.


역 부근 이야오(醫藥) 거리로 갔다. 대부분 중의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약재를 파는 거리가 조성돼 있다. 큰길 옆에 청나라 말기 의협(醫俠)이라 불렸으며 음료 브랜드이기도 한 왕라오지(王老吉, 본명 왕쩌방 王泽邦) 동상이 서 있다.


왕라오지는 중국 사람들이 상훠(上火)라 부르는 일종의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음료다. 우리나라 박카스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재료도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함유돼 있으며 맛도 달콤한데 다른 음료에 비해 다소 비싼 편이다.


가게들이 촘촘하게 재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3대 도시로 발전했지만 이렇듯 옛 거리 모습을 간직한 곳도 남아있다. 골목도 옛 생활모습 그대로다. 약재를 바닥에 놓고 말리기도 한다. 골목마다 마작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띤다. 집 창문에는 빨래 말리고 있는 모습도 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광저우를 흐르는 강인 주장(珠江)이 나온다. 강 너머는 아편전쟁 이후 영국 등 열강에게 할애된 작은 섬이다. 강을 따라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강변에는 대도시 특유의 고층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100년은 됐음직한 옛 건물도 한 채 남아있다.


날씨가 정말 덥다. 게다가 중국 남방도시는 습도가 아주 높아 숨이 막혀 걷기조차 힘들다. 더운 날 대낮에 대도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왕라오지(왼쪽 위), 광저우 지하철(왼쪽 가운데), 삼합주(왼쪽 아래), 양고기꼬치(오른쪽)


갑자기 LG중국법인의 총감을 역임한 최우영 사장이 광저우 오면 꼭 연락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식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지만 중국에서는 직원이 구워 상에 올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최사장과 헤어지기 섭섭해 2차로 양고기꼬치 집으로 갔다. 양고기도 맛이 좋았지만 비교적 싼 술인 얼궈터우(二鍋頭)와 맥주 그리고 사이다를 섞어 만든 삼합주라는 것을 마셨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얼궈터우도 종류가 천차만별이지만 알코올 도수가 56도로 일반 가게에서 5위엔 미만인 것이 삼합주에 적합하다. 우리나라에서 이과두주로 일찍이 알려진 술이다. 얼궈터우가 중국 특유의 향 냄새가 나니 시원한 맥주에다 달콤한 사이다를 적절히 배합하면 나름대로 훌륭한 칵테일이 된다. 양고기 안주와도 잘 맞고 중국 현지 생활의 애환을 담기에도 좋다.


광저우에서 열심히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무쪼록 최사장님을 비롯해 중국전문가 기업인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2)   선전 深 밤에도 꺼지지 않는 홍콩 앞바다 불빛


광저우에서 D열차(動車)를 타고 션전에 도착했다. 1시간 정도 걸리니 꽤 가까운 거리다. 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미리 연락해둔 민박집을 찾았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민박집. 아파트 창문을 열면 홍콩 앞 바다가 보이고 구름이 멋진 하늘이 펼쳐진다. 바다에는 항공모함이 거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녁을 먹은 후 밤이 되자 거실에서 정겨운 ‘7080’ 노래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송창식이 부른 <새는>이라는 노래가 좋아서 여러 번 들었다. 새처럼 날아서 저 멀리 날아가고픈 밤이다. 마치 바다가 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 온 느낌이다.


서서히 노을이 지자 항구는 밤새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환한 불빛이 붉게 빛나고 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불이 난 것처럼 붉다. 365일 24시간 항구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이니 검붉은 하늘, 홍콩을 마주보는 선전은 정말 세계의 무역항이라 부를 만하다. 새벽녘에 밝아오는 여명을 따라 점점 환해지는 바다 풍경 역시 인상에 남는다.


션전 동쪽에 있는 다메이샤(大梅沙) 해변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길이 마치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과 비슷해 정겨운 느낌이다. 해수욕장으로 들어서니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해변에는 우뚝 솟아 있는 재미난 조형물들이 있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데 바다 바람에 흩날리듯 멋진 모습이다. 연 보라색, 노란색, 연 초록색, 빨강색 몸체와 동작은 서로 다른 조형물들 모두 하얀 날개 짓을 한다. 어디론가 날아갈 듯한 모습인데 모래사장 위에 있는 게 아주 그럴싸해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에서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고무튜브를 타고 모래 찜질도 한다. 파도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아주 활기차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한 할머니는 손자 손녀가 물 속에서 노는 모습이 대견스러운 듯하다. 아이들이 시원한 파도 속에서 해맑게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니 함께 뛰어들고 싶어진다.

