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사천(四川)에 있는 티베트 문화를 답사했다. 티베트 중심지인 라싸(拉萨)와 달리 동티베트라고 부른다. 티베트의 영토가 굉장히 넓었기에 지금의 티베트(西藏)자치구를 벗어나도 티베트 역사의 흔적은 꽤 많다. 한때 당나라 수도 장안(长安)을 점령하기도 한 민족이다. 그만큼 문화적 영토는 산재한다. 간쯔주(甘孜州) 단바(丹巴)로 들어서면 해발 2천미터 산 능선에 하얀색이 유난히 선연한 집을 짓고 사는 중로장채(中路藏寨)와 만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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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중국대장정(07) – 궁부장다 지나 민가 체험 그리고 라싸 도착

 

바야흐로 티베트 수도 라싸()가 코 앞이다. 400km, 이제 오체투지로 가도 금방일 것 같다. 다시 아침부터 달린다. 차창 밖 니양허(尼洋河)도 유유히 흐른다. 하늘이 좀 묘하다. 구름은 운무로 변해 산 아래를 휘감고 자리를 비운 하늘은 새파랗다. 8월 한여름 아침에도 긴 팔을 둘러야 하니 고도가 높긴 하다. 이제 티베트 차마고도를 달리는 일은 일상처럼 편안하다. 길도 더는 공사 중이 아니다.

 

Mp-07-01 니양허와 하늘, 구름

 

휴게소 표지를 슬쩍 보이더니 차가 멈춘다. 그런데 웅성웅성 시끄러운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궁부장다(工布江) 휴게소로 들어가는 길옆으로 10여 대의 차가 줄줄이 섰다. 경찰이 모두 세운 것이다. ‘통로 공사 중 진입금지 벌금 100위안인데 들어선 것이다. 팻말을 모든 차량이 통로로 들어선 후에 세운 것이 문제였다. 함정수사인지 모른다는 의심은 아무리 티베트이라도 그냥 넘어가긴 힘들다. 우리보다 경찰에게 고분고분한 중국사람들도 실랑이를 벌이니 도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Mp-07-02 공사 중인 휴게소 진입로에서 벌어진 사건

 

30분여 분만에 상황은 종결됐다. 모든 차량이 벌금을 내는 것으로 항복했으니 예상보다 빨랐다. CCTV, 블랙박스 다 동원해 증거 들이밀면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귀찮다. 벌금 100위안도 현지 경찰서에 가서 직접 내야 한다. 대부분 외지인이었는데, ‘억울을 빌어 항의한 이유는 시간때문이다. 아름다운 티베트 하늘을 달리고 있으니 정말 재수 옴 붙은 날’. 벌금 내고 오는데 다시 1시간, 라싸로 가는 길이 지체됐다.

 

Mp-07-03 라싸 가는 길에 본 태소고성 표지

 

도로 옆에 태소고성(太昭古城) 표지가 보인다. 청나라 말기 번성했던 상업과 교통의 요지였다. 티베트와 교역을 하기 위한 점포가 빽빽이 늘어서 차마고도를 따라온 푸얼차(洱茶)도 진열됐을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거리도 생기고 등촉 타는 향기 가득한 사원도 세우게 된다. 벌금만 내지 않았더라면 다리를 건너 구경하자고 우기고 싶다. 구름이 사라지고 다시 하늘은 본디 모습으로 돌아온다. 구름 반, 하늘 반이 딱 좋다.

 

점심시간이다. 정확하게 1 30. 벌금이 날려버린 시간만큼 에누리 없다. 국도 옆 자그마한 동네 이름이 쑹둬일촌(松多一村)이다. 소나무와 아무 상관 없다. 티베트 말로 무슨 뜻인지도 궁금하지 않으니 식후경이나 해야겠다. 메뉴에 눈에 쏙 들어오는 게 나타난다. 바로 페이창펀(肠粉)이다. ‘페이창대단히강조나 비하할 때 쓰는 페이창(非常)’과 성조만 다르다. 보통 은 가루를 원료로 만든 국수다. 고구마 분말로 만든 국수에 돼지 내장으로 우려낸 육수가 합쳐져 맛이 페이창하오(非常好)’.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얼큰하고 시원하다.

 

Mp-07-04 ‘페이창하오인 페이창펀

 

1시간을 달려 미라산(米拉山) 고개에 이른다. 가파르게 오른다 싶더니 해발 5,013m. 여전히 숨이 가쁘다. 잊었던 심장도 박동을 시작하고 머리도 아프다. 블랙야크 조각상 옆에는 야크 뿔을 판다. 야크 목에 걸린 카딱()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려도 마냥 즐거운 인증이다. 고원을 바라보며 앉은 개는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가? 벌판으로 뛰어내려 달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차마고도 마방처럼 숨 가쁘게 달리지 않고 고원을 바라보며 늘 파란 하늘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고 싶어진다.

 

Mp-07-05 미라산 고개의 블랙야크


Mp-07-06 미라산 고개에서 초원을 바라보는 개

 

해발 4,000m에 자리잡 은 르둬샹(日多) 마을에 온천지질공원이 있다. 일찍이 8세기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로 숭상되는 연화생대사(莲花生大师)가 르둬온천을 찾아 죄얼(罪孽)을 씻어내고 영혼(灵魂)을 정화해 자선과 관용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니 공덕을 쌓게 된다.’고 불경에 기록했다. ‘백병(百病)’을 치유한다고 예언처럼 노래하기도 했다. 1,300여 년 전 조사()의 말씀 덕분인지 보물로 여긴다.

 

산천초목이 온통 약초인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이 어찌 보배가 아닐런가? 설산에서 흘러 깊게 가라앉았다가 끓어오른 물의 온도가 최고 83도나 된다. 겨울이면 더더욱 추운 고원에서 온천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천길 낭떠러지를 넘어온 마방에게도 신의 가호가 아니었을까? 수질도 청량하지만, 성분도 의료온천으로서 가치가 있다. 2002년 국토자원부에서 국제의료온천표준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말 온천호텔에서 하루 푹 몸 담그고 싶다.

 

Mp-07-07 보물 같은 르둬온천

 

르둬샹을 조금 지나 국도 옆 티베트 민가로 들어간다. 사람 사는 일이 모두 비슷하겠지만 티베트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 이목구비가 반듯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손님에게 우선 쑤여우차(酥油茶)를 따라준다. 청보리인 칭커 가루로 수분을 묻힌 참파(糌粑)와 함께 주식으로 마시는 음료다. 야크로부터 얻은 버터인 쑤여우는 지방질만 풍부해 비타민이 많은 푸얼차와 소금을 넣고 흔들어 섞어주면 맛있는 차가 되는 것이다. 대나무 통에 골고루 넣고 긴 작대기로 휘휘 젖는다. 고원지대에서 얻기 힘든 차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렸던 보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5배 이상의 이문이 남는 장사이긴 했다.

