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8

[차이나in인천] 4대 악녀의 '타산지석'

4대 악녀의 ‘타산지석’ 1900년, 서양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했다. 황제 광서제와 서태후(西太后)는 황급히 서안을 향해 서쪽으로 도피한다. 서태후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광서제가 총애하던 진비(珍妃)를 산채로 우물에 빠트려 죽인다. 서양 ‘오랑캐’에게 능욕당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이지만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광서제에 대한 경고였다. 고궁 자금성에 가면 붉은 황궁 담벼락 옆에 처량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진비정(珍妃井)은 ‘여성정치인’ 서태후를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권력을 움켜쥐고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여성이 더러 있다. 중국문화여행을 기획 인솔하면서 지루한 버스 이동 중에 ‘4대 미인’과 더불어 ‘4대 악녀’ 이야기를 강의하곤 한다. 고대 4대 미인으로 알려진 서시, 양소군..

구중궁궐을 넘어 활과 화살이 되어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4) 청와대는 구중궁궐인가? 조선이 세운 경복궁 후원에 ‘황제’처럼 자리 잡고 있다. ‘부도덕’과 ‘무능력’에 더해 ‘국정농단’, ‘헌법파괴’의 주범 박근혜 대통령은 수백만의 촛불과 함성에도 불구하고 ‘귀 막고, 눈 가리고, 입 다물고’ 있는 삼불후(三不猴) 원숭이마냥, 꼭두각시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이 세운 집에서 ‘예가 아니면 삼불’하라는 ‘공자님 말씀’ 한 가닥에 기대는 것인지 도무지 내려올 생각이 없다. 기원전 한나라 무제는 동중서(董仲舒)의 ‘대일통’ 논리를 이용해 제자백가(诸子百家)를 ‘분서갱유’하고 오로지 ‘충 하라, 효 하라’는 한심한 유교만으로 통치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역대 왕조가 ‘공자’를 황제 대우로 격상해 ‘존중’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

백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 장안을 점령한 황소 민란의 교훈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3) 경찰이 청와대를 차 벽으로 꽁꽁 에워싸고 있다. 백만 인파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향해 주말마다 진군나팔을 올리고 있지만 난공불락이다.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단체 등 제각각 ‘퇴진’의 깃발을 향해 촛불이 환하게 빛을 내뿜고 있다. 대통령이 사는 곳은 황제가 거주하는 성처럼 철옹성이다. 민란의 역사는 물리력으로 성곽을 열어젖히기도 하고 민중의 힘에 놀라 황제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기도 한다. 민란의 성공은 수도를 점령하고 황제의 권위를 대신해 새로운 국가를 개창하는 일이다. 황제를 스스로 호칭하고 개국했지만 튼튼한 민심과 함께 하지 못하면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도 전에 멸망에 이르기도 한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를 함락했던 민란 영웅 황소(黄巢)를 기억하자. 중원 ..

‘죽 쒀 개 준다’는 말은 당나라 때도 지금도 민란의 금기어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2) 11월 12일, 100만 명에 이르는 주권자 인파가 직접 청와대를 향해 시선을 직시했다. 대통령은 성난 ‘민란’의 함성을 듣고도 ‘나 몰라’로 일관하면 여파는 해일이 돼 다시금 전국을 ‘민주’의 깃발로 뒤덮을 것이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모인 국민의 날카로운 주인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현장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고 무언의 눈빛으로 공감한 국민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당도 민중총궐기의 대의명분을 그냥 마냥 눈 돌리기 어려웠나 보다. 지역구까지 적은 깃발에는 왠지 기회주의자의 냄새가 나고 곧 엄중한 결단의 시기에 이르면 그 펄럭임은 파도의 포말로 부서져 ..

횃불은 촛불로, 박근혜 정부의 ‘치약망문’을 끌어내려라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01) “#하야하라 박근혜”, “#새누리도 공범이다”는 해시태그를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현장. 대통령의 사과는 ‘사퇴’에 기름을 붓는 형세다. 전혀 사그라질 낌새가 아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측근’의 검찰 수사, 조사만 제대로 맞물리면 구속도 잇따라 구치소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비워야 할 판이다. 2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나서 촛불을 들고 함성과 구호로 빛을 밝히는 현장은 ‘민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는 왜 자꾸 되풀이되는가? 2,857년 전 중국에도 박근혜 정부와 일란성 쌍둥이가 살았다. 사마천은 를 집필하면서 기원전 841년을 꺼내 들었다. 수많은 사건을 잘 배치하기 위해 시간 축을 기준으로 역사의 터미널로 삼은 것이다. 전기 코드를 꼽아야 불을 밝히듯 ..

박지원을 따라가서 배운 <역경>의 ‘싸가지’

[중국발품취재-2014 2] 의 땅 승덕 피서산장 북경 고궁(故宫)에서 승덕(承德) 피서산장까지 거리는 약 230킬로미터. 박지원은 백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건너 열하(热河)로 갔다지만 경승(京承)고속도로를 달리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깝다고 자주 가는 게 아니듯 북경에 산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승덕을 찾았다. '선조가 남긴 은덕을 계승한다'는 승덕의 지명은 청나라 옹정(雍正) 11년(1733년)에 처음 등장한다. 기원전에는 북방민족이 말 달리던 터전이었고 몽골족이 세계를 제패한 이후 '뜨거운 물 줄기'라는 뜻의 지명 하룬가오루(哈倫告盧)를 그대로 청나라가 열하로 번역했다. 승덕은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 시기 열하 성의 수도였다가 신중국 수립 후 1955년 열하 성이 폐쇄되자 하북성으로 ..