선전 해변(왼쪽 위), 아파트(왼쪽 가운데), 민스크 항모(왼쪽 아래), 선전항구의 밤(오른쪽)


다시 버스를 타고 민박집 부근 샤터우자오(沙頭角) 바닷가로 왔다. 산책로이기도 하고 조깅 코스이기도 한 하이징루(海景路)에는 러시아 항공모함 민스크(明思克)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 사람들이 항공모함을 보러 가고 있다. 항공모함 갑판에는 비행기 몇 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실제로 비행하지는 않는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는 이 러시아 중고항공모함은 1978년에 태평양에 배치됐다. 냉전시대가 끝나자 효율이 떨어진 항공모함은 1993년에 한국의 모 기업이 고철로 판매하기 위해 사들였다가 다시 1998년에 중국 기업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2000년에 선전 앞바다에 정박돼 군사공원으로 개장됐다가 2006년에 이르러 중국의 한 그룹이 다시 사들여 지금에 이르게 됐다.


274미터에 이르는 긴 항공모함이 바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으니 볼만하다. 항공모함 위에 올라가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 한 마리가 바다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그러더니 항공모함 옆에 있는 작은 배 위에 사뿐하게 내려 앉는다. 날아다닐 때는 아주 크고 멋진데 착지한 새는 아주 바싹 말라 애처롭다.


항공모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일가족이 산보를 나왔다. 한 꼬마 여자아이기 오빠랑 장난을 치며 논다. 공예품 가게에는 조개로 만든 목걸이도 있고 불면 소리가 나는 고동도 있다.


다시 멋진 홍콩 앞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정말 밤이 지지 않는 항만이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는 긴 여행을 하는데 맛 있는 음식 많이 먹고 가라고 싱싱한 소고기를 대접해준다. 다음날 헤어질 때는 여행길에 먹으라고 김밥까지 싸준 이 멋진 아파트로 꼭 다시 가고 싶다.


3)   차오저우 潮州 한편의 아름다운 벽화 전시관을 보는 듯


차오저우는 산터우(汕頭)와 합쳐 차오산(潮汕)이라 부르며 '성의 꼬리, 나라의 다리(省尾國腳)'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차오산상인(潮商)'은 중국 상방(商幫) 중에서도 산시(山西)의 진상(晉商)과 안후이(安徽)의 후이상(徽商)과 더불어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3대 상방에 손꼽힐 정도로 상업이 발달한 도시다.


차오저우에 도착하자마자 삼륜차를 타고 광지먼(廣濟門)으로 갔다. 휘황찬란한 코발트 빛깔의 조명이 깃든 성곽을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멋진 모습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20여 미터 높이의 성곽 양 옆으로 길게 성벽이 이어져 있다. 명나라 시대인 1370년에 처음 쌓은 성벽이 조명을 받아 아주 멋지다. 성벽 앞에 서 있는 나무들이 조명 때문에 마치 그림자놀이 하듯 흔들리고 있다.


성벽 앞으로는 한장(韓江)이 흐르고 있다. 강변을 따라 걸어가니 산 능선에 베이거(北閣) 누각이 나타난다. 강변에 서서 바라보니 누각과 정자가 서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 하나의 성채처럼 보인다. 이곳에도 관제묘(關帝廟)가 있는지 열린 문으로 관우(關羽)의 조각상이 보인다.


강변을 따라 항구까지 갔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식당 하나가 있다. 유람선이 떠다니는 다리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고 삼륜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광지먼(왼쪽 위), 한장 야경(왼쪽 아래), 자디샹 골목 모습들(오른쪽)


다음날 시내 동쪽에 차오저우의 전형적인 민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디샹(甲第巷)을 찾았다. 옛날에는 골목마다 돌이나 나무로 패방을 세웠는데 이곳에도 아담한 자디팡(甲第坊)이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명청 시대의 풍격이 가득하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석회와 모래흙으로 벽과 집의 골격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저택마다 부유한 차오저우 상인의 자유분방한 마인드를 반영하듯 흰색 담장에 회색기와가 외부를 장식하고 있다. 문과 벽 곳곳에 새, 사자, 사슴, 태극 문양을 비롯 풍부한 정서가 담긴 채색화들로 가득하다. 한편의 아름다운 벽화 전시관을 보는 듯하다.