 

Mp-07-08 티베트 민가에서 마신 쑤여우차


Mp-07-09 쑤여우차 마시는 티베트 민가의 어머니

 

티베트 사람에게는 차와 소금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쑤여우차에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온다. 옛날 옛적에 A촌락의 토사(土司) 아들 원둔바(顿巴)B촌락의 토사 딸 메이메이춰(美梅措)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두 마을은 오랫동안 원수 집안이었으니 문제였다. 결국, 딸의 아버지가 사람을 시켜 원둔바를 살해했다. 원둔바의 장례가 화장으로 치러지는 때 메이메이춰는 불길로 뛰어들어 순정(殉情)하고 말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둘이 죽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중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사랑의 힘이 놀랍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결말이 좀 신비하다. 중국 4대 전설인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는 결국 한 쌍의 나비로 승화한다. 티베트는 훨씬 강렬한 감동이 있다. 산화한 처녀는 차나무의 찻잎이 된다. 먼저 죽은 총각은 염호의 소금으로 환생한다. 티베트 사람들이 매일 쑤여우차를 만들 때마다 서로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나비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 아닌가? 천추에 길이 빛날 영수불후(永垂不朽)라 할만하다.

 

Mp-07-09 티베트 민가의 어머니와 아들의 목완


Mp-07-10 티베트 민가체험 중 만난 소녀의 미소

 

쑤여우차는 버터 향 짙은 미숫가루 같다. 하루에도 50잔 이상 마시는 게 보통이다. 티베트 사람은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틈만 나면 마시기에 잔도 늘 들고 다닌다. 두루마기에 모시고 다니며 한평생 사용하는데 대부분 목완(木碗)을 사용한다. 나무 사발은 신랑을 만나 종신계약에 사인하는 신부와도 같다. 그래서 재미난 민가도 있다.

 

연인과 함께 하니 부끄럽고             带着情人吧害羞,

연인과 헤어지려니 애타네              丢下情人吧心焦.

연인이 목완과도 같다면                  情人如若是木碗,

가슴에 품어야 더 좋으리라             藏在怀里该多好.

 

Mp-07-11 티베트 민가체험 중 찾아온 친척과 동네사람

 

어머니와 아들은 평생 친구인 목완을 꺼내 쑤여우차를 마신다. 손님이 오면 함께 마시는 게 예의이자 풍습이다. 바깥에는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찻잎이 된 처녀와 소금이 된 총각을 떠올리며 모두 차를 마신다. 수 천km를 달려온 푸얼차와 소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사람들이다. 전설로라도 오래 잊지 말자는 인지상정이다. 사람 냄새 나는 시간을 보내고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행정구역으로 라싸 시에 속한 모주궁카(墨竹工卡)를 지난다. ‘먹으로 그린 대나무용왕 거주지라는 복합적인 뜻인데 연상도 어렵고 이해도 불가! 국도에서 5km 남쪽에 자마샹(玛乡)이 있다. 서기 617년 티베트 왕 쑹첸캄포(赞干布)가 태어난 곳으로 자그마한 왕궁(王宫)도 있다.

 

Mp-07-12 라싸로 가는 길의 모주궁카 부근 들판

 

외아들인 쑹첸캄포는 부유한 환경에서 후계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을 드러냈으며 도덕적으로도 완벽했다. 12세에 아버지 남리쑹첸(朗日松赞)이 살해당하고 귀족과 결탁한 주변 왕국의 협공으로 위기를 맞지만 왕위에 오른 후 타고난 지혜와 통솔력으로 사태를 진정시킨다. 곧바로 군사력을 결집해 인근 왕국을 평정하고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다. 알룽창포(鲁藏布) 강을 건너 아름다운 초원이 펼쳐져 있고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춘 라싸로 천도한다.

 

Mp-07-13 라싸로 가는 길의 라싸허

 

티베트 고원의 왕국 숨파(苏毗)와 샹숭(象雄)을 복속해 청장고원(青藏高原)을 통일한다. 네팔의 앞선 문명을 받아들이고 당나라와도 화친 결혼을 통한 외교정책을 펼친다. 청해성과 감숙성 일대의 선비족 토욕혼(吐谷)과 강족 일파인 탕구트()까지 복속해 굳건한 제국을 건설하지만 안타깝게도 서기 650, 33대 티베트 왕이자 최초의 제왕은 34살로 요절한다.

 

Mp-07-14 라싸로 가는 길의 다체 부근


Mp-07-15 라싸로 가는 길의 다체2호터널

 

이제 봉건시대 티베트 최고의 제왕을 따라 라싸로 들어간다. 미라산을 넘어서부터 라싸까지는 라싸허(拉萨河)가 계속 따라온다. 하늘은 강물에 투영돼 밝게 빛나고 있다. 라싸의 동대문인 다체(达孜)를 지나니 터널 3개가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산 너머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구름도 숨을 곳을 찾는다 싶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조금 지나니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햇볕이 보기에도 따갑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풍광이 새롭다. 여전히 터널 속인가 싶을 정도로 하늘이 까맣게 변한다. 하늘의 조화인가 환영 인사인가?

 

Mp-07-16 라싸로 가는 길의 변화무쌍한 하늘

 

마지막 터널을 나오니 햇살도 보이고 먹구름도 보인다. 멀리서 봐도 비다. 라싸대교(萨大桥)를 건널 때는 날도 갠 상태다. 도무지 한눈을 팔기 어려운 변화무쌍이다. 갑자기 창밖에 펼쳐진 엄청난 환영(幻影)’에 차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무지개다! 쌍무지개!!”

 

누군가 외쳤다. 이 화려한 환영(欢迎)’을 위해 그다지도 오랫동안 오락가락 천변만화(千变万化)했단 말인가? 대기 중의 자연현상 무지개, ‘물이 펼쳐진 문이어서 무지개라 하던가? 중국어로 차이훙(彩虹)이라 한다. 쌍무지개는 그냥 솽훙(双虹). ‘주노초파남보, 빨주노초파남보떠올리다가 다채롭고 찬란한 색채빈분(色彩缤纷)을 연상한다. ‘빈분손님과의 연분(宾分)’()’로 묶여있는 꼴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는 손님과의 인연, 어찌 오색찬란하지 않을 소냐? 드디어 도착한 티베트 수도 라싸다. 쑤여우차에 들어온 찻잎과 소금이 된 듯 흥분된다.