차오산 지방의 독특한 가옥형태를 사점금(四點金)이라 한다. 베이징의 사합원(四合院)과 비슷한 구조다. 4채의 집이 서로 엉켜 이어져 있으며 가운데에 우물이 자리잡고 있는 형태다. 이곳 가옥이 특이한 것은 안쪽으로 움푹 들어선 대문이 만들어져 있는 비두(壁肚)가 있다는 것이다. 비두 양 옆으로 화려하고 상징적인 그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디(第)’는 저택을 말한다. 루린디(儒林第), 다이푸디(大夫第), 한린디(翰林第), 즈정디(資政第), 와이한디(外翰第) 등 우아하고 패기 넘치는 문체로 대문 위에 집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집에 살고 있던 상인이나 관료, 의사처럼 직업이나 직함을 고스란히 알려주고 있다. 홍등도 많이 걸려 있다.


좁은 골목으로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니 잘못하다가 사고가 날 지도 모르겠다. 골목길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들이 연이어 있다. 가로길이라 해서 헝(橫)이라 한다. 그래서 이헝(一橫), 얼헝(二橫)이라 적혀있는 좁은 길로 들어가보면 바깥보다 훨씬 작은 문과 집이 있다.


집집마다 길조나 장수를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지만 벽들이 오래돼 갈라진 곳도 많다. 어떤 집 담벼락은 덧칠한 벽이 떨어져나가 원래 새겨져 있던 문양이 드러나기도 한다. 벽에 낀 이끼가 다소 흉물스럽기는 해도 사이로 꽃들이 펴 있어 동네가 자꾸 정이 든다.


이곳의 아름다운 인문적 풍경은 옛날부터 꽤 유명했던가 보다. 청나라 건륭제 시대 차오저우의 최고책임자이던 주석훈(周碩勳)이 쓴 <조주부지(潮州府志)>에는 ‘명문귀족들은 저택을 소유하고 반드시 가묘를 세웠으니 아주 웅장하고 아름답다(望族營屋廬, 必建立家廟尤加壯麗)’고 적고 있다. 지금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지만 자디샹은 명나라 시대부터 상업 중심지이던 차오저우 상인과 관료들이 살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골목길이다.


4)   차오저우 潮州 청나라 목판대장경이 왜 이곳에 있었을까


차오저우에는 당나라 시대 세워진 사원인 카이위엔쓰(開元寺)가 자리잡고 있다. 당나라 현종 시대인 개원(開元) 26년인 738년에 처음 건축됐다. 당 현종은 불교 보급을 위해 전국 각지에 카이위엔쓰라는 이름의 사원을 새로 짓거나 사원의 이름을 변경했다. 그래서 카이위엔쓰라는 이름의 사원은 전국적으로 아주 많아서 수십 개에 이른다.


여러 번 중건되긴 했지만 광둥 성 동부지방 1,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사원 내부를 보자마자 금방 아주 오래된 사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많은 신도들이 찾기도 하고 승려들도 많다.


톈왕뎬(天王殿)에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불경인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말로 ‘탐욕을 버리고 고해의 바다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20세기 초 유명한 미술가이자 서예가인 류하이쑤(劉海粟)가 쓴 글씨체이다. 지붕에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고 한 가운데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톈왕뎬 안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화사하게 웃으며 다감한 모습의 미륵불 전신상이 있다. 갑골문 연구의 대가로 고문학자인 상청줘(商承祚, 1902-1991)가 쓴 ‘개대환희(皆大歡喜)’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의 글자체이다.


노랗고 빨간 종이로 감싼 향들이 정말 많이 있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연기를 바라보니 숙연해진다.


탁발행각을 하는 승려들이 지나간다. 수행 중인 승려들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다슝바오뎬(大雄寶殿)의 인자한 석가모니 불상을 향해 불경을 부르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 사진 찍는 것을 애써 막지 않으니 안으로 들어가 영상을 담을 수 있다.


불공을 마친 승려들은 각자 사발을 들고 나간다. 식사를 하러 가는 듯하다. 승려들을 따라 가니 영동불학원(嶺東佛學院)이 나타난다. 불자의 제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여행객들은 들어오지 말라고 써 있지만 들어가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다슝바오뎬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지장각(地藏閣)과 관음각(觀音閣)이 있는데 관음각 안쪽이 승려교육을 시키는 학원이다.


용장이 있던 장경루(왼쪽), 카이위엔쓰 사원의 이모저모(오른쪽)


다슝바오뎬 뒤쪽에 가니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신도가 양 손으로 불을 붙인 향 3개를 이마에 붙이고 3번 절을 하고 있다. 나무들이 많아 깊은 숲과 같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오로지 향만 피어 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예를 올리고 있다. 검은색 문에 빨간색 테두리를 따라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문양이 아주 예쁘다.


무언가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니 운해조음(雲海潮音)이라는 편액 뒤로 장경루(藏经楼)라는 표시가 있다. 청나라 건륭제의 <건륭판대장경(乾隆版大藏經)>이라 불리는 중국의 1급 문물인 목판대장경을 보관했던 곳이다. 청장(清藏)이라고도 하고 용 문양이 새겨진 상자에 대장경을 담았다고 해서 보통 용장(龍藏)이라고 부른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다베이뎬(大悲殿)이 보였다. 비교적 최근에 증축한 듯 깨끗한 건물이다. 천수천안관음보살의 불상이 인자하게 서 있고 그 위에 감로법우(甘露法雨)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나오는 말로 ‘온갖 고해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감로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중국 남방의 상업도시이면서 문화도시인 차오저우의 카이위엔쓰는 당나라 시대부터 명성이 높던 사원이다. 만주족 황제조차 누각을 만들어 대장경을 보관했을 정도로 남방 끝자락 차오저우를 중시했던 것이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중국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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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닝(西宁)에서 약 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거리에는 1300여 년 전 당나라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의 사당이 있다.

 

중국의 3대 고원인 칭장가오위엔(藏高原)의 동남부에 위치한 이곳에는 일월산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지금도 위슈() 장족자치주이기도 하다. 그 옛날부터 장족이 자신의 민족문화를 꽃피워오던 곳인 셈이다. 아마 적어도 당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장족과 한족의 영토 경계선이었을 것이다.

 

당 태종이 아꼈던 문성공주는 장한퇀지에(汉团结)의 선물(?)로 장족의 토번왕인 쑹첸깐부(干布)에게 시집갔다. 당나라 수도인 창안()에서 라싸()가는 길에 공주가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당 태종이 이곳까지 배웅을 했으며 공주를 보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했다고 전해진다. 공주가 떠난 후 이곳 장족들이 사당을 지었다 한다.

 

공주의 동상이 서 있고 일월산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정자 2개가 산봉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다. 장족의 동물인 야크 동상도 보인다. 야크에 올라타서 사진을 찍는 중국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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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45] 중국 최대의 호수 씨닝 칭하이 호수

란저우(兰州)에서 칭하이성 성도 씨닝(西宁)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6월 26일, 일찍 아침을 먹고 출발했더니 12시도 안돼 씨닝에 도착했다. 다음날 칭하이 호수 여행을 예약했고 호텔도 소개 받았다. 이처럼 중국에서 일정이 미처 준비되지 않았다면 기차 역 앞으로 가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중국어를 잘 못해도 상관 없다. 그들이 어떻게 하던지 소통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하니 말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여느 중원 땅과 다른 도시인 씨닝의 번화가가 궁금해졌다. 씨먼(西门) 부근에 공예품도 팔고 먹거리도 파는 쉐이징샹(水晶巷) 시장을 찾았다. ‘샹(巷)’은 골목이란 의미로 베이징에 많은 골목길 ‘후통(胡同)’과 같은 뜻이다. 골목 시장인 셈이다.

  
▲ 공예품가게 초원과 서역의 모습이 느껴지는 공예품
ⓒ 최종명
초원

공예품은 중국 전역 어디서나 비슷비슷하니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중국 서북쪽으로 오니 실크로드(丝路)와 둔황(敦煌)을 떠오르게 하는 공예품들이 나타나기 시작이다. 시장 이곳 저곳을 즐겁게 돌아다녔다.