 

Mp-07-17 라싸대교에서 만난 쌍무지개


관련 동영상 보시려면 http://youyue.co.kr/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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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조캉의 뒷쪽


티베트 사람들에게 라싸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는 조캉觉康이다. 불전이란 뜻이고 성지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인데 의외로 사원 2층 뒷쪽에 스님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조캉에 갈 때마다 살짝 한바퀴 돌아본다. 뒷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차마고도-조캉에서 본 오체투지


조캉 2층에서 바라본 포탈라궁, 바코르광장 그리고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 모습이다. 파란 하늘에 묻혀 티베트의 정서가 빛나는 가운데 사람들의 갈망과 기원이 하늘을 향하는 듯하다. 대지와 한 몸이 되는 느낌은 무얼까?



차마고도-바코르광장


조캉 주위는 바코르광장이다. 티베트 사람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주민 거주지역이다. 매일 한 바퀴씩 돈다. 관광객도 함께 원을 그린다. 중국정부가 전국의 거리 중 역사문화거리로 선정할 때 가장 먼저 뽑은 거리이기도 하다. 갈 때마다 한번씩 사람들과 함께 걸어보는데 참 마음이 편해지는 거리다.



차마고도-민속공연

라싸에서 티베트 민속공연을 감상하며 뷔페식 저녁을 먹는다. 다소 싱거운 공연이긴 하지만 그래도 멀리 라싸까지 왔는데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다. 야크로 분장한 후 한바탕 폭소를 남기고 사라지면 공연은 끝난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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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마지아미


라싸에 도착한 후 호텔 체크인 하자마자 지인 몇 분과 바코르광장을 찾았다. 밤 풍경 다시 보니 기분 뭉클하다. '마지아미' 식당 부근이다. 시인이기도 했던 달라이라마 6세의 시에 등장하는 '아리따운 아가씨'인 마지아미에 대한 향수가 스며든다. 여기는 티베트의 오랜 수도 라싸 한 복판이다.



차마고도-바코르광장 야경


마지아미 식당이 있는 바코르광장을 한바퀴 돈다. 한밤중에 오체투지하는 사람이 많다. 그냥 천천히 걸어도 30분 가량 걸리는데 그냥 한바퀴만 돌 기세가 아니다. 마음 수양이 어찌 시간의 제한이 있겠는가? 바코르광장 인근에는 무슬림사원 청진사가 있고 야시장도 활기차다.



차마고도-포탈라궁


라싸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포탈라궁 관람에 나선다. 그런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라싸에 흔하지 않은 보슬비다. 길게 줄을 서야 하고 많은 이들과 어깨까지 부딪히지만 웅장한 세계문화유산를 본다는 사실에 흥분도 된다. 여러번 봐도 참 어려운 티베트불교와 포탈라궁의 건축문화다. 아쉬운 건 내부의 영험하기도 하고 화려한 보물을 사진이나 영상에 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궁과 홍궁, 직접 눈과 마음에 담았다. 영상은 입구와 출구, 그리고 주변 모습이다.



차마고도-노블링카


달라이라마 7세 시기인 18세기 중엽 건설된 여름궁전 노블링카罗布林卡. 라싸의 '이화원'이라고 부르는데 정원의 품격을 지녀서 비교하는 것이다. 이화원보다 사이즈는 작지만 담아있는 문화가 아주 달라서 서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본 라싸 시내와 포탈라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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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미라산 고개


티베트 린즈의 중심이자 군사도시인 바이八一를 출발해 궁부장다工布江达로 가는 길. 하늘도 구름도 멈춘 듯한 티베트. 다시 5013m 미라산米拉山 고개에서 잠시 멈춘다. 바람이 부는 곳 어디에나 다르초는 세차게 흔들린다.



차마고도-민가 체험


미라산 고개를 지나 318번 국도를 따라 서진하면 르둬日多 마을에 도착한다. 모주궁카墨竹工卡를 향해 가다가 민가체험을 한다. 쑤여우차와 칭커주, 감자 등을 마시고 먹으며 티베트 풍습을 느낀다. 자신만의 나무 찻잔을 가지고 평생 쑤여우차를 마신다. 쑤여우차야 말고 야크지방과 푸얼차, 옌징소금의 환상적 궁합이다. 차마고도의 향기를 맛 본다.



차마고도-라싸로 가는 길

이제 라싸로 가는 길이다. 318번 국도를 따라 줄곧 서쪽으로 달려왔다.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햇살이 비치더니 라싸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는데 쌍무지개가 떴다. 이 무슨 거창한 환영이란 말인가. 차마고도를 따라 라싸로 들어온 단체여행객이라고 지역신문에 보도됐다는데 정말 감개무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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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테마여행’이 진행한 티베트 차마고도 여행…“검문검색조차 추억”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땅, 티베트에 사는 사람은 토템과 불교를 융합했다. 야크 버터의 지방과 푸얼차(보이차) 속 비타민을 섞어 마시는 지혜도 발견했다. 쥐나 새만 겨우 지날 수 있다는 길 대신 포장된 국도를 따라, 지금은 사라진 마방(馬幇, 말등에 차를 싣고 운반하던 상인)의 마음으로 티베트 하늘을 달렸다. 협곡과 강을 건넜고 설산을 넘어 7일간 달리고 달렸다. 지난 7월31일~8월11일 ‘한겨레 테마여행’이 진행한 ‘티베트 차마고도 여행’에 참가했다. 리장 호도협(후탸오샤)~샹그릴라~옌징~망캉~쭤궁~방다~바쑤~란우~보미~구샹~린즈(바이)~궁부장다~라싸, 가는 곳마다 검문검색으로 우리의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들조차 추억인 여행이었다.


한겨레 지면에서 보기 

푸얼차를 실은 마방은 다리, 리장을 거쳐 본격적으로 차마고도에 접어든다. 설산 사이를 흐르는 진사강은 호랑이도 건넌다는 호도협의 깊고 빠른 물줄기로 드러난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걷는다. 마방은 푸얼차를 운반하는 데 가장 적절한 무게를 계산했다. 병차를 오른쪽, 왼쪽에 각각 84개씩 30㎏으로 균형을 맞췄다. 357g 병차 무게는 차마고도의 피와 땀이 만든 표준이다. 구름도 하늘도 온갖 조화를 부리는 호도협은 그저 무아지경이다.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 낭만적인 마을 중뎬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2001년 이곳을 샹그릴라로 개명했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1933년 펴낸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에 등장하는 히말라야 산속의 이상향 샹그릴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계산이었다. 샹그릴라는 티베트말로 ‘마음속 해와 달’이라는 뜻. 그 옛날 티베트 왕국이 만든 일광성과 윈난 왕부(지방정권)가 건설한 월광성이 나란히 위치한 샹그릴라는 차마고도 마방에게는 윈난과 티베트를 잇는 가교와도 같은 곳이다.


일행은 샹그릴라의 송찬림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샹그릴라에는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 사원 송찬림사(쑹짠린사)가 있다. 5세 달라이 라마 시절인 1681년 준공됐다. 불교에서 길상을 상징하는 팔보 문양이 휘날리고 사슴 한 쌍과 법륜이 금빛 찬란하다. 본전은 ‘자창’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약 700여명이 학습하는 승원이다. 주변 건물에는 미륵불을 비롯해 달라이 라마 7세, 종교개혁가 총카파를 봉공한다.


본격적으로 랜드크루저로 달린다. 때때로 산사태로 도로가 무너지기도 하고 가끔 비포장도로도 지나야 한다. 일부 구간은 대중교통도 다닐 수 없는 험로가 수두룩하다. 해발 4292m 바이마설산 고개를 넘어간다. 육자진언 ‘옴마니밧메훔’을 새긴 마니석, 바람처럼 휘날리는 타르초(불경을 적어 만국기처럼 줄줄이 매단 깃발) 앞에서 호흡을 고른다. 고산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오지만, 반드시 나타난다.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지만 경솔한 태도를 버리고 하늘에 순응하는 자세라면 별 탈 없이 지나간다.


말과 차를 맞교환하던 길 높고 험해 아름다운 절경

쑤유차 건네는 사람들 미소는 고산병·멀미도 잊게 만들어


연회색과 하얀 구름이 조화를 이룬 하늘은 일행을 신비한 설산 앞으로 안내한다. 메이리설산을 관망하는 영빈대에는 13개의 티베트 불탑 ‘초르텐’이 나란히 서 있다. 평균 해발 6000m가 넘는 13곳 봉우리를 품고 있는 설산을 예우하고 있는가? 설산 앞에 높이 솟은 룽다(불경을 적어 장대에 매단 깃발)는 저마다의 색감이 하늘빛에 물든 듯 은은하다. 불경을 매단 타르초가 고원 바람 따라 부처의 진리를 전하려는 바람이라면, 깃대에서 펄럭이는 룽다는 마방에게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처럼 반가웠을지 모르겠다.


더친 마을 영빈탑의 룽다.


금단의 땅인 옌징에 이른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들어왔던 곳이긴 해도, 입경 허가제도가 생긴 이래 이번 테마여행처럼 외국인이 단체로 통과한 일은 없다고 한다. ‘천년 염전, 매력 옌징’ 앞에 섰다는 것은 곧 사건이다. 현지 가이드나 주변의 중국 전문가들 모두가 보내준, ‘불가능하다’는 염려와 시기를 뚫고 당당하게 관문을 통과한다. 해가 저물고 어둠 속에서 살포시 드러난 창문, 집안 불빛이 왜 이다지도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염전으로 가는 길은 공사 중이다. 홍토와 황토가 섞여 있고 나무와 풀이 운치를 높여주는 마을로 들어선다. 검붉은 강물이 세차게 흐르지만 그저 마냥 한가로운 마을이다.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으로 오로지 오롯하게 남은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11세기께 티베트 왕 게세르(게사르)가 나시족 왕 창바와 염전 이권 전쟁에서 승리했다. 얼마 후 창바의 아들 유라에게 소유권을 넘겼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나시족 민족향이긴 해도 티베트 문화와 나시족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토양의 영향을 받아 붉은소금과 흰소금이 생산된다니 흥미로운 공생이다.


천일염 생산지 옌징 마을. 좌우 산자락이 모두 염전지대다.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는 나시족 아빠와 부끄러워 시선을 자주 돌리는 아들을 뒤로하고 옌징을 떠난다. 여전히 공사 중인 도로에서 아빠 따라 공사판에 나온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윈난을 거쳐 나란히 흐르는 세 개의 강이 있다. 진사강에 이어 란창강을 따라 끝없이 돌진한다. 강만 있다면야 무슨 문제이겠는가, 해발 4000m도 넘어야 한다. 마침 산사태로 앞길이 꽉 막혔다. 덕분에 차에서 내려 란창강의 검붉은 질풍노도를 바로 옆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티베트 고원에서는 화장실을 찾기가 꽤 어렵다. 노상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방다 마을에서 화장실을 찾는 사이 화물차가 지나는 길로 오체투지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온몸을 바닥에 붙이고 일어서는 동작으로 정말 몇천㎞를 끊임없이 걷는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성지를 찾는 사람이나, 우리처럼 자동차로 질주하는 사람을 민망하게 한다. 정말 말없이 지켜볼 따름이다.


북상하던 국도는 망캉을 지나 서쪽으로 향한다. 라싸까지 직진이다. 물론 직선도로는 어디에도 없다. 해발 4658m 예라산 고개를 지나자마자 바로 하늘로 가는 길, ‘천로’라고 불리는 ‘99고개’ 앞에 멈춘다. ‘길은 백 보도 평탄하지 않고 끊어질 듯 험난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차마고도에서도 가장 걸출하다.


예라산 천로.


굽이굽이 돌아 오르내리는 길은 좌우로 너무 돌아 정신도 혼미하다. 고산반응과 멀미가 여진을 지녔는데, 그 고통조차 ‘환상적인 드라이브’ 앞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다. 1시간의 주행 끝에 차가 멈춘 곳도 예사롭지 않다. ‘삼강병류’ 중 가장 서쪽을 흐르는 누강대협곡. 다시 한 번 호흡을 멈추고 대자연의 선물에 감사를 연발한다.


보미마을의 미퇴빙천.


고원은 협곡도 만들지만 호수도 만든다. 언색호(산사태·지진 등으로 계곡이나 강이 막혀 생긴 호수)인 란우호는 설산이 장관이라는데 구도에 맞춘 데칼코마니 장면이 없다. 여름철이라 눈도 쌓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쉬운 마음은 곧바로 풀린다. ‘미퇴빙천’은 보기 드문 절경이다. 융기한 산자락에 눈이 쌓이면 호수에 비친 설산은 ‘은빛 뱀이 요동치는 듯하다’는 과장조차 현실로 보인다. 이 마을에서도 마방은 여정을 숨 고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라싸까지는 하루면 도착한다. 해발 5013m 미라산 고개에서 멈춘다. 이제 고산반응 정도야 적응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호흡곤란은 줄기차게 따라온다.


티베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차마고도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기 위한 줄기찬 운반이 아니던가? 집 안에 들어서자 모자는 감자와 함께 쑤유차(쑤여우차)를 내오고 술도 대접한다.


궁부장다 마을 민가의 쑤여우차 마시는 티베트인.