역시 재래시장이어서 그런지 과일이 아주 싸다. 잉타오(樱桃, 앵두), 타오즈(桃子, 복숭아), 멍궈(杧果, 망고)와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는 리즈(荔枝)까지 15위엔을 주고 잔뜩 샀다.

맛있게 구워 있는 카오야(烤鸭)를 보니 군침이 돈다. 한마리에 20위엔인데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크고 먹고는 싶고.

시장 골목 한 켠에 우리나라 순대를 떠올리는 먹거리가 냄새를 풍긴다. 양으로 만든 순대인 셈인 양창(羊肠) 한 접시를 사서 먹었다.
 
수염 덥수룩한 외국 여행객이 자판에 앉아 맛있다며 음식 이름도 묻고 제조방법도 묻고 하니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정말 먹을 만 하냐고 거듭 물어보는데, 사실 그다지 확 입맛을 당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맛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매번 ‘하오츠(好吃)’라 했다. 맛있다는 뜻.
  
▲ 양탕 칭하이 씨닝에서 먹은 양고기 순대인 양탕
ⓒ 최종명
양고기

길거리에는 양고기꼬치인 양뤄촬(羊肉串)을 구워 파는 회족(回族)들이 많다. 서쪽으로 갈수록 신선한 양고기가 많으니 먹음직스럽다. 오징어를 데쳐 파는 곳 앞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섰다. 오징어를 꼬치에 꼽아 양념을 듬뿍 바르며 연신 불에 굽는 게 아주 신기하다. 게다가 기름을 부을 때마다 불꽃이 확 살아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탄이다. 5위엔에 3개 사서 먹어보니 정말 오징어 살이 물컹 살아 있으면서 쫄깃한 게 아주 굿이다.

  
▲ 오징어꼬치 씨닝 한 골목시장에서 사 먹은 오징어 꼬치
ⓒ 최종명
씨닝

닭 파는 것은 자주 봤지만 비둘기 파는 곳은 드물다. 비둘기 고기 요리를 음식점에서는 가끔 먹었지만 시장에서 파는 것은 처음 본다. 처음 비둘기 요리를 먹었을 때 ‘이렇게 맛 있는 것을 왜 안 먹지?’라던 기억이 났다.

시장에서 오후 내내 이것저것 눈요기만 즐기다가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뒷산으로 서서히 하루 해가 저문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갈 생각으로 거리를 걷다 보니 진저우(锦州) 취재 이야기에서 만난 적이 있는 융밍즈줘화(用名字作画)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꽃, 새, 물고기, 곤충 등의 형상들이 서로 꼬여 있듯 엮어지고 서서히 이름을 드러낸다. 붓(笔)은 보통 금속으로 만드는데 다양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이에 스펀지를 끼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스펀지가 바로 형형색색, 변화무쌍한 그림의 마술인 것이다. 그리고 종이 윗면에는 거의 중화이슈(中华艺术)라고 쓰여 있다. 아랫면에 써 있는 글씨는 찡핀즈화(精品字画). 아마도 민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예술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하나 그리는데 5분 정도 걸리는데 한 장에 5위엔을 받는다. 보통 싸게는 3위엔 정도이고 관광지에서는 10위엔 정도 받는다.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이 그림, 그런데 과연 어디에다 쓸까? 걸까? 기념으로 하나 그려서 가져오기에는 왠지 촌스럽다.

다음날, 6월 27일 아침 중국 여행객들과 함께 일일 여행을 떠났다. 동베이(东北)에서 온 중년의 남자, 푸젠(福建)에서 온 모자(母子), 스촨(四川)에서 온 남녀, 어디서 온 지 밝히지 않은 대학생 그리고 가이드와 기사. 오늘은 참 단출한 여행이 될 듯싶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래 마음이 마구 설렌다.