사람 키만한 죽통에 푸얼차와 버터를 넣고 소금을 살짝 넣어 맛을 낸 쑤유차는 맑은 미숫가루 같다. 매일 50잔 이상 마신다는데 나무 잔을 들고 온다. 외출할 때도 언제 어디서나 마시기 위해 잔을 들고 다닌다. 탕구라고 부르는데 비싼 잔도 많다. 평생 사용하는 잔이니 가격이 무슨 상관이랴. 티베트 고원에서 생산되는 보리과의 칭커 가루로 만든 짠바(참파)와 함께 주식으로 마시는 쑤유차. 환히 웃으며 쑤유차 마시는 모습이야말로 차마고도가 창조한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라싸에 도착해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을 보고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바르코르 광장의 오체투지도 본다. 이역만리 말과 함께 당도한 푸얼차는 티베트에게 영혼을 안겨준 것일까?


조캉사원 앞에서 만난 오체투지하는 사람들.


당나라 때부터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차마고도. 송나라에 이르러 말 한 필과 1080㎏에 맞교환되던 푸얼차, 가치 이상의 신비를 거두던 차마고도는 21세기의 문명으로 대체됐다. 지금은 사라진 마방의 마음으로 차마고도를 달렸다. 칭짱열차 타고 33시간을 달려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에 도착할 때까지 티베트 향기는 목젖을 타고 내리는 듯했다.


글·사진 최종명 작가·<13억인과의 대화> 지은이



라싸 조캉사원에서 바라본 바코르 광장.


산소 확보하려면 목욕도 삼가야


차와 말의 교역이 시작되자 마방은 라싸에 이르는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열었다. 리장에서 샹그릴라와 소금밭으로 유명한 옌징을 거쳐 라싸에 이르는 길은 자동차 도로만도 1700㎞에 이른다. 외국인은 옌징부터 입경허가증을 받아야 진입할 수 있다. 허가를 받아도 각 마을을 통과하면서 반드시 행적을 등록해야 할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검붉게 요동치는 협곡과 해발 4000~5000m의 설산을 통과해야 하는 험로다. 사람마다 다르나 해발 3000m가 넘으면 고산반응이 가슴과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산소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목욕까지 자제해야 할 정도인데, 가끔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푸얼차와 소금,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쑤유차는 티베트 생명수로 일컬어진다. 보리과 식물인 칭커를 분말로 만든 주식인 짠바(참파)와 함께 먹어보면 티베트 여행의 재미가 솔솔 풍긴다. 온 천지에 펄럭이는 룽다와 타르초에 담긴 불심은 티베트 사람들의 영혼과 닮아 있다. 오체투지하는 순례자의 모습엔 고개가 숙여지고, 티베트 사원에 담긴 역사와 문화도 접할 수 있다. 차마고도,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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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승덕의 식당도 굉장히 고풍스럽고 음식도 나름 좋았습니다. 앞으로 승덕 여행 가면 자주 갈 듯합니다.

 

판첸라마 행궁을 수미복수지묘 弥福寿라 부르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 드렸는데 기억 나지 않는 분은 복습하세요. 티베트의 제2도시 시가체에 있는 타쉬룬포 사원을 그대로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라면 생각나실 듯합니다.

 

건륭제 45 (1780) 70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엄청나게 멀리 날아온(?) 6 판첸라마(禅喇嘛) 위해 건립된 것입니다아미타불의 화신 활불로 타쉬룬포사원에서 주지하므로 타쉬라마라고도 합니다. 베트 불교의 게룩파에 속하며 15세기에 조사 총카파(宗喀巴) 종교개혁으로 형성된 계파로 황모파(黃帽派) 계열입니다.

 

강희제는 5 판첸에게 금책과 금인 하사를 통해 달라이라마와 동급으로 위상이 격상되었지만 이것이 계기가 돼 지금도 2명의 11 판첸이 있다는 것도 말씀 드렸습니다.

 

수미는 세상의 중심, 묘고(妙高) 의미를 지녔으며 복수는 행복과 장수를 뜻하겠지요.37,900평방미터에 이르는 공간입니다. 오공석교五孔石 지나 산문 하얀 벽으로  2 누각으로 건륭제 须弥福寿 편액이 있습니다.

 

비정碑亭 이중처마 누각 속에 공덕 비석과 거북이 형상인 비희, 용의 아들들에 특별히 관심이 높았습니다.운용과 파도 문양이 특히 멋진 비석이었습니다

 

류리패방琉璃牌坊 347 형식으로 황제를 상징한다고 말씀 드렸고 티베트 건축양식과 중국식 양식이 결합된 행궁 본전으로 이동했으며 벽면에 중국식 류리 수화(垂花) 창문이 맹창형태로 39개나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옥상은  기둥 곁채로 류리로 만든 보정이 있으며 공작과 사슴도 보셨나요내부는 3 구조의 복합 누각이지만 주전 묘고장엄전妙高庄严殿의 옥상 용마루에는 8마리의 금용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만법종원전万法宗源殿 판첸라마의 침전이었으며 우리 모두 공감했던 만수류리탑寿琉璃塔 8 7층에 벽면 불감과 불상이  상태 그대로 보존돼 흥미로왔습니다.


 

 

 

 

 

 

 

 

 

 

 

 

 

 

 

 

 

 

 

 

 

 

소포탈라궁 보타종승지묘 普陀宗乘之 건륭제 36 (1771) 건륭 60세와 황태후의 80세 생일 경축을 위해 건축한 것으로 수 만리 길을 민족 동귀한 몽골족 투얼후터 부족 수령 워빠시 일행을 친견한 장소로 유명합니다.

 

22만 평방미터에 이르며 60곳 건물(40곳 남음)을 지녀 웅장하고 넓었으며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는 라싸의 포탈라궁을 모방해 건축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달라이라마(达赖喇嘛)는 티베트불교 게루파의 법왕으로 관음보살의 화신, 활불이기도 합니다.

 

산문부터 하얀 벽, 3개 아치형 문 위에 1 6개의 맹창과 성 위에 3칸 너비의 곁채, 단처마 류리기와가 첫인상을 주었습니다. 비정碑亭에는 투얼후터의 귀순 관련 비석이 있는데 아쉽게도 공사중이었습니다. : 이중처마 4면 아치형 문, 3개의 비석, 가운데 건축공덕 비석, 좌우에 투얼후터 귀순 관련 비석

 

오탑문五塔 역시 5개의 탑(////)이 올라 선 재미난 문이었으며 각 탑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곳에도 역시 멋진 류리패방琉璃牌坊 있었으며 중앙 누각 편액 보문응현(普門應現)의 뜻과 후면 연계장엄(界莊嚴)의 뜻도 설명 드렸는데 다들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전罡殿”이 북두칠성 3개 별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어느 위치인지 기억하시겠지요? 대홍대红台야말로 이곳의 으뜸인데 1만 평방미터 규모입니다. 정면 백대(白台) 17미터, 3층 높이로 맹창이 있었으며 좌우로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동남쪽에는 문수성경전(文殊圣境殿), 서쪽에는 천불각(千佛), 특히 동쪽 아팔원(哑叭院)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재밌습니다. 홍대(红台) 25미터 7층 구조로 4층까지 맹창인데 위3층은 진창(真窗)과 맹창이 혼재한 것도 재밌습니다. 아 맹창에 대해 더 공부해서 알려 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바빠서 못 찾고 있습니다.

 

만법귀일전万法归一殿 경축행사를 치르던 장소이자 투얼후터 부족 일행을 친견했으며 구법승의 경법 장소이기도 합니다. 소포탈라궁의 주전이자 대홍대 군루의 중심일 뿐 아니라 외부의 고기비늘과 도금 지붕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항보도전慈航普度殿 만법귀일전 지붕 위를 바라보는 전각으로 관세음보살 입상이 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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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리포트> 24회 시짱 1 이다지도 파란 하늘 두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시짱 장족(藏族)자치구는 기원전 강족 등의 원주민이 있었는데 인도 왕자가 부족국가를 통일하기도 했으며 서기 7세기에 이르러 쏭첸깐뽀가 강력한 통일국가인 토번을 세운다. 당나라와 송나라와 대등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쓰촨과 칭하이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토를 경영했다.


13세기에 이르러 몽골족 원나라에 의해 복속된다. 이를 근거로 중국사람들은 ‘13세기 이래 중국 땅’이라고 주장한다. 티베트 고원을 무대로 살아온 티베트민족은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이르러 장족이라 일컫게 된다.


티베트민족은 지속적으로 독립국가를 지향했지만 1950년 10월 중국 정부군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1951년 5월 17개 조항에 이르는 협정이 강제적으로 체결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로 전락된다.


중국의 변강(邊疆) 정책 중 하나인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시짱 장족자치구, 윈난(雲南) 성, 광시(廣西) 좡족(壯族)자치구에 있는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역사와 문화를 한족 중심으로 평가하고 왜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티베트 독립문제는 세계 외교사에서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중국정부도 그 기조가 대단히 강경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티베트 민족에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티베트, 시짱 장족자치구의 수도 라싸와 가장 오래된 라마사원이 있는 쌈예로의 티베트 민족문화체험을 시작한다.


1)   라싸 拉薩 이다지도 푸른 하늘을 두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티베트로 들어가려면 외국인은 중국정부로부터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외국인들이 자주 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며 중국을 비판하니 당연히 들어가기 까다롭다. 여행 목적 이외에는 허가하지 않겠다며 여행사를 통해서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쓰촨 청두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서서히 서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티베트의 산천은 아름답다. 산 꼭대기에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인다. 해발고도가 아주 높다. 구름 아래로 산맥을 끼고 흐르는 강을 따라 비행기는 점점 라싸로 향한다. 산봉우리를 휘감고 있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언뜻 보인다.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준비를 하려는 듯 아래로 내려가니 농촌 마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길게 뻗은 활주로를 따라 구름들이 새하얗게 따라오는 듯하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니 바로 활주로이다. 지평선과 맞닿은 시선에 산 정상이 보이는 것을 보니 산 중턱에 내려선 느낌이다. 활주로에서 본 산과 하늘은 감동 그 자체이다. 정말 하늘이 새파랗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세상 그 어디보다 달랐다.


공항버스를 타고 1시간 20여 분을 달려야 라싸 시내에 도착한다. 바로 여기가 라싸구나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인데 숙소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처음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비교해 낯설다는 인상은 없었는데 전통복장을 입은 티베트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부터 뭔가 특별한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티베트 문자가 적힌 간판이나 자주색 라마승들의 옷, 차길 양 옆으로 선명한 색깔의 창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볼수록 눈 부신 파란 하늘이 색다른 호감이다. 한 건물 옥상에 티베트 문자가 적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도 하늘을 그냥 보통 하늘이 아닌 듯 느껴진다.


거리는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들로 뒤섞여 있으며 심지어 개까지 무단횡단을 하니 매우 무질서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니 무질서하지만 한가롭고 평화로운 거리 모습이다. 건물 창문에 놓인 화분들도 반갑다.


거리를 걷다 보니 거리 이름이 베이징루(北京路)이다. 중국 도시마다 거리 이름을 전국의 도시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라싸까지 베이징이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다소 화가 난다.


라싸 자전거(왼쪽), 라싸 시내(오른쪽 위), 둥춰 유스호스텔(오른쪽 아래)


덥기도 하거니와 배낭이 무거워 자전거 차를 세웠다. 숙소를 찾는다 했더니 100여 미터를 가더니 동춰(東錯) 유스호스텔(青年旅舍) 앞에 내려준다. 이렇게 가까운데 있었다면 그냥 걸을 걸 그랬다 싶다.


동춰는 입구부터 외국인들의 쉼터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영어와 중국어로 함께 안내문이 적혀 있으며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여행자들도 많다.


숙소 바로 옆에 조선족 동포가 하는 식당이 있어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고 거리로 다시 나갔다. 8차선이나 됨직한 큰길 한가운데 서서 양쪽으로 오가는 차들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특별히 선이 그어진 횡단보도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큰길을 넘나들고 있다.


거리에 오체투지를 하면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을 엎드렸다가 일어서면서 손을 내미니 또 사람들이 돈을 건넨다. 차길 옆으로 흰색 벽을 따라 한 할머니가 마니룬(瑪尼輪)을 돌리며 걸어가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이 늘 손에 들고 다니는데 라마불교 경전이 동그란 통 속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중국어로는 좐징퉁(轉經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멀리 포탈라 궁이 보인다.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산 능선을 따라 건축된 거대한 궁전이 볼수록 신기하다.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장엄한 궁전의 위상이 그대로 전달된다. 저 높은 산에 저다지 웅장한 궁전을 짓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다지도 파란 하늘이 있는 티베트, 저 멋진 궁전 속에 자리를 잡고 종교지도자이면서 독립된 나라의 리더가 돼야 할 달라이라마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라이라마는 1959년 라싸를 떠나 인도 북부의 다란싸라(達蘭薩拉)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다란싸라를 샤오라싸(小拉薩)라 부르기도 한다. 달라이라마를 비롯해 망명한 티베트 사람들에게 이 하늘이 어찌 그립지 않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포탈라 궁을 보느라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더위를 먹었나 보다. 머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그러고 보니 이게 고산병이 아닐까 싶다. 거리를 다니면서 호흡이 가쁘고 숨이 차 고산지대에 왔더니 영향을 받긴 하는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머리까지 멍해지는 증상이니 큰일이지 싶다.