우리는 먼저 씨닝(西宁)에서 약 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1300여 년 전 당나라 태종의 딸인 문성공주 사당으로 갔다. 중국의 3대 고원인 칭장까오위엔(青藏高原)의 동남부에 위치한 이곳에는 르위에산(日月山)이 있고 그 산자락 아래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향불을 지피고 그 앞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 장족복장의 가이드 문성공주 사당 앞에서
ⓒ 최종명
문성공주

장족 복장을 하고 사당을 소개하는 가이드 아가씨 사진을 찍었다. ‘찍지 마세요’ 하길래 ‘예뻐서’ 그랬더니 옆에 있는 중국사람들이 ‘당연하지. 그래 맞아’ 해서 모두 웃었다.

대체로 중국 가이드들은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한 서비스라 생각하는 편이다.

이곳은 위슈(玉树) 장족(臧族) 자치주이다. 옛날부터 장족이 자신의 민족문화를 꽃피워오던 곳인 셈이다. 사당 옆에는 탕판구다오(唐蕃古道)라는 표시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아마 적어도 당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장족과 한족의 영토 경계선이 아니었을까.

당 태종이 아꼈던 문성공주는 장한퇀지에(藏汉团结)의 선물(?)로 장족의 투판(吐蕃) 왕인 쑹첸깐부(松赞干布)에게 보내졌다.

당나라 수도인 창안(长安)에서 라싸(拉萨)로 가는 길에 공주가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당 태종이 이곳까지 배웅을 했다니 공주를 보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했지 싶다. 선행을 많이 한 마음씨 착한 공주가 떠난 후 장족들이 이곳에 사당을 지었다 한다.

공주의 석상이 서 있고 르위에산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정자 2개가 산봉우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다. 장족의 동물인 야크 동상도 보인다. 야크에 올라타서 사진을 찍는 중국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 야크 장족이 신성시하는 동물 야크를 타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최종명
야크

칭하이성(青海省)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염수인 칭하이후(青海湖)가 있다. 이 호수이름은 원래 몽골어로는 ‘쿠쿠눨(库库诺尔)’, 장족어로는 ‘춰원뽀(错温波)라 하는데 그 뜻이 모두 ‘푸른 바다’이다. 호수 면적인 거의 3만 평방미터이고 호수 둘레는 105킬로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 이렇게 바다 같은 호수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곳에서 장족 아이들을 만났다.

  
▲ 바다 느낌의 호수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바라본 칭하이 호수가 마치 바다 같은 느낌이다
ⓒ 최종명
칭하이

호수가 마치 바다 같이 느껴지는 곳에서 점심을 먹은 후 호수를 둘러볼 요량으로 걷고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장족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민속복장을 하고 예쁘게 포즈를 취하는 것이 너무 예뻐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옆에는 아이들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사진을 찍던 중국 사람이 아이들에게 5위엔(약 650원)을 줬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그리고 장족말로 ‘아저씨 노래하겠으니 돈 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나중에 가이드가 한 말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사진 찍는데 얼마라고 하지 않았고 게다가 1장만 찍어야 한다고 말해주지도 않았기에 발생했다. 그저 5위엔만 주면 되겠지 했다. 사진에다가 영상까지 찍었으니 사정이 꽤 복잡해진 것이다.

  
▲ 춤추고 노래하는 장족아이들 칭하이 호수에서 만난 소수민족 아이들
ⓒ 최종명
칭하이

가이드가 ‘이 아저씨 몰랐어’ 하면서 그냥 5위엔 받으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난감해 했다. 다른 관광지라면 아마 생떼를 쓰고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도 그냥 웃으며 넘어갔다. 시간 없다는 가이드의 재촉으로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자꾸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과 몸짓이 떠올랐다. 돈을 더 줬어야 했나 종일 안타까웠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칭하이후(青海湖) 안에 있는 섬을 유람하려면 관광차량을 타고 옮겨 다녀야 한다. 먼저, 서북 쪽 강변 삼각주(三角洲) 안에는 냐오다오(鸟岛)로 갔다. 냐오다오는 두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서쪽에 있는 작은 섬을 샤오다오(小岛)라 하고 하이씨산(海西山) 또는 단다오(蛋岛), 즉 ‘새알 섬’이라고 부른다. 동쪽 섬은 하이씨피(海西皮)라 부른다.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철새(候鸟)들이 서식하고 있다. 1989년 자료에 의하면 모두 162종류의 새들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여러 종류의 기러기(雁)와 갈매기(鸥) 그리고 갯가마우지(鸬鹚) 떼가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단다오에서 기러기와 갈매기를 보려면 유리가 가로막힌 관망대에서 봐야 한다. 날아오르고 내려 앉는 모습이 참 예쁘긴 하지만 좀 답답하다.