라싸 시내의 효율적인 이동수단인 자전거 삼륜차에 올라탔다. 왼쪽으로 보이는 포탈라 궁 앞 광장을 가로질러 간다. 좀 빨리 가자고 했더니 서두른다. 포탈라 궁 정면을 지나가는데 오른쪽으로 높이 솟은 오성홍기가 보인다. 휘날리는 붉은 깃발이 파란 하늘과 묘한 불균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두통이 거의 24시간 동안 지속됐다. 저녁 먹을 힘도 없이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못했다. 호흡곤란과 함께 두통 역시 고산병의 일종이라 하는데, 심한 경우 비행기로 후송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국 학생들 몇 명이 오자마자 술 마시고 까불다가 응급실로 후송돼 고생했다고 한다.


밤새 앓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티베트에서 누구에게 병간호를 부탁한다는 말인가. 그저 어서 낫길 바랄 뿐이다. 게다가 잠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날 오전까지 아팠다. 여전히 호흡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겨우 세수만 하고 나와서 바람을 약간 쐬니 다소 안정이 된다.


2)   라싸 拉薩 앞에서도 뒤에서도 포탈라 궁은 들어가기 힘들어


세계문화유산인 포탈라(布達拉, Potala) 궁은 라싸 시내 어느 곳에서도 잘 보인다. 아예 산을 통째로 밀어 그 위에 지은 궁전이기 때문이다. 입장료는 100위엔이고 입장허가를 받으면 그 다음날 궁에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다. 하루에 들어가는 사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산병이 채 다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힘을 내 포탈라 궁으로 다시 갔다. 정문으로 가서 내일 입장권을 사러 왔다고 하니 서쪽에 있는 후문에서 예매 중이라고 한다. 다시 기나긴 광장을 따라 걸어갔더니 오늘 발매할 입장권은 이미 매진됐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데 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굳이 궁 안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포탈라 궁은 거의 해발 3,700미터에 위치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세워진 고대 궁전이다. 주 건물의 높이가 110미터에 이르며 길이도 동서로 360미터에 남북으로 200미터에 이른다.


서기 641년 토번왕(吐蕃王) 쏭첸감뽀(松贊干布)가 라싸로 수도를 옮기고 당나라 문성공주와 결혼한 후 공주를 위해 처음 세웠다고 한다. 999칸이라던 초기 건물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궁전은 청나라 시대에 만든 것이다.


쏭첸감뽀의 '정교합일' 정권의 중심이던 포탈라 궁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며 그 원형이 변했으며 신중국이 성립된 후 1985년에 고대문물 보호를 위해 사상 최대규모의 투자라 일컫는 대규모 공사를 거쳤다. 1989년에도 다시 한번 공사를 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포탈라 궁은 역대 달라이라마(達賴喇嘛)가 거주하며 종교와 정치를 펼치던 곳이다. 신중국이 티베트를 장악한 후 1961년에 전국중점문물로 지정한 상태이다. 세계인들이 한번쯤은 꼭 와보고 싶은 관광지가 된 것이다.


포탈라 궁 뒷문(왼쪽), 포탈라 궁(오른쪽 위), 포탈라 궁 매표소(오른쪽 아래)


다음날 우연히 만난 한국 여학생이 뒷문으로 들어가면 포탈라 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궁전 안에 들어가서 사진도 제대로 찍기 힘들고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비싸기만 할 뿐이니 뒷문으로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시안에서 만났던 학생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됐는데 먼저 라싸와 와 있던 사람들이 모여 7명으로 일행이 늘었던 것이다.


예매 장소인 포탈라 궁 후문은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내려오는 곳이다. 그러니 올라가는 것을 막고 있었는데 내려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살짝 올라갔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점점 전망이 넓어진다. 사방이 분지처럼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하늘과 구름이 모든 시야를 다 수 놓고 있는 멋진 모습이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니 포탈라 궁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아래에서 볼 때 느낀 것이지만 정말 웅장한 궁전인데 그 뒷모습 역시 거대하다. 궁전을 맴도는 뭉게구름 때문에 하얀 궁전 벽이 마치 하늘과 닿아있는 듯 보인다.


돌과 나무가 적절하게 섞여 건축된 궁전이다. 흰색 벽도 있고 홍색 벽도 있다. 창문마다 가림 천이 있는데 바람에 산들산들 휘날리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중간에 몇 그루 나무들도 궁전 풍경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입장권 검사를 하는 곳이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궁전의 뒷모습과 함께 마을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전망에 만족했다.


다시 길을 내려와 매표소를 지났다. 그리고 끝도 없이 마니룬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며 슬쩍 만져보기도 했다. 오체투지를 하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생활 그 자체라고 하지만 관광지 후문에 나타난다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바라는 것이 더 큰 이유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돈을 건네준다.


이렇게 라싸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5마오(毛)를 건넨다. 1위엔의 1/2이니 그리 큰 돈은 아니다. 워낙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뿐 아니라 라마승복을 입은 승려들도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씨 약한 사람들은 아예 5마오 지폐를 많이 들고 다니기도 한다.


왼손에 마니룬을 들고서 오른손으로 벽면에 세워진 마니룬을 돌리며 지나간다. 마니룬이 세워진 담벼락에 예쁜 색깔의 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돌 하나 크기 정도 돼 보이는데 흰색, 초록색, 노란색, 하늘색, 붉은색, 검은색으로 티베트 문자 6개가 새겨져 있다.


포탈라 궁으로 들어가려니 미리 하루 전에 아침 일찍 줄을 서서 예매를 해야 한다.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면 궁전 내부를 보려니 했더니 그것도 만만하지 않다. 굳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마니룬 도는 소리와 예쁜 색깔의 티베트 문자를 보면서 서운함을 달래본다.


3)   라싸 拉薩 바코르 광장은 티베트의 피와 땀이 얼룩져 있다


라싸 시내에는 꼭 보고 가야 할 조캉(覺康, Jokhang)사원이 있다. 본당인 조캉전의 이름을 따서 일반적으로 조캉사원이라 부르는데 중국어로는 다자오쓰(大昭寺)라고 한다. 이 조캉사원을 보지 않으면 라싸에 다녀갔다고 말할 수 없다 할 정도로 상징적인 사원이다.