다시 관광차량을 타고 갯가마우지가 많은 루츠다오(鸬鹚岛)로 갔다. 이곳 철새 관망대에는 유리도 없고, 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 물결이 생생하면서도 난생 처음 보는 특이한 새 무리가 바위 위에 까맣게 앉았다가 비상하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다. 2~3초에 한 마리씩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순서대로 날아오르는 듯하다.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이 ‘푸른 바다‘의 주인이라고 과시하듯 말이다.

  
▲ 갯가마우지 철새들의 군락지인 칭하이 호수에서 바위 위 갯가마우지 떼와 비상하는 새
ⓒ 최종명
철새

씨닝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청하이후 동쪽 진인탄(金银滩)이라는 이름의 초원을 들렀다. 이곳에는 말을 탈 수도 있고 놀이시설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이 칭하이 민가(民歌)인 ‘짜이나야오위엔더띠팡(在那遥远的地方)’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 한다.

대만 인기가수인 왕리홍(王力宏)을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다. 중국의 유명작곡가인 왕뤄빈(王洛宾)의 곡으로 ‘저 머나먼 곳에는 착한 소녀가 있었지(在那遥远的地方,有位好姑娘)로 시작되는 낭만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이 푸른 초원에서 푸젠(福建)에서 온 꼬마가 말을 탔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초원 위를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잠깐이라도 말을 타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시간 없다고 꼬마를 재촉한다. 머쓱해졌다.

  
▲ 푸젠에서 온 꼬마 칭하이 호수 동쪽 진인탄 초원에서 말을 타고 있다
ⓒ 최종명
칭하이

씨닝(西宁)에서 중국 최대의 호수, 칭하이후(青海湖)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다. 자연이 상쾌했고 역사도 산뜻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장족 여자아이 둘의 얼굴 표정이 자꾸 살아나니 다소 착잡하기도 하다. 이때 얼굴과 마음씨 모두 포근한 우리 가이드가 나와의 약속대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고원을 달리며 듣는 감칠맛 나는 ‘칭장까오위엔(青藏高原)’. 칭장 고원은 황투(黄土), 네이멍구(内蒙古), 윈꾸이(云贵)과 함께 중국의 4대 고원으로 칭하이(青海) 성과 씨장(西藏) 성을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티베트 장족의 고향 같은 노래라 그 정서가 사뭇 이국적이기도 하다.

특히, 야라숴(嗦로 쓰기도 함)라는 장족의 감탄 추임새로 끝나는 노래 마지막 부분은 갑자기 엄청나게 높게 몇 옥타브 급히 오르는 곡조를 지녔다.

초원을 달리며 듣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하다. ‘칭장까오위엔(青藏高原)’은 중국 최고의 가수 한홍(韩红)이 부르는 것이 제 맛이다.


밤낮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 누구인가 (是谁日夜遥望着蓝天)
영원히 변하지 않을 꿈을 갈망하는 자 누구인가 (是谁渴望永久的梦幻)
찬미할 노래가 아직 남아 있으랴 (难道说还有赞美的歌)
그 장엄한 모습이야 변할 리 없으리 (还是那仿佛不能改变的庄严)
아~ 산을 보았네, 하천도 보았네 (哦 我看见一座座山一座座山川)
산과 하천이 서로 만나는 것을 보았네 (一座座山川相连)
야라숴 그건 바로 칭장 고원이네 (呀啦索 那就是青藏高原)


장족인 한홍은 씨장(西藏)에서 태어나 1998년에 데뷔했는데 2003년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중국에서 누구도 부인 못하는 최고의 여가수로 인정한다. CCTV와 KBS가 매년 개최하는 한중가요제에 단골로 등장하니 혹시 아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남자가수 쑨난(孙楠)과 듀엣으로 청룽(成龙)과 김희선이 출연하고 불렀던 노래 션화(神话)를 부르기도 했다.

동베이(东北)에서 온 남자도 한 곡 불렀고, 나도 노래를 불러야 했다. 한국 민요라고 소개하고 느리게 아리랑을 불렀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참으로 마음 편한 여행이었다.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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