조캉사원 앞은 바코르(八角) 광장이다. 바로 이곳이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종교 순례지와도 같은 곳이다. 사원을 중심에 놓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의 길이 있으며 티베트 독립을 위한 시위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바코르 광장(왼쪽), 오체투지(오른쪽 위), 조캉사원(오른쪽 아래)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커다란 화로 앞에 나뭇가지를 계속 던져 넣는다. 연기가 광장과 사원을 다 에워쌀 듯 솟아오른다. 그 옆에 티베트 문자가 그려진 헝겊으로 둘둘 묶은 큰 장대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를 듯 서 있다.


사원 정문 앞 커다란 마니룬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오체투지로 예를 올리고 있다. 사원을 향해 모두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조캉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마당이 보이고 2층으로 된 건물인데 장식이 참 예뻐 보인다. 1층 본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좁은 통로를 따라 많은 불상들이 있다. 포탈라 궁과 함께 서기 7세기에 만들어진 조캉사원은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올 때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있다. 엄격하게 촬영이 금지돼 있어 아쉬웠다. 달라이라마 초상화가 한 장 있어 살짝 사진을 찍었는데 어두운 곳이라 그런지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가니 화분들이 한가운데 뚫린 공간 주변에 늘어서 있고 건물의 천연색감과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건물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니 대부분 벽에는 붉은 느낌의 단청으로 색칠이 돼 있다. 어떤 건물은 검은 천으로 차양을 친 듯 막아놓기도 했다. 강한 햇살 때문에 밝은 곳과 그늘 진 곳이 흑백의 대비가 분명한 것이 인상적이다.


본당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또 다른 건물들이 포위하고 있는 상태라 사각 모퉁이를 따라 한 바퀴 돌아봤다. 지붕 처마마다 여러 동물들이 조각돼 있고 풍경(風磬)도 걸려 있다.


사원 2층 옥상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포탈라 궁 모습이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에 있는 바코르 광장과 순례자의 길도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 뒤돌아보면 조캉사원도 본당 지붕도 하늘과 닿아있다.


사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순례자의 길을 따라 걸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늘 이곳에 나와 종교의식을 치르듯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자의 길을 돈다. 삼보를 걷고 다시 일배 하면서 온몸을 땅바닥에 밀착시키며 절을 하는 모습이다. 양손에는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나무로 된 판자를 끼고 있다. 앞으로 엎드릴 때마다 나무와 바닥이 닿는 소리가 주르륵 하고 들린다.


순례자의 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많다.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다. 대체로 골동품, 민속공예품, 미술품, 책자 등 각양각색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물을 파는 가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목이 말라 물 한 병 사느라 꽤 헤맸다.


마니룬을 들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백발 서린 머리카락도 보이고 하얀 모자를 쓴 할아버지도 지나간다. 자꾸 보면 볼수록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니룬의 경전 속으로 빨려 들 것 같다. 갑자기 엄마와 함께 오체투지를 하는 아이가 불쑥 나타난다.


하반신이 없는 사람은 그냥 바닥을 기어가면서 투지를 한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남녀노소, 라마승려는 물론 티베트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코르 광장 앞을 끊임없이 지나간다.


사원 1층 벽 안쪽으로 수많은 촛불들이 활활 타고 있다. 초 하나마다 티베트 민족의 염원을 담은 듯하다. 저렇게 많은 초를 태우다니 티베트 민족의 소망을 다 담으려는가 보다. 그들의 소망이란 다름 아닌 독립, 진정한 자치가 아닐까 싶다.


이 바코르 광장은 티베트 민족에게 순례자의 길이며 피와 땀이 어린 성지이다. 삼보일배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담담한 모습이지만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 앞에서는 눈물을 쏟아내야 한다. 그때마다 상처가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침묵과 불처럼 솟는 심장소리가 느껴진다.


4)   라싸 拉薩 티베트 사모한 천사의 집의 고아들과 만나다


라싸에 머무르는 동안 ‘티베트 천사들’과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오체투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지 모르게 답답하던 어느 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택시를 타고 지금도 찾아가라면 아리송한 동네로 20여분 갔다. 차에서 내려 동네 가게에서 아이들을 위해 과자와 우유를 사고 고아원을 찾아간다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호의적으로 알려준다.


한 가정 집으로 들어가니 마침 예배 보는 시간이었다. 사라, 모세, 한나 3명으로 문을 열었기에 ‘사모한’ 고아원이라 부르는데 10명의 아이들이 중국어와 티베트어, 가끔 우리 말을 섞어가며 예배를 보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나라에서 기독교 선교를 한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이렇게 고아원을 운영한다는 것도 놀랄 일이다.


예배가 끝나자 참하게 한국 식 절을 하고 ‘곰 세 마리’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춘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고 있으니 덩달아 흥겹다.


아이들은 고아원 원장 선생님을 빠바라고 부른다. 중국어로 아버지를 그렇게 부른다. 빠바는 기타를 쳐주기도 하고 카세트를 틀어주기도 하면서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아준다.


세상의 모든 아이이 풀어내는 몸짓은 다 귀여운 가 보다. 특히 나오미는 예쁘장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세련된 춤 솜씨를 보여준다. 가장 나이 어린 에스더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라싸의 선교 고아원의 아이들


티베트 천사들의 합창, 천사들의 날개 짓을 보면서 하나씩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정 이 집을 잃은 천사들을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살아가는 사람을 그 어떤 종교적 이유로 비난할 수 있는가.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종교와 민족, 국가와 독립, 사랑과 갈등을 논하기 전에 티베트 ‘사모한’에 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켜보시기 바란다.


드보라는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늘 깨끗하게 치우는 일을 즐겨 한다. 그 사이 에스더가 또 따라와서 맑게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았다. 우리 아이들처럼 예쁜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 엄마놀이도 한다. 나오미는 빠바가 선물로 준 인형을 가지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사라도 엄마인형과 아기인형을 나란히 눕혀놓고 있다. 행복한 미소를 짓지만 왠지 우울한 느낌도 살짝 드러난다. 베드로와 요셉도 자기 인형을 가지고 와서 자랑한다. 요셉은 베드로가 너무 신나게 자랑하고 있으니 조금 질투가 나는 가 보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버려졌던 아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인 선교사인 빠바가 하나 둘 데려다 키우면서 많이 안정이 됐다. 처음에는 대인기피와 자폐적인 행동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오랜만에 손님들이 찾아와 신나게 놀았더니 그 여흥이 채 가시지 않는가 보다.


중국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외국인이 만든 고아원은 당연히 허가 받지 못한다. 선교의 사명으로 온 빠바의 치열한 고생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얼마 후 공안들이 들이닥쳐 아이들을 모두 데려갔다고 한다. 대부분 흩어져서 아이들 소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국립고아원으로 많이 보내졌다고 한다. 라싸에서 우연히 알게 된 티베트 아이들, 그 해맑은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디 티베트의 아이들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


Posted by 최종명작가 최종